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420)
419화
2014년 9월 2일. 80802 뮌헨, 독일. 슈바빙-프라이만.
궁금했다.
이전에 이미 2012 런던 올림픽이라는 비(非)시즌 중 대회를 소화해 본 경험이 있는데도, 어째서 이번엔 그때와 같지 않은 것일까?
더구나 당시는 결승 무대까지 올랐었고, 치른 경기의 숫자도 월드컵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 않았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번이 더 힘든 걸까?
단지 월드컵이라서?
“그건 매우 어려운 문제야. 왜냐하면, 복합적이거든.”
“복합적이요?”
“그래?”
호숫가에 내려앉는 석양을 마주한 채, 나는 테라스에 놓인 고풍스러운 마호가니 의자에 펩과 나란히 앉아, 그의 빈 잔을 채워 주고 있었다.
똑- 똑- 똑- 똑-
질 좋은 스페인산(産) 레드 와인이 잔에 채워지고, 이제 다시 그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마친다.
“우선은 첫 번째, 대회 그 자체. 가장 쉬운 대답이지만, 자네가 듣고 싶은 대답은 아닐 거야. 그렇지?”
“네.”
“후후후. 역시. 그럴 줄 알았지.”
미소를 지어 보인 펩은 올림픽 대표팀과 A팀의 차이에 대해서 말을 했다.
“차이라고요?”
“그래.”
펩은 내가 월드컵 기간 부여받았던 전술적인 지시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쉽게 말해, 올림픽 때보다 월드컵 기간 더 많은 일을 했다는 거다.
“그리고 또 브라질. 거긴 정말 엄청나게 넓은 나라야.”
“가 보신 적이 있나요?”
“물론이지.”
“젠장. 정말 더럽게 컸다고요.”
브라질은 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넓은 국토를 보유하고 있다. 전체 면적이 유럽에서 가장 큰 영토를 지닌 프랑스 13개를 합쳐 놓은 것보다 크다.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데에만 최소 4시간이 필요했고, 어떤 경우엔 8시간을 꼬박 비행하기도 했다.
“올림픽은 어땠지?”
“……이해했어요.”
“하하. 국경을 넘지 않는다고 해서 피곤하지 않은 건 아니니까. 그리고 또 한국으로. 또 이비자로. 그리고…….”
생각해 보니, 시즌이 끝나고 비행기를 타고 이동한 거리만 꽤 되는 것 같았다. 독일로 온 뒤에도 다시 미국으로 날아갔고, 며칠 뒤에 다시 돌아올 때에도 비행기를 탔다.
장거리가 됐든, 혹은 단거리가 됐든.
스포츠 의학에 따르면, 높은 고도에 올라선다는 것 자체가 근육과 인대의 기억력을 망가뜨려 놓는다.
“그래서 내 실수라는 거야. 자넬 쉬게 했어야 했어.”
“……하지만 사정이 있었잖아요.”
“글쎄. 설령 부상자가 없었다고 해도, 내가 자네를 쉬게끔 했을 것 같지는 않아. 이건 지도자로서 실격인 대답일세.”
“그래도 기분은 좋네요.”
“큭큭큭큭.”
진심이 듬뿍 섞인 농담에 펩이 웃음을 터뜨렸고, 나는 어느새 산자락에 걸쳐진 태양을 눈에 담았다.
“확실히 좋기는 했어요.”
“뭐가 말이지?”
“어제랑 그제요. 아영이랑 함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데, 그런 시간을 가져 본 게 무척 오래간만이더라고요.”
“후후후. 자네도 나만큼이나 일 중독이지.”
“부정할 수 없어, 슬프네요.”
시간이 흐를수록 또 축구를 알아갈수록, 나는 이 스포츠를 점점 더 사랑하게 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에 빠져 버린 내가 너무나도 좋다.
이 감정을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축구 선수의 본분에 충실하는 것이고, 난 여전히 더 많이 알아 가고 더 많이 사랑하고 싶다.
그리고 펩은 틀림없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래서?”
“네?”
“이번 월드컵은 자네에게 무슨 의미였지?”
“……글쎄요.”
우선은 메시를 전처럼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프리킥을 되갚아주는 날이 오기 전까진, 나는 절대 그를 이전처럼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무척 특별했어요.”
“특별? 어떤 식으로?”
“처음에 저희는 그냥 이방인이었는데, 나이지리아에게 승리한 뒤부터 사람들이 보는 시선이 바뀌더라고요. 프랑스에게 이기고 돌아갔을 땐, 아예 현수막이 걸렸던 거 있죠?”
이구아수의 사람들은 우리를 그들의 선수로 생각했다. 시내로 음식을 먹으러 나설 때면, 어딘가에서 불쑥 나타난 이가 과일이 담긴 봉투를 내밀고 떠나곤 했다.
물론 여러 이유로 우리가 그걸 먹는 일은 없었지만, 최소한 그 마음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그게 전부 다 축구 때문이었어요.”
이후로도 나는 계속 브라질에서 있었던 일들을 말했다. 휴대폰을 가지고 있지 않아, 내 연락처만을 남겼던 치아구에 대해서도 말이다.
아영이에게 몽땅 털어놓았던 말이긴 했지만, 펩은 그녀와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공감과 호응을 해 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며, 내 스스로가 여전히 월드컵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건, 이것이 자네의 첫 월드컵이라서 그래.”
“당신도 그랬나요?”
“아니. 자네랑은 많이 달랐어. 왜냐하면 내가 젊었을 땐, 난 건방진 카탈루냐 녀석으로 통했거든.”
“하하. 뭔가 이해될 것도 같네요.”
“그때, 난 완전 고슴도치였지.”
어느새 하늘은 검게 변했고, 맑은 밤하늘에 떠오른 반달과 주변에서 반짝이는 별빛이 우릴 비췄다.
클럽 커리어와는 달리 A팀에서 늘 외면받았던 펩은, 감독이 되고 나서야 자신과 같은 성격을 지닌 선수가 지도자에게 얼마나 골칫덩어리인지를 깨달았다고 한다.
가뜩이나 파벌이 심한 스페인이기에, 카탈루냐에 대한 자부심이 유별났던 펩은 꺼려지는 선수였다.
그래서 1994년 미국 월드컵이 펩의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컵이었다.
“하지만 난 그것이 아쉽지 않았어.”
“카탈루냐 대표팀이 아니어서요?”
“그래. 유로 2000에서야 처음으로 대표팀에 대한 애착이 생겼지만, 당시 축구는 나와 같은 라볼피아나들은 주목받지 못하던 때였지. 난 구식이었어.”
“그래도 지금은 최고잖아요.”
“하하. 그거 기분 좋은 말이로군.”
그렇게 계속 또 대화를 이어 나가려고 할 무렵.
드르르륵-
“도대체 언제까지 대화를 할 셈이야?”
“응? 몇 시지?”
문을 열며 등장한 크리스티나가 벌써 자정이 다 되어 간다고 말해 우리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아영이로부터 도착한 메시지가 보였다.
자그마치 한 시간 전에 도착한 것이었고, 난 거실 소파에서 잠든 그녀를 조심스럽게 깨웠다.
[우우우웅- 귀찮아아-] [미안해, 진짜. 내가 업어 줄게.] [등.]이미 잠에 푹 빠진 아영이를 업으며, 난 멋쩍어하는 펩과 곤란해하는 크리스타에게 인사를 했다.
“다음에는 아예 잘 생각으로 와요. 그럼 우리도, 미리 준비를 해 놓을 수 있으니까.”
“하하. 죄송해요.”
“이따가 이이가 혼날 거예요.”
“이런! 아무튼, 즐거웠네.”
“네, 저도요.”
그렇게 펩과 크리스티나의 배웅을 받으며, 나는 주차장으로 가 차 안에 아영이를 조심스럽게 태웠다.
[안 추워?] [우응- ……추워어-]] [잠깐 있어 봐.]뒷좌석에서 꺼낸 모포를 아영이에게 둘러 주고, 그 위에 안전 벨트를 채운 뒤에 의자를 눕혀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 뒤엔 운전석에 올라타 집으로 향했다.
몸을 뒤척이던 아영이가 웅얼대듯 내게 질문을 던져 온다.
[좀 괜찮아져써어-?] [응. 좋았어.] [내가 다 이해 못 해 줘서 미안해애-] [……아니야. 그건 나도 그렇잖아.] […….] [자?] [졸려.] [응. 얼른 집에 가자.]이번에 내가 쉬면서 느끼는 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거다.
그건 나를 조금 화나게 만들었고, 쓸데없는 걱정을 끼친 것 때문에 많이 미안하기도 했다. 조금만 더 성숙했다면 훨씬 잘 풀어 나갔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펩은 이런 말을 했던 내게, 잘못한 게 아니라 내가 겨우 스무 살인 것뿐이라고 해 주었다.
‘……아직 멀었어.’
어렸을 땐 스무 살이 되면 성인이 되어 무엇이든 혼자서 뚝딱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정작 스무 살이 되고 나니, 난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
그럼, 서른 살은 괜찮으려나?
그래야 되는데.
사랑하는 사람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 나는 처음으로 나이를 먹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까 그 달이네.’
집으로 향하는 B2R 도로에 접어들었을 때, 정면에서 보이는 반달이 다시 빵긋 인사를 보내오고 있었다.
***
[바이에른 뮌헨의 한 내부 관계자는 펩 과르디올라의 쓰리백 전술이 다온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 zt]***
2014년 9월 4일. D-80331 뮌헨, 독일. 디이나슈트라세 12, 알터 호프. 프락시스 퓌어 오르토피디 & 슈포르트메디친.
지난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을 끝으로, 볼파르트 부자(夫子)는 독일 대표팀 팀 닥터 직책을 내려놓았다.
그래서 이번 A매치 기간은 한스-빌헬름에게 있어서도, 모처럼만에 맛보는 여유 있는 시간이었다. 이는 지난 14개월 동안, 킬리안의 손을 거친 자료를 확인하게 된 이유기도 했다.
“…….”
그리고 그 자료들을 보며, 한스-빌헬름은 참담함에 가까운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왜냐하면 얼핏 보기에도, 엉망으로 취급된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과정들이 생략되어 있어. 그리고 시행했다는 것들도, 정말로 한 게 맞기나 한 것인가?’
한스-빌헬름은 자신의 아들에게 같은 재능이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킬리안의 주된 관심사는 여성과 화려한 삶이었고, 그를 위해 본인의 이름을 팔고 다녔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한스-빌헬름은 몇 년 전 20년 넘게 다니던 오래된 펍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망나니 아들을 똑바로 단속하지 않는 이상, 본인의 가게에 발을 들일 수 없다고 주인이 으름장을 놨던 것이다.
[“우리 사이에 20년의 우정이 없었다면, 나는 당장 자네 아들을 총으로 쏴 버렸을 거야!”]킬리안이 주인의 딸을 추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난 뒤의 일이었다.
탁-
“휴우~~”
차마 더는 차트를 볼 수 없었던 한스-빌헬름이 파일을 덮었고, 테이블 위에 툭 던져진 검은색 표지엔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작년 8월 관절 캡슐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던 이후, 슈바인슈타이거는 계속해서 무릎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
분명 클리닉에서의 치료는 완벽했고, 이후에는 뮌헨의 클럽하우스로 돌아가 재활과 운동을 병행하며 몸을 만들면 최초 진단보다 늦지 않게 복귀가 가능했다.
그것을 위해 한스-빌헬름은 매일 오후 킬리안으로부터 보고서를 전해 받았고, 거기에 적힌 내용을 바탕으로 치료와 재활 방법을 다시 설정해 주었다.
하지만 킬리안이 일을 엉망으로 처리했다면, 본인의 지시 역시 선수를 아프게 하는 이유였던 셈이 된다.
전 세계 최고의 스포츠 의사임을 자처하는 한스-빌헬름에게 있어, 이는 무엇보다 견딜 수 없고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킬리안을 쫓아내기로 한 루메니게의 판단은 옳은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미 .e.V들이 그를 압박하여, 킬리안을 이번 A매치 기간 이후 클럽에 복귀시키도록 만들었다.
오랜 기간 애정을 가져온 바이에른 뮌헨과 혈육 사이에서, 한스-빌헬름은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프로와는 거리가 먼 결정을 내린다.
다시 한번 처음부터, 킬리안을 교육하기로 한 것이다.
삐이-
“…….”
삐이-
처음 울린 호출을 무시했던 한스-뮐러가, 킬리안을 위해 적고 있던 노트에서 눈을 떼며 손을 스피커 폰으로 가져간다.
딸깍-
– 박사님?
“그래.”
– 오후 예약한 분이 오셨어요. 그러니까…….
“이런!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군. 들여보내게나.”
– 네.
오늘 한스-빌헬름이 유일하게 직접 맞이한 사람은, 스스로의 몸 상태를 정확히 확인하길 원하는 이였다.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내자, 어렵지 않게 푸근한 미소를 지어 보인 한스-빌헬름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뻗으며 악수를 권한다.
그러자, 맞은편의 사내가 손을 맞잡아 왔다.
“제가 괜히 스케줄을 빼앗은 건 아니겠죠?”
“하하. 그럼. 물론일세.”
“그럼 다행이네요. 아, 그리고.”
“응?”
“여기 선물이요. 요즘 제 여자 친구가 빵도 굽고 있는데, 박사님께 들린다고 파이를 구웠지 뭐예요. 무화과랑 건포도를 넣은 건데, 맛이 아주 좋아요.”
매번 올 때마다 뭔가를 가져오는 이를 향해, 한스-빌헬름은 다음엔 꼭 빈손으로 오라고 말을 한다.
“박사님은 바쁜 분이시잖아요. 이렇게라도 해야, 제가 마음이 조금 편하거든요.”
“하하. 그거 고마운 말이로군. 일단 저 위에 앉게나.”
“네.”
선물로 받은 파이를 테이블로 가져가던 한스-빌헬름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들 킬리안으로부터 생일 선물이나 하는 것들을 받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잠깐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기다리고 있을 이를 위해 다시 표정을 숨기며 몸을 돌려 앞으로 나아갔다.
“그래.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있나?”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시다시피, 요즘 제가 썩 좋지 않거든요. 몸이 고장 난 곳은 없는지, 또 지치지는 않았는지 살피려고 왔어요.”
“하하. 점검은 중요하지.”
“네. 그래서 최고에게 온 거죠.”
“자넨 늘 그 입이 문제야.”
“좋으시면서.”
“큭큭큭큭.”
한스-빌헬름에게 있어, 김다온이란 환자를 마주하는 시간은 무척 기분이 좋은 것이었다. 만약 자신이 일찍 아들을 낳았더라면, 비슷한 나이의 손자가 있었을 수도 있다.
킬리안은 38살 때 얻은 아들이다.
“자네 같은 손자가 있다면, 매일 업고 다녔을 걸세.”
“오-! 그럼 지금 업어 주실래요? 할아버지?”
“뭐?! 하하핫-!”
김다온을 진료하는 내내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밖에 있던 클리닉의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생각했다.
‘박사님이 기분이 나쁠 때, 꼭 다온에게 클리닉을 한 번 들려 달라고 해야 할까 봐.’
까칠한 성격을 지닌 완벽주의 성향의 상사와 일을 하고 있는 이들에겐, 지금의 이런 모습은 무척이나 낯설면서도 또 한편으론 신기한 일이었다.
***
2014년 9월 10일. 81479 뮌헨, 독일. 하일만슈트라세(Heilmannstraße. 81479 Munchen, Germany).
A매치 기간이 끝나면서, 동료들이 속속 클럽으로 복귀했다. 정말 다행인 점은, 다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다.
그리고 현재, 나는 집에서 걸어 5분도 채 되지 않은 길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혼자는 아니고, 꽤 많은 이들과 함께였다.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
“이봐. 전화해 봐. 어디래?”
“나보고 하라고? 난 싫어. 분명 화를 낼 거야.”
“이런, 젠장.”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늘 그렇듯이 그는 지각 중이다. 훈련 때는 거의 늦지 않지만, 사적인 약속은 항상 늦는 게 마누엘 노이어라는 남자의 특징이다.
매번 이렇게 늦게 도착하는 이유가 참으로 황당한데, 기다리는 게 싫기 때문에 아예 늦는 것을 택했다.
[“그럼 기다리는 사람은?”] [“그게 왜?”] [“넌 기다리기 싫다면서, 다른 사람도 기다리는 게 싫을 거란 생각은 안 해 봐?”] [“……전혀.”]당시에 나는 마누엘 노이어라는 남자를 내 상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뭔가 본인을 “이 몸”이라 부르는 거만한 모습과 어울리기도 해, 그 뒤에 딱히 말을 하지는 않고 있다. 그냥 이렇게 노이어가 없는 자리에서, 툴툴거리는 게 전부다.
“아, 걔 차는 너희 집에 대어다 두는 건 알고 있지?”
“네. 그럴 거예요.”
“걸어온다고 또 툴툴대는 거 아냐?”
“에이, 설마.”
“내기할까? 난 툴툴댄다는 데 걸래.”
드르르륵-
“어?! 숨어-!!”
“!!!”
우리가 향할 목적지 쪽을 보고 있던 뮐러가 다급히 소리를 질렀고, 거기에 반응한 우린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수풀 속으로 몸을 가져갔다.
그렇게 바라본 목적지의 테라스에 선 사내는, 뭔가 감회에 젖은 눈빛으로 주변을 내려다보고 있다.
“표정이 보여?”
“행동만 봐도 알아.”
“역시. 너희 둘이 결혼했을 줄 알았어.”
“왜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데?”
“쉬잇-! 들리겠어!”
“…….”
“…….”
괴체의 예리한 지적에 뮐러와 내가 입을 다물었다.
“……제기랄. 조금 들어가라고.”
“이럴 때 노이어가 등장하면 실패 아니야?”
“걔 타이밍 한번 끝내주게 못 맞추는데.”
“내가?”
“으왓-! 깜짝…….”
“쉬이이이잇-!!!!”
“흡-!”
여러 가지 이유로 깜짝 놀란 토마스 뮐러가 급하게 입을 틀어막자, 녀석을 사이에 두고 내 맞은편에 있던 레반도프스키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어깨를 들썩거렸다.
그나저나, 대체 언제 등장한 거야?
아니, 그보다.
“넌 왜 숲을 통과해서 왔는데?”
“그냥. 여기가 빠를 것 같아서.”
“……제기랄. 너무 잘해서 뭐라 말도 못 하겠네.”
“큭큭큭큭. 꺽꺽- 큭큭큭큭.”
구시렁대는 내 말에, 레반도프스키는 아예 호흡이 가빠질 정도로 웃기 시작했다.
동료를 웃겨서 기분이 좋았지만, 지금 내 유일한 바람은 저 녀석이 얼른 안으로 들어가 주는 것이었다. 그러지 않았다간, 벌레에게 이곳저곳을 물어뜯길 거다.
“오-! 간다! 가!”
“자, 그럼 다들. 준비됐지?”
“물론이야.”
이쯤에서 뭘 하고 있는지 밝히자면, 포르투갈에서 돌아온 베르나르두 실바의 집들이다.
작년 내가 당한 것을 기억하는가?
“그걸 왜 당했다고 하는데?”
“몰라서 물어?”
“……모르겠는데?”
“이런, 제기랄. 토마스. 넌 언제 집 사?”
“한 3116년쯤?”
“젠장! 나도 그때까지 살아 있긴 할까?”
“할 수 있어. 나처럼 마흔 살 때 냉동되어서 보관되었다가, 천 년 있다가 깨어나는 거지.”
“그럼 3116년이 아니잖아?”
얼빠진 대화를 나누던 뮐러와 내가 배를 잡고 웃는 사이, 첩보 영화를 방불케 하는 모습으로 길을 건넌 동료들이 최근 새롭게 지어진 저택의 앞에 서서 벨을 눌렀다.
지이—-잉!!
…….
딸깍-
– 누구세요?
스피커폰 너머로 베르나르두의 얼빠진 목소리가 들려왔고, 일부러 얼굴이 잘 보이지 않게 카메라와 가까운 곳에 선 제롬이 프런트의 스태프라면서 선물을 주러 왔다고 했다.
오늘 우리의 컨셉은 프런트에서 온 사람처럼 위장하여 문을 열도록 만든 뒤, 안으로 곧장 뛰어 들어가 베르나르두의 새집을 점령하는 것이었다.
잠깐 확인해 보겠다며 의외의 꼼꼼함을 발휘한 베르나르두가 기다리라 말을 했는데, 이미 우리에게 매수된 빈첸트는 부탁받은 대로 설명을 할 게 틀림없다.
만약 안 그랬다간, 출근이 괴로워질 테니까.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 들어와요. 확인했어요.
지—–잉!
철컥-!!
크진 않지만 두꺼운 철제문이 큰 소리를 내며 열리고, 그것이 신호탄이 되어 우린 미리 준비한 가면을 쓰고 뛰어들었다.
“가자아아아아-!!!”
“돌겨어어억-!!!”
뛰어드는 우리의 손엔, 취향껏 내용물을 채운 물총이 들려져 있었다. 깜짝 놀란 베르나르두가 황급히 현관문을 잠갔지만, 이미 그것에 대해서도 준비가 되어 있다.
“열쇠-!!”
“응!!”
누가 이 집을 소개했다고 생각하나?
바로 나다.
[뭐, 뭐야? 왜, 왜, 왜 열쇠가?]열쇠로 문을 따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베르나르두를 향해 집중포화를 시작했다. 금세 그의 티셔츠는 형형색색으로 물들었고, 녀석은 완전히 패닉에 빠져 버렸다.
그렇게 한껏 물총을 쏘아 댄 뒤, 우린 영문을 몰라 하는 녀석의 앞에 서서 가면을 벗었다.
[너, 너, 너, 너희…….]“서프라이즈-!”
허탈함에 맥이 풀린 베르나르두를 남겨 두고, 물총을 대충 바닥에 던진 이들이 집 안 탐방을 시작한다.
토마스 뮐러와 마리오 괴체는 현관에 장식된 조각에 관심을 드러냈고, 그것을 만지려고 하자 베르나르두가 재빨리 뛰어가 절대 손을 대지 말라며 소리쳤다.
[이건 내가 만든 거라고!]“뭐라는 거야? 만져도 된다고?”
[만지지 말라고옷-!! 에-이!! 그거 유리잔이잖아! 깨져! 깨진다고!! 거긴 옷 방이야!! 들어가지 마!!]베르나르두가 절규하는 것을 보며 문득 생각이 든 건, 집에 엘리베이터가 있던 게 참으로 다행이라는 거였다.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이 모습은 작년의 나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친구가 안쓰러워졌을 때.
탁-!
어딘가에서 날아온 손바닥 크기의 박스가 하나둘 현관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탁- 탁- 탁-
“베르나르두!! 여기 콘돔이 왜 이렇게 많아?”
탁-
[…….]침실에 놓아두었을 것이 분명한 콘돔박스가 쌓여 가자, 다리에 힘이 풀린 베르나르두가 털썩 주저앉았다. 완전히 넋이 나갔는지,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도 반응이 없다.
아직 박스를 전해 주지도 않았는데.
이 친구가 빨아야 할 구린내 나는 유니폼과 양말이, 현관문 앞에다 놓아둔 박스에 한가득 있다.
“이봐-! 냉장고에 왜 이렇게 뭐가 없어?”
“배고프다-! 뭐 시켜 먹자!!”
“여기 게임기 없어?! 플레이스테이션은 없는 거냐고!”
완벽히 재연되고 있는 작년과 같은 풍경 속, 나는 머리카락을 감싸 쥐고 있는 베르나르두에게 다가가 작년 단테가 내게 했던 행동을 그대로 해 주었다.
녀석을 끌어안으며, 이렇게 말한 거다.
[잘 견뎌 봐, 친구. 뮌헨에 온 걸 환영해.] [……거야.] [뭐?] [……릴 거야.] [뭐? 잘 안 들려?] [죽여 버릴 거야. 죽여 버릴 거라고. 그냥 지금 당장 죽이겠어!!]“으왓-!! 얘 화났다!! 도망쳐엇-!!!”
순식간에 집 안에서 숨바꼭질이 펼쳐지고, 잠시 뒤 우린 포박되어 버린 베르나르두를 소파에 곱게(?) 내버려 둔 채 주문한 음식을 놓아두고 TV로 축구를 보았다.
[읍-! 읍읍읍-!!! 읍-!!] [한 가지만 약속해. 우리 안 죽일 거지?] [읍-!!! 읍읍-!!!] [안 돼. 여전히 죽이려고 하고 있잖아.] [으으읍-!!!]이러다 영원히 베르나르두에게 미움을 받는 건 아닐까?
장담하는데, 그건 절대 아닐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허억- 허억- 허억-] [Amigo. 나도 작년엔 당했어.] [허억- 누구야?] [뭐?] [다음 차례는 누구냐고…….]침을 조금 흘리며 눈빛을 번쩍이는 베르나르두를 보고 있노라니, 벌써부터 다음 타겟인 마놀라스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완전히 죽여 버리겠어.] [워어- 그건 좀…….] [뭐?!] [아, 아니야. 네 마음대로 해.]아무래도, 다음 A매치 주간 전까지 마놀라스에게 엄청 잘해 줘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