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3)
3화
“다온이 처음으로 팀에 합류했을 때, 그는 거의 10살짜리 꼬마 아이처럼 보였다.”
-니콜라이 스톡홀름 via 빅리그 진출을 앞둔 김다온의 합류 시즌을 회상하는 인터뷰에서.
독일의 철학자 루트비히 안드레아스 폰 포이어바흐(Ludwig Andreas von Feuerbach)는 [Der mensch ist, Was er iszt]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는 우리가 흔히 ‘You are what you eat’이라 알고 있는 문장이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삶을 살았던 포이어바흐는 어느 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비참한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었고, 사랑하지 않는 귀부인과의 결혼을 통해 경제적 궁핍을 극복하게 되며 자신의 철학을 버리고 유물론자로 되돌아섰다.
그런 그는 인간은 결국 먹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규정짓는다 여겼고, 삶은 오직 먹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으로 나뉘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당시의 포이어바흐에게 있어 먹는 행위란, 인간이 삶을 영위하기 위한 투쟁이자 인간답게 살기 위한 다툼이었다.
이를 증명하는 장면이 바로 지금 여기.
[대체······ 뭐야 저거?]라이트 투 드림 파크 클럽하우스 내의 선수 전용 식당에서 펼쳐지고 있다.
***
#오후 12 : 40
가벼운 전술훈련을 끝마친 F.C 노르셸란의 선수들.
그들은 클럽 내의 규칙에 따라, 모두가 함께하는 점심을 위해 클럽하우스 내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들은 믿기지 않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건 바로, 165cm의 작은 체구에 불과한 한 소년이 자신의 얼굴만 한 고깃덩어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먹어치우는 것이었다.
이를 멍하니 지켜보기만 하던 마이클 파크허스트(Michael Parkhurst)가 시선을 고정한 채 몸만 살짝 뒤로 젖히며 크게 외친다.
[모르! 지금 저거 보고 있어요?] [그래! 나도 믿기지 않는군!] [HOLY! 무슨 진공청소기를 보고 있는 기분이에요. 쟤 식단 관리는 안 해도 되는 거 맞아요?]“······.”
모르텐 비그호스트(morten Wieghorst). 흔히 모르로 불리는 크고 거친 외모의 이 남성은 F.C 노르셸란의 매니저다.
과거 덴마크의 국가대표로 뛴 볼란치 겸 센터백이었고, 셀틱과 브뢴비 등에서 뛰며 유럽 클럽 국제대항전도 경험했다.
그리고 현재는 2006년부터 노르셸란에 재직 중이다.
현역 시절 한 성깔 했던 것으로 유명한 이 남자는 매니저가 되어서도 특유의 기질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런 그도, 지금의 이 장면 앞에서는 놀랍다는 감정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문득 무언가 떠오른 비그호스트가 테이블 위에 둔 파일을 열어본다.
거기엔 팀에 새롭게 합류한 소년의 정보가 들어 있었다.
또 그를 어떠한 식으로 육성하고 성장시킬지에 관한 자료 역시도 포함되어 있다.
보통이라면 선수의 육성과 관련된 부분은 해당하는 분야의 전문가들이 하는 것이 옳았지만, F.C 노르셸란은 육성의 상당 부분을 구단주인 톰 버논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과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스카우트와 유소년 전략 담당자로 활약한 경력이 높은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이젠 조금 침침해진 눈 때문에 안경을 뒤집어쓴 비그호스트가 눈을 살짝 찌푸리며, 스카우팅 리포트를 확인한다.
그리고 그런 그의 시선은 메디컬 쪽으로 향했다.
[나이에 비해 신체발달이 굉장히 뒤처짐. 사전 리포트와 신체 대사를 확인한 결과 빈약한 식사 때문일 가능성이 큼. 현재의 체격으론 특출난 기술을 가지지 않은 이상, 리그에서 버텨내기 무척 힘들 것으로 보임. 하지만 아직 성장의 가능성이 남아 있으므로, 예외적인 식단을 적용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음. 높은 수준의 고단백 식단과 균형 잡힌 식습관을 권유함.]“······.”
높은 수준의 고단백 식단.
다시 비그호스트의 시선은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한 소년에게로 향한다.
그리고 잠시 뒤, 소년은 크게 외쳤다.
“푸-하! 잘 먹었다!”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그 말은, 소년이 얼굴만 한 고깃덩어리를 무려 네 점이나 먹어치운 뒤의 일이었다.
***
#오후 16 : 00
훈련이 모두 끝난 뒤, 감독님께서 나를 따로 부르셨다.
그리고 난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내 통역이란 사람을 만날 수가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이 따분하다는 눈빛을 가진 제철이 형은, 전화로 들었던 것만큼 무신경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마치, 예전의 누나를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
“어땠냐고 묻네.”
“에?”
“오늘 말이야. 하루 팀에 있어 보니 어땠느냐고 물어.”
“아-.”
오늘 팀에 합류하고 가장 놀란 부분은 바로, 리그의 일정이 무척이나 빠르다는 것이었다.
개막전은 17일 뒤인 7월 18일에 펼쳐졌고, 리그는 그렇게 내년 5월까지 진행이 됐다.
나의 해외 리그 지식 EPL 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에, 여기도 당연히 8월이 되어서야 시즌이 시작할 것으로만 생각했었다.
“음,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식사가 무척 맛있었다?”
“······뭐?”
“밥이요! 세상에! 그렇게 맛있는 고기는 생전 처음이었던 것 있죠?”
지금도 난 점심을 떠올리며 행복해했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아쉬울 만큼, 클럽하우스에서 먹었던 점심은 내 인생에서 가장 푸짐한 만찬이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가족들을 두고 나만 맛있는 것을 먹어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이없는 표정을 날 쳐다보던 제철이 형은 살짝 일그러진 표정으로 내 이야기를 통역했다.
그러자 잠시 뒤 감독님도 비슷한 표정을 지어 보이시다,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내가 실수라도 한 건가?
[하하하하! 재미있군! 아-주 재미있어! 일단 이 꼬마에게 당분간 훈련을 나눠서 진행하게 되었다고 말해 주게. 어떤 날은 1군과 함께하겠지만, 대부분은 B팀에서 뛸 거라고.]나의 위치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모두 들었기 때문에, B팀과 함께하는 점에 대해서는 전혀 불만이 없다.
오히려 유스 팀이 아닌 곧바로 B팀에서 뛰는 게 감사했다.
[당장 실전을 진행할 수는 없어. 그래도 일단 모레 있을 B팀과의 연습경기에 한번 출전시키고 싶군. mr. 버논이 그렇게 열을 올리는 건 드물어서 말이야.]“······라는데?”
“벌써 시합이라고요?”
“왜? 쫄려?”
“아뇨? 그렇지는 않은데요?”
“너. 너무 자신만만한 거 아니야?”
제철이 형은 몇몇 친구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왜 학교에도 꼭 저런 애가 있지 않은가? 세상 모든 짐을 혼자서 다 가진 것처럼 매사가 살짝 불퉁한 사람 말이다.
가족을 제외하면 가장 얼굴을 오래 마주할 사람인데, 저래서는 곤란하다.
무엇보다, 8월부터 내게 공부를 알려줄 사람도 바로 이 사람이다.
지금이라도 바꿔 달라고 하면 안 되려나?
아마 안 되겠지?
‘에효. 바랄 걸 바라자.’
이후로도 계속하여 난 감독님의 질문에 대해 답을 했고, 그렇게 20분가량 이어진 개별 면담이 끝나고서야 겨우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집은 클럽하우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나처럼 해외에서 온 이들을 위해 머물 수 있게 만들어둔 공간이며, 물론 집주인에게 따로 비용은 지불해 두었다.
제철이 형의 차에 올라타 집이 오기까지, 15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다.
이 정도면 걸어 다녀도 된다 싶었지만, 안전의 이유로 절대 그럴 수는 없다고 했다.
여긴 한국이 아니라나.
“네가 뭘 모르는 것 같아서 말하는데, 여긴 꼭 좋은 사람들만 있는 건 아냐.”
“그럼, 나쁜 사람들도 있어요?”
“응. 뭐 땜에 내가 이 모양 이 꼴이라고 생각해?”
“음- 성격이 나빠서?”
“이게-! 얼른 내리기나 해! 쯧. ”
탁-!
거의 날 떠밀다시피 한 제철이 형에 의해, 난 얼떨결에 차에서 내리게 됐다.
참으로 까칠한 사람이란 생각이 다시 들었던 찰나, 등 뒤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꼬마!”
“전 꼬마 아니거든요?!”
“하아- 아무튼. 만약에 말이야, 내가 없는 곳에서 있다가 누가 시비를 걸어오면 있지? 그리고 그게 축구와 관련된 장소가 아니라면, 있는 힘껏 도망쳐.”
“도망치라고요?”
“이렇게 말해줘도 모르겠지만, 뭐. 아무튼, 앞으로 잘 부탁한다. 너한테 내 생활비가 걸려 있어. 내일 아침에도 데리러 올게. 알겠지? 밥 잘 챙겨 먹고. 또 부모님 말 잘 듣고.”
“······네.”
“그래. 그러면 내일 보자.”
부르-응!
흐음-
아무래도 나는 제철이 형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첫인상이 나쁜 것일 뿐, 알고 보면 마음이 따뜻한 사람일지도······.
에고, 모르겠다.
얼른 집에나 들어가 볼까?
요즘 계속해서 느껴왔던 것이지만, 이 넓고 쾌적한 집이 우리 가족이 사는 공간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안은 여전히 조금 창고 같겠지만, 그래도 전에 살던 집에 비하면야.
최소한 비가 오면 물이 샌다거나, 구석구석 곰팡이가 피고 바퀴벌레는 나오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난 기쁜 마음으로 현관의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그리고 동시에 풍겨오는 냄새.
“킁. 킁. 이건?”
그래! 바로 라면 냄새다.
그렇지만······.
하아- 고기. 아까 그 고기 참 맛있었는데.
“아들!”
하지만 반갑게 날 맞아주는 엄마에게, 고기가 없다고 반찬 투정을 부릴 수는 없다.
오늘 저녁은 라면에 인스턴트 쌀밥. 그리고 김치다.
덴마크에 왔는데도 어째 식탁은 달라진 게 없네?
아, 있긴 있구나.
“우왕- 대리석이야!”
“야, 야 조심해! 라면 국물 묻으면 어쩌려고?”
너무나도 익숙한 이 풍경에, 나는 그만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꼭······.’
돈을 엄청나게 벌어서, 떵떵거리면서 살아야지.
축구는 지금 내게, 바로 그런 의미였다.
부자가 되기 위한, 유일한 수단.
그게 뭐가 나빠?
안 그래?
***
2009년 7월 3일. 셸란, 덴마크. 파룸, 파룸 파크 2. 라이트 투 드림 파크.
·2쿼터 26 : 10
F.C 노르셸란 4 : 1 F.C 노르셸란 B
30분씩 나뉜 종합 3쿼터의 연습경기가 지금 한창 진행 중이다.
F.C 노르셸란, 그러니까 편의상 A팀이라 부를 1군은 B팀을 내내 압도하며 4 : 0 으로 쉽게 앞서나갔었다.
하지만 2쿼터 20분이 지났을 무렵, Helge Gade 라는 발음조차 모를 녀석이 B팀에 투입되면서 상황이 약간 바뀌었다.
일단 게이드라 부르면 될 것 같은데.
제철이 형한테 우선 이름부터 알려달라 해야 할 것 같다.
친해지려면, 이름부터 알아야지. 암.
[이봐! 대체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감독님은 지금 무척이나 화가 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저 게이드라는 녀석한테 A팀의 수비가 계속해서 휘둘리고 있기 때문이다.
게이드는 지난 전국대회에서 만난 창진이를 연상케 했다.
그리 크지 않은 키도 키려니와, 볼을 다루는 성향이라든가 혼자서 모든 걸 하려는 제멋대로인 성향까지도 비슷하게 느껴졌다.
저런 애들은 종종, 팀의 템포를 죽인다.
하지만 창진이와 결정적으로 달랐던 건, 몸집이 정말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몰랐던 사실인데, 말이 B팀이지 F.C 노르셸란의 2군은 사실상 유스팀과 다를 것이 없었다.
선수들의 연령대 대부분이 17~19세였고, 아주 드물게 20대 초반이 섞여 있다.
결국, 내가 자주 함께할 B팀이 사실상의 유스라는 거다.
아마도 유스란 이름이 붙인 곳은 더 어린 애들이 뛸 거다.
14살 전후의?
삑- 삑-!
오늘 연습경기의 주심을 맡은 어시스턴트 매니저가 호각을 불어 2쿼터의 종료를 알린다.
저 매니저 이름이 뭐였더라······.
아무튼, 무지하게 복잡한 이름이었다.
그렇게 2쿼터가 끝나고 난 뒤, 감독님은 선수들을 모아두고 불같이 화를 냈다.
실점한 것을 떠나, 단 한 명의 선수에게 A 팀이 휘둘리는 걸 참지 못하시는 것 같았다.
이럴 땐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게 장점인 듯도 하다.
만약 알아들었다면, 잔뜩 위축되었을 거다.
외국 사람이 저렇게 화를 내는 걸 실제로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인데, 진짜 어마어마하게 무서웠다.
그리고 잠시 뒤,
[꼬마!]어제부터 나를 꼬마(Kid)라 부르기 시작한 감독님이 손짓을 보내오셨다.
솔직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다음이라고 잘못 불릴 바에야 꼬마가 더 낫다 싶다.
잽싸게 움직여서 곁으로 다가가자, 어딘가에 숨어 보이지 않던 제철이 형이 귀신같이 나타났다.
대체 어디 있던 거야?
“······야, 너 다음에 뛴대.”
“그래요? 네, 준비는 됐다고 해주세요.”
제철이 형은 사람들 앞에 있을 때와 내 앞에 있을 때가 확연하게 다르다.
이럴 때 보면 무척 믿음직스럽다.
아무튼, 지금부터는 나의 첫 실전 경기다.
F.C 노르셸란 소속으로서의 첫 시합.
물론 연습경기일 뿐이지만,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솔직히 지금은 자신감보단 걱정이 앞선다.
왜냐하면, 전부 하나같이들.
‘어우, 떡대 좀 봐.’
나보다 최소 10cm는 커 보였으니까.
몸통은 또 왜 저리 두꺼운 거야?
우선, 한번 부딪쳐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삑-!
정신없는 사이, 그렇게 3쿼터의 시작을 알리는 호각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