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345)
344화
2014년 4월 7일. 81547 뮌헨, 독일. 재베너 슈트라세 51-57. 바이에른 뮌헨 서비스 센터 및 훈련시설. 제1 연습구장.
삶의 패턴이 정상으로 돌아온 건 어제부터였고, 펩이 말한 대로 내 몸과 정신은 한결 더욱 가벼워졌다.
휴식의 중요성을 실감했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젠 다시 나아갈 때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2차전에서 우리가 지배해야 할 구역은 바로 이 거대한 직사각형이야!”
“…….”
시즌을 준비하던 작년 여름부터 우린 줄곧 피치를 세로로 길게 삼등분하고, 또 그것을 다시 세 개에서 다섯 개로 나누어 훈련을 해 왔다.
이것은 펩이 중요하게 여기는 철학이 가장 많이 녹아난 것으로,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훈련이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챔피언스 리그 8강전 두 번째 경기를 앞두고 같은 상황 앞에 섰다.
차이점이라면, 피치를 나눈 방법이다.
펩은 피치 전체를 세로로 길게 다섯 개로 나누어 가운데의 바로 옆. 그러니까, 2번과 4번의 위치가 다가올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했다.
“맨유는 빠르게 골을 넣기 위해 우리를 강하게 압박해 올 거다! EPL의 거친 스타일을 살려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을 거야! 난 너희들이 그런 상황에서 다치길 바라지 않는다!”
“…….”
“그래서 내가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이 위치다! 이틀 뒤엔, 반드시 이 위치에 항상 사람이 머물러야만 해!”
이곳에 항상 사람들을 남겨 두기 위해, 펩은 기이(奇異)한 포메이션을 준비해 왔다. 차라리 거꾸로 뒤집는 게 훨씬 더 눈에 익숙한 그런 전형이다.
하비가 경고 누적으로 2차전 출전이 불투명한 만큼, 펩은 1차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접근을 하려는 것 같다.
“일단! 수비는 여기야!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반대편!”
우선 펩은 최후방에 두 명의 수비수를 놓아두고, 그 바로 앞에 한 명을 추가로 배치하여 라볼피아나(Lavolpiana) 역할을 맡기려고 했다.
필리프와 토니가 후보군에 들 것 같았고, 아니면 바스티가 저 역할을 맡아 줄 수도 있다.
‘아니, 바스티가 낫겠어.’
처음은 필리프가 당연히 저 위치에 설 것 같았는데, 펩의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바스티가 더 괜찮아 보였다. 전처럼 수비적으로 헌신하다는 가정하이지만 말이다.
“이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은 볼의 보급이다! 차이라면…….”
“응?”
“지금 누가 저기 저 위치에 서 보겠나? 더미를 놓아둔 바로 저기 말이야.”
펩의 말에 코치들 중 두 사람이 얼른 움직여, 미리 세워 두었던 더미(Dummy)의 옆에 섰다.
그러자 만족스러운 듯, 펩이 설명을 이어 간다.
“생각해 보라! 상상하는 건 늘 중요하니까 말이야. 봐! 상대가 어떤 식으로 압박해 올지를 상상해 보라고! 센터백들이 볼을 받으면, 맨유는 곧바로 압박을 하겠지!”
이번에 움직이는 건, 맨유 선수 역할을 맡은 클럽의 B팀 선수들이다. 아우크스부르크 원정에 참여했던 이들로, 어제 함께 회복 훈련을 한 데 이어 오늘도 훈련을 돕고 있다.
“상대가 압박을 해 오면! 센터백들이 가장 먼저 봐야 하는 사람은 눈앞에 있는 젝서다! 그리고 이번엔 순탄하게 볼이 이어졌다고 생각하지.”
성큼성큼 펩이 걸어가고, 그런 그를 따라 잔디에 앉은 우리의 고개와 눈알이 움직인다.
난 이런 순간을 늘 사랑해 왔는데, 학생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고 축구를 제대로 배우고 있다는 느낌이 확 와닿아 정말로 행복했다.
얼마 뒤 펩은 젝서의 위치에 섰고, 우리에게 이곳에서 볼을 잡았을 때의 풍경을 생각해 보라고 했다.
‘음- 좋네.’
맨유가 어떤 식으로 압박해 올지는 경기일이 되어 봐야 알겠지만, 그래도 큰 틀은 벗어나지 않을 거다.
만약 저 위치로 볼이 배급되면, 상대의 압박을 벗겨 내는 일은 한층 더 편안해질 거다. 왜냐하면 자신을 중심으로, 네 명의 동료가 둘러싸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는 말은.
‘중앙을 낮추는 걸까?’
라인을 끌어내리는 것은 펩의 철학과 전혀 맞지 않아 보이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초반 공세를 넘길 때까지만 수비적 태도를 보이는 건 전술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괜히 무리하게 공간을 뒤쪽에 많이 두는 것도 걱정이고, 무엇보다 모레는 1차전처럼 뛰기 어렵다.
나도 나지만 나 못지않게 전술의 핵이 되어 주던 하비 마르티네스가 뛸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중앙 미드필드 두 명을 아래로 당겨 젝서에게 옵션을 많이 만들어 두게 되면, 공격 전개는 느리더라도 압박을 벗겨 내는 건 수월할 거다.
하지만.
“응?”
내 생각이 틀렸다.
“저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은 측면 수비수다!”
“?”
“농담이 아니다. 빌드업 상황에서, 기본적으로 저 위치에서 패스를 받는 일은 풀백이 한다. 넓게 벌려서 있다가, 순간적으로 다시 좁혀 주는 거야.”
펩은 우리 풀백을 중앙으로 이동시키려고 했다. 대신 두 명의 아흐터(Achter)를 가운데가 아닌 직사각형의 위쪽. 그러니까, 인테리오(IF)의 자리에 두려고 했다.
다시 말을 하자면, 이 기다란 직사각형 중 2번과 4번의 위치에만 여섯 명의 필드 플레이어를 세워 두겠다는 것이었다.
꽤. 아니, 정말 파격적인 시도다.
“그리고!”
‘또?’
하지만, 여전히 끝이 아니었다.
“맨유는 공세를 취하려는 탓에 수비가 굉장히 높은 위치에 있을 거다. 내일은 중앙을 중심으로 굉장히 공간이 좁을 거야! 그러니 우린 그 뒷공간을 노려야 한다! 저들도 그럴 거니까, 당연한 부분이다!”
펩은 스트라이커를 메디아푼타(AM)의 위치까지 끌어내려, 펄스 나인과도 같은 역할을 주려고 했다. 그리고 측면에 넓게 벌려 있던 윙어가, 그 뒷공간으로 파고든다.
그들이 설 최종 위치 또한 직사각형의 가장 윗부분에 있으며, 그렇게 되면 사실상 여덟을 이 공간에 두는 셈이 된다.
가장 중요한 측면을 비워 둔다는 발상에, 훈련장엔 엄청난 혼란이 내려앉았다.
그러자 자연스레, 시선은 내게로 향했다.
물어보라는 눈빛.
하여간에, 정말.
결국, 난 손을 들어 올린다.
“저- 펩?”
“뭐지?”
“이건 그래도 기본적인 큰 틀이고, 움직임은 유동적이죠. 그렇죠?”
“물론이다.”
펩은 최초 5~10분 정도는 이러한 방법이 통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상대도 수준이 높은 만큼 이에 대처할 것이고, 그때부터는 변화를 주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그 방식은 우리 선수들이 자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피치 위 상황에 달렸기 때문이다.
“이해가 조금 어렵나 보군.”
“조금이라고?”
“쉬잇- 듣겠어.”
펩이 머리를 긁적이며 한쪽으로 움직이자, 주변에서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하루 이틀의 일도 아니건만, 다들 황당해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하긴, 나도 이런 만화 같은 축구는 처음이다.
실제 이것이 먹혀들까 궁금하다가도, 지금까지 펩이 이룩해 온 업적과 함께하며 겪은 경험을 떠올리면 일단 입을 다무는 게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잠시 뒤, 펩이 다시 젝서의 위치에 섰다.
“좋다, 질문.
‘오-!’
내가 좋아하는 질의응답 시간이다.
모범생이 될 수 있는 기회랄까?
“상대가 우리의 작동 방법을 눈치챘다고 가정하지. 그럼 상대는 전방에 선수를 보내어 압박을 해 오려고 할 거야. 어떤 위치에 선수가 있을지를 알고 있으니, 거기로 선수를 보내겠지. 그럼 너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펩의 질문에, 내가 손을 든다.
“다온.”
“간단해요. 움직여야죠.”
“바로 그거다.”
이 시간이 참 좋은 이유는, 대답을 하다 보면 스스로 이미 정답을 알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정작 답은 너무나도 간단한 것인데, 우리는 종종 틀 안으로 들어가 스스로를 가둬 버려 눈앞에 놓인 답을 놓쳐 버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이 좁은 공간에 다섯 명을 둔다. 이 말은, 맨유도 압박을 하려면 다섯을 두어야 한다는 말이지.”
다섯 명이 전방 압박이 의미하는 말은, 그 뒤에는 다섯 명의 필드 플레이어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과도 같다.
만약 풀백이 측면으로 이동해 공간을 넓히게 되면, 압박하는 쪽에서는 위험 부담이 많다고 생각해 포기해 버린다.
기껏해야 센터백과 젝서에게 압박을 가할 것인데, 그렇게 되면 항상 측면 풀백 중 한 사람은 빈다는 결론이 선다.
맨유가 우리처럼 4-1-4-1을 쓰지 않는 이상, 4-2-3-1/4-3-3은 전방 압박에 동원할 수 있는 선수의 숫자가 제한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좌우로 벌려 있다 공격을 빠르게 전개할 타이밍이 오게 되면, 풀백은 다시 저 위치로 옮겨 중앙 빌드업에 숫자를 보탤 수 있다.
전방 동료의 움직임에 따라 유동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부분이야 말할 것도 없다.
일반적으로 이런 전술 훈련을 한다는 건, ‘반드시 이렇게 움직여야 한다.’가 아닌, ‘이런 방법도 쓸 것이니, 선택지에 넣어 두어야 한다.’는 말에 더 가깝다.
그러니 무조건이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보단, 이런 방법도 있구나 하며 솔직하게 감탄하는 게 더 좋은 태도가 된다.
“좋아! 그럼, 시작하지!”
길었던 설명 시간이 끝나고, 이제 우리는 펩의 이상을 현실로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몇 번이나 휘슬이 불리고.
삐—익!!!
삑-!!
때론 답답함에 외치는 커다란 목소리도 들려오고.
“그만-!! 그게 아니잖아!!!”
“데이비드!! 왜 거기로 갔지?! 앞의 상황을 봐야지!!”
“아르연! 모르겠어?! 너까지 거기로 가게 되면, 그곳에 이미 있을 선수와 동선이 겹쳐 버리잖아!!”
또 가끔은 참다못한 거친 단어가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이런, 제기랄!! 마리오!!”
“그만!! 이런, 병신 같은…….”
나는 결국 우리가 펩의 입에서 이 단어를 끄집어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Wunderbar!! 바로 그거야!!”
봤지?
그렇다고 했잖아.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쯤에 되어서야, 우린 길었던 하루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다들 녹초가 될 만큼 지쳐 있었는데, 그건 훈련의 강도보단 머리를 많이 써야 했기 때문일 거다. 최근 내가 쉬었던 것처럼, 동료들도 이젠 휴식이 필요하다.
다만.
“이봐.”
“……이해가 안 돼서 왔구나. 그렇지?”
“응. 얼른 설명해 봐. 안 그럼 집에 가는 내내 프랑크가 내게 왜 미리 알아 오지 않았냐고 구박할 거니까.”
“하하하.”
내가 푹 쉴 수 있는 시간은 남들보다는 조금 뒤가 될 것이다. 그것은 필리프도 마찬가지였는데, 지금 그에게도 몇몇 동료들이 붙어 아까의 훈련 내용을 묻고 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건 데이비드 알라바다.
이 친구는 매일 리베리와 출퇴근을 한다.
“좋아. 뭐가 이해가 안 되는데?”
“타이밍. 이유. 그리고 전부.”
“큭큭큭큭. 제기랄. 빨리 말해야겠네.”
“알면 얼른! 이제 곧 씻어야 한다고.”
“좋아. 잘 들어. 그건 그러니까…….”
난 매일같이 이렇게, 축구와 점점 더 사랑에 빠져들고 있다.
***
[펩 과르디올라, “하비가 출전할 수 없어, 1차전과 같은 방법을 쓸 수는 없을 것이다.” – 키커/2014.04.08.(오후)] [사전 인터뷰에서 변화를 예고한 펩 과르디올라. 센터백 다온은 볼 수 없을 것인가? – Sky Sports(E)/2014.04.08.(오후)] [데이비드 모예스, “좋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축구공은 둥글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아직 절반이 남았다.”- BBC/2014.04.08.(오후)] [챔피언스 리그 결과에 따라 모예스의 거취를 결정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보드진 ? 맨체스터 이브닝/2014.04.08.(오후)]***
2014년 4월 8일. 81547 뮌헨, 독일. 재베너 슈트라세 51-57. 바이에른 뮌헨 서비스 센터 및 훈련시설. 퍼포먼스 센터, 감독실.
똑똑똑-
“응?”
경기 일을 하루 앞두고 최종 준비에 한창이던 펩 과르디올라의 사무실 문을 누군가가 두드렸다.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은 그것이 클럽의 회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안경을 벗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카를-하인츠 루메니게를 맞아들일 준비를 했다.
둘은 잠시 뒤, 사무실 안 소파에 앉았다.
“준비는 잘 되고 있나?”
“다행히도, 그렇습니다.”
“꽤 파격적인 전술을 준비한 것 같더군. 선수들 사이에서 도는 말이 내게까지 들릴 정도야.”
“하하하.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런가?”
“뭐, 선수들이 보기엔 또 모르는 거죠.”
올드 트래포드에서의 원정 경기 이후, 펩 과르디올라와 그를 뮌헨의 새로운 감독으로 임명한 내부 세력들의 입지는 한층 더 공고해졌다.
경기 다음 날 슈테판 에펜베르크가 방송국으로 돌아가 본인이 출연하는 TV 프로그램에서 펩과 김다온을 극찬했고, 클럽 대표 파울 브라이트너는 ‘ARD’와 이런 인터뷰를 했다.
[“나는 클럽이 세 명의 환상적인 월드클래스 풀백을 보유했다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럽다.”]이는 람-알라바-김다온을 향한 말로, 그간 유독 김다온에 박하던 세간의 인식을 한 번에 뒤집어 버린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프란츠 베켄바워가 다시 예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알리안츠를 찾겠다고 약속했으며, 친분이 있는 키커의 기자에게 전화해 이런 뉘앙스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바이에른 뮌헨의 수뇌부는 현재,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회장이 보여 준 행보에 크게 만족하고 있다.]이러한 것들로 인해 루메니게의 입지는 한층 더 공고해졌고, 클럽 레전드들의 적극적인 지지로 뮌헨이 자급을 유입시키는 일에도 한층 더 탄력을 받게 되었다.
결과가 곧 돈으로 직결되는 프로 스포츠에 있어 맨유와의 1차전처럼 ‘스타(STAR)’라 부를 수 있는 존재의 등장과 각인은 그 어떠한 광고보다도 더욱 효과적인 법이다.
물론 김다온은 이전부터도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선수였지만, 이젠 한 단계 더 높은 위치에 올라섰다.
“아, 늦었네만.”
“?”
“지난 경기에서 유스들을 활용한 것은 잘 봤네.”
“이런! 그거 칭찬인 겁니까?”
“물론이지! 왜 아니겠나?”
“사실 그 경기는 20점짜리도 되지 않았습니다. 정말 간신히 수치를 모면한 거죠.”
“하하. 그렇다고 치세나.”
평소라면 조금은 언짢게 반응했을 루메니게지만, 지금 당장은 무엇이든 전부 다 괜찮았다.
오늘만 해도 뮌헨 측으로 두 개의 기업이 스폰서 문의를 해 왔고, 이것으로 클럽이 벌어들일 수 있는 수입은 적게 잡아도 연 450만 유로는 되었다.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게 다 행복한 지금, 평소 신경을 긁곤 했던 펩의 완벽주의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네의 축구는 늘 흥미로웠지.”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하죠.”
“개척자들은 늘 외로운 법이지. 인간의 99%는 안정적이기를 바래. 남들이 닦아 놓은 길을 걸으면서, 그 안에 속하기를 즐기지. 그러면서 누구보다 행복하길 원한다네.”
“모순이라고 말하실 겁니까?”
“아니. 그렇지 않네. 어떠한 의미에서는 그들이 더욱 현명할 수도 있어. 모험은 항상 실패를 동반하는 법이니까.”
“…….”
가끔 아내와 함께 이야기를 할 때면, 펩은 FC 바르셀로나의 성공이 없었더라면 삶이 얼마나 끔찍해졌을지를 이야기하고는 했다.
만약 그랬더라면 당장 프로팀 감독을 관두고, 마음을 둘 수 있는 장소에 틀어박혀 평생 어린아이들이나 가르쳤을 거라면서 말이다.
세간의 평가 속에서 펩은 이미 선구자였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 활로를 열어 준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무모함도 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결국은 같은 뜻이건만.
“하지만 난 모험을 하기에 적합한 때라고 생각했네. 그래서 울리와 함께 자네를 적극적으로 이 클럽으로 데려온 거야. 또 다온을 영입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도 않았지.”
“네. 그랬죠.”
“약속하겠네, 펩. 내가 늘 자네를 지켜 주겠어. 자네는 그저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이 팀을 잘 이끌어주면 되네.”
“훗. 그것 참 든든한 말이로군요.”
루메니게의 적극적인 지지에도, 펩은 그것을 온전하게 믿지 않았다. 최근에 있었던 작은 성공들이 뮌헨의 회장을 취하게 했지만, 결국 언젠간 취기는 가실 거다.
실패라는 차가운 발톱이 할퀴고 간 순간, 지금의 이런 따스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을 게 분명했다.
FC 바르셀로나와 비교했을 때 바이에른 뮌헨은 천국 그 자체였지만, ‘Wir Sind Wir’라는 철학은 카탈루냐가 지닌 폐쇄성을 고스란히 닮아 있었다.
언젠가 자신이 클럽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끼면, 뮌헨은 그 순간 가차 없이 돌아설 게 분명했다.
성적이 나쁘다면야 당연히 이해를 할 수 있지만, 지금 펩의 생각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카를-하인츠 루메니게가 생각하는 바이에른 뮌헨만의 정체성과 철학.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진 이유가 된 오랜 역사 속에서 피어난 수많은 정치적 요소들을 말하는 거다.
축구 그 자체가 아닌 클럽의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축구를 생각하는 이들은, 절대로 순수해질 수 없다.
바이에른 뮌헨에 부임한 지난 10개월 동안, 펩이 느낀 바는 위와 같았다.
“…….”
루메니게가 떠나고, 펩은 불이 꺼진 그라운드를 내려다본다.
‘서글프군. 하지만.’
수많은 연봉을 받는 축구 스타들. 그리고 하나의 클럽에 속해 일을 하며 받는 돈으로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 마지막으로 자신처럼 돈을 받고 클럽의 성적을 이끌어야 하는 감독들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것들이 얽혀 있는 이상, 절대로 축구는 순수해질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구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펩 과르디올라였기에, 그는 짧은 시간이나마 축구 그 자체에 빠져들 수 있는 90분을 사랑하고 있었다.
‘동시에 놀라워.’
처음 축구와 사랑에 빠져든 풋풋한 시절을 지나, 이면의 추한 모습들을 몽땅 본 뒤에도 여전히 더 빠져들 수 있는 자신을 보며 놀라워했던 시간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는 곧, 한동안 정체되어 있던 축구에 대한 애정이 다시금 깊어지고 있는 지금을 생각했다.
그 이유는 물론.
부르르르-
“응?”
생각에 잠겨 있던 펩을 다시 테이블로 이끈 것은, 메시지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휴대폰의 작은 진동이었다.
자리로 돌아간 그가, 위에 놓은 아이폰을 집어 든다.
그러곤.
“풋- 하핫! 하하하하하.”
화면을 확인한 펩은 계속해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그의 얼굴엔 조금 전까지 깃들어 있던 작은 자기혐오와 자조(自嘲) 따윈 조금도 없었다.
올 시즌 몇 번이나 그랬던 것처럼, 펩의 얼굴엔 어린아이와도 같은 환한 미소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런! 지금까지도?’
왜냐하면 화면 속 사진엔, 집으로 돌아가 내일 경기의 전술을 끊임없이 고민한 어떤 남자의 노력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김다온은 이번에도, 펩이 바라는 축구를 완벽히 이해했다.
다른 이들은 아마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괜찮을 거다.
‘뭐, 이제 시작이니까.’
리오넬 메시라는 위대한 존재에 기댔던 지난날을 뒤로하고, 펩 과르디올라가 진정으로 꿈꾸던 축구는 김다온과 함께 조금씩 그 싹을 틔워 가고 있다.
한 차례 숨을 고른 펩이 손을 움직여 답장을 보낸다.
톡- 토독- 톡.
축구란, 강한 팀이 늘 승리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축구란.
‘승리하는 쪽이, 강한 거야.’
펩 과르디올라는 언젠가 김다온이 스스로 이를 깨우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
작가의 말 ? 글의 초반부에 나온 설명 부분은 실제 펩 과르디올라가 2013/14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챔피언스 리그 8강 2차전 때 전반전에 쓴 전술을 설명한 겁니다.
하지만 당시 뮌헨에서 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선수는 필리프 람 한 명뿐이었고, 전반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펩은 4-1-4-1로 다시 전술을 바꿔서 임합니다.
아래 포함된 사진은 당시 뮌헨의 전반전 포메이션을 설명하는 것으로, 제가 자료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사이트에 올라온 2014년 4월 2일 기사의 사진을 그대로 가져온 겁니다.
단테-보아텡/알라바-람/괴체-뮐러가 현대 축구에서 흔히 하프스페이스라 부르는 세로 직사각형에 일직선으로 놓여진 것을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다만 하프스페이스라는 개념이 미디어에 의해 통용되기 시작한 건 2015/16 시즌 중반부터로, 본문상에 해당 단어를 적지는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