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394)
393화
(필 네빌) – BBC 해설위원
“심판이 보는 각도에선 어떻게 비춰졌을지 모르지만, 이건 파울이 아닙니다. 그가 억울해하는 것도 이해가 돼요.”
.
.
(차범근) – SBS 해설위원
“아? 지금은 정말 안타깝습니다. 대한민국. 우리가 지금까지 월드컵에서 잘못된 판정으로 불이익을 받은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지금은 정확히 공만 건드렸는데……. 아- 세르비아의 밀로라도 마지치 심판. 정말 아쉬운 판정을 내렸습니다.”
.
·후반 03분
아르헨티나 1 : 0 대한민국
벽을 만들기 위해 서 있는 와중에도, 도저히 금방의 장면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분명히 난 정확히 공만 건드렸고, 메시는 볼이 딸려 오지 않자 미끄러져 넘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당연히 한 번 내려진 판정은 바뀌지 않았다.
“왼쪽-!!! 왼쪽으로!!!”
“…….”
페널티 박스 바깥 슈팅 가능 지점에서 프리킥을 내어 준다는 건,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만 하는 일 중에 하나였다.
리오넬 메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프리킥을 차는 남자 중에 하나고, 그런 그에게 이런 위치에서 프리킥을 내어 준다는 건 실점 확률을 크게 높이는 짓이다.
실제로 지금 메시는 킥을 준비 중이었다.
‘씨이-팔.’
삐?익!!
망할 주심의 휘슬 소리가 들려오고, 슬쩍 골대를 바라본 메시가 도움을 디뎌 왼발을 휘둘렀다.
힘껏 점프를 한 나는 눈을 질끈 감았고, 착지를 한 뒤에는 상황을 확인하려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응? 뭐야?’
.
(배정세)
“골대를 벗어납니다!! 천만다행입니다, 대한민국!! 리오넬 메시가 프리킥을 시도했습니다만, 골대와는 먼 위치로 슈팅이 빗나가고 맙니다!!”
.
메시의 킥은 정말 터무니없는 방향으로 날아간 것 같다.
이것을 실수라고 봐야 할까?
슈팅을 한 자리에 서서, 애꿎은 잔디만 스파이크로 긁고 있는 모습만 보아서는 장담을 하기가 힘들다.
.
(마르켈 오브레로) – 스페인 Gol Televison 코멘테이터
“여러분들은 이게 얼마나 보기 드문 장면인지를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메시의 프리킥이…… 터무니없는 방향으로 날아갔어요. 까람바(Caramba/세상에나). 메시도 역시 사람이로군요.”
.
천만다행히도 아무 일 없이 프리킥 상황이 지나갔지만, 오히려 찝찝함 하나를 더하게 되었다.
실점이라도 했어야 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답하겠지만, 최소한 골대를 아슬아슬하게 빗나간다거나 아니면 크로스바나 골포스트 중 하나는 맞출 거라고 생각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졌다고 해야 하나?
그게 아니면…….
‘……설마. 그럴 리가.’
어떠한 가능성 하나를 빠르게 지워 버리기로 하며, 다시 눈앞의 상황에 집중한다. 짧게 연결된 골킥을 측면으로 보내곤, 빌드업 상황에 맞춰 수비라인 전체를 높였다.
삼파올리 감독님이 팀 전형을 조금 바꾸면서, 확실히 볼 점유율과 전방에서 볼을 돌리는 횟수가 늘었다.
중요한 건 제대로 방비를 갖춘 아르헨티나의 수비를 뚫어 내고 있지는 못하다는 것인데, 상대의 위험 지역으로 볼이 투입되는 빈도는 높지 않았다.
결국 후반 7분.
다소 이르다고 볼 수 있는 시간에, 삼파올리 감독님이 빠르게 변화를 택한다. 왼쪽 미드필드인 보경이 형을 빼고, 공격 자원인 근호 형을 투입하여 측면 공격력을 살려 보려고 한 것이다.
그러면서 흥민이 형이 왼쪽으로 움직였다.
‘근호 형 원톱. 침투인가?’
나이지리아와의 경기 때도 말했지만, 근호 형의 공간을 만들어 내는 능력은 대표팀 내에서도 가장 상위권에 속한다. 볼 없는 움직임으로 수비를 끌어내는 일에 능숙하다.
사실상 중앙 미드필드처럼 뛰는 청용이 형과 오버랩의 적극성을 더해 가는 두리 형님의 오른쪽 측면을 생각해 본다면, 근호 형이 만든 공간으로 흥민이 형이 뛰어드는 그림이 가장 쉽게 그려지고 있다.
그럼 그렇게 하려면, 후방에선 무엇을 해 줘야 할까?
“…….”
메시를 확인한 뒤, 나는 그의 반경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조금 왼쪽으로 움직였다.
기존과는 반대의 방향이다.
본래는 앙헬 디 마리아가 볼을 잡는 왼쪽. 그러니까, 수비하는 입장에서는 오른쪽에 서서 그가 메시에게로 패스를 보낼 공간을 막아 왔다.
그래서 이쪽을 비워 두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어차피 우리가 볼을 쥐었고 빠른 리커버리도 자신 있었다.
내가 이쪽으로 온 이유는 단 하나.
훨씬 더 앞쪽이 잘 보여서다.
정확히 어디냐면.
툭-
‘가-!’
여의치 않았던 중원 빌드업 과정에서의 패스가 내게 도착했고, 전방을 슬쩍 바라본 나는 흥민이 형과 눈이 마주친 뒤에 곧바로 롱패스를 보냈다.
목표 지점은 아르헨티나 오른쪽 풀백과 센터백 사이의 공간이었고, 습관적으로 아래로 움직여 준 근호 형이 에즈를 끌어내어 주었기에 저곳에 넓은 공간이 생겨날 수 있었다.
빠른 스프린트로 자발레타를 따돌린 흥민이 형이 왼발을 들어 올려 보지만, 패스가 떨어지는 지점에는 미치지 못해 결국 축구공은 골라인을 벗어난다.
그리고 그 직후.
[와-우, 멋진데? 지금은 세스크 같았어.]“…….”
내가 선 위치로 이동한 리오넬 메시가 환한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좋은 패스였어. 조금 더 정확했으면 좋았겠지만.]“…….”
Buen(Good), Precision(Accuracy).
이 두 개의 단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던 나는 메시가 칭찬을 해 오는 중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 전에는 세스크 어쩌고 했었다.
내가 세스크 파브레가스 같았다는 걸까?
[좋은 동료들이겠지만, 더 훌륭한 사람들이 있었다면 너도 더 잘했을 거야. 그렇지?]“…….”
[이번에도 내 말이 너무 빨랐나?]지금 메시가 하는 말은 사실 내게는 잘 들리지 않았다. 들으려면 들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의 스페인어가 너무 빨랐다고 하기보단 다른 데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이다.
난 금방 메시를 불렀고, 자신의 가슴팍을 가리키는 그에게 그래, 너라고 했다.
그 스페인어가 뭐였더라?
아, 그렇지 참.
[Intencionalmente. Tiro libre.] […….] [¿Fallaste. Intencionalmente. El tiro libre. ¿Esta bien?]지금 나는 메시에게 아까의 프리킥을 의도적으로 실패한 것인지를 물었다. 스페인 쪽 동료들 덕분에 더듬더듬 말할 수야 있지만, 단어가 잘 생각이 안 나 천천히 꺼낸 말이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말을 했을 때, 메시는 피식하고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 모습은 마치.
‘일부러 그랬잖아. 이런, 젠장.’
가정을 해 보자.
다른 것도 아닌 월드컵이란 무대에서, 오심으로 얻은 페널티킥을 양심에 찔린다는 이유로 걷어차는 머저리가 있을까? 물론 그건 프리킥이었지만, 정말 절호의 기회였다.
대체 얼마나 축구에 대한 도덕관념이 투철한지는 몰라도, 지금 메시가 한 행동은 오히려 나를 모욕하는 것이었다.
“너…….”
[?]“내가 그렇게 병신인 줄 알아?”
그토록 오늘을 기다려 왔건만, 지난 2년 동안 해 온 모든 노력과 다짐들이 헛짓거리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너 사람 잘못 봤어.”
지금 이 순간부터, 나는 메시를 향해 가져온 모든 존경심을 지워 버리기로 결정했다.
***
“……하하, 역시 화가 났나?”
리오넬 메시는 살벌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김다온의 뒷모습을 보며 난처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망설였지만, 디딤발을 딛기 전 마음을 굳혔었다.
어쩐지 그게 옳아 보였고, 이런 재미있는 대결을 오심 때문에 놓쳐 버리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누구도 모를 테니까.
또 설령 자신의 선택 때문에 아르헨티나가 오늘 나쁜 결과를 가져간다고 해도, 남은 경기를 승리하고 토너먼트로 진출할 자신이 있었다.
김다온과 대결하며 정신적 스트레스를 상당 부분 털어 버린 리오넬 메시였기에, 남들이 볼 땐 터무니없을 수도 있는 자신감을 쉽게 내비칠 수 있었던 거다.
하지만 결국 그것이 김다온을 화나게 만들었다.
메시 본인도, 김다온이 느리고 또박또박한 스페인어로 정곡을 찔러 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아까의 장면을 돌이켜 보면, 메시는 평소처럼 본인의 리듬대로 드리블을 하던 중이었다.
템포를 늦췄다가 갑작스레 끌어 올리는 페이스 체인지(Pace Change)는 메시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기술 중에 하나였고, 속도를 높였을 때 김다온을 따돌렸다고 믿었다.
‘그런데 정확했어. 정확한 태클이었다고.’
발밑에서 볼이 사라졌을 때, 메시는 당황했다.
마치 계단 하나를 남겨 두고 평지라고 착각해 발을 내디딘 것만 같은 경험을 하게 되었고, 마지막 스텝이 미끄러지며 볼품없이 바닥을 뒹굴고야 말았다.
당황한 와중에도 메시는 완벽한 태클에 기쁨과 호승심을 동시에 느꼈는데, 재빨리 일어나 압박을 가하려고 마음을 먹자마자 불청객의 휘슬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김다온이 분노한 만큼, 당시 메시도 속으로 이런 분노를 삼켰다.
[‘정말 이 대결을 망쳐야 해? 정말?’]그렇지만 일은 이미 벌어졌고, 메시는 자신의 조국을 위해서라도 프리킥을 잘 처리해야만 했다. 더구나 본인의 커리어에 있어, 월드컵 우승은 가장 큰 목표였다.
“휴우~ 용서받을 수 있을까?”
한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축구의 즐거움을 되찾은 메시에게, 누구의 마음속에나 있는 이기심이 고개를 들이밀어 프리킥을 뻥 날려 버리라고 종용했다.
결국 그는 거기에 넘어갔고, 그 대가를 치르게 됐다.
‘이런 건 아니었는데…….’
살짝 씁쓸해하며 머리를 긁적이는 메시의 얼굴엔, 곤란한 심정이 잔뜩 스며들어 있었다.
그리고.
***
‘씨이-팔.’
툭-
“?!
“이봐아-!!”
메시에게서 벗어난 김다온은 오늘 경기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그토록 뒤쫓던 상대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달려들어 축구공을 따냈다.
갑작스러운 사내의 등장에 당황한 세르히오 아게로가 너무나도 쉽게 볼을 넘겨줬고, 인터셉트에 성공한 김다온이 조금 앞으로 전진을 하다 오른쪽으로 패스를 보낸다.
그리고 이런 모습에, 대한민국 벤치는 당황한다.
“다온-!! 대체 뭐야?!”
김다온이 훌륭한 선수로 평가받는 이유 중엔, 감독이 주문한 역할을 수행해 내는 능력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다양한 포지션을 맡는 모습으로 가장 쉽게 드러나고 있지만, 그런 것 외에도 감독이 요청한 세부적인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 왔다.
한데 갑자기, 그가 위치를 이탈해 버렸다.
‘이런, 제기랄. 대체 무슨 일이야?’
당황하여 모자를 벗은 호르헤 삼파올리가 조명에 반사된 벗겨진 머리를 긁적거리는 동안, 메시에게서 더욱 멀리 벗어난 김다온이 라인을 끌어 올리며 빌드업에 직접 가담한다.
이에 삼파올리는 한두 차례 목소리를 더 높여 보았지만, 김다온은 그것이 들리지 않는지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뒤늦게 기성용과 눈이 마주친 삼파올리가 그의 위치를 메시의 가까이로 옮겨 두고, 일단 어떻게 되나 지켜보자는 심정으로 피치를 바라봤다.
먼저 차두리를 택한 김다온은 앞으로 움직여 패스를 받아 구자철을 찾았고, 그런 뒤엔 센터서클 우측 상단에서 대각선으로 피치를 가로질러 좌측 하단으로 내려섰다.
“구-!!”
김다온에게 다시 패스가 전해지고, 패스를 받아 든 그는 페르난도 가고의 접근을 슬쩍 눈으로 확인하더니 오른발 아웃프런트를 사용하여 측면 공간으로 패스를 보냈다.
자발레타의 전진으로 생겨난 공간이었으며, 스프린트를 시작한 손흥민이 속도 경쟁에서 이겨 내어 볼을 획득한다.
그리고 동시에 파울.
삐—익!!
수비수가 내민 왼발에 오른쪽 허벅지가 걸린 손흥민이 데굴데굴 굴러 넘어지고, 아르헨티나의 오른쪽 풀백 자발레타에게 오늘 경기 세 번째 경고카드가 주어진다.
.
(김주성) – MBC 아나운서
“한구욱-! 프리킥! 지금 좋은 위치죠? 손흥민 선수가 아르헨티나의 파블로 자발레타로부터 파울을 획득했습니다.”
.
.
(필 네빌)
“바로 저겁니다. 한국에 필요한 플레이가 바로 저런 거예요. 공간을 노리고 패스를 넣어 줘야 합니다. 쏜은 훌륭한 스프린터죠. 그의 속도를 이용하는 모습이 부족해서 조금 아쉬웠는데, 지금은 다온의 패스가 정말 훌륭했습니다. 가장 뒤쪽에서 롱패스를 하다 답답했는지, 지금은 직접 전진해서 높은 위치에서 창의적인 장면을 보여 줬네요.”
***
·후반 13분
아르헨티나 1 : 0 대한민국
흥민이 형이 파울을 얻어 낸 위치는 왼쪽 페널티 박스라인의 앞쪽 5m 지점. 그리고 각도는 골라인을 기준으로 대략 15~20도쯤 되는 것 같았다.
골대 정면을 90도로 보았을 때 말이다.
“내가 찰 거야.”
“뭐?”
“내가 찰게, 형.”
멋대로 뛰면서 기분이 아주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나는 여전히 분노하고 있었다. 설령 주심의 오심 때문이었다고 해도, 차라리 메시가 제대로 차 줬다면 좋았을 거다.
그러면 차라리 주심이라도 원망을 하면 되지만, 만약 이대로 패배하게 된다면 난 누구도 탓할 수 없다.
좋은 위치에서의 프리킥을 걷어찬 팀에게조차 이기지 못한 나 자신을 탓할 수밖에.
동정을 받은 사람이 딱히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그건 정말 비참한 기분이 드는 일일 것이다.
“휴우~ 빌어먹을.”
본래 키커인 성용이 형으로부터 프리 키커의 위치를 빼앗은 뒤, 난 주심의 옆에서 몸을 굽혀 땅에 떨어져 있는 축구공을 집어 들었다.
표면엔 물기가 약간 묻어 있었고, 나는 한동안 씨름했던 공인구 브라주카(Brazuca)를 품으로 가져가 유니폼에 비벼 묻은 것들을 닦아 냈다.
시즌 후 휴가지에서 협회가 공수해 준 축구공을 전달받아 친구들과 가지고 놀았을 땐, 마치 휘지 않는 탱탱볼을 발로 차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공인구 사상 가장 적은 6조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인지, 이음매가 적어 저항을 적게 받아 속도가 쭉쭉 붙어 나갔다.
다행히도 베르나르두와 나는 곧잘 적응한 반면, 안드레는 꽤 오랜 시간 실수를 했어야 했다.
‘잘 부탁해, 이것아.’
꼼꼼하게 닦은 축구공을 다시 자리에 두고, 공이 놓인 지점을 확인한 주심이 그제야 앞으로 움직여 벽이 세워진 위치를 조절한다.
당연하게도 아르헨티나의 선수들은 어떻게든 앞으로 나오려 했고, 주심은 그런 그들을 몇 발 뒤로 물리고선 마지막에야 페널티 박스 안쪽을 신경 썼다.
치열한 신경전이 펼쳐지는 와중, 태휘 형님과 에즈가 따로 불려 나가 구두로 주의를 들었다.
하지만 그거 아는가?
‘절론 안 가.’
나는 페널티 박스 안으로 축구공을 보낼 생각이 없다.
당연히 페널티 박스를 거치기야 하겠지만, 난 이 지점에서 그대로 골대를 겨냥해 슈팅을 날릴 것이다.
“후우~”
프리킥을 차기 전에 한 번 심호흡을 한 뒤, 나는 고개를 뒤로 돌려 메시가 선 방향을 바라본다. 그는 지금 하프라인에 서 있었고, 그 주위를 주호 형과 성용이 형이 지키고 있다.
나는 그에게 묻고 싶다.
과연.
삐?이!!
기다렸던 주심의 휘슬 소리가 들려오고, 아주 살짝 감아 차기 위해 평소보다 약간 왼편에 치우쳐 서 있던 나는 마지막으로 골대의 위치를 확인한 뒤에 발을 움직였다.
평소처럼 네 박자로 킥을 할 생각이었고, 마지막 디딤발을 축구공 옆에 놓아둔 뒤에 오른발을 가져갔다.
투우웅-!!!!
발등이 아닌 중족골 부위를 가져갔기 때문인지, 들려오는 소리 역시 자주 듣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그렇지만 어렵지 않게 두 명이서 세워진 벽을 넘어선 축구공은 제대로 속도를 가지고 움직였고, 나쁜 지점으로 첫발을 내디딘 세르히오 로메로는 몸을 뒤로 돌리며 서서히 쓰러졌다.
삼파올리 감독님이 말했던 것처럼, 세르히오 로메로는 동물적인 신체 능력과 그에 한참 못 미치는 상황 판단 능력을 지닌 불안 요소가 많은 골키퍼다.
지금도 그는 크로스가 띄워질 것이란 성급한 판단을 했고, 최초 볼의 궤적을 보며 골에어리어 바깥으로 축구공이 향할 거라 생각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축구공은 제대로.
“-!!!!”
.
(배정세)
“프리킥을 준비하는 김다온. 지금까지 수많은 기적을 연출해 온 선수이기에, 이번 프리킥에도 기대를 해 봅니다. 김다온! 김다온 프리키이이이어어어억-!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올-!!! 김다온!! 김다온!!! 이번에도 김다온!!!!”
.
.
(가이 모브레이) – BBC 코멘테이터
“DA-Ooooooooon!! DAOOOOOON-!!! He`s done it again!!! Oh- It`s Incredible!!! Da-On!! For His Country!!! 원더 보이가 만들어 낸 또 하나의 원더골! 두 경기 연속! 후반 14분! 남한이 이 경기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 놓습니다!!”
.
득점이 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나는 왼손을 열심히 휘저으면서 하프라인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곳엔 메시가 있었고, 나는 그의 곁을 지나친 직후에 무릎으로 슬라이딩해 들어가며 양팔을 좌우로 쭉 뻗었다. 마음 같아선 앞에서 이렇게 하고 싶었지만, 와중에도 정신은 있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메시지는 될 거라고 본다.
그가 고의로 프리킥을 날린 뒤, 내가 이렇게 프리킥을 득점을 올렸으니까 말이다.
.
(가이 모브레이)
“Oh- What a Celebration!! 남한의 왕이 아르헨티나의 왕을 지나쳐, 고개를 숙인 그의 등 뒤에서 환호하고 있습니다!! 이건 그림이겠군요!! 이게 바로 축구입니다!!”
.
독일에선 이렇게 말을 한다.
Leg dich nicht mit mir an.
한국어로 하자면 장난치지 말라는 뜻이지만, 유명 영화 대사를 빌려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뛰어든 형들에 의해 깔리는 와중에도, 난 두 눈으로 좇고 있는 메시를 놓치지 않았다.
***
뉴욕, 뉴욕 10010. 30 워터사이드 플라자. 워터사이드 플라자 아파트먼트.
같은 시각, 태양이 잔뜩 스며들고 있는 아파트의 거실에서 펩 과르디올라가 폭소를 터뜨리고 있다.
“큭큭큭큭큭큭큭…….”
“아빠?”
“쉬-잇. 아빠는 괜찮아.”
“??”
걱정하는 아이를 달랜 크리스티나 역시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조금 의미는 달라도 가장 아끼고 존중했던 두 명의 제자의 경기를 시청 중인 남편을 바라봤다.
여전히 펩 과르디올라는 한 손으로 입을 막고 다른 한 손으론 배를 부여잡은 채 웃음을 가라앉히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음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크리스티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최근에 담가 둔 상그리아를 가지러 냉장고로 움직였다.
그 사이에도 여전히 펩 과르디올라는 웃고 있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오, 이런. 나는 정말 복 받은 남자로군.’
펩 과르디올라는 리오넬 메시가 의도적으로 프리킥을 날려 버렸다는 것과 김다온이 그것에 분노했다는 것을 알았다.
애정을 갖고 둘을 지도해 왔기에, 누구보다 피치 위에서의 모습을 잘 알고 있었다.
메시는 미국 ESPN 중계진들이 ‘다이브’였다며 혹평할 만큼의 플레이로 얻은 프리킥을 처리하고픈 마음이 없었을 것이고, 김다온 역시 그것을 날려 버린 상대가 싫었을 거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건, 만약 상대가 달랐다면 둘 모두 전혀 다르게 행동했으리란 점이다.
메시는 행운이었다고 생각하며 프리킥을 찼을 거고, 그럼 김다온 역시 저런 식으로 반응할 일은 없었을 게 분명했다.
그렇지만 결국은 이렇게 됐다.
‘이런, 제기랄. 월드컵에서? 그것도 리오가?’
메시가 월드컵에 대해 가진 감정은 무척 복잡하다. 우승을 해도 본전인 무대라서, 상처받을 확률이 훨씬 더 크다.
사람들은 리오넬 메시가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 말을 하고, 그런 사람인 만큼 월드컵에서도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려 그것을 증명해 주길 바란다.
그의 조국과 과거 조국의 전설이던 디에고 마라도나의 커리어 또한, 메시를 더욱 옥죄는 족쇄가 되고 있다.
그랬던 메시가 지금, 마치 친선 경기이기라도 한 것처럼 축구 그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이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분명.
‘다온이겠지.’
흐뭇한 표정으로 아내가 건넨 상그리아를 받아 든 펩 과르디올라는 이제, 리오넬 메시를 쫓던 선수에서 동등한 경쟁자로 인식된 김다온을 바라본다.
TV 화면은 온통, 그로 채워져 있다.
‘처녀 출전한 월드컵에서 두 경기 연속 골. 그것도 두 개 모두 원더골이라. 이런, 젠장. 복도 많군.’
TV 스피커에서 경기의 재개를 알리는 휘슬 소리가 들려오고, 음료로 목을 조금 더 축인 펩 과르디올라는 기꺼운 마음으로 남은 30여 분을 즐기기로 한다.
그러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으니까.
축구에서 최종 승자는 언제나, 경기를 행복한 기분으로 즐길 수 있는 평범한 팬인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