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244)
243화
2013년 6월 13일. 서울특별시 송파구 법원 6길. KJ 풋볼 아트 아카데미.
대표팀에서 전화가 온 것은 어제의 일이었다.
강찬일 코치님은 내게, 18일 경기에서는 뛰지 않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조 1위로 본선 진출을 확정 지은 상황에서 조금 더 팀을 실험해보고 싶다는 게, 삼파올리 감독님의 생각이란다.
그래서 강찬일 코치님이 내 생각을 묻고자 전화를 걸어오셨는데, 난 알겠다고 말하면서 대신 대표팀의 합류 시점을 이틀 정도 늦춰달라고 했다.
본래라면 15일엔 복귀를 해야 하지만, 난 경기 전날인 17일 파주 NFC로 향할 생각이다.
대신 그동안은, 작년 함께하면서 많은 걸 배웠던 권준이 형과 개인 훈련을 이어 나가보려고 한다.
“네가 오버랩을 하는 경우가 많잖아.”
“네, 그렇죠.”
반갑게 인사를 나눈 권준이 형은 곧바로 자신이 생각한 것들을 이야기했다. 전에도 느꼈던 것이지만, 이 형에게는 고정관념이란 없는 것 같다.
같이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축구를 바라보는 시각이 색달라지는 느낌이었고, 볼을 이렇게 찰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지금도 형은 페네르바흐체와의 유로파리그 4강전을 보며 영감을 얻었다며, 상대가 예상하지 못하는 타이밍에서 오른발 아웃프런트 킥을 하는 방법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드리블에서 킥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오는 지연을 최소화하면서도, 축구공에 싣는 힘은 거의 비슷해야 한다.
쉽게 말하자면 도움닫기 없이도 킥의 세기를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하자는 건데, 난 이게 말이 되는가 싶었다.
“돼. 나만 믿고 따라오면 된다니까?”
“일단 해봐요, 형.”
“그래. 그래도 몸 먼저 풀자. 가자.”
권준이 형의 사무실에서 나와, 건물 안에 있는 실내 연습장으로 향한다. 20평 남짓한 공간에 인조잔디가 깔려있는 곳으로, 가벼운 훈련을 하기엔 무리가 없다.
안으로 들어선 나는 형의 지시대로, 독특한 훈련이 첨가된 워밍업을 시작했다.
“일곱! 빨리빨리!”
“후우! 후우!”
“라스트-! 여덟!”
“후우-!”
몸을 푸는 것만으로 이미 땀에 흠뻑 젖어버렸는데, 여기엔 더운 날씨도 한몫을 하는 것 같았다.
“야, 그런데 넌 안 쉬냐?”
“쉬어야죠. 19일부터 쉴 거예요.”
따지고 보면 난 지금 시즌의 연장선상에 있는 셈이다. 포르투갈 리그가 끝난 뒤에도 매번 비슷한 루틴을 지켜가며 항상 시합을 치를 수 있는 컨디션을 유지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삼파올리 감독님이 날 쉬게 해주신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었는데, 19일부터는 다가올 시즌을 위해서라도 푹 쉬어두려고 한다.
물론 개인 훈련은 계속해서 이어나간다.
개인적으론, 조금은 몸을 불릴까 한다.
“지금 몇 키로지?”
“76이요. 한 2키로 정도 더 찌우게요.”
“쓰읍- 그거 빡셀 건데.”
“뭐, 어떻게든 해야죠.”
내 목표는 순수 근육량 2kg을 늘리는 것이다.
처음으로 하나의 시즌에서 마흔 번이 넘는 경기를 뛰어보고 나니, 튼튼한 몸과 체력의 필요성을 어느 때보다도 절감했기 때문이다.
시즌 중에는 컨디셔닝 훈련의 목표가 유지에 맞춰지는 만큼, 몸을 더 좋게 만들려면 여름밖에는 기회가 없다.
“야, 일단 이거 먼저 차.”
“이게 뭐에요? 밴드?”
“어. 일단 이거 잡고, 형 따라 해.”
“…….”
어딘가로 사라졌던 권준 형이 가져온 것은 트레이닝용 밴드였다. 보통은 몸을 풀어주거나 여러 종류의 운동을 보조할 때 쓰이지만, 지금은 좀 쓰임새가 달랐다.
난 형을 따라 오른발에 밴드를 가져갔고, 본인의 것을 풀고 내 옆으로 온 권준 형은 이것이 자세를 잡아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봐. 오른발을 이렇게. 보여? 이러엏게 움직이면, 드리블 하면서도 빠르고 강하게 킥을 찰 수 있어.”
“……이러어케. 요?”
“아니. 잘 봐. 이러엏게! 알겠어?”
“…….”
전에도 그랬지만, 권준이 형의 훈련방법은 처음엔 항상 조금 이상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작년에도 의심을 거두고 따른 결과, 난 좀 더 피치 위에서 많은 걸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묵묵히 형이 하라는 대로 몸을 움직였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이적과 관련된 문제가 끼어있는 여름은, 내가 마음껏 계획을 잡고 몸을 움직이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좋아! 이번엔 축구공으로 해보자.”
“네.”
그러니,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지금 내겐, 흘러가는 1분 1초가 아쉽기만 했다.
***
2013년 6월 17일.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필승로 368. 파주 풋볼 팬타지움.
나흘 동안의 개인일정을 끝마치고, 나는 17일 오전에 다시 대표팀에 합류했다.
안배 차원의 이유로 아예 명단에서 빠진 두리 형님을 포함, 대표팀은 총 다섯 명의 선수 없이 이곳에 모여 이란전을 대비한 훈련을 진행해왔다.
“수고하세요~”
탁-!!
택시에서 내려, 가방을 매고 걸어간다.
대표팀 외의 차량은, 딱 여기까지만 접근이 가능하다.
지난 며칠 KJ 풋볼 아트 아카데미에서 꾸준한 개인 훈련을 진행하는 한편, 저녁이 되면 틈틈이 아영이를 만나 조용한 곳에서 짧은 데이트를 즐겼다.
또 다가올 엄마의 생일 선물을 위해 누나와 쇼핑도 갔었는데, 클럽이나 대표팀이 아닌 순수 개인적인 목적으로만 시간을 보낸 것은 실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덕분에 지금 기분은 무척 좋았고, 숙소 건물로 향하는 발걸음 역시도 무척 가벼웠다.
누나는 사소한 것에도 기뻐하는 나를 보면서, 가끔은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다고 했다.
“왔냐?”
“네. 어디 가세요?”
“어디긴. 훈련 준비해야지.”
“수고하십셔~”
“그래~”
대표팀의 공식 트레이너는 삼파올리 감독님과 함께 온 크리스톤 톨레도(Criston Toledo)이지만, 그를 보조하는 두 분의 스태프는 전부 다 한국인이다.
강찬일 코치님이 삼파올리 감독님과 선수의 사이에서 소통을 담당한다면, 저 두 분도 비슷한 일을 한다고 보면 된다.
트레이너님 외에는 아직 아무도 만나지 못했는데, 숙소가 있는 층에 도착하자마자 입구에서부터 시끌벅적했다.
문을 두드리며 베테랑들을 깨우는 후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본래라면 저건 흥민이 형과 내가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동원이 형과 형권이 형이 저걸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난 두 사람을 스쳐 지나며, 수고하라면서 쿨하게 한마디를 날려주었다.
“야, 너 잘 왔다!”
“켁-!”
티셔츠의 아랫부분을 꽈악 잡아 보이는 영권이 형.
저항을 느낀 나는, 일부러 켁소리를 냈다.
“아이 씨, 엄살은. 야, 너도 같이 깨워.”
“아~ 진짜. 저 내일 안 뛰거든요?”
“어쭈?”
말은 이렇게 했지만, 붙잡히기 전부터 형들을 돕겠다고 생각을 해뒀었다.
‘여기가 누구였더라? 근호 형인가?’
폰을 잠깐 뒤적여 메모장에 적어두었던 내용을 살핀 나는, 지금 이 방이 근호 형이 혼자서 쓰고 있는 것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본래는 두리 형과 한 방이었는데, 두리 형이 소속팀으로 복귀하면서 혼자서 쓰게 되었다.
‘전부터 이걸 해보고 싶었어.’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 일어났고, 오직 근호 형의 방만 조용한 상태다.
벌써 깼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고민은, 전날 이미 조처를 해두었다는 영권이 형의 말에 말끔히 사라진 상황이다.
“다들, 준비 됐죠?”
“…….”
날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
현재 내 손엔 ‘무언가’가 들려져 있다.
“자~? 하나, 둘, 셋!!”
쿠당!!
문을 밀치고 들어서며, 난 미리 세팅해 두었던 멜로디를 재생시켰다.
빠-빠 빠빠빠- 빠빠↗빠빠 빠빠라바빠…….
“기상! 기상! 이근호 일병! 이근호 일병~”
2013년 12월 14일.
근호 형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신체 건강한 남성으로서, 자랑스러운 육군 부대에 입소했다.
“!!!!”
인터넷에서 찾아 다운 받아둔 기상나팔 소리와 빨간 모자를 뒤집어쓴 영권이 형의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몸을 일으킨 근호 형은 넋이 완전히 나간 것 같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일을 주도한 나나 영권이 형 모두 런던 올림픽으로 군 면제를 받은 사람들이란 거다.
“하아~ 악마새끼들.”
상황을 파악한 근호 형이, 이내 안도하며 머리를 헤집는다.
“근호 일병~ 근호 일병~”
“얼른 일어나지 못합니까!!”
미필인 우리의 어설픈 장난은, 근호 형을 뺀 다른 형들에겐 무척 유쾌한 일인 것만 같았다.
당했다는 표정으로 허탈해하는 근호 형의 방안에서, 이런 우리들의 웃음소리는 아주 오래도록 울려 퍼졌다.
***
[호르헤 삼파올리, “내일 이란 전은 실험의 무대가 될 것. 우리의 목표는 월드컵 본선에서 성과를 내는 것이기에, 본선 진출이 확정된 지금이 가장 좋은 타이밍이다.” – OSEM] [카를로스 케이로스, “반드시 이긴다.” – OSEM]***
2013년 6월 18일. 서울특별시 마포구 성산 2동 월드컵로 240. 서울월드컵경기장.
·하프타임
대한민국 0 : 0 이란
&Match Up`s Best Eleven(대한민국/상대팀)
&Tactics(대한민국/상대팀) : 4-2-3-1/4-2-3-1
GK ? 이범영 / GK ? 라흐만 아흐매디
RB ? 김창수 / RB ? 페흐만 몬타제리
CB ? 김영권 / CB ? 세이드 잘랄 호세이니
CB ? 홍정호 / CB ? 아미르후세인 사데기
LB ? 박주호 / LB ? 하셈 베이크자데
DM ? 하대성 / DM ? 자바드 네쿠남
DM ? 이명주 / DM ? 안드라니크 테이무리안
RAM ? 지동원 / RAM? 코스로 헤이다리
CAM ? 김보경 / CAM ? 모즈타바 자바리
LAM ? 이근호 / LAM ? 마수드 쇼자에이
ST ? 이동국 / ST ? 레자 구차네자드
.
.
0:0으로 끝나게 된 전반.
산발적이었던 역습 외에는 이란이 주도권을 쥐고 흘러갔던 경기였다.
그리고 삼파올리 감독님은 이게 만족스럽지 않았다.
[좀 더 과감하게!! 창수!! 주호!! 자신감을 가져!!]“…….”
대표팀은 늘 어렵다. 비교적 여유롭게 준비를 하고 있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부는 삼파올리 감독님의 축구를 받아들이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몸에 배어있는 습관과 같은 것들이, 조금 다른 역할을 요하는 대표팀에서의 모습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나도 대표팀에서 사이드백에서 뛸 때면, 소속 팀에서는 범하지 않았을 실수를 저지를 때가 있으니까 말이다.
“형. 공격 때는 더 높이 가도 돼요.”
“응. 그래.”
주호 형은 FC 바젤에서 전형적인 풀백의 역할을 맡고 있다. 기본적으로 수비에 조금 더 중점을 두고, 공격 가담은 어디까지나 일정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에만 하는 것이다.
공수 밸런스를 중시하고 중앙 미드필드와 윙어에게 많은 역할을 요구하는 감독에겐, 이런 식으로 풀백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흔한 경우다.
그래서 사이드백의 공격 가담을 중시하는 대표팀에 오게 되면, 삼파올리 감독님이 바라는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었다.
더구나 오늘처럼 중원에서의 주도권을 내어주게 되면, 사이드백은 더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래도 나아가야 한다.
그게 삼파올리 감독님의 철학이자, 대표팀에서 보여주려고 하는 축구이니까 말이다. 무엇보다 오늘은 실험을 하는 무대이기에, 굳이 실점에 겁먹지 말아야 한다.
주호 형에게서 멀어져, 이번에는 창수 형에게 다가간다. 올림픽 이후, A팀에선 고전하고 있는 중이다.
주호 형과 마찬가지로 창수 형 역시 밸런스를 갖춘 유형인데, 그 점이 오히려 삼파올리 감독님 아래에선 빛을 보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두리 형보다 수비력이 나은 것은 또 아니기에, 본인의 매력을 조금 더 어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형 잘하잖아요. 그런데 오늘 약간 타이밍이 엇나가요.”
“그러냐?”
“네. 공격수한테 너무 끌려다니고 있어요.”
“쩝.”
본래는 창수 형도 공격을 할 때는 무척이나 잘 했다. 필드의 흐름을 살핀다거나, 상대 전술을 이해하는 측면은 대표팀의 상위권에 놓아도 된다.
특히 내가 벤피카에서 하는 것처럼 조금 중앙으로 치우쳐, 볼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기에도 무리가 없다.
그래서 준비 때 감독님도 창수 형에게 그런 역할을 주문했지만, 이란의 왼쪽 공격수 마수드 쇼자에이(Masoud Shojaei)에게 휘둘려 위치를 강제 받았다.
“집중하자! 지금 상대가 더 잘하고 있어!”
동국이 형을 중심으로 선수들이 모이고, 다들 전의를 다지며 다시 피치로 나선다.
후보 명단에도 포함되지 않은 나는 박수와 격려로 형들을 응원했고, 이후엔 마찬가지로 오늘 경기에서 제외된 흥민이 형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어제 독일의 ‘빌트(Wild)’를 시작으로, 많은 미디어가 흥민이 형의 레버쿠젠 이적을 발표했다.
이적료는 그때 들었던 대로 천만 유로였는데, 이는 현재까지 대한민국 역대 최고액이다.
“…….”
나는 오늘 경기장을 찾았다는 한 무리를 찾아 고개를 움직였다. 아까 듣기론 저 앞의 어디쯤에 있다고 했는데, 조금 부산스러운 상황이라 발견이 영 쉽지 않았다.
그들은 나의 한국 대리인 측에 접촉했고, 오늘 경기가 끝난 뒤에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해왔다.
그리고 본래라면 그런 업무는 대리인 측에 일임하는 것이 옳지만, 최근의 일도 있고 하여 자리에 함께하려고 한다.
상대는 오히려 그걸 더 마음에 들어 했다.
뭔가,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삐이익-!!
주심의 휘슬과 함께 후반전이 시작되고, 난 시선을 다시 피치 위로 가져가며 경기에 집중했다.
이란 진영에서 멀리 날아들어 온 축구공이, 바로 앞쪽에 있는 창수 형에게로 정확히 날아든다.
.
.
·경기결과
대한민국 0 : 0 이란
[경기 종료 후 대한민국 벤치에 주먹감자를 날린 케이로스. 왜? – OSEM]***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1가 을지로 30. 롯데호텔 서울.
나를 만나고자 서울을 찾은 쪽은 프랑스 리그 앙의 축구 클럽 파리 생제르망의 관계자들이다.
꾸준히 나와 얽힌 루머가 있었던 곳 중 하나였지만, 난 이미 오래 전에 리그 앙은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식으로 인터뷰를 했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조금 정체되어 있는 이적을 다시 움직이게 하려면, PSG 쪽 사람들을 일단 만나보는 것이 최선이란 조언을 받았다.
[우리가 당신에게 드릴 건, 바로 이겁니다.]“?”
“이게, 조건이래요.”
“…….”
형식적인 인사치레가 끝나고, 본격적인 이적 관련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한다.
지금 나는, 통역의 도움을 받고 있다.
에이전시와 만나 협상을 끝내고 최종 결과만 받아드는 것이 일반적인 현대 축구에서, 이런 식으로 선수가 구단 관계자와 직접 만난다는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파급 효과는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상상력은 실로 놀라운 것이니까 말이다.
본인을 카심 하지(Quasim Hadj)라 소개한 사람에게서, A4용지 사이즈로 묶인 종이 다발을 건네받는다.
가장 위쪽엔 눈에 익은 PSG의 심벌이 있었고, 그 아래로 다시 파리생제르망의 이름과 계약서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쓰여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곧장 페이지를 넘겼는데.
“응?”
“왜요?”
“……아무것도 없어요.”
스륵- 스륵- 스륵-
계속해서 종이를 넘겨보지만, 백지만 계속해서 이어질 뿐 글자라 부를만한 것은 전혀 새겨져 있지 않았다.
의아해하며 앞을 보자, 카심 하지가 이렇게 말을 했다.
[보는 그대로입니다. 거기엔, 당신이 원하는 대로 조건을 채워 나갈 수 있어요. 세계 최고 수준의 주급과 계약금, 또 집과 차도 얼마든지 제공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다른 선수들에겐 비밀로 해야 하겠지만요. 저희도 형평성이라는 걸 신경 쓰고 있거든요.]지금 내가 건네받은 것은 말 그대로 백지수표였다.
그런데, 이렇게 해도 돼?
[저희 구단주이신 타밈 왕세자는 곧, 카타르의 국왕이 될 겁니다. 그 말은, 돈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죠. 당신뿐만 아니라, 우린 세계 최고의 선수에게 관심이 있습니다.]카심 하지는 내게, 첼시의 다비드 루이스와 SC 나폴리에서 뛰고 있는 에딘손 카바니(Edinson Cavani)등이 물망에 올라 있다고 했다.
외에도 팀 전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단기 프로젝트에 돌입할 것이며, 향후 2년이나 3년 이내에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노려볼만한 전력을 갖출 것이라고도 했다.
이 모든 것은 당연히 막대한 투자를 통해서만 가능한데, 이미 거기에 관한 자금을 확보해 두었단다.
그런데, FFP는?
[그건 저희의 문제죠. 걱정할 것이 전혀 되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거든요.]“어떻게요?”
[유럽대항전에 관한 우려는 충분히 우려합니다만, 킴. 그건 저희의 영역입니다. 선수인 당신은 그저, 세계 최고의 환경에서 축구를 하기만 해주시면 됩니다.]“…….”
지금 이야기만 들었을 땐, PSG의 이런 투자는 분명 FFP를 어기는 행위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유럽대항전 진출 자격이 박탈되고, 그건 곧 클럽의 파멸을 의미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에게 세계 최고의 주급을 지급한다고 한들, 유럽대항전 진출을 하지 못하면 분명 팀을 떠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째서 이 남자가, 이토록 자신감을 비추는 것인지를 알지 못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백지수표라니. 이런 건 처음 봐요.”
“……네. 저도요.”
PSG 쪽 사람들이 객실로 올라간 뒤, 나와 대리인 측은 호텔 로비에 남아 그들의 제안서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만약 내가 이곳과 계약을 하면, 분명 곧장 전용기를 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나의 꿈이자 또 축구를 열심히 할 수 있는 이유였다.
한데.
‘너무 쉬워.’
과연 지금의 내가 그런 자격이 있기나 한 걸까?
그리고 무엇보다, 난 프랑스 리그에 흥미가 없다.
리그 앙의 환경은 포르투갈 리그보다 더욱 극단적이라, 절대 강자인 PSG가 군림 중인 세상이다. 물론 도전자들이 있긴 하지만, 경쟁의 수준은 분명히 뒤떨어진다.
틀림없이 난 그곳에서.
“이만 들어가 볼게요.”
“네. 고생했어요.”
대신 잡아준 택시에 올라타, 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런 뒤에는 기사님께 집의 위치를 말씀드렸고, 조용히 뒷좌석에 앉아 창밖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찝찝한 구석이 많은 와중에도, PSG의 제안은 분명 내 마음을 흔들고 있다. 그들은 4만 유로 이상의 주급도, 천만 유로가 넘는 계약금도 모두 가능하다고 했다.
거기에 집과 차도 제공해줄 수 있으며, 파리에서 머무는 동안 최상류층의 생활도 약속했다.
‘그렇지만.’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진 다양한 가능성을 접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PSG의 유니폼을 입고 리그 앙에서 경쟁하는 내 모습이 잘 그려지지가 않는다. 누군가는 이런 내가 미쳤다고 하겠지만, 난 정말 이것이 내키지 않는다.
결국, 난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드르르륵-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기로 하며, PSG에게서 받은 백지수표를 책상 안에다 집어넣었다. 내가 이것을 다시 꺼내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다만.
이것을 이용할 수는 있다.
난 아주 짧은 문장을 만들어, 세 곳의 에이전시에 보냈다.
과연 이것은 날 어디로 이끌까?
그건 오직, 시간만이 답을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