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37)
36화
2011년 6월 30일. 셸란, 덴마크. 스네르바이 7, 3500 배얼래쇠.
#오전 06 : 07
딸깍-.
“······휴우-”
새벽 시간에 집을 나서는 것도 이제는 꽤 익숙해졌다.
이어폰을 꽂은 뒤 후드를 뒤집어쓰고, 작년 생일 부모님께 선물로 받은 아이팟의 버튼을 누른다.
이 안은 전부 한국 노래들로 채워져 있었는데, 몇 번인가 덴마크 노래를 들어보려 노력해보았지만 결국 헛수고였다.
“자, 그럼 어디?”
천천히 발을 움직이는 속도를 높이면서, 난 인도로 빠져나와 코스를 밟았다.
그리고 다사다난했던 기억들을 떠올려 본다.
지난 6개월은, 정말이지 많은 일이 있었다.
우선 가장 큰 뉴스로는, 모르텐 비그호스트 감독님이 팀을 떠난 일을 꼽을 수 있겠다.
본인의 의지로 팀을 떠나신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고된 것 또한 아니다.
지난 2월, 감독님은 덴마크 U-21 팀의 긴급호출을 받아 노르셸란의 감독직을 그만두게 되셨다.
그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알게 된 사실은 덴마크의 프로축구 협회가 가진 영향력이 대단히 크다는 점이며, 왕가와 밀접하게 관련된 이들이 마음대로 리그를 주무른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수익의 창출에 있어선 독점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수페르리가의 잦은 이름 변화 역시 같은 이유 때문이라는 것도 말이다.
덴마크협회는 자국 리그를 단순한 돈벌이 수단으로 여겼다.
그래서 스폰서의 후원과는 별개로 리그의 명칭에는 별다른 변화를 주지 않는 여타 리그와는 달리, 덴마크의 수페르리가는 그동안 ‘코카콜라 리가엔’, ‘팍세 콘디 리가엔’, ‘SAS 리가엔’ 이라는 이름을 사용해 왔다.
리그의 정체성에 별다른 자부심이 없기에, 이 같은 촌극이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재작년과 작년은 스폰서가 빠지면서 그냥 수페르리가엔이라는 이름을 써왔는데, 덴마크 협회장이 이를 두고 책임을 클럽들에 전가했다는 황당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국제 대회 성적이 없으니까, 그 모양인 거잖아!]다시 한번 말하자면 덴마크는 왕정국가이고 복지를 통한 국민의 행복지수는 무척이나 높지만, 사업을 하는 기업에게 있어서는 그리 매력적인 나라는 아니었다.
프로축구 클럽 또한 하나의 기업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들도 그리 만족스럽지만은 않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덴마크라는 나라 자체가 워낙 축구에 열광하는 곳이라 수익 자체에선 큰 문제가 없지만, 몇 년 전부터 선수노조와 협회가 꾸준한 충돌을 반복하고 있다 들었다.
스폰서를 통한 수익창출에 있어, 선수에게 조금의 이익도 돌아가지 않는 것을 문제시 삼았기 떄문이다.
이런 부분들을 보면, 오히려 K-리그보다 더 못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축구를 하다 보면, 선배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곤 하니까.
드르르르륵-!
“흐아-암!”
“고 모언! 잠꾸러기시네요.”
“뭐야. 오늘도야?”
“네. 사과 하나만 가져가도 되죠?”
과일가게에서 사과 하나를 냉큼 가져가지만, 과일가게의 캐스퍼 씨는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으셨다.
우리도 가끔 집에서 만든 음식을 이웃에 나눠주곤 한다.
처음엔 이웃들이 그런 음식을 나눈다는 문화를 쉽게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그것에도 얼추 적응된 모습이다.
그래서 최소한 집 주위로는 한국의 정(情)과 비슷한 정서가 존재하고 있다.
물론 여기엔, 내가 FC 노르셸란의 선수라는 게 아주 큰 몫을 차지했다.
아- 그리고 깜빡할 뻔했는데, 모르텐 감독님의 뒤를 이어 우리 노르셸란의 지휘봉을 잡은 사람은 기존의 수석코치였던 캐스퍼 율맨이다.
굳이 새로운 감독을 찾지 않았던 이유는 모르텐 감독님의 추천 때문이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모르텐 감독님이 갑작스럽게 팀을 떠나게 되면서 팀은 후반기 도통 힘을 쓰지 못했다.
스톡홀름을 중심으로 컵 대회에서 노력하지 않았다면, 지역 사람들에게 더욱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내 차례.
“후-아! 다시 돌아가 볼까?”
잉글랜드에서 돌아온 뒤로, 나는 더욱 훈련에 매진하며 시간을 보냈다.
팀의 허락을 얻어, 정규훈련시간이 끝나고도 추가로 1시간을 더 필드에 남아 개인훈련을 이어나간 것이다.
팀은 18세 이하의 선수가 되도록 개인훈련을 하지 않도록 지침을 정해두었는데, 전에도 말했듯 이 나이에는 휴식이 더 중요하단 철학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영감을 얻고 돌아왔던 난 팀 훈련만으론 성에 차지 않았고, 감독 교체 등으로 어수선했던 팀은 나 때문에 더 귀찮아지고 싶지 않아 훈련을 허락해주었다.
그리고 리그가 끝난 뒤에도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남아, 아카데미에 참여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그리웠지만, 축구를 더 잘하기 위해 참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팀의 구단주인 톰 버논 씨가 운영 중인 회사, 은 축구를 통해 자선사업을 하는 기업이다.
그래서 매년 여름 셸란에서 아카데미를 운영했는데, 난 강사 겸 아카데미 선수의 자격으로 지난 한 달을 보냈다.
누군가에게 축구를 가르쳐본 적은 없었지만, 8세 이하의 꼬마들은 충분했다.
어찌나 다행이던지.
그런데 오히려 선수로 참여한 프로그램보다, 선생님 자격으로 이행했던 프로그램에서 훨씬 더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생전 처음으로 감독이란 위치에서 뛰어다니는 선수들을 보고 있으니, 축구가 여러모로 다르게 보였다.
감독으로서의 첫 번쨰 경기를 끝마치고 온 순간부터, 난 휴가를 떠나있던 노노에게 매일 같이 전화를 해 질문을 하고 또 영상자료를 요청하길 반복했다.
오죽하면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던 노노가 휴가를 방해하는 거냐며 큰 소리를 냈을 만큼, 꽤 민폐를 끼쳤던 것 같다.
그래서 사과를 할 겸, 집에 따로 노노의 선물을 챙겨놓았다.
며칠 전 한국에서 돌아온 부모님에게 부탁해, 특별히 골라둔 물건이다.
마지막으로 가족에 대해 말을 하자면, 엄마의 비자가 만료된 관계로 한 달쯤 전 나를 뺀 가족들이 전부 한국으로 잠깐 돌아갔던 일이 있었다.
부모님은 날 덴마크에 홀로 내버려 두고 가는 것을 걱정하셨지만, 떠나는 날 집 앞에 온 친구들을 보며 안심하셨다.
지난주까지, 올루프, 뱅, 하머와 함께 집에서 함께 생활했다.
10대 남자 넷이 살다 보니 집은 금방 어지러워졌지만, 그래도 가족들이 돌아오기 전 최대한 정리정돈을 해두었다.
물론 엄마는 ‘아이고- 이게 뭔 난장판이니?’라며, 혀를 끌끌 차셨지만 말이다.
그래.
일주일 전부터 다시 우리 가족은 완전체가 됐다.
“후우- 끝났다.”
6km를 달리고 오는데, 정확히 22분이 걸렸다.
중간에 과일가게를 들르고 3km를 뛴 뒤에 잠깐 스트레칭을 한 걸 생각하면, 대강 17~18분 정도가 걸린 것 같다.
뭐, 평균적인가?
집 앞에 놓인 우유와 신문을 챙겨,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다.
그러면, 평소와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응- 아들. 오늘도 뛰고 왔어?”
“네. 얼른 씻고 올게요.”
“아들- 좀 더 키가 컸나?”
“음- 글쎄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머리 위에서 손을 몇 번 왔다 갔다 한 나는, 샤워실 앞에서 옷을 벗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있으면 누나가 깰 텐데, 그럼 족히 1시간은 화장실을 쓸 수가 없다.
아니 도대체, 뭘 하기에 1시간이나 샤워실에 있는지.
그건 아직도 내겐 미스터리다.
딸깍-.
샤워를 끝마치고 식탁으로 돌아오면, 이렇게 항상 아침 식사가 준비되어 있다.
어제까진 아침을 먹고 방으로 돌아가 2시간 정도 잠을 더 잤는데, 이제부터는 그럴 수 없다.
왜냐하면.
“오늘부터지?”
“네. 새로운 시즌의 시작이에요.”
“아들- 엄마가 아들 자랑스러워하는 거 알지?”
“아, 진짜. 아침부터 낯간지럽게 왜 그러세요?”
“너무 좋아서 그래. 우리 아들이.”
누나한테 대충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번에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본래 알던 사람들의 태도가 무척이나 달라졌다고 했다.
아줌마들이 웃으면서 엄마에게 다가가려 했고, 괜히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추려고 했단다.
또 아저씨들은 아빠에게 술을 권하거나 하며, 좋은 아들을 두어서 부럽다는 이야기도 했다고 들었다.
괜히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고, 앞으로 더 축구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내가 축구를 잘하면 잘할수록, 아무도 우리 가족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여전히 내 꿈은 돈을 많이 버는 것.
축구는 그렇게 될 수 있는 직업.
오늘도, 이렇게 마음을 다진다.
“다녀올게요오-!”
“조심하고! 알겠지??”
“네, 네!”
보다시피 내가 덴마크에 완전한 적응을 하게 되면서, 애꿎은 피해자가 한 사람 생겨났다.
팀은 지난 4월, 제철이 형에게 더 이상의 재계약은 없단 통보를 보냈다.
그리고 5월 이후로 난 형을 만난 적이 없다.
문자나 전화를 보내 봐도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던 관계로, 지금은 반쯤 포기하고 있는 상태다.
이웃들이나 상가의 사람들도 제철이 형을 못 본 지 꽤 되었다고 말을 하는 것으로 봐선, 셸란을 떠난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고 보니 분명, 학교가 본토에 있다고 했나?
어쩌면 본토로 돌아간 것일 수도 있겠다.
“여어- 꼬마. 출근하니?”
“꼬마가 아니래도요.”
“하하! 이젠 진짜 그렇구나. 힘내렴!”
“네! 당신도요!”
이번 시즌, 팀의 개막전은 7월 16일 오덴스 BK 원정경기다.
그리고 홈 개막전은 다음 주 일요일인 24일, AC 호르센스전이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유로파 리그 3라운드는 8월 18일과 8월 25일로 날짜가 정해졌다.
대전 추첨은 유로파 예선 2라운드가 끝난 다음 날인 7월 14일에나 이뤄질 예정이다.
우린 기왕이면 예선 라운드를 치른 팀과의 대진을 원하고 있는데, 어떻게 될는지는 알 수 없다.
출퇴근용으로 구매한 자전거를 타고 향하는 길.
어느새 경기장이 저 멀리 보이고 있다.
그럼, 조금 더 속력을 높여 볼까?
페달을 밟는 발의 움직임을 더 빠르게 가져가며, 난 올 시즌 첫 소집과 공식훈련에 들뜬 마음을 얼굴에 드러냈다.
자꾸만 미소가 피어오르는 게, 두근거림도 클럽하우스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커져만 가는 것 같았다.
앞에 보이는 횡단보도가 빠르게 가까워지고, 난 불이 빨간색으로 바뀌는 걸 보며 브레이크를 당겼다.
끼-익.
핸들을 옆으로 돌려 부드럽게 멈추고 나니, 옆에 있는 한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첫날부터, 이게 뭐람.
“뭐?!”
“뭐?!”
“······쳇.”
“쯧.”
대뜸 퉁명스럽게 먼저 목소리를 높여온 녀석은, 당연하게도 핼리 갤이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도 첫날 이곳에서 만나지 않았던가?
“아, 그러네. 페라리에서 뚜벅이가 됐네.”
“시끄러워.”
“아니, 그냥. 그렇다고.”
“쳇.”
다시 한번 혀를 찬 핼리 갤은 아직 빨간불임에도 불구하고 전력 질주하여 횡단보도를 건넜다.
차가 지나다니지 않아 망정이지,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잠깐.
내가 저 녀석의 걱정을?
에이, 설마.
지금의 이건 그러니까, 괜한 일에 얽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두겠다.
작년 페라리를 끌며 등장했던 핼리 갤은 그의 아버지가 무려 징역 75년 형을 선고받으며, 처지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더러운 성격이야 여전한 거고, 전처럼 중심이 되려고도 하지 않고 축구가 끝나면 곧장 짐을 챙겨 클럽하우스를 떠났다.
이젠 오히려 핼리에게 괴롭힘을 받았던 애들이 녀석을 따돌리고 있었는데, 내게도 제안이 왔었다.
그러나, 난 거기에 따르지는 않았다.
굳이 녀석을 괴롭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이크! 어느새.”
초록불이 깜빡이기 시작한 횡단보도를 얼른 건너, 핼리를 지나쳐 클럽하우스의 앞에 도착했다.
한쪽에 마련된 자전거를 대어두는 곳에다 대충 둔 뒤에, 종종걸음으로 달려 안으로 들어섰다.
분위기를 쇄신하는 차원에서 클럽하우스 내부를 싹 다 바꿨다고 하던데, 분위기 하며 모든 게 내가 알던 노르셸란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완전히 달랐다.
그리고 복도의 한쪽엔, 올 시즌 우리가 착용하게 될 홈/원정 유니폼이 걸려 있었다.
기존의 홈 유니폼 겨드랑이 쪽에 있던 흰색 줄무늬가 사라지고, 어깨 쪽에 두 개의 원이 생겨났다. 또 왼쪽 가슴팍엔 우리 노르셸란의 약자인 ‘FCN’이 새겨져 있다.
또 옆에는 원정과 몇몇 홈경기에서 착용할 세컨드 유니폼도 전시되어 있었다.
색상은 하늘색에 가까운 푸른색이고, 가슴팍엔 스폰서 ‘CITY Container’의 로고가 박혀 있다.
CITY라는 글자가 크게 도드라져 있어, 꼭 맨체스터 시티의 유니폼처럼 보이기도 했다.
‘저건 별로네.’
박지성 선수를 만난 뒤로 맨체스터 시티를 좋아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세컨드 유니폼에는 영 정이 가지 않았다.
뭐, 그래도 곧 익숙해지겠지.
“여어-! 고 모언, 킴!”
“응? 오-! 고 모언. 일찍 왔네?”
“너만 할까.”
지난 시즌 휴식기 때, 모르텐 감독님은 앞으로 젊은 선수를 쓰는 비중을 점점 더 높여가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두 달 뒤 곧바로 팀을 떠나셔서 걱정을 조금 했었는데, 캐스퍼 감독님 역시 적극적으로 어린 선수들을 실전에 투입하셨다.
다만, 올 시즌도 같을지는 보장할 수 없다.
“올해 넌, 무혈입성 하겠다?”
“에이- 설마. 아직 몰라.”
“뭐야? 또 겸손한 척하냐?”
“또라니. 누가 보면 이게 컨셉인 줄 알겠다.”
“어? 아냐?”
“아니, 이놈이?”
“으악-! 쫓아온다!”
복도를 달리 시작한 올루프와 내가 요란함을 클럽하우스에 더하자, 마치 이것이 알람이라도 된 것처럼 여기저기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모르텐 감독님은 안 계시다.
‘감독님.’
모르텐 감독님은 덴마크에서의 첫 2년 동안, 내게 커다란 버팀목이 되어주셨던 분이었다.
그분이 계시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기까진 꽤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사실은 아직도, 확실하지 않다.
‘두고 보세요. 꼭 자랑스럽게 해드릴 테니.’
2011/12 시즌의 소집을 앞두고, 난 모르텐 감독님을 위해 올 시즌을 열심히 뛰자고 다짐했다.
***
·2011/12 시즌 FC 노르셸란 스쿼드
– 괄호 안은 시장 몸값/이적료 아님(2011.06.30. 기준)
– * 는 새로 합류한 선수
– ** 은 유스 출신
GK ? 1. 예스퍼 한센(26세/85만 유로)
GK ? 16. 다비드 옌센(19세/20만 유로)**
RB ? 2. 김다온(17세/270만 유로)
RB ? 19. 마크 군델락(19세/20만 유로)**
CB ? 5. 안드레아스 비엘란(22세/200만 유로)
CB/DRLC ? 18. 마이클 파크허스트(27세/60만 유로)
CB ? 4. 요레스 오코레(18세/100만 유로)
CB ? 3. 야콥 에게리스(21세/15만 유로)
CB ? 29. 라우리츠 뱅(19세/10만 유로)**
LB ? 8. 파트릭 음틸리가(30세/100만 유로)*
LB ? 27. 시주 킹(19세/10만 유로)**
DM ? 6. 에녹 아두(20세/50만 유로)
DM/CM ? 16. 올루프 뫼르크(19세/20만 유로)**
CM ? 20. 캐스퍼 로렌첸(25세/100만유로)*
CM/RM ? 17. 쇠렌 크리스텐센(25세/50만 유로)
CM ? 7. 니콜라이 스톡홀름(35세/40만 유로)
CM ? 30. 라스 페트리(18세/5만 유로)**
LM ? 31. 지미 카나(18세/5만 유로)**
LM ? 33. 필립 피브코프스키(17세/5만 유로)
ALM/LW ? 12. 라베즈 라완(23세/70만 유로)
LW/RW ? 22. 안드레아스 라우드럽(20세/50만 유로)**
LW/RW ? 13. 오구즈 한 아이나글루(19세/10만 유로)**
LW/ST ? 15. 매즈 톰센(22세/15만 유로)
RW/ST ? 9. 토비아스 미켈센(24세/85만 유로)
RW/ST ? 28. 니클라스 뢰데(19세/10만 유로)**
ST ? 10. 미켈 베크만(27세/125만 유로)*
ST ? 14. 조 시세(21세/50만 유로)*
ST ? 24. 안드레아스 그란스코프(22세/40만 유로)
감독 ? 캐스퍼 율맨
***
작가의 말 ? 밑의 스쿼드는 본문을 충분히 작성한 후 추가로 적은 것으로, 글자 수 늘리기와는 상관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