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235)
234화
1500-313 리스본, 포르투갈. 에우제비우 다 시우바 페헤이라 거리. 이스타디우 다 루스.
사방에서 무언가가 흩날린다.
그것은 서류 용지이기도 했고 또 그보다 더 작은 종이이기도 했으며, 홈 파티에서나 쓸법한 폭죽에서 나온 무언가이기도 했다.
사무실. 아니 리스본이 들썩거린다는 느낌이 든 이후부터, 에두 크루즈는 사무실 밖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그의 눈은 여전히 화면을 향하고 있다.
그라운드에서 뒤엉키고 있는 붉은색이 잔뜩 지나간 뒤엔, 초록빛 피치 위에 여기저기 드러누워 얼굴을 감싸 쥔 파란색 유니폼의 이들이 비쳤다.
“-!, -!!!”
“응?”
마치 최면이라도 걸린 듯 멍하니 그것을 응시하고 있던 에두 크루즈가 시선을 내리자, 지금까지 본 적 없던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익숙한 얼굴의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는, 에두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저주가 깨졌어요, 에두. 그 빌어먹을 벨라 구트만의 저주를 깼다고요.”
“…….
눈앞으로 다가온 벅찬 환희와 감동에, 사람은 때때로 할 말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감정은 이내, 정확한 형체를 가지고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든다.
“에두?”
“뭐?”
“지금…… 당신…….”
“?”
에두 크루즈는 비로소,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황급히 소매를 눈가로 가져가 보지만, 어째서인지 그것은 멈추지 않는다.
본인의 감정을 정의할 수 없었던 초로(初老)의 어깨에, 따뜻한 무언가가 하나 부드럽게 얹힌다.
“부끄러워 할 것 없어요, 에두. 모두가 다, 당신과 같은 마음일 테니까.”
“…….
이솝 우화 속 북풍과 태양의 이야기가 전해주는 교훈처럼, 한 인간의 마음을 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스스로 그럴 마음이 들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타인의 마음을 열기 위한 가장 좋은 무기인 ‘진심 어린 감정’과 ‘따뜻한 말 한마디’를 모두 가지고 있다.
세월의 흔적과 직책의 무게를 모두 벗어던진 에두 크루즈는 무릎을 꿇은 채 오열했고, 이를 지켜보던 사내와 다른 이들 모두 그런 에두의 곁에 모였다.
짝짝짝짝-
“?”
어딘가에서 시작된 박수 소리 하나가 옆 사람에게로 번져나가고, 계속해서 울고만 있을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한 에두가 천천히 일어나 가까운 이들부터 먼저 포옹을 나누었다.
여전히 그의 얼굴에선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에두였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수고했어요, 에두.”
“고맙네. 고마워.”
머릿속 단어장이 삭제되기라도 한 것처럼, 에두는 연신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만을 반복했다.
그리고 조금 뒤, 그와 사무실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은 암스테르담 스타디움 한쪽으로 올라선 그들의 자랑스러운 선수들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
.연장 후반 15분
SL 벤피카 3 : 2 첼시 FC
{“휘이이이이-익!!”}
{“휘이익-!!”}
사람들은 얼른 휘슬을 불라고 종용하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붉은색이 가득한 곳을 쳐다볼 때마다,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은 미소를 짓고 있거나 혹은 눈물을 훔치고 있는 사람들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들은, 한목소리로 노래했다.
{“SLB-! SLB-! SLB SLB SLB!
Glorioso SLB–, Glorioso S.L.B!”}
매번 우리가 승리할 때면 듣게 되는 노래였지만, 지금 저건 말 그대로 승리의 찬가(讚歌)였다.
첼시 FC가 어떻게든 공격 진영으로 축구공을 보내지만, 가라이가 먼저 헤더 한 축구공이 내 발밑에 도착했고 난 그것을 첼시 진영 멀찌감치 차버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삑-!! 삐?익!! 삐이이익-!!
.
(클레도 코엘류) – BTV 코멘테이터
“끝났습니다!! 끝났어요!!! 오- 산타마리아!!! 51년입니다!!! 반세기가 넘어서야 드디어!! 이 지독한 저주를…….”
(셀소 바렐라) – BTV 해설위원
“……정말 감동적인 순간입니다. 정말로요.”
.
(배정세)
“벤피카 우승!! 무려 51년 만에!! 벤피카가 다시 유럽대항전의 최종 승자가 됩니다!!”
(박성문)
“이로써, 축구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계속되어온 저주가 깨졌네요. 벨라 구트만의 말에서부터 시작된 이 오랜 징크스도, 결국은 그 끝을 맺습니다.”
(배정세)
“피치 위에서 뒤엉키고 있는 벤피카의 선수들입니다! 그리고 그 중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김다온이 있습니다!”
.
(피터 드루리)
“51년! 51년 만에 거둔 벤피카의 이 승리는 그들을 유로파리그의 정상으로 이끕니다! 클럽 최초의 유로파리그 트로피. 승자가 모든 것을 다 가져가는 이 스포츠에서, 그들이 끝내 모든 것을 휩쓸어 갑니다! 엄청난 의미. 또 엄청난 이야기들이 나올 겁니다.”
.
우린 피치 위에서 뒤엉켰다.
저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질렀고,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나도 닥치는 대로 소리치며 말도 되지 않는 문장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감독님.’
난 사이드라인 한쪽에 가만히 서서, 피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계신 감독님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동료들에게서 떠나 감독님이 계신 곳으로 달렸고, 패장(敗將)이 되어버린 베니테즈와 악수를 나눈 감독님은 비로소 내가 있는 곳을 바라보셨다.
우린 잠시 뒤 서로를 부둥켜안았고, 난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렸다.
“오- 죄송해요. 피치 위에서는 울지 않겠다고 했는데.”
“괜찮아. 지금은 마음껏 울어도 되는 순간이야.”
감독님은 내 머리를 거칠게 헤집으셨고, 다른 이에게 감독님을 양보하기로 한 나는 유니폼을 들어 올려 흐르고 있는 눈물을 닦아내었다.
그리고 조금 뒤, 난 복도에서 튀어나온 정장을 차려입은 동료들을 만나게 되었다.
오늘은 명단에 오른 18명 외에도, 1군 스쿼드에 포함된 전원이 함께 전용기를 타고 암스테르담으로 향했었다.
“이 미친 새끼!! 네가 해낼 줄 알았어!!”
“하하. 훌쩍. 정말?”
“그럼!! 그렇고말고!!”
막시가 빠져있는 기간 토너먼트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준 이스마일리와 포옹을 나눈 뒤에, 난 이어 들어선 사람들과도 우승의 기쁨을 즐겼다.
슬슬 정신을 차리자 첼시 FC의 선수들에게도 시선이 갔는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프랭크 램파드였다.
그는 허리춤에 손을 얹은 채,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듯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결국에는 더 간절한 사람이 가져가는 거야.’
여전히 그의 사전인터뷰를 기억하고 있었던 난,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전(前) 벤피카의 선수들을 찾아 나섰다. 가까운 곳에, 주저앉아 눈시울을 붉히고 있는 다비드 루이스가 있었다.
나는 곧 그에게 다가섰고, 허리를 숙이며 위로를 건넸다.
“좋은 경기였어.”
“훌쩍. 그래.”
“응.”
축하한다는 말이 돌아오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난 루이스의 어깨를 두드려준 뒤에 다시 첼시의 선수들을 찾아 나섰다.
.
(리 딕슨)
“경기 내용을 생각하면 2:3의 스코어는 첼시가 꽤 잘 싸웠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몇몇 번뜩이는 순간을 제외하면, 벤피카가 항상 우위를 점했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결과입니다. 첼시의 팬들에겐, 악몽 같은 일이지만요.”
(피터 드루리)
“반대로 벤피카에겐 잊을 수 없는 밤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역사에 선명하게 기억되겠죠. 클럽의 모든 경기를 통틀어서도 가장 짜릿했을 경기일 겁니다. Wonderful. Wonderful Night For Benfica Fan.”
(리 딕슨)
“이 팀을 좀 보세요. 첼시에 있는 선수들에 비해, 그리 이름이 잘 알려진 이들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무척 재기 넘쳤고, 또 인상적이었습니다. 화면에 나오는 선수들만 조금 말을 해보자면, 제로니모 베가. 유로파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격수였습니다. 그리고 다온. 무슨 말을 할까요? Very. Very Impressive. 사실 이 말보다 더 환상적이었죠.”
(피터 드루리)
“로이 킨?”
(로이 킨) – ITV 스튜디오 패널
“내가 얘기했잖아. 결국은 간절한 애들이 더 유리하다고. 첼시는 챔피언스 리그에 너무 정신이 팔렸어. 그리고 그건 유로파리그 결승전을 앞둔 팀의 태도가 아니었지. 반대로 벤피카를 좀 봐. 쟤네들은 오늘 이 대회가 가장 중요한 것처럼 뛰었어. 아마 챔피언스 리그 결승 그 이상이었을 걸? 월드컵 결승전쯤 되었을 거야.”
(피터 드루리)
“당신이 볼 때 가장 인상적인 것은 뭐였죠? 또 어디가 승부처였나요?”
(로이 킨)
“다온. 두말할 것 없지. 걔는 오늘 두 개의 골에 관여했어. 하미리스와 아스필리쿠에타가 그쪽에 있었지만, 난 걔네가 수비한 것밖에는 안 떠올라. 그리고 승부처? 걔가 얼굴로 토레스의 골을 막은 거. 그리고 좀비처럼 일어나 하미리스한테 뒤통수를 걷어차이면서도 클리어 한 거. 벤피카가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어. 거기에서 이미 게임 오버야.”
.
여기저기로 뿔뿔이 흩어져 있던 우리는 어느새 피치 한쪽에 모였다. 이곳은 리스본에서 온 팬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이었고, 우린 그 앞에서 다시 서로를 안아주고 있었다.
꽤 많은 사람이 울었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울컥했으며, 전부가 다 행복해하는 것 같다.
제수스 감독님은 지금 선수 하나하나를 돌아가며 뽀뽀 세례를 퍼부어주고 계셨는데, 아무리 내가 감독님을 존경하지만 저건 좀 피했으면 한다.
하지만 어김없이.
“어딜 가려고. 음-아!”
“우윽-”
덴마크나 포르투갈 모두 서구권이라 볼이나 머리 등에 입을 맞추는 문화는 보편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난 도무지 남자에게서 받는 이런 식의 애정표현에 익숙해질 수 없었다.
좋아하고 존경하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뭐 어떤가.
‘우리가 이겼잖아?’
페네르바흐체와 4강전을 치른 이후엔, 솔직히 패배를 예감했었다. 몇몇이 샴페인을 너무 일찍 따버린 모습에서, 언더독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예방주사였던 셈이 되었다.
에스토릴과 비기면서 팀 분위기가 최악으로 치달았을 때, 감독님이 결단을 내려주었던 게 컸던 것 같다.
FC 포르투와의 경기 때 제외되었던 이들.
카르도소-엔초-니코는 오늘 경기에 없어서는 안 되었을 매우 인상적인 경기력을 선보였다.
‘아, 그렇지 참.’
문득 무언가가 생각나, 난 앞서 걷던 카르도소를 불렀다.
“에-이! 오스카!”
“?”
“있다가 500유로 내는 거 알지?”
“뭐?! 이런! 오늘 같은 날에 꼭 그 말을 하기야?”
“오- 물론이지. 넌 아예 1,000유로를 내야 해.”
“와하하하하!!”
감독님이 정한 팀의 강령과는 별개로, 우리 선수들끼리 정해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PK 실축에 관한 벌금인데, 지금이 그걸 말하기 좋은 타이밍인 것 같았다.
물론 카르도소를 놀리려는 것에 목적이 있었고, 내 이야기를 들은 동료들은 근처에서 폭소를 터뜨렸다.
그렇게까지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우승이 가져다준 마법 덕분인지 다들 웃음을 참지 못하고 카르도소를 놀리는 것에 목소리를 보탰다.
저 한쪽에선 루이장이 선수단의 대표로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
장난기가 다시 발동한 나.
난 걸음을 옮겨 루이장의 뒤로 다가섰다.
그리곤 카메라를 향해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거나 하며 장난을 쳤다.
인터뷰하던 리포터가 웃음을 터뜨리자, 뭔가 이상함을 느낀 루이장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발견한다.
“오, 이 빌어먹을 녀석.”
“큭큭큭.”
날 밀쳐내는 루이장의 손길이 있고 난 뒤,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카메라를 향해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Best Captain EVER!!”
영국 ‘ITV’의 리포터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좋지 않은 발음이었지만 그래도 똑똑히 잘 들렸을 거다.
루이장에 이어 모라에스도 카메라의 앞에 섰고, 그다음은 감독님의 차례였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피치에는 경기장을 찾은 동료들의 가족들이 들어섰다.
문득, 이 자리에 우리 부모님도 와 계셨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마지막은 아닐 거니까.’
분명 언젠가, 또 이런 날이 올 거다.
“에-이!! 모두 집중해!! 저들은 훌륭한 상태였어!”
“Vamos! 끝까지 품격을 보여주자!”
짝짝짝짝짝.
피치 한쪽에 양옆으로 도열 해, 먼저 단상으로 오르는 첼시 FC의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그러면서 난, 단상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본래라면 에우제비우 선수도 와있었어야 할 자리다.
하지만 목발이 아닌 휠체어가 필요한 그분은 지금, 포르투갈의 병원에서 TV로 이 장면을 지켜보고 계실 거다.
‘정말 큰 힘이 되었어요.’
지금 내 머릿속엔 병원에서 기뻐하고 계실 그분의 모습이 떠오르고 있었다.
***
1649-028 리스본, 포르투갈. 프로페소아 에가스 모니즈 MB 거리. 산타마리아 MHM 병원.
뚜우- 뚜우- 뚜우-
에우제비우의 의식이 돌아온 건, 경기가 끝나기 몇십 초전이었다.
“…….
그리고 이 전설 역시,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중이다.
하지만 이것 또한 건강에 썩 좋지는 않다.
걱정된 탓에 바이털 사인을 확인한 플라시두 폰테스는 안심하며 돌아와 자리에 앉는다.
“51년. 참 길었군.”
“그러게. 난 그때 막 젖을 떼고 있었을 거야.”
“큭큭. 애송이 녀석.”
“이런! 들켜버린 건가?”
화면에서 잠깐 눈을 뗀 에우제비우는 최근 몇 년 동안 헌신적이었던 주치의를 바라봤다. 본인의 괴팍한 성격을 버텨낸 것은 물론, 히스테리에 가까웠던 요구들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들어주었던 사람이다.
과거 피치를 누구보다도 강인하게 질주했던 에우제비우에게, 목발과 휠체어를 받아들이도록 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보다시피, 에우제비우는 플라시두 폰테스의 모든 요청 사항을 묵묵히 들어주고 있다.
최근만 하더라도 고집을 부려 암스테르담 아레나를 찾겠다는 에우제비우에게, 플라시두 폰테스는 특유의 넉살과 진심 가득한 걱정으로 경기장이 아닌 병원을 찾게 했다.
조금 전의 상황을 생각하면, 생명을 살린 셈이다.
“……고맙네.”
“응?”
“늘그막에 난 정말 좋은 친구를 얻었어.”
“……단순히 그것만 얻은 건 아니지.”
“후후. 그래.”
플라시두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긴 에우제비우는, 이제 다시 TV를 바라본다.
“멋지게도 들어 올리는군.”
“그러게 말일세.”
화면 속, 벤피카의 선수들은 수많은 이들의 축하 속에서 메달을 수여 받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공식명칭 ‘The UEFA Cup’ 또는 ‘Coupe UEFA’로도 불리는 저것은 노란빛의 대리석 주춧돌 위로 은으로 된 몸체가 있는 15kg 정도 무게의 트로피였다.
“앞으로 1년인가?”
“그래. 1년이지.”
“훗. 영광은 참 짧기도 하군. 마치 우리네 인생 같지 않나? 물론, 자네와 같은 사람은 영원히 기억되겠지만 말이야.”
영원이라는 것은 없다고 말하고 싶었던 에우제비우지만, 그는 그러는 대신 입을 다물고 조용히 친구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기력이 조금 부족한 것도 있었거니와 집중을 하지 않으면 금세 또 의식을 잃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 멋진 장면을 놓칠 수 없다는 생각이, 에우제비우의 정신을 지탱해주고 있었다.
‘멋지군. 정말 멋져.’
목에 메달을 건 이들이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환호하는 가운데, 암스테르담 아레나 가득 붉은색 꽃가루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며, 에우제비우는 마치 저것이 장미 꽃잎처럼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흔히 붉은색 장미의 꽃말은 개수에 따라 바뀐다고 한다.
한 송이, 세 송이, 백 송이 등.
꽃의 개수에 따라 붉은색 장미는 열정, 욕망, 절정, 기쁨, 아름다움 등의 많은 의미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단어였다.
15세기 한 피렌체의 염색업자가 쓴 매뉴얼에는, ‘빨강은 인간이 가진 색 중에 가장 첫 번째로, 가장 고귀하고 중요하다.’고 적혀져 있었다.
실제로 과거 천에 색을 입히는 염료 중에서도 붉은색은 가장 비싼 것이었고, 그래서 왕족이 입는 옷에 사용되었다.
왕(Rei).
‘후후. 자네는 정말 왕이었군 그래.’
루이장으로부터 트로피를 건네받은 김다온이 힘껏 그것을 들어 올리는 것을 보며, 에우제비우는 잠깐 유지해 온 의식을 다시 놓아버리기로 한다.
그의 친구는 이것을 몹시도 걱정하겠지만, 에우제비우는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자신의 마지막이 아니며, 분명히 곧 다시 눈을 떠 저 트로피를 두 손에 쥐어볼 것이라고.
‘참. 길었어…….’
멀어지는 의식 속, 에우제비우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친구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듣는다.
.
.
·경기 결과(O.T)
SL 벤피카 3 : 2 첼시 FC
오스카 카르도소 : 전반 37분(P.K/제로니모 베가)
제로니모 베가 : 연장 후반 13분(김다온)
김다온 ? 126분 출전(평점 9.5/전체 1위/M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