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315)
314화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단 대부분에게 있어, 리스본에 도착한 이후의 24시간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특히 2014 브라질 월드컵 마지막 자리를 노리고 있는 김진수에겐, 자신보다 1살 어린 김다온의 위상은 경외(敬畏)감이 들 정도였다.
세이샬에 마련된 훈련장 주변에 팬들이 상주했던 것은 물론, 벤피카 유스팀에 속한 선수들이 시시때때로 김다온에게 찾아와 사인과 사진 촬영을 요구해 왔다.
그뿐만 아니라, 포르투갈을 넘어 축구계의 전설적인 존재인 에우제비우가 직접 방문하여 격려를 보내기도 했다.
그는, 대한민국 선수단에 이곳을 집처럼 여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더욱 놀라웠던 순간은 그날 밤, 김다온이 직접 예약한 식당을 찾았을 때 펼쳐졌다.
[“이분은 리스본의 자랑이죠.”]엘리자베스 2세(Her Majesty Queen Elizabeth II), 니콜라 사르코지(Nicolas Sarkozy), 버락 오바마(Barack Obama)와 같은 정치인들과 루이스 피구, 지네딘 지단, 호나우두와 같은 세계적인 축구 스타들의 사진 속 옆, 김다온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 김진수를 포함한 대한민국 선수들은 장난스럽게 그 순간을 넘겼지만, 속으론 영락없는 장난꾸러기인 19살의 남자의 위상을 재고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오늘.
{“—–!!!!!!!!”}
{“@!$%#^!@-!!!!”}
엄청난 환호성이 쏟아지는 그라운드 위에서, 김진수는 마치 상암 경기장에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느낀다.
“우와-”
지금 그가 보고 있는 모든 곳은 온통, 대한민국의 팀 컬러와 같은 붉은색 물결로 넘실거리고 있다.
.
.
2013년 11월 18일. 1500-313 리스본, 포르투갈. 에이제비우 다 시우바 페헤이라 거리. 이스타디우 다 루스.
·경기 시작 10분 전
대한민국 0 : 0 러시아
&Match-Up`s Best Eleven(대한민국/상대팀)
&Tactics(대한민국/상대팀) : 4-1-4-1/4-3-3(A)
GK ? 정성룡 / GK ? 이고르 아킨페예프
RB ? 김다온 / RB ? 이고르 스몰니코프
CB ? 홍정호 / CB ? 세르게이 이그나셰비치
CB ? 김영권 / CB ? 블라디미르 그라나트
LB ? 박주호 / LB ? 드미트리 콤바로프
DM ? 기성용 / DM ? 드미트리 타라소프
RAM ? 김보경 / CM ? 빅토르 파이줄린
CM ? 이청용 / CM ? 로만 쉬로코프
CM ? 구자철 / RW ? 알렉세이 로노프
LAM ? 손흥민 / LW ? 알렉산드르 라쟌체프
ST ? 김신욱 / ST ? 알렉산드르 코코린
.
.
“야. 뭐 하냐?”
“?? 아, 네.”
양 팀 선수단이 라커룸에 들어갔던 20분 사이에, 이스타디우 다 루스는 빈 곳 하나 없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그 모습에 잠깐 넋이 나갔었던 김진수를 부른 것은, 대한민국 대표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맡고 있는 곽태휘다.
조금 뒤, 둘은 나란히 자리에 앉았다.
“……우와 이씨.”
“뭐?”
“저거 다 우리 응원하는 거잖아요.”
여전히 관중석의 모습에 넋이 나간 김진수가 중얼거리듯 말을 하자, 곽태휘가 노련함을 발휘해 올바로 정정을 해 준다.
“우리냐? 다온이지.”
“……이런 적 있었어요?”
“있었겠냐. 나도 처음이야.”
“…….”
대한민국 축구계에 미래 그룹의 자본이 스며들기 전까지, 유럽 현지에서 평가전을 가지는 것은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곽태휘도, 이러한 경험은 처음이었다.
{“대애- 한 민 국!”}
짜작- 짝! 짝!짝!
“!!”
포르투갈에 거주하는 교민들 상당수가 찾아오긴 했지만, 지금 들려오기 시작한 응원의 목소리는 경기장 전체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분명 이곳은 포르투갈 리스본이었지만, 경기장의 분위기는 한국에서 벌어지는 그 어떠한 A매치보다 뜨거웠다.
“그런데, 뭐.”
“?”
“알 것 같지 않냐?”
“뭐가요?”
“다온이 말이야.”
“??”
곽태휘는 김진수에게, 김다온이 대한민국 A대표팀에 합류한 이후의 모습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성이가 뛸 때랑 비슷해.”
“…….”
대한민국 최초의 프리미어 리거이자, 대한민국의 유일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로 남아 있는 박지성은 늘 대표팀 내에서 특별한 존재였다.
그의 출전 여부에 따라, 대한민국 대표팀 경기력 수준이 달라진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한때 대표팀 생활을 함께한 곽태휘는 박지성의 유무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커다란 차이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지성이랑 뛰면 아시아 팀이랑 할 땐 질 것 같지 않았거든. 그리고 아무리 강한 팀이랑 붙어도, 지성이가 있으니까 해볼 만하다고 자신감이 생겼어.”
“지금도 그렇다고요?”
“모르겠냐?”
“아니. 잘하는 건 아는데,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서요.”
“에휴. 넌 아직 멀었어, 인마.”
곽태휘가 머리를 슬쩍 밀치자, 김진수가 인상을 찌푸렸다.
“잘 생각해 봐. 뉴스도 났잖아. 브라질, 스위스. 다온이가 뛸 때 우리가 뒤진 적 있었어? 골 먹힌 것도 전부 쟤가 안 뛸 때잖아.”
“그거야 우연일 수도 있고.”
“아우- 새끼! 야, 야!!”
“아- 왜 때려요!”
“마음 예쁘게 먹어, 인마! 남이 잘하면 인정할 줄도 알아야지. 아우 이 새끼는 하여간, X나게 질투만 많아서.”
가끔 문제가 되기도 하는 승부욕과 질투심이 때론 장점이 된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곽태휘는 장난스럽게 김진수를 나무라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내기로 했다.
하지만 그 역시, 오늘의 이 풍경은 놀랍기만 했다.
{“대애- 한 민 국!”}
짜작- 짝! 짝!짝!
지금 이곳은, 완벽한 대한민국의 홈 경기장이다.
***
·전반 04분
대한민국 0 : 0 러시아
통증이 느껴지는 발목을 감싸 쥔 채, 난 드러누워 괴로워한다.
지금 내 귀엔, 엄청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이 개새끼!! 죽어!! 죽으라고!!”}
{“Toma no cu!! TOMA NO CU!!!!”}
.
(배정세) – SBS 아나운서
“알렉산드르 라쟌체프의 거친 태클. 포르투갈 국적의 실베스트르 파리아 주심. 경고 카드를 꺼내 듭니다. 별다른 부상이 아니었으면 하는데요.”
(박성문) – SBS 해설위원
“이미 김창수가 부상으로 월드컵에서 낙마했는데요. 이제부터는 부상을 가장 경계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특히 김다온은 대한민국에서 대체가 불가능하거든요. 삼파올리 감독도 그렇게 말을 했고요.”
(배정세)
“아, 저희가 지금 포르투갈 현지에서 중계를 해 드리고 있습니다만. 지금 들려오는 야유 소리가 정말이지 엄청납니다. 64,000명의 붉은 악마가 있는 것 같은데, 정작 한국인은 그 백분의 일 수준밖에 되지 않는 걸로 압니다.”
(박성문)
“김다온과 벤피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입니다. 비록 머문 시간은 짧았지만, 매번 인터뷰를 할 때마다 벤피카와 리스본에 특별한 감정을 보여 줬거든요.”
(배정세)
“저희도 이곳에서 한국에서 왔느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
살짝 꺾인 발목을 치료받곤, 다시 그라운드로 들어설 준비를 한다.
잠시 뒤, 리가를 뛸 때 종종 만났었던 주심이 피치로 돌아와도 된다는 손짓을 보내왔다.
“형!”
보경이 형에게서 패스를 전달받아, 일단 최후방으로 볼을 돌린다.
러시아의 라인 유지 능력은 유럽 대표팀 중에서도 손꼽힐 수준이었고, 상대 수비에 균열을 만들려면 침착하면서도 확실한 빌드업은 필수였다.
[“뮌헨에서 했던 일을 맡길 생각이야. 할 수 있겠나?”] [“그럼요. 물론이죠.”]삼파올리 감독님은 오늘, 우리가 전력상 열세에 놓여 있다 판단을 내리곤 변수를 주고자 하셨다.
미드필드 오른쪽에 활동량이 좋은 보경이 형과 청용이 형을 조합시켰고, 두 사람으로 하여금 러시아가 왼쪽에서 빌드업을 진행하는 걸 방해하도록 지시했다.
그 이유는 내가 빌드업 상황에서 중앙으로 이동해 성용이 형의 파트너가 될 예정이기 때문이었는데, 공격 상황에서도 오버랩보다는 중원의 숫자를 채우는 것에 집중할 예정이다.
바로 그것 때문에, 러시아의 왼쪽 공격력을 억누를 필요가 있었던 거다.
더구나 러시아의 왼쪽 풀백은 부지런하고 킥이 좋기로 소문난 드미트리 콤바로프(Dmitri Kombarov)다.
“야. 뒤에 있어.”
내게 자리를 지키라고 말한 성용이 형이 높은 위치까지 올라서고, 빠르게 앞쪽에 가담해 숫자를 보탠 형은 강렬한 보디체크로 볼을 가로챘다.
그러곤 곧장 중거리 슈팅을 날렸는데, 총알처럼 날아간 축구공은 크로스바를 아슬아슬하게 벗어났다.
‘아- 아까워라.’
이번 소집에서 함께하며 느꼈던 것이지만, 한국에서 쌍용(雙龍)으로 불리는 형들의 폼이 살아난 것은 무척이나 고무적인 일이었다.
선덜랜드에서 중요한 선수가 된 성용이 형과 제수스 감독님의 조련 아래 중앙 미드필드로 변신에 성공한 청용이 형 모두 포르투갈 훈련 내내 몸이 가벼웠다.
그렇게 중원의 두 자리가 굳건해지자, 대표팀도 조금 더 실험적인 전술을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
삼파올리 감독님 특유의 색은 유지한 채, 대표 선수들의 개성을 녹여 낸 축구가 가능하게 바뀐 것이다.
거의 매일같이 함께 훈련하는 클럽과는 다르게, 제한된 기간. 그리고 매번 선수단의 구성이 사정에 따라 바뀌는 대표팀은 색이 나타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흘 전 스위스 전과 오늘의 러시아 전은 대한민국이 어떤 축구를 보여 주는지를 보여 주는 경기였다.
4-1-4-1에서 3-3-3-1로의 변화.
공격에서 수비로 전환되었을 때 전원 맨투맨으로 시작하여 지역(Zone) 수비로 돌아올 때까지의 중간 과정.
또 하이(High) 라인 프레싱.
마르셀로 비엘사의 축구 철학에 근거를 두었지만, 본인의 아이디어를 고스란히 녹여 낸 삼파올리 감독님의 축구는 벤피카나 뮌헨 못지않게 매력적이었다.
특히.
‘저기!’
파앙-!!
‘제4의 선수’와 ‘삼각형 반대의 공간’을 활용하는 스퀘어 무브먼트(Square Movement) 역시도, 어느 때보다 완성도 높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쌍용과 함께 삼각형을 구성에 빌드업을 진행하던 난, 센터서클 오른쪽 끝에서 출발하여 왼쪽 깊숙이 떨어지는 롱패스를 쏘아 보냈다.
그리고 그것은 오버랩을 시도한 주호 형의 발밑에 도착했고, 원터치 이후에 띄워진 크로스는 신욱이 형의 머리로 정확히 향했다.
뛰어난 피지컬을 지닌 두 명의 러시아 센터백 사이에서도, 신욱이 형의 높이는 빛을 발한다.
티이이잉-
{“아아아아아…….”}
절묘하게 방향을 바꾼 헤더에 아킨페예프의 발이 멈췄지만, 애석하게도 헤더는 크로스바를 두드리며 골라인을 벗어난다.
일순 그라운드엔 탄식이 가득했고, 그런 뒤에는 멋진 플레이를 선보인 대표팀을 향한 박수가 쏟아져 내렸다.
그런 뒤엔.
{“Quando sobes ao relvado / 네가 피치에 나섰을 때
sabes que estas acompanhado / 넌 혼자가 아니야
Porque no teu topo Sul / 왜냐하면 남쪽 정상에
estao os No Name a teu lado / 네 이름이 있으니까
La la la la la la la… / 라 라 라 라 라 라 라….”}
“……하하하.”
내가 ‘남한(南韓)’ 출신이라는 게, 참 다행이었다.
지금 팬들이 부르고 있는 응원가는 ‘Topo Sul’이라는 곡명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남쪽 언덕이라는 뜻의 ‘Topo Sul’이란, 포르투갈의 남쪽에 있는 이 땅 리스본을 가리킨다.
그래서 이 노래는 스포르팅 CP의 응원가로도 쓰이는데, 벤피키스타(Benfiquista)들은 경기가 잘 풀려가고 있을 때 골이 터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합창을 하곤 했다.
즉, 우리가 아주 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난 무척 행복했다.
다른 곳도 아닌 이스타디우 다 루스에서, 내 조국의 축구가 형편없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었으니까.
다시 또 시간이 지나고.
“성용아아-!!!!”
“!”
반대편에서 빌드업이 진행되고 있을 때, 성용이 형을 우렁차게 부르면서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번엔 내가 직접 스퀘어 무브먼트의 3+1 중 +1이 되어 움직인 것인데, 모처럼의 오버랩이었던 탓인지 러시아 수비의 반응이 조금 무딘 것 같았다.
성용이 형의 빠르고 정확한 롱패스가 도착하고, 제기를 차는 동작으로 트래핑을 한 나는 바닥에서 한번 튕겨 오르는 축구공에 발등을 가져갔다.
툭-
빠르게 압박을 해 오던 콤바로프의 스탠딩 태클 위로, 축구공이 날아오른다.
몸을 슬쩍 뒤로 빼낸 나는 접촉을 피해 갔고, 가속도에 의해 앞쪽으로 밀려 나가는 콤바로프를 그대로 따돌리며 페넉티박스를 향해 쇄도했다.
왼쪽 최종 수비가 무력화된 러시아는 커버를 위해 라인을 깨트린다.
본인들의 가장 큰 장점을 포기한 것인데, 블라디미르 그라나트(Vladimir Granat)가 커버를 위해 움직이면서 센터백과 센터백 사이에 넓은 공간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곳으로 신욱이 형이 뛰어들고 있었는데, 패스를 보냈을 때의 난 사실 기대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오~! ……오오오-!!!”}
형들은 내 기대를 뛰어넘는 플레이를 보여 줬다.
신욱이 형은 내 패스에 발바닥을 가져가 그대로 뒤로 굴려 보냈고, 왼쪽 측면에서 쇄도한 흥민이 형이 파 포스트를 겨냥하여 오른발 슈팅을 날렸다.
흔히 우리가 Z+D 감아 차기라 말하는 슈팅이었는데, 이고르 아킨페예프가 타이밍 좋게 몸을 날렸음에도 그것을 막아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촤르르르륵-!!
“!!”
“!!!!”
득점에 성공한 흥민이 형이 냉큼 뒤를 돌아 코너플랫을 향해 달려 나가고, 마치 벤피카가 득점했을 때처럼 기뻐해 주고 있는 팬들은 우리를 향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 주었다.
여러모로 기분 좋은 선제골.
삼파올리 감독님도 기쁜 얼굴이다.
“어우 씨 웬일이야? 제대로 뛰어들었네?”
“에이, 형이야! 형이라고!!”
기뻐하는 흥민이 형과 포옹을 나누곤, 환호와 박수를 아끼지 않는 팬들에게 감사함을 표한다.
그러곤 수비위치를 향해 돌아가며, 관중석 한쪽에 자리 잡은 아영이와 그녀의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내 맘. 알지?’
어김없이, 난 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들어 보낸다.
그러자 그녀 역시, 내게 답을 해 왔다.
양손으로 그려 보인 더 커다란 하트에, 난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매번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대표팀에서의 하루하루는 내게 즐거운 추억이 되어 주고 있다.
육체적으로는 고된 것이 사실이지만, 이곳에서 머물 때 느낄 수 있는 충만한 감정들은 기꺼이 수고를 받아들이고 먼 발걸음을 하도록 만들어 준다.
삐—익!!
주심의 휘슬 소리와 함께, 경기가 재개된다.
전반전 9분.
여전히 관중석 곳곳에선, 우릴 응원하는 커다란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
80802 뮌헨, 독일. 슈바빙-프라이만.
같은 시각.
한가로이 TV 채널을 돌리던 펩 과르디올라는 ‘EURO SPORTS’를 통해 중계되고 있던 대한민국과 러시아의 A매치 경기에 화면을 멈추었다.
때마침 대한민국의 스퀘어 무브먼트가 선제골로 이뤄지던 순간이었고, 펩은 이후 축구에 빠져들었다.
‘좋은 축구로군. 비엘사시즘을 잘 녹여 냈어.’
2006년 11월 15일 바르셀로나의 한 라디오 채널에서 은퇴를 알린 직후, 펩 과르디올라는 축구에 대한 목마름을 채우고자 아르헨티나로 향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리카르도 라 볼페(Ricardo La Volpe)와 루이스 메노티(Luis Menotti). 또 마르셀로 비엘사와 같은 명장들을 만났다.
특히 마르셀로 비엘사와의 첫 번째 만남은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펩은 자신의 친구인 다비드 트루에바와 함께한 자리에서 11시간이 넘는 토론을 펼쳤다.
당시로선 혁명에 가까웠던 비엘사의 축구 철학에 펩은 무척 큰 감명을 받았었다.
[“그게 정말 가능하다고 봅니까? 만약 이렇게 나오면요?”] [“그럼 이렇게 하면 되네.”] [“이런 대응은 어떻죠?”] [“그렇다면 이곳을 전장으로 삼으면 되겠군. 왜냐하면 우리가 늘 숫자의 우위를 점할 것이기 때문일세.”]처음엔 단순한 대화로 시작되었던 비엘사와의 시간은, 나중에는 빌라 안의 모든 집기를 기물 삼은 바둑이나 체스와 비슷한 광경으로 바뀌어 갔다.
그중에서도 특히 반응과 결과라는 비엘사만의 독특한 생각은 펩 과르디올라의 시각을 넓혀 주었다.
또한 3-3-3-1과 스퀘어 무브먼트로 대표되는 전술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마르셀로 비엘사는 펩 과르디올라의 축구 상당 부분을 담당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실제로 펩은 FC 바르셀로나 시절, 비엘사의 철학과 모든 것을 수차례 모방하기도 했다.
삑-!! 삐—익!!
화면 속 축구가 휴식을 맞이하고, 펩은 곧장 노트를 펼쳤다.
11월 A매치 주간이 끝나고 나면, 바이에른 뮌헨은 매우 힘든 일정을 소화해야만 한다.
23일 라이벌 클럽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원정을 떠나야 하고, 나흘 뒤에는 머나먼 러시아로 원정을 떠나 CSKA 모스크바와 경기를 펼친다.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져 있을 시기에 겹쳐진 스케줄인지라, 준비가 잘 되어 있지 않는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도르트문트의 감독 위르겐 클롭은 비범한 남자였고, 뮌헨의 전술적인 약점을 능히 찾아내어 공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성격과 인격 모두 180도 달랐지만, 위르겐 클롭은 펩 과르디올라에게 있어 ‘독일의 주제 무리뉴’였다.
미디어들은 어떻게든 이 경기를 자신과 클롭의 구도로 이끌려 할 것이고, 장외에서 이슈를 만들려고 할 게 틀림없다.
늘 축구 외적인 부분 때문에 에너지를 크게 소모해왔던 펩으로선 전혀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축구 그 자체에 빠져들었다.
‘스트라이커가 내려와 공간을 만들어 주면, 후방에서 볼을 잡는 동안 스퀘어 무브먼트를 만들 수…….’
지금 펩의 전술 노트 위엔, 무언가가 끊임없이 채워지고 있었다.
***
·경기 결과
대한민국 2 : 2 러시아
[골] 손흥민 : 전반 8분(김신욱)구자철 : 후반 40분(기성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