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332)
331화
유럽에서 축구를 하면서, 이런저런 방법으로 듣게 되는 이야기들이 있다.
[“야 요즘 누가 괜찮던데?”] [“어제 봤어? 쩔더라!”] [“걘 잘하잖아. 진짜배기야.”]표현 방법이야 각자의 성격과 말투에 따라 각양각색이지만, 어쨌든 축구를 하다 보면 팀 외에는 관심이 없더라도 다른 클럽 혹은 다른 나라에서 뛰는 이들을 알게 된다.
이번 아스널 전을 준비할 때만 해도, 사방에서 외질이 정말 축구를 잘한다고 했다.
지금도 그랬다.
모처럼 볼을 점유한 아스널은 공격을 전개했고, 그들은 날 측면으로 빼내 버린 뒤에 보아텡과의 사이 공간으로 패스를 보내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곳엔 외질이 있었고, 익숙한 상황이었던 난 페널티 박스 안에서 보아텡이 쉽게 막아 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최소한 지연이라도 말이다.
하지만 외질의 플레이는 달랐다.
그는 절묘한 개인기로 보아텡을 속여 냈고, 다급하게 발을 뻗게 만들어 P.K를 유도해 냈다. 워낙 명백한 파울이었던지라, 누구도 주심의 판정에 항의하지 않았다.
전반 4분.
분명 몇 초 전까진 완벽히 우리의 흐름이었는데, 순식간에 팀 전체에 위기가 닥쳐온 것이다.
‘메디아푼타(AM)에서 델란테로 이즈끼에르도(L-FW)로 갔어.’
분데스리가였다면, 지금 저기로 체너가 향했을까?
사실 장담은 할 수 없다.
감독의 전술적인 지시라든가 선수 개개인의 성향이 반영될 것이고, 지시와 성향이 조건에 맞아떨어진다고 해도 매번 같은 플레이를 하는 것 역시 힘들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스페인에서 뛴 외질이라면 펩의 방식대로 피치를 나눠 경기를 읽는 것이 익숙할 거라는 점이다.
만약 그가 벵거의 철학과 EPL 시스템 속에서 스페인의 방식대로 경기를 읽고 있다면, 앞으로 외질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달라져야 한다.
일단 지금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때다.
무엇보다.
삐—익!
P.K 먼저.
“…….”
“…….”
아르센 벵거가 정한 P.K 키커는 획득자인 외질이다.
주심의 휘슬과 함께, 그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
그런데, 가볍게 발을 내딛던 외질이 한 번 움찔거렸고.
저것이 P.K 상황에서 좋은 신호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던 나는 슈팅이 빗나가거나 막힐 거란 느낌을 받았다.
이어, 슈팅이 쏘아지고.
파앙-!
“!!”
“!!!!”
방향이 다소 정면으로 쏠렸던 외질의 슈팅은 제대로 된 곳으로 몸을 날린 노이어의 오른손을 맞고 페널티 박스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안타까움과 약간의 절망이 뒤섞인 탄식이 가득 울려 퍼진 뒤, 난 스스로를 용납하지 못하고 있는 외질을 본다.
“개 같은!! 멍청한 새끼!!”
“??? ……아.”
그랬지, 참.
저 남자도 독일 출신이다.
순간적으로, 왜 외질이 독일어를 내뱉고 있는 거지? 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했었다.
‘깜짝 놀랐네.’
워낙 플레이 스타일이 분데스리가에서 만나온 선수들과는 달랐던지라, 독일 국가대표라는 말을 몇 번이나 주변에서 들었음에도 인식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P.K 실축 이후로도, 나는 종종 외질을 헷갈려 할 수밖에 없었다.
전반 6분.
전반 11분.
전반 14분.
나는 몇 번이나 그의 가까운 곳에서 빌드업 전개를 위한 패스를 받아 들었고, 당연히 압박을 가해 올 것이라고 생각해 외질을 등질 방법도 미리 그려 두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외질이 나를 압박해 오는 일은 없었고, 마치 관중의 한 사람인 것처럼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내 입장에서야 수월하게 빌드업을 이어 나갈 수 있어서 참 좋았지만, 한편으론 의아했다.
어째서 외질은 뛰지 않는가?
어째서 벵거는 가만있는가?
심지어 한 번은 외질 본인이 패스 미스를 했지만, 볼을 되찾으려는 노력조차 별다르게 하지 않았다.
그저 허탈해하며 어깨의 힘을 푼 것이 전부일 뿐, 다른 동료들이 열심히 압박을 가하는 동안에도 그는 계속 방관자가 되어 피치를 멍하니 쳐다만 봤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질의 발아래로 축구공이 향했을 때 뭔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전반 21분.
외질의 절묘한 로빙 패스가 알라바가 선 뒷공간에 떨어졌고, 그것을 잡아낸 옥슬레이드-체임벌린이 마누엘 노이어와 1:1 상황을 연출했다.
이번에도 제대로 타이밍을 잡고 튀어나온 노이어의 훌륭한 수비가 팀을 살렸지만, 간담이 서늘해지는 순간이었다.
결국 전반 26분, 나는 참지 못하고 우리가 공격을 펼치는 걸 주저하게 만드는 아스널의 나태한 기회주의자를 봉쇄하자는 의견을 벤치에 전달했다.
“다들 눈치를 보고 있다고요.”
“…….”
“지금은 쟤를 거칠게 다루는 게 중요해요, 펩. 하비를 그렇게 쓰는 게 무리라면, 제가 할게요. 기존에 맡겼던 일들에, 그것까지 하겠다고요.”
외질은 나태하다.
그리고 그의 나태함은 주변에 전염된다.
아스널에 그것이 입혀진다면야 참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외질이 가진 특유의 분위기는 우리 뮌헨 전체를 물들게 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걸 이겨내는 방법은, 내 생각엔 부지런함이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많이 움직여 몸을 써야 한다.
전반 30분.
“하비-!!!”
코칭스태프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눈 펩이 다시 테크니컬 에어리어로 나와 하비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곧바로 수신호가 전해지고, 뒤이어 펩은 날 보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오키. 접수했어.’
펩은 내게 부여한 기존의 역할을 대신하여, 좀 더 중앙 지향적으로 또 수비적으로 움직여 줄 것을 요구해 왔다.
아마 하비가 외질을 맨투맨으로 마크하게 될 것 같았는데, 그로 인해 생겨나는 공간을 커버하고 또 팀의 후방 빌드업과 수비에 힘을 실어 줘야 한다.
공격이야 오른쪽 측면이 조금 비긴 하겠지만, 티아고가 있어 걱정이 없고 또 이쪽이 안 되면 반대편을 쓰면 그만이었다.
지금부터 나의 공격 가담은 삼파올리 감독님 방식의 스퀘어 무브먼트(Square Movement)로 작동하게 될 거다. 방향전환의 목적이 있을 때만, 엑스트레모로 움직인다.
전반전의 2/3이 지난 시점에서 이뤄진 이 변화는, 이어지는 경기의 5분 동안 즉각 경기력으로 드러났다.
아스널은 하프라인 부근까진 볼을 원활하게 공급을 시켰지만, 파이널 써드(Final Third)로 향하는 패스의 다양함과 질은 외질에 볼을 공급할 때보다 크게 떨어졌다.
그리고 이번에도, 난 깨닫는다.
‘아, 그랬구나.’
라고.
전에도 말했지만, 펩은 절대 지도를 함에 있어서 친절하지 않다. 자신이 바라는 축구를 선수의 눈높이가 아닌 늘 자신의 주관과 경험에 맞춰 표현한다.
만에 하나 펩 모드에 접어들기라도 하는 순간이면, 나와 람을 뺀 모두가 무슨 뜻인지 모른다.
펩은 이번 아스널전을 준비하면서, 메수트 외질을 ‘나태한 선수’. 아론 램지를 ‘팀에 비전을 주는 선수’에 빗댔다.
그러면서 자꾸 헬렌 켈러(Helen Keller)의 일화를 이야기했는데, 난 그것을 알아듣지 못했고 람은 [“그녀는 맹인으로 태어난 것보다, 시력은 있어도 비전이 없는 것이 더 불행하다고 했어.”]라며 뚱딴지같은 말만 했다.
그래서 난 언제나처럼 펩의 생각을 이해하고자, 공부를 하고 또 했다.
그것에 따르면, 게으름과 나태는 달랐다.
게으름은 불행한 처지에 있는 이 혹은 정체되어 있는 어떠한 이가 스스로 더 나아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때 쓰는 표현에 가깝다.
반면 나태는 충분히 어떠한 일을 소화할 능력과 재능이 있음에도, 그것을 방관하는 행위다.
메수트 외질은 처음 생각보다 더 많이 뛰는 선수였다.
경기를 하는 내내, 그는 모든 상황에서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에 서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다.
저 친구는 수비를 하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지켜볼 뿐.
심지어 공격을 하는 상황에서도, 본인이 조립을 쉽게 해낼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엉뚱한 위치로 가거나 볼에 관여할 의사가 없음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전반 초반 P.K를 얻어 낼 때 보여 준 움직임을 생각해 본다면, 그것이 우연이 아닌 이상 외질은 의도적으로 저러는 거다.
자신이 어디로 움직여야 할지를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어떠한 위치로 이동해야 자신에게 패스가 오지 않을지 역시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나태한 선수였다.
그리고 이런 나태함에 비전을 더해, 외질의 장점이 드러날 수 있도록 도운 사람이 오늘 결장한 램지다.
하지만 오늘, 그런 비전은 없다.
피치엔 온통 나태만 가득하다.
‘놀라워.’
축구라는 게 이토록 복합 미묘했던가?
알면 알수록 재미있어 미칠 것 같다.
전반전 30분까지 외질을 통제하지 못했을 땐, 그의 번뜩이는 재능이 우리에게 나태함을 전해 줬다.
분명 우린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었지만, 외질이 선 위치와 그의 발끝에서 나올 플레이가 마음에 걸려 할 수 있는 플레이들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젠, 상황은 역전됐다.
하비 마르티네스가 메수트 외질을 강하게 압박하면서, 그는 탈압박을 위한 움직임을 포기해 버렸고 결국 피치 위에서 손쉽게 사라졌다.
이제 그의 나태는 아스널에게 전염됐고, 동료들은 외질의 성향을 잘 알기에 더 많은 거리를 뛸 수 있고 더 좋은 위치로 움직일 수 있음에도 수동적이 됐다.
쉽게 말해 아스널 선수들의 활동 영역과 움직이는 거리가 축소되었다는 거고, 그것은 곧 더 많은 공간을 의미했다.
자연스럽게 다시 주도권을 쥐게 되었는데, 이런 모든 것들이 완성되었을 때 난 굳이 빌드업에 힘을 보태지 않고도 전진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할 수 있었다.
오른쪽 측면 인테리오(Interio) 포지션에 로번이 자리를 잡은 가운데, 내가 오히려 그에 앞선 엑스트레모(윙어)가 되고 티아고가 후방에서 우릴 지원했다.
아스널의 수비는 자연스럽게 이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었는데, 드리블 돌파로 세 명의 선수를 끌어모은 로번이 메디아푼타(AM) 자리에서 자유롭게 있는 토니 크로스를 발견했다.
‘저기야.’
저곳이 바로 패스를 보내야 할 위치다.
오른쪽에 힘을 주어 숫자를 보태었으니, 수비가 이쪽에 더 많은 선수를 두었을 때 방향전환을 통해 넓은 공간에 있는 선수에게로 볼을 전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삼파올리 감독님과 펩 모두가 추구하는 비엘사시즘의 +1.
즉, 스퀘어 무브먼트다.
로번은 당연하다는 듯, 토니에게 패스를 보낸다.
그리고 이제부턴, 클래스의 싸움이다.
“이봐-!!”
측면에서 중앙을 향해 횡(橫)적 움직임을 보여 줬던 로번이, 토니에게 볼이 전달되고 아스널 선수들의 이목이 거기로 집중되자마자 종(縱)으로 움직여 들어갔다.
오프-더-볼 상황에서 빈 공간을 찾아 들어가는 것이야 크게 힘든 일은 아니라지만, 저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축구를 정말 잘 한다는 증거다.
그리고 말했듯, 평소처럼 공간을 만들기보단 페널티박스 내에서 포스트-플레이를 펼친 만주키치가 절묘하게 몸을 움직여 로번에게로 향하는 수비를 가린다.
아주 약간의 지체였지만, 축구에선 0.5초만으로도 차이를 만들기엔 충분했다.
제대로 전달된 토니의 로빙 패스는 아스널 수비수들의 머리를 뛰어넘어, 로번이 달려가고 있는 빈 지점을 향해 정확히 날아 들어갔다.
어찌나 절묘했는지, 슈체츠니 골키퍼가 마지막 순간까지 뛰어나올지 말지를 판단하지 못했을 정도다.
그리고 그 패스는 결국 일을 만들었다.
슈체츠니가, 치명적 실책을 범한 거다.
떨어지는 축구공을 높은 위치에서 먼저 로번이 왼발로 컨트롤을 했고, 슈체츠니는 그런 로번의 오른쪽 정강이뼈를 걷어차고야 말았다.
뒤늦게 볼을 향해 달려드느라 올바로 내리지 못한 상황판단이, 저런 참사를 불러일으킨 거다.
당연히 휘슬은 울렸고.
삐—–익!!!
우린 분개했다.
“헤에-이!!!!!”
“지금 건 카드야!!! 카드라고!!”
하지만 그런 뒤에 우리가 신경을 쓴 건, 주심의 행동이 아니라 로번의 부상 여부였다. 시즌 내내 시달린 탓에, 이런 중요한 상황에서도 그게 먼저 생각난 것이다.
부딪힌 부위를 붙잡은 채 그라운드 위에서 뒹굴고 있는 로번은 무척 고통스러워 보인다.
가뜩이나 예전에서 숱하게 다쳤었던 부위다.
킬리안이 재빨리 로번의 곁에 앉는다.
{“뭐야?! 뭐?!! 왜!!!”}
“응?”
그리고 그러는 사이, 이탈리아 출신의 니콜라 리쫄리(Nicola Rizzoli) 주심은 카드를 꺼내 들었다.
노란색이 아니다.
빨강이다.
.
(배정세)
“퇴장! 퇴장입니다! 아- 이탈리아의 니콜라 리쫄리 주심! 단호하게 슈체츠니 골키퍼의 퇴장을 명합니다!”
.
허탈해하는 슈체츠니 골키퍼와 항의조차 하지 않은 채 고개만 떨구는 아스널 선수들에게서 다시 고개를 돌리자, 로번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난 걱정스러운 마음을 담아, 괜찮은지를 물었다.
“다치진 않았어. 그냥, 더럽게 아파.”
“제대로 치료받고 오라고요.”
“그래. 아, 그리고.”
“?”
“데이비드!!”
밖으로 나가려던 로번이, 알라바의 이름을 크게 외친다.
“그 P.K는 얘 거야!! 얘가 찰 거라고!!”
“뭐?!”
“에?”
전에도 말을 했지만, 팀의 P.K 키커는 항상 데이비드 알라바가 최우선이다. 실제로 가장 잘 차기도 하고, 본인 역시 이런 기회를 통해 득점을 쌓길 바란다.
이러한 이유들이 합쳐져 자연스레 순번이 정해졌는데, 로번은 나조차 생각 않고 있던 한 가지를 말했다.
“얘 요즘 훈련하는 거 봤지? 얘 거라고.”
“…….”
당연히 동료들도 내가 연습 후에 따로 슈팅이나 킥 훈련을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게, 알라바의 P.K를 가로챌 이유가 될 수 있을 거라곤 단 한 순간도 생각지 않았다.
실제로도 그래야만 한다.
단순히 킥 훈련만으로 P.K 순번에서 우선이 될 수 있다면, 피치에 남아 그걸 차는 시늉이라도 했을 녀석들이 이 팀에는 다섯 명 정도 있다.
그러나 로번은 단호했다.
무조건 나란다.
“뮌헨의 규칙 기억하지?”
클럽에는 팀이 정한 순번 외에도, P.K를 얻어 낸 선수가 키커를 지목할 수 있다는 일종의 불문율 같은 것이 있다. 펩은 그걸 인정하지 않지만, 선수들은 그렇지 않다.
누군가가 개인적인 욕심으로 P.K를 차길 바라는 사이, 다른 누군가는 뜻깊은 일을 생각해 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넣어. 내가 주는 축하 선물이야.”
“…….”
사실 내가 생각한 것은 시즌 100번째 득점이라든가 득점왕 경쟁에서 한발 앞서 나가기 위한 것 등이었다.
두 달이나 늦은 골든 보이와 뷔케의 축하일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 마음은 느껴졌다.
“제기랄. 너 나한테 빚진 거야.”
“하하. 응.”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 알라바가 결국 내게 P.K를 양보했고, 축구공을 받아 든 나는 벤치를 바라봤다.
펩은 그저, 뒤돌아 서 있을 뿐이다.
내가 키커라는 것을 알까?
‘글쎄. 모르겠네.’
하지만, 그것을 확인할 방법은 있을 것 같다.
약간은 짓궂을 수도 있는 생각이었고, 난 장난 비슷한 그것을 상상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후우~ 다온아, 가자.]조용히 중얼거린 혼잣말 뒤에, 난 페널티 스팟에다가 축구공을 내려 두었다. 사실 지금 이렇게 많은 상황이 있을 수 있었던 것도, 슈체츠니가 퇴장당했기 때문이다.
아스널도 우카시 파비안스키(Lukasz Fabianski)가 몸을 풀게끔 하기 위해 늦장을 피웠다.
지금 이렇게 공을 내려둔 순간이 되고서야, 비로소 파비안스키가 장갑을 두드리며 가까운 곳에 섰다.
그는 잠깐 내려져 있는 공을 지그시 바라보다, 천천히 뒷걸음질을 하여 골라인의 앞에 섰다.
“후우-”
숨을 내쉬며 바라보고 있는 골대 뒤쪽의 관중들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축구 없이는 못 사는 팬들을 몇 년째 접하다 보니, 저들의 심정을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축구는 저들의 낙이자, 저들의 삶이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포기하지 않길 잘했어.’
왜 하필 지금인지는 알 수 없지만, 축구를 포기하려고 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에 물기가 차올랐고, 난 그것을 감추려 고개를 조금 내렸다.
그리곤 훌쩍 한 번 해 준 뒤에, 주심의 휘슬을 기다렸다.
기다림은 그리 길지 않다.
삐—익!!
슈팅을 찰 곳은 이미 정해 두었다.
이번엔, 실수하지 않을 거다.
득점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건, 전반 초반의 그 슈팅 하나면 충분하니까 말이다.
난 발을 움직였다.
그러곤.
퍼억-!!
익숙한 소리와 함께 날아간 축구공은, 내가 마주 보고 있는 골대의 오른쪽 하단으로 낮게 날아 그대로 그물에 처박혔다.
조금 다른 의미의 휘슬이 들려왔고.
삑-! 삐-익!!
결과를 눈으로 확인한 후에 곧장 벤치 방향으로 몸을 돌린 나는, 동료들을 뿌리치며 달려 나갔다.
그곳엔 내게 축구의 다음 단계를 보여 준 펩이 있었다.
그는 날 확인하더니,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역시나.
펩은 키커가 알라바에서 나로 바뀐 줄을 몰랐던 거다.
하지만, 뭐 어떤가.
“이야아아아아-!!!”
난 마침내 참아 왔던 감정을 터뜨리면서 무릎으로 슬라이딩해 들어간 뒤에 펩의 앞에 섰다. 그리곤 그를 끌어안으면서, 연신 고맙다고 소리쳤다.
물론 한국어라, 전혀 못 알아들었겠지만.
이것 역시, 뭐 어떤가.
아무래도 좋았다.
“으아아아아-!! 잘했어!!”
“이런 빌어먹을!! 정말 잘 넣었다고!!”
“잘했어! 뭐야? 왜? 아무튼, 잘했어!!”
동료들과 펩 그리고 코칭스태프들의 목소리에 파묻혀 있는 지금, 난 정말 최고로 행복하다.
.
.
?전반 종료
아스널 0 : 1 바이에른 뮌헨
***
작가의 말 ? 329화 선발명단에 오류가 있었습니다. 센터백에 제롬 보아텡과 하비 마르티네스가 나섰고, DM에 필리프 람입니다. 본문은 수정해 놓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