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31)
31화
.2010년 10월 24일. 경기결과(Superliga 10R)
올보르 BK 2 : 0 FC 노르셸란
김다온 ? 45분 출전(평점 3.2/팀 내 최하위)
-> 돌파 저지 : 50%(4/8), 드리블 : 1(1/3, 33.3%)
-> 헤딩 경합 : 0%(0/11), 크로스 저지 : 0%(0/2, 0.0%)
-> 패스 차단 : 2, 태클 성공률 : 33.3%(1/3)
-> 슛/유효슛 : 0, 패스/성공률 : 10, 66.7%(10/15)
-> 득점/어시스트 : 0/0, 크로스/성공률 : 0/0.0%(0/0)
-> 실책/반칙/피반칙 : 3/3/0, 옐로우/레드카드 : 1//0
***
올보르, 덴마크. 하랄드 옌센스 2번 도로(Harald Jensens Vej 2. Aalborg, Denmark).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한 번쯤 잔인한 하루를 겪는다지만, 그중에서도 가끔 ‘신이 너무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이 존재한다.
바로 오늘, 김다온의 하루가 그랬다.
“······한 번 가볼까요?”
“아니, 그럴 것 없어.”
“하지만, 모르.”
“아까 저 꼬마의 표정을 봤나?”
“네?”
되묻는 캐스퍼 율맨을 향해, 모르텐은 다시 한번 그럴 필요가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슬쩍 뒤돌아서 확인한 김다온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괜히 지금 건드려봤자,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차라리 지금은 홀로 내버려 두는 게 옳다.
모르텐은 씁쓸한 마음으로, 오늘의 경기를 복기했다.
올보르는 뜻밖에도, 김다온을 타깃으로 한 전술을 준비해서 나왔다.
바로, 전통적인 의미에 입각한 4-4-2.
빅&스몰 조합의 투톱을 내세운 상대는, 집요할 만큼 노르셸란의 오른쪽 수비를 공략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 앞에서, 김다온.
‘아니. 내가 완전히 패배해버렸지.’
사람들은 패배의 이유를 김다온의 실수에서 찾겠지만, 모르텐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최근 김다온이 선발로 출전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충분히 공략방법이 나올만한 시기였다.
물론, 올보르의 빅&스몰은 매우 신선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과거 마이클 오웬(Michael Owen)과 에밀 헤스키(Emil Heskey)로 대표되던 2000년대 초반 잉글랜드의 4-4-2는, 빅&스몰의 교과서라 불러도 좋을 플레이를 보여줬다.
빅(Big)에 해당하는 헤스키가 수비진영을 휘저으면, 스몰(Small)인 마이클 오웬이 그 공간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프랑스축구의 대두로, 빅&스몰의 밑바탕인 롱패스는 구시대의 전술로 전락해버렸다.
그리고 여기에서 발전한 FC 바르셀로나의 축구 역시, 롱패스에 이은 헤더에 의존한 단조로운 공격 루트를 더욱 옛날의 추억거리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 때로는 옛것이 가장 좋다고 말할 순간이 다가오기도 한다.
오늘만큼은, 올보르의 감독 마그누스 페르손(Magnus Pehrsson)이 그렇게 말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전술적으로 FC 노르셸란의 허를 찔러 왔다.
생각에 잠기게 된 모르텐.
‘아무래도, 앞으로가 더 중요하겠어.’
축구지도자에게 있어 어린 선수란, 성장의 기쁨을 전해줌과 동시에 언제 깨어질지 모를 얇은 유리잔과도 같은 존재다.
어떠한 날은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것 같다가도, 별 것 아닌 일이 계기가 되어 끝도 없이 추락하곤 한다.
그래서 많은 축구지도자는 멘탈이 깨져버린 선수를 두고, 깨진 도자기에 비유하곤 했다.
아무리 성능 좋은 접착제로 깨진 조각을 이어붙인다고 해도, 한번 깨져버린 도자기의 어딘가에서는 반드시 물이 샜다.
마치, 이성 사이의 관계처럼 말이다.
삶의 조각은 늘, 그라운드 위에 존재하는 법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축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후우- 세상에 쉬운 일은 없어. 그렇지 않나?”
“뭐, 늘 그렇죠. 언제 이 일이 쉬웠던 적이 있나요?”
“후후- 아니. 단 한 순간도 없지.”
모르텐은 지금 셸란으로 향하는 4시간여의 이동이, 김다온 스스로 생각을 정돈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어느새 고속도로로 진입한 버스는, 모르텐 본인과 피곤함에 지친 FC 노르셸란의 선수들을 남쪽으로 이끌고 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간간이 곁을 스쳐 지나가는 차량의 헤드라이트가 주변을 밝혔다 다시 멀어지길 반복했다.
***
.2010년 10월 28일. 경기결과(DBU Pokalen Cup R16)
오덴스 BK 2 : 4 FC 노르셸란
김다온 ? 미출전(명단 포함 미출전)
.2010년 11월 1일. 경기결과(Superliga 14R)
FC 노르셸란 1 : 4 오덴스 BK
김다온 ? 미출전(명단 미포함)
.2010년 11월 7일. 경기결과(Superliga 15R)
실케보르 IF 1 : 0 FC 노르셸란
김다온 ? 미출전(명단 포함)
***
2010년 11월 09일. 셸란, 덴마크. 파룸, 파룸 파크 2. FC 노르셸란 클럽하우스. 제 1 연습구장.
#오전 08 : 36
이제야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여어- 꼬마! 너무 이른 시간 아니니?”
“신선한 아침 공기는 의사들을 가난하게 만들죠! 안 그래요?”
“하핫-! 그거 재미있구나! 좋은 비유였어!”
“고마워요, 구스타브! 그리고! 좋은 하루 되시고요!”
“그래! 꼬맹이 너도! 아침에 널 보니 참 좋구나!”
“당연히 그러셔야죠!”
껄껄 웃으면서 멀어지고 있는 구스타브 푸상(Gustav Fuglsang)씨는 클럽하우스의 전반을 관리하는 매니저이시다.
지금까지 여기에 계셨던 것도, 연습용 그라운드가 완벽한 조건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구스타브 씨가 말씀한 대로, 난 조금 이른 시간에 연습용 그라운드를 찾았다.
소집시간까진 아직 1시간이나 남았다.
“그럼, 어디 한 번 슬슬······.”
힘껏 기지개를 켜곤, 연습 그라운드를 천천히 달린다.
지난달 올보르와의 경기 이후, 난 자주 잠을 설쳤다.
잠이 들지 못하는 건 아니고. 악몽 때문에 자주 깨어나는 일이 잦았었는데, 팀에선 내가 압박을 받는다고 해석했다.
악몽들은 주로 내가 거대한 무언가에 짓눌리는 것이었는데, 그래도 이틀 전부터는 꿈도 꾸지 않고 숙면할 수 있었다.
어제는 그동안 못 잔 잠을 자느라 비몽사몽 한 상태였다면, 오늘은 푹 잘 자고 일어났을 때처럼 상쾌했다.
아, 이게 얼마 만이람.
달리기한다는 게, 이렇게 좋을 수도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몇 바퀴를 더 돌았을 무렵.
“헤이! 고 모언!”
“응?”
연습장 안으로 들어서는 헨릭 킬덴토프가 보였다.
아침 인사를 전해오는 그를 향해, 나 역시 목소리를 높인다.
“고 모언, 헨릭! 일찍 왔네요?”
“너야말로! 달리는 중이야?”
“네! 보다시피요!”
같이 달리자고 말한 헨릭이 연습복을 벗는 동안, 난 잠깐 자리에 서서 스트레칭을 이어갔다.
햄스트링에 이어 고관절을 다쳤던 헨릭은 지난 7일 실케보르 원정 경기에서 드디어 복귀했다.
그동안은 파크허스트가 오른쪽 풀백 역할을 소화했고, 나와 군델락이 번갈아 포함되어 백업을 맡았다.
수비 전체 위치에서 뛸 수 있는 파크허스트의 플레이도 썩 나쁘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헨릭이 돌아온 뒤가 훨씬 더 나았다.
엊그제는 벤치에 앉아 참 많이 배웠다.
“휴우- 좋아. 그럼 같이 달릴까?”
“네. 저야 좋죠.”
헨릭은 햄스트링 부상에서 돌아온 이후부터, 부쩍 내게 잘해주고 있다.
훈련 과정에서 다시 고관절을 다치면서 이탈한 다음에도, 어디서든 날 볼 때마다 살갑게 인사를 해오며 친근하게 굴었다.
그리고 내겐 너무나 끔찍했던 올보르 BK 경기가 끝난 뒤에도, 가장 많이 날 달래줬던 것이 바로 헨릭이다.
그래서인지, 우린 요즘 부쩍 친해져 있다.
“뭐야? 오늘도 너희 둘이야?”
사람들이 은근한 질투를 보내올 만큼.
지금은 주장 스톡홀름이었다.
“고 모언, 니콜라이!”
“고 모언. 요즘 너무 붙어 다니는데? 수상해- 오! 알겠다! 너 지금 꼬마의 누나한테 눈독을 들이고 있는 거지? 그거라면, 경쟁이 엄청날 거야. 내가 들은 것만 해도······.”
“것만 해도?”
“이크! 실례.”
나의 날카로운 반응에, 아차 한 스톡홀름이 볼 일이 생각났다면서 부리나케 어딘가로 도망쳤다.
하지만 방금 그의 말처럼, 내겐 고민이 하나 생겨났다.
사건의 발단은 며칠 전, 벵트손이 대뜸 [누나 좀 소개해 주면 안 돼?]라고 말한 것이 시작이었다.
솔직히 난 누나가 그렇게, 많은 선수의 표적(?)이 되어 있을 것이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벵트손이 누나를 소개해 달란 말을 하기 무섭게, 비엘란과 마티 룬드 닐센이 발끈하며 절대 안 된다고 소리를 질렀다.
[크흠. 아니, 그럴 거면. 나부터.] [절대 안 돼! 내가 먼저야.]그렇게 누나를 향한 구애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찰나, 상황을 정리하는 제철이 형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었다.
[전부 훈련 안 합니까~!?!?]뜬금없다는 얼굴로 제철이 형을 쳐다보던 이들이었지만, 에른스트가 형의 말이 옳다며 훈련을 재촉하자 똥 씹은 표정이 되어 뿔뿔이 흩어졌었다.
그리고 이후, 형은 더 누나에 신경을 쓰고 있다.
“설마 진짜 우리 누나를 탐내는 건 아니죠?”
“뭐?! 장난해? 난 애인이 있어!”
“아니, 그냥. 확인하는 차원에서요.”
“하-! 시끄럽고, 얼른 뛰기나 해.”
제철이 형이야, 워낙 우리 가족을 위해 노력해주고 있으니 누나한테 대쉬를 해도 참을 수 있다.
하지만 말하는데, 우리 팀에서 뛰는 선수 중 누나와 어울리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
됨됨이야 전부 나쁘지 않았지만, 그들의 화려한 여성 편력을 알고 있었던 난 누나가 거기에 휘말려 드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덴마크로 와 알게 된 사실인데, 축구선수는 의외로 여자들에게 무척 인기가 많은 직업이었다.
나도 팬이 몇 명 되고.
그리고 전부 여자다.
엣헴-.
런닝을 끝마치고 헨릭과 함께 스트레칭을 하고 있을 무렵, 동료들이 하나둘 연습장에 모습을 비추기 시작했다.
곧 그라운드는 사람들로 그득해졌고, 마지막으로 코칭스태프들과 함께 등장한 모르텐이 우리를 한쪽으로 모았다.
우리는 모레, AC 호르센스(AC Horsens)와 DBU Pokalen Cup 8강 전을 치른다.
덴마크의 컵 대회는 4강까진 단판 승부로 진행되고, 4강 전만 홈&어웨이 방식으로 치른 뒤에 다시 결승전 단판을 치른다.
그리고 이 대회에서 우승할 경우, 다음 시즌 유로파 컵에 진출 자격을 획득할 수 있다.
리그 7위를 했음에도 올해 우리가 스포르팅 CP와 유로파 대회를 치른 것도, 작년 같은 대회에서 우승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리그에 집중하려고 했던 감독님이, 컵 대회에 좀 더 비중을 두기 시작한 이유다.
“선발명단은 오후, 클럽하우스 공지에 달아두지. 이번이 올해 컵 대회의 마지막 일정이다. 휴식기가 머지않았어. 모두, 그때가 올 때까진 집중하도록.”
“JA HR!”
“좋아. 다들 몸을 풀도록 하지. 그리고······.”
“응?”
날 보며 검지를 까닥이는 감독님을 따라, 그라운드의 한쪽으로 움직인다.
감독님은 그런 날 돌아보시면서, 잠은 푹 잤는지를 물었다.
“네. 어제하고 오늘은 완전히 푹 잤어요.”
“그렇구나. 혹시 모레 경기에 뛸 수 있겠니?”
“어······ 그게 제가 결정할 문젠가요?”
“난 너를 출전시키고 싶지만, 네가 준비됐는지를 알고 싶구나. 상대가 그때처럼 준비할 것 같진 않지만, 시합 중에도 언제든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으니까.”
“······.”
감독님은 아무래도, 올보르 BK 경기와 같은 상황이 발생할까 봐 걱정하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난 괜찮았다.
보름이 넘는 지난 시간 동안, 그 날 경기에서 무엇이 잘못되었었는지를 탐구하며 보냈다.
솔직히 그때처럼 거구가 날 힘으로 내리찍어 누르려고 한다면 자신이 없지만, 그래도 마냥 당하지만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중이다.
한 번이면 됐지. 두 번 당하긴 싫다.
그건 바보 같은 짓이니까.
중학교 때 축구부에서 왕따를 당했을 때도, 난 같은 방법으로 두 번 당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 얄밉다며 괴롭힘이 심해지긴 했지만,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도 떳떳했다.
그러니, 난 언제든 뛸 수 있다.
실수는 실수일 뿐이니까.
실수가 내 발목을 붙잡진 못한다.
물론 그 날의 일이 내게 악몽을 안겨다 주었다곤 하지만, 보다시피 난 그것을 이겨냈다.
모레의 난 괜찮을 거다.
아니. 더 나아져 있을 거라고 자신한다.
내 눈을 바라보던 감독님은 결심을 굳히신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곤 내게 훈련으로 돌아가 보라며, 모레 출전할 준비를 하고 있으란 말도 덧붙였다.
모처럼 만의 실전.
기분이 좋아진 나는 해맑게 웃으며 동료들의 틈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내 표정을 통해, 헨릭은 내 선발을 알았던 것 같다.
“알지? 내 대신이니까, 잘 뛰어야 할 거야.”
“음- 대신 하다가 빼앗으면요?”
“하-! 그거 요즘에 들은 헛소리 중에 제일이네.”
경쟁이란 의미를 새롭게 알려주고 있는 헨릭의 모습은 내게, 한국에서 겪었던 많은 안 좋은 추억들을 해소해주고 있다.
어쩌면 그 당시의 우리는 너무나도 어렸던 것일 수도 있다.
기껏해야 난 여전히, 16살하고도 330일을 살았을 뿐이지만.
프로라는 건,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말과 같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난 오후, 선발명단에 포함되었다.
‘그렇지!’
모레 경기에서, 난 자존심을 회복하려고 한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