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372)
371화
항상 머릿속에 남아 있는 기억이 있다. 어렸을 적의 것이자, 축구에 빠져들게 되고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본래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가세(家勢)가 기울면서 가족들과 함께 수원으로 이사하게 됐다.
희미하게 남아 있는 기억 속에서의 나는 낡은 TV의 앞에서, ‘경인 TV(I-TV)’가 중계해 주던 수원 삼성 블루윙스의 경기를 넋 놓고 바라봤다.
당시 좋아했던 선수들의 이름도 고스란히 기억한다.
서샤(Sasa), 데니스(Denis), 비탈리(Vitaliy). 또 고종수, 김진우, 서정원 등. 또 아버지가 좋아했던 이기형 선수와 왼쪽 풀백이던 신홍기 선수까지도 전부 말이다.
부모님은 6살밖에 안 된 꼬마가 연습장을 펼쳐 두고 멋대로 포메이션을 그리고 줄을 그어 대는 것을 보시곤, 축구를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2년 뒤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축구를 시작했을 때, 나의 꿈은 당연하게도 수원의 푸른 유니폼을 입는 것이었다.
언젠가 K-리그에서 뛰고 또 국가대표가 되고.
이게 내 어린 시절 장래 희망이었다.
그래서 가끔 유럽에서 만난 친구나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들의 앞에서 내 꿈을 말하는 순간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발롱도르를 수상하는 것을 꿈꾼다는 건, 내겐 완전히 미지(未知)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의 무지가 부끄럽다는 것이지, 결코 K-리그 선수가 된다는 게 부끄럽다는 건 아니다.
대한민국 대표가 되는 것이야 말할 것도 없다.
이건, 무척 자랑스러운 일이다.
{“와아아아-!!”}
잠깐 동안 들을 수 없었던 주변의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하고, 나는 필사적으로 달리던 아드리안 로페즈(Adrian Lopez)를 추격해 어깨를 부딪쳤다.
어렵지 않게 위치 선정에서 우위를 가져간 나는 곧바로 로페즈를 등졌고, 축구공이 사이드라인 밖으로 자연스럽게 굴러 나갈 수 있도록 버티기로 했다.
가랑이 사이와 발 옆으로 어떻게든 발을 밀어 넣으려던 아드리안 로페즈.
하지만 난 제대로 상대를 밀어 내는 중이었고, 결국 답답했는지 아드리안이 나를 강하게 밀쳤다.
삐—익!!
“Mierda!! Hijo de Puta!!!”
화가 단단히 난 아드리안 로페즈가 나도 알아들을 수 있는 욕을 스스로에게 내뱉는 것을 보며, 다시 한번 이 무대가 어떤 곳인지를 실감한다.
‘난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넘어져 있는 내 앞으로 노이어가 다가왔고, 그의 손을 잡아 몸을 일으키자 잘했다며 엉덩이를 두드려 왔다.
뭐, 이 정도야.
.
(제이미 캐러거) – Sky Sports U.K 해설위원
“두 선수가 볼을 두고 다투는 모습을 보는 게 참 흥미로웠습니다. 아드리안 로페즈와 디에고 시메오네에겐 아쉬운 순간이겠지만, 펩 과르디올라는 지금의 장면에 흐뭇할 겁니다. 왜냐하면 지금과 같은 공격이 AT 마드리드의 유일한 공격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쉽지 않아 보이네요. 디에고 코스타의 부상이 치명타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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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 14분
바이에른 뮌헨 0 : 0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디에고 코스타의 부상 이후, 펩은 팀을 조금 더 공격적으로 만들기 위해 하비를 전진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아드리안 로페즈가 최전방과 2선 전체를 활발히 오가는 선수였기 때문인데, 디에고 코스타에 비해 기동력은 좋아도 순수 공격 파괴력은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볼을 지키며 공격을 하기보단 철저히 뒷공간을 노릴 것이기에, 의도적으로 최종 수비라인을 조금 내려 골키퍼와의 사이 공간을 줄였다.
디에고 코스타는 골대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위협적이게 되지만, 비야와 로페즈는 공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크게 주효했고, 수세가 계속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최전방 공격수 두 명도 하프라인 아래로 내려 수비 숫자를 보탤 수밖에 없게 됐다.
7:3?
‘아니. 거의 8:2야.’
점유율에서 AT 마드리드를 완전히 압도하며, 우린 이 경기를 지배해 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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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현) – SBS Sports 해설위원
“아직 득점도 없고 결과도 모르지만, 굉장히 편하게 시청이 가능한 경기입니다. 예전 박지성 선수 때는 조마조마했거든요? 부상자가 많기는 해도, 역시 뮌헨은 뮌헨입니다.”
(배정세) – SBS Sports 아나운서
“마리오 괴체의 슛! 하지만 디에고 고딘이 막아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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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이 느슨해지기 딱 좋은 순간, 디에고 고딘(Diego Godin)의 몸을 맞고 튀어나온 축구공이 아드리안에게로 향했다.
가슴으로 침착하게 트래핑을 한 그가 뒤쪽으로 볼을 밀어 내고, 거의 동시에 나와 비슷한 선상에 있던 다비드 비야가 몸을 돌려 스프린트 해 나갔다.
본능적으로 경종을 울린 나 역시 몸을 돌려 같은 방향으로 달렸고, 예상대로 후방에서 기다란 롱 패스가 나와 왼쪽의 빈 공간에 떨어져 내린다.
축구공이 떨어진 지점까지의 거리는 대략 10m 정도고, 난 있는 힘껏 달리면서도 단테를 향해 왼손을 휘저었다.
나올 필요 없으니 자리를 지켜 달라는 뜻이다. 그런데 날 보지 못한 것인지, 아님 다른 생각이 있는지, 단테는 계속 볼이 튕겨 움직이는 방향으로 달려왔다.
슬쩍슬쩍 단테를 보며 불길한 느낌이 커졌지만, 그래도 스프린트를 멈출 수는 없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쿵-!
“우욱-!!”
{“-!!!!”}
축구공만을 바라보며 뛰어든 단테가 엉뚱하게도 먼저 볼에 도달한 나를 밀어 넘어뜨리는 모양새가 된다.
갈비뼈 부근에서 엄청난 통증이 밀려왔고, 사이드라인 바깥쪽으로 밀려나 버린 나는 피치를 데굴데굴 구르면서 쓰러졌다. 그리고 내 근처엔, 충돌 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단테가 엎드린 채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곳엔 졸지에 볼을 획득하게 된 다비드 비야가 있었다.
그는 지금, 단독으로 드리블 중이다.
제롬이 발 빠르게 접근을 하곤 있지만, 지금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은 아드리안 한 명뿐이다. 비슷한 위치에서 경합을 해 줬어야 할 호이비에르는 이제 막 하프라인을 넘었다.
‘아니. 대체 왜? 어쩌다가?’
이루 셀 수조차 없는 많은 의문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고, 우리가 완벽하게 압도하고 있던 경기는 엉뚱한 실수로 인해 아틀레티코에게로 기울어지고 만다.
욕심을 부리지 않은 비야가 왼쪽으로 패스를 보냈고, 보아텡과 노이어의 사이를 스쳐 지난 축구공을 아드리안이 슈팅으로 마무리한 것이다.
텅 비어 있던 골대의 그물이 출렁이고, 거의 동시에 주심의 휘슬 소리가 들려왔다.
삑-!! 삐—익!!!
그리고 그걸 확인한 나는.
[씨이팔-!!!!!!]쿵-!!!!
두 주먹으로 힘껏 피치를 내리치고는 절망적인 표정의 단테를 향해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어!!!!!”
“…….”
“가만히 있으라고 했잖아, 이 병신아!!! 왜 나를 보지 못했냐고!!!”
“…….”
단테가 나를 정말로 못 봤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손을 내젓는 것은 못 봤더라도, 최소한 볼에 먼저 도달한 쪽이 동료라는 것쯤은 알았어야 했다.
시즌 중반 이후부터 자주 수비에서 엉뚱한 실수를 저질러 온 단테라지만, 이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압박을 느꼈다고 말해야 할까?
나보다도 더 경험이 많은 그가?
아니면, 단순한 실수?
“제기랄!!! 빌어먹을!!!!”
단테가 쪼그려 앉으며 괴로운 듯 얼굴을 감싸 쥐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수습할 수 없다.
앞으로 잘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기엔, 오늘 경기에 달려 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컸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잘해야 했고, 실수도 절대 해서는 안 됐다.
0:1.
고작해야 한 골 차였지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라는 무게가 더해진 지금은 그걸 따라붙는 게 무척 어려운 일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
·전반 22분
바이에른 뮌헨 0 : 1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라는 의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를 거두면 그만’이란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현재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그렇게 하고 있다.
전원 수비를 통해 페널티 박스 주변 공간을 완벽히 장악하고,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보다 늘 수적 우위를 점한 것이다.
오히려 실점 이후 바이에른 뮌헨이 최종 수바라인을 하프라인 위까지 끌어 올리면서, 역습을 통한 추가 득점을 올릴 확률이 오히려 높아졌다.
이 같은 상황이 무척 만족스러웠던 디에고 시메오네가, 모처럼 여유를 가지고 코치스태프와 대화를 나눈다.
“이게 축구야. 안 그런가?”
“큭큭큭, 바로 우리의 축구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수석코치 헤르만 부르고스(German Burgos)는 현역 시절 준수한 골키퍼로 명성을 떨쳤다.
현재는 디에고 시메오네의 가장 든든한 파트너로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성공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대로 두드려 맞으면, 열릴 위험이 있어.”
“그래. 그렇지만 이게 최선이야. 이런 경기는 실력이 가장 중요하지 않아. 승리에 대한 집착, 희생. 그리고 아까와 같은 실수가 승부를 가르지. 무엇보다, 바라던 방향 아닌가?”
계속해서 바이에른 뮌헨이 볼을 가지고 있음에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벤치는 상당히 여유롭다.
실점 후 두 명의 공격수로 하여금 김다온과 호이비에르를 따로 밀착 마크하도록 만들면서, 바이에른 뮌헨이 보여 준 변수 역시도 차단을 해 두었다.
3-5-2나 3-6-1이 아닌 3-3-3-1을 들고나온 펩 과르디올라의 전략에는 솔직한 박수를 보내겠지만, 3-3-3-1의 장점도 어디까지나 0:0 혹은 뮌헨의 리드 상황에서나 나온다.
오히려 아틀레티코가 우위를 점한 지금은 장점보다는 단점이 훨씬 더 많다.
일단 기본적으로 2선과 그 아래의 연결 고리 부분이 취약하여 전방으로 볼 전개에 시간이 걸리고, 중원에 숫자를 보태려 라인을 높이면 역습에 취약해진다.
더구나 추가 실점은 뮌헨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는지라, 팀 전체의 움직임도 다소 소극적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전반 초반부 맹활약했던 김다온의 위력도 반감되었는데, 두 개의 플랫(Flat)을 페널티 박스에 세워 두기만 했던 아틀레티코는 여유롭게 축구를 할 수 있게 됐다.
또, 심리적인 차이 역시도 분명해 보인다.
뮌헨 선수들의 실책이 늘어난 거다.
지금도.
[이봐아-!!] [대체 그게 뭐야?!]어이없는 방향으로 날아간 호이비에르의 패스에 뮌헨 선수들 몇몇이 불만을 터뜨리고, 아직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덴마크의 미드필드는 짓눌린 얼굴이 되어 버린다.
“괜찮군. 일단 전반을 지금처럼만 마친다면 말이야.”
“그래. 그럴 것 같네.”
“휴우- 그래도 일어나 봐야겠어.”
목을 한 번 축인 디에고 시메오네가 검은색 수트의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앞으로 걸어 나간다.
그런 그의 모습엔, 승부에서 우위를 점했다는 자신감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습을 본 아틀레티코의 남자들은 더욱 큰 자신감을 얻는다.
끈끈한 유대 관계로 이루어진 감독과 선수의 관계는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표정과 몸짓 하나로 서로의 심리 상태를 알 수 있다.
예상하지 못했던 행운을 거머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이들의 자신감은 점점 더 커져 가는 중이다.
***
·전반 33분
바이에른 뮌헨 0 : 1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내가 말할 것은 아닐 수도 있지만, 팀에 짜증이 늘었다.
시즌 중 가장, 심리적으로 쫓기고 있는 것 같다.
가끔 벤치를 보지만, 펩도 딱히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여기! 여기!”
“…….”
“이런!”
실점 상황에서 결정적 실수를 범한 단테는 이후 평범한 빌드업 패스마저도 주저하며 연신 백패스를 했고, 덕분에 전방으로 볼이 움직이는 시간이 상당히 지체되고 있다.
분위기에 휩쓸린 호이비에르도 나쁜 상황 판단을 보였고, 이에 리베리와 괴체는 자주 언성을 높였다.
처음엔 나도 몇 번은 목소리를 높여 호이비에르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지금은 도저히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반대편에 있는 친구에겐 미안하지만, 주변을 챙기는 것만 해도.
‘이런! 또?’
충분히 벅찼기 때문이다.
2선에 자리 잡은 세 명의 선수는 오늘, 슬램덩크의 정대만이 되기로 한 것 같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꼭 [이제 내겐 골대밖에 보이지 않아.]라 생각하고 뛰는 것 같다는 뜻이다.
일단 저곳으로 패스가 전달되면 모두 드리블만 해 대기에 바빴고, 기껏 패스가 나와도 최후의 순간에 억지로 한다는 느낌이라 볼을 돌리는 것 외에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
물론 나나 호이비에르를 다비드 비야와 아드리안 로페즈가 맨마킹 하며 패스를 전달하는 게 어려워지긴 했다지만, 우린 그들을 벗겨 내는 스프린트를 계속 하고 있다.
또 토마스 뮐러도 아까부터는 볼을 발밑에 잡아 둔 적이 몇 번 되지 않는다.
패스가 멈추면서, 오프 더 볼 역시도 무의미하게 바뀌어 버리고 만 것이다.
이렇게 세 명의 선수가 무의미한 스프린트만을 반복하고 또 이기적인 세 명의 선수가 자꾸 공격을 무위로 돌리다 보니, 팀에도 자꾸 부정적인 감정이 쌓여 가고 있다.
볼을 빼앗긴 후 유일하게 전방 압박을 시도하던 토마스 뮐러가 허탈한 몸짓을 보내는 걸 보며, 덩달아 안타까움을 느꼈던 나는 후방으로 물러나서 수비를 준비했다.
전방으로 공격 가담을 해도 볼이 잘 오지 않다 보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추가 실점을 막는 것이다.
더구나 아까부턴, 상대의 빌드업이 더 좋다.
양쪽 미드필드가 중앙으로 좁혀 주고, 양쪽 윙백이 전진하고, 또 아드리안 로페즈가 전방위로 움직이는 동안 페널티 박스 근처에 머문 다비드 비야가 골을 노린다.
지금도 너무나도 쉽게 중앙 공간을 허락했는데, 비야의 트래핑이 조금만 가까이 됐으면 위험했을 거다.
하비 마르티네스가 억지로 몸을 밀어 넣으며 볼을 걷어냈고, 간신히 한숨을 돌리게 된 우린…….
“…….”
고요하다.
‘제기랄. 이게 아닌데.’
피치 위에는 온통 무기력뿐이었다.
그리고 그걸 보며, 난 생각했다.
‘정말 이게 바라던 거야?’
챔피언스 리그 4강전에서, 우린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기적과도 같은 역전승을 일궈 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승리였고, 당시 우리가 피치 위에서 보여 준 모습은 지금과는 180도 달랐다. 오기도 있었고, 무모함에 가까운 자신감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당시의 상황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 말할 수 있다.
고작해야 한 골을 뒤진 것뿐이고, 남은 시간을 생각하면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더 물었다.
또 우린, 배부른 돼지가 된 게 아닐까?
그래서 노력이 부족한 거다.
더구나 이 무대는 챔피언스 리그 결승이다.
그런데 이토록 쉽게.
‘포기할 거야?’
정확히 세 개의 질문.
이렇게 총 세 개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 뒤에, 난 스로인을 받아 든 후안프란에게 달려들었다.
조금 거칠고 또 파울일 수도 있겠지만.
‘제발.’
안 그러기를 바랄 수밖에.
[어억-!] [에-이!!]강하게 밀어붙임을 당한 후안프란이 넘어지자, 주위에서 동시다발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덩달아 나도 슬쩍 주심의 눈치를 봤지만, 휘슬이 불리지는 않을 것 같다.
주심이 지금 양손을 허리 곁에 둔 채, 동그랗게 뜬 커다란 눈으로 이곳을 지켜보기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파울을 신경 쓰는 것을 관두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에 몰입했다. 쓰러진 와중 후안프란이 내 종아리를 걷어차려고 했지만, 어떻게 빗겨 나갔다.
볼을 한 차례 더 툭 차 넣으며, 전방을 바라본다.
‘셋이라. 많네.’
공격을 시도하는 와중에도, 아틀레티코는 세 명의 선수를 하프라인 부근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후방으로 물러서서, 적당한 위치에서 벽을 형성했다.
대략 하프라인 아래 7m 정도 되는 지점이었는데, 아마도 저 위치에서 지연을 시켜 수비 라인이 갖춰질 때까지를 기다릴 것이다.
후안프란이 넘어지면서 오른쪽 측면이 텅텅 비었는데, 현재 저들의 포지션을 보면 오히려 그쪽이 덫이다.
지금까지 본 아틀레티코의 수비 조직력은 중앙과 측면 가릴 것 없이 뛰어났고, 선수들도 특정 포지션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유기적으로 위치를 옮겨갔다.
상시 뛰는 것은 어렵더라도, 한 차례 정도의 포제션에서 임시로 수비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거다.
지금도 보면 나를 측면으로 몰아내고, 복귀하는 선수들로 하여금 중앙을 커버토록 하겠다고 하는 의도가 보였다.
그렇다면 굳이 거기에 휘둘릴 필욘 없다.
더구나.
‘어차피 이러려고 했어.’
“흐읍-!”
퍼억-!!!
너무 아웃프런트에 맞은 축구공이 오른쪽으로 점차 휘어지며 아무도 없는 곳을 향해 날아가 버린다.
그와 동시에 관중석 한쪽에서는 탄식이 또 다른 한쪽에서는 조롱과 야유가 쏟아졌지만, 애초에 볼을 빼앗았을 때부터 이럴 생각이었던 나는 몸을 돌리면서 소리를 내질렀다.
“이 멍청이들아아아아-!!!!!”
“?!”
“여긴 너희들의 꿈일 것 아니야아아악-!!!!”
“…….”
“게으른 새끼들!! 전부 엿이나 먹어!!!”
나는 기꺼이 동료들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렸고, 그런 뒤에는 관중석을 돌아보며 팔을 휘저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아틀레티코의 팬들이 많은 곳이었던지라, 도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나 보다. 물건 몇 개가 투척이 되었고, 곧바로 장내 아나운서의 방송이 울린 것이다.
그리고 주심도 얼른 다가와 영어로 내게 말했다.
[뭐 하는 짓인가? 이건 위험한 행동이야!] [Sorry. I didn`t mean it.] [한 번만 더 그러면, 경고일세. 알겠나.] [Yes, sir.] [이런! 정말이지!]먼저 나 자신을 반성해야 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동료들도 할 말은 없을 테니 다 같이 나아지는 걸로 하고 싶다.
다시 위치를 찾아 돌아가며, 난 한동안 멈췄었던 다른 목소리도 내기로 한다.
[피에르-! 피에르-!!!] [??] [침착해-!! 넌 잘하고 있어!!]펩의 격려도 먹혀들지 않은 피에르에게 내 목소리가 닿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한동안 절망과 무기력에 전염되어 있었던 나로서는, 녀석이 지금이라도 위축된 감정을 털고 전반 초반처럼 잘 뛰어 주길 바랄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동료들도 조금 정신을 차려 줬으면 좋겠다.
이곳이 정말, 우리가 꿈에 그린 무대라면.
‘나도 조금 더 잘할 테니까.’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과연 노력만으로 모든 게 바뀔까?
이렇게 끊임없이 긍정과 부정 사이에서 혼자 다투고 있을 무렵, 정말 오랜만에 벤치에서 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이봐아-!!!!”
“?!”
전반 35분.
마침내, 펩이 테크니컬 에어리어 앞에서 그 특유의 커다란 제스처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