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305)
304화
최근 한두 달 줄곧 느꼈던 것이긴 하지만…….
‘재미있어!’
재밌다.
요즘만큼 즐거워 본 기억이 없을 만큼, 피치 위에서 뛰는 모든 순간이 행복했다.
‘저기!’
콘텐토에게서 축구공을 전달받아, 오버랩을 시작한 알라바를 겨냥해 기다란 패스를 보냈다.
손쉽게 라딤 레즈니크(Radim Reznik)를 따돌린 알라바의 크로스가 만주키치를 향해 날아가고, 머리에 맞은 축구공은 안타깝게 크로스바 위를 넘어갔다.
패스를 보낸 지점 근처에서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본 나는, 곧바로 오른쪽으로 달려가 밀란 페트르젤라(Milan Petrzela)를 막아섰다.
“저기!! 막아!!”
후반전, 빅토리아 플젠은 본인들이 일방적으로 밀린 이유를 좁은 공간에 갇힌 것에서 찾으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들은 억지로, 팀의 왼쪽 공격을 활용하려고 했다.
그래서 나 역시 전반전보다는 더 많은 거리를 움직여야 했는데, 람이 나를 도우려고 할 때마다 나는 그를 멀리 물렀다.
람이 오른쪽 수비에 도움을 주기 시작하면, 플젠이 바라는 것처럼 공간을 넓게 쓸 수 있는 셈이 되어 버린다.
상대의 의도대로 경기가 풀려나가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난 스스로 수고를 더하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기로 한 상태다.
파악-!
‘그렇지!’
패스를 연결받아 드리블 돌파를 시도한 페트르젤라.
의도적으로 그가 사이드라인 방향 드리블을 택하도록 포지셔닝을 취하고 있었던 나는, 그가 조금 앞서 나가도록 만든 뒤에 축구공이 발에서 멀리 떨어진 순간 속도를 붙였다.
별다른 몸싸움 없이 볼을 빼앗고 싶다는 생각에서 내린 판단이었는데, 왼팔로 페트르젤라의 손을 뿌리치자 난 간단히 축구공을 가져올 수 있게 되었다.
퉁-!
왼발을 움직여 노이어에게 패스를 보내고, 계속 같은 방향으로 조금 더 달려 코너플랫 근처에 자리 잡아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넓혀 준다.
내가 이렇게 코너플랫으로 이동하게 되면, 빅토리아 플젠은 원하는 대로 전방 압박을 할 수 없다.
콜라르와 페트르젤라가 방향을 정하지 못해 움찔하는 사이, 여유 있게 전방을 확인한 노이어가 오른발을 휘두른다.
파앙-!!
.
(에밀 슈미터링) – ZDF 해설위원
“최근 며칠, 이 19살의 사이드백에게 많은 찬사가 몰리고 있습니다. 우린 그 이유를 오늘 경기를 통해 찾을 수 있다고 봐요. 그는 지금 펩의 축구에서 최소 2.5인분의 몫은 해 주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놀라운 활동량과 그보다 더 환상적인 기량입니다.”
(스벤 프로인들리히) – ZDF 코멘테이터
“바이에른 뮌헨이 지난여름 지출한 5,500만 유로에 대해 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에 대해 말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로번. 길게 패스를 보냅니다. 리베리. 리베리. 리베리. 리베리이이이잇-!!! 프랑크 리베리!! 또 하나의 환상적인 개인 득점입니다!! 4:0 바이에른 뮌헨!! 다시 Vier Munchen입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Funf(5), 혹은 Sechs(6) Munchen이 될 것 같습니다.”
.
오늘 우리는 분명 완벽한 전력이 아니다.
그렇다고 완벽한 축구를 하고 있지도 않다.
피치 위에서는 종종 실수가 나오고, 누군가의 이기심이 팀의 끈끈한 케미스트리를 흔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속엔 번뜩임이 숨어 있다.
“필리프!”
“?”
“우린 계속 이렇게 가야 해요.”
“……하하. 그래.”
4:0에 만족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를 람에게 전달하며, 난 다시 경기가 재개되기를 기다린다.
삐?익!!
주심의 휘슬 소리를 들으며, 나는 축구공이 움직이는 방향에 맞춰 서 있는 위치를 옮겼다. 팀의 강한 전방 압박에 의해, 플젠은 다시 실수를 범한다.
여유 있게 이뤄졌어야 할 후방 빌드업이었음에도, 조급해하던 그들은 축구공을 사이드라인 밖으로 보내 버렸다.
왼쪽에서 얻은 스로인이 조금 뒤쪽으로 향하고, 젝서가 된 람이 패스를 요구하며 경기의 템포를 조절한다.
“다온!!”
“?”
그리고 그때 들려오는 펩의 목소리.
그는 내게 손짓을 보내오고 있다.
‘측면에만 힘을 쏟으라고?’
지금 그의 제스처를 이해하자면 그랬다.
굳이 좋은 상황에 변화를 줄 이유가 있는가 잠깐 생각했지만, 그의 뒤에서 도메네크와 함께 대화하는 이를 보고 있으니 이해가 됐다.
펩은 마리오 괴체를 투입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를 통해 약간의 전술 변화를 주려는 것 같았다.
“윽-!!
“에—이!!!”
하프라인 부근에서 빌드업을 진행하던 람의 등 뒤에서, 바클라브 프로차스카(Vaclav Prochazka)가 고의적으로 무릎을 들어 올려 허리를 가격했다.
옆쪽에서 그것을 똑똑히 본 나는 양팔을 들어 올리며 커다랗게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휘슬을 불었던 주심이 성큼성큼 걸어오며 카드를 꺼내 들었고, 난 람의 곁으로 가 그의 상태를 염려했다.
“필리프. 괜찮아요?”
“응. 조금 아프긴 해도.”
“저 빌어먹을 녀석.”
벤치에서 뛰어나온 킬리안과 그의 스태프가 람을 점검하고, 여전히 불만이 많았던 나는 프로차스카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면서 소리쳤다.
축구 선수라면, 축구로 말을 해야 하는 거라면서 말이다.
이런 나를 토마스 호르바스가 막아선다.
[진정해. 고의가 아니었어.]“쟤가 고의로 걷어찼다고!!”
[그래, 맞아. 그래도 고의는 아니었어.]어차피 대화가 제대로 연결될 턱이 없었기에, 난 잔뜩 불만을 토해 내기만 하다 고개를 저으며 돌아섰다.
그러는 사이, 괴체가 사이드라인 앞에 선다.
펩은 금방 쓰러진 람에게 휴식을 주고, 마리오 괴체를 투입해 중원의 모양새를 바꾸었다.
피치로 뛰어든 괴체가 이쪽으로 다가서며, 바스티안에게 젝서 포지션으로 내려오라고 말한다. 이것 때문에, 사이드라인에 머물 것을 먼저 지시한 것 같다.
람이 있을 땐 오른쪽 측면을 비워 놔도 앞쪽에서 전방 압박이 쉽게 가능했지만, 바스티가 젝서에 들어서게 되면 같은 역할을 기대할 수 없다.
대신 바스티는 좀 더 직선적인 움직임에 장점이 있으며, 람보다 더 오랫동안 볼을 지켜 낼 수 있다.
‘좋아, 접수 완료.’
금방 파울로 얻어 낸 프리킥에서부터, 다시 우리의 빌드업은 시작된다.
잠깐 왼쪽으로 향했던 축구공은 바스티를 거쳐, 반대편 빈 곳에 있던 내게로 이어진다. 제기를 차듯 오른발을 들어 올려 패스를 받아 낸 뒤, 가까이로 온 페트르젤라를 마주했다.
오늘 내내 그래 왔던 것처럼 팀의 공격은 왼쪽 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어, 주변의 선수는 거의 없었다.
현재 나의 유일한 패스 선택지는 후방의 판 바위턴인데, 나는 굳이 그러기보다는 전진을 선택했다.
가볍게 바디페인팅을 주고 사이드라인을 따라 축구공을 차 넣었고, 앞으로 굴러가는 공에 참지 못하고 왼발을 뻗은 페트르젤라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전문 수비수도 아닌 데다 본래 오른쪽 윙어여서 그런지, 페트르젤라의 수비는 오늘 내내 불안불안했다.
이렇게까지 쉽게 벗겨질 건 아닌 것 같았는데.
뭐, 나야 좋은 일이다.
“이봐아-!!!”
돌파에 성공하고 한 차례 더 축구공을 발끝으로 밀어 보냈을 때, 페널티 박스 부근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슬쩍 쳐다보니, 금방 교체된 괴체가 플젠의 수비 사이 넓은 공간으로 뛰어 들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좋은 판단처럼 느껴졌고, 난 재빨리 결정을 내렸다.
거리가 꽤 있긴 했지만, 괴체가 달려 나가는 공간 앞으로 보내는 얼리-크로스를 보낸 것이다.
파앙-!
완만한 각도를 그리며 날아간 축구공은 생각보다는 약간 길었는데, 그래도 괴체가 먼저 도달하기엔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으잉?’
빠른 슈팅이 아닌 골키퍼까지 젖혀 내려고 하는 선택을 보여 주는 괴체. 충분히 각도가 나오는 상황이라, 바로 파포스트를 겨냥했어야 했지 않나 싶다.
골키퍼까지 따돌리며 완벽한 득점을 만들어 내려던 의도는 이해하지만, 애초부터 각도만 좁히려고 나왔던 마투스 코자치크(Matus Kozacik) 골키퍼는 괴체의 드리블에 속지 않는다.
결국 괴체는 골라인 앞에 갇혀 버린 모양새가 되었고, 조금 전부터 달리고 있던 나는 패스를 요구했다.
“어이, 뚱보!!!”
“?!”
부상 복귀 당시 꽤나 후덕해진 모습으로 나타났던 괴체는, 꾸준한 식이 요법과 관리로 금세 이상적인 체중을 되찾았다.
쪘던 속도만큼 빨리 빠지는 그를 보며 조금 신기해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지금은 뚱보는 아니다.
하지만, 한 번 붙은 그의 별명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
“여기!!!”
뚱보라는 말에 여지없이 반응한 괴체와 눈이 마주치고, 그는 곧바로 내게 축구공을 굴려 보냈다.
이건, 칭찬할 행동이긴 하다.
[막아-!!] [온다-! 저기야-!]보통 저런 상황과 위치에 있게 되면, 누구나 직접 마무리를 하고픈 욕구에 빠져든다. 하지만 올바른 상황 판단이 이타심으로 이어지게 되면, 지금처럼 좋은 장면이 나온다.
비록 진즉에 마무리되었어야 할 장면이지만.
지금이라도, 이렇게 할 수 있는 게 어딘가?
툭-!
[!!] [?!?!]아마도 플젠의 선수들은 내가 틀림없이 슈팅을 시도할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야, 지금 내 앞에서 몸을 날리는 두 명의 선수를 설명할 수 없다.
물론 처음에는 나도 슈팅을 고려하긴 했지만, 페널티 박스 안에 모인 선수들을 보며 생각을 고쳐먹었다.
괴체가 내게로 패스를 보내오게 될 경우, 플젠의 진영이 요동칠 것은 알았다.
그런데 여기에 보태어진 장면 하나는, 상대가 나의 슈팅을 신경 쓰기 위해 이동했을 때 정면에서 펼쳐지게 될 공간이었다. 그걸 생각한 순간, 슈팅을 포기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지금 나는 괴체가 보낸 축구공을 방향만 틀어, 가운데로 굴리는 선택을 했다.
그곳에서 등장한 것은 1분 전 젝서로 포지션을 이동한 바스티였고, 축구공에 두 눈을 똑바로 고정한 그는 가볍게 휘두른 오른발 안쪽으로 정확한 임팩트를 보여 줬다.
투웅-!!!
분명 그리 강하지 않은 시도였지만, 충분한 힘을 전달받은 바스티의 슈팅은 엄청난 속도로 날아 플젠의 골대 왼쪽 하단부로 움직여 들어갔다.
내게로 시선이 쏠렸던 플젠의 선수들은 땅바닥에 돌처럼 굳어 있었고, 그건 골키퍼 역시 마찬가지다.
축구공이 강력하게 그물을 흔든 순간, 코자치크 골키퍼는 괴로워하며 주저앉았고 난 조용히 주먹을 불끈 쥐었다.
득점에 성공한 바스티 역시, 셀레브레이션을 크게 가져가지 않고 주먹을 쥐어 보이는 것으로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다시 위치를 찾아 움직여 가며, 난 하프라인 부근에서 바스티를 만난다.
우린 그제야 서로를 마주 보고 환하게 웃으면서, 방금 전 득점 상황에서 있었던 감정을 나눈다.
“너라면 올 줄 알았지.”
“난 패스를 줄지 몰랐어.”
“하하. 그런 것치곤 대응이 좋더라.”
“이 일을 오래 했잖아.”
“그건 그러네. 그나저나, 대포알 같았어.”
“?”
“아, 미안. 바스티. 내 실수…….”
“그건 축구공이었어. 내 발이 대포가 아닌데, 어떻게 대포알을 보낼 수 있겠어. 안 그래?”
“…….”
아, 제기랄.
참 좋았는데.
오늘도 ‘융통성 없는 바스티 씨’는 비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조목조목 따져 들려 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봐. 그게 대포알이었어? 아니면 축구공이었어?”
“이런, 제기랄! 바스티! 그게 지금 중요해?
“응. 나한테는. 내 발이 대포라고 하는 것 같아서, 그렇잖아.”
“하아~”
고개를 가로저으며 돌아서는 나의 등 뒤로, 바스티는 계속해서 자신의 오른발은 대포가 아니라 외쳐 댔다.
누가 저 인간, 입 좀 막아 줬으면.
경기가 끝나는 게, 조금 겁이 나기 시작했다.
삐?익!!
.
.
·경기 결과
바이에른 뮌헨 6 : 0 빅토리아 플젠
[골] 프랑크 리베리 : 전반 26분(아르연 로번/P.K), 후반 16분(아르연 로번)데이비드 알라바 : 전반 37분(마리오 만주키치)
마리오 만주키치 : 전반 43분(김다온)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 후반 19분(김다온)
마리오 괴체 : 후반 45분(아르연 로번)
김다온 ? 95분 출전(2어시스트/평점 2.0)
MoM ? 아르연 로번(평점 1.5)
***
런던 SW1W 8EZ, 잉글랜드. 벨그라비아. 10 이튼 테라스.
TV 화면 속, 조금 들뜬 것 같은 중계진의 목소리가 조용한 실내에서 울려 퍼진다.
.
(스티브 바워) – Sky Sports UK 코멘테이터
“바이에른 뮌헨. 환상적인 경기력입니다. 챔피언스리그 3경기에서 14득점. 0실점. 맨체스터 시티와 CSKA 모스크바와의 경기도 포함된 결과입니다.”
(마이클 오웬) – Sky Sports UK 해설위원
“개인적으론, 바르셀로나 시절보다는 지금 펩의 축구가 더 마음에 듭니다. 물론 현재의 뮌헨이 당시의 바르셀로나보다 강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훨씬 공격적이고 훨씬 보기 좋습니다. 무엇보다, 창의적이죠. 펩의 축구는 항상 고정관념에 얽혀 있지 않았습니다. 이건 그가 얼마나 이 스포츠를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
딸깍-
“…….”
리모컨을 집어 들어 TV를 끈 사내는 소파에 몸을 삐딱하게 기댄 채, 오른손으로 턱에 난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다른 것은 몰라도, 펩 과르디올라를 향한 칭찬은 듣고 싶지 않았다. 축구에 대한 관점이 비슷하다는 이유에서 시작된 인연이었지만, 곧 서로가 전혀 다르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자신은 펩을 좋아할 수 없었고 그것은 펩 과르디올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로가 얼마나 뛰어난 역량을 지녔는지를 잘 알아 존경은 하고 있었지만, 다시 예전처럼 친구가 될 수는 없었다.
주제 무리뉴.
현재 첼시 FC의 감독인 그는, 바비 롭슨에게서 기초를 다지고 루이 판 할에 의해 살이 붙어지며 완성된 축구 철학을 지닌 남자였다.
치?익!
딸깍!!
침대로 향하기 전, 무리뉴는 가볍게 맥주를 한 캔 마실 것을 선택한다. 본래의 취향은 와인이지만, 새로운 것을 따기에는 조금 귀찮았기 때문이다.
그는 캔에 있는 액체를 잔에 따라 테이블로 가져왔고, 다시 안경을 쓴 뒤에 앞쪽에 놓인 전술 노트를 집어 들었다.
여기엔 사람들이 4-2-3-1이라 생각하는 첼시의 핵심 전술인 4-3-3에 관한 모든 것이 적혀 있다.
그리고 무리뉴는 그중, 자신이 폐기해야만 했던 페이지를 펼쳐 보았다. B3 크기의 용지의 한쪽엔 축구 그라운드 모양이 컬러로 인쇄되었고, 그 위로 파란색의 동그라미와 빨간색의 선이 축구공과 함께 정신없이 얽혀져 있었다.
또 흰색 빈 공간에는 검은색 글자로 자세한 설명이 보태어졌는데, 그중 유독 굵게 적힌 단어가 눈에 띄었다.
바로.
‘DA-ON.’
과거 FC 바르셀로나의 감독직을 위해 면접을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주제 무리뉴는 늘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서는 누구보다 철저한 준비를 했다.
팔락…….
팔락…….
무리뉴가 김다온을 위해 준비한 전술 패턴은 총 6가지로, 가장 선수를 잘 활용할 수 있다고 직접 판단한 내용들만을 선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중 어디에도, 김다온을 수비형 미드필드 위치로 이동시켜 팀의 빌드업을 전개한다는 내용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건, 주제 무리뉴 자신의 축구 철학에 크게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팔락…….
그러던 중, 무리뉴의 손이 멈춰졌다.
그리고 그는 보고 있던 전술 노트를 놓아두고, 거실 한쪽에 있는 낡은 서랍장으로 걸어갔다.
고급스러운 이 영국식 저택에서, 이 낡고 허름한 양철 서랍장은 유일하게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었다.
드르르륵-!
양철 서랍장의 가장 윗 칸을 연 주제 무리뉴가, 손으로 그것을 뒤적여 다른 파일 하나를 꺼내 든다. 투명한 플라스틱 파일 위엔, 붉은색 글자가 새겨져 있다.
?재활용할 수 있으나, 최선은 아님. No. 74?
이는 무리뉴가 최초 영감을 받아 전술을 만들었으나, 사용하기 힘들다고 생각해 폐기한 것들을 모아 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파일이, 무리뉴는 무려 78개나 있었다.
본인이 얼마나 축구에 미쳐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며, 무리뉴는 비교적 최근 것들을 모아 둔 74번째 파일을 펼쳤다.
팔락- 팔락 팔락-
무리뉴의 손이 빠르게 페이지를 넘겨 가고, 팔락거리는 소리만이 울려 퍼지던 중 머잖아 다시 적막이 찾아든다.
‘찾았어!’
레알 마드리드 2년 차 시절이던 2011/12시즌.
라 리가 우승을 확정한 이후 마지막 38라운드 경기를 앞두고, 무리뉴는 꽤 신선하다고 판단한 전술을 고안했다.
당시 공격력이 부족한 알바로 아르벨로아(Alvaro Arbeloa)는 감춰진 고민거리였는데, 무리뉴는 그를 공격 상황에서 6번으로 보내고 케디라나 알론소를 전진시키는 전술을 생각했었다.
펩 과르디올라의 축구가 방향전환에 집착한다면 주제 무리뉴의 집착은 공수전환의 속도에 있었고, 위와 같은 변화가 가능하다면 동선을 크게 절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선의 단축은 곧 공수전환 속도의 상승인지라, 무리뉴에게 있어 이것은 무척 매력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내 무리뉴는 이 전술을 구상단계에서 포기해 버렸는데, 이유는 두 가지 불안 요소 때문이었다.
첫째, 아르벨로아의 수비력은 6번 위치에서도 빛을 발할 수 있으나 외의 부분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만약 상대의 압박에 밀려 후방으로 볼이 연결되었을 때, 아르벨로아는 십중팔구 최후방으로 패스를 돌리는 것 외에는 다른 판단을 할 수 없을 게 분명했다.
그럼 결국 공격의 전개를 위해 라인을 끌어 올렸던 선수들이 내려와야 했는데, 그것은 이런 변화로 인해 생겨난 이득보다 더욱 많은 손해였다.
그리고 둘째, 아르벨로아가 비우게 될 오른쪽 측면이 팀 전체에 줄 부담이 걱정됐다.
경기 중반까지야 아르벨로아가 부지런한 리커버리를 보여 줄 수 있었겠지만, 60분 이후에 떨어질 체력이 더욱 많은 문제를 야기시킬 거로 보였다.
그래서 무리뉴는 환상 속에서나 가능한 축구를 구상했다고 생각을 하며, 해당하는 전술을 이 파일로 옮겼다.
한데.
“……빌어먹을.”
펩 과르디올라는 자신이 불가능하다고 믿은 축구를 현실로 만들었다.
과거, FC 바르셀로나에서 그랬을 때처럼.
‘자넨 내가 어떻게 해서도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야.’
파일을 대충 테이블 위에 던져 둔 무리뉴가 맥주를 들이켜며, 펩 과르디올라를 생각한다.
‘우린 너무 달라. 하지만 동시에 너무 닮았지.’
둘의 축구가 세간에 보여지는 모습은 180도 달랐지만, 한편으론 루이 판 할과 FC 바르셀로나라는 공통분모로 인해 닮은 구석이 많기도 했다.
특히 무리뉴는 FC 바르셀로나에게 무려 두 번이나 모욕을 당했고, 그들을 향한 적개심은 자연히 감독이던 펩 과르디올라에게로 옮겨 갔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를 미워해 본 적은 없었다.
무리뉴는 그저, 승리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건 자네도 마찬가지겠지.’
펩 과르디올라를 떠올린 무리뉴가, 얼굴에 씁쓸하고 희미한 미소를 피워 올리면서 소파에 드러눕는다.
그리고 그는 마음으로 말했다.
‘축하하네, 펩. 자네가 축구의 다음 세계를 열었군. 잠긴 문을 열 열쇠는, 자네가 가졌어.’
무리뉴가 생각한 열쇠.
그건 물론, 바이에른 뮌헨에 속한 19살 풀백을 뜻하는 것이었다.
***
[“최근 두 경기, 김다온이 하는 일은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바이에른 뮌헨의 단장 마티아스 잠머. 클럽의 19살 사이드백을 극찬하다. – 빌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