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403)
402화
펩과 삼파올리 감독님 사이의 공통분모는 마르셀로 비엘사다. 그의 철학인 ‘비엘시즘’은 두 분의 축구에 고스란히 녹아 있고, 나는 그것을 추구하는 ‘비엘시스트(Bielsist)’다.
그래서 늘, +1이 되는 것에 큰 환희를 느껴 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딜!’
패스를 연결받아 몸을 돌리려는 앙투안 그리에즈만을 강하게 압박해, 그가 다음 플레이로 연결 짓지 못하도록 한다.
전진이 막힌 그리에즈만은 측면으로 패스를 보냈고, 잠깐 박스 안을 주시하던 파트리스 에브라도 크로스를 시도하지 못하고 결국 볼을 뒤로 보냈다.
‘역시.’
이제, 조금 전에 있었던 프랑스의 선수 교체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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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 19분
프랑스 0 : 1 대한민국
프랑스는 동점을 위해 대단히 공격적으로 경기를 전개했고, 우리는 선(先)수비 후(後)역습을 택하며 효율과 실리를 모두 획득하려고 했다.
굳이 미드필드에서의 다툼에 힘을 써서 후방을 취약하게 만드는 것보단, 많은 숫자를 페널티박스 주변에 운집시켜 방어를 단단하게 가져간 것이다.
어차피 한 명이 부족한 프랑스는 공간을 많이 허락할 수밖에 없고,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도 점차 고갈되어 갈 테니 말이다.
실제로 조금 전 역습 상황에서 전혀 뛰지 않는 그리에즈만과 조금 지쳐 보이던 에브라를 보며, 나는 그 시간이 점차 다가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카바유를 빼고 발뷔에나를 투입한 프랑스는 중원에 굉장히 큰 역삼각형을 만들고 그 위에 벤제마-지루라는 두 명의 스트라이커를 놓아두었다.
왼쪽 메짤라(Mezz`ala)의 위치에 자리한 그리에즈만은 사실상 세컨스트라이커로 움직였고, 발뷔에나가 전반전 마튀디가 하던 역할을 소화했다.
그리고 마튀디는 위치만 아래로 조금 내린 박스-투-박스 미드필드로, 여전히 피치 전체를 누비고 있다.
투입된 올리비에 지루 역시 수비 가담이 활발한 공격수 중에 하나로 꼽히고 있지만, 지금까지는 딱히 하프라인 주변으로 내려서지는 않았다.
오히려 벤제마가 낮은 위치에서 수비를 도왔고, 지루는 늘 최전방에 머물며 타겟맨 역할을 소화하는 듯했다.
{“오오오오-!!!”}
그리고 우리는 꽤나 일을 잘 해내고 있다. 지금도 오버랩으로 크로스 기회를 잡은 주호 형이 날카롭게 볼을 띄웠고, 라파엘 바란이 간신히 흥민이 형의 앞에서 클리어를 해냈다.
만약 통과가 되었다면 득점 확률이 높았을 장면으로, 관중들이 탄성을 내지른 이유였다.
하지만 지금이 더 좋았던 건, 마지막 크로스로 연결되기까지의 과정이었다.
성용이 형이 내게 먼저 패스를 보냈고, 달라붙은 그리에즈만을 떨궈 낸 나는 반대편 센터서클 쪽의 보경이 형에게 빠른 땅볼 패스를 굴렸었다.
그러자 프랑스는 주변의 선수를 총동원해 공간을 좁혀 왔는데, 망설이지 않고 뒤로 볼을 밀어낸 보경이 형의 판단과 주호 형의 오버랩이 동시에 이뤄졌다.
이후 이어진 성용이 형의 정확한 패스.
이 모든 과정이 나오기까지 채 10초밖에 걸리지 않은 것 같았는데, 그리에즈만을 따돌린 내 드리블을 뺀 모든 패스가 원터치였고, 크로스도 거의 즉각적으로 이뤄졌다.
우리 쪽에서 스프린트를 한 사람은 주호 형 혼자였던 반면, 오른쪽 측면을 허락한 프랑스는 얼핏 보기에도 최소 네 명 이상이 전력질주를 했다.
오히려 우리가 훨씬 더 적은 선수와 적은 노력으로 상대에게 위협을 준 셈이다.
프랑스가 급해지면 질수록 우리도 위기를 맞을 확률이 높아지겠지만, 그것보단 포착할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런 흐름 속에서, 내가 선택한 것은 수비 때 +1이 되어 그리에즈만을 봉쇄하는 것이다.
메시를 상대했을 때와 비슷하다.
[왜 자꾸 따라오는 거야? 네 축구를 해.]“뭐? 뭔 말인지 모르겠어.”
“봉쥬, 쥬뗌. 난 그것밖에 몰라.”
[??]역삼각형의 4-3-2라고 앞서 말은 했지만, 공격에 매진하는 프랑스의 포메이션은 사실상 4-2-1-2라고 봐야 한다.
두 명의 미드필드와 최전방 두 명의 공격수 사이에서, 그리에즈만이 볼을 연결하고 방향을 결정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남자는 현재, 프랑스의 공격 엔진이다.
그래서 난 숫자의 우위를 활용해, 오른쪽 측면에 머무르지 않고 늘 그리에즈만의 주변을 지켰다.
개인적인 판단에 의거한 것이며, 아까 경기가 멈췄을 때 삼파올리 감독님에게 가 허락도 받았다.
그리에즈만을 봉쇄하게 되면 프랑스는 공격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미드필드를 전진시키거나, 풀백을 계속 공격에 가담하도록 만들 수밖에 없다.
이 말은 공격의 숫자가 늘어난다는 것이자, 수비 뒷공간이 그만큼 넓어진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프랑스 선수들의 달릴 거리가 더욱 늘어난다는 거다.
정신력이 육체를 지배해 경기가 끝날 때까지 초월적인 힘을 발휘할 수도 있기야 하겠지만, 전반 중반부터 수적 열세 속에서 뛴 프랑스 선수들은 이미 충분히 정신력을 소모 중이다.
그러니 휴식 없이는 정신력의 회복도 있을 수 없고, 피치에서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휴식 방법은 발을 멈추는 것이다.
오늘 경기를 승리로 이끌 나비의 날갯짓은 포그바에게서 시작되었지만, 승리를 확정 짓기 위한 날갯짓은 그리에즈만을 막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다만, 변수는 있다.
바로 저 남자.
팡-!!
{“우-!”}
카림 벤제마는 강한 압박 수비에도 어떻게든 공간을 만들어 슈팅으로 연결 중이다.
태휘 형님은 그를 막는 데 조금 버거움을 느끼는 것 같았고, 성용이 형과 때때론 두리 형님이 태휘 형님을 도와 이중 삼중으로 수비하고 있다.
이번에도 벤제마가 페널티박스 바로 바깥에서 힘겹게 슈팅을 시도했는데, 힘이 부족한 축구공은 성룡이 형의 정면으로 가 가로막혀 버렸다.
위기는 아니었지만, 슈팅을 허락했다는 것 자체가 썩 좋은 과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지금은 그게 필요하다.
“나이스, 나이스! 수비 좋고-!”
형들에게 손뼉을 치며 응원을 보낸 뒤, 두리 형과 잽싸게 사인을 교환하곤 측면으로 움직였다.
성룡이 형은 천천히 시간을 보내다 가까운 곳으로 짧은 패스를 보낸다.
그러자 프랑스의 투톱이 곧바로 압박했다.
평소였다면 저런 압박은 2선 자원에 의해 더 위력을 발휘했겠지만, 숫자가 부족한 프랑스다 보니 전방 압박을 벗겨 내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태휘 형님이 두리 형님에게 패스를 보내고 다시 중앙의 성용이 형이 볼을 이어받자, 압박은 간단히 뚫려 버렸다.
그리고 손을 들어 올리는 나.
“기-!!”
성용이 형이 굴려 보낸 패스를 받아 그대로 몸을 정면으로 두며, 나는 텅텅 빈 공간으로 축구공을 이끌었다.
수비 상황에서 프랑스는 포백을 페널티박스 근처에 놓아두고 공간과 주변 선수를 막는 전술을 택하고 있다. 전방의 선수들이 복귀할 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벌 생각인 거다.
일단, 마튀디와 발뷔에나가 내려서면 얼추 프랑스의 수비는 완성된 셈이다.
그리고 우리가 페널티 박스로 볼을 운반할 때쯤, 그리에즈만이 페널티 아크 앞쪽에 자리를 잡아 마지막 숫자를 채운다.
이렇게 일곱.
역시, 급할 건 없다.
파앙-
.
(이영표) – KBS 해설위원
“우리 선수들이 굉장히 영리하게 경기를 풀어 나가고 있는 건, 프랑스를 계속 움직이게 만들고 있거든요? 지금도 보면 굳이 무리하게 페널티박스로 볼을 보내지 않고 크게 돌리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
우리가 이렇게 볼을 돌리는 이유는 두 개다.
첫 번째는 당연히 시간 보내기다.
그리고 두 번째는 바로 이거다.
“뒤에-!!”
“!!”
내게서 패스를 전달받기 직전, 콜(Call)을 이해한 성용이 형이 앞으로 움직이며 볼을 컨트롤했다. 그리곤 원터치 후에 곧바로 다시 리턴을 보내왔다.
지금은 왜 그랬냐면, 벤제마가 압박을 해서다.
기습적인 시도였기에, 콜은 필수적이었다.
벤제마의 수비 가담은 노력이 엿보이는 장면이었지만, 반대로 저렇게 되면 역습은 사실상 포기하게 되는 셈이다.
과거 Big&Small 4-4-2로 역습에서 재미를 보았던 팀들은, 절대 투톱을 저렇게 아래로 떨어트리지 않았다.
둘은 역습을 할 수 있지만, 혼자는 기적을 연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성용이 형이 볼을 빼앗겼다고 해도, 즉각 수비에 가담할 수 있는 우리 쪽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았다. 또 벤제마도 수비를 하느라 또 한 차례의 스프린트를 했다.
다시 볼을 연결받은 나는 측면으로 볼을 돌렸다.
두리 형님이 그것을 받았고, 무리하지 말라며 소리친 뒤에 다시 근처로 가 패스를 요구했다.
이제, 템포는 완전히 우리 것이 된다.
잘하면 1분, 혹은 그 이상.
프랑스에게 볼을 넘겨주지 않고 이렇게 외곽을 두르는 패스만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중요한 건 단순히 시간만 보내는 게 아니라, 상대를 움직이게 해야 한다는 거다.
파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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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쟝-위브 베헝) – 프랑스 beIN Sports 코멘테이터
“조금 더 뛰어야죠, 프랑스! 대체 뭘 하나요, 프랑스! 저들이 우리를 능욕하도록 두어서는 안 되죠! 패배할 때는 하더라도, 국민들은 용감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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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수 사이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흥민이 형과 조금씩 공격 본능을 억누르는 게 힘들어진 자철이 형이 변수가 되어 가고 있다.
우린 지금까지 대략 40여 초 정도 볼을 점유하며 상대에게 볼을 넘겨주지 않았다.
약간 지루하게 변한 경기에 관중석의 중립 팬들이 야유를 보내오지만, 난 거기에 휩쓸리지 않고 끝까지 볼을 돌리는 일에만 주력했다.
그리고 그런 과정 속에서도, 끊임없이 고개를 돌리며 공격적으로 위협을 줄 수 있는 동료를 찾았다.
그리고 1분이 갓 넘었을 때.
“여기-!!!”
“응?”
성용이 형이 볼을 잡았을 때, 흥민이 형이 수비라인 사이로 쇄도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곧바로 떠오르는 축구공.
성용이 형이 부드럽게 띄워 올린 로빙패스로 인해 프랑스의 포백은 전형이 흐트러졌고, 흥민이 형을 따라 움직인 라파엘 바란이 먼저 헤더로 축구공을 걷어 냈다.
이것은 근처의 로랑 코시엘니에게로 흘렀고, 자철이 형이 곧바로 압박을 가하자 황급히 걷어 낼 수밖에 없었던 그의 킥은 다소 빗맞아 버리고야 만다.
어설프게 차 내진 축구공은 청용이 형의 앞으로 이어졌고, 그리에즈만이 빠르게 압박을 가하려 앞으로 달려든다.
“뒤! 뒤로 보내!!”
그리에즈만과 거의 동시에 달려 나간 나는 청용이 형의 뒤로 움직이며 소리쳤다.
그러자.
툭-
“!”
청용이 형이 침착한 동작으로 힐킥을 했다.
뒤꿈치에 맞은 축구공은 정확히 내 발에 안착한다.
빠르게 라인을 회복하려던 코시엘니가 날 가리키며 손가락을 내민다.
[저기-! 막아-!]코시엘니의 목소리에 반응한 발뷔에나가 접근을 하는 가운데, 나의 선택은 왼쪽 페널티박스 모서리를 타고 굴러가는 패스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최전방의 흥민이 형은 아직 오프사이드 위치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고, 왼발 슈팅은 딱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오버랩 후 적당한 위치에 머물러 있던 주호 형을 앞으로 달리게 만들 생각으로, 코너플랫 쪽으로 구르는 패스를 보낼 생각이었다.
결정을 했으니, 망설임은 없다.
파앙-!
오른발의 안쪽 부분을 축구공에 가져가고, 패스는 이상적인 속도로 내가 머릿속으로 그린 선을 따라 정확히 움직였다.
그리고 그 도착 장소엔 주호 형이 있었다.
슬쩍 안쪽을 본 주호 형의 크로스.
그것은 내 기대보다는 다소 길어 보였지만, 실망을 하기도 전 페널티 박스 안으로 누군가가 불쑥 등장했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
【같은 시각】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명달로 97-14. 트라움하우스.
장철주는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도 가장 성공한 사업가이자,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취미를 가진 남자였다.
10대 시절, 제철소의 직원이었던 그는 라디오를 통해 들려오던 축구 중계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이후,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장철주는 축구와 사랑에 빠져 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차이가 크다.
허름하고 평범한 한옥은 한국에서 가장 비싼 빌라로 바뀌었고, 라디오가 아닌 ‘뱅&올룹슨’의 홈시어터 전용 스피커가 귀에 생생한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하지만 단 한 순간도, 장철주는 자신의 취미에 진심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
“!!”
단조로웠던 화면의 색채가 화려하게 바뀌기 시작하고, 행여 큰 소리로 가족을 깨울까 염려되었던 장철주가 입을 급하게 가로막아 튀어나올 뻔했던 괴성을 참아 낸다.
대신에 그는 고개를 아래로 숙인 채, 두 주먹을 있는 힘껏 불끈 쥐여 보였다.
그래도 참을 수 없었던 장철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넓은 대리석 바닥을 걸어 다녔다.
장철주는 잠깐 주먹을 가볍게 휘둘러 보기도 했고, 만세를 했다가 박수를 칠 뻔하다가 참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최대한 줄여 놓았던 볼륨을 높이는 것까지는 참지 못했다.
딸깍- 딸깍, 딸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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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세) – SBS 아나운서
“아~ 대한민국!! 강호 프랑스를 상대로, 2:0의 리드를 잡습니다!! 아~ 무엇보다, 지금 제 곁에 계신 차범근 위원님이 무척 감격스러울 것 같습니다.”
(차범근) – SBS 해설위원
“지금은 과정이 너무 좋았죠. 김다온 선수가 욕심을 부리지 않고 박주호 선수를 잘 봐줬고, 크로스도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그리고 차두리 선수. 네. 정말 잘 해 줬네요.”
(배정세)
“아무래도 중립을 지키시고자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대신 제가 기뻐하겠습니다! 후반 28분! 차두리가 멋진 헤더로 득점에 성공하면서, 대한민국의 8강 진출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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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모두가 미쳤다고 했다.
얻을 것 없는 KFA에 조건 없는 후원을 하겠다고 결정했을 때, 그룹 내의 주요 관계자들은 본인들의 회장이 쓸데없는 곳에 돈을 낭비한다며 우려했다.
하지만 장철주는 확고했다.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중학교 1학년 때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후부터, 장철주는 언제나 자신과 아들이 가장 좋아했던 축구를 바꾸겠다고 생각해왔다.
아들의 죽음 후 전처 역시 삶의 의지를 잃은 채 술에 빠져 지내다 먼저 세상을 떠났고, 6년 전에 재혼한 여성은 자신을 잘 이해해 주었지만 축구에는 대체적으로 무관심했다.
그래서 장철주에겐, 강찬일이 매우 중요한 사람이었다.
본인과 마찬가지로 학연이나 지연과 무관한 강찬일은 늘 축구계에서 외인 취급을 받아 왔고, 그 역시 많은 부조리로 인해 고통을 받아 왔다.
그렇게 함께하게 된 두 사람은 지난 4년 동안 한국 축구를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 왔고, 아직 경기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오늘 그것을 보답받고 있었다.
‘아니. 이미 보답은 받았어.’
여전히 한국 축구계엔 많은 병폐가 널려 있다. 4년간의 노력으론 대표팀과 유소년 일부, 그리고 인프라를 약간 개선한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청주 FC나 화성 FC와 같은 3부 리그의 클럽들은 기존 K-리그 팀들에게서나 가능한 유소년 시스템을 정립할 수 있었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것이다.
또 김다온의 새로운 아카데미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 모든 것을 단숨에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려는 세력은 여전히 존재했다.
장철주에 의해 졸지에 부패한 인사가 되어 버린 이들과 그들의 자녀들 또 그들에게서 수혜를 입고 현직 지도자로 근무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다.
한데 이번 월드컵을 이미 성공으로 이끈 지금, 장철주를 반대하는 세력은 힘을 잃어버리고야 말았다.
게다가 만약 오늘 프랑스를 꺾고 8강에 진출하기라도 한다면, 이후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아주 오랫동안 한국 국민들은 브라질에서의 기적을 기억할 것이다.
이런 국민들의 응원과 목소리는, 장철주와 강찬일이 계획하고 있는 개혁에 박차를 더해 줄 수 있다.
모든 것이 행복한 지금, 장철주는 내일 새벽 출근을 준비해야 함에도 소주를 한 병 꺼내 든다.
수많은 것들에 자본이 더해지며 고급스러운 것으로 바뀌었지만, 공장의 어른들에게 처음 술을 배웠을 때부터 소주는 늘 장철주의 소울푸드 중 하나였다.
냉장고로 걸어가 김치를 꺼낸 장철주가 다시 자리로 돌아오고, 재벌이라고 말하기엔 조금 어려운 초라한 술상을 놓아두고 잔을 채웠다.
똑- 똑- 똑- 똑-
그리고 바로 그때.
“그렇게 술 드시려고요?”
“응? 깼어?”
재혼한 아내가 잠옷 위에 덧입은 가운을 가다듬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유명한 대한민국의 배우로, 20년 가까이 스크린에 모습을 비춰 왔다.
결혼 후 완전히 은퇴한 지금은 재벌가의 부인으로서, 안락하고 조용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두 사람의 사이엔 딸이 하나 있었고, 최근엔 둘째를 가져 보려 노력을 해 보았다. 하지만 여의치 않아, 사실상 포기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것 때문에 서먹해진 것도 없지 않아 있었는데, 장철주가 놀란 가장 큰 이유다.
“내가 뭐라도 해 줄까요?”
“아냐. 그럴 것 없어.”
“……그러다 속 버려요. 딱 한 잔만 그렇게 먹고 있어요.”
더 말릴 틈도 없이 돌아선 아내의 뒷모습을 보던 장철주는, 한참을 곤란해하다가 다시 TV로 눈을 돌렸다.
화면 속에서는 프랑스가 선수 교체를 준비 중이었고, 올리비에 지루에 이어 로이크 레미(Loic Remy)라는 공격수를 추가로 투입하려고 했다.
교체되어 빠져나오는 건 마티외 발뷔에나였는데, 포지션을 어떻게 꾸릴는지가 궁금할 정도의 비정상적인 비율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몇 분이 더 지났을 무렵, 주방으로 향했던 장철주의 아내가 접시에 음식을 담아서 등장했다. 채끝살을 야채와 함께 가볍게 구운 것이다.
“이거 먹어요.”
“어, 그, 그래. 그래요. 잘 먹지.”
“어떻게 되고 있어?”
“응? 아, 그게.”
장철주는 지금의 이런 상황이 몹시 어색했다.
재혼한 후로, 단 한 번도 축구를 함께 보지 않았다.
아내가 축구에 관심을 가지는 것 자체도 처음인지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가 어려웠다.
성공한 CEO라도, 같은 인간이니까 말이다.
“이기고 있네요?”
“어, 어. 그래.”
“이번에 이기면, 대단한 거라면서요?”
“어디서 그 이야기를 들었어?”
“그냥- 요즘 온통 다 그 이야기밖에는 안 하더라고요. 샵에서 머리를 하는데도, 사람들이 다 월드컵 이야기뿐이지 뭐야. 아영이도 그랬고.”
“아영? 설마 그?”
“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의 예비 신부.”
“…….”
장철주는 문득, 지금의 이런 대화가 너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여보…… 우리 둘째.”
“나 술 줘.”
“응?”
“술 줘요. 마시지는 못하겠지만, 건배라도 해 줄게.”
“……?!?!”
“나 오늘, 병원 갔다 왔어. 임신이래.”
“!!!”
입이 떡 벌어진 장철주가 아내를 바라보다, 부드럽게 미소 짓는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아들인지 딸인지는 안 물었어요.”
“……응.”
“당신이랑 같이 가서 들을래.”
“그래. 그렇게 합시다.”
취미보다는 가족인 법.
하지만 이 감격스러운 순간, 장철주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여성은 오히려 남편의 취미를 걱정한다.
“얼른 축구 봐. 난 옆에 누울게.”
그렇게 누운 오윤혜는 남편의 따뜻한 손을 얼굴로 가져가 다시 잠을 청한다.
쉽게 잠이 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오윤혜 역시 지금의 이런 모습이 좋았다. 눈을 감고 남편의 체온을 느끼는 그녀의 귓가에, 볼륨을 잔뜩 줄인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오고 있다.
.
(배정세)
“이제 4분! 4분만 있으면! 대한민국이 사상 첫 원정 월드컵 8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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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많은 이에게, 행복한 밤이 되어 가고 있었다.
***
·경기 결과
프랑스 1 : 2 대한민국
[골] 김다온 : 전반 37분차두리 : 후반 28분(박주호)
카림 벤제마 : 후반 48분(올리비에 지루)
***
※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 8강 대진
브라질 VS 콜롬비아
네덜란드 VS 코스타리카
대한민국 VS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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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VS 벨기에
스위스 VS 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