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426)
425화
레비의 헤더는 골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발로 슈팅한 것처럼 날아간 축구공은 크로스바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났을 뿐이다.
절로 몸을 움찔하며 양손을 머리로 가져갈 수밖에 없던 장면이었고, 난 아쉬움보단 짜릿함에 지배된 감정을 팔에 잔뜩 돋아난 소름으로 표현했다.
결과는 하나의 사건 끝에는 반드시 중요해지지만, 과정 속에서 더 중요한 건 ‘올바른 방향’으로 전진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금방 슈팅으로 연결되기까지의 과정이 그랬다고 본다.
조금 높이 전진을 했던 베르나트가 필리프에게 패스를 연결한 후 약 15여 초.
우린 피치의 모든 요소를 완전히 통제했다.
내 기억이 옳다면, 올 시즌 처음이다.
볼을 점유해 상대의 시선을 묶어 두는 사이 볼을 지니지 않은 이들이 올바른 위치로 움직였고, 그곳으로 패스를 보냈을 때 우린 다른 방법으로 상대의 시선을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인간의 시야는 제한되어 있다.
누구도 예외일 수는 없다.
우리의 눈은 코의 양옆에 달린 두 개가 전부고, 그렇기에 뒤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 수 없다.
베르나트에게서 필리프로 패스가 전해졌을 때, 하노버의 시선은 전부 그리로 향했다. 관중 혹은 이 경기를 중계할 TV 카메라가 그런 것처럼, 피치 위의 주인공을 주시했다는 거다.
그러면 그 순간, 주인공(축구공)이 머무는 곳 반대편에 선 이들은 무대의 붉은색 천막 뒤로 사라져 버린다.
올바른 빌드업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훌륭한 조연을 만드는 일.
필리프가 후방의 알라바에게로 볼을 보낸 타이밍에 하노버 선수들의 시선은 하프라인을 향했지만, 그런 과정 동안 깊숙이 침투했던 나는 다시 그들의 사각(死角)으로 움직였다.
이어진 다음 장면에선 최종 결정권을 쥔 사람은 알라바였고, 그는 무대를 손에 쥔 연출가가 되어 내려왔던 붉은색 커튼을 걷고 거기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
그렇게 +1이 되어 나타난 나는 씬(Scene)스틸러가 될 기회를 얻은 거다.
결과적으론 실패가 되었지만 실망할 이유는 전혀 없다. 아마도 오늘 우리는 수차례, 같은 장면을 연출할 수 있을 것이다.
‘온다.’
전반 8분, 아쉽게도 영 좋지 못한 위치에서 볼을 빼앗기고 만다. 난 곧장 뒤를 돌아봤고, 이전 경기들보다 훨씬 더 높이 전진한 동료들을 확인하곤 곧바로 발을 움직였다.
펩의 철학에 따르면, 최종 수비라인이 미드필드와의 간격을 좁혀 공간을 없애고 최후방을 그들의 영역으로 남겨 둘 경우 전방압박은 훨씬 더 수월해진다.
최종 수비라인 앞에 있는 이들이 뒷공간을 염려할 이유가 없어지기에, 적극적으로 달려들 수 있어서다.
그리고 이런 수비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에 대해, 펩은 작년 우리를 모아 두고 이렇게 말을 했다.
[“Tapfer, das ist alles was wir brauchen.”](용기, 그게 우리에게 필요한 전부다.)
최종 수비라인을 높이는 일은 수비수들에겐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뒤에 놓아두는 공간이 전부 다 우리가 수비해야 할 영역이 되고, 그만큼 더 많이 뛰어야 한다.
그러니 어지간한 용기가 없다면, 아무리 훈련을 반복해도 최종 수비라인은 높아지지 않는다.
하지만, 용기를 가지면 장점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바로 이런 거.
“?!”
쿵-
“우윽-!!”
다시 한번 중앙으로 좁혀 몸싸움을 시도하자, 기요타케 히로시는 아까처럼 나가떨어졌다. 완벽하게 어깨를 먼저 집어넣었기에, 마찬가지로 파울이 아니다.
지금 기요타케의 표정은, 이렇게 빠르게 역습에 대응할 줄은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단지 그가 몰랐을 뿐.
최종 수비라인이 그 앞에 서는 이들이 충분하다고 느낄 위치까지 전진해 있을 경우, 지금처럼 역습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게 가능해진다.
기요타케에게서 빼앗은 볼을 후방으로 돌리고 주변을 돌아봤을 때, 나는 동료들의 얼굴에서 사라진 것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불신(不信)이나 불안함처럼, 우리를 지배했던 감정들 말이다. 우린 드디어 용기를 가졌다.
“이봐아-!!!”
“?!”
“이게 그렇게 힘들었어?! 앙?!”
오늘 그 어느 때보다, 우리의 축구에 가장 큰 확신을 가지고 있다.
***
·전반 종료
바이에른 뮌헨 3 : 0 하노버 96
하프타임, 환호하는 뮌헨의 팬들과는 달리 경기를 취재코자 모여든 이들은 의아함을 감추기 힘들었다.
3승 1무 2패를 기록 중인 하노버는 시즌 초반 신선함을 안겨다 주는 팀 중에 하나였고, 최근 뮌헨의 경기력을 감안했을 때 쉽지 않은 상대로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반 11분 김다온의 낮게 깔린 크로스를 레반도프스키가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해 선제골을 만든 이후, 전반 16분과 38분에 연이어 득점이 만들어지며 3:0이 되어 버렸다.
더욱 기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건, 이 모든 득점에 김다온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그는 오늘 드리블 돌파 없이도 수비가 없는 상황을 만들어 내며, 오른쪽 지역에서 양질의 크로스를 여러 차례 올려 보냈다.
이에, ‘SID’의 기자 아킴 하우쉬카(Achim Hauschka)는 아무나 들으라는 듯 소리를 질렀다.
“하노버의 왼쪽 수비가 형편없는 것 아냐?!”
“…….”
“그렇잖아! 계속해서 다온을 가만히 내버려 두고 있다고! 내 말은 그러니까, 과포장되긴 했어도 실력이 없는 친구는 아니거든?! 안 그래?!”
“…….”
‘SID’가 최근 바이에른 뮌헨의 기사를 대량으로 생산해 내기 시작하면서, 독일 내 기자들은 그들에게 새로운 정보원이 생겼다고 짐작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 ‘SID’의 프리랜서 기자 아킴 하우쉬카에게 뮌헨의 고위급 관계자가 정보를 내어 주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아직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현재의 뮌헨에 불만이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아, 시끄러워!! 그런 질문은 네 트위터에서나 해!”
“우린 같은 기자잖아! 동료끼리 이러기야?”
“동료라고?! 하-! 몇 달 전까지 연예인의 섹스 사진이나 들쑤시고 다녔던 녀석이 우리에게 동료라고 하는 거야?!”
환영받지 못하는 아킴 하우쉬카를 향해, 다른 미디어 기자들의 비난이 쏟아진다.
그들 중 일부는 저널리즘 때문이었지만, 대부분은 고위급 인사로부터의 정보를 혼자 독식하려는 하우쉬카에게 질투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잘 알았던 하우쉬카는, 콧방귀를 뀌며 모니터에 눈을 두었다.
‘대체 뭐지?’
독일인답게 축구를 평생 좋아해 오기는 했지만, 축구에 대한 이해도는 평균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런 하우쉬카가 보기에, 전반전은 의문투성이였다.
‘모르겠어. 그냥 하노버의 수비가 나쁘다고 하지, 뭐.’
홈페이지에 업로드할 전반전 정리 기사에, 하우쉬카는 유일하게 하노버의 경기력을 비판하기로 한다.
***
·후반 03분
후반 시작 때, 하노버가 두 명을 교체했다.
계속해서 내게 크로스를 허용했던 알보르노즈와 센터백 펠리페(Felipe)를 빼고, 크리스티안 판더(Christian Pander)와 레오나르두 비텡코트를 투입한 것이다.
동시에 하노버는 4-2-3-1로 전형을 바꿨고, 호셀루와 비텡코트를 양쪽 윙에 배치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하노버는 우리가 비워 둔 뒷공간을 노리려고 했다. 꽤 현명한 판단이지만, 방법은 그러지 못하다.
‘아직 아니야. 아직도…… 지금!’
파앙-!
하노버의 수비진영 깊숙한 곳에서 축구공이 날아들고, 호셀루(Joselu)가 측면에 존재한다고 믿었던 공간으로 움직이지만 그곳은 우리의 영역이다.
단테가 호셀루를 1:1로 마크하며 헤더 경합을 벌이는 사이, 나는 그 주변에서 움직이며 떨어질 세컨 볼을 기다렸다.
어렵지 않게 볼을 따낸 단테가 내가 벌려선 측면으로 헤더를 보내왔고, 그것을 부드럽게 컨트롤 한 나는 노이어에게 볼을 돌리며 반대로 볼을 전개하라고 손짓했다.
이건 너무나도 쉬운 수비다.
[“상대가 롱-볼을 하려고 든다면, 반드시 전조가 있다.”]펩은 우리에게 아군뿐만이 아니라, 적군의 빌드업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해 준다. 그런 그의 말에 따르면, 롱볼은 두 가지 이유에서 비효율적이다.
수비 진영에서 최전방으로 축구공이 움직이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최종 패스가 보내어질 타이밍을 수비수가 읽어 내기 너무 쉽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점유율을 높이는 데 어려움을 겪는 상대가 필사적으로 후방에서 볼을 돌리려고 한다면, 그건 70% 정도 롱볼을 하려고 한다는 신호다.
그리고 만약 후방 빌드업 때 의도를 찾기 힘든 곳으로 패스를 보내 볼을 돌린다면, 70%의 확률은 99.9%로 높아진다.
지금 내가 쉬운 수비라고 말한 이유다.
[사비! 뒤!] [!!]기요타케가 모처럼 거칠게 사비를 압박하려고 들지만, 단단하게 버텨 낸 스페인의 베테랑은 어렵지 않게 볼을 지켜낸다.
그것을 본 나는 도움을 줄 생각으로 다음 패스 경로를 알리려고 했는데, 그러기도 전 사비가 알아서 마놀라스에게 볼을 굴렸다.
그리고 이는 곧바로, 넓게 벌려선 베르나트에게로 연결되었다. 내가 생각한 그림처럼 말이다.
[지금 뭐라 하려고 했어?]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하.]하노버의 전방 압박이 손쉽게 벗겨지고, 특유의 직선 돌파를 선보인 베르나트가 볼을 높은 위치로 가져간다.
샤키리가 패스를 달라고 요청하지만, 베르나트는 그것을 모르는 척하며 필리프를 찾는다.
‘나이-스.’
아무래도 베르나트는 샤키리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알게 된 것 같다. 피치가 훤히 열린 상황이 아닌 이상, 패스를 자제해야 한다는 것 말이다.
필리프가 다시 사비를 찾아 뒤로 패스를 보내고, 열린 공간으로 침투한 그는 조금 전진한 뒤 레비를 보았다.
‘가야 돼.’
그렇게 또 패스가 앞으로 보내어지고, 나는 본능에 따라 자연스럽게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수비를 등진 레비와 눈이 마주쳤다.
소리를 질러야 할까?
‘……아니. 안 그래도 될 거야.’
레비가 좋은 선수인 이유야 셀 수도 없이 많겠지만, 지금 가장 돋보이는 점은 완급(緩急)을 조절해야 할 시점을 본능적으로 안다는 점이다.
수비를 등진 상태라 볼을 지키는 것이 수월하니, 한 템포 쉬는 동안 내가 전진할 거리도 계산에 넣는 듯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절묘하게 전해져 온 패스를 설명할 수 없다.
“막아-!!!!”
오른쪽 뒤편 그리 멀지 않은 지점에서, 하노버 진영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반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장면인데, 차이점이라면 나를 막아서는 수비수의 얼굴이 바뀌었다는 것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수비하는 방법도 다르다.
훨씬 적극적이고, 훨씬…….
‘무모해.’
탁-
“??”
센터백도 그렇기야 하지만, 풀백은 절대 성급하게 달려들어서는 안 된다.
현대축구의 특성상 측면 백업이 훨씬 더 어렵기도 하고, 이곳이 붕괴되었을 때 미치는 영향이 정면이 뚫렸을 때보다 몇 배는 더 오래간다.
그래서 크랙(Crack)으로 불리는 선수들이 현대축구에서는 대부분 윙어인 거다.
때문에 측면 수비수들에겐 ‘거리 유지’와 ‘몸의 정면을 놓아두는 위치’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 두 가지만 잘해도, 꽤나 많은 공격을 지연시킬 수 있다.
한데 지금처럼 무모하게 달려들게 되면, 돌파를 허용했을 때 그 뒤 영역을 몽땅 상대에게 헌납해야 한다.
지금의 경우는 내가 그걸 받았다.
‘고마워라.’
저돌적이었던 크리스티안 판더의 스탠딩 태클을 가볍게 따돌리곤, 나는 페널티 박스를 안을 목표로 뛰었다.
하노버 기준 왼쪽 측면에서의 1차 저지선이 손쉽게 뚫린 현재, 백업을 위해 달려드는 크리스티안 슐츠(Christian Schulz)의 뒤로 넓은 공간이 생겨난다.
토마스가 있었다면 아마 저기로 뛰어들었을 건데, 지금 레비가 하려는 일도 바로 그것이었다.
다만 지금, 그에게 패스를 보내는 것이 올바른 선택인지 확신할 수 없다.
페널티 박스 바깥에서 뛰어드는 경우라면 몸의 정면이 골대를 향하고 있어 다음 동작으로 연결하기 수월하겠지만, 박스 안에서 나를 정면으로 보며 움직이는 레비는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그리 많지 않다.
어렵게 몸을 돌리더라도 그만큼 시간이 걸리고, 2:1을 하자니 내가 워낙 높이 전진한 상태라 오프사이드 위치로 뛰어들 확률이 높다.
그런데 바로 그때,
‘엥?’
나는 보았다.
레비가 왼손을 들어 엄지로 뒤쪽을 가리키는 걸 말이다.
그리고 동시에 머릿속이 번쩍했다.
‘아-!’
내가 레비를 잘 모른다는 증거가 바로 지금과 같은 장면에서 드러나고 있다. 난 그가 뛰어든 이유를 단순히 패스를 바라서라고만 생각했다.
본인이 남은 센터백 하나를 달고 움직여 줌으로써, 그의 뒤로 다른 공간을 만들려 한다는 걸 몰랐다는 거다.
나의 돌파와 레비의 오프 더 볼로 인해, 하노버 선수들의 시선은 완전히 이쪽에 집중되어 있는 상태다.
슬쩍 눈을 왼쪽으로 들어 올려 동료를 찾은 나는, 넓혀지고 있는 공간을 향해 맹렬하게 뛰어들고 있던 베르나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다만 그가 도착하기까진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했기에, 살짝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어 골라인으로 드리블을 가져간다.
딱 한 번. 그것도 오른발 바깥쪽으로 슬쩍 차 둔 정도지만, 이 짧은 찰나 동안 베르나트는 몇 걸음을 더 움직일 수 있다.
그렇게 약간의 지연 시간을 둔 뒤, 몸을 왼쪽으로 틀며 오른발 안쪽을 축구공에 가져다 댄다.
늦출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여유를 주었기에, 더는 늦장을 부릴 수 없다. 볼이 베르나트에게 닿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를 믿어야 한다.
파앙-
‘제발.’
골라인 앞 40cm 정도 되는 위치에서, 축구공이 방향을 바꾸며 움직였다.
그리고 그것은 골키퍼와 수비수의 사이를 통과한다.
레비의 오프 더 볼에 순간 시선을 빼앗겼던 하노버의 수비수들. 그들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크로스가 향하자, 두 발을 땅바닥에 붙여 둔 채 고개와 눈만을 움직였다.
‘제발 닿자.’
패스를 보내어 두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사이, 꽤나 긴 거리를 질주한 베르나트가 왼발을 길게 뻗어 휑하니 빈공간 앞 그물에다 축구공을 밀어 넣는다.
곧바로 울려 퍼지는 휘슬.
삑-!! 삐?익!!
이것은 우리의 오늘 네 번째 득점을 알리는 것이자, 팀이 더 나아졌다는 것을 100% 입증하는 소리였다.
“으아아아아아-!!!”
“네 번째야!! 아직 더 많이 남았다고!!”
바이에른 뮌헨 이적 후 첫 득점에 환호하는 베르나트에게 뛰어들며, 나는 그의 연착륙을 듬뿍 축하해 주었다.
머리를 마구잡이로 헤집고 엉덩이를 걷어차 주는 것이 축하라면 말이지만.
그렇지만 오늘 우린, 같은 마음으로 움직인 축구를 몇 번이나 보여 줬다. 당연히 올 시즌 시작 후 가장 많은 횟수고, 앞으로도 차차 그것을 더 늘려 갈 것이다.
누군가는 너무 갑작스럽게 팀이 바뀌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애초부터 부족했던 건 시간이었으니, 그것이 주어지자 본래의 능력이 발휘되고 있는 것뿐이다.
물론.
‘아직 멀었어.’
이 작은 성공에, 절대로 들떠서는 안 될 것이다.
언제 또 무언가가, 우릴 끌어내리려고 할 거다.
그래서 난 진영으로 돌아가며 동료들에게 외쳤다.
“풀어지지 마!! 실점하면 안 돼!! 클린시트라고!!”
“이런! 너무 빡빡한 거 아냐?”
“그러게. 좀 웃으라고. 앙?”
“웃고 있잖아, 이 멍청아.”
“제기랄! 그게 웃는 거면, 우는 것도 행복한 얼굴이겠다.”
두 달이 지나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첫발을 내디뎠다는 것. 하지만 그것은 남들보다 그만큼 더 뒤처져 있다는 뜻도 된다.
그러니, 더 완벽하게 해야 할 수밖에.
‘안 그래요?’
하프라인을 넘어서며, 나는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서 있는 펩을 바라보았다.
***
·후반 45분
바이에른 뮌헨 5 : 0 하노버 96
축구란, 죽을 때까지 연구해도 풀리지 않을 미스터리다.
오늘의 경기를 보며, 펩 과르디올라는 이렇게 느꼈다.
“이봐-! 느긋하게 해!”
모처럼의 투입에 과한 의욕을 보이는 잔루카 가우디노를 진정시키며, 펩은 다시 피치 전체를 보았다.
몇몇 이들의 과한 의욕을 뺀다면, 딱히 지적할 만한 사항이 보이지 않는 하루다.
‘마치, 전혀 다른 팀이 된 것 같지 않은가?’
자신이 보고 있는 팀이 일주일 전 혹은 이주일 전의 팀과 똑같다곤 누구도 생각지 못할 것 같았다. 그만큼 완벽한 반전이었고, 그만큼 완벽한 내용이었다.
‘오히려 저들에게 고마워해야겠군.’
몸을 돌린 펩 과르디올라가 슬쩍 눈을 들어 위쪽을 바라본다. 지금 그의 시선이 닿는 곳은 알리안츠 아레나의 귀빈석이다.
본래 팀 경기력이 떨어지고 만족할 결과(승리)를 얻지 못하게 되면, 의심이 더해지고 참아 왔던 짜증이 폭발하기 마련이다.
스물이 훌쩍 넘는 축구 클럽의 스쿼드 내에서 희생하지 않는 사람은 없기에, 짜증이 늘게 되면 본인의 희생이 수고롭다고 생각해 잡음이 발생해 버린다.
실제 뮌헨도 그렇게 될 수도 있었다.
베테랑들에게도 낯선 쓰리백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스트레스와 경기력에 대한 주변의 비평. 이것들은 충분히 믿음을 훼손시키고 의심을 더해 줄 만한 요소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마리오 괴체의 엄청난 활약이 뮌헨에 계속해서 승리를 안겨다 줬고, 그 과정에서 선수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펩 과르디올라의 선택이 이번에도 옳았을 수도 있다고 말이다.
프로스포츠에서 승리가 가장 중요한 궁극적인 이유이며, 그것을 통해 펩 과르디올라는 시간을 조금 더 벌 수 있었다. 또 거기에, 본인의 실수를 지적해 준 믿을 수 있는 선수와의 대화 역시도 도움이 됐다.
‘하지만 결국, 저들이 가장 결정적이었지.’
삑-! 삐?익! 삐—-익!!
몸을 돌린 뒤쪽에서 휘슬 소리가 들려오고, 비로소 고개를 내린 펩 과르디올라가 정면을 바라보며 두 주먹을 불끈하고 쥐어 보인다.
그런 뒤에는 하프라인 쪽으로 걸어가, 적장인 타이푼 코르쿠트와 포옹을 나눴다.
“한 방 먹었군요.”
“하하. 운이 좋았죠.”
“다음엔 다를 겁니다.”
“기대하겠습니다.”
“네. 그럼.”
포옹 후 한차례 선수단을 향해 박수를 보낸 펩 과르디올라가 복도로 들어서고, 그는 어느새 마중을 나온 카를-하인츠 루메니게를 만나게 된다.
“귀빈석에 앉아 있던 것 아닙니까?”
“아닐세. 난 저들과 같지 않아.”
“하하.”
루메니게가 자신의 편이라는 것을 상징적인 행동으로 보여 준 것에 대해, 펩 과르디올라가 작은 감사의 표현을 전한다.
“그리고 저들에게도요.”
“응?”
“저들이 지난날 클럽하우스를 찾아준 덕분에, 선수들이 저나 서로가 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죠.”
“…….”
“그러니, 어찌 고맙지 않겠습니까?”
세상의 모든 축구 감독들은 하나의 생각으로 움직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야 선수 개인이 주변의 잡음에 신경을 끄고, 본인의 플레이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료들이 나와 같은 생각으로 움직여 준다는 믿음이, 스스로의 기량을 100% 발휘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축구는 때론, 무척 감정적이 된다.
“저들이 우리에게 믿음을 줬습니다. 밖이 아닌 내부의 적과 맞서 싸우려면, 서로를 믿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고요. 아마 서로 그런 대화를 주고받지는 않았겠지만, 그들의 본능이 그렇게 이끌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저들은 일류니까요.”
“……미안하군.”
“당신이 미안할 것은 없습니다. 다만, 조금 지치는군요. 그럼. 나중에 또 뵙죠.”
펩이 떠난 후, 그의 지쳤다는 말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던 루메니게가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선수들을 맞이한다.
‘아직, 거리는 많이 남았어.’
그리고 그 역시, 이제 겨우 첫발을 내디딘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