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275)
274화
2013년 9월 5일.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181. GS 챔피언스 파크.
“김다온 님?”
“네?”
“들어가셔도 돼요. 허락이 떨어졌네요.”
“아, 네. 감사합니다.”
GS 챔피언스 파크는 FC 서울이 사용하는 클럽훈련소로, 클럽하우스와는 달리 오로지 훈련에만 특화된 공간이다.
각각 2개의 천연잔디와 인도잔디 구장이 있고, 이를 관리하는 시설이 별도로 있어 1년 내내 좋은 컨디션을 유지한다는 평을 받는다.
그리고 내가 여기에 온 이유는.
“올레!!”
“다온!!”
멀리에서 온 반가운 얼굴을 만나기 위함이다.
덴마크 대표팀은 20분 전에 훈련을 마쳤다.
“뭐야? 설마 또 키가 컸어?”
“응. TV로 볼 때 몰랐어?”
“전혀!”
못 보던 사이에, 올레도 꽤 변해 있었다. 머리카락 색과 똑같은 수염이 얼굴의 전반을 덮었고, 몸에 근육도 한참 더 붙은 것 같았다.
그렇게 올레와 한창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저 멀리에서 또 다른 사람들이 나타났다.
현재도 노르셸란에서 뛰고 있는 토비아스 미켈센과 요레스 오코레가 그 주인공들이다.
“얘들아! 어떻게 지냈어?”
“뭐, 비슷해.”
“…….”
악수를 교환하며 짧게 대답한 오코레와는 다르게, 미켈센은 나를 조금 어려워하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토비, 얘. 엄청 놀란 모양이더라고.”
“응?”
“내가 언제!!”
“그랬잖아! 얘가 뮌헨으로 가게 되었을 때, 엄청 충격을 받았다며? 셸란에 있는 애들이 다 말해줬어.”
“아니거든?!”
노르셸란에 처음 합류했을 때만 해도, 토비는 클럽에서 가장 주목받던 선수였다. 브뢴비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이적에 성공한 뒤, 대표팀 합류까지 점쳐졌었다.
하지만 이후의 성장세가 도드라지지 못했고, 경기 중에 보이는 신경질적인 성격과 훈련 때 자주 지각을 하는 습관이 중요한 기로에서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지난 시즌 초반, 셸란 팬들에게서 비난도 받았다고 들었다.
그래서일까?
2년이 조금 못 되어 다시 만난 토비는 조금 위축이 된 것처럼 보인다.
“호텔이 어디야? 가까워?”
“응. 워커힐이야.”
“가깝네. 가자. 내가 밥을 살게. 그래도 되지?”
“우리야 좋지.”
친구와 옛 동료들을 픽업한 나는, 차를 몰아 호텔 인근의 소고깃집으로 향했다.
“아, 맞다.”
“응?”
자리를 잡고 앉아 이런저런 설명과 주문을 모두 마쳤을 때, 요레스 오코레가 서툴게 젓가락을 움직이는 토비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얘. 너 때문에 독일 이적도 거절한 거 알아?”
“뭐? 진짜?”
“이봐-!! 그게 아니라니까!!”
“아니긴. 네가 그랬잖아. 얘가 뛰는 무대의 2부 리그에서 뛰면, 그것만큼 체면이 구겨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인상을 팍 찌푸린 토비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을 내저었고, 난 그런 그의 음료수 잔에 콜라를 따라주며 말했다.
“그래서? 어떤 클럽이었는데?”
“어디였더라? 퓌? 퓌르? 뭐, 그거 비슷했는데. 에이, 토비! 거기 어디였지?”
“……퓌르트.”
“아-! 맞다. 낄낄낄. 봤지? 얘가 그랬대도.”
지난 시즌 중반부터 각성한 듯 열심히 축구에 임하고는 있었지만, 토비는 여전히 토비였다. 퓌르트란 팀은 잘 알지 못하지만, 독일 이적을 차버린 건 나쁜 판단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난 굳이 그런 이야기를 보태지 않았고, 호기심을 표현하고 있는 올레에게 한국의 반찬 문화를 소개해줬다.
“뭐? 공짜?”
“응. 리필도 해줘. 무한대는 아니지만.”
“젠장! 왜 덴마크엔 이런 문화가 없는 건데? 공짜로 주는 이것보다 훨씬 허접한 음식도 몇 크로네는 받잖아?”
“낄낄낄. 그건 그래.”
잠깐 노르셸란 사람들의 안부를 묻는 대화가 끝나고, 고기가 등장한 뒤에는 다들 음식을 먹느라 바빴다.
친구들은 한우의 맛과 품질에 놀라움을 표현했고, 어느새 능숙해진 쌈을 싸는 실력을 보며 흐뭇해하던 나는 올레를 보며 부탁받았던 말을 전하기로 했다.
“에두가 안부를 전해달래.”
“응?”
“그리고 제수스 감독님도.”
“하하. 응.”
이틀 전 벤피카는 첼시로부터 겨울이면 마티치 재영입을 위한 자금이 마련될 것이란 이야기를 전달받았다고 한다. 무리뉴도 마티치의 복귀를 환영했다는 말도 말이다.
마티치의 복귀가 무산될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기대를 걸던 벤피카는 이별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내게 전화를 걸어와 올레의 이적을 도와달라고 했다.
지금의 대화는 그런 것이다.
“엔초가 남긴 하지만, 네가 충분히 경쟁할 수 있을 거야. 난 그보다 네가 더 좋은 선수라고 생각하거든.”
“안 그래도, 겨울에 떠나고 싶다고 했어.”
“진짜? 만약 벤피카와 대화하고 싶다면 말해. 언제든 창구를 만들어줄 수 있으니까.”
“응. 고마워.”
어차피 확답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이런 반응을 끄집어냈다는 것만으로도 내 몫은 100% 한 셈이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오코레와 토비를 챙겼고, 맛있는 음식에 마음이 풀어진 토비는 과거 내가 알던 그 시끄러운 모습으로 돌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파트리크랑 니키도 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 그런데 그 둘은 경쟁심이 강하니까. 이런 자리를 받아들이지 못한 거야.”
“자기들만 손해지 뭐. 이게 뭐라고?”
“한우. 소고기야.”
“한.우? 아무튼, 이런 환상적인 음식을 맛보지 못하고 호텔에서 늘 먹던 것을 먹을 거 아냐? 걔네 손해야.”
“크큭. 그것도 맞아.”
약 2시간가량 이어진 이른 저녁식사 자리가 끝나고, 난 친구들을 다시 호텔 앞에 내려다 주었다.
“넌 어디로 가?”
“집. 오늘은 집에서 쉬고, 내일 경기 시간에 맞춰서 가면 되거든.”
“그래- 부모님께 안부 전해드리고.”
“응. 네 수염 진짜 볼썽사납다고 말해드릴게.”
“뭐?!”
“낄낄낄. 농담이야. 그거 잘 어울려.”
“당연하지! 아무튼. 그럼, 내일 봐.”
“응. 푹 쉬어.”
친구들과 헤어진 뒤, 나는 곧장 집으로 향하기 위해 차를 움직였다.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 사이에서 고민하던 나는 내비게이션의 말을 따르기로 했고, 강변북로에 오르기 전 차가 밀리는 상황에서 휴대폰으로 에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벤피카를 떠난 지 약 두 달.
여전히 난, 그곳을 위해 많은 것을 해주고 싶다.
***
2013년 9월 6일. 서울특별시 마포구 성산 2동 월드컵로 240. 서울월드컵경기장.
·경기시작 30분 전
대한민국 0 : 0 덴마크
&Match-Up`s Best Eleven(대한민국/상대팀)
&Tactics(대한민국/상대팀) : 4-3-3(D)/4-2-3-1
GK ? 정성룡 / GK ? 아르네스 리네고르
RB ? 이용 / RB ? 라스 야콥센
CB ? 곽태휘 / CB ? 다니엘 아게르
CB ? 김영권 / CB ? 시몬 카예르
LB ? 박주호 / LB ? 니콜라이 보일레슨
DM ? 한국영 / DM ? 올레 스펠만
DM ? 김다온 / DM ? 토마스 딜레이니
CM ? 김보경 / RAM ? 캐스퍼 쿠스크
RW ? 이근호 / CAM ? 니키 빌 닐센
LW ? 손흥민 / LAM ? 빅토르 피셰르
ST ? 구자철 / ST ? 니콜라이 외르겐센
.
.
니클라스 벤트네르(Nicklas Bendtner)와 크리스티안 에릭센이 빠지기는 했지만, 현재의 덴마크 대표팀은 우리보다 약간 수준이 더 높다고 봐야 했다.
핵심 선수들 상당수가 빅리그에서 뛰었고, 자국 리그에서도 가장 유능한 이들이 선별되었기 때문이다.
감독님이 정통 스트라이커를 빼고 자철이 형에서 펄스나인의 임무를 부여한 것 또한,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해석을 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말했다. 가장 중요한 건, 저들의 센터백들을 내리는 거야.]“…….”
몸을 풀고 돌아와 최종준비를 하며, 감독님의 말을 듣는다.
자철이 형은 오늘 볼을 지키기보단 폭넓은 움직임으로 덴마크의 3선과 최종 수비의 조직력을 와해시키는 일을 해줘야만 한다.
대표팀 선수들 중에서 가장 힘든 임무를 부여받았고, 그렇기에 남은 이들이 잘 도와야 할 것이다.
[저들의 중원은 둘뿐이지만, 굉장히 부지런하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도 항상 열심히 뛰어야 할 거다. 이 지점에서 압박이 굉장히 강할 거니까, 그걸 늘 머릿속에 집어넣어 두도록! 이 위치에서 볼을 빼앗기면 무척 골치 아파진다!]감독님의 말씀처럼 올레와 토마스 딜레이니 조합은, 경기 내내 엄청난 활동량과 압박 빈도를 보여줄 거라고 본다. 그래서 이 부분에선 내가 맡은 역할이 중요하다.
지난번 최종 예선보다 조금 아래에 내려선 나는, 성용이 형이 대표팀에서 해주던 일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빌드업의 시발점이 되어주어야 하고, 수비 시에는 상대의 공격 속도를 늦추며 일선에서 전투에 뛰어들어야 한다.
[그래도 저들의 약점은 있다. 수비수들의 속도가 전반적으로 느려! 공간을 만들고 그 뒤를 적절하게 파고들면, 분명 좋은 기회가 생긴다!]언제나처럼 열정적인 태도로 지시사항을 전달한 삼파올리 감독님은, 파이팅이 끝난 후에 피치로 나서려던 나를 한 번 더 붙들었다.
“자네가 이 팀을 이끌어야 해. 부탁하네.”
“네. 맡겨주세요.”
“듬직하군. 그럼, 피치에서 보지.”
감독님이 떠나고, 난 왼쪽 팔에 채워진 주장 완장을 바라본다.
클럽과 대표팀을 통틀어, 오늘이 처음으로 이 완장을 팔에 둘러보는 날이다.
본래 대표팀의 주장은 태휘 형님이지만, 어제 오전 최종 훈련을 할 때 오늘 경기에서 내가 주장 완장을 둘러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며 먼저 제안을 했었다.
삼파올리 감독님 역시 이에 동의했고 말이다.
그래서 이런 상황이 된 것이다.
“후우~ 할 수 있어, 다온아.”
확실히 이번 훈련에서, 형들은 좀 더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다. 전에도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긴 했지만, 최근엔 뭔가 느낌이 달랐다.
삼파올리 감독님은 그게 뮌헨의 주전 선수라는 타이틀이 가져다주는 무게라고 했다.
[동시에 그만한 책임감이 따르지.] [그런가요?] [그래. 하지만 즐기게나. 앞으로 익숙해져야 할 테니까.]강찬일 코치님과 삼파올리 감독님 모두, 국가대표팀이란 클럽에서 배워 온 축구를 사람들의 앞에서 보여주게 되는 무대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클럽에서 이뤄온 성과를 체감하게 되는 순간이 될 거라고도 했다.
내겐, 훈련 때 형들이 내 목소리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부분에서 그것이 체감되었다.
과연, 실전에서는 어떨까?
곧 알게 되기야 하겠지만.
‘기다리기 어려워.’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은 채, 난 힘차게 걸음을 걸어 복도로 빠져나왔다. 스파이크가 바닥에 달라붙었다 떨어지면서 생기는 특유의 소리가, 마음을 조금씩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그러다 마침내 복도에 나섰을 때, 나는 볼 수 있었다.
날 발견하자마자 경계의 눈빛을 빛내기 시작하는 덴마크의 선수들과 편안함을 느끼며 신뢰 어린 표정을 지어 보이는 형들의 모습을 말이다.
‘이거 멋지네.’
대표팀의 새로운 재미를 깨닫게 된 나는, 온전히 이것에 집중키로 하며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오늘 우린, 절대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걸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절대 안 되지.’
펩이 내어준 숙제를 위해서라도, 난 오늘 절대로 질 수 없다.
***
·전반 08분
대한민국 0 : 0 덴마크.
일정이 발표되었을 때부터, 오늘 경기는 주목받는 매치업이었다.
본래 덴마크의 선수들은 저비용 고효율을 바라는 중소 클럽에게서 인기가 높았고, 월드컵 본선 진출 탈락과 맞물린 세대교체의 신호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처럼 느껴졌다.
네덜란드와 프랑스를 포함한, 꽤 많은 숫자의 유럽 국가의 클럽에서 스카우트를 파견한 이유다.
그리고 그중엔, PSV 아인트호번의 수석 스카우트 유렌 바이넨(Jurren Wijnen)도 포함되어 있다.
PSV의 관계자들은 덴마크의 어린 중원 듀오에 관심이 컸고, 아약스에 그들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넉넉한 자금을 마련 중이었다.
하지만.
‘멋지군. 정말 그때와 같은 선수인가?’
시선이 자꾸만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올레와 딜레이니를 보려고 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한 김다온이 모든 관심을 빼앗아갔다.
또다시 사이드백이 아닌 중앙 미드필드로 출전한 그는, 덴마크의 재능들을 필드 위에서 지워버리고 있었다.
김다온의 앞에서 그 둘은 평범한 선수처럼 느껴졌고, 벌써 몇 번이나 간단하게 볼 소유권을 헌납했다.
새삼, 바이넨은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2011년 가을, PSV에게도 기회가 있었다.
당시 PSV는 노르셸란에 몇 차례 오퍼를 보냈지만, 생각보다 높은 이적료에 금세 발을 빼버렸다.
클럽에서 충분히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이긴 했지만, 17살의 사이드백의 영입에 천만 유로를 낸다는 것은 클럽의 철학과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
그리고 한두 달이 지나고 SL 벤피카가 김다온을 클럽레코드로 영입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는데, 당시 PSV 내부의 분위기는 미련한 짓을 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입증했다.
벤피카는 18개월 만에 3배가 넘는 이익을 남겼다. 그리고 그와 함께하는 동안, 유로파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젠 그 누구도, 당시 벤피카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이는 반대로, 발을 빼버리기로 한 PSV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더구나 한국 선수를 영입함으로써 생기는 상업적인 이득에 대해, 잘 알고 있는 PSV다.
“쯧. 정말 아쉽게 됐어.”
혼잣말을 중얼거린 바이넨은, 볼 때마다 가슴을 쓰라리게 만드는 이에게서 관심을 거두기로 한다.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지금도 어김없이.
촤—–악!!
‘깔끔하군. 좋은 태클이야.’
빠른 스프린트로 딜레이니의 뒤에서 등장한 김다온이, 필리프 람을 연상케 만드는 깨끗하고 절묘한 태클로 아주 간단하게 볼을 빼내어 갔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 피치의 중원 위 그 어디에든 존재했다.
***
.전반 21분
대한민국 0 : 0 덴마크
‘답답하네.’
정말 그랬다.
중원과 수비는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데, 공격 작업은 도통 이루어지지 않는다.
“형-! 왼쪽-!”
보경이 형의 전방압박 위치를 지정해주며, 나는 그 아래에서 포지션을 조절했다. 앞쪽을 슬쩍 보던 딜레이니가 다시 뒤로 패스를 돌렸는데, 그의 표정은 나처럼 썩 밝지만은 않았다.
빌드업 자체가 차단되고 있는 덴마크의 공격은 수비에서 곧장 최전방으로 찔러 들어가거나, 사이드백의 공격 가담을 통해 이뤄지는 식으로 단순화된 상태다.
결과적으로 경기는 치열한 중원과 소득 없는 공격이 뒤섞여, 다소 지루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뭐라도 해야만 해.’
아게르의 롱패스가 곧바로 성룡이 형의 품에 안기는 것을 보며, 생각이 많아진 나는 머리를 세게 긁적였다. 최전방에 선 자철이 형은 벌써부터 지쳐 보인다.
부지런한 장점을 나름 발휘하여 많이 움직여주곤 있지만, 펄스나인이라는 롤을 충분히 이해하진 못한 것 같다.
무작정 아래로 내려선다고 하여 센터백들이 거기에 끌려 나오는 건 아닌데, 기계적으로 비슷한 움직임만을 가져가다 보니 상대가 금세 적응을 했다.
가장 중요한 자철이 형이 역할을 소화해내지 못하자, 클럽이 준비했던 어떠한 축구도 나오지 않게 되었다.
공격 대부분이 측면에서의 1:1인 이유다.
‘……움직이자. 그게 아니면 답이 없어.’
국영이 형에게 콜을 보내며, 난 중원에서 벗어나 측면 쪽에 약간 힘을 실어주기로 했다. 펄스나인으로 재미를 보기 힘드니, 발상 자체를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다.
왼쪽으로 움직여 주호 형에게서 패스를 받아든 뒤, 앞쪽을 슬쩍 바라본 이후 곧바로 왼발을 휘둘렀다.
덴마크의 오른쪽 사이드백 라스 야콥센은 노련한 수비수이지만, 피지컬적인 부분은 전성기 시저에 비해 확실히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다.
흥민이 형의 주력이라면 충분히 그를 앞설 수 있을 것이고, 실제로 형은 사이드라인을 따라 굴러가는 축구공을 야콥센에 앞서 따냈다.
그리고 난 흥민이 형에게 전진패스를 보낸 이후에도, 계속해서 움직여 공격에 더 깊숙이 가담했다.
“형-! 뒤! 뒤에 나 있어!”
고립되었던 앞쪽에서 패스가 돌아오고, 그 순간 빠르게 접근해온 올레가 등 뒤에서 달라붙어 온다.
그래서 나는 오른쪽 어깨에 체중을 실어 올레를 최대한 밀어 보내며, 왼발 아래에 축구공을 내버려 뒀다.
이럴 때 흥민이 형이 횡으로 쇄도해 주었다면 괜찮은 장면을 만들 수 있었을 것도 같은데, 거기까지 바라는 것은 조금 무리일 것이다.
결국은 내가 해결해야 했고, 뒤쪽의 올레와 앞쪽에서 접근하는 야콥센의 사이에서 빠른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그리고 내 선택은.
툭-
발바닥으로 축구공을 살짝 뒤로 긁어내는 척을 하다, 곧바로 야콥센의 앞쪽으로 차 넣으며 둘의 사이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이었다.
“!”
“!!”
압박에 성공했다고 생각해 조금 느슨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비교적 쉽게 둘 사이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두 명의 선수를 따돌린 나는 페널티박스 코너 앞 부근에서 자유로워졌고, 반대편에서 쇄도 중인 근호 형을 목표로 삼아 다시 왼발을 사용하여 크로스를 올려보냈다.
순간 피치 위에 정적이 찾아왔는데, 현재 움직이고 있는 사람은 내가 보낸 크로스가 향할 주변에 있는 이들이 전부였다.
그리고 적당한 높이에서 휘어져 떨어지기 시작한 축구공이 근호 형의 오른발에 걸리지만, 쭉 뻗은 발등에 맞은 슈팅은 높이 떠오르고야 만다.
{“아아~”}
골은커녕 유효슈팅과도 거리가 먼 장면이었지만, 전반 5분 이후 최초로 슈팅이 나왔다는 점에 만족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들 집중해!! 매번 같은 방법만 쓰고 있잖아!!”
“…….”
지금의 장면과 내 외침에서, 형들이 영감을 얻었으면 했다.
PLAN A가 막혔다면, 빠르게 PLAN B를 찾는 것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일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PLAN B를 PLAN C를 하다 보면, 다시 PLAN A에게도 기회가 돌아올 게 틀림없다.
축구란 그런 것이니까.
‘일단, 조금 더 측면을 쓰자.’
오늘의 피치를 조금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나는 축구를 조금 더 역동적으로 만들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