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356)
355화
카를로 안첼로티가 가레스 베일을 벤치에 놓아둔 이유는 수비 때문이었다. 낮은 확률이긴 하지만, 4:0 승리처럼 0:4 패배 또한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1차전 때 뮌헨이 역습에 전혀 대처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혼자로도 충분히 공략할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수비 상황에서는 앙헬 디 마리아를 아래로 내려 수비의 숫자를 더하고, 역습 시에는 이스코와 함께 볼을 연결해 주는 존재로서 실력을 보여 주길 바랐다.
메수트 외질의 아스날 이적 후 메짤라(Mezz`ala/CM) 역할을 쏠쏠히 수행한 디 마리아기에, 카를로 안첼로티의 결정은 꽤 괜찮아 보였다.
그러나.
.
(배정세) – SBS Sports 아나운서
“슈바인슈타이거! 슈우우우우웃-!! ……고오오오오올-!!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득점! 김다온의 어시스트!! 전반 6분 만에 추가 골을 기록하는 바이에른 뮌헨입니다!! 이제 종합 전적은 4:2! 두 골 차가 됩니다!”
(정지현) – SBS Sports 해설위원
“이야~! 실로 엄청난 기세입니다! 펩 과르디올라 감독. 카를로 안첼로티의 허를 찌르는 전술을 준비해 온 것 같습니다. 지금도 보면 김다온 선수가 마치 풀백처럼 뛰었거든요? 아래쪽에서부터 시작된 김다온의 엄청난 침투! 그리고 훌륭한 컷백을 슈바인슈타이거가 마무리합니다.”
.
전반전 6분 만에, 카를로 안첼로티는 본인의 결정을 의심해야 할 입장이 되고야 말았다. 공격과 수비 모두에서, 레알 마드리드는 계속 숫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카를로 안첼로티는 이제, 수십 개의 눈과 마주한다.
“…….”
연속해서 두 개의 실점을 허락한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은 혼란스러워 보인다. 그들은 벤치를 돌아보며 감독이 상황을 반전시킬 방법을 알려 주길 원했다.
하지만, 그것은 카를로 안첼로티가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경기 도중 전술을 바꾸는 남자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카를로 안첼로티는 전술가가 아닌 운영가이고, 사키이즘(Sacchism)에 기반한 그의 축구 철학은 플랫 형태의 4-4-2라는 큰 틀을 절대로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안첼로티가 택한 행동도,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거였다.
테크니컬 에어리어로 걸어 나가, 기대를 품고 자신을 쳐다보는 선수들에게 진정하라는 제스처를 보낸 것이다. 그런 뒤에는 모드리치와 알론소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루카!! 사비!!”
카를로 안첼로티는 큰 틀을 구성한 뒤에, 세세한 부분을 전적으로 선수에게 맡기는 축구를 선호한다. 그리고 그 수준을 높이기 위해 뛰어난 메디아노(Mediano/MF)를 두어야 했다.
특히 레지스타(Regista)로 정의되는 플레이메이커는 거의 필수적이라, 그들이 있어야만 팀에 개성이 더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다.
PSG 시절에도 마르코 베라티(Marco Verratti)와 블레즈 마튀디(Blaise Matuidi)가 그런 역할을 했고, 레알 마드리드에선 사비 알론소와 루카 모드리치였다.
‘저 둘이 해내야 해.’
안첼로티는 지금, 알론소와 모드리치가 활약을 해 준다면 뮌헨의 기세를 꺾을 수 있다 여겼다.
하나 이어진 빌드업 상황에서, 어디선가 나타나 강한 압박을 가한 슈바인슈타이거가 볼을 빼앗아 냈다. 그리고 안첼로티는 이런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다.
왜 자꾸 슈바인슈타이거는 이상한 곳에서 나타나는 것인가?
그는 분명 풀백인가? 아니면 미드필드인가?
무엇보다 저런 식으로 압박을 가한다면 오른쪽 공간이 넓게 비어 있어야 하는데, 어째서 공간은 있지만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는 없는 것인가?
‘……대체 왜.’
주머니에 손을 넣어 둔 채 굳은 표정으로 피치를 바라보는 안첼로티의 두뇌는 빠르게 회전하는 중이다.
***
·전반 14분
바이에른 뮌헨 2 : 0 레알 마드리드
“…….”
전광판을 바라보던 펩 과르디올라의 고개가 본래의 위치로 되돌아온다.
이제 조금 있으면, 첫 번째 고비가 닥쳐올 것이다.
뛰어난 축구 이해도를 지닌 선수는 대략 10분 정도가 되면, 상대 전술의 기본적 메커니즘을 파악한다.
그것이 낯선 것이라면 약간의 시간이 더 걸리기도 하지만, 15분이 지나게 되면 평균적인 이해도를 지닌 선수라도 피치의 어떤 곳에 공간이 있는지를 깨닫는다.
레알 마드리드엔 축구계를 통틀어 상위 1%에 자리할 만한 두뇌들이 있었고, 그들이 활용 가능한 기술(앙헬 디 마리아), 드리블(이스코), 속도와 힘(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을 갖춘 선수들 역시 있다.
특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폭발력은 반드시 견제해야만 하는 것이었는데, 지금까진 자신이 택한 전략이 맞아떨어져 가는 듯했다.
지금도 호날두가 왼쪽 측면에서 안쪽으로 드리블을 시도했지만, 필리프 람과 김다온. 여기에 하비 마르티네스까지 가세한 협력 수비에 막혀 볼을 빼앗기고야 말았다.
만약 호날두가 패스를 택했다면 위험한 상황이 닥쳤겠지만, 아직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은 1차전 4:0 결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바이에른 뮌헨을 강타했던 ‘개인의 사회적 태만’이란 이반 스테이너의 이론이, 코파 델 레이 우승과 4:0 대승을 연이어 경험한 레알 마드리드에도 닥친 것이다.
이건 분명한 호재였다.
삐빅- 삐빅- 삐빅-
“…….”
경기 시작과 함께 맞춰 둔 손목시계에서 알람이 울리자, 그것을 끈 펩 과르디올라가 테크니컬 에어리어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는 곧 피치를 향해 소리쳤다.
이젠, 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다.
“ZWEI!! ZWEITES MUSTER!!!”
높게 들려진 그의 왼손은 검지와 중지 두 개가 펼쳐져 있었다.
그런 뒤엔 눈을 똑바로 뜨고, 피치 전체를 훑어보았다.
앞쪽에서 드리블을 시도하던 마리오 괴체가 볼을 빼앗기고, 축구공이 이케르 카시야스에게 향한 사이 바이에른 뮌헨의 포메이션에는 변화가 일어난다.
이제 바이에른 뮌헨의 전형은 다이아몬드 형태의 4-4-2가 되어 버린다.
하비 마르티네스가 센터백으로 내려서고, 필리프 람이 위치를 이동해 젝서(Sechser/DM)가 되었다. 그리고 중앙엔 오른쪽부터 토니 크로스와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섰고, 체너(Zehner/AM)는 마리오 괴체의 몫이 되었다.
그리고 펩 과르디올라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선수들을 보며 만족감을 느꼈다.
최초 전술을 구상하며 생각한 바에 따르자면, 전반 15분이 지난 지금부터 진짜 시험이 닥쳐올 것이다.
실제로 조금 뒤.
“이봐아-! 막아!!”
입가에 손을 모은 펩 과르디올라의 목소리가, 피치 한쪽에서 크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다급한 상황이 연이어 펼쳐지고, 난 반대편을 향해 굴러가는 축구공을 보며 절망적인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곳엔 뮌헨의 유니폼을 입은 이는 아무도 없었고, 오직 앙헬 디 마리아 혼자 볼을 처리할 준비를 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다급하게 방향전환을 한 노이어가 손을 뻗지만, 디 마리아의 오른발에 닿은 슈팅은 골라인을 넘어선다.
{“아아아…….”}
관중석 한쪽에서 커다란 탄식이 터져 나오고, 나 역시 머리에 양손을 가져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무렵, 다이빙 후 재빨리 일어선 노이어가 피치 한쪽을 가리키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응?”
노이어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깃발을 들고 있는 부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프사이드였다고?
진짜?
.
(배정세)
“오프사이드! 오프사이드가 선언되는 것 같습니다! 바이에른 뮌헨으로서는 천만다행인 순간이었습니다. 모드리치의 송곳 같은 패스가 호날두에게 연결되었는데, 바로 이 타이밍에서 오프사이드에 걸린 것 같습니다.”
(정지현)
“느린 장면으로 나왔으면 하는데 말이죠. ……아, 오프사이드가 맞는 것 같죠? 얼핏 동일선상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호날두가 서 있는 잔디의 색상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으실 겁니다.”
(배정세)
“위기를 모면한 뮌헨. 전반전 15분이 넘어가면서부터는 레알 마드리드도 위협적인 장면들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
펩은 예전부터 우리에게 이런 말을 했다.
축구란 종목의 특성에 대해 말이다.
[“10분! 전술적으로 하나의 팀이 다른 팀을 지배할 수 있는 시간이다! 최대 15분이지!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반드시 상대는 그 전술의 허점을 공략해 온다!”]그리고 이틀 전엔, 자신이 얼마나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에 목말라 있는지를 알려 줬다.
[“5분이다! 우리는 5분 동안 잠깐 수비적인 자세를 취한다! 망설일 것 없다! 11명 전원이 하프라인 아래에 내려선다!”] [“노력을 아끼지 마라! 이 5분은, 너희가 가장 많은 것을 쏟아부어야 할 순간들이다! 그리고 만약 우리에게 운이 따른다면, 우린 그 순간을 쉽게 넘길 수 있다!”]시즌을 통틀어 보더라도, 지금처럼 우리가 수비에 집중하고 있는 순간은 없었다. 평소라면 비워 두었을 공간을 채웠고, 공격 본능을 억제하며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렸다.
종합전적 2:4로 뒤진 상황에서 수비에 힘쓰는 이 5분이 아깝기 그지없었지만, 그저 펩을 믿으며 인내하고. 인내하고. 또 인내할 뿐이다.
지금처럼 심장이 철렁한 순간이 지나간 뒤에도, 우린 수비에 집중하며 레알 마드리드의 공세를 버텨 내고 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다시 호날두와 마주한다.
“후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전차와도 같은 인상을 안겨다 주고 있다. 그냥 전차가 아니라, 전술적인 요충지를 잘 아는 사령관을 태운 철갑을 두른 탱크였다.
단순히 오픈 스페이스 상황에만 강점을 지니는 게 아니라, 패스를 받아 내는 위치가 기본적으로 까다롭다.
본인이 가진 장점이 무엇인지를 너무나도 잘 아는 남자 같았는데, 메시가 FC 바르셀로나의 전술 그 자체라면 호날두는 레알 마드리드의 무기고 그 자체다.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고 슈팅이 나올 수 있고 그것이 즉시 골로도 연결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마크하는 내내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 수비하는 입장에선 무척 괴롭다.
슈팅을 막으려 거리를 좁혔다간 돌파를 당할 것이고, 그렇다고 거리를 두자니 슈팅이 두렵다.
차라리 사이드라인 부근에서 움직이다 패스를 받아든다면 모르겠지만, 전반전 15분이 지나면서부터는 아예 포처(Porcher/골게터)처럼 뛰기 시작했다.
오히려 카림 벤제마가 아래로 내려가 측면으로 볼을 전달하는 연계를 도맡고 있는 상태다.
‘슛?’
파이널써드 부근에서 1:1로 마주한 호날두가 가볍게 오른쪽으로 볼을 차 넣으며 스텝을 밟았고, 슈팅을 견제하고자 왼발을 뻗어 보지만 결국 속임수였다.
한 차례 더 중앙으로 볼을 차 넣은 호날두가 각도를 넓혀 나갔는데, 나는 여기에서 선택지를 마주하게 된다.
따라붙어야 할까?
아니면?
왼쪽 멀리엔 분명, 파비우 코엔트랑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크로스를 생각하고 있을 거다.
무엇보다 굳이 저 위치에서 슈팅까지 연결하지 않더라도, 호날두는 측면으로 볼이 움직인 사이 페널티 박스 안으로 진입하여 누구보다 높이 뛰어오를 수 있다.
호날두의 헤더 능력은 현재 단연코 세계 최고이며, 코엔트랑은 분명 그를 겨냥한 크로스를 시도할 거다.
보아텡과 하비가 견제를 해 주기야 하겠지만, 상대가 상대인 만큼 엄청난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망설임이 내 발을 묶어 둔 그 순간.
“응?”
슈팅 준비 과정에 돌입한 호날두의 뒤쪽에서, 슈바인슈타이거가 나타나 볼을 가로챘다. 정확히 축구공만을 건드려 빼낸 동작에, 세계 최고의 공격수가 헛발질을 휘두르고야 만다.
부—–웅!!
끝까지 볼에 집중한 슈바인슈타이거가 일단 멀리 축구공을 클리어해 내고, 뒤를 돌아본 그는 나를 똑바로 바라본 채 이렇게 소리쳤다.
“뭐 하고 있어?! 망설이지 마!!”
“에?”
“붙을 거면 끝까지 붙고, 아니면 빠져 줘야지! 너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헷갈리잖아! 그리고 토니!! 넌 뭐야?! 왜 얘를 안 돕는 거야?!”
“…….”
내게 소리 지르는 바스티의 모습은 실로 오랜만이다. 요즘은 소리는커녕, 눈길 한 번 슬쩍 주고 멀리 사라지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고, 그의 지적은 무척 옳았다.
난 망설이면 안 됐다.
특히 상대가 호날두라면 더더욱.
“이 병신들아!! 잊었어?! 우린 여전히 뒤지고 있어!! 지금 리스본으로 가는 건 우리가 아닌 쟤네라고!!”
연신 소리를 내지르는 바스티는 마치 사자처럼 느껴지고 있다. 그가 알아듣지 못하는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사자 그 자체 말이다.
어쩐지 콧구멍에서 김이라도 뿜어져 나올 것만 같았는데, 바스티는 그 대신 코를 팽하고 풀어 버렸다.
에이. 못 볼 걸 봐 버렸잖아?
하지만.
‘그래. 그렇게 나오셔야지.’
난 지금의 바스티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처음 바이에른 뮌헨에 합류를 했을 때, 훈련장과 경기장 내에서 가장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던 사람이 바스티였다.
한국식으로 따지자면, 딱 군기반장의 느낌이었다.
오른쪽 측면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스로인이 이어지는 과정을 무사히 넘겨 낸 뒤에도, 지금 바스티는 수비진 전체를 쳐다보며 끊임없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그렇지만 저건 격려의 의미가 아니라.
“Lass uns gehen!!! 좀 더 뛰라고!!”
더 열심히 하라고 채찍질을 하는 것이다.
저건 몇 개월 전의 바스티다.
‘제기랄. 한 방 먹었잖아?’
입가에 자꾸만 미소가 피어오르고, 골킥을 준비하던 노이어가 오른쪽 측면으로 넓게 벌려 있는 내게 패스를 보내온다.
레알 마드리드의 전방 압박은 그리 강하지 않다.
일정한 라인을 정해 두고, 그 위는 간섭이 없다.
천천히 드리블을 한 나는 벤제마와 호날두를 끌어당겼고, 그런 뒤에 하비에게 볼을 보내면서 후방 빌드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Dritte!! Drittes Muster!!”
펩은 세 번째 전술 변화를 우리에게 알려 왔다.
***
마드리드, 스페인. 28221 마야다혼다. 시우다드 데포르티바 완다 아틀레티코 데 마드리드(Ciudad Deportiva Wanda Atletico de Madrid. 28221 Majadahonda. Madrid, Spain).
베르나베우에서 차로 약 25분 정도 떨어진 곳엔, 레알과 지역 라이벌 클럽인 아틀레티코의 훈련시설이 있다.
그리고 이곳의 한 사무실 안에서, 멋진 아우라를 물씬 풍기고 있는 중년의 사내가 TV 화면에 집중해 있다.
‘멋진 축구로군. 얼핏 산만해 보이지만, 일관성이 있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감독 디에고 시메오네.
그는 챔피언스 리그 4강전 두 번째 경기를 하루 앞두고, 퇴근을 미뤄 둔 채 결승 상대가 될지도 모르는 팀의 경기를 생중계로 시청 중이었다.
‘흥미로운 위치야.’
꼬았던 발을 풀며 테이블 앞으로 상체를 숙인 디에고 시메오네가 펜을 집어 들어 노트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간다.
‘이곳. 그리고 이곳. 반대편도…….’
텅텅 비었던 곳에 검은색 직선과 곡선이 빠르게 채워지고, 중간중간 TV에 시선을 둔 디에고 시메오네는 뭔가를 느낄 때마다 그것을 노트의 빈 공간에 써 내려가길 반복했다.
그리고 불과 3분 만에, 시메오네는 페이지를 넘긴다.
스르륵-
이제 다시, 새하얀 백지가 생겨났다.
현재까지 바이에른 뮌헨은 총 세 개의 포메이션을 사용했다. 처음은 3-4-3으로 시작했고, 중간 다이아몬드 형태의 4-4-2로 전환이 되었다가 지금은 다시 4-3-3이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전술이 변화할 때마다 경기의 양상은 극적으로 바뀌었는데, 5분 정도 수세에 몰렸던 뮌헨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공세를 취하고 있다.
지금만 하더라도.
“오- ……아깝군.”
아르연 로번의 절묘한 감아 차기가 크로스바의 위를 살짝 스쳐 지났다.
30cm 정도만 낮았더라면, 이케르 카시야스의 손을 지나쳐 득점으로 연결되었을 슈팅이다.
‘일곱. 아니, 여덟인가?’
느린 장면에 시선을 고정한 디에고 시메오네가 다양한 각도로 나오는 로번의 슈팅을 보며, 화면 속에 있는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의 숫자를 살핀다.
순간적으로 뮌헨은 여덟의 숫자를 레알 마드리드의 진영에 두었고, 그것을 통해 수적 우위를 점했다.
여기에서 시메오네에게 가장 흥미로웠던 건, 김다온이 서 있던 위치다. 로번의 슈팅 직전, 화면 속 그가 잡힌 곳은 메디아푼타(Mediapunta/AM)였다.
하이라이트 장면이 끝나고 다시 먼 위치에서 비춰지자, 시메오네는 오른쪽 풀백 김다온을 볼 수 있었다.
‘대체, 얼마나 더 하려는 거지?’
문득, 디에고 시메오네는 독한 술이 끌렸다.
그래서 그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감독실 한쪽에 장식해 둔 작은 테이블로 다가가 술병과 잔을 집어 드는 와중에도, 디에고 시메오네의 눈은 TV 화면을 떠나지 않는다.
여전히 공략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은 어쩐지 조금 답답해 보였다.
호날두의 개인 기량에 의존해 몇 차례 슈팅까지는 이어 갔지만, 약간 부족했던 운과 많이 부족한 공격 숫자로 인해 득점을 만들어 내고 있지는 못했다.
지금도 호날두가 측면에서 드리블을 시도하다 고립이 되었고, 람과 김다온의 협력수비에 의해 볼을 빼앗겼다.
피치 위에 넘어진 그는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주심에게 파울을 어필해 보지만, 지금은 누가 보더라도 엄살이 가득 섞여 있는 플레이였다.
수비는 매우 깔끔했다.
다시, 바이에른 뮌헨의 공격.
볼을 빼앗은 후 빠른 공수전환을 보여 주고 있는 바이에른 뮌헨이 중앙으로 볼을 보내어 왼쪽으로 빌드업을 전개한다. 하지만 상황은 좋지 못했고, 결국 패스는 뒤로 움직인다.
그리고 이때 패스를 받아든 사람이 바로.
‘또?’
다름 아닌, 김다온이다.
풀백에서 메디아푼타로, 메디아푼타에서 풀백으로 돌아섰던 그는 이번엔 메디오 센트로(Medio Centro/CM). 아니, 그보다 조금 낮은 위치에서 볼을 공급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우리 스페인어로는 없어.’
잠깐 망설이던 디에고 시메오네가 발상을 전환키로 한다.
스페인식(式)사고를 잠깐 접고 2-3-5에서 시작해 ‘사키이즘’의 영향을 받아 4-4-2로 발전한 이탈리아식(式)사고를 곁으로 가져온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르면 지금 김다온은 레지스타였고, 뮐러와 괴체의 호흡이 맞지 않아 볼을 빼앗긴 순간에는 포지션을 이탈해 왼쪽으로 움직여 모드리치에게 태클을 시도했다.
보통의 선수라면 공수가 전환된 순간 본래의 위치를 찾아 움직였겠지만, 김다온은 그렇지 않았다.
또 다음 이어진 장면을 보며, 디에고 시메오네는 김다온이 그런 플레이를 한 근거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필리프 람이 오른쪽 풀백으로 이동해 김다온의 위치를 채웠고, 그래서 김다온은 ‘포메이션’이 아닌 ‘포지션’에 따른 역할을 수행하는 동작을 보여 준 것이었다.
“…….”
디에고 시메오네가 슬쩍 고개를 내려, 오돌토돌한 것들이 돋아 있는 팔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러다 이내 다시 무심한 표정으로 TV를 보았다.
까슬까슬한 수염으로 손을 가져간 디에고 시메오네의 콧김이 조금 거칠어지고, 그는 턱에 있는 손을 위로 가져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대체 내가, 무얼 보고 있는 거지?’
다음 세대를 주도할 거라고 여겨지는 축구 감독들 중, 스페인의 방식을 좇는 이들은 향후 축구의 흐름이 ‘포지션’과 ‘역할’로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디에고 시메오네도 과거의 것들을 꺼내 들어, 현대적인 의미로 재해석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와 과거 그 어떤 곳에서도, 김다온처럼 뛰는 선수를 설명하는 말은 없었다.
그는 오늘 하나의 경기에서 오른쪽 풀백, 센터백, 오른쪽 윙어, 중앙 미드필드, 수비형 미드필드에 이르는 다섯 개의 포메이션 롤(Role)을 소화했다.
왼쪽 사이드라인 부근을 제외한다면, 현재 그의 발이 닿지 않은 공간은 없을 것이다.
그나마 비슷한 것이 있다면 리베로(Libero)일 수 있겠지만, 그것 또한 김다온을 설명하기엔 모자랐다.
‘어렵군, 펩. 자넨 대체…….’
손에 쥔 열쇠와 함께 어떤 축구를 보고 있는 것인가?
디에고 시메오네는 지금, 당장이라도 펩 과르디올라에게 달려가 위와 같이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