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296)
295화
2013년 10월 7일. 80802 뮌헨, 독일. 슈바빙-프라이만.
뮌헨의 선수들 다수가 A매치 일정을 떠난 동안, 펩 과르디올라는 1년 중 흔치 않은 시간을 가지기로 결정했다.
바로, 당분간 휴가를 내어 클럽에 출근하지 않는 것 말이다.
그렇다고 하여 축구에서 떨어진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이때야말로 어느 때보다 펩 과르디올라가 축구와 가까워지는 순간이다.
7일 밤, 펩은 오랜 벗이자 존경하는 이를 집으로 초대했다.
딸깍-
“에-이!! 요한!! 오, 그리고. 대니. 여전히 아름답군요.”
“호호. 그 사탕발림은 언제 들어도 좋네요.”
아약스 AFC의 기술고문으로 재직 중인 요한 크라위프와 그의 아내 대니 크라위프(Danny Cruyff)는 오늘 오후 암스테르담을 떠나 뮌헨에 도착했다.
펩과 그의 가족들이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여자와 아이들이 주방으로 향하자 남자들은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좋아, 펩. 말해보게.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라뇨. 아무 일도 없습니다.”
“하-! 다른 사람은 속여도 나는 속일 수 없네. 지금까지 벌써 몇 번이나…… 읍-! 쿨럭! 쿨럭 쿨럭!!”
대화를 하다 말고 기침을 토해 내는 크라위프를 보며, 펩 과르디올라는 오랜 시간 해 온 잔소리를 다시 반복하게 된다.
현역 시절부터 하루 네 갑의 담배를 피울 정도의 골초였던 요한 크라위프. 바르셀로나 시절 크라위프를 스승으로 맞이했던 펩은 당시에도 금연을 권하고는 했다.
“끊으려면 진즉에 했을 거야.”
“요한. 나는 당신이 오랫동안 건강했으면 해요.”
“걱정 말게. 아직도 자네보다 더 오랫동안 뛰어다닐 자신이 있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말 돌리지 말고 말해 보게나.”
종종 연락을 주고받을 때나 뜬금없는 초대를 받을 때마다, 펩 과르디올라는 늘 고민거리를 가지고 왔다. 그럼 요한 크라위프는, 자신의 오랜 제자에게 현명함을 전수해 주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요한 크라위프는 펩에게 조언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Vier Munchen이라더군.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자네가 이곳에서 잘하고 있다 생각했지.”
“하하. 아직 적응기입니다.”
“그 재수 없는 겸손함은 여전하군 그래. 내가 늘 뭐라고 했나? 자네는 자네 스스로를 너무 저평가하고 있어.”
현역 시절 펩 과르디올라를 향한 동료들의 재미있는 평가들 중엔, ‘남자의 몸에 깃든 여자의 감성’이라는 것도 있었다. 특유의 예민함을 나름 돌려서 말한 것이다.
요한 크라위프의 생각에도, 펩 과르디올라는 확실히 평범한 남자들과는 많이 달랐다.
그는 때때로 선택을 어려워했고, 어지간해서는 모험이라는 것을 하려고 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펩 과르디올라의 혁신적인 면을 예로 들며 ‘모험하지 않는 펩’에 의문을 표하지만, 그가 하나의 모험을 하기까지 들이는 노력을 알게 되면 이내 입을 다물곤 한다.
펩 과르디올라의 혁신은 모험이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탐구와 고민 끝에 나온 안정적인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FC 바르셀로나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펩 과르디올라는 여전히 남들이 잘 모르는 강박 관념에 시달리고 있다.
“말을 듣지 않는 녀석이 하나 있습니다.”
“이런, 펩. 그런 주제는 벌써 오래전에 졸업한 줄 알았는데 말이야. 내가 6년 전에 자네에게 뭐라고 했지?”
“…….”
바르셀로나 B팀을 처음 맡게 되었을 때, 펩은 몇몇 선수를 통제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팀에는 실력은 월등했으나 나이가 많아 통제가 어려웠던 두 명의 선수가 있었다.
측면 미드필드인 에네코 페르난데스(Eneko Fernandez)와 스트라이커 에밀리오 게라(Emilio Guerra)가 그 주인공이었는데, 두 사람은 사사건건 펩의 전술에 반기를 들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펩 과르디올라는 감독으로서 아무것도 증명된 것이 없는 남자였고, 라 마시아가 아닌 외부 영입이었던 둘은 펩을 선배로서도 존경하지 않았다.
전술적인 것들은 얼마든지 잘 해낼 수 있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펩은 사람을 다루는 일에 전혀 소질이 없었다.
그렇게 과격하고 제멋대로인 두 남자에 의해, 감독으로서의 펩이 지녀야 할 권위는 조금씩 상실되어 갔다.
두 선수가 멋대로 훈련을 건너뛰어 버린 다음 날, 펩은 요한 크라위프를 찾아 고민을 상담했다.
[“문제가 있습니다. 두 녀석이 제 말을 듣지 않아요. 이 녀석들 때문에, 조금씩 다른 선수들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문제는 경기에 이기려면 얘네들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실력은 B팀에서 가장 좋거든요.”]그러자, 요한 크라위프는 이렇게 간단히 답했다.
[“선발에서 빼 버려. 그것 때문에 한두 경기는 패배하겠지. 하지만 결국 자넨 시즌의 끝에서 승리할 거야.”]이를 통해, 펩 과르디올라는 ‘감독답게’ 자신의 메시지를 선수들에 전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훈련을 멋대로 건너뛰는 선수들에겐 여지없이 벌금과 출전 정지를 매겼고, 그에 저항할 수 없도록 팀 전체가 따라야 하는 강령을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사정이 달라요.”
“달라? 어떻게?”
“사무엘을 내보낼 때와 조금 더 비슷하죠. 문제는 뮌헨에는 리오가 없다는 겁니다.”
B팀에서 A팀으로 감독직을 바꾼 뒤, 펩 과르디올라는 리오넬 메시를 중심으로 팀을 개편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당시 메시에게 부정적인 영향만을 미치던 호나우지뉴를 방출했고, 이듬해에는 사무엘 에투를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스왑(Swap)하는 거래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있기 전, 펩 과르디올라는 사무엘 에투를 ‘메시를 보좌하는’ 역할로 만들고자 부단한 노력을 단행했다.
문제는 그 방법이 하나같이 잘못된 것들이었으며, 급기야는 일이 감정적으로 진행되어 펩은 에투를 우즈베키스탄으로 임대 보내려 했고 에투는 모든 선수들이 보는 앞에서 이런 말로 펩 과르디올라를 모욕했다.
[“당신은 내게 공격하는 방법을 가르치려고 들지만,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 그리고 당신은 좋은 선수였지만, 나는 위대한 선수야. 그리고 이제 겨우 A팀의 지휘봉을 잡았지. 증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 당신은 나는 물론이고, 이 팀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여린 감성을 지닌 펩 과르디올라에게 에투의 이런 언사는 심각한 모욕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그는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무시’라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해 버렸다.
하지만 당시 성과를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는 점과 예전에도 에투가 종종 문제를 일으켜 왔다는 사실이 더해지며, 선수단의 지지는 펩에게로 쏠리게 된다.
특히 펩이 직접 B팀에서 A팀으로 끌어 올린 선수들은, 그들의 감독을 대신하여 변호하는 일을 했다.
이렇듯 펩은, 그를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간극이 심각할 정도로 컸다.
요한 크라위프는 그것이 언제나 펩의 심각한 결점이라 생각했지만, 사람은 누구도 완벽할 수 없기에 그것도 개성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마리오 만주키치가 제 골칫거리입니다. 이틀 전 경기가 끝난 뒤에, 제게 엄청 화를 내더군요.”
“주전에서 빼 버렸나?”
“네. 뮐러를 9번으로 보내면서 우린 맨시티에 4:0으로 승리했습니다. 그리고 전 레버쿠젠도 같은 방식으로 승리할 수 있다고 봤죠. 하지만 선수들의 체력과 컨디션이 너무 떨어져 있었습니다. 1:1이었고, 실망스럽지만 받아들일 수는 있는 결과였죠. 하지만 마리오는 자신이 뛰면 이길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제자를 바라보는 네덜란드의 전설은 이렇게 생각했다. 다른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이것은 조금의 고민거리도 되지 않을 일이었다고 말이다.
만약 기존의 주전 선수가 어느 날 갑자기 명단에서 제외되었다면, 그는 당연히 불만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럼 감독은 자신의 전술적 철학을 설명해 선수에게 현실을 말해 주거나, 한발 물러나며 선수를 달래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녀석은 아니었겠지.’
당시의 상황이, 요한 크라위프의 눈에는 선명하게 그려졌다. 만주키치는 일방적으로 화를 내고, 펩은 특유의 무표정으로 시선을 외면한 채 땅바닥만 쳐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남자의 머릿속엔 오로지,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외에는 없었을 게 분명했다.
화를 내고 있는 대상은 바보가 된 기분을 느꼈을 것이며, 결국 문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을 거다.
사람은 어려운 문제가 닥쳐왔을 때, 그 앞에서 실로 다양한 반응을 보여 준다. 누군가는 오기로라도 그것에 맞서는 반면, 누군가는 그저 피하기에 급급하다.
펩도 그러한 유형이었고 FC 바르셀로나에서 발생한 문제를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워졌을 때, 이 남자는 곧바로 축구에서 벗어나 휴식기를 가졌다.
아마 이곳에서도, 펩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스트레스가 너무 과하다고 느끼면 미련 없이 감독직을 관둘 것이다.
뮌헨과 계약을 할 때, 재계약 시 단위는 반드시 1년으로 하겠다고 못을 박은 이유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펩 과르디올라가 상황을 모면하고자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이 남자는 늘 가슴에서 우러나온 말과 행동만을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철저히 아무런 것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온도 차를 느끼게 한다.
“이보게, 펩. 내 한마디 하지.”
“듣겠습니다.”
그런 펩 과르디올라를 누구보다도 아꼈기에, 요한 크라위프는 이번에도 기꺼이 조언을 전하기로 했다.
오해하는 일이 없도록, 솔직한 단어와 단호한 문장만을 사용했다.
“레버쿠젠에게 이겼다면 이야기가 달랐을 거야. 하지만 비겼으니, 이번엔 자네가 양보하게.”
“어떻게요?”
“마리오가 A매치에서 돌아오면 미팅을 가져. 그리고 생각을 해 봤는데, 네 말이 옳은 것 같다고 하는 거야. 기회를 주게. 대신, 설명을 해야만 해.”
“설명?”
“그래. 앞으로 종종 벤치에 있을 때가 있을 거라고 해. 그리고 만약 자네가 틀렸음을 증명하길 바란다면, 뛰게 되었을 때 그걸 보여 달라고도. 자존심 강한 녀석이니, 그쯤이면 분명 알아들을 거야.”
환하게 밝아지는 펩의 표정을 보면서, 요한 크라위프는 이게 그렇게나 힘든 일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했다.
‘뭐,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어려운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펩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다가 와인을 가지고 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시 뒤 두 사람은 잔에 스페인산(産) 적포도주를 부었고, 건배를 하며 다른 주제를 꺼내 들었다.
이번엔, 크라위프가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자네의 새로운 뮤즈(Muse)는 좀 어떤가?”
“아-! 그러지 않아도,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 또 잔뜩 있지 뭡니까? 맨시티와 경기를 펼치기 전입니다. 홈경기가 끝나고, 전 휴식을 줬죠. 그런데 그날 아침…….”
완전히 괜찮아진 펩의 입에서는, 크라위프 부부와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김다온에 관한 칭찬이 끊이지를 않았다.
***
【한국 시각】 2013년 10월 8일.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필승로 368. 파주 풋볼 팬타지움. 청룡 그라운드.
“에?츄우!!! 에에– 츄우!!! 훌쩍.”
“감기냐?”
“아니. 그건 아닌데.”
코를 훌쩍거리며, 간질거리는 부분을 손등으로 닦아 낸다.
감기는 아닌 것 같지만, 혹시 또 모르는 일이긴 하다.
“아이 씨. 아프면 안 되는데.”
프랑크프루트를 경유하여 인천으로 오는 이번 비행은, 확실히 지난 9월보다는 한참 힘들었다.
도착 이후 컨디션을 되찾는 데에만 해도 이틀이 필요했고, 사실 지금도 100% 완벽한 상태라고는 말할 수 없다.
잘 쳐줘야 70? 80?
“어디 가냐? 방에 가?”
“좀 쉬게. 감기 오면 안 되잖아.”
“그래라.”
온종일 붙어 있다시피 했던 자철이 형과 헤어져 객실로 향한다. 각종 보수 및 확장 공사가 마무리되면서, 이번 일정부터는 전부 1인 1실을 쓸 수 있게 된 상태다.
앞쪽에 있는 객실 중 하나가 시끌벅적하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행여 걸릴까 싶어 얼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딸깍-
“에고. 에고 죽겠다아.”
브라질과의 경기까지는 대략 75시간 정도가 남았다.
과연 그때까지, 100%가 될지 모르겠다.
이번 평가전은 브라질 협회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성사됐다.
2014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브라질은 아시아 투어에 나섰고, 11일 우리와 경기를 치른 뒤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또 하나의 경기를 치를 예정이다.
본래는 중국을 계획했던 브라질 협회였지만, 스콜라리 감독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중국과의 친선 경기를 강하게 거부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바로 이웃 나라인 일본을 우리 다음의 스파링 파트너로 선택했다.
“…….”
침대에서 잠깐 시체놀이를 하다, 몸을 돌려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
심심해서 아영이에게 톡을 보내보았는데, 한참 동안 숫자 1이 사라지지를 않았다. 1시간 전쯤에 짐을 싼다는 톡이 왔었는데, 여전히 바쁜가 보다.
어제 독일에 있는 집 주소로 짐을 한 다발 보냈다고 했는데, 아직도 많이 남은 것 같다.
‘뭐, 삼 개월이니까.’
아영이는 비자가 만료되는 시점까지 독일에 머물 예정이다. 그런 뒤에는 잠깐 한 달 정도 한국에 있고, 그 뒤에 다시 독일로 오겠다고 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계획일 뿐이고 확정된 건 아니다.
똑똑똑-
“이크!”
노크 소리가 들려와, 난 얼른 휴대폰을 머리맡에 감추고 자는 척을 했다.
똑똑똑-
“야-! 자냐?! 김다온!!”
목소리로 보아 성용이 형인 것 같았는데, 보나 마나 놀자고 할 게 뻔해서 자는 척을 하려고 한다.
어차피 문을 열어 주지 않으면 들어오지도 못할…….
삑-! 지—잉.
딸깍-
‘오잉?’
문 쪽에서 카드가 대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자동으로 자물쇠가 풀리고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아니 대체 어떻게.
“야-! 김다온!”
“…….”
고개를 먼저 빼꼼 내민 성용이 형이 안으로 들어오고, 작게 실눈을 뜨고 있던 나는 행여 들킬까 싶어 눈을 감고 계속해서 자는 척을 했다.
그러나.
“야! 안 자는 거 알아, 인마.”
“…….”
“형이 셋 센다? 하나. 두울.”
성용이 형은 내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면 그냥 넘겨짚은 거에 내가 속아 넘어갔거나.
괜히 셋을 세는 것이 두려워진 나는, 막 잠에서 깬 척하며 몸을 뒤척였다.
“우웅~ 왜애- 나 잘 거야.”
“어쭈? 구자봉이 다 불었어. 얼른 일어나.”
“아, 왜애~”
“아, 놀자고오-!! 야! 빨리 일어나.”
“하아- 진짜.”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짜증을 한껏 부리자, 성용이 형은 곧 세상 참 좋아졌느니 편해졌느니 하며 꼬장을 피웠다.
자기가 처음 대표팀에 합류했을 땐, 하루에 할 수 있었던 말이 단 세 개뿐이었다면서 말이다.
“야, 나 때는 말이야. 일어나셨습니까. 맛있게 드십시오. 안녕히 주무세요. 이 세 마디밖에 못 했어.”
“꼬장꼬장해 가지고…….”
“뭐?”
“아니. 내가 꼬질꼬질하다고. 세수를 좀 해야겠어.”
“야, 빨리 일어나. 옆방에서 카드 할 거니까.”
“하아~ 나 좀 빼고 하면 안 될까?”
“안 돼 인마. 얼른 세수하고 와. 알겠지? 안 오면 죽는다?”
성용이 형이 돌아서려고 할 때, 문득 중요한 게 떠올랐다.
“아, 맞다.”
“왜?”
“문은 어떻게 열었어?”
보통 파주 NFC에 오게 되면, 우린 방을 배정받아 거기에 맞는 카드키를 가지게 된다. 여분이야 얼마든지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분실을 대비한 것이다.
삼파올리 감독님은 각자의 사생활을 존중해 주는 문화를 강조하는 유형이셨고, 그래서 타인과 카드키를 공유하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함께인 것보다 혼자인 편이, 휴식을 훨씬 더 잘 취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질문에 성용이 형은 씨익 하고 웃으며 주머니 속에서 어떤 카드를 꺼내 들었다.
“마스터키 인마.”
“어? 그걸 왜 형이 들고 있어?”
“야. 내가 누구냐? 키라고 키. 몰라?”
“……우웩, 더럽게 썰렁해.”
“뭐?!”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팍-! 씨. 잔말하지 말고 얼른 와.”
성용이 형의 손에 마스터키가 들려져 있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이따가 가겠다고 말한 뒤에 다시 문을 잠갔다.
이번에는 아예 걸쇠를 채웠고, 이렇게 하면 마스터키가 있더라도 문을 열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런 뒤에는.
이곳 파주 NFC 어딘가에 있을 삼파올리 감독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복도가 조금 시끄러워졌고, 삼파올리 감독님일 것으로 생각되는 목소리가 강한 어조로 누군가를 나무라는 것을 듣게 되었다.
[이건, 강령 위반이다!!]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쿵쿵쿵-
“야-! 김다온! 문 안 열어? 치사한 새끼야!! 안 열어?”
나는 분노한 성용이 형의 열렬한 애정 공세(?)를 받게 되었다.
쿵쿵쿵-
“이따 저녁 먹을 때 죽었어, 너! 야! 열어! 열라고!”
저녁을 먹기 전에 성용이 형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 알게 된 건, 강령 위반으로 50만 원의 벌금을 냈다는 것과 그것으로 15일 경기 후 회식을 할 거라는 사실이었다.
어, 잠깐.
그럼 난 못 먹잖아?
“에이 씨! 나 고기 싸서 보내! 보내라고-!”
“이 새끼가 어디서 지랄이야?”
“아- 몰라! 고기 보내! 나도 먹게!”
늘 느끼지만, 한국에만 오면 영락없이 학창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
그리고 난 이것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