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233)
232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저주’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한 주술적 행위인 저주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으며, 실제로 일어난 불행한 일은 그저 우연의 일치일 것이다.
하지만 공교로움이 빚어낸 우연의 산물들은, 아주 가끔 실체를 가지기도 하는 것 같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은 분명 저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난 어쩌면 그것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체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된 것일까?
난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교체로 투입된 리마의 날카로운 슈팅이 멋진 궤적을 그리며 날아, 페트르 체흐의 손을 벗어난다.
하지만.
투웅-!!
{“아아…….”}
아직 탄식을 내뱉을 힘이 남아 있는 팬들과는 달리, 우린 그 간단한 행동을 할 기운조차 없는 것 같다.
삑-! 삐-익!! 삐이이익!!
.
.
·후반전 종료
SL 벤피카 2 : 2 첼시 FC
후반전의 흐름은 전반전과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우리 시종일관 첼시를 몰아붙였고, 축구공은 거의 첼시의 진영에서 머물렀다.
페르난도 토레스에게 역습으로 추격 골을 허용했을 때에도, 우린 여전히 이 경기에서 승리할 거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그냥, 실수였을 뿐이니까.
하지만 내 프리킥이 골포스트를 두들기고, 카르도소의 득점이 석연찮은 판정으로 오프사이드로 선언 받고, 또 결정적인 순간을 만들어내는 니코의 패스가 나왔을 때, 갑자기 경기가 중단되기도 했다.
우리 벤피카의 유니폼을 입은 팬이 경기장에 난입한 것인데,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제로니모가 1:1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었을 거다.
또 역습이 전개되는 상황에서 피치 위에 축구공 두 개가 놓여 있기도 했었다.
피치 위에서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그런 일들.
그것들이 계속 우리의 발목을 붙잡는다고 느낀 순간, 후안 마타의 코너킥이 브라니슬라프 이바노비치(Branislav Ivanovic)의 머리에 닿았다.
강하거나 날카롭지 않았던 헤더.
이바노비치의 머리에 맞은 축구공은 마치 클리어되는 것처럼 느리게 떠올라, 어떠한 곳으로 나아갔다.
피치 위에 있던 사람들은 순간 발바닥에 접착제라도 붙은 것처럼 멈춰버렸고,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방향으로 움직인 헤더는 아주 느릿한 속도로 골라인을 넘어섰다.
2:0이었던 경기가 2:2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때, 내 머릿속을 관통한 것은 벨라 구트만의 이름과 그가 빚어낸 오랜 저주였다.
절대로 거기에 짓눌리지 말자고 그토록 다짐했었건만, 에우제비우 선수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난 이렇게 된 이유를 저주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 그 이후부터 난 피치 위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보게 되었고, 그것은 곧 우리가 승리하는 것을 막아서는 절망스러운 벽이 되었다.
동점 이후 교체로 투입된 리마가 무려 세 차례나 날카로운 슈팅을 날려보았지만, 그것들 모두 체흐의 선방에 가로막히거나 아슬아슬한 차이로 골대를 벗어났다.
그래서 결국은 1997년 단일 경기로 결승전 진행 방식이 바뀐 이후, 7번째로 연장전을 치르게 되었다.
흔히 7은 서양문화에서 행운의 상징으로 분류되지만, 체감상 지금 그것은 첼시 FC에 훨씬 더 가까워 보인다.
연장전을 위해 피치 한쪽에 모인 우리.
다들 발걸음과 입이 무겁기만 하다.
분명 경기 전에는 저주가 우리를 붙잡으려 한다면 목소리를 높이자고 다짐했건만, 막상 상황이 이렇게 되니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사지를 해주는 스태프들을 시작으로, 한쪽에서 짧은 미팅 중인 감독님과 코치들 또한 입이 잘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마침내, 감독님이 가까이 오셨다.
우린 그런 감독님을 올려다본다.
“지금 저기에서 머리를 맞대어 봤네.”
“…….”
“누구 하나 선뜻 말을 하지 못하더군. 우린 좋은 경기를 했어. 90분 내내 저들을 압도했지. 하지만 결과는 보시다시피야. 무척 잔인하고, 또 우습기도 해.”
무척 정확한 지적이라고 본다.
잔인하고, 또 우습다.
아까 잠깐 들었던 생각은 대체 당시 벨라 구트만이 가졌던 적개심이 얼마나 심했기에, 이토록 지독하게 우리를 괴롭히는 것인가? 라는 거였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구트만이 저주를 퍼부으며 사임한 이후 두 차례 우승에 실패한 벤피카가 1965-66년 그와 다시 함께 일을 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당시는 식민지 전쟁으로 인해 포르투갈 리그가 파행을 거듭하던 때였고, 리그 경기 없이 오직 유러피언 컵에만 참여했던 벤피카는 경기력 부족을 숨기지 못하며 8강전에서 종합전적 3:8로 맨유에 의해 패배하고 만다.
이에 충분한 연봉을 보장받았음에도, 벨라 구트만은 환멸을 느껴 다시 팀을 떠났다.
하지만 이것만 본다면, 분명 벨라 구트만은 1963년의 앙금을 해소한 셈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저주는 남아 있다.
우연.
이건 분명한 우연의 연속인데…….
‘어째서…….’
조용히 우리를 바라보던 감독님은 다시 힘겹게 입을 여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린 정말 좋은 경기를 했다. 그러니 딱히 거기에 대해 말할 것은 없어. 대신 이것 하나만 명심하도록. 난 자네들이 자랑스럽고, 자네들이 이 클럽을 위해 해준 것들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느끼고 있네. 최소한 내겐 이미 자네들은 승리자이고, 그러니 마지막까지 승리자처럼 뛰어줬으면 하는군. Vamos. 수분을 보충하고, 에너지를 아껴두게. 여기까지 하지.”
“…….”
감독님은 이 경기를 포기하신 걸까?
분명 지금의 이야기는 그런 생각을 할 만한 것이지만, 난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었다.
양말을 발목까지 내리고 발을 조금 편안하게 해주고 있었던 난, 그것을 다시 무릎 아래까지 끌어 올리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금씩이지만, 곳곳에서 목소리들이 이어진다.
“해보자. 우린 저들을 계속 밀어붙이고 있었어.”
“쟤들은 우리보다 더 지쳤어. 할 수 있다고.”
“그래, 맞아. 해보는 거야.”
결과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동료들의 반응을 봐선 감독님의 이야기가 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후반전이 끝났을 땐 당장이라도 골을 허용하고 패배할 사람들처럼 보였는데, 최소한 지금은 싸워보자는 의욕이 있는 것 같았으니 말이다.
우린 다시 스크럼을 짰고, 이번에는 코칭스태프들까지 전부 이곳에 모였다.
그리고 이때, 루이장이 갑자기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넌 할 말 없어?”
“네?”
“지금 네가 이 팀을 위해 한마디를 해준다면, 그건 꽤 힘이 나는 일이 될 것 같아.”
“…….”
한마디라.
“한마디가 아닐 건데요.”
“응?”
잠깐 의아해하던 사람들은 곧, 내가 실없는 농담을 던진 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대체로 쓴웃음이었지만, 그래도 웃을 기운이라도 남아 있는 게 어딘가 싶었다.
“한마디가 아니어도 돼. 듣겠어. 다들,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을 보며, 난 스크럼을 짠 이들을 한 사람씩 빠르게 돌아봤다.
“많은 분이 궁금해하더라고요.”
“?”
“제가 어제 에우제비우 선수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
에우제비우 선수와 단독으로 만난 사람은 내가 유일했고, 사람들은 어떠한 이야기를 나눴는지를 궁금해하며 내게 질문을 던져오곤 했다.
하지만 난 그럴 때마다, 별 이야기 아니었다면서 미소만 지어 보였다.
뭔가 그때는 이야기하면 안 될 것 같았는데, 지금은 정반대의 생각이 들었다.
“동료를 믿으라고 했어요.”
“?”
“이 또한 하나의 축구이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했죠. 이건 벨라 구트만의 저주가 아닌 첼시 FC와의 결승전이고, 모든 것은 순리대로 흘러갈 거랬죠.”
당시 사무실에 있었던 나와 에우제비우 선수. 그리고 그분의 주치의를 제외하면, 모두가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듣는 것이었다.
“그분에게 목걸이를 하나 받았어요.”
“목걸이?”
“네. 거기엔 이런 말이 적혀 있었죠.”
나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팬던트에 적힌 문구를 천천히 말했다.
“진실로 가득한 목소리. 황금빛 발. 그것이 당신을 영광으로 이끌 겁니다. 어째서 그런 이야기가 적힌 물건을 제게 주었을지 생각해봤어요. 그리고 조금이지만, 알 것도 같았죠.”
“?”
다소 시적으로 적힌 글귀였지만, 축구와 연관된 물건이라고 생각하니 의외로 쉽게 해석할 수 있었다.
“우린 계속해서 서로를 위해 외쳐야 해요. 입을 다물지 말고, 늘 해왔던 것처럼요. 그리고 계속해서 달려야죠. 축구에서 달리는 것보다 더 나은 가치는 없으니까요.”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스프린트.
축구에선, 이 두 가지의 이면에는 공통적인 의미가 존재하고 있다.
“희생. 헌신. 저는 결국 그걸 말해주고 싶었다고 생각해요. 결국은 그게, 우리를 승리로 이끌 테니까.”
“…….”
이야기를 모두 끝마친 뒤에, 난 제수스 감독님을 슬쩍 쳐다보았다. 그분은 희미하게 웃고 계셨고,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아까보다 훨씬 더 또렷한 목소리를 내셨다.
제수스 감독님은 우리가,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가자! 벤피카답게, 마지막까지 뛰는 거다!”
감독님의 이야기 이후, 베테랑들을 중심으로 파이팅이 이어졌다. 목소리는 꼬리의 꼬리를 물며 조금씩 더 커졌고, 마침내 돌아섰을 땐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었다.
무엇이 바뀌었는지는 말할 수 없지만, 최소한 지금 보이는 풍경은 몇 분 전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잔디의 색은 더욱 짙어졌고, 그 위에 그어진 줄 역시도 유난스러울 만큼 새하얗게만 보인다.
분명 전부 다 똑같을 건데.
“…….”
본래 위치를 찾아가, 연장전의 시작을 기다린다.
지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해보자.’
삐-익!!
휘슬 소리가 들려온 순간, 내 다리는 다시 힘차게 움직였다.
마치 지금이, 처음이기라도 한 것처럼.
***
1500-313 리스본, 벤피카. 에우제비우 다 시우바 페헤이라 거리. 이스타디우 다 루스.
현장의 선수들이 눈앞에 있는 11명의 적과 보이지 않는 무엇과 맞서 싸우는 동안, 에두 크루즈 역시 그 보이지 않는 무엇과 힘겹게 맞서고 있었다.
전반전이 끝났을 때 그는 사람들로부터 경기 스코어가 2:0이라는 것과 첼시 FC를 완전히 압도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동시에, ‘그러지 마요, 에두. 당신이 지켜본 경기에서 우린 거의 이겨왔다고요.’라는 말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에두 크루즈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리모컨을 집어 들어 TV의 전원을 켰다.
화면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광고의 오른쪽 위엔, ‘SLB 2 : 0 CFC’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한참 동안 그것을 멍하니 쳐다보던 에두 크루즈는 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사무실의 한쪽으로 걸어가 1/3쯤 남은 코냑을 잔에 채워 넣었다.
그렇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켜보기 시작한 후반전.
하지만, 순식간에 그의 눈빛은 흔들리고야 말았다.
페르난도 토레스의 득점 장면은 잊고 싶은 과거의 것과 거의 똑 닮아 있었으며, 이후 잇따른 기회가 무산되는 것을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멍하니 쳐다봤다.
술은 전혀 줄지 않았고,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에두 크루즈는 망부석이라도 된 것처럼 보였다.
결국, 에두 크루즈는 후반 41분 동점 골이 나온 직후에야 TV를 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후부터, 그는 줄곧 괴로워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이, 자신의 책임이기라도 한 것처럼.
연장 전반 3분이 지나가는 지금.
“파울-!! 파울이야!!!”
“?”
사무실 바깥에서 들려오는 격렬한 소란이, 에두의 귀를 간지럽히고 있다.
***
·연장 전반 03분
SL 벤피카 2 : 2 첼시 FC
페널티 박스 왼쪽 모서리 부근에서 다비드 루이스가 내 발을 걸었다. 난 거기에 저항하지 않으며 넘어졌고, 동료들은 이것이 페널티킥이라 주장하고 있었다.
홀로 판단을 내리기 힘들다고 생각했는지, 비외른 크라위퍼스 주심은 부심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리마의 손을 붙잡아 몸을 일으키자, 심각한 얼굴로 선 다비드 루이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난 걸음을 조금 옮겨, 파울을 당했다고 생각한 지점을 내려다본다.
잔디가 움푹 팬 곳은 분명 페널티박스 안이었는데, 내 시선을 눈치챈 다비드 루이스가 다가와 흔적을 덮으려는 시도를 해오고 있다.
“에-이!! 이봐!!”
그래서 난 크게 소리를 내지르며, 다비드 루이스를 밀쳤다.
이에 상대는 격렬하게 반응을 했고, 이것이 혼란을 틈타 어떻게든 흔적을 지우려는 목적임을 알았던 나는 온몸으로 루이스를 저지하며 고래고래 목소리를 높였다.
동료들 역시 상황을 눈치챘는데, 다급하게 이쪽으로 달려온 주심을 보며 난 아래를 보라고 소리쳤다.
“…….”
시선이 아래로 향하는 주심.
그리고 그는 휘슬을 입가로 가져갔다.
“!!”
.
(배정세)
“페널티킥!! PK입니다!! 비외른 크라위퍼 주심!! 페널티박스 안에서 김다온의 다리가 걸렸다고 확인합니다!!”
(박성문)
“아, 이건 정말 결정적인 판정이거든요. 느린 장면으로 봤을 땐 분명 PK감이 맞았습니다만, 주심이 어떤 식으로 생각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였으니까요.”
(배정세)
“연장 전반 3분!! SL 벤피카가 중요한 PK를 얻어냅니다!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낸 것은, 대한민국의 김다온입니다!”
.
PK가 선언된 순간, 첼시 FC의 선수들이 다시 주심에게 다가가 격렬한 항의를 이어나갔다.
목에 핏대를 세운 프랭크 램파드가 침을 튀겨가며 소리치는 가운데, 고개를 푹 숙였던 다비드 루이스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입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린.
“오스카!! 오스카에게 맡겨!!”
벤치를 돌아보며, PK를 찰 사람을 확인했다.
감독님은, 카르도소를 키커로 정했다.
이미 한 차례 PK를 성공한 그이기에 당연한 선택이었는데, 카르도소의 PK 실력을 알고 있었던 우리도 딱히 의심하지 않고 그에게 킥을 맡겼다.
“…….”
그러나.
“-!!”
페트르 체흐의 방향을 완전히 빼앗은 카르도소의 킥은 크로스바를 두들기며 높이 튀어 오르고야 만다.
삐-익!!
세컨 볼 상황을 경합하는 상황에서 이번엔 카르도소의 파울이 선언됐고, 다비드 루이스가 지옥에서 살아났단 얼굴을 한 반면 우리는 막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오늘 골대를 맞춘 것만 벌써 네 번째였는데, 다시 우리의 다리를 잡아끄는 무언가가 피치 위에서 손을 뻗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제기랄. 질까 보다.’
괜히 다리를 털어내는 동작을 해 보인 뒤, 나는 손뼉을 치며 고개 숙인 동료들을 향해 이렇게 소리쳤다.
“VAMOS!! 고개 들어!! 끝난 게 아니라고!!”
지금까지 축구를 해오면서, 난 이것이 단 한 번도 잔인하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내 말은, 축구 그 자체로서 말이다.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받아들 때면 잔인한 현실을 마주하곤 했지만, 그건 그 결과로 인한 현실 때문이지 축구 그 자체가 대상은 아니었다.
열심히 공부했는데도 시험 성적이 나쁘고 최선을 다해 헌신했음에도 결국 배신을 당한 것처럼, 결과 그 자체가 가져다주는 잔인함을 마주했었다는 거다.
피치 위에서는 결국 더 나은 팀이나 혹은 낫지 않더라도 더 간절한 팀이 결국 원하는 것을 챙겨가곤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첼시 FC보다 더 나은 팀이고, 우리가 유로파 우승을 더욱 간절히 바라고 있다. 경기의 내용과 전날의 인터뷰가, 이 모든 것을 뒷받침해준다.
하나 그럼에도, 축구는 계속해서 본연의 잔인함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중이다.
그 발톱은 매번 우리를 할퀴고 지나가 날카로운 상처를 남기고 있으며, 그럴 때마다 조금씩 더 약해지고 조금씩 더 발이 느려지려고 한다.
더불어.
“뚫렸어-!!!”
‘씨이팔!’
입도 다시 다물어졌다.
분명 커다란 다짐을 한 지 5분밖에 되지 않았건만, 우린 축구의 카운터어택 한 번에 다시 그로기 상태가 되어 휘청거리고 있었다.
센터백 사이의 뒷공간으로 파고든 페르난도 토레스.
그런 그에게로 후안 마타의 패스가 향한다.
지금까지 단 한 번 나왔던 마타-토레스의 시너지.
그리고 그 첫 번째 시너지가 피치 위에서 펼쳐졌을 땐, 우린 턱밑까지 추격하는 골을 허용했어야만 했다.
트래핑이 다소 왼쪽으로 치우친 페르난도 토레스가 축구공을 열심히 추격하는 가운데, 각도를 좁히기 위해 달려 나온 모라에스가 자세를 낮추면서 속도를 늦춘다.
골대를 한번 슬쩍 바라본 토레스가 왼발로 톡 찍어 축구공을 띄워 올렸고, 모라에스의 왼손 위로 날아간 슈팅은 그를 넘어서 아무것도 없는 피치 위에 떨어진다.
토레스를 기준으로 먼 쪽 포스트로 통통 튕겨 구르고 있는 축구공은 조금 있으면 골라인을 넘어설 것 같다.
지금 난,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축구공을 향해 달리고 있다.
최초의 한 번. 그리고 이어 두 번 또 세 번. 이후 빠르게 속도를 더해가며 튕긴 축구공이 골라인 앞 1m에 도달한 순간.
‘죽어보자!’
나는 온몸을 집어 던지며 축구공을 향해 뛰어들었다.
태클하는 방식이 되어야 했지 않았느냐는 생각은, 몸을 띄워 올리고 나서야 찾아왔다.
‘멍청한 새끼.’
나를 향한 가벼운 욕설과 함께, 팔을 위로 쭉 뻗으며 몸 전체로 축구공을 가로막는다. 굴러오던 축구공은 내 얼굴에 부딪혔고, 몸은 이내 골라인 안으로 들어갔다.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난 다시 눈을 치켜떴고, 축구공이 골라인 앞에서 다시 튀기고 있다는 걸 확인한 뒤에는 허겁지겁 일어나 다시 온몸을 날렸다.
어느새 앞쪽에선, 하미리스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퍽-!!
“우욱-!!”
머리에 무언가 닿는 느낌이 든 이후에, 목에 조금 더 가까운 부분에서 엄청난 충격이 전해져왔다.
재미있는 건 이런 와중에도, 축구공을 눈으로 좇고 있었다는 부분이다.
어떻게든 이마를 가져다 댄 덕분에, 축구공은 골라인 바깥으로 천천히 구르고 있었다. 이내 축구공은 라인을 완전히 벗어났고, 그와 동시에 난 고통에 휩싸였다.
맞은 부위를 손으로 붙잡으며 몸을 뒤틀기 시작하자, 어딘가에서 달려온 마티치가 하미리스를 거칠게 밀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조금 뒤, 난 고통에 눈을 질끈 감아버려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삐빅-! 삐빅-!
“12$#@%@!!”
“!#@#%$#^#!!”
들을 수 있는 것이라곤, 저 위쪽에서의 정신없는 고함이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