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435)
434화
2014년 11월 10일. 81479 뮌헨, 독일. 카루소베크 1C.
11라운드 경기 후 주어진 사흘의 휴가 동안, 난 철저히 아영이를 위해 시간을 보냈다. 그녀가 가고 싶어 했던 곳을 찾고, 행복한 순간들을 서로의 가슴속에 담았다.
덕분인지 아영이는 무척 행복해 보였고, 집으로 돌아온 지금은 콧노래를 부르며 쇼핑해 온 것들을 정리하고 있다.
“응? 벌써 다 했어?”
“아니. 내일 할래.”
빠르게 옷을 탈의하며 침대로 뛰어 든 그녀가 이불 속으로 들어가고, 난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내려 두며 뒤로 다가가 손을 움직였다.
“으응- 진짜?”
“응. 진짜.”
잠시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고.
“나 다음 주는 런던에 있을 것 같아.”
“런던? 왜?”
“크리스티나가 잉글랜드에 매장을 오픈할 거래. 부탁할 것도 있고, 같이 가 달라고 하더라.”
“그래? 얼마나 있는데?”
“으음- 한 일주일?”
“일주일이나?”
“그렇지? 나도 조금 그래서 고민이긴 해.”
“…….”
아영이 없이 일주일을 보내는 건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번에도 나는 착한 남자 친구가 되어 볼 생각이다.
“다녀와.”
“진짜? 그래도 돼?”
“응. 외롭긴 할 건데, 버텨 보지 뭐.”
너무나도 간단하게 승낙한 것이 놀라웠는지, 처음엔 놀라 하던 아영이는 금세 밝게 웃으며 나를 끌어안았다.
“미안해애- 최대한 빨리 올게.”
“일정에 맞춰야지. 내 걱정 말고 다녀와.”
“응. 대신…….”
“??”
“자기 좋아하는 속옷 많이 사 올게.”
“뭐?! 내가 그래??”
굳이 귓속말로 속삭이듯 말한 아영이를 살짝 밀어내며, 미간을 잔뜩 찌푸린 내가 다시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설마 몰랐느냐며, 최근에 가졌던 잠자리 중 몇 가지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맞는 것도 같고.”
“바보야. 내 말 맞지?”
“네, 네. 맞습니다, 맞아요.”
미소 짓는 아영이와 나는 다시 꼭 끌어안았고, 음식을 가져온 배달부가 벨을 누르고 나서야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아영이가 주방으로 향하는 사이, 현관을 나선 나는 대문에서 바이크를 타고 오는 배달부를 기다렸다.
오늘의 저녁 메뉴는 정통 독일식이다.
끼-익.
“좋은 저녁이에요, 한스.”
“하하. 좋은 저녁입니다. 당신의 주문이기에, 이런저런 것들을 조금 더 챙겨 왔죠.”
“이런! 안 그러셔도 되는데.”
“바이언의 스타인데, 당연한 것 아닌가요?”
“잘 먹을게요.”
“응? 잔돈은요?”
“그냥 가지세요.”
꽤나 후했던 팁에 믿을 수 있는 배달부인 한스 율(Hans Jule)이 고맙다며 크게 목소리를 높였다. 난 뒤를 돌아 한 번 더 그에게 손을 흔들었고, 그리곤 곧바로 집 안으로 들어섰다.
한스는 이곳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서 독일 정통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네 명의 자녀를 둔 뮌헨 토박이다.
그리고 아영이와 나는 한스의 식당에서 판매하는 아인스바인(Einsbein)과 크되넬(Kdonel)을 좋아한다.
“자기-! 밥 왔어어-! 어디서 먹어-?”
“거시일-!! 지금 소시지 데워-!!”
나중에 거실로 올 아영이의 손에 맥주가 들려 있을 거라고 장담한다. 나도 오늘은 조금 마실 생각인데, 한두 잔 정도라면 내일 훈련에도 별다른 문제는 없을 거다.
거실 테이블에 놓아둔 음식 봉투를 열어, 식기에 있던 음식을 아영이가 가져온 접시에다 옮겨 담는다.
예상대로 아영이는 대략 한 잔에 1,000cc 정도 들어가는 거대한 파울라너 잔 하나를 가져왔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맥주 회사인 파울라너 역시, 우리 뮌헨과 떼어 놓으려야 떼 놓을 수 없는 관계다.
회사의 창립도 1634년 바로 이곳에서 이뤄졌고, 지금은 옥토페스트의 터줏대감이자 우리 뮌헨의 가장 헌신적인 스폰서 중에 하나다.
그래서 뮌헨과 계약을 하게 되면, 몇 주 후 파울라너가 보내어 온 각종 제품들과 맥주를 잔뜩 받게 된다. 지금 아영이가 든 저 거대한 잔도, 작년 여름에 받았던 거다.
당시엔 지금처럼 자주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술을 잘 먹고 또 좋아하는 애인을 두다 보니 이런 풍경도 자연스러워졌다.
물론 내 앞엔 평범한 잔이 놓였다.
“음– 이 맛이야!”
“맛있어?”
“응. 너어무 맛있어.”
아인스바인은 소금에 절이거나 훈제한 돼지 정강이를 각종 야채와 향신료를 넣어 부드럽게 삶은 요리다.
족발과 무척 유사한 음식인데, 잘 삶는 가게일수록 돼지 특유의 잡내와 느끼한 지방기가 적고 육질이 부드럽다는 것 역시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곳 바이에른주(州)는 슈바인스학세를 더 선호하지만, 개인적으론 우리 입맛엔 이쪽이 더 맞다.
“감자도 줘?”
“응! 두 개!”
“접시 줘 봐.”
접시를 건넨 아영이가 맥주를 목으로 넘기곤, 40대 아저씨나 할 법한 구수한 추임새를 뒤에 가져다 붙였다. 그것을 보며 웃었던 난, 감자 요리인 크뇌델을 집게로 집어 들었다.
“자긴 진짜 술 좋아해.”
“유전이지 뭐.”
“가족들은 다 건강하고?”
“전부 건강하거든?”
딱히 취할 때까지 마시지는 않기에, 난 술에 대한 걱정을 잔소리의 영역으로는 발전시키지 않고 있었다.
요즘 들어서는 본인도 술을 조금 줄이려는 것 같았고, 그래서 이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을 때 오히려 내가 먼저 술을 마시자고 제안을 하고 있다.
사람이란, 하고 싶은 건 하고 살아야 하니까.
특별히 나쁜 짓도 아니지 않나?
“아까 집으로 올 때 말이야.”
“응? 아까?”
“응. 무슨 이야기였어?”
“아- 그거?”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나는 차 안에서 스피커폰으로 리베리와 통화를 했다.
말했었지만 리베리의 독일어는 바람 빠지는 소리도 나고 발음이 무척 불분명하여, 자주 대화를 나누는 관계가 아니라면 독일인들도 가끔 알아듣지 못한다.
게다가 아까 리베리의 목소리는 살짝 상기되어 있었기에, 아영이가 알아듣긴 어려웠을 거다.
“돼지? 뭐 그런 이야기 하지 않았어?”
“푸흡-!!”
“어머-! 자기! 있어 봐. 내가 닦을 거 가져올게.”
“……응.”
다행히도 뿜어낸 게 물이라서 망정이지, 맥주였다면 조금 귀찮아질 뻔했다.
난 아영이가 가져온 행주로 물이 닿은 곳을 닦아 내며, 리베리와 나누었던 대화의 내용을 전해 줬다.
“바스티의 이야기였어.”
“응? 바스티? 근데 왜 돼지가 나왔어?”
“돼지가 독일어로 뭐지, 자기야?”
“……아- Das Schwein!”
“맞았어.”
과거 계급 제도가 존재하던 시절, 수많은 나라들의 평범한 사람들은 그들의 이름을 삶 속에서 찾곤 했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 대나무밭 주변에서 살던 사람들이 ‘다케다(竹田)’, 시장 주변에서 살던 사람들이 ‘이치바(市場)’와 같은 성씨를 가져갔고, 중국 역시 특정 산과 강에서 성씨를 가져왔다.
그리고 독일 역시 마찬가지인데, 바스티의 성인 슈바인슈타이거는 본래 ‘돼지를 사육하는 사람’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리베리의 불분명한 발음 속에서 슈바인만을 알아들었던 아영이가, 돼지라고 오해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또 무슨 문제라도 생겼어?
또라니.
하긴 올 시즌 우리는 아영이도 걱정할 만큼 다사다난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아니, 그건 아니고. 복귀를 했대.”
“응?”
“오늘 프랑크가 잠깐 볼일이 있어 클럽하우스에 들렸는데, 바스티가 훈련을 하고 있었나 봐.”
“오-! 그거 잘됐다!”
“하하. 그러게…….”
“복귀했다니까 좋은 거 아니야?”
“그게 맞기는 한데, 끄응.”
“??”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잠깐 고민했던 나는, 그냥 최대한 이야기를 풀어 말해 주기로 했다.
본래 바스티의 복귀 시점이 1월이었다는 것부터 시작하여, 조기 복귀의 결과가 좋지는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일반적으로라면 부상당한 선수가 일찍 돌아왔으니 고무적인 것이 맞지만, 바스티를 포함해 티아고/하비 모두 작년 볼파르트 클리닉에서 조기 복귀를 결정지은 것이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의료진의 우수함은 ‘조기 복귀’가 아닌 ‘부상 방지’와 ‘부상 완치’에서 온다.
월드컵 때문에 세 사람 모두 무리를 한 것도 맞고 이 점은 볼파르트 클리닉에 있어 변명거리가 될 수 있지만, 당장은 조기 복귀가 무작정 달갑지만은 않다.
아직 시즌 초반인 지금 차라리 확실히 쉬고, 가장 중요한 3월 이후로 몸이 건강해 주는 것이 최고다.
“음- 어렵다.”
“응. 근데, 자기까지 스트레스 받을 일은 아니야. 얼굴 피자. 예쁜 얼굴에 주름 생겨.”
“그래두 자기가 신경 쓰이잖아?”
“나? 안 쓰여. 밖의 일은 밖의 일이고, 집에 오면 집이 제일 중요한 거고.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고 밥 먹자. 응?”
8, 9월 아영이에게 너무 징징거리고 기대 왔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지금은 내가 그녀를 위해 단단해져야 할 때였다.
그리고 이런 마음가짐은, 그라운드로 돌아가 뮌헨의 선수가 되었을 때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이건 무척 좋은 일이다.
“아하하-! 아하하하하-!”
“하하하하.”
노트북에 받아두었던 한국의 예능을 함께 시청하며, 나는 평화로웠던 하루를 행복하게 마감했다.
내일 걱정은 내일.
그저, 오늘에 충실할 뿐이다.
***
2014년 11월 11일. 81547 뮌헨, 독일. 재베너 슈트라세 51-57. 바이에른 뮌헨 서비스 센터 및 훈련시설. 퍼포먼스 센터, 마사지실.
지난 사흘 간단한 새벽 훈련만을 개인적으로 해 왔던 나는,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훈련의 강도를 높여 갔다.
A매치 기간이 끝나는 18일부터 동료들이 하나둘 클럽에 합류할 것이기에, 그때까지 일주일 동안 최대한 컨디션을 끌어올릴 생각이다.
오늘도 가장 먼저 아침에 출근하여 마사지를 받고 있을 때, 문이 열리고 반가운 얼굴이 등장했다.
“모르겐, 바스티. 이젠 괜찮은 거야?”
“모르겐. 괜찮은 것 같아.”
“Ei-Jei! 괜찮은 것 같으면 안 되지. 네가 느끼기에 100% 괜찮아야 한다고. 무슨 말인지 알아?”
“보자마자 잔소리야?”
“네가 이게 그립다고 들어서 말이야.”
“하-! 퍽이나.”
바스티는 여전히 무릎에 보호대를 차고 있었다. 문제는 저것이 부상 때문인지, 아니면 이번 부상으로 신중한 마음이 생겼기 때문인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확실한 건 선수 본인은 통증을 느끼고 있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무모할 정도의 바보가 아닌 이상 아픈데도 뛸 사람은 없을 것이고, 하물며 바스티 정도의 베테랑이라면 몸 관리에 있어 의심할 수준 역시 아니다.
다만 피치 위에서 특정 동작을 수행했을 때의 통증이 후유증 때문인지, 아니면 아직 부상이 덜 나았기 때문인지를 정확히 판별해 내야 한다.
그게 바로 의료진의 몫이다.
“박사님은 뭐라고 하셔?”
“이런! 정말 보자마자 날 괴롭히는구나?”
“그러지 말고, 바스티. 뭐라고 하시던데?”
“하아~ 일단은 20분이 한계야.”
“그래? 훈련은?”
“뭐, 그건 적당한 정도라면.”
조금 애매한 대답이기는 했지만, 바스티의 성격에 이 정도면 많이 대답해 줬다 싶어 이쯤에서 만족하기로 한다.
괜히 말을 더 걸었다간, 폭발해 버릴 테니까.
그래서 난 입을 다물었다.
드르르륵-!!
“응?”
“모르겐-!!!”
“오-!”
그렇게 잠깐 있으니, 곧이어 베르나르두가 등장했다.
“나는. 오늘. 독일어만 할 겁니다.”
“진짜? 그거 기특하네.”
“당연하지!! 음- 나는. 오늘. 독일어. 잘합니다.”
“큭큭큭큭. 병신아, 이리 와서 앉아.”
“……Bitte(뭐)?”
“Herkommen(이리 와)!! 이건 알아들어?”
“아-! Ja! Ja! 무, 물론입니다!”
굳이 힘주어 말할 필요가 없다고 해도, 베르나르두는 어색한 독일어 때문에 말하는 것 자체까지도 낯설게 느끼는 사람처럼 보인다.
“오늘. 나. 밥. 먹습니다.”
“밥? 그럼 안 먹을랬어?”
“?? 자, 자, 잠깐!”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만지작거리는 베르나르두.
잠시 뒤 녀석은 알았다는 듯 이마를 탁 두들겼다.
“당쉬인↗? 오늘↘ 나랑. 밥! 먹숩니다. Verstehn(이해합니까)↗? 당신! 그리고 나! 둘이!”
“…….”
차라리 엉터리로 말해 줬으면 지적이라도 할 수 있어서 좋았을 베르나르두의 초급 독일어는, 내 관자놀이를 욱씬거리게 만들었고 다른 이들에겐 웃음을 주었다.
팀 내 피지오들과 바스티가 큭큭거리며 웃기 시작하고, 몇 개의 문장을 완성한 것이 만족스러웠던 베르나르두는 의기양양해하며 콧김을 뿜어 댔다.
하여간에 저 바보 녀석.
‘휴우~ 조용할 날이 없어.’
홀로 조용히 새벽에 운동을 하고 돌아갔던 지난 사흘이, 빠르게도 그리워지는 나였다.
***
2014년 11월 16일. 81547 뮌헨, 독일. 재배너 슈트라세 51-57. 바이에른 뮌헨 서비스 센터 및 훈련시설. 퍼포먼스 센터, 영상분석실.
이번 A매치 주간이 시작된 다음 날, 펩은 라는 메시지를 남겨 둔 채 독일을 떠났었다.
외유의 목적은 스카우트를 겸한 A매치 관람 등이었고, 바람을 쐰 것이 좋았는지 클럽하우스에서 다시 만난 펩의 표정은 무척 온화해 보였다.
역시 이 남자에게도, 휴식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일단 당장은 포백일 걸세. 선수들이 돌아오고 발을 맞춰 볼 때까진, 굳이 무리하지 않을 생각이야.”
“네.”
“그렇다고 너무 늦장을 부릴 생각도 없어. 12월 6일 레버쿠젠 전엔, 센터백으로 나서는 자네를 보고 싶군.”
“네. 그것도 좋아요.”
“후후. 그럼, 일단 이것을 좀 보게나.”
딸깍-
“…….”
펩이 지금 내게 보여 주고 있는 영상은 ‘라 살리다 라볼피아나(La Salia Lavolpiana)’에 관한 다큐멘터리였다. 꽤나 오래전의 것이고, 또 언어 역시 스페인어다.
그래서 난 나레이션의 해석은 펩에게 맡기기로 했고, 화면에 띄워진 영상을 보는 것에만 집중했다.
이 선택은 무척 탁월했는데, 곁에 앉은 펩이 실시간으로 내게 내용을 전해 줬다.
“라볼피아나의 핵심은 수적 우위야. 포백 시스템에서 미드필드를 끌어내려 쓰리백으로 만들게 되면, 풀백을 전방으로 쉽게 보낼 수 있어 전방에 더 많은 선수를 놓아둘 수 있지.”
“네. 그건 저도 알아요.”
“그렇겠지.”
딸깍-
“응?”
이제 화면이 바뀌어, FC 바르셀로나의 유니폼이 보이기 시작했다. 잠깐 잡힌 리오넬 메시의 모습으로 미루어 보아, 최근은 아닌 것 같다.
“이건 2008/09 시즌의 FC 바르셀로나야. 나는 당시 부스케츠에게 라볼피아나를 맡겼지. 지금부터 잠깐, 화면에 집중하게나. 나중에 질문을 던질 거야.”
“네.”
사실 내가 펩의 전술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 역시 내가 많은 것을 이해한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이렇게 기초수업과도 같은 내용을 전달받는 건, 펩이 현재 뮌헨에서 쓰리백을 사용하면서 바라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화면 속 FC 바르셀로네의 후방빌드업은 무척이나 매끄러웠고, 그와 같은 전술을 사용한 목적과 이유를 선수들이 십분 보여 주었다.
부스케츠는 능숙하게 볼을 지켜 내며 빌드업을 다음 단계로 진행시켰고, 가끔 압박이 거세어지면 골키퍼에게 볼을 돌려 측면으로 볼을 전개하도록 만들었다.
최종 수비라인이 쓰리백을 구축하게 되면, 라인이 높아진 풀백은 자주 자유로운 상황에 놓인다.
“왜지?”
“그야, 대부분의 클럽이 4-3-3의 변형을 쓰니까요.”
“맞았어. 바로 거기부터 출발이야.”
“?”
펩이 본격적으로 도입해 대(大)유행을 이끌어 낸 라볼피아나 방식의 빌드업은, 당시 유행하고 있던 전술과 맞물리며 커다란 후폭풍을 불러일으켰다.
4-1-4-1이나 4-2-3-1은 200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도 축구계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전술인데, 이 두 가지 전술의 기원은 4-3-3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역삼각형 4-3-3에서 중앙 미드필드 둘을 끌어 올리면 4-1-4-1이 되고, 정삼각형 형태의 4-3-3에서 중앙 미드필드를 10번(AM)으로 올리면 4-2-3-1이 되는 식이다.
또 여기에서 중요한 부분은 원형 전술의 약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페널티박스 안에 배치되던 세 명의 공격수 중 사이드의 두 명을 윙으로 보냈다는 거다.
그로 인해 수비 가담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시킬 수 있고, 기존 4-3-3의 약점인 측면 두께의 부족 역시도 만회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풀백과 윙의 사이 공간이 빈다는 사실은 변치 않았고, 펩은 거기에서 출발한 영감을 부여잡아 리카르도 라 볼페의 축구를 FC 바르셀로나에 대입했다.
“하지만 자넨 중앙 미드필드가 아니야. 센터백이지.”
“맨유 전에서도 그랬죠.”
“그래. 하지만 당시는 조금 달랐어. 그때 자네는 풀백으로 출전했고, 하비가 위로 올라갔을 때 중앙을 커버했지. 또 이후 레알 마드리드 경기도 마찬가지야.”
확실히, 그때의 나는 쓰리백 중 측면에 섰지 중앙에서 뛰지는 않았었다.
“나는 맨유와의 경기에서 실점하지 않기 위해 자네를 최후방으로 보냈지,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 경기에서는 그들의 허를 찌르고 자네를 리베로로 만들기 위해 최후방으로 보냈어.”
“……이번에도 의미가 있다는 말이군요.”
“그래. 그편이 자네도 이해하기 더 쉬울 테니까.”
펩은 내게, 쓰리백 시스템하의 중앙 센터백이 된다는 것은 피치 전체를 컨트롤하는 거라고 말해 주었다.
“컨트롤이요?”
“그래.”
얼마의 점유율을 가져갈 것인지. 어떻게 빌드업을 할 것인지. 또 어떠한 방향으로 공격을 전개하며, 더 나아가 우리가 어떤 축구를 선보일지가 결정이 될 거랬다.
데이비드가 그렇게 대단한 임무를 하고 있었던가?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그 자체로 받아들였어. 하지만 그것이면 충분했지. 나는 그가 대표팀에서 미드필드로 뛴다는 사실과 그의 장점들이 남은 10명의 잠재력을 발휘하기 가장 적합한 포지션이라고 봤지.”
쉽게 말해, 데이비드 알라바는 펩의 지시사항을 알아듣고 그것을 수행하는 일에 집중했다는 의미였다.
다만 펩은 거기에 알라바의 장점을 전술과 접목시켜, 팀 전체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했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장점을 파악하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나의 장점 말이다.
“아니, 그렇지 않아.”
“네??”
하지만 펩은 앞으로 나의 임무를 이렇게 말했다.
“우선 첫째, 아군의 모든 것을 파악하게. 이건 시즌 초반에도 내가 말했던 이야기지. 다만 당시의 사정으론 그것이 힘들 것 같아서 중단하자고 한 이야기야.”
“네. 저도 기억해요.”
왜 우수한 쿼터백은 동료들의 걸음걸이만 보고도 컨디션을 파악한다고 말했었지 않나?
그러니까 이건, 팀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내 수족이 되어 줘야 하니까.
“그리고 두 번째.”
“?”
“상대를 전부 알아야 해. 이것 역시, 하고 있던 일이야.”
순간적으로 잠깐 소름이 돋았다.
알다시피, 펩은 이번 시즌부터 내게 코칭스태프들이 나눈 대화의 내용과 전술 노트 등을 전달해 왔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그것을 새로운 전술에 빨리 적응하도록 만들기 위한 펩 나름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건 꽤 도움이 됐다.
그런데.
“잠깐, 질문 하나만 할게요.”
“얼마든지.”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된 나는, 펩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당신은 무슨 축구를 하고 싶은 거예요?”
그리고 난 그 속에서 어떤 선수인 거죠?
하지만, 펩은 그냥 피식하고 웃을 뿐이었다.
마치, 먼 미래의 일이라는 것처럼.
역시나 이 남자에겐, 처음부터 전부 계획이 있었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