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322)
321화
2013년 12월 15일. 아가디르 80010, 모로코. 바이에 디스 팔미에르스 시트 파운티, P5. 호텔 소피텔 아가디르 탈라싸 씨&스파(Hotel Sopitel Agadir Thalassa Sea & Spa).
이것은 순전히 펩의 아이디어였다.
선수단이 걸어서 5분 거리의 이베로스타 파운티 비치 호텔에서 머무는 동안, 난 근사한 수영장이 인상적인 이곳 소피텔 아가디르 탈라싸에서 이틀을 묵게 됐다.
“우와-! 자기 이거 봤어?”
“뭔데?”
소피텔 아가디르 탈라싸의 스위트룸은 꿈꿀 수 있는 모든 휴식이 제공된 공간이었다.
테라스 밖으로 럭셔리한 프라이빗 풀과 근사한 석양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안락한 해먹이 설치되어 있었다. 우리 객실만을 따로 관리하는 직원도 있었고, 모로코 전통복을 차려입은 이가 따뜻한 차를 직접 내려 주기도 했다.
“나 왕비 된 것 같아.”
스위트룸의 거실 소파에 앉아 모든 사치를 누리고 있는 아영이가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녀는 지금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 손발을 관리받는 중이다. 그 표정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던지라, 난 환하게 웃어 보인 뒤에 내려 준 차가 담긴 잔을 들어 올렸다.
[오브리가두.] [지 나다.]호텔 측은 친절하게도, 포르투갈어가 가능한 직원들을 붙여 주었다.
모로코는 아프리카 대륙에 속해 있는 국가이긴 하지만, 지리적으론 스페인의 바로 남쪽에 있다. 특히 지브롤터 해협을 두고 마주한 타리파(Tarifa/스페인)와 세우타(Ceuta/모로코)의 거리는, 차로 갈 수만 있다면 10분밖에 되지 않을 정도다.
그런 만큼 이베리아반도의 문화가 많이 스며들어 있다. 스페인어가 가장 흔하고, 포르투갈어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는 이유다.
물론 공식 언어는 아랍어다.
“뭐 해?”
“펩한테. 선물 고맙다고 하려고.”
펩은 내 생일을 축하해 주고자, 클럽 측에 직접 부탁하여 사비로 오늘과 내일 호텔을 예약해 둔 것이다.
오늘은 일단 지금 이대로 휴식을 취하고, 내일 오후에 나를 데리러 따로 사람이 올 예정이다. 그렇게 선수단과 합류해 적응 훈련을 하고, 저녁은 성대한 생일 파티가 예정되어 있다.
선수단과 선수단의 가족 전부가 함께 모인 저녁 자리였고, 그것을 위해 아가디르에서 가장 고급인 레스토랑도 전세 냈다.
남자들은 턱시도 또 여자들은 드레스를 차려입을 예정인데, 장담하는데 내 여자가 제일 예쁠 거다.
“아- 출세했네.”
아영이가 계속 관리를 받는 동안, 난 수영복을 갖춰 입고 프라이빗 풀에서 수영을 하며 수평선을 향해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 태양을 바라봤다.
하루 세끼 챙겨 먹는 것이 온 집안의 고민이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서울 촌놈이 출세를 해 버렸다.
“나 어때?”
“응?”
새삼스러운 감회에 젖어 한가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을 무렵, 해가 떨어지기 직전에 아영이가 가운을 입고 등장했다.
“안 보이는데?”
“…….”
내가 아영이의 저 표정을 사랑한다고 말했던가?
기대하라는 듯한 얼굴을 보면, 몸이 동한다.
난 얼른 수영을 해서 아영이가 선 곳으로 갔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 가운을 풀었다.
별것 아닌 그 모습이 어찌나 섹시하던지.
더 좋았던 건, 그다음이다.
“와-우.”
“아무도 보는 사람 없지?”
“응. 우리밖에 없어.”
호텔의 직원들은 우리 둘의 오붓한 시간을 위해 전부 자리를 비웠다. 나중에 따로 요청을 하면, 이곳 호텔의 주방장이 만든 생일상이 객실 안까지 도착할 것이다.
그러니 그때까진, 우리 둘밖에 없다.
“일루 와.”
손을 뻗어, 수영복이라기보다는 속옷에 더 가까운 것을 입은 아영이를 끌어당긴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내게 안겨 왔고, 물속에서 우린 서로의 입술과 살결을 탐했다.
그런 우리의 뒤로 이제, 석양이 떨어진다.
젠장. 누가 사진 좀 찍어 주면 좋으련만.
“좋다. 진짜 좋다.”
“응. 나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영이와 함께 독일에 머물기 시작한 이후로 내 삶이 훨씬 더 풍요로워졌다는 점이다.
그녀가 없었다면, 오늘도 절대 이렇지 않았을 거다.
거기에 내가 고맙다고 말을 했었던가?
그러자, 아영이가 대답했다.
“응. 자주.”
“그랬나?”
“그치만 좋아. 더 해 줘.”
골든 보이를 수상할 때, 난 쉼표와 마침표에 관해서 말을 했었다. 그리고 분명, 그것이 내 삶의 쉼표와 마침표가 될 수는 없다고도 했을 것이다.
물론 영광스럽다는 단어와 문장으로 가득한 수상소감을 인터뷰하긴 했지만, 최소한 내겐 지금이 더 기쁘다.
“사랑해.”
“나두. 나두 사랑해.”
서로를 안고 입을 맞추고 있는 이 순간이, 오랫동안 이어졌으면 한다.
***
[한국의 천재(天才). 아시아 최초이자 유일의 금동(金童/골든 보이)을 마주하라. – 시나 웨이보/2013.12.16.(오전)]***
2013년 12월 16일. 80000 아가디르, 모로코. 르흐이 듀 그랑 스타드. 스타드 아드하(Stade Adrar. Rue du Grand Stade. 80000 Agadir, Moroco).
생애 가장 사치스럽고 또 뜨거웠을 하루를 보내고, 난 이른 아침 들이닥친 불청객에 의해 달콤한 시간을 방해받았다.
[골프 하러 가자!!]뮐러와 람, 그리고 리베리와 알라바가 호텔 로비로 찾아와 골프를 하러 가자고 말을 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난 지독히 그걸 못한다.
뮌헨에서 한두 번 람을 따라 골프채를 휘두르러 가 봤었는데, 그때마다 굴욕적인 동영상만을 남기며 동료들에게 웃음을 준 것이 전부였다.
지금만 해도.
“큭큭큭큭큭.”
“푸핫-!!”
“쉬-잇! 듣겠어.”
연신 헛스윙을 남발하던 내 모습을 찍은 뮐러가, 자신의 단짝 토니 크로스에게 영상을 보여 주고 있었다.
오붓한 시간을 방해한 것도 모자라 흑역사까지 만들어 준 이들이 낄낄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배알이 꼴리고 뒤틀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축구공을 뻥 하고 차 버렸다.
“으왁-!!”
“이봐-! 대체 무슨 짓이야?”
“Du stuck Scheiße! 당장 그거 지워!”
“낄낄낄. 내가 왜?”
피치 위에서 함께 축구를 할 때의 토마스 뮐러는 환상적인 파트너지만, 경기 외적으론 사람들을 괴롭히는 짓궂은 악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순순히 끌려간 내가 바보 같았다고 말을 하기보단, 부인과 여자 친구를 데려온 저들이 영리하다 말해 주고 싶다.
여자들은 아영이가 보낸 어제 하루를 알고 싶어 했고, 럭셔리하기로 유명한 소피텔 아가디르 탈라싸의 스위트 룸 서비스가 어땠는지를 듣길 원했다.
또 아영이도 그걸 내심 자랑하고 싶은 모습이었기에, 모든 걸 포기하고 끌려갔던 거다.
‘대체 훈련은 언제 시작하는 거야?’
지금은 일단 선수들만 먼저 나와 잔디를 밟으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잔디는 독일의 것보다 조금 짧고 미끄러운 느낌이었다. 생각보다 볼이 더 빠르게 구를 것이고, 컨트롤에 보다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할 거다.
“잔디가 짧네. 안 그래?”
“응. 신경을 좀 써야 할 것 같아.”
“제기랄. 진짜 북적거리네.”
“하하. 왜? 좋잖아.”
내 말에, 티아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즌 개막일을 제외하고 나면, 현재가 팀 스쿼드가 가장 건강한 시기다. 바스티와 바트슈투버 두 사람을 뺀 모두가 경기에 뛸 수 있는 몸 상태다.
그리고 독일의 다른 클럽들 모두가 1달여의 휴가에 들어간 것을 감안, 우리만 추가 일정을 더 소화하는 것을 보상하고자 클럽 스쿼드 전체를 모로코로 데려왔다.
그래서 이렇게 시끄러운 거다.
“기왕 이렇게 온 거 이겨야지.”
“당연한 소리. 만약 지기라도 하잖아? 사람들이 뭐라고 할지 상상해 봤어?”
“우웩- 그거 끔찍하네.”
“내 말이 바로 그거야.”
2012/13 시즌 챔피언스 리그 우승 팀의 자격으로 클럽월드컵에 참여하게 된 우린, 당연하게도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고 있다.
지난 시즌을 포함 무패 행진을 40경기 동안 이어오고 있었고, 챔피언스 리그도 아닌 이곳에서 그 기록을 끊기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전력 차로 인해 동기부여가 약해질 수밖에 없는 대회지만, 그걸 만회할 이유야 얼마든지 있다.
‘오히려 셀 수도 없이 많아.’
연승을 향한 욕심.
우승 트로피를 향한 열망.
약한 팀에 패배할 수 없다는 자존심이라든가 세계 최고라는 것을 보여 주고 싶다는 욕심은, 우리가 내일 높은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 줄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게 틀림없다.
만약 그렇게 따라오지 않는 이가 있다면, 난 언제든 피치 위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화를 낼 준비가 되어 있다.
“저기 온다.”
“……그래.”
경기장 내부에서 펩과 코칭스태프들이 밖으로 걸어 나오고, 난 티아고와 함께 한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주어진 훈련 시간은 약 80분.
짧지만, 그거면 충분하다.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말하겠다! 잊지 마라! 우린 뮌헨이다! 어떠한 상황에서고, 품위를 잃지 말아야 한다!”
역시 펩은 뭔가를 아는 남자다.
품위.
우리가 이번 대회를 진지하게 임해야 할 가장 큰 이유는, 지금 그가 말한 저 단어일 것이다.
***
90402 뉘른베르크, 독일. 바트슈트라세. 키커 본사.
지금으로부터 약 40분 전, 키커의 간부진들을 포함한 선별된 기자들이 모여 1년에 두 번 찾아오는 가장 중요한 미팅을 시작했다.
키커는 매년 1월 1일에서 5월 31일까지의 활약을 총 합산한 결과를 7월 첫 2주. 그리고 시즌 개막일부터 겨울 휴식기 전까지의 활약을 총 합산한 결과를 12월 마지막 2주 동안 각각 4차례에 걸쳐 발표하곤 했다.
‘Kicker Rangliste’. 혹은 ‘Rangliste des deutschen Fußall’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고 또 가장 공신력을 갖춘 분데스리가 선수 랭킹이 바로 그것이다.
키커는 첫 번째 에디션에서, 언제나처럼 ‘B(Blickfeld)’로 분류된 선수들의 이름을 실을 예정이다.
그리고 ‘H(Herausragend)’에 포함된 선수들 역시 함께 게재될 예정인데, 둘 모두 인상적인 재능을 뽐낸 유망주 혹은 다소 기복이 있었던 우수한 선수들을 꼽은 파트였다.
차이라면 B가 1부 리그의 선수들이고, H가 2부 리그 이하의 선수들이란 거다.
주로 축구 매니아들이나 키커 외의 기자. 그리고 클럽의 스카우트 그룹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이긴 하나, 일반 독자들의 관심은 가장 떨어졌다.
“그건 그대로 발표하면 되겠군. 이견은 없나?”
“…….”
“좋아. 12월 셋째 주 마지막 에디션에 싣도록 하지. 다음으로 넘어가세나.”
사락-
사락- 사락-
미팅을 이끄는 베네딕트 쉴트크네히트의 말에, 회의실에 모인 기자들이 덩달아 종이를 넘겼다.
그리고 이런 이들을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서 바라보고 있는 남자들이 있었는데, 키커의 가장 고위 간부들과 키커가 운영될 수 있는 자금을 제공해 주는 중요 인물들이다.
이쪽 사람들은 미팅에는 참여하지 않고, 뭔가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을 때에만 말을 꺼냈다.
“다음은 케(K). 내가 먼저 이름을 말할 테니, 의견이 있으면 손을 들게나. 우선 토으휘터(Torhuter/골키퍼). 론-로베르트 칠러. 올리버 바우만. 케빈 트라프. 스벤 울리히…….”
“…….”
이런 식으로 회의는 진행이 되며, 특정 이름에 기자들이 손을 들어 올리게 되면 특정 선수의 위치는 재고된다.
골키퍼를 시작으로, 베네딕트의 발표는 중앙 수비수(Innenverteidiger)와 측면 수비수(Außenbahn defensiv)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때까지, 특별한 이견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측면 공격수(Außenbahn Offensiv)로 향했을 때, 처음으로 손이 들려진다.
“율리안 드락슬러.”
“잠깐만요.”
“뭐지?”
“율리안이 케? 이케(IK)가 아니고요?”
독일 북부를 담당하는 차기 편집장 후보 토마스 히테(Thomas Hitte)가, 드락슬러의 위치에 의문을 제시한 것이다.
“율리안은 최고의 선수 중 하나라고요.”
“그래. 나도 인정하네. 하지만 이케가 되기엔 무리야.”
“왜죠?”
“뒤에 보면 알게 되겠지만, 올해 측면 공격수에 경쟁자가 너무 많아. 토마스 뮐러가 이케에 있고, 로이스와 샘, 폴란트까지 네 명이 이케일세. 율리안이 그들보다 낫다고 보나?”
“네. 최소한 저는요.”
“좋아. 토마스의 의견이 이렇다는군. 다른 이들은?”
키커 랑리스테와 관련된 미팅이 길어지는 것은 전부 이런 것들 때문이다. 제아무리 기자들이라지만, 그들도 인간인지라 완전히 객관적이 될 수는 없다.
어떠한 기자들은 특정한 선수에게 주관적인 감정을 이입하고, 그럼 인터넷상에서나 볼 법한 토론이 이어지게 된다.
때때로 동료끼리 얼굴을 붉히는 유치한 감정싸움도 나오게 되는데, 키커의 간부들은 이것이야말로 키커 랑리스테를 최고의 선수 평가로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했다.
각자의 주관 속에서, 결국 최선의 객관이 도출됐다.
키커의 총괄 에디터 직책이 중요한 이유이며, 아무나 앉을 수 없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베네딕트 쉴트크네히트는 누구보다 적합한 인물이었다. 축구에 관한 방대한 지식과 탁월한 식견은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특정 팀과 선수에 휩쓸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축구 자체를 좋아했기에, 특정 클럽 혹은 특정 선수를 응원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율리안은 때때로 나빴어.”
“뭐?! 대체 언제?”
“예를 들어, 뮌헨 경기가 그렇겠네. 너 그 경기는 봤어?”
“봤거든?! 하지만 가장 돋보였어!”
“내가 볼 땐 도망치기만 하던걸.”
“아, 빌어먹을! 그 말 취소해. 난 네가 나랑 같은 토마스란 이름을 쓰는 것도 역겨우니까!”
“뭐?!”
토마스 히테와 토마스 헤네케(Thomas Hennecke) 사이의 감정이 격해지고, 적절한 타이밍에 개입한 베네딕트가 고개를 돌려 다른 이에게 의견을 묻는다.
지금까지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카를-하인츠 빌트가 그 주인공이었는데, 그러지 회의실 내의 열기가 가라앉았다.
“케. 당신의 말처럼, 이케로 가기엔 경쟁자들이 보여 준 것만큼은 해내지 못했어요.”
“좋아. 들었나?”
“……하지만.”
“나도 카를이나 헤네케와 같은 의견일세. 율리안이 이케로 가려면, 지금보다 더 꾸준한 경기력을 보여 줘야만 해. 특정 클럽이나 선수에 따라 경기력이 요동치면 안 된다고.”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항상 꾸준히 높은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 주는 이가 이케(Internationale Klasse)에 들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함을 더해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경기력을 보여 주는 이가 뷔케(WK)가 된다.
다시 또 긴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뷔케를 말할 순간이 됐다.
“이번 겨울엔 토으휘터, 인넨페어타이디거, 미텔펠트 오펜시브, 슈튀엄머 자리엔 뷔케가 없네. 이미 대충 알았겠지만 말이야.”
키커가 반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관찰을 해 온 결과, 2013/14 겨울 ‘Rangliste des deutschen Fußall’ 엔 다수의 포지션에 뷔케가 비어 있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
“발표하기 전에 한 가지가 궁금하군. 이것은 우리 키커의 공신력과 역사에 관한 것이기도 해.”
사람들의 시선이 베네딕트에게 집중되고, 약간의 침묵을 둔 키커의 에디터는 양손을 테이블에 올리며 턱을 괬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우선 묻도록 하지. 우리가 현재의 시스템으로 랑리스테를 결정한 게 언제부터였지?”
“2000년이죠.”
“그래 맞아. 현대 축구의 변화에 맞춰, 몇몇 포지션들을 따로 분류해 비중을 뒀지. 그리고 우리가 그 포지션에 랑리스테를 주면서부터, 실제로 세계 축구계도 거기에 의미를 두기 시작했어. 지금까지 늘 그래왔지.”
키커가 최초 랑리스테를 만들었을 땐, 총 8개의 포지션으로 나눠 수상자를 결정했다.
골키퍼/수비수/스토퍼/아우센로이퍼(작자 주 : 1950년대 Outrunner로 불린 MW 포메이션의 중앙 미드필드를 뜻함)/할브슈튀엄머(작자 주 : 현대의 세컨스트라이커)/좌우 윙/스트라이커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다 1970년 키커는 리베로 위치를 새롭게 만들었고,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1980년부터 약 20년간 명맥이 끊겼던 좌우 풀백을 다시 부활시켰다.
이렇듯, 키커의 랑리스테는 항상 축구계의 주요한 흐름과 중요성을 모두 반영해 왔다.
“그리고 2012년 우리는 참 뿌듯한 일을 했어. 아시아 최초로 뷔케에 아시아인을 올릴 수 있었지. 그건 차붐도 해내지 못했던 일이었고, 우리 키커엔 큰 발전을 의미하는 거였어.”
분데스리가 역대 용병을 말함에 있어, 1980년대 활약했던 차범근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분데스리가와 유럽 대항전 포함, 총 372경기에서 121골을 기록한 전설적인 공격수였다.
하지만 그런 그도 총 13번의 키커 랑리스테 경험 중에서 세 차례만 이케(IK)에 올랐을 뿐, 남은 10번은 케(K)에 머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물론 2010년대에 접어들면 뷔케(WK)에 관한 기준이 후해지긴 했지만, 그만큼 이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2012년 여름, 당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뛰던 카가와 신지(Kagawa Shinji)가 아시아인 최초로 뷔케에 오르는 영광을 차지했다.
단순히 그의 포지션만이 아니라, 2012년 여름을 통틀어 유일한 뷔케였다.
“우리가 피부색이나 출신 국가에 아무런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증명한 일이었지. 하지만 지금부터 우리가 말하는 건, 여기에 최연소라는 단어를 하나 더하는 거야.”
“…….”
“누구도. 지금까지 그 누구도 20살에 뷔케에 오른 이는 없었어. 바로, 다온이지.”
지금부터 키커의 모든 관계자들은, 그 어떠한 때보다 깐깐한 기준을 들이밀어 올 것이다. 현재 김다온은 그의 동료 셋과 함께 뷔케에 올라 있지만, 결과도 같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이는 인종이나 나이가 아닌, 키커의 명성 때문이다.
세상을 여전히 피부색으로 구분하는 멍청한 구독자들은 김다온의 선정에 불만을 품을 것이고, 또 독일을 너무나 사랑하는 빗나간 애국자들은 이국에서 온 20살의 이방인이 영광을 누리는 일을 시샘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키커는 그런 사람들조차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보탤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설명은 어느 때보다 엄중할 잣대를 적용했을 때에만 만들어 낼 수 있다.
“뷔케. 다온.”
20살을 갓 넘은 선수가 키커 랑리스테에서 뷔케를 받는다는 것.
이는 분명, 커다란 파문을 몰고 올 만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