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381)
380화
(이용우) – 9시 KBS Sports News 아나운서
“지난달 7일 브라질 이구아수에 캠프를 차린 대한민국 대표팀이 드디어 완전체가 됩니다. 챔피언스 리그 일정 이후 휴식 차원에서 개인적인 휴가를 보낸 김다온 선수가 현지 시각으로 11일 저녁, 대표팀이 머무는 브라지 버번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자세한 소식, 임수희 기자가…….”
***
2014년 6월 12일. 포즈 두 이구아수?파라나, 85853-000 브라질. 다스 카타라타스 거리, 2345-빌라 욜란다. 버번 카타라타스 컨벤션&스파 리조트(Bourbon Cataratas do Iguacu Resort. Av. das Cataratas, 2345-Vila Yolanda. Foz do Iguacu-Parana, 85853-000 Brazil).
여독이 조금 남아 있지만, 딱히 시차랄 것은 없다. 뮌헨 기준으로 4시간. 또 휴가를 떠났던 그리스 크레타를 기준으로도, 내가 극복해야 할 시차는 5시간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이 별로 힘들지 않았다.
“잘 먹겠습니다아-!!”
이번 대한민국 대표팀의 캠프는 ‘이구아수 폭포’로 유명한 포즈 두(Foz do) 이구아수에 차려졌다.
여기에서 말하는 ‘Foz’란 입.
그리고 ‘do’는 ~~의다.
그러니까 대충 ‘이구아수의 입.’
한국식으로는 이구아수 입구 정도로 해석하는 게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야~ 넌, 피곤하지도 않냐?”
“피곤해도, 쩝쩝…… 먹고는 살아야죠.”
“하아- 그래. 네 말이 맞다.”
대표팀은 지난달 28일 파주 NFC에서 앞서 캠프를 차렸고, 미국으로 넘어가 평가전을 치른 뒤 브라질로 왔다.
오직 나만이 별개의 일정을 허락받아 늦장 합류를 하게 되었는데, 그런 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더 열심히 할 생각이다. 벌써 인터넷엔, 나를 두고 이런저런 말이 많았다.
뭐, 조금도 신경 쓰지 않지만.
그건 진즉에 포기했다.
“야, 이 새끼가 빠져 가지고. 형님한테 인사도 안 하고.”
“오~ 구자봉 하이.”
“아~ 진짜.”
한발 늦게 식당으로 내려온 자철이 형은 날 보자마자 어김없이 시비를 걸려고 했다. 하지만 늘 그랬듯, 데미지를 입는 쪽은 내가 아니다.
“그나저나, 왜 그렇게 발렸어?”
“너는 뭐 보자마자 그 소리냐.”
“아니, 그게. 아무리 상황이 나빴어도 그렇지. 0:3은 너무 심했던 거 아냐?”
“야. 시끄러. 밥이나 먹어.”
주위에 보는 눈도 있어, 나는 잔소리를 관두기로 했다. 대표팀에서 나는 엄연히 막내였고, 런던 멤버라면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은 내가 이러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선후배 문화라든가 손윗사람에게 예의를 깍듯이 차려야 하는 문화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난번 미국에서 벨기에 대표팀에게 0:3으로 패배한 것을 더 말하지 않았다. 당시 대표팀은 갑작스러운 버스 고장으로, 경기장 도착이 1시간가량 지연됐었다.
벨기에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몸을 풀 때쯤에야 경기장에 들어섰고, 정말 간단한 웜업 후에 바로 경기를 뛴 것이다.
그 결과는 시종일관 무기력한 경기 끝의 0:3 패배였는데, 나는 당시에 호텔에서 경기를 생방송으로 지켜봤었다.
“액땜한 셈 쳐야지 어쩌겠냐.”
“뭐, 그래야지.”
“야, 김다온! 언제 왔냐?”
“어-! 형!”
“어, 이 새끼. 나 때랑은 왜 이렇게 반응이 달라?”
사소한 것에 서운해하는 자철이 형을 무시하며, 난 부스스한 모습으로 들어선 성용이 형을 끌어안았다.
“어제 몇 시에 왔어?”
“한…… 11시 반?”
“아, 다들 잠잤겠네.”
성용이 형에 이어 다른 사람들도 식당에 들어섰고, 나는 잠깐 먹던 것을 멈추곤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다들 조금 피곤해 보이는 게,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인다.
적응 기간이라는 게 눈에 띄게 확 느껴졌는데, 낮과 밤의 심한 온도 차도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싶다.
현재 대표팀엔, 감기 주의보가 내려진 상태다.
“감독님은 봤어?”
“아직. 있다가 따로 보자던데?”
“그래? 갔다가 내 방으로 와라.”
“어, 알았어.”
다시 식탁으로 돌아와 앉자, 어느새 자철이 형 옆에 앉은 흥민이 형이 보였다.
“모르겐.”
“하하. 모르겐.”
그렇게 독일에서 뛰는 3인방이 하나의 테이블을 차지해 버리고, 나는 두리 형님과 동국이 형님에게 아침 인사를 하는 걸 끝으로 식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지난 8년 동안 대표팀 식사를 책임져 온 김채형 조리장님의 주도 아래, 브라질 현지에서 고용된 조리사들이 월드컵 기간 우리의 밥을 책임질 예정이다.
영양 밸런스와 입맛을 모두 고려한 식단은 한식과 양식을 총망라했고, 맛은 끝내주게 좋았다.
“으허- 배불러!”
“넌 변함없이 많이 먹는다.”
“뭐, 그렇지? 그런데, 대표팀 분위기가 왜 이래?”
“…….”
흥민이 형이 곁의 자철이 형을 바라보고, 난 볼을 긁적이며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는 모습들에 대해 말했다. 파주에서 보았던 대표팀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당연하지. 너는 부담도 안 되냐?”
“부담? 그게 뭔데? 먹는 거야?”
“아우~ 진짜. 너는…….”
“나는 뭐?”
이번 월드컵 성적에 대해, 한국에서 기대가 꽤 크다는 말은 들었다.
월드컵 예선전이라든가 평가전에서 보여 준 모습도 괜찮았고, 또 조 편성 역시 충분히 16강 진출을 노려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조 2위로 16강에 오른다고 해도 C조 1위가 될 확률이 높은 프랑스를 만나게 되겠지만, 일단 조별 예선을 통과하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란 평가가 내려질 것 같다.
지금 형들은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부담을 느끼는 것이었고, 반대로 나는 자신이 있었다.
“아니, 흥민이 형. 형은 말해 봐. 형은 자신 없어?”
“나? 나야 뭐, 해볼 만은 하다고 생각해.”
“봐- 흥민이 형도 그러잖아. 누구야? 대체 누가 분위기를 이렇게 죽이고 있는데?”
100% 장담은 할 순 없지만, 이런 분위기면 분명 누군가 초 치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팀 내 최고참이 그럴 확률도 있지만, 그보단 중간층이 그러지 않을까 싶다.
한국에서 축구를 안 한 것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똥군기를 잡으려고 드는 사람은 항상 중간층일 때가 많았다.
“저기.”
“…….”
괜히 얼굴 이곳저곳을 만져대던 흥민이 형이 한쪽을 가리키고, 난 그곳에 앉은 세 명의 남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나.
‘중간층이네.’
월드컵 팀 합류 첫 번째 날.
내가 해야 할 일은, 가라앉은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일인 것 같다.
***
@ 감독 전용 스위트 룸.
아침 식사 후, 잠깐 형들과 수다를 떤 나는 삼파올리 감독님을 만나기 위해 호텔 동을 옮겨 갔다. 선수들이 보다 편히 지내도록, 감독과 스태프의 동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우리 선수들이 묵는 동은 통째로 임대한 것이며, 로비 옆의 식당과 기구를 추가로 늘린 실내 트레이닝 시설 역시 마찬가지로 통째로 빌렸다.
[그래서? 컨디션은?] [괜찮아요. 배려해 주신 덕분에 잘 쉬고 또 잘 회복해서 브라질로 온 것 같아요.] [하하. 그거 잘됐군.]호르헤 삼파올리 감독님은 4-2-3-1 혹은 4-3-3 포메이션을 선호한다. 좌우 윙의 높이만 다를 뿐, 사실상 일관된 방식으로 축구를 한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믿음’을 가장 근본적인 철학으로 내세움과 동시에, 선수들에게 ‘틀에 갇혀 있지 말 것’을 주문한다.
무엇보다, 두려움이 있어서는 삼파올리 감독님의 축구를 절반도 채 실현할 수 없다.
[지난 경기는 자네의 부재가 느껴지더군.] [네.] [단순히 결과 때문은 아니야. 내용의 문제였지. 지금 대표팀 중 일부는 겁을 먹었네. 승리를 쟁취했을 때 오는 환희보단, 패배했을 때의 일을 걱정하고 있어.]현재 삼파올리 감독님이 하고 계신 이야기도, 아침을 먹을 때 형들과 나눈 대화의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선수단 일부가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일부가 느낀 그런 감정들은, 이런 대회를 앞두고는 쉽게 주위로 전염된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월드컵을 매년 열리는 대회와 비교하는 게 올바른지 모르겠지만, 내가 겪어 본 바에 따르면 걸린 것이 많은 대회일수록 나쁜 것은 쉽게 퍼졌다.
더구나 대한민국 대표팀은 상대적인 약자의 위치이고, 오직 한국의 미디어와 팬들만이 16강 진출을 주머니에 넣어 둔 떡을 먹는 것처럼 쉽게 말하고 있다.
누군가는 분명, 현실과 기대 사이에서 오는 괴리에 갇혀 있을 거라는 뜻이다.
[평가전의 결과가 오히려 나쁘게 작용했지. 벨기에전의 패배가 몇몇 선수들의 자신감을 빼앗아 간 것으로 보여. 베테랑들이라 해도, 이런 상황에선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지.] [네. 맞아요.] [부디 첫 번째 경기 전까지, 자네가 가진 자신감을 동료들에게 나눠 주게. 그게 가장 필요해 보이니까.]이후에는 늦은 진도를 따라잡기 위한 미팅이 이어졌다. 감독님은 화이트보드를 뒤집어 내가 뛸 위치와 역할을 설명해 주셨고, 그건 지금까지 해 왔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저건, 펩의 축구와 비슷하다.
성용이 형을 센터백 사이로 내리는 라볼피아나(Lavolpiana) 방식의 빌드업에, 좌우 풀백이 측면을 담당하고 그 위의 윙어는 중앙으로 적극 침투해 공격의 숫자를 보탠다.
삼파올리 감독님의 설명을 귀담아들으면서, 난 참으로 묘한 곳에서 성장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전까지는 그저 ‘시키는 것을 정확히 숙지’해서 뛰었다면, 지금은 감독님의 설명에 담긴 숨겨진 의미라든가 더 확장할 수 있는 개념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의심의 여지 없이, 이건 펩의 영향이다.
[이해했어요. 그럼 차라리 메짤라를 더 전진시키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 자리는 자철이 형이죠. 그렇죠?] [이런! 자넨 나를 곤란하게 하고 있군.] [대답이 곤란하신 것도 이해해요. 어쨌든 메짤라를 더 전진시키면, 되레 제 쪽에서 더 공간을 얻기 수월할 거예요.] [그렇지. 하지만 나는 자네를 +1으로 만들고 싶어.] [어느 쪽이요? 연출? 아니면 제가 직접 뛰나요?] [허허-! 흥미로운 표현이야. 내가 생각하는 방향은…….]지금 이 순간, 나는 완전히 처음으로 돌아가 삼파올리 감독님의 축구를 새로이 알아 가려고 한다.
***
포즈 두 이구아수-PR, 85853-510 브라질. R. 에레누 쉬멜펭기, 838?빌라 욜란다. 플라멩구 에스포르테 클루베 이스타디우 페드루 바쑤(Flamengo Esporte Clube Estadio Pedro Basso. R. Heleno Schimmelpfeng, 838 ? Vila Yolanda. Foz do Iguacu-PR, 85853-510 Brazil).
대표팀의 훈련장은 호텔에서 5분 정도 떨어져 있었다. 인근 지역 클럽인 플라멩구 E.C가 사용하는 시설이었고, 월드컵을 위해 시설 전반의 보수가 있었다고 한다.
FIFA의 요구 기준을 맞추기 위함이었는데, 급하게 보수한 탓인지 곳곳에 허술한 부분이 드러났다.
약간 실망스럽기야 했지만, 앞서 바이에른 뮌헨 동료들에게 들었던 이야기와 비교해 보면 나쁘지 않은 수준이긴 했다.
예전부터 꾸준히 최고의 선수를 배출해 온 브라질은, 그 명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국가의 경제력 때문이며, 축구 열기 자체는 뛰어나지만 클럽을 향한 충성도는 크게 떨어진다.
‘돈을 버는 것’과 ‘선수를 판매하는 것’에만 급급한 브라질 클럽의 운영 방식으로 인해, 팀이 아닌 선수를 응원하는 것에 익숙한 탓이다.
일단 여기까지가, 브라질 출신 동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그러니까.
[다온! 다온!! 사인해 줘요!!] [다온-!! 여기 좀 봐요!!]클럽이 아닌 선수를 응원한다는 것 말이다.
“저, 저기 좀 다녀와도 되죠? 일정이…….”
“어, 그래. 잠깐. 사람 좀 붙여 줄게.”
“…….”
본래 훈련으로 예정된 시간은 오전 10시였고, 우린 늦지 않게 9시 50분쯤 훈련장 앞에 도착했다.
하지만 문제는 시설이 충분히 준비가 되지 않은 부분에 있었는데, 플라멩구 E.C 측의 관계자는 황당하게도 20분 정도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을 했다.
화가 난 삼파올리 감독님이 항의를 해 봤지만, 관계자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결국 우린 버스에 갇힌 신세가 됐다.
분명 아까까진 그랬는데.
[봉 지아!] [봉 지아!! 다온-!! 사인이요, 사인!!]알다시피, 브라질과 포르투갈의 언어는 같다.
그래서 난 이곳에 무척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지금의 이런 풍경은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인데, 동네의 꼬마들부터 시작해서 머리가 제법 굵은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사인을 받으려 종이를 들이밀고 있었다.
이런 아이들 중 1/3 정도가 맨발이라는 게 눈에 띈다.
듣던 대로 신발도, 없는 아이들이 많은 것 같다.
경호원 두 분이 먼저 내 좌우에 자리를 잡았고, 난 허락이 떨어진 이후에 손에 잡히는 것부터 시작하여 사인을 이어 나갔다. 되도록, 아이들과는 눈을 맞추려고 했다.
[네이마르를 알아요?!] [네이마르랑은 친구예요?] [미안! 난 그의 연락처도 몰라.] [발롱도르-! 올해는 당신이 받아요!] [하하. 그거 고마운 말인데?]순박함이 느껴지는 아이들의 앞에서, 난 최대한 성실하게 사인을 이어 나갔다. 중간에 잠깐 자철이 형이 스윽 다가왔지만, 아무도 말을 걸지 않자 도로 버스로 돌아갔다.
하여간에, 못 말릴 정도로 관심에 목마른 사람이다.
저래 놓고, 본인은 또 그렇지 않다고 박박 우긴다.
“다온아~ 가자 이제~!”
“네-!!”
다행히도 시간이 넉넉했던 탓에, 나는 훈련장 앞에 모인 50명 정도 되는 아이들에게 모두 사인을 해 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사인해 준 6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의 머리를 만져 준 뒤, 나는 인사를 한 번 더 건네고는 버스가 있는 곳을 향해 움직였다.
그렇게 위에 올라타자.
“여어~ 인기남!!”
“인기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어디 살겠냐~?”
예상했던 대로, 친한 형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그래서 난 어깨를 한 번 툭툭 털어 줬다.
“아, 이래서 잘생기면 괴로워.”
“뭐?! 너 미쳤어?!”
“야, 죽여! 죽여!!”
다행히도, 몇몇 형들은 빠르게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는 것 같다.
***
처음으로 완전체가 된 팀의 모습을 바라보며, 호르헤 삼파올리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얼굴에다 띄웠다. 한 명의 선수가 더해졌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팀인 것 같았다.
[놀라워요. 정말 3개월 전 그 꼬마입니까?] [허허. 내 생각도 그래.] [저 여유를 좀 보세요. 이건 월드컵이라고요.]호르헤 삼파올리의 오른팔인 차로 누네즈(Charro Nunez)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난 김다온의 모습에 감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 3월 그리스와의 평가전 때에만 해도, 그는 여전히 스무 살의 젊고 유능한 재능이었다.
그렇지만 오늘, 김다온은 마치 대표팀의 분위기를 이끄는 것처럼 보였다.
[어서 가지. 이제 슬슬 마무리를 할 때야.] [네.]어리둥절해하며 삼파올리를 따르는 차로 누네즈가 선수단이 모인 곳으로 걸어가고, 강찬일 등과 함께 마지막 스트레칭을 하던 선수들은 그들의 감독을 마주 봤다.
통역관이 자연스레 곁으로 왔고, 차로 누네즈는 본래 본인의 자리를 잠시 내어 주었다.
[오늘은 아주 좋았다! 다들 활기찼고, 에너지가 넘쳤어! 첫 번째 경기까진 이제 일주일 정도가 남았다! 남은 기간 충분히 준비를 한다면, 우린 분명 좋은 출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 밥을 먹고, 조금 휴식을 취한 뒤에 나중에 알릴 장소에서 만나겠다! 이상!]“자아~ 모여~! 한국!!”
“어-이!!!!”
구호와 박수를 끝으로 오전 훈련이 끝나고, 호르헤 삼파올리의 곁으로 다시 차로 누네즈가 다가온다.
전날과는 180도 달라진 훈련장 분위기에, 194cm의 키에 120kg의 몸무게를 지닌 이 거한은 여전히 들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그토록 하려고 해도 안 됐던 거예요.] [그래. 스스로 무능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지.] [지금…… 농담하신 거죠?] [물론이지.]축구 실력뿐만이 아니라, 선수단의 분위기와 기강을 컨트롤하는 것 역시도 감독의 중요한 역량 중에 하나다. 그렇지만 다 큰 어른의 감정 하나까지 조절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훌륭한 감독들은 분위기를 환기시킬 수 있는 본인만의 특별한 노하우를 지니고 있다.
‘헤어드라이어’로 유명한 알렉스 퍼거슨도, 강력한 카리스마 뒤에 숨겨진 진솔함과 스코틀랜드인치곤 무척 훌륭한 유머로 선수들을 웃음 짓게 만들곤 했다.
호르헤 삼파올리 역시 남미인 특유의 쾌활함으로 선수들의 기분을 풀어주곤 했지만, 가끔 축구는 감독의 손을 떠나 버리기도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동기 부여가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절대 없었을 거다.
그래서 축구 감독들은 종종, 그들이 지닌 뛰어난 선수에 기대야 한다.
이는 어떠한 감독도 예외일 수 없다.
[다행히도 우리에겐, 조커 카드가 있었어.] [그게 다온인가요?] [그래. 스무 살에 최고가 된 녀석이야. 발롱도르 후보가 거의 확실시된다고.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런 일을 해낼 수 있겠나? 메시도 그 정도는 아니었어.] […….] [다온이 이 팀에 있다는 건, 우리에겐 커다란 행운이지. 하지만 동시에 커다란 부담이기도 해. 저런 선수를 가지고도 성적을 내지 못하느냐고 할 테니까.]훈련시설에 마련된 감독실로 들어서며, 호르헤 삼파올리가 잠깐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여전히 그의 앞엔, 차로 누네즈가 있다.
[이보게, 차로.] [?] [오늘 오전에 다온과 미팅을 한 것은 알고 있지?] [네. 물론이죠.] [자네도 알다시피, 최근에 이 팀은 좋지 못했어. 경직되었고 또 짜증이 늘었지. 난 그런 분위기에 저 녀석이 짓눌릴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물었지.] [뭐라고요?]오전 면담이 끝날 무렵, 삼파올리는 김다온에게 이번 월드컵에서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는 처음엔, 월드컵 우승과 같은 평범한 답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본선에 참가한 정도의 팀에 속한 선수라면, 누구나 가슴 한켠엔 우승이란 꿈을 가지고 있을 테니 말이다.
물론 브라질이나 독일/네덜란드/프랑스/스페인처럼 실제 우승을 노릴 수 있는 팀의 일원이라면, 똑같은 바람은 꿈이 아닌 목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승을 꿈으로만 간직해야 하는 선수들은 현실적인 목표를 가지고 ‘월드컵을 통해 몸값을 올린다’거나, ‘본인의 한계를 알아보고 싶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김다온은 달랐다.
[일단 첫 번째, 리오와 다시 만나고 싶다더군.] [??] [리오를 만나, 예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비교해 보고 싶다고 했어. 그리고 두 번째로, 월드컵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다고 했네.] [월드컵이요?] [그래. 그 이야긴 나중에 해 주지. 또 마지막.] […….]오전 면담을 통해, 호르헤 삼파올리는 확신할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사내가, 지금껏 최고의 위치에 올랐던 이들과 같은 DNA를 가졌다는 것을 말이다.
김다온은 이 말을 보탰었다.
[세상을 놀라게 해 주고 싶다고 했네. 세상의 기대, 비관, 억지. 그 모든 것들을 뛰어넘겠다고 말이야.] [스무 살이?] [그래. 스무 살이. 정말 놀랍지 않나? 그와 항상 같이 있을 수 있는 펩 과르디올라가 질투가 날 지경이었네. 덩달아 나도 확신했지. 우린 이번 월드컵을 잘 치를 거야.] [……네. 네! 그럼요! 물론이죠!]때로는 감독이 선수로부터, 때로는 어른이 아이로부터 삶의 교훈을 얻기도 한다.
그리고 만약 그랬다면, 연장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태도는 손아랫사람이 더욱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행동하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대표팀의 감독과 수석코치가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처럼 말이다.
지금 이곳엔, 긍정적 에너지가 피어나고 있었다.
***
작가의 말 ? 바로 다음 화부터 나이지리아전 도입부입니다. 본 글에선 대한민국 대표팀이 아시아 최종 예선 조 1위로 통과한 상태이기에, 본래 이란이 속했던 F조 포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