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27)
27화
유럽을 꿈꾸는 여행객은 물론, 유럽인들에게도 그리 가깝지만은 않은 나라.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왕실을 가진, 밝고 사람 좋은 이들이 많은 곳.
덴마크.
하지만 그들은 외부인들의 시선에서 보기에, 시릴 정도로 냉담하고 타인을 받아들이길 극히 꺼리는 폐쇄적인 집단처럼 비치기도 한다.
1933년, 유명 저술가 악셀 산데모제(Aksel Sandemose)는 자신의 풍자소설 ‘도망자, 지난 발자취를 되밟아 나가다’를 통해 이런 덴마크인의 성질을 정의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법칙을 등장시켰다.
바로, 얀테의 법칙(Jantelov-Jante Law).
얀테의 법칙은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따르는 10가지 규칙을 담고 있다.
이에 따르면.
하나, 넌 특별하지 않다.
둘, 넌 우리와 같지 않다.
셋, 넌 우리보다 똑똑하지 않다.
넷, 넌 우리보다 우월하지 않다.
다섯, 넌 우리보다 많이 알고 있지 않다.
여섯, 넌 우리보다 중요하지 않다.
일곱, 네가 무슨 일이든 다할 수는 없다.
여덟, 우리를 비웃을 자격은 없다.
아홉, 모두가 널 신경 쓴다고 믿는 건 착각이다.
열, 넌 우리를 가르칠 수 없다.
물론, 덴마크의 사람들이 얀테의 법칙을 100% 따라간다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 그들의 삶의 방식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동등함.
하지만 이런 덴마크인들이 얀테의 법칙을 버리고 감정적이 되는 요소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축구라는 스포츠다.
덴마크에는 스포츠 바(Sports Bar)가 많으며, 큰 경기가 열릴 때마다 그곳에 모여 축구 경기를 시청한다.
개중 전통이 있는 가게라면, 단골을 위한 지정석을 마련해 두는 로망을 보여주기도 한다.
비록 혼자 스포츠 바를 찾더라도 축구와 맥주 한 잔만 있으면, 그곳에선 얼마든지 친구를 만들 수 있다.
바로 오늘, 파룸 크로의 풍경처럼 말이다.
.
.
2010년 10월 3일. 파룸, 덴마크. 파룸 대로 42. 파룸 크로(Farum Kro. Farum Hovedgade 42. Farum, Denmark).
#오후 12 : 46
덴마크 국민 중 약 83%가 개혁교회인 루터교의 교인이지만, 이들 중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는 비율은 3%도 안 된다.
대신 그들은 가족들과 함께 널리고 널린 잔디밭으로 소풍을 떠나거나, 한가로이 집안에서 쉬며 월요일을 준비한다.
하지만 오늘처럼 일요일 오후에 축구가 있는 날이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인근의 스포츠 바를 찾아 축구 경기를 관전했다.
비록 크지 않은 나라지만, 덴마크인들은 그들의 나라. 그중에서도 특히, 그들의 축구팀에 대해 자부심이 넘쳤다.
해가 중천에 뜬 대낮, 얼큰하게 취한 이들이 빨갛게 변한 얼굴로 목청껏 소리치는 이유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평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여전히 떠들썩하긴 했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TV가 아닌 낯선 이방인을 향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티아고 로보라고 소개했다.
“뭐?! 스카우트? 와하하-! 이 친구 농담이 심한데? 마음에 드니까 술 한 잔 산다고 전해줘!”
유쾌한 듯 웃음을 터뜨린 디틀레프 린드버그가 바텐더의 앞으로 향하자, 레나 비외른(Lenna Bjørn)이 그것을 말리려고 뒤따랐다.
이에 한껏 웃음을 터뜨린 파룸의 주당(酒黨)들은, 자신을 벤피카의 스카우트라 소개한 남자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주당들 중 말을 건 쪽은, 제과점의 주인 스티 안데르센이다.
“그래. 자네가 스카우트라고 치지. 그렇다면 포르투갈의 대단한 스카우트 나리가, 어쩌자고 볼품없는 이런 시골을 다 방문한 건가?”
안데르센이 손짓하자, 포르투갈어를 할 줄 알았던 16살의 소년이 통역을 시작한다.
“어, 노르셸란을 통째로 구매하려고 왔다는데요?”
“뭐어-?! 와하하하! 이 친구 참, 농담도! 마음에 들어! 이봐, 마티아스! 내 이름으로도 하나 달아 둬! 나중에 이 친구한테 맥주나 한잔 더 주게나!”
구수한 입담으로 파룸의 사람들을 재미있게 만들던 티아고 로보.
그는 곧 TV를 가리키며 경기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뭐, 어차피 못 알아듣겠지만.’
지난달 김다온의 복귀전을 관람했던 티아고 로보는 이후에도 계속 덴마크에 머물며 스카우트를 이어나갔다.
본래는 오늘도 원정이 펼쳐지는 에스비에르(Esbjerg)로 향하려고 했는데, 차편을 잘못 끊는 아마추어 같은 실수를 저질러버렸다.
허탈함과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자책하던 티아고 로보는 모텔로 돌아가 경기를 보려고 했지만, 케이블 채널을 시청하려면 하루 2,500크로네(약 32만 원)를 지불해야 한다는 말에 잔뜩 화만 내다가 무작정 밖으로 나오고야 말았다.
억지도 그런 억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쩐지 비참한 기분이 들어 털레털레 걸음을 옮기던 티아고 로보. 그는 이내 떠들썩한 바를 발견하곤 술이나 한잔할 겸 걸음을 가져갔다.
그런데 웬걸, 이곳은 그가 2,500크로네를 주고 봐야 했던 케이블 채널이 흘러나오는 스포츠 바였다.
맥주 세 잔을 마신다고 해봐야, 15크로네(약 2,800원)면 너끈히 해결이 됐다.
딱히 돈이 아깝기보다는 괘씸한 모텔 주인장의 마음 씀씀이가 싫었던 로보였던지라, 그는 바에 들어가자마자 통역을 자처한 16살 소년에게 술을 사기로 하며 이렇게 외쳤다.
[오늘 술값! 제가 전부 다 쏘죠!]스포츠 바에서 친구를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을 알고 있었던 티아고 로보는 이내, 파룸 크로의 스타가 되었다.
비밀리에 활동해야 하는 스카우트의 임무를 저버리는 행동이었지만, 로보는 덴마크인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내일이 되면, 사람들은 오늘의 일을 잊어버릴 것이다.
로보는 이제, 술이 얼큰하게 취한 소년을 옆에 앉혀두곤 주변에서 하는 말들을 통역해 달라고 부탁했다.
[뭐라고요?]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 그들이 다온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가 궁금해. 다른 건 필요 없고, 다온과 연관된 말들만 통역해주면 좋겠어. 가능하겠나?] [끄-윽. 물론이죠. 그럼 조건은요?] [헤이!]바텐더를 부른 로보가 술을 더 가져다 달라고 말하자, 만족스러운 얼굴이 된 16살 소년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16살인데 술을?] [덴마크에선 합법이에요.] [······그렇군.]익히 알고 있었던 부분이긴 했지만, 로보는 정말로 16살 소년이 바에 있을 줄은 몰랐다.
그래서 그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이 궁금해졌다.
[다온이요? 아뇨- 걔는 술 입에도 안 대요.] [그렇군.] [걘 완전 샌님이라니까요. 누가 그걸 보고 16살이라고 하겠어요? 끄-윽! 완전히 하는 짓은 10살처럼 보이는데. 동양인은 혹시 전부 다 그래요?] [모르겠구나. 넌 그냥 네 할 일이나 해주지 그러니?] [분부대로 하죠. 율스! 이어폰을 줘요!]랩톱에 이어폰을 꽂으며 중계에 집중하는 16살의 술꾼을 바라보며, 로보는 율스라 불린 바텐더에게 원하는 대로 술을 가져다 달라고 다시 말을 했다.
어느새, 경기는 3분이 지나 있다.
‘이런, 나도 이젠 집중해야 하겠어.’
본래라면 지금쯤 저곳에 가 있어야 했을 자신을 생각하며, 애써 씁쓸함을 감춘 로보가 화면에 집중한다.
***
·전반 17분
에스비에르 fB 0 : 0 FC 노르셸란
10라운드가 끝난 현재, 우리는 4승 2무 4패를 기록하며 링뷔에 골득실차로 앞선 5위를 유지하고 있다.
하위권을 맴돌 거란 시즌 전 예상을 고려하면, 꽤 선전 중인 셈이다.
“우욱-!”
짜릿한 통증과 함께 몸이 붕 떠올랐고, 땅바닥으로 떨어지며 곧바로 다른 고통이 온몸에 전해져 왔다.
그렇지만, 엄살을 피울 시간이 없다.
바닥을 한 바퀴 굴러 일어선 난, 앞서 달리고 있는 예브 뫼히(Jeppe Mehl)에게로 빠르게 접근했다.
젠장. 괜히 빼앗으려다가.
삑-!
{이 꼬맹이 녀석! 누굴 쥐어 패는 거야!}
{더럽게 굴지 마, 이 노란색 녀석아!}
1 : 1 수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간격유지다.
공격수가 움직임을 시작할 때 미리 방향과 공간을 선점할 수 있을 만큼 떨어져 있어야 함과 동시에, 볼을 빼앗고자 할 땐 디딤발 두 번 이전에 닿을 만큼은 가까워야만 한다.
지금은 그 거리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바로 그것 때문에 수비 뒷공간을 허용하고야 말았다.
다행히도 위협적인 포지션은 아니었지만, 난 예브 뫼히에게 파울을 범한 대가로 옐로우카드를 받았다.
아이, 씨팔!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범하다니.
“대체 뭐 한 거야? 거리를 지켰어야지!”
실수한 부분을 지적해오는 감독님을 쳐다볼 용기가 없었던 관계로, 난 그저 코를 손가락으로 몇 번 긁적거릴 뿐이었다.
하마터면 퇴장까지도 이어질 수 있었던 순간이었는데, 정신이 돌아온 지금 정말 아찔한 장면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괜찮다면서 박수를 보내오는 버니어와 스톡홀름의 위로를 받으면서, 난 다시 위치로 되돌아갔다.
“어디서 좀 한다고 들었는데, 막상 보니 별 것 아니잖아?”
“······.”
“오늘은 엄마 젖을 안 빨았냐? 뭣하면 내 거라도 줘?”
지금까지 내내 내게 막혀있었던 탓일까?
예브 뫼히는 실수를 틈타 한 번 돌파에 성공한 것 가지고 잔뜩 기고만장해져 있다.
한국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며 깨닫게 된 점인데, 백인과 흑인을 막론하고 꽤 많은 사람이 동양인을 자신들보다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대체 누가 누굴 열등하다고 보는 건지.
차별을 하는 사람보다 혐오스럽고 열등한 존재는 없다.
그래서 난, 뫼히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거, 나오기나 나와?”
“뭐?!”
“하긴, 뛸 때마다 출렁거리는 네 젖탱이를 보고 있으면 남자라도 젖은 짜줄 수 있겠구나 싶네. 근데 어째? 난 싫은데?”
“이 새끼가!”
얼굴이 붉게 변한 예브 뫼히가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더욱 험한 말을 내게 보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모든 욕설을 흘려보냈고, 거기에 비릿한 표정을 지어주면서 수비 위치를 찾아 다시 움직였다.
지금은 잠깐 안쪽으로 좁혀도 될 것 같다.
축구공은 반대편으로 전개되어 움직이는 중이고, 공간을 점유해야 했었던 나는 수시로 공격수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가장 필요하다 싶은 장소를 찾아다녔다.
옐로우카드를 받은 일은 얼른 저 뒤로 밀쳐놓았고, 난 그저 최근에 해왔던 일을 반복하려고만 했다.
그러니까, 많이 뛰고.
또 많이 외치는 것.
“반대!”
그래. 이런 일들 말이다.
오른쪽 측면에서 공격을 전개하려던 에스베이르지만, 돌파구를 찾는 게 원활치 않자 볼을 일단 중앙으로 가져갔다.
그래서 난 자연스럽게, 방향전환을 주의하자고 말하며 수시로 선 자세를 바꿔가면서 주변을 살폈다.
우선 상대 사이드백이 오버랩이나 언더랩을 하는지를 살폈고, 그런 뒤엔 예브 뫼히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렇게 두어 번 같은 일을 했을 때.
‘움직인다!’
뫼히가 왼쪽 측면에서 가운데로 컷(Cut)을 하며 움직였다.
그러자 그에 맞춰, 예스퍼 외르겐센(Jesper Jørgensen)의 침투 패스가 찔러져 왔다.
전부터 느끼고 있었던 부분이지만, 성인팀 레벨에서는 조금이라도 딴 생각을 하면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기 쉽다.
그래서 늘 집중해야 했고, 덕분에 피로는 몇 배나 더 심했다. 하지만 항상, 이런 말들 덕분에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촤—–악!
“그렇지! 바로 그거야!”
외르겐센의 침투패스를 왼발을 길게 뻗은 태클로 저지해내자, 파크허스트의 칭찬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늘 내 백업을 해주고 있긴 하지만, 지금의 패스가 통과되었더라면 위기상황을 맞이했을 거다.
키패스를 차단당한 외르겐센이 움찔하며 아쉬움을 표현하는 사이, 그의 뒤로 맹렬히 돌아 달려 나가는 등 번호 9번의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언제나 냉철한 판단력을 잃지 않는 미켈센 다운 플레이다.
그리고 난 그에 호응하듯, 패스를 찔러 넣었다.
복귀하기 전, 연습 경기에서 시도했던 아웃프런트 패스를.
외르겐센의 키를 넘은 축구공이 레프트백, 요나스 크누센(Jonas Knudsen)이 전진하며 생긴 빈자리로 떨어져 내린다.
한 번 바닥에서 튕긴 축구공은 곧바로 미켈센의 오른발 바깥쪽과 맞닿았고, 비어있는 공간으로 전진을 계속하던 미켈센은 가운데를 향해 크로스를 올렸다.
잠시 뒤, 솟구쳐 오르는 귀트케르.
용수철처럼 솟아오른 그가 잔뜩 휘어 젖힌 몸을 앞으로 구부리며 강한 헤더를 시도한다.
그리고.
촤르르르-륵!
삑-! 삐익-!
크게 휘슬을 두 번 불며 센터서클을 가리키는 주심.
멀찍한 곳에서 한 방 역습에 의한 득점을 지켜보던 난, 만세를 하며 큰 목소리로 외쳤다.
“으아아아-! 너나 젖 더 빨고 와!”
지금의 이건 명백히, 힘없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예브 뫼히를 향한 것이었다.
팍-씨!
아무것도 아닌 게 까불고 있어.
꼬마라 부르는 거야 너희들 마음인데.
아주 그냥 씨발.
누구든 꼬마를 건드리면 그냥 아주 X되는 거야.
앙?
아주 X되는 거라고!!
알겠어??
‘······ 음, 1절만 하자.’
***
·전반종료
에스비에르 fB 0 : 1 FC 노르셸란
[골] 크리스티안 귀트케르 : 전반 19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