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4)
4화
호베르투 카를로스. 처음 그가 필드에서 뛰는 것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스쳐 지나간 이미지가 바로 그였다.
물론 카를로스보다야 한참 몸집이 작았지만 말이다.
-모르텐 비그호스트 Via 김다온의 첫인상에 대한 인터뷰에서.
확실히 필드로 나서니까 조금 마음이 편안했다.
대부분이 말 한번 섞어보지 못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래도 필드에서는 공통된 언어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말하지 않더라도 대강 통하는 게 있다.
한 번쯤, 모르는 사람들 틈에 섞여 축구를 해봤다면 자연스레 알 수 있는 그런 감정 말이다.
내겐 저 46번이 그랬다.
이름은······ 아, 몰라.
또 긴 알파벳이다.
[뒤!]“엥?”
퍼억-!
“욱-!”
둔탁한 충격이 등에서부터 전해져오고,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던 찰나 호각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자 곧바로 시끄러운 목소리가 이어졌는데, 날 넘어뜨린 남자.
에······ 그러니까.
······.
아, 그렇지 참.
매즈 톰센(mads Thomsen)은 A팀의 백업-윙포워드였고, 그는 지금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하-! 이런! 이건 네가 너무 약하기 때문이야.]“······? 땡······ 큐?”
[뭐? 왜 고맙다고 하는 건데?]인상을 잔뜩 찌푸린 톰센이 날 일으켜준 뒤에 머리를 토닥여줬다.
인상만큼이나 상냥한 사람인 것 같았는데, 부축을 받아 일어선 내게로 등 번호 46번이 다가왔다.
[내가 뒤라고 했잖아.]“······어?”
[그러니까······ 하아- Bag-! 영어랑 똑같다고! 알겠지?]“베이그? 아-! 뒤?! 아-! 오케오케! 언더스탠드.”
고개를 끄덕이는 날 보던 46번이 축구공을 뒤로 보냈다.
가까이 오고 나서야 보이는 이름은······.
‘모르크?’
mørk를 어떠한 식으로 발음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대강 모르크라 부르면 맞지 않을까 싶어, 유심히 그의 등을 지켜보며 이름을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일단 주위를 둘러보며 필드의 분위기를 살핀다.
아직은 적응 중이기에, 딱히 뭔가를 해볼 생각은 없었다.
그저 오른쪽 수비수 역할에 충실할 뿐, 지금 당장은 실수를 줄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 듯했다.
하지만 몇 분이 더 지났을까?
감독님이 날 따로 불렀다.
당연히, 제철이 형도 따라왔다.
“왜 그렇게 소극적으로 하냬. 평소에 뛰던 것처럼 하라고 하는데? 진짜 왜 그런 거야?”
“엥? 진짜 그렇게 말했어요?”
“아니, 마지막은 내 의견이야.”
“······.”
딱히 소극적으로 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감독님이 보기엔 그랬던 것 같다.
솔직히 지금의 이런 플레이는 내가 한국에서 늘 요구받아왔던 것이었다.
공격에 더 치중하는 측면수비수는 늘 훈계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감독님들은 늘 수비에 좀 더 신경을 쓰라고 하셨었다.
그런데, 여긴 뭔가 다르다.
“어차피 연습경기인데 실수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있어. 그리고 네가 여기에서 네 장점을 보여줘야, 앞으로 널 어떻게 쓸지 알 수 있다고 하시네. 나도 같은 생각이야.”
“아- 자꾸 사족 달지 말아요. 아무튼. 네. 그렇게 할게요.”
제철이 형이 내 말을 통역하고, 이야기를 모두 들은 감독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등을 토닥였다.
현재 축구공은 반대편 A팀 진영 쪽에 있었고, 다시 자리로 돌아온 나는 슬금슬금 앞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그에 따라 등번호 50번인 흑인 녀석이 파트너에게 손짓을 보냈다.
자연스럽게 중앙수비수의 위치가 변화했고, 난 그것을 보며 B팀이 제법 잘 준비된 팀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척 보면 알 수 있으니까.
그럼 좀 더 움직여도 될 것 같은데?
측면수비수가 공격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백업을 해줄 수 있는 중앙수비수 혹은 수비형 미드필드의 역량 및 호흡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그것이 잘되지 않을 때는 역습의 손쉬운 먹잇감이 될 수 있고, 덩달아 체력적인 고갈 역시도 빨리 찾아온다.
그렇기 때문에 측면수비수들의 공격가담을 좋아하는 감독들은 3-5-2 라든가 3-6-1 처럼, 중앙수비와 측면의 빈 곳을 동시에 커버할 수 있는 전술을 선호하곤 한다.
노르셀란 B팀의 전술은 A팀과 같은 4-4-2 였는데, 지금까지 지켜봐 온 오른쪽 미드필드는 주로 중앙미드필드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래서 공격수 중 하나가 자주 오른쪽으로 빠져줬다.
이 또한 전술적인 배려가 되어 있는 것일 텐데, 내가 여기에 섞여들려면······.
‘저쪽!’
왼쪽에서 진행되던 경기는 자연스럽게 중앙지역으로 넘어왔다.
그리고 곧 게이드 녀석에게 볼이 전달됐다.
“헤—이!”
“······.”
게이드는 분명히 나를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녀석은 날 외면했고, 볼이 뒤로 움직이는 사이에 A팀의 수비진영이 완전히 갖춰졌다.
결국, 난 뒤로 다시 움직일 수밖에 없다.
뭐야? 설마, 텃세는 아니겠지?
하지만 그 설마가 맞았다.
게이드는 이후로도 몇 번이나 날 외면하는 플레이를 펼쳤고, 시간과 비례해 땅바닥에 뒹구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짜증이 더해졌다.
그렇게 다시 시간이 지나고, 나는 매즈 톰센과 경합을 하다 다시 바닥을 뒹굴었다.
솔직히 뒹굴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볼을 따내거나 템포를 끊기가 어려운 것 같다.
지금 이곳엔 나보다 작은 선수는 존재하지 않았고, 야리야리한 내가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이 방법이 전부다.
덕분에 체력적으로 빨리 지치기는 했지만, 어차피 30분 정도만 뛸 것이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
더군다나 시즌을 막 준비하는 이곳 선수들과는 다르게, 난 한창 시즌을 치르는 중간에 덴마크로 왔다.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뒤처진다는 게 분했지만, 그러는 건 시합 뒤에 하더라도 전혀 늦지 않다.
[꼬마야.]“······?”
함께 바닥을 뒹굴었다가 먼저 일어선 매즈 톰센이 엉덩이를 붙인 채 나를 부른다.
설마 시비 걸려는 거?
[너, 제법이야. 수비는 그렇게 해줘야지.]“······?”
[킥킥. 일단 너 언어부터 배워야겠다. 이거야 원, 칭찬을 해줘도 하는 맛이 안 나네.]밝은 얼굴인 것으로 보아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난 환하게 웃으며 그와 손을 맞잡았고, 함께 자리에서 일어선 뒤에 서로의 등을 토닥여줬다.
우린 본래 같은 팀이니까, 뭐.
이래도 되는 거겠지.
그나저나.
“헤-이!”
나는 프리킥을 준비하고 있는 게이드에게 다가갔다.
***
·3쿼터 11 : 26
[세상에나. 지치지도 않는군요.] [하하. 이보게, 마크. 자네가 생각하는 축구선수의 첫 번째 덕목이 뭐라고 생각하나?]3쿼터가 시작되고 11분.
김다온은 자신도 모르는 새, 노르셸란의 스태프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주고 있었다.
당장 실전에 투입할 수준은 아니지만, 잠재력이 엿보였던 거다.
그리고 모르텐의 질문을 받은 노르셸란의 수석코치. 마르크 스트루달(mark Strudal)은 대답했다.
[음- 체력이요?] [틀렸네, 마크. 바로 집착이야. 지금 저 녀석을 좀 봐. 얼마나 힘든 환경에 있는지를 생각해보라고. 하지만 지금 좀 보게나. 헬리에게 대드는 걸 좀 보라고! 하핫-! 바로 저거야! 저런 집착이 있으면, 당연히 축구를 잘하게 되어 있지!] [······.]필드 위, 김다온은 지금 헬리와 언쟁을 벌이는 중이다.
***
서로 알아듣지도 말을 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건 참으로 우스운 일이었다.
내가 그것을 깨달은 건, 모여든 동료들이 나와 게이드 녀석을 멀리 떼어놓고 난 다음이었다.
난 녀석이 의도적으로 날 배제하는 플레이를 펼친다 생각했고, 녀석도 녀석 나름대로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진정해. 내가 널 봐줄 테니까.]“그렇게 말해도 난 몰라.”
[으음······ 아-!]모르크는 갑자기 양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그러곤 다시 손가락 하나를 뻗어 내 가슴팍에 가져다 댔다.
아마도 나를 챙기겠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난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제야 만족한 듯, 모르크가 내 머리를 두드려왔다.
아, 그런데 이 새끼.
“야, 너 몇 살인데 자꾸 내 머리를 두드리냐?”
[······?]“하우 올······ 아니, 냅두자. 여긴 덴마크니까.”
의아해하는 모르크를 남겨두고, 나는 다시 수비포지션을 향해 움직였다.
프리킥으로 진행된 경기가 잠깐 A팀의 진영에서 머무는가 싶더니, 금세 이쪽으로 축구공이 넘어왔다.
난 필사적으로 톰센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몇 차례의 달음박질로 공간을 파고들려는 것을 막아내자 자연스럽게 A팀의 공격 전개는 왼쪽 수비진영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잠깐 복잡하게 얽히는가 싶더니, 26번의 남자가 크로스를 하였고 이는 곧바로 9번에게 연결이 됐다.
가볍게 이뤄지는 헤더. B팀의 중앙수비수 하나가 전담 마크를 시도했지만, 뿌리치는 손짓 한 번에 나가떨어졌다.
나라면 아마, 몇 미터는 날아가지 않았을까?
삑- 삐익-!
스코어가 1 : 5 로 바뀌고, 0 : 4 이후에 잘 싸워오던 B팀은 급격히 사기가 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고작 해봐야 연습경기일 뿐인데, 굳이 저렇게 축 처질 필요가 있나 싶다.
솔직히 이런 분위기도 영 마음에 안 든다.
연습경기에서 지는 것 따위는 가난하게 사는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거든?
그래서 난 배워온 대로 손뼉을 쳤다.
짝짝짝짝짝-!
“야-! 괜찮아, 괜찮아! 꼴랑 연습경기잖아! 그냥 꼬라박아주자고! 다리를 걷어차고 대가리를 들이밀자니까?”
순간적으로, 제철이 형이 있다는 걸 깜빡해 버렸다.
아무도 알아듣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아무렇게나 내뱉었던 말인데, 말이 끝난 순간 아차 싶어 돌아보니 가슴이 철렁했다.
입을 가리고 웃는 제철이 형에게 다가간 감독님이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는데, 이내 형이 날 가리키며 입을 움직였다.
“하하. 하하하. 하하하······ 씨팔······.”
잠시 뒤, 놀란 눈이 된 감독님이 나를 다시 호출했다.
그러곤 근엄한 목소리로.
“큭. 크큭. 야, 너. 아무리 그래도 부상시키면······ 푸흡- 알지? 무슨 말인지?”
“하아- 네에- 제 실수였다고 해주세요.”
“크큭. 큭. 이런 또라이 새끼 같으니라고.”
3쿼터의 3분의 2가 지난 나의 첫 번째 연습경기.
여기에서 내가 얻은 거라곤, 동료들의 다리를 걷어차고 머리를 들이미는 악동이란 이미지였다.
이건 오해라고!
***
·3쿼터 29 : 41
F.C 노르셸란 6 : 1 F.C 노르셸란 B
[코치, 이제 슬슬······.] [음- 그래.]또 다른 수석코치, 캐스퍼 율맨(Kasper Hjulmand)이 경기를 중단시키고자 앞으로 나아갔다.
3쿼터 26분경, A팀이 다시 골을 추가하며 경기의 스코어는 6 : 1 로 바뀌었다.
팀으로서는 여러모로 의미 있는 연습시합이었는데, A팀의 선수들을 적당히 자극했을 뿐만 아니라 B팀에 있는 몇몇 유망주의 가능성도 확인했다.
전혀 다른 성격의 중앙미드필드 듀오인 헬리 갤(Helge Gade)과 올루프 뫼르크(Oluf mørk).
그리고 무엇보다, 김다온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아직 많은 것이 더 나아져야 하겠지만, 좋은 재능을 갖췄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삑-!
[······응?]필드에서 들려온 호각소리에, 모르텐은 이것이 경기의 종료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보니, A팀의 골라인에서 약 30m 떨어진 지점에서 선언된 반칙이었다.
무언가가 퍼뜩 떠오른 모르텐.
그는 캐스퍼의 이름을 외쳤다.
[캐스퍼! 잠깐 기다려!] [······?]경기의 중단을 말린 모르텐이 성큼성큼 걸어 사이드라인 앞까지 나아가고, 이내 그는 목소리를 높이며 B팀의 선수들을 불렀다.
그러곤 가까운 쪽에 있는 검은 머리카락의 소년을 가리켰다.
[얘가 그걸 찰 거야! 알아들었나?]“에? 저요?”
전혀 뜻밖이라는 얼굴로 모르텐을 쳐다보는 김다온을 보며, F.C 노르셸란의 매니저는 이를 드러내며 환히 웃었다.
[그래. 이 녀석아! 하나 보여줘!]머리를 쓸어넘기며 걸어가는 김다온에게, 지금 많은 시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