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366)
365화
어째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환청(幻聽)이 들렸다.
전쟁터의 포화(砲火)와 헬리콥터의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소리 사이로, 채워졌을 리 없을 무전기에서 정체도 모를 누군가의 이야기가 들렸던 것이다.
[“MAN DOWN!! MAN DOWN!!”]순간 모든 것들이 슬로우 모션처럼 움직였고, 멍한 얼굴로 바라본 곳엔 억지로 고통을 참아 내고 있는 바이에른 뮌헨의 15대 주장이 있었다.
왼쪽 무릎을 정성스럽게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필리프 람이 날 발견하고 연신 손짓을 보내온다.
그와 동시에, 환청이 멈췄다.
그리고 뒤이어.
“이봐아-!!!”
벤치를 향해 다급하게 손을 움직이는 토니 크로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쇠렌 한케) – ZDF 코멘테이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을 만큼, 시즌 내내 부상이 바이에른 뮌헨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
.
(한희준) – KBS Sports N 해설위원
“아- 지금의 이 부상은 바이에른 뮌헨의 입장에서는 타격이 상당하겠는데요? 필리프 람은 올 시즌 뮌헨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 중 하나였습니다. 이렇게 되면 뮌헨은, 최악의 경우 두 명의 세계적인 미드필드 없이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치러야 할 수도 있겠는데요?”
(이후재) – KBS Sports N 아나운서
“펩 과르디올라 감독. 교체 선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
람의 곁으로 다가가자, 그가 몸을 숙여 달라고 한다.
그래서 난 허리를 잔뜩 앞으로 굽혔다.
왼팔을 뻗은 람이 내 목을 부드럽게 감쌌고, 이내 귓속말을 보내왔다.
“너라면 할 수 있어.”
“에?”
“난 끝이야. 이게 무슨 뜻인지는 알지? 그렇지만 너라면 할 수 있어.”
“…….”
목에 두른 팔을 뗀 람이 이번엔 오른팔을 움직여 왼쪽 팔뚝에 채워진 주잔 완장을 뗐다. 그러곤 그것을 부주장인 제롬 보아텡에게 넘겼다.
그는 내게 했던 것과 똑같이 보아텡의 목도 왼팔로 감싸며 귓속말을 보냈다.
그런 뒤엔 들것에 실리며, 침울한 얼굴로 주변에 모인 우리 모두에게 말했다.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서 미안해. 그렇지만 너희는 진짜 끝내주는 친구들이야. 내 말 알지? 우리의 축구를 해. 우린 바이에른 뮌헨이니까.”
“…….”
“조금 이따가 봐. 문병 선물은 트로피가 좋을 것 같아. 무슨 말인지 알지?”
애써 환하게 웃어 보이는 람의 모습에 더욱 마음이 아프다. 들것이 실린 그가 그대로 사이드라인 밖으로 나서고, 마넬 에스티아르테가 재빨리 움직이는 게 보였다.
그리고 펩은 지금 프랑크 리베리를 교체로 투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
“헤에-이!!”
“?”
이번에 내 고개는 크게 소리를 지르는 도메네크에게로 향한다. 그는 뮐러와 괴체를 부르며, 둘에게 조금 아래로 내려서라는 지시를 보냈다.
뜻밖에도 내 포지션 변화는 없는 것 같았는데, 추후 어떻게 될지는 좀 더 상황을 지켜봐야겠다.
아직 리베리가 투입되지 않은 지금은 11:10의 상황이었고, 이를 기회로 활용코자 도르트문트는 더욱 강도 높은 압박을 보여 주었다.
그러는 동안 공격진 전원이 하프라인 아래로 내려서며 숫자를 보태 줬고, 전방의 선수가 사라지게 되자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건 볼을 지켜 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혼전 도중 사이드라인 바깥으로 볼이 나갔고, 비로소 프랑크 리베리가 피치 위에 투입된다.
삐—익!!
간신히 다시 11:11로 숫자를 맞춘 상황.
하지만 팀 분위기는…….
‘빌어먹을.’
과연 얼마나 더 우린, 부상 때문에 괴로워해야 할까?
굵어지는 빗줄기와 더불어, 몸은 괜히 더 무거워지고 있다.
.
.
·전반 종료
바이에른 뮌헨 0 : 0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
·하프타임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실.
필리프 람의 빈 자리는 경기력에서 곧장 드러났다.
“펩, 변화가 필요해요.”
“……그래. 나도 알고 있네.”
람의 이탈 이후, 바이에른 뮌헨은 도르트문트에 주도권을 내주게 되었다. 가뜩이나 슈바인슈타이거와 알라바가 빠지면서 얇아진 선수층이다.
그런 상황에서 점유율을 높여 줄 수 있는 필리프 람의 볼 관수 능력이 빠져 버리게 되자, 자연스럽게 토니 크로스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본래 피치 중앙을 세로로 크게 오가며 공수의 연결 고리를 해 주었던 크로스였지만, 이젠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마리오 괴체와 토마스 뮐러가 아래로 내려왔다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둘은 공격수다.
두 사람에게서는 필리프 람이 보여 주는 안정감을 기대할 수 없었고, 이는 곧 도르트문트에겐 기회가 됐다.
위르겐 클롭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하프라인 앞쪽 20m 영역에서 자주 볼을 빼앗기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상대의 공격력이 살아나 버린 것이다.
그래서 바이에른 뮌헨의 코치들은 같은 영역에서 볼을 빼앗기지 않는 것을 우선 과제로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펩 과르디올라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가지. 변화를 주겠어.”
“펩? 어떻게요?”
“피치를 옮기는 거야.”
“???”
테이블에 비스듬히 기댔던 엉덩이를 뗀 펩 과르디올라가 라커룸을 향해 걸어가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은 코치들은 영문을 몰라 하면서도 일단 그를 뒤따랐다.
예상대로, 라커룸의 분위기는 썩 좋지 않다.
선수들 역시 람의 이탈 이후의 경기 내용이 만족스럽지 않은 듯했고, 이제 그들은 펩 과르디올라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거란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이를 본 마넬 에스티아르테는, 저런 눈빛들 때문에라도 자신은 절대 감독이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자신은 축구가 아닌 수구 선수 출신이었지만, 어떤 종목이건 선수가 감독에게 바라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저것 또한 선택받은 자들의 영역이야.’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의 시선을 빠르게 빨아들이는 펩 과르디올라를 보며, 마넬은 이어질 그의 말을 기다린다.
“후반전, 우린 피치를 옮긴다.”
“?”
“무척 간단한 거야. 복잡하게 생각할 건 없다. 가운데에서 하던 일을, 우린 이제 왼쪽에서 하게 될 거야.”
펩 과르디올라는 람의 부상 이후 로번과 리베리를 투톱으로 놓아둔 3-5-2의 형태로 전형을 바꿨었다. 뮐러와 괴체를 아래로 내리며 토니 크로스와 역삼각형 진형을 만든 것이다.
“기본적인 큰 틀은 다르지 않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무척 간단한 일이야! 우리가 해 왔던 훈련을 생각해 보라! 우리가 피치를 몇 개로 나눴고 또 몇 종류의 방법이 있었지?”
“…….”
“프랑크! 넌 후반전 왼쪽이다! 가운데가 신경 쓰이겠지만, 평범한 왼쪽 윙어처럼 뛰어라! 네 페이스를 살리고, 많은 드리블을 보여줘. 굳이 연계를 할 필요는 없다! 네 임무는! 동료들이 전진을 할 시간을 벌어 주는 거다!”
후반전 바이에른 뮌헨의 빌드업은 왼쪽을 중심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말 그대로 중앙에서의 일을 옮기는 것이었고, 사실상 김다온과 크로스가 중원 듀오가 되었다.
이렇게 되면 호이비에르 역시 측면 윙백이 아닌, 본래 그의 포지션으로 뛸 수 있다.
왼쪽에 무게를 두어 빌드업을 진행하면, 도르트문트 역시 거기에 반응하여 힘을 오른쪽으로 가져갈 수밖에 없다.
그럼 자연스레 왼쪽 측면은 고립될 것이고, 전형이 좌우로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중앙으로 움직일 도르트문트의 왼쪽 공격수와 풀백은 익숙하지 않은 위치에 서야 한다.
반면 호이비에르가 오른쪽 윙백으로 뛰는 뮌헨은 그런 어색함을 전혀 느끼지 않을 테고, 오히려 장점만을 극대화하는 축구를 펼칠 수 있다.
오른쪽을 포기하는 만큼 공격의 다양성은 부족해지겠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다.
“명심해라! 볼을 점유하면 할수록, 패배할 확률은 극적으로 줄어든다! 우리가 많은 위기를 맞은 건, 도르트문트에게 계속해서 볼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것도 절대 빼앗겨서는 안 될 위치에서!”
“…….”
“그래서 우리는 무대의 영역을 옮겼고! 이것이 우리의 최후의 저항선이다! 힘을 내라! 우리가 해 왔던 축구는 틀리지 않았다! 너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어!”
펩 과르디올라의 격려에 사기가 되살아나는 선수들을 보며, 바이에른 뮌헨의 코치들은 현재 선수들이 얼마나 자신의 감독을 신뢰하는지를 깨닫는다.
물론 셰르단 샤키리나 마리오 만주키치처럼 출전 시간에 불만이 있는 남자들은 그렇지 않지만 말이다.
하지만 25~30명이나 되는 자존심 강한 남자들을 모두 한꺼번에 만족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만큼은 어떤 위대한 감독도 해낼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선수들이 감독의 축구를 향해 보내는 신뢰였고, 그것이 충분히 보인다는 면에서 뮌헨의 코치들은 안도했다.
물론 펩 과르디올라는 그것으로는 부족한 것 같았다.
그는 팀 토크 뒤, 김다온을 따로 불러냈다.
‘결국은 오늘도 저 녀석인가?’
김다온과 함께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펩 과르디올라를 보면서, 마넬 에스티아르테는 FC 바르셀로나의 누구도 저만큼 신뢰를 받지는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넬은 이런 풍경을 떠올렸다.
김다온이 조금 더 나이를 먹은 먼 미래, 두 사람은 질 좋은 와인을 앞에다 잔뜩 놓아두고 밤새도록 축구 전술을 논하는 모습을 말이다.
그곳엔 토마스 투헬이나 위르겐 클롭과 같은 또 다른 젊은 전술가들이 함께할 수도 있고, 그때쯤이면 은퇴를 했을 마르셀로 비엘사도 분명 함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 이탈리아에서 큰 성공을 거둔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Massimiliano Allegri)가 음식을 들고 찾아오면, 토론은 한층 더 격렬해질 것이다.
만약 앞으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면, 어쩌면 주제 무리뉴 역시 함께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제, 마넬 에스티아르테는 자문(自問)한다.
17~18년 뒤의 미래, 과연 김다온은 펩 과르디올라처럼 축구 감독이 되려 하고 있을까? 아니면 순수한 축구팬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을까?
그는 어렵지 않게, 전자가 될 것이라는 데에 배팅을 할 수 있었다.
언젠가, 펩과 김다온은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한적한 별장의 테라스에서 틀림없이 그런 풍경을 연출할 것이다.
‘마리아주로군. 질투가 날 지경이야.’
저 두 사람이 있기에, 마넬은 바이에른 뮌헨이 후반전을 잘 이겨낼 거라 생각하게 된다.
***
·후반 11분
바이에른 뮌헨 0 : 0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위르겐 클롭은 전반전이 조금 아쉬웠다. 필리프 람의 교체 이후 흔들린 바이에른 뮌헨을 계속해서 두들겼음에도, 끝내 골을 성공시키지는 못했다.
하비 마르티네스가 뜻밖의 수비적 활약을 펼치며, 파이널써드에서의 마지막 패스를 매번 막아 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반 중반 이후 팀이 보여 준 접근 방식은 매우 훌륭했고, 그래서 위르겐 클롭은 하프타임 때 별다른 변화를 주려고 하지 않았다.
몇몇 자잘한 지적은 있었지만, 큰 틀에서 보이는 도르트문트의 축구는 전반전과 같을 것이다.
람의 부상 이전까지 피치 위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보이던 김다온도, 활동 영역이 커지면서 본인의 공간에 대한 지배력이 도드라지게 줄어들었다.
그런데.
“이런! 막아-!! 저쪽이라고!!”
후반전이 시작된 이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는 바이에른 뮌헨에 자꾸 기회를 내어 주고 있었다. 한데 그 방향이 엉뚱하게도, ‘가장 덜 위협적’이라 믿었던 선수가 있는 쪽이었다.
피에르-에밀 호이비에르가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에서 볼을 받아 들고, 그는 곧바로 수비 사이로 파고든 아르연 로번에게 좋은 패스를 보냈다.
마츠 훔멜스가 간신히 태클로 저지를 해냈지만, 도르트문트 각 진영 사이의 가격은 점차 넓어지고 있다.
특히, 슈멜처는 아예 잉여가 되었다.
‘하핫-! 자네는 참 대단한 친구야.’
한 차례 위기가 지나간 뒤, 성큼성큼 벤치로 걸어 들어온 위르겐 클롭이 즐거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금세 일어나 앞으로 걸어 나갔다.
다소 산만해 보이는 이런 모습은 위르겐 클롭의 성격을 잘 드러냈는데, 그는 항상 감정에 솔직하고 과격한 애정 표현을 아끼지 않는 남자였다.
그리고 그건, 상대라 해도 다르지 않다.
위르겐 클롭은 후반전 펩 과르디올라가 선택한 변화가 팀을 괴롭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가만히 당하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바이에른 뮌헨에게 밀리는 내내, 위르겐 클롭은 어떻게 해야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을지를 궁리했다.
테크니컬 에어리어로 빠져나온 클롭이 한쪽을 쳐다보았고, 이내 한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크게 손을 휘저었다.
그는 곧, 가까이 온 이와 어깨동무를 했다.
“잘 들어. 넌 동료들을 위로 보내 줘야 해. 저들이 더 뛸 수 있고, 전방에서 더 숫자를 늘릴 수 있게.”
“네.”
“센터백의 사이에 서. 네가 좌우를 넓게 벌릴 수 있게 돕는다면, 자연스럽게 풀백들도 공간을 얻을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이제부터 네 역할이 무척 중요하단 거야.”
“네. 이해했어요.”
“짜식! 그래야지!”
찰싹-!!
후려쳤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만한 과격했던 손동작에, 뒤통수를 가격당한 올리버 키르히(Oliver Kirch)는 몸을 잔뜩 움츠리며 대기심을 향해 걸어갔다.
이 교체가 이뤄지고 나면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는 4-3-3으로 전형이 바뀔 예정이다.
기존의 4-2-3-1과 포메이션 자체는 큰 변화가 없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실제 피치 위에서의 모습에는 꽤 많은 차이를 일으킬 것이다.
조금이라도 빨리, 도르트문트는 득점을 올려야만 한다.
충분한 준비 기간과 휴식 후에 맞이한 DFB-포칼 결승이지만, 게겐프레싱의 특성상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도르트문트 선수들의 체력 소전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에 관해서도 위르겐 클롭은 준비를 해 두었고, 요나스 호프만(Jonas Hofmann)과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이 도르트문트의 기동력을 더해 줄 카드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는 다른 말로, 위르겐 클롭이 전술적 변화를 위해 쓸 수 있는 카드는 단 한 장뿐이라는 것이었다.
‘이건 내 회심의 수야, 펩. 자넨 이제부터 어떻게 대응을 할 생각인가?’
선수 교체를 통해 양 팀 감독의 치열한 전략 싸움이 펼쳐지는 피치 위,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선수들은 빗줄기에 땀을 흘려보내며 스프린트에 한창이다.
촤—–악!!
***
·후반 17분
바이에른 뮌헨 0 : 0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선수 교체 이후, 도르트문트의 전형이 바뀐 것 같다. 중앙에 머물던 로이스가 오른쪽으로 움직였고, 뮌헨은 2선 공격수를 대신해 두 명의 중앙 미드필드를 채워 넣었다.
4-2-3-1 상태에서는 총 4명의 선수가 전방에 머물렀다면, 지금은 최소 다섯에서 일곱이 전방에 채워졌다.
‘4-3-3으로 봐야겠네.’
누차 말하지만, 포메이션은 축구 전술에서 크게 중요하진 않아도 특정 위치에 선수를 놓아둔다는 의미에서는 결코 소홀히 볼 수 없는 영역이다.
교체 투입된 올리버 키르히가 라볼피아나(Lavolpiana)로 뛰기 시작하면서, 도르트문트는 아예 본격적으로 쓰리백 시스템으로 전환했다.
양쪽 풀백은 윙백처럼 보이게 됐고, 밀로스 요이치와 누리 사힌 역시 한 칸 더 위로 올라섰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전방 압박의 강도도 높아졌는데, 난 후퇴를 하려는 리베리에게 손바닥을 보여 줬다.
“!!”
도와주고픈 마음은 알지만, 그래서야 의미가 없다.
감독의 전술이 피치 위에서 그 진가를 드러내려면, 선수 역시 충분한 개인 기량을 보여 줘야 한다.
그러니.
“뒤!”
“…….”
조금 힘들어도 이겨 낼 필요가 있다.
난, 왼팔을 뒤로 뻗는다.
그러곤 뒤로 기댔다.
쿵-
작은 충돌.
이건 피슈체크와의 몸싸움이다
이 남자는 지금 지연이 아닌 강탈에 초점을 맞춘 수비를 해 오고 있다.
그래서 난 팔을 사용해 최대한 피슈체크를 멀리 떨어트렸고, 그에게 가장 먼 오른발 아래에 축구공을 놓아두는 것으로 볼을 소유했다.
여기에서 약간의 도움이 필요했는데, 때마침 단테가 가까이 접근을 해 주었다.
난 일단 그에게로 볼을 전달했고, 도르트문트 선수들의 시선이 단테에게 완전히 쏠리기를 기다리며 조금 측면으로 이동해 사이드라인을 등졌다.
게겐프레싱은 볼을 발아래에 둔 이에게 무조건적으로 접근하는 축구였기에, 일단 패스를 다른 사람에게로 보내고 나면 상대적으로 더욱 큰 자유를 얻는다.
꼭 시한폭탄을 돌리는 것 같달까?
그래서 약간 재미있기도 하다.
“여기!”
단테는 볼을 오랫동안 소유할 수 없고, 도르트문트의 선수들이 가까이 가면 그는 결국 마누엘 노이어에게로 패스를 보내 버릴 것이다.
그러는 사이 도르트문트는 프레싱으로 인해 망가진 전형을 정비할 테고, 그럼 결국 원점으로 돌아간다.
때문에 난, 평소보다 더 빠르게 다음으로 이어 나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조금 더 완벽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은 다소 부족하더라도 무조건 해내야만 하는 상황이다.
예상대로 뒤를 돌아보려고 했던 단테는 내 목소리에 반응을 했다. 그렇게 시한폭탄을 다시 떠안게 되자, 도르트문트의 선수들은 마치 먹잇감을 포착한 좀비처럼 달려들고 있었다.
일단 전체적인 라인의 전진으로 누리 사힌이 가장 가까웠고, 그가 가장 먼저 내게 붙었다.
툭-
“!”
생각을 해 보자.
도르트문트가 쓰리백을 만들면서 풀백을 전진시켰다는 건 전방 압박을 강화하기 위한 수였다.
그리고 이는 반대로 말해, 양쪽 풀백의 전진으로 그만큼의 공간이 비게 되었다는 뜻이 된다.
실제로 왼쪽 사이드라인 앞은 고속도로처럼 뻥 뚫려 있었고, 그곳으로 볼을 차 넣고 달리기 시작하자 어렵지 않게 상대 진영 깊숙한 곳까지 들어설 수 있었다.
우리가 왼쪽에 무게를 두는 전술을 썼음에도 여길 비워 두는 전략을 택한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위르겐 클롭도 배짱이 보통은 아니다.
“막아-! 지연시켜!”
“반대를 봐! 반대!”
후반전 시작 후 줄곧 ‘스퀘어 무브먼트’를 변형한 빌드업을 해 왔기에, 도르트문트의 선수들은 후퇴를 하는 와중에도 충실하게 반대편을 신경 쓰고 있었다.
그건 무척 칭찬을 해 줄 만한 일이었지만, 덕분에 난 훨씬 더 수월한 선택이 가능했다.
툭-
“!!”
“응?”
하프라인 후방 15m 지점에서 하프라인 앞 10m 정도까지 달려 나갔던 나는, 드리블의 방향을 바꿔 골대를 향해 곧바로 나아갔다.
그리고.
‘역시!’
절묘한 타이밍에 왼쪽 사이드로 리베리가 파고들면서, 파파도포풀로스의 시선을 빼앗아 갔다.
그래 봤자 잠깐 고개를 돌린 정도에 불과했지만, 바로 그 찰나의 순간 때문에 상대는 전진할 타이밍을 놓쳐 버리고야 말았다.
0.1초.
삶 속에서는 정말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겠지만, 피치 위에서의 0.1초는 항상 더 많은 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
그래서 더욱 허투루 날릴 수 없고.
더욱.
‘치명적이지.’
이제 난, 온전한 슈팅의 공간을 확보한다.
거리는 대략 25m 정도.
내겐 짧기까지 하다.
“흐읍-!”
쏟아지는 빗줄기에 피치의 상태는 엉망진창이지만, 성능 좋은 ‘아디다스’의 축구화는 미끄러움을 완벽하게 막아 주고 있다.
그래서 난 자신감 있게 발을 크게 내디뎠고.
“푸우우—!!”
크게 들이마셨던 숨을 몽땅 내뱉으며 오른발을 사정없이 휘둘렀다.
퍼억-!!!!
두꺼운 빗줄기를 꿰뚫으며, 축구공은 빠르게 도르트문트의 골대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