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379)
378화
2014년 5월 28일. 81479 뮌헨, 독일. 카루소베크 1C.
지난 3일을 짧게 요약하자면, ‘혼돈 그 자체’였다.
갑작스러웠던 프로포즈의 대가를 톡톡히 치른 거다.
[굿모닝~] [잘 잤어?] [웅!!]하지만 이래저래 바쁘고 힘든 와중에도, 아영이와의 사이는 어느 때보다도 돈독했다. 지금도 우리는 아침 식사를 위한 1층 주방에서 만나, 서로를 꼭 안은 채 입을 맞췄다.
[전화 엄청 왔었어.] [어제도?] [응. 볼래?]품에 안긴 채로, 아영이는 휴대폰 화면을 내게 보여 줬다.
[우와~ 장난 아니네?]우리가 잠든 8시간 동안, 아영이의 휴대폰엔 97개의 부재중 통화와 53개의 문자. 그리고 수백 개의 톡 메시지가 확인하지 않거나 읽지 않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대부분은 한국의 언론사였으며, 그녀의 친구와 연예인 동료. 그리고.
[응? 장모님도 전화하셨네?] [아우 야~ 그르지 마아~] [왜? 맞잖아?] [……몰라. 어색해.]프로포즈를 했던 날 우리가 정신없이 이곳저곳으로 휩쓸려 다니던 동안, 아영이의 부모님으로부터 정말 엄청나게 많이 전화가 왔었다.
우승 셀레브레이션이 ‘KBS Sports N’을 통해 생중계되고 있었기에, 실시간으로 확인을 하셨던 거다.
장담하는데, 통화가 이루어진 뒤에 나는 근래 몇 년 중에서 가장 눈물이 쏙 빠지게 혼이 났다.
직업 군인이셨던 장인어른께서 근엄한 목소리로 [“자네가 정말 우리 딸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나?]라고 물으셨을 무렵엔, 넋이 거의 나가 있었던 상태였다.
그렇지만 나중에 장모님께서 말씀해 주시길, 몇 달 전부터 대충 이야기가 나왔었단다.
아영이와 내가 독일에 있는 동안, 양쪽의 부모님들끼리 주기적으로 만나며 좋은 사이를 만들어 온 거다. 여기엔 우리 엄마의 입김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하여간 우리 엄마, 행동력은 진짜 알아줘야 돼.] [그러엄~ 자기가 누굴 닮았겠어?] [……그거 칭찬이지?] [응! 어머님한테만.] [……너 일루와.] [꺄-악!! 아하하하하하.]장인어른이 나를 크게 혼냈었던 건, 단순히 기분에 취해 내일이면 사라질 감정에 휩쓸려 프로포즈를 했을까 봐 때문이셨다. 나중에 듣게 된 말론, 월드컵이 끝나고 한국에 갔을 때 진지하게 이야기도 해 볼 생각이셨다고 한다.
언제까지고 딸을 유럽에 붙잡아 둘 생각이냐며, 어설프게 시간을 보낼 거면 아영이가 꿈을 좇을 수 있도록 한국으로 보내라고 말씀하실 생각이셨던 거다.
나도 아영이가 간간이 보여 주는 강단(剛斷)과 똑 부러진 성격이 누굴 닮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한차례의 추격전과 매우 뜨거웠던 뒤풀이(?)가 끝나고, 다시 주방으로 온 우리는 시원한 물을 한 잔씩 마시곤 계속해서 서로를 안은 채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엄마 언제 온댔지?] [모레.] [음- 그럼 그다음에 여행 가자.] [웅. 헤헤헤.]부모님과 누나는 우승 셀레브레이션 다음 날부터 독일을 순회하고 있다. 에이전시에서 따로 한국인 가이드와 두 명의 경호원을 붙여 줬고, 덕분에 가족들은 무척 편안하고 또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가을쯤엔 장인 장모님과 처제들을 독일로 초대해, 똑같이 여행을 시켜 드릴 생각이다.
[아니, 자긴 어떻게 그렇게 말을 잘해?] [뭐가?] [장인어른이라든가 장모님이라든가. 처제라고 말하는 거 안 부끄러워?] [부끄러? 그게 왜?] [……솔직히 말해.] [??] [한 번 갔다 왔지? 맞지?] [뭐어-?]다시 한번 추격전이 펼쳐졌지만, 이번엔 뒤풀이는 없다. 대신 소파에 부둥켜안고 누울 뿐이다.
[아~ 좋다.] [나도.] [우흥흥흥흥.]콧소리를 내며 가슴팍에 얼굴을 부비는 아영이를 보고 있으니 무척 기분이 좋았다. 무엇보다, 진심으로 행복해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당연히 나도 최고로 행복하다.
실은, 챔피언스 리그 우승보다도 더 그렇다.
[여행 갔다가 찢어지겠다. 그치?] [응. 대신 자기 먼저 보낼 거야. 약속한 거다?] [피이- 안 그래도 되는데.] [어허~ 어디 아녀자가 외국에 혼자 있으려고!] [우흥흥. 왜? 걱정돼?] [그럼 안 돼?] [우흥~ 좋아라.]가족들이 독일에 돌아오는 대로, 우린 미리 계획했던 휴가를 떠날 생각이다. 일단 3일 정도 휴가지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면, 4일째에 친구들이 합류를 할 거다.
베르나르두와 안드레 또 제로니모가 그리스의 크레타로 합류하기로 했고, 그렇게 며칠을 더 함께하고 나면 우린 떨어져서 각각 다른 비행기를 타야 한다.
아영이는 한국으로 가 소속사 문제와 결혼식 준비를 도맡고, 나는 브라질에 차려진 월드컵 캠프로 간다.
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보스니아와 한 조가 된 우린, 2위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팀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우웅~ 얼마나 못 보지?] [글쎄. 한 40일쯤? 안 될까?] [보고 싶겠다아~]아영이는 브라질로도 오고 싶어 했지만, 현실적으로 여건이 되지를 않았다. 어차피 치안이 걱정되는 것도 있어, 우린 잘된 셈 치자고 합의를 봤다.
그래도 물론 40일 넘게 떨어지는 건 싫지만 말이다.
[대신 볼 때 더 좋겠지?] [당연하지. 그날 잠 안 재울 건데?] [우~와! 진짜?]또 한 가지 바뀐 것이 있다면, 프로포즈를 승낙한 후에 아영이의 애교가 늘었다.
개인적으론, 무척 만족하는 부분이다.
누나밖에 없다 보니, 이런 게 좋았다.
[몇 시지?] [으음- 10시?] [슬슬 준비하자. 장 보고 와야지.] [우웅~ 귀차나아~]힘을 쭉 풀며 껌딱지가 되려고 하는 아영이를 힘겹게 일으키며, 우린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오늘은 오후에 초대 손님이 방문할 예정인데, 휴가를 떠나기 전의 펩과 그의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이곳에서 잠을 함께 청할 예정이다.
펩과 크리스티나는 잠을 자고 가라는 것에 조금 당황했지만, 한국 방식의 파자마 파티라고 하니 곧 이해를 했다.
어차피 가족들도 없고 또 사용하지 않은 손님용 방도 하나 남아 있어, 별다른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아니면 그냥 여자들을 따로 재우고 나랑 펩이 거실에서 자도 된다.
또 어제 아영이랑 시내에 나갔을 때, 오늘 펩과 함께 보려고 축구계에서 ‘클래식’으로 불리는 매치업의 DVD도 따로 구입해 두었다.
[그럼, 씻고 와?] [네에~!]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걸어가는 아영이를 사랑스럽게 쳐다본 나는, 2층 현관의 다른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의 물을 틀었다.
쏴아아아아-
‘또, 해야 할 말도 있고.’
여러 가지 의미에서, 난 오늘 저녁을 무척 기다리고 있었다.
***
81547 뮌헨, 독일. 재베너 슈트라세 51-57. 바이에른 뮌헨 서비스 센터 및 훈련시설. 프런트 오피스, 회의실.
하나의 시즌이 가져다준 영광을 가장 빨리 벗어 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클럽의 보드진과 실무를 이끄는 프런트 오피스의 사람들이다.
유럽의 오프 시즌은 챔피언스 리그 종료와 함께 곧바로 시작하기에 발 빠르게 현장 감각을 되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를-하인츠 루메니게는 어제를 끝으로, 달콤했던 시간을 마무리 짓기로 결정했다.
지금 그는 스피커폰을 켜 두고, 클럽 내 핵심적인 인사들과 함께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그럼 그를 볼파르트 클리닉으로 보내 주시죠.”
– 네. 물론입니다.
“환상적이로군요! 즐거웠던 거래였습니다. 다른 에이전시가 당신들의 절반만 닮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지금 막, 카를-하인츠 루메니게는 베르나르두 실바의 계약을 마무리 지었다. 벤피카는 오래전에 2,250만 유로(약 300억 원)에 달하는 이적료를 받아들였고, 이틀 전부터 바이에른 뮌헨은 선수의 에이전시와 협상을 벌여 왔다.
최근 세(勢)를 발 빠르게 확장 중인 ‘프레데터’는 유럽과 남미의 뛰어난 젊은 재능을 다수 확보하며, 유럽 축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간에는 ‘프레데터’가 일종의 써드 파티라는 소문도 돌았지만, 오히려 그런 소문을 낸 쪽의 사람들의 스캔들이 터졌다.
이런 행운의 연속 속에서 이 신규 에이전시는 묵묵히 성장을 거듭했고, 이젠 마침내 스페인과 독일 최고의 클럽에 자신의 선수를 보급하게 되었다.
딸깍-
전화가 끊긴 후, 주먹을 불끈 쥐여 보였던 카를-하인츠 루메니게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과 하나하나 악수를 나눴다.
이것은 FA(자유계약)를 제외한 바이에른 뮌헨 최초의 영입이었고, 마티아스 잠머가 공표한 ‘3연속 트레블’을 바라는 클럽의 거침없는 행보를 시작하는 계약이 될 것이다.
외에도 현재 바이에른 뮌헨은 수비 진영 전체에 보강을 준비 중이었고, 루메니게가 다시 자리에 앉자마자 또 다른 미팅이 시작됐다.
월드컵이 선수 영입의 속도를 높이는 데 걸림돌이 되곤 있지만, 뮌헨 정도 되는 클럽이라면 큰 무리는 없다.
“멋지군. 그래. 다음은 뭐지?”
“네, 회장님. 수비수인데, 일단 펩은 발이 빠르고 동시에 빌드업이 가능한 센터백을 원합니다. 하지만 만약 그게 불가능하다면, 일단 첫째는 발이라 하더군요.”
“이해했네. 후보는?”
“총 세 명입니다.”
마티아스 잠머가 바이에른 뮌헨의 스카우트 그룹으로부터 전달받은 추천서엔 이 세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우선, 메흐디 베나티아.”
“흐음- 베나티아라고?”
“네. 그 베나티아입니다.”
2010/11 시즌에 세리에 A로 진출한 메흐디 베나티아(Mehdi Benatia)는 지난 2013/14 시즌 세리에 A 최고의 중앙 수비수 중에 하나였다.
AS 로마 소속으로 33경기를 뛰었고, 세트피스 상황에서 5골을 기록하며 득점 능력도 인정을 받았다.
펩 과르디올라가 바라는 빠른 발과 빌드업 능력을 갖춘 최고의 센터백 중 하나고, 이번 이적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선수 중 하나기도 했다.
다만 유일한 문제라면, AS 로마의 판매 의지다.
“AS 로마가 그를 팔 것이라고 보나?”
“하하. 어제의 뉴스를 보셨군요?”
“그걸 말이라고! 당연하네!”
시즌 내내 중앙 수비수 부족에 시달린 맨체스터 시티가 하루 전, 베나티아의 영입을 위해 4,350만 유로를 제안했다.
하지만 그것은 10분 만에 거절되었고, 이후 AS 로마의 회장 제임스 J.팰로타(James J.Pallotta)가 [“그 돈으로는 베나티아의 왼발 하나밖에 사지 못한다.”]는 인터뷰를 하며, 해당 센터백의 주가가 얼마나 높은지를 확인해 주었다.
이후 ‘Goal.com’나 ‘Yahoo Sports’와 같은 글로벌 미디어들은, 베나티아의 이적료를 [최소 7천만 유로 이상]으로 책정했다.
가뜩이나 이번 여름 이적 시장의 수비수들은, 김다온의 맹활약으로 인해 이적료가 뻥튀기된 상황이었다.
“너무 비싸. 다음은?”
“몸값이 훅 떨어집니다. 에제키엘 가라이.”
“벤피카? 또?”
“네. 하지만 분명 괜찮은 대안입니다. 신체 조건도 훌륭하고, 또 탁월한 리더십도 갖췄죠. 나이도 28살로 전성기인 데다가, 무엇보다 다온과 친분이 두텁지 않습니까?”
“…….”
과거, 울리 회네스는 항상 선수 개인의 영향력이 클럽 내에서 너무 강해지는 것을 막아서 왔다. ‘Wir Sind Wir’라는 바이에른 뮌헨이 철학에 반대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철학은 이적 시장에서도 작동이 되어서, 특정 선수를 중심으로 세력이 형성되는 것을 막아 왔다.
더구나 이미 바이에른 뮌헨은 베르나르두 실바를 영입하며 김다온이 클럽 내에서 세력을 확장시키도록 했다. 하지만 그것은 클럽의 필요와 선수에 대한 보상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기에 감수한 일이었다.
한데 여기에서 또 다른 벤피카의 선수를 클럽으로 끌어들인다면?
“우린 뮌헨일세. 개인적으론 거부감이 드는군.”
“네. 하지만, 이적료가 워낙 쌉니다.”
“뭐라고? 얼마?”
“600만 유로.”
“뭐?”
현재 유럽의 미디어들이 책정해 둔 에제키엘 가라이의 몸값은 최소 1,500만 유로(약 200억 원)에서 2,400만 유로(약 322억 원) 사이다.
더구나 선수와 클럽 모두 현 상황에 만족을 하고 있기에, 이적료는 더 높으면 높았지 낮아지면 안됐다.
하지만 이에 대해, 마티아스 잠머는 이번 이적에 선수의 입김은 전혀 미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한다.
“……써드 파티로군.”
“네. 가라이의 전권을 쥔 써드 파티가, 그의 계약을 몽땅 양도받는 조건으로 본인들에게도 600만 유로의 비용을 지급할 것을 내세운 상태입니다.”
“허-! 왜?”
“미국 투견 사업에 투자한 금액이 몽땅 사기를 당했다더군요. 전 세계 투견 대회를 조직하려고 했나 봅니다. 이게 재미있는데, 이름이 뭔지 아십니까?”
“?”
“FIFA.”
“뭐라고?!”
“Federation International Fighting dog Association이었다고 하더군요.”
“하-!! 자네, 지금 농담하는 건가?”
“진짜입니다. 제가 왜 농담을 하겠습니까?”
“……허-! 이것 참!”
본질적으로 써드 파티는 회사가 아닌 주먹구구식으로 모인 조직체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일종의 인신매매를 통해 벌어들인 돈을 여러 사업에 투자해 돈을 불리고, 그 돈으로 다시 선수를 사들이길 반복한다.
멕시코와 베네수엘라의 유명 써드 파티가 남미 마약왕의 자금줄이라는 건 매우 유명한 일이다.
깨끗하면서도 국제적인 명성을 획득하길 바라는 바이에른 뮌헨이, 써드 파티의 개입을 철저히 경계해 온 이유다.
“정말인가? 정말 1,200만 유로라고?”
“네. 저도 몇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지금 그들은 유럽이 아닌 러시아나 중국을 확인하고 있다더군요. 그들이라면 쉽게 자금을 전달할 수 있을 거니까요.”
“허-! 선수는?”
“본인은 알지 못합니다.”
“…….”
써드 파티가 인생에 개입된 순간, 선수의 의지는 사실상 담보 잡힌 것이 되어 버린다.
지난 시즌 AS 모나코로 이적한 라다멜 팔카오나 하메스 로드리게스의 경우도, 써드 파티의 추잡한 이기심이 선수의 성장을 방해한 셈이었다.
이번 에제키엘 가라이와 관련된 일도, 선수의 의사는 단 한 순간도 존중받지 못할 것이다.
유일한 위안이라면 선수가 러시아 혹은 중국으로 갔을 때 큰 연봉을 손에 쥘 수 있다는 점과 이제 두 번 다시는 써드 파티와 얽힐 일이 없다는 것 정도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선수는 황금기에 있는 자신의 커리어 중 최소 4년을 변방에서 보내야 한다.
김다온의 세를 불리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던 카를-하인츠 루메니게가, 일단 에제키엘 가라이의 써드 파티와 대화를 나눠 보기로 한 이유다.
“그럼? 마지막은?”
“개인적으론, 마지막이 가장 적절한 대안이라고 봅니다. 그리스 선수죠. 코스타스 마놀라스. 지금은 올림파이코스 소속이고, 클럽은 1,800만 유로 수준의 이적료를 바랍니다. 하지만 1,500만 유로까지는 깎을 수 있을 겁니다.”
“코스타스라. 나도 알지. 젊고, 튼튼하고, 또 빨라. 괜찮은 것 같군. 일단 세 쪽과 전부 이야기를 나눠 보게나.”
“네. 그렇게 하죠.”
“좋아. 또 다음은 뭐지?”
“네. 이번엔 풀백입니다만, 하피냐를 계속…….”
망중한(忙中閑) 속, 이곳은 여전히 공사다망하다.
***
81479 뮌헨, 독일. 카루소베크 1C.
예상대로, 펩은 내가 구매해 놓은 DVD에 매우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저녁 식사를 서둘러 끝마치고선, 아직 음식이 남은 나를 재촉해 거실로 가자고 했다.
그래서 나는 웃고 있는 각자의 부인들을 주방에 놓아두고, 음식을 담은 접시를 챙겨 거실로 오게 되었다.
“1978년 아르헨티나!! 스코틀랜드와 네덜란드!! 하-!! 이건 진짜 명경기였지! 자넨 본 적이 있나?”
“아니요. 없어요.”
“자넨 지금까지, 인생을 낭비하고 있었던 거야. 멍하니 있을 시간에, 이런 경기를 봤어야지.”
우물우물대며 음식을 먹던 도중, 난 어이없음을 느끼곤 입에 담은 것을 꼭꼭 씹어 삼킨 뒤에 펩에게 답했다.
“제가 멍하니 있는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건 아세요?”
“오오오-!! 이건 1970년 멕시코 아닌가?! 이탈리아와 독일! 이것도 탁월해! 이것도 볼 값어치가 있지! 그리고 이건? YES!! 마라도나!! 이건 디에고 인생 최고의 경기였어!!”
DVD 하나하나를 보며 일일이 감상평을 내는 펩을 보면서, 나는 다섯 살짜리 아이도 좋아하는 장난감을 선물 받고 저렇게까지 좋아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참 DVD를 뒤적인 펩이 마침내 경기를 골랐고, 우린 네덜란드와 아르헨티나의 1998 프랑스 월드컵 8강전 경기를 보기로 했다.
리모컨을 손에 쥔 펩은 내 곁에 오자마자 와인 잔을 집어 들곤, 부탁하지도 않은 설명을 이어 갔다.
“이건 정말 최고의 경기야! 양 팀 모두 퇴장자가 한 명씩 나온 치열한 경기임과 동시에, 2000년대 축구 전술에 많은 참고 자료가 된 경기이기도 했지. 또 뭔지 아나?”
“네. 알아요.”
“응?”
“이대로 가만히 두면, 당신이 잔뜩 스포일러를 해 버릴 거라는 거. 일단 경기 장면에 맞춰 설명해 주시지 않으실래요?”
“이런!! 그렇게 하지.”
환한 미소와 함께 이마를 찰싹하고 두들긴 펩이, 내 등을 두드리며 TV를 보자고 했다. 하지만 그의 입은 멈출 기미가 없었고, 그렇게 난 계속 축구 역사를 설명 듣게 되었다.
하지만 난 이 시간이 무척 좋다.
펩은 훌륭한 선생님이다.
“1998년은 현재까지 남은 네덜란드 마지막 전성기였어. 아르연이 듣는다면 발끈하겠지만, 나는 현재의 네덜란드가 과거에 비해서는 턱없이 모자라다고 생각해. 지금 네덜란드의 축구는 너무 오래되었지. 다른 클럽과 나라들이 그들의 축구를 계승해 발전시키는 동안, 정작 당사자는 거기에 너무 취해 있었던 거야.”
“흐음- 흔한 경우네요.”
“그렇지? 나도 또 우리도 마찬가지야. 올 시즌의 성공에 취해 멍청하게 군다면, 내년 우린 큰 타격을 입을 거야. 어떤가? 자네라면 그렇게 내버려 두겠나?”
“설마요.”
“바로 그거야!!”
찰싹-!!
“욱-!”
큰 소리가 날 정도로 내 등을 두들긴 펩이 와인을 몽땅 비우더니, 거실 한쪽에 미리 꺼내어 둔 와인 병들의 앞으로 가 입맛에 맞는 것을 하나 들고 돌아왔다.
그래서 식사를 끝마친 나도, 잔을 내밀어 와인을 청했다.
오늘은 술이 빠질 수 없는 밤이다.
“오-! 시작이로군!”
“익숙한 얼굴이 많은데요?”
“그렇지? 저 때 네덜란드는 매력적인 팀이었어.”
“네. 히딩크도 보이네요.”
“훗. 자네 나라의 영웅이랬지? 내 생각엔 이제 자네가 그 자리를 물려받을 때가 된 것 같아.”
“에이, 설마요.”
“큭큭큭큭. 그래. 일단 경기나 보지.”
“네. 살룻.”
“하하. 살룻.”
스페인어로 건배라 말한 나는, 펩과 잔을 부딪친 뒤에 TV 화면에 집중했다. 거실에선 크리스티나와 아영이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펩의 아이들은 지금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오르고 있다.
테라스로 나가 놀거나, 아니면 2층에 놓아둔 게임기를 켤 생각인 것 같다.
“어? 저거? 베르캄프죠?”
“그래, 맞아. 데니스도 최고의 선수 중 하나이지. 내가 예전에 그와 상대를 했을 때…….”
시즌이 끝난 뒤의 어느 한가한 밤.
오늘도 여전히 내 곁엔, 사랑하는 이들과 축구가 함께하고 있다.
부디, 오래도록 이와 같길.
난 진심으로 그러길 바란다.
***
작가의 말 ? 네이버 쪽 독자님들께, 토요일 업데이트는 네이버는 힘들더라고요… 그걸 미리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사죄드립니다. ㅠㅠ
그리고 조만간 문피아 공지사항에 있는 능력치 사진을 따로 특정 화수에 삽입하여 공지하겠습니다. 해당 능력치가 작성된 실시간 날짜와 맞춘 회차를 찾아 수정한 뒤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힘겨운 월요일입니다.
이번 한 주도 파이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