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370)
369화
벌써 2년 가까이 된 예전에, 나는 이런 말을 했었다.
아쉬운 순간 뒤에는 눈물이 흔히 뒤따르는 법이지만,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왔고 또 후회 없이 모든 것을 쏟아 냈다면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것 같다고 말이다.
그리고 나는 당시 아쉬움보단 뿌듯함이 더욱 큰 이들의 사이에서, 유일하게 웃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머리카락을 움켜쥔 채 분노, 수치, 슬픔과 같은 감정들을 억누르기만 했었다.
이제 와 다시 그날의 모든 것들을 생각해 보면, 그런 감정을 잘 조절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다음’과 ‘목표’라는 두 가지 요인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당시의 내겐 여전히 ‘다음’이라는 게 남아 있었고, 또 가장 중요한 ‘목표’ 역시도 이룬 상태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휴우~”
지금은 전혀 다르다.
.
.
2014년 5월 24일. 1500-313 리스본, 포르투갈. 에우제비우 다 시우바 페헤이라 거리. 이스타디우 다 루스.
·경기 시작 1시간 전
바이에른 뮌헨 0 : 0 AT 마드리드
&Match-Up`s Best Eleven(뮌헨/상대팀)
&Tactics(뮌헨/상대팀) : 3-3-3-1/4-4-2
GK ? 마누엘 노이어 / GK ? 티보 쿠르투아
CB ? 제롬 보아텡 / RB ? 후안 프란
CB ? 하비 마르티네스 / CB ? 주앙 미란다
CB ? 단테 / CB ? 디에고 고딘
RWB ? 피에르-에밀 호이비에르 / LB ? 필리페 루이스
LWB ? 김다온 / RM ? 라울 가르시아
CM ? 토니 크로스 / CM ? 티아구 멘데스
RAM ? 아르연 로번 / CM ? 가비 페르난데스
CAM ? 마리오 괴체 / LM – 코케
LAM ? 프랑크 리베리 / ST ? 다비드 비야
SS ? 토마스 뮐러 / ST ? 디에고 코스타
.
.
지금의 내게 다음은 없다.
또 목표도 여전히 미완성이다.
가장 중요한 마침표를 찍는 일은 눈앞에 남아 있다.
라커룸을 떠나 피치를 향해 걸어가는 길.
나는 잠깐 멈춰 서서 올림픽을 떠올렸다.
최근까지도 굳이 기억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지낸 런던 올림픽. 이 대회는 단계를 거쳐 결승 무대까지 밟아 본 나의 첫 번째 국제 무대였다.
파주에서 형들과 만나 준비했던 것부터 시작해, 세 차례의 평가전과 올림픽 본선에서 치른 경기 하나하나까지. 생각을 시작하면 모두 다 어제의 일처럼 선명해진다.
그럼 몇 없었던 이런 순간마다 새삼 깨닫는다.
여전히 난, 그날의 상처를 치료하지 못했다.
“복수해야만 해.”
“뭐?”
“어? 아, 아무것도 아니야.”
“??”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는데, 알고 보니 토니가 근처에 와 있었다.
슬쩍 돌아본 토니의 얼굴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걸 보고 있자니, 장난치고픈 기분이 들었다.
“긴장돼?”
“후우~ 왜 아니겠어.”
“하긴. 넌 작년에 허벅지가 문제였잖아.”
“제기랄. 지금 날 놀리는 거야?”
“어라? 들켰어?”
“큭큭큭큭.”
“진정해, 친구. 넌 최고니까.”
“마치 넌 아니라는 듯 말하네.”
장난이 잔뜩 섞인 대화를 주고받고 나자, 토니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진 것 같다.
지난 시즌 토니는 챔피언스 리그 8강 유벤투스 원정 때 햄스트링이 파열되는 큰 부상을 입었다. 회복에만 최소 6주가 필요한 부상이었고, 결국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그냥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트레이닝복을 입은 채로 빅이어를 들어 올리긴 했지만, 토니가 진정으로 바라던 장면은 아니었을 거다.
잠깐의 침묵 뒤, 토니가 입을 열었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
“너니까 말할 수 있는 거야. 작년의 우승은 뮌헨의 것이지 내 것은 아니었어. 그러니 오늘이 내겐, 생애 첫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나 마찬가지야.”
“……그래. 이해해.”
“하하. 너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뭐, 나였더라도 그럴 테니까.”
구성원 중 한 사람으로서, 속해 있는 클럽이 성과를 거두는 일은 무척 기쁜 일이다.
그렇지만 그 기쁨이 지나가고 나면, 말로 설명하기 힘든 공허함이 찾아온다. 올림픽 은메달을 따고 난 이후라든가 작년 유로파 우승 직후 내가 느꼈던 감정처럼 말이다.
거두어들인 성과 그 자체는 무척 기뻤지만, 기왕이면 좀 더 좋은 것이었으면 하는 마음인 것이다.
그래서 더 박탈감을 느낀다.
하지만 진짜 최악인 건, 최고의 무대를 가만히 눈 뜨고 보기만 해야 하는 거다. 실력이 부족해 빠진 거라면 또 모르지만, 만약 부상 때문이라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해진다.
그리고 오늘 이곳엔 우승을 염원하면서도, 가슴속 한켠이 불편할 이들이 꽤 된다.
“그럼, 나 먼저 갈게.”
“그래. 곧 뒤따를 거야.”
“응.”
마음을 먼저 다잡았는지, 토니가 먼저 복도를 떠났다.
그리고 난 조금만 더 이 자리에 서 있기로 했다.
아직 충분한 준비가 된 것 같지 않았다.
저벅저벅 걸어가며 토니의 뒷모습을 보며 느낀 점이 있다면, 작년의 그 공허함이 현재의 저 친구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아마 틀림없이 그렇지 않을까?
“휴우~ 가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호흡을 고른 뒤, 나는 평소와 다름없는 걸음걸이로 익숙한 복도를 걸었다.
지금은 우리 곁에 없는 에우제비우 선수와 작년 유로파 우승을 기념하는 벽화나 사진들이 추가된 것만 뺀다면, 내가 알던 것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웜업을 위해 나서는 길에는 반가운 얼굴들이 인사를 건네어 와 화답을 하기도 했다.
이러고 있으니 마치, SL 벤피카에서 뛰고 있는 것도 같다. 때마침 유니폼도 같은 붉은색 계열인 데다가, 어제부터 종일 극진한 환대를 받았었다.
하지만 난 금세 현실로 돌아오기로 한다.
이미 충분히 감상에 빠져 있었으니,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경기에 임하는 게 옳았다. 오늘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하는 날이다.
내일은 없다는 것처럼 뛸 생각이기도 했다.
실제로도, 내일이라는 것은 내겐 없다.
오늘로 2013/14 시즌은 끝날 테니까.
복도를 돌아 피치가 보이는 넓은 공간으로 빠져나오고, 난 정면에서 걸어오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선수들을 무시한 채 곧장 오른쪽으로 꺾어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아까 토니를 만난 곳에서부터 이미 팬들이 내뿜는 열기가 느껴졌었는데, 이젠 확실히 알 수 있다.
걸음을 한 발씩 더 옮길수록 점점 더 커져 가기 시작한 이 두근거림도, 사람들이 내뿜는 이 에너지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내뱉는 환호성 비슷한 외침들 역시, 환하게 탁 트인 공간으로 빠져나옴과 동시에 선명하게 바뀌었다.
{“와아아아아아아-!!!”}
“…….”
정면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복도를 빠져나온 내 모습이 잡혔고, 재빨리 시선을 거둔 나는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며 얼른 동료들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렸다.
아직 경기 시작까지 많이 남아 있건만, 이스타디우 다 루스의 관중석엔 빈 곳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팬들도 우리만큼, 이 경기를 기다려 왔다는 거다.
‘왜 아니겠어?’
챔피언스 리그.
말 그대로 챔피언들이 모인 곳.
조금 더 정확히는 챔피언이 될 자격이 있는 클럽들의 리그.
오늘 내내, 피치는 내게 이런 질문을 할 것이다.
넌 과연, 그 자격이 있느냐고.
그리고 그 대답은…….
‘90분 동안 보여 줘야겠지.’
결코 단순하지도, 또 쉽게 할 수도 없을 게 분명했다.
***
·경기 시작 40분 전
@기자석
별도로 마련된 기자석엔, 사전 허가를 받은 소수의 기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미디어라면 어디든 취재 요청을 할 수 있지만, 마찬가지로 아무나 선택받는 자리가 아니다.
UEFA는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현장에서 취재하는 일을 특권으로 만들어 왔다.
공신력 혹은 상업적인 측면에서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어떤 방법으로도 현장 취재가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키커’와 ‘Goal.com’은 UEFA가 가장 먼저 요청을 받아들이는 미디어들이었다. 특히 취재를 온 기자들의 이름값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키커’의 카를-하인츠 빌트와 ‘Goal.com’의 레녹스 베이커가 오늘, 이스타디우 다 루스 기자석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가방을 내려두자마자 서로 반갑게 포옹을 나눴고, 가족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배가 조금 나온 것 아닙니까?”
“이런! 요즘 확실히 많이 먹긴 했지.”
“건강을 챙겨요, 빌트. 우리 같은 사람들은 쉽게 나쁜 병이 찾아오곤 한다고요.”
“하하. 저들만 하려고.”
“…….”
빌트가 고개로 흘끗 가리킨 곳엔, FIFA의 회장 요제프 블라터와 그의 연인으로 알려진 린다 바라스(Linda Baras)가 있다.
“역겹군요.”
“내 말도 바로 그거야.”
린다 바라스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스위스의 부동산 재벌인 크리스티안 바라스(Christian Baras)의 아내다. 현재도 둘은 여전히 혼인 관계이며, 크리스티안 역시 블라터와 아내의 스캔들 때문에 혼란스럽다고 답했었다.
하지만 축구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두 사람이 연인이란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동시에 블라터가 린다를 ‘5선을 위한 히든카드’로 생각한단 이야기가 많았다.
FIFA 회장 선거에 연인을 투표권이 있는 남자들의 잠자리 대상으로 제공함으로써 표를 확보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미 그런 일이 있었다.
“애인을 팔아먹어 표를 얻는다니. 참으로 요제프다운 발상이 아닌가?”
“저 인간 때문에 신성한 대회가 더럽혀지고 있어요.”
“큭큭큭, 자넨 아직도 축구를 순수하다고 보고 있나?”
“…….”
레녹스 베이커가 이런 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던 카를-하인츠 빌트는 금세 화제를 바꾸기로 한다.
“그래서? 자넨 어떻게 보나?”
“2:0. 바이에른 뮌헨의 승리요.”
“이런! 이래서야 내기가 안 되겠는데?”
“당신은요?”
“1:0. 개인적으론 연장까지 갈 것 같아.”
“그거 흥미로운 가정이네요.”
카를-하인츠 빌트와 레녹스 베이커의 인연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둘은 첫 만남 이후부터 끈끈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었다.
둘은 서로가 ‘가짜 정보들 속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하는 몇 안 되는 기자’라는 걸 알았고, 또 최근엔 같은 남자를 좇고 있다는 공통점까지 생겨났다.
지금은 같은 독일에 있는 카를-하인츠 빌트가 더 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내년부턴 조금 이야기가 달라질 예정이다.
“빌트로? 자네가?”
“네. 회사에는 이미 사표를 제출했죠. 독일어가 조금 문제이긴 하지만, 어떻게든 될 거예요.”
“이런! 왜? 왜 키커가 아니지?”
“그야, 그럼 재미없잖아요.”
“응?”
레녹스 베이커는 카를-하인츠 빌트와는 조금 다른 시선에서 김다온을 조명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같은 주제에 관해 다양한 의견을 내보자고요.”
“큭큭큭, 그래- 그래 보자고.”
2013/14 시즌 챔피언스 리그 결승을 앞두고, 다가올 새로운 시즌에 대한 변화는 축구 외적인 곳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
·경기 시작 20분 전
@바이에른 뮌헨의 라커룸
DFB-포칼 결승전을 준비할 때부터, 나는 우리에게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어떠한 방법으로도, 우린 네 명의 수비수를 최후방에 세울 수 없다.
하지만 그건 괜찮았다.
펩은 FC 바르셀로나 시절부터, 세 명의 수비수를 후방에 두는 축구를 구사해 왔다. 그리고 게임을 풀어 나가는 방식에 있어서도, 그에겐 확고한 철학이 있다.
우리의 스쿼드와 훈련 과정이 쓰리백을 낯설어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해도, 충분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다.
또 실제로 우린 벌써 몇 번이나 쓰리백으로 성과를 거두어 왔다.
그렇지만, 오늘이 가장 어렵다.
“Sitzen!! Sitzen!! 모두 자리에 앉아라!! 그리고 생각을 비워라!! 너희가 지금부터 생각할 것은 오직 시합뿐이며, 뛸 방법은 모두 이미 다 훈련을 통해 연습했다!!”
“…….”
“고정 관념이 여전히 남았다면 떨쳐 내라! 디에고 시메오네는 영리한 남자다! 얼마든지 허를 찔러 올 수 있고, 너희 모두 우리의 약한 고리를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DFB-포칼 결승은 위르겐 클롭의 선택 실수와 비라는 환경적 요인이 겹치면서, 우리에게 조금 운이 따랐다고 봐야 하는 경기였다고 본다.
실제로 람의 교체 이후 우리의 점유율은 50%를 간신히 턱걸이하는 수준이었고, 그나마도 후반 30분이 지나 상대의 체력이 고갈되며 회복한 것이다.
당시 경기를 중계했던 ZDF도 람의 부상 이후부터 후반 30분 전까지를 따로 분석하며,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반드시 득점했어야 할 시간’이라고 설명했었다.
오늘 경기를 준비하는 과정 내내 펩이 강조해 온 변수도, AT 마드리드의 강한 전방 압박이다.
물론 지금까지 본 디에고 시메오네의 스타일을 생각해 본다면, 챔피언스 리그 결승이라는 무대에서 갑작스럽게 전술을 바꾸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늘 만약을 준비해 두어야 했기에, 펩은 가장 먼저 우리가 거기에 휘둘리지 않도록 지시한 것이다.
“만약 상대가 본인들의 방법으로 경기를 풀려고 한다면, 너희가 가장 명심해야 할 부분은 이거다!”
“착각하지 마라…….”
펩이 손가락 하나를 펴듦과 동시에 작게 중얼거리자, 곧 그의 입에서 내가 했던 말과 같은 맥락의 문장이 나왔다.
“절대 착각해서는 안 된다! 쉽게 전진을 한다고 해서, 우리가 상대를 압도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건 오히려 저들의 게임 방식이다!”
“…….”
“하지만 동시에 기억해야 할 건! 그게 우리의 게임 방식이기도 하다는 거지! 아이러니하겠지만! 지금까지 계속해서 말해 왔듯, 이게 오늘 경기의 모습이 될 거다! 결국, 더욱 강한 사람이 승리를 쟁취한다!”
승리(勝利).
이 두 개의 글자가 지금보다 더 간절했던 적이 있었을까?
내 기억엔 아마 없는 것 같다.
방심과 상대의 카운터로 인한 당황을 경계하고 간단히 경기의 큰 맥을 짚어 준 뒤에, 펩은 잠깐 말을 멈추고 우리를 돌아보다 좀 더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해 왔던 것을 기억해라. 우린 목표를 거의 손에 쥐었다. 하지만 조금만 방심하면? 그건 금세 너희의 손을 벗어날 거다. 그리고 그것이 벗어났을 때, 너희가 얼마나 절망적인 기분일지를 상상해라.”
“…….”
“우린 지금 역사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마침표가 찍어지지 않는다면?! 이건 역사가 아닌 도전으로 끝날 거다! 위대할 것도 없는 빌어먹을 도전! 정말 그렇게 되고 싶은가? 난 아니다! 도전?! 그것도 좋지만, 그건 밑에 있는 팀이나 하는 행동이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나?”
정말 모르겠다.
금방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 다른 부분 말이다.
주변 사람들 중 몇몇은 펩이 지나치게 기계적이며, 감정적으로 메마르면서도 가슴속 깊숙한 곳엔 소녀의 감성을 숨겨 둔 알기 어려운 남자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내가 보아 온 펩은 누구보다 감정에 솔직하며,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다.
물론 그는 감독의 입장에서 사업적인 판단을 내려야만 하고, 그것들은 일부에겐 최악의 경험으로 남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난 꽤 오래전부터 주변에서 펩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에 귀를 막아 왔고, 오직 내 주관으로만 저 남자를 바라봐 왔다고 생각하고 있다.
펩 과르디올라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다.
펩 과르디올라는 배려를 아는 사람이다.
펩 과르디올라는 솔직한 사람이다.
무엇보다, 펩은.
“우리 같은 챔피언은 도전을 하는 입장이 아니라는 거다! 챔피언! 바로 바이에른 뮌헨 말이다!!”
펩은 승리자다.
그에겐 품격이 있다.
감정이 조금씩 격해진 펩은 어느새 빨갛게 변한 얼굴이 되어, 빠르고 복잡한 손짓과 함께 독일어를 토해 낸다.
“챔피언은 물러서지 않는다! 챔피언은 도망치지도 않는다! 챔피언은 고개를 절대 숙이지 않으며! 챔피언은 늘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챔피언은 마침내, 도전자를 물리칠 것이다!”
“…….”
“이게 바로! 너희들이 오늘 보여 줄 경기 내용이다! 2시간 뒤! 앞으로 2시간이 지났을 때, 너희는 스스로 어떤 입장이 되고픈가?! 여전히 챔피언이길 바라나?! 아니면 그냥 피치 위에 주저앉아 패자의 눈물을 흘릴 텐가?! 우린 승리하는 법을 안다! 우린 이미 모든 것을 안다!! 우린 미래를 쟁취하기 위해 살아간다! 그리고 그건 이제! 오롯한 우리의 몫이다!!”
목이 쉬어 버리진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열정적이었던 펩의 팀 토크 이후, 이곳엔 온통 라커를 손바닥으로 두들기거나 기괴한 고함을 지르는 남자들로 채워졌다.
이것은 금방 그의 목소리가 제대로 잘 전달되었다는 증거였으며, 나 역시도 연신 소리를 내지르며 끓어오르고 있는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펩은 금방의 팀 토크를 통해, 우리가 짊어지고 있던 부담감을 멋들어지게 챔피언의 품격으로 바꿔 놨다.
그리고 감히 말하는데, 이렇게 만들 수 있는 축구 감독은 채 열 명도 되지 않을 것이다.
100% 장담할 수는 없지만, 난 그런 극소수의 감독 중 하나에게서 축구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펩이 먼저 라커룸을 떠나고, 남은 코치들과 선수단 전원이 스크럼을 짜고 한가운데에 모인다.
오늘은 명단에 속한 18명을 포함, 바이에른 뮌헨 팀 스쿼드에 이름을 올린 전원이 함께하고 있다.
난 잠깐 고개를 돌렸고, 바스티와 눈이 마주친 뒤에 나란히 미소를 피워 올렸다. 괴체는 여전히 긴장한 듯 무표정이었지만, 그래도 얼굴엔 자신감이 가득했다.
이후로도 난 리베리, 알라바, 다니엘, 피사로 등을 차례대로 보았고 마침내 내 시선이 맞은편 보아텡에게 닿았을 때 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람이 뛸 수 없는 오늘, 바이에른 뮌헨의 주장은 저기에 있는 제롬 보아텡이다.
“길게 말하지 않겠어!! 나가서 골을 넣자!! 그리고 클린 시트를 기록하자!! 그럼 우리가 이겨!! 간단해!!”
“오- 축구 참 쉽네.”
“와하하하하하!!”
“닥쳐, 토마스! 넌 매번 그게 문제야!”
보아텡의 파이팅에 뮐러가 태클을 거는 모습은 평상시와 같은 것이라, 하마터면 이 팽팽한 긴장감이 풀어질 뻔했다.
하여간 저 망할 녀석.
“펩이 말했지! 우린 챔피언이야!! 하지만 무엇보다!! 우린 바이에른 뮌헨이야!! 바이에른 뮌헨!! 이제부터 우린 바이에른 뮌헨의 방식으로 승리한다!! 빅이어를 쟁취해!! 내일 당당하게 독일로 돌아갈 거야!! 가자!! 최선을 다해 싸워!!”
다시 한번 거대한 열기가 라커룸을 지배하고, 차례대로 복도를 나서는 동료들의 어깨에선 어쩐지 김이 올라와야 어울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빠르게 뒤따를 수 없었던 난, 일단 자리로 돌아와 언제나처럼 아영이의 사진에 손 키스를 보냈다.
‘다녀올게. 이번엔, 무척 근사한 것을 가지고 갈 거야.’
뮌헨의 집에서 경기를 지켜볼 아영이와 가족들을 떠올리며, 난 다시 힘차게 복도를 걸었다.
‘지켜봐 주세요. 비록, 벤피카는 아니지만.’
환하게 웃고 계신 에우제비우 선수의 사진을 바라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난 축구 외적인 스위치를 몽땅 내려 버리기로 결정했다.
‘딸깍-’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 소리를 스터드가 복도와 맞닿는 소리로 덮으며, 난 그렇게 앞으로 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