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302)
301화
·하프타임
바이에른 뮌헨 0 : 1 마인츠
전반전의 실점은 사고였다.
단테의 부상이 우리를 패닉으로 몰고 갔고, 그 허점을 파고든 마인츠의 시도가 득점으로 이어졌다.
펩 역시, 그러한 점을 지적한다.
“위축될 것 없다! 축구에선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 중요한 건! 그런 사고로부터 얼마나 빨리 회복하느냐다! 기억해라! 우리가 더 좋은 팀이다!”
이거야말로, 듣기 쉽지 않은 ‘펩 토크(Pep Talk)’다.
나는 항상 이런 순간을 위와 같이 표현하곤 했는데, 실제 펩의 이야기이기도 하거니와 영어로 펩 토크가 ‘응원과 격려를 보내는 말’이란 뜻을 담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실제 단어의 기원도 스포츠 쪽이고 말이다.
“우리가 전반전에 뒤진 이유는 정교하지 못했기 때문이야!”
‘아, 끝났네.’
짧은 격려가 끝나고, 펩은 곧바로 현실을 분석했다.
전반전 내내 마인츠를 압도했음에도, 득점을 기록하지 못한 이유는 그의 말처럼 정교함이 평소보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측면에서 띄우는 크로스들이 하나 같이 무뎠고, 페널티 박스 부근에서의 볼 처리 역시 투박했다. 바스티의 경기 감각도 감각이지만, 그보단 판단의 속도가 빠르지 못했다.
체력적인 문제가 닥쳤을 때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일인지라, 정신 바짝 차리고 머리를 굴리는 데 힘을 써야 할 거다.
“휴우~ 제기랄.”
하프타임 팀 토크가 끝난 뒤, 펩이 라커룸을 떠나고 온전한 선수들만의 시간이 찾아왔다.
“누구 단테의 이야기 못 들었어?”
“있어 봐. 지금 물어볼게.”
도메네크가 우리들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기 위해 움직였고, 남은 우리들은 전반전 경기 내용을 복기하면서 부족했던 게 무엇인지를 논의했다.
다섯 명의 수비를 둔 만큼, 마인츠의 수비라인은 굉장히 아래쪽에 있었다.
전방에서의 압박도 다른 경기들보다 적었고, 감독이 지시한 영역(Zone)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덕분에 빌드업의 전개는 무척 수월했지만, 공격 진영에서 마인츠 선수들의 숫자가 많아 마지막 연결과 마무리를 하는 부분에서 많이 애를 먹고 있다.
“그래도 나쁘진 않았잖아. 그렇지?”
“응. 괜찮았어.”
현재 스코어가 0:1이라는 것만 뺀다면, 사실 우린 꽤 경기를 잘 해냈다고 볼 수 있었다. 펩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빌드업이 완벽했고, 만주키치도 자신의 역할을 십분 소화했다.
9번 자리를 텅텅 비워 둔 채 측면을 오가는 일은 익숙지 않았겠지만, 덕분에 뮐러와 로번에게 기회가 났다.
다만 후반전엔, 그것에도 변화가 있을 예정이다.
펩은 단테의 부상 때, 판 바위턴이나 키르히호프가 아닌 데이비드 알라바를 교체로 투입하는 판단을 내렸다.
처음엔 알라바를 센터백으로 보내는 줄 알았건만, 콘텐토를 센터백으로 옮겨 뛰게 하고 알라바에게 왼쪽 사이드백을 맡겼다.
“이봐, 디에고.”
“?”
나는 그런 점 때문에, 콘텐토의 상태가 걱정됐다.
“너 괜찮아?”
“그럼. 매 순간이 코너킥이라 생각하면 돼.”
“하하. 그거 재미있네.”
뮌헨의 특색은 보아텡의 전진에서도 잘 나타난다. 긴 다리를 성큼성큼 뻗어 쭉쭉 나아가는 보아텡의 플레이는, 수적 우위를 강조하는 펩의 축구에서 무척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팀의 최후방엔 속도가 느린 단테-판 바위턴-키르히호프가 홀로 남을 때가 많았다.
이는 우리 펩 전술의 가장 큰 약점 중에 하나인데, 아무래도 콘텐토에게 그 약점을 보완하는 역할이 맡겨졌나 보다.
물론 첫 실점 상황은 그 뒷공간을 허용해 발생했지만, 단테의 부상으로 교체가 일어난 직후에 일어난 일이라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기 힘들었다.
“가자-!! 우린 이 경기를 뒤집을 수 있어!!”
보아텡의 힘찬 파이팅과 함께, 우린 다시 피치로 나섰다.
그리고 나 역시, 역전을 다짐한다.
아영이가 처음으로 직관하는 날인데, 그녀에게 괜한 죄책감이나 징크스를 짊어지게 하고 싶진 않다.
뒤지고 있기에 더욱 힘차게 피치로 달려 나가는 우리를 향해, 알리안츠 아레나에 모인 팬들이 박수를 보내온다. 점수는 뒤지고 있지만, 사람들의 얼굴은 비교적 평온해 보인다.
‘정교하게.’
이제 피치에 22명의 선수들이 채워지고, 축구공 위에 숀 파커(Shawn Parker)의 발이 얹어지는 것을 보며 후반전의 시작을 기다린다.
후반전, 우린 전술적으로도 변화가 있다.
기존 4-1-4-1에서 4-2-3-1이 됐다.
바스티가 람과 함께 도펠트 젝서(Doppelt Sechser/더블 볼란치)가 되어 센터백을 보호하며, 보아텡이 전진했을 때 생기는 공간을 채워주는 일을 하게 될 거다.
그리고 2선엔 로번-토니-뮐러가 왼쪽부터 자리를 잡고, 만주키치는 본인이 가장 잘하는 정통 9번을 맡는다.
펩 토크, 지적/훈계, 그리고 전술.
5분이란 짧은 시간 동안 진행되었던 펩의 하프타임 대화가 후반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는, 지금부터 두고 봐야 할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난 믿고 있다.
펩을?
‘아니, 나를.’
우린, 후반전에 이 경기를 뒤집을 것이다.
***
전반 42분 율리안 바움가르틀링거(Julian Baumgartlinger)의 패스를 연결받아 숀 파커가 득점을 기록했을 때, 마인츠의 감독 토마스 투헬은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론 실망을 했었다.
왜냐하면 득점이 나온 시점이,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절반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철저히 수비에 초점을 맞추며 70분을 버텨 낸 뒤, 뮌헨의 수비 뒷공간을 파고들어 승점을 안겨다 줄 득점을 만들고자 했다.
만약 그랬다면 승점 3점. 최악이더라도 최소 승점 1점은 가져갈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었었다.
하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런, 빌어먹을.’
피치 위에서 펼쳐진 상황을 보며, 토마스 투헬은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야 만다.
행운이란, 무조건 좋은 게 아니라 그 시점이 중요한 법이었다.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찾아온 행운은, 오히려 누군가를 불행하게 만든다.
마치, 지금의 마인츠처럼.
“주호!!”
토마스 투헬은 기존의 5-4-1을 유지하면서도, 공격에 조금 힘을 실을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한다.
믿을 만한 왼쪽 풀백인 박주호를 투입하여, 거의 없다시피 한 팀의 왼쪽 공격력에 힘을 불어넣을 생각이다. 벤치엔 말리크 파티(Malik Fathi)란 다른 대안이 있었지만, 그의 판단엔 대한민국의 왼쪽 풀백이 더 나아 보였다.
다시 몸을 돌린 투헬의 시선이, 이번엔 먼 쪽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역시나, 저 녀석이 차이를 만들었어.’
2분 전 아르연 로번의 동점골을 직접 어시스트하고, 방금 뮐러의 역전골로 이어진 패스 플레이에 시발점이 된 김다온이 자리하고 있었다.
***
·후반 21분
바이에른 뮌헨 2 : 1 마인츠
우리는 후반 7분 만에 경기를 뒤집었다.
그 원인은 펩의 전술적인 지시도, 그렇다고 행운이 겹쳤기 때문도 아니었다.
내 생각에 우리가 상황을 180도 바꿔 놓을 수 있었던 것은 간절함이라는 이름의 의지 때문이었다.
쉽게 말해, 정신력.
?“선수 교체가 있습니다. No. 31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나오고, No. 19. 마리오 괴체가 투입됩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지, 펩은 우리가 역전 이후에 조금 느슨해지자 여지없이 실을 다시 팽팽하게 잡아당기려고 했다. 여기엔 물론, 바스티를 위한 안배도 있을 것이다.
이제 토니가 젝서로 내려서고, 마리오가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포지션인 체너(Zehner/10번)로 올라선다.
우리 뮌헨에서도 종종 체너의 위치에 서긴 했지만, 혼자이기보다는 둘일 때가 많아 체너와 아흐터(Achter/8번)의 역할을 번갈아 가며 맡아야 했다.
하지만 오늘과 같은 상황이라면, 괴체는 도르트문트에서 뛰었던 본연의 일을 할 수 있다.
“에-이! 여기야!”
알라바가 사이드라인을 따라 쭉 치고 들어갔기에, 나는 중앙으로 좁혀 미드필드에 힘을 보태 주는 일을 했다.
람이 내게 패스를 보내오고, 그에 맞춰 로번이 파고 들어가자 마인츠의 수비들이 움찔하며 라인을 뒤로 물렀다. 다소 과민 반응이긴 하지만, 첫 득점이 이런 상황에서 나왔다.
당시에 난 바스티에게서 짧은 패스를 전해 받아, 전방에서 뛰어 들어가는 로번을 향해 빠르게 축구공을 굴려 보냈다.
순간적으로 파이브백의 약점이 드러난 셈인데, 중앙에 세 명의 선수가 있기 때문에 오프사이드 라인을 조절하기가 무척 힘이 든다.
슈테판 벨(Stefan Bell)은 오프사이드 라인을 만들려 앞으로 나왔으나, 다른 두 명의 센터백은 멀뚱히 있었다.
골키퍼와의 1:1 상황.
그걸 놓칠 로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냐.’
슬쩍 정면을 보았던 나는, 재빠르게 몸을 돌려 왼쪽의 알라바에게 롱 패스를 보냈다. 방향 전환의 속도는 빠르지 않지만, 다시 진형을 정비할 시간을 벌 수는 있을 거다.
패스를 받아 든 알라바가 과감히 1:1을 시도하고, 그의 드리블 돌파를 즈데네크 포스베흐(Zdenek Pospech)가 걷어 내며 스로인이 만들어진다.
그러자 벤치에서 펩이 박수를 보내왔는데, 나보다는 알라바를 칭찬하는 것이리라고 본다.
확실히 알라바가 왼쪽을 맡아 주면서, 리베리로 인한 공백이 거의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평소라면 90분 동안 쏟아 냈을 에너지를 후반 45분에만 집중시킬 수 있는 탓인지, 피치의 왼쪽 전체에 있다고 봐도 좋을 만큼 엄청난 활동량을 보여 주고 있다.
덕분에 로번을 포함한 2선 전체가 프리롤로 움직일 수 있었고, 나 역시 짐을 많이 덜었다.
전반전에 비해 드리블 돌파와 침투를 자제하고, 중원에 힘을 보태어 점유율을 높이는 데 조금 더 주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람과 토니가 아흐터의 위치까지 올라설 수 있고, 내가 젝서를 맡으면서 3선으로 볼이 돌아왔을 때의 빌드업 전체를 관리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지금도 난 센터백 앞에서 패스를 받았다.
그리고.
“–!!!”
시끄러운 피치 위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파앙-!!
패스를 앞으로 길게 보내면서, 나는 현재 우리 뮌헨의 포지셔닝이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누가 본다면, 충격을 먹을 정도다.
+++++++++++++++++++++++++++++++
——————–만주키치———————-
———————————괴체————–
알라바——-로번——뮐러———토니——–
————————————————-람
———————-김다온———————-
—–콘텐토———보아텡———————–
+++++++++++++++++++++++++++++++
보아텡과 만주키치 정도를 뺀다면, 본연의 포지션에서 뛰고 있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콘텐토와 람이 풀백의 시늉(?)을 하지만, 실제론 전혀 아니다.
하프라인 앞쪽에서 찔러 보낸 패스가 페널티박스 오른쪽 라인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볼을 받아든 괴체가 주니오르 디아즈(Junior Diaz)의 앞에서 절묘한 개인기를 선보인다.
오른쪽으로 슬쩍 몸을 움직여 보디페인팅을 준 뒤에, 유연하게 동작을 반대편으로 가져가며 수비를 떨어뜨린 거다.
이후 그의 오른발이 땅볼 크로스를 만들어 냈고, 운집한 마인츠의 수비수들 사이에서 절묘한 위치를 잡고 있던 만주키치가 마무리를 일궈 냈다.
더 좋았던 건, 만주키치의 앞뒤에서 공간으로 쇄도하던 뮐러와 로번의 움직임이다.
삑-!! 삐—익!!
후반전이 시작되고 24분 만에, 우린 세 번째 득점에 성공했다. 전반전과 같은 팀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반전을 보여 주고 있다.
득점 이후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보아텡과 포옹을 나눈 나는, 고개를 돌려 벤치에 있는 펩을 바라보았다.
여유를 되찾은 그는 이미, 도메네크나 부에나벤투라와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괜찮아진 것 같다. 말은 들리지 않지만, 제스처나 표정을 보면 농담을 한다는 것쯤은 알 수 있다.
그런 뒤에 난, 해야 할 일 하나를 잊지 않는다.
난 두 손으로, 아영이를 향해 하트를 만들었다.
다행히도 오늘, 나는 내 여자에게 좋은 기억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
.
·경기 결과
바이에른 뮌헨 4 : 1 마인츠
[골] 아르연 로번 : 후반 05분(김다온)토마스 뮐러 : 후반 07분(아르연 로번)
마리오 만주키치 : 후반 24분(마리오 괴체)
토니 크로스 : 후반 25분(아르연 로번)
김다온 ? 95분 출전(1어시스트/평점 : 2.5)
MoM ? 아르연 로번(1골 2어시스트/평점 : 1.5)
***
단테의 부상은 생각만큼 깊지 않았지만, 그래도 2주 정도는 결장이 확정됐다.
“그리고.”
“?”
언제나처럼 우리의 앞에서 부상 선수의 브리핑을 이어 나가던 볼파르트 박사님. 그분은 할 말이 더 있다는 듯, 헛기침을 몇 번 해 보였다.
보통은 아까의 대화에서 끝나는데 말이다.
“지금 부상인 선수들이 최대한 빠르게 돌아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네. 늘 그래 오긴 했지만,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것들을 받게 해 주겠어.”
“······.”
볼파르트 박사님은 우리를 보며 말하고 계셨지만, 우린 이것이 펩을 향한 말임을 알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의 시선이 뒤에 심드렁히 서 있는 펩에게로 향했고,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시선에 어쩔 줄 몰라 하던 펩이 고개를 숙이면서 벗겨진 머리를 긁적였다.
티아고의 말에 의하면, 저건 곤란한 순간일 때 나오는 펩만의 버릇이었다.
“그리고 바스티는 점검을 받고 돌아가도록. 외에도 상담이 필요하다면, 내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말을 해 주고 싶네. 그럼. 승리를 축하하네.”
펩을 바라보았던 우리들의 눈빛은 이제, 대부분 놀라움으로 가득해져 있었다. 볼파르트 박사님에게서 승리를 축하받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초반에 난 어째서 팀 닥터가 우리의 승리를 함께 기뻐하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바스티는 그게 일상이라고 했다.
의료진과 팀을 별개로 나누는 것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여긴 그의 모습에서, 나는 꽤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흐음- 효과가 있긴 있었나?’
며칠 전 볼파르트 박사님에게서 메시지를 받은 뒤에, 나는 출근 전에 클리닉을 찾아 의례적인 점검을 받았다.
사실 말이 검사지, 그냥 대화를 하던 시간이었다.
진료실엔 심지어 커피도 두 잔 놓여 있었다.
[“펩이 엄청나게 화를 내더군.”] [“네. 바스티가 뛸 수 있었다고 했어요.”]바스티가 우리에게 한 말을 그대로 전하자, 깊게 한숨을 내쉰 볼파르트 박사님은 아들이 멋대로 한 말이라며 어디까지나 환심을 사고자 했던 빈말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킬리안은 가끔, 상대의 환심을 사기 위해 거짓을 말하거나 과장해서 말하는 버릇이 있어.”]아들의 입방정이 원인이었음을 말하는 볼파르트 박사님을 보며, 내가 했던 대답은 바로 이것이었다.
[“음- 아드님이 사랑을 받지 못하고 컸나 보죠?”] [“부끄럽지만, 그러하네. 난 가정적인 사람은 아니었지.”] [“그래서 환심을 사려고 그러는 거군요.”]한국에서 가난하던 시절, 누나는 내가 가난에 투정을 부릴 때면 항상 올바른 사랑을 받고 크는 것에 관해 말을 해 주었다.
애정이 부족하게 크면 쉽게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 되지만, 우린 돈이 없는 대신 올바르게 크고 있다고 말이다.
사실 그땐 그런 말보다 눈앞에 있는 오백 원짜리 빵을 사 먹는 일이 훨씬 더 중요했지만, 주머니에 십 원짜리 하나 없던 우리에겐 그건 그냥 그림의 떡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많이 바뀐 지금, 나는 볼파르트 박사님의 말을 들으며 그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
최소한 누나나 나는 타인의 애정을 얻고자, 거짓을 말하거나 상황을 과장해 부풀리지도 않는다. 그저 내 진심을 말하고, 그것이 전해지지 않을 땐 포기하는 법을 알고 있다.
그 뒤에서 나는 볼파르트 박사님과 어린 시절의 이야기부터 해서 꽤 많은 대화를 주고받았었다.
‘흐음- 그러고 보니.’
확실히 볼파르트 박사님과 대화를 주고받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부쩍 독일어가 좋아진 것 같다.
나도 나름, 얻는 게 많았던 시간이었단 거다.
“좋아. 크흠. 그렇군.”
여전히 볼파르트 박사님이 뻗은 손 때문에 당황해하는 펩 과르디올라가, 우리의 앞에 서서도 할 말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머리만 긁적였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고, 그것이 재미있었던 우린 웃음을 참아 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했다.
아마 이 일로, 몇몇은 펩 과르디올라가 축구밖에 모르는 감정 없는 로봇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을 거다.
나는 이게 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고, 이내 펩이 얼굴을 든다.
“크흠. 좋아. 간단하게 말하지. 우린 4일 뒤에 또 경기를 해야 한다. 그러니 오늘은 충분히 먹고, 마시고, 또 편하게 쉬며 다음 경기를 준비한다. 사실 이럴 줄은 몰랐지만······.”
“응?”
펩이 뒤쪽으로 손짓을 보내자, 많은 이들의 환호성을 자아내게 만든 카트가 등장했다.
보통 경기 후에 먹을 음식물을 나르던 카트 위엔 바나나와 당분을 최대한 뺀 주스와 같은 맛은 없지만 몸에 좋은 음식물이 있었지만, 오늘은 완전히 반대였다.
펩이 금지시켰던 빵과 탄산음료를 비롯하여, 치즈가 잔뜩 올려진 피자 상자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던 거다.
우리들은 이내 환호성을 내지르며 펩의 이름을 연호했고, 수줍은 소녀처럼 얼굴이 빨갛게 변한 펩은 오늘뿐이라며 이런 일은 또 없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별로 중요치 않았다.
“제기랄. 어쩌면 좋은 사람일 수도 있겠는데?”
“말했잖아, 마리오. 오해일 뿐이라고.”
“아니, 아니. 그건 아니지. 고작 이런 빵 쪼가리랑 음료수로 내 마음을 돌리겠다고? 앞으로도 지켜보겠어.”
말과는 전혀 다르게 양손에 피자와 콜라를 손에 쥐고 행복해하는 만주키치의 모습 역시, 부끄러워 자리를 피한 펩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국, 이 남자에게도 소년 같은 면이 있다는 거다.
소년이나 소녀나.
느낌은 비슷하니까.
펩의 깜짝 파티 때문에 퇴근이 늦어질까, 나는 음식을 먹는 것도 관두고 얼른 샤워실로 뛰어들었다.
오늘 저녁은, 아영이와 함께 먹을 생각이다.
꼬로로록-
······그치만.
‘한 조각 정도는 먹을까?’
하반신에 타올을 두른 채 밖으로 나온 순간, 나는 이 판단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만면 가득 미소를 지어 보인 뮐러가 달려들어, 어떻게든 타월을 벗기려고 했으니까 말이다.
[야!! 그만해!! 그만하라고!! 넌 또 왜 찍어!! 사진 찍지 마!! 찍지 말라고, X발!! 내 성질 뻗쳐서 진짜!!]이거, 얼마 전에 있었던 일 아닌가?
역시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는 건, 부족한 선견지명과 작은 욕심인 것 같다.
[찍으면 죽여 버릴 거야!!]오늘도 내 한국어는, 이곳에서 구슬프게 울려 퍼지고 있다.
매번 이러면 안 되는데.
지금 막, 작은 고민거리 하나가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