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445)
444화
·전반 19분
크루즈 아줄 0 : 2 바이에른 뮌헨
확연한 기량의 차이가 느껴지는 크루즈 아줄을 상대로, 바이에른 뮌헨은 무난하게 승기를 잡아 가는 중이다.
그리고 지금 뮌헨의 두 번째 득점이 터진 순간, 펩 과르디올라는 벤치에 앉은 상태 그대로 불끈 쥔 두 주먹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유별난 기쁨을 표현했다.
득점도 득점이었지만, 그 과정이 무척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이들은 아르연 로번이 본인의 장기를 다시 한번 발휘했다 생각하겠지만, 펩 과르디올라에는 같은 장면이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탁월했던 후방 빌드업에 이어, 중원지역에서 패스를 전달받은 김다온은 총 네 차례의 완벽한 선택으로 득점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
슈바인슈타이거의 패스를 받을 때 곧장 몸을 정면으로 둔 것. 곧바로 토마스 뮐러에게 패스를 보내는 대신 베르나르두 실바의 침투가 충분히 이뤄질 때까지 드리블을 택한 것.
이 두 가지의 선택이 크루즈 아줄의 압박과 최종 수비라인을 무너뜨렸다.
이후 뮐러에게 패스를 보낸 후 멈춰 있지 않고 곧바로 메디아푼타(Mediapunta/AM)의 오른쪽 앞으로 뛰어간 것과 로번에게 패스 후 다시 사이드라인을 따라 움직인 것 역시 훌륭했다.
이러한 과정이 있었기에 아르연 로번이 1:1 기회를 잡을 수 있었고, 슈팅으로도 이어 간 것이다.
물론 아르연 로번의 개인 기량 역시 칭찬해야 옳았다. 저런 플레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펩 과르디올라는 김다온이 ‘얼마나 동료를 잘 이해하는지’를 볼 수 있었다는 게 가장 기뻤다.
“저런 플레이는 절대 주목받지 못해. 하지만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저것의 의미를 알아야 해.”
“그래. 공간을 만들었지.”
“아니, 지배했어. 그것도 저기 저 하프라인 위에서부터, 마지막 그가 서 있던 곳 전체를 말이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2013/14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그를 ‘공간지배자(Raumlineal)’라 정의한 후, 펩 과르디올라가 김다온을 바라보는 방식은 늘 한결같았다.
그는 공간을 만들거나 혹은 피치 위의 움직임으로 인해 발생하는 공간으로 뛰어들어, 그 영역에 있는 이들의 플레이를 강제시켰다.
최근엔 그것이 수비적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았고, 최초 공격으로 주목을 받은 김다온은 이 때문에 오히려 불이익을 받고 있다.
“그는 과소평가됐어.”
1억 유로의 평가를 얻었던 월드컵 직후만큼은 아니지만, 김다온은 여전히 8,100만 유로(약 1,080억 원)의 몸값을 기록하며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수비수로 남아 있다.
그런 김다온을 두고, 펩 과르디올라는 그에게 공정한 잣대가 대어져 있지 않다고 말을 했다.
“수비수. 피부색. 저 친구가 저평가를 받을 이유는 얼마든지 있어. 하지만 지금 이건, 사람들이 축구를 보는 시각이 너무 편향되어 있기 때문이야.”
두 번째 골에 잔뜩 고무가 된 펩 과르디올라는 주변인들이 듣는 것과는 상관없이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내뱉었다.
바로 곁에 있는 도메네크도 그 말을 다 이해할 수 없었고, 결국 그는 듣는 시늉만을 하기로 하며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거나 하는 행동을 보여 줬다.
이른바, ‘펩 모드(Pep Mode)’였기 때문이다.
“풀백, 센터백, 미드필드. 이젠 그런 단어들은 없어져야만 해. 우리는 지금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어. 새로운 축구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이제 더는 기존과 같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 않아. 그러니 새로운 단어를 가져다 붙이는 게 옳아. 메디오센트로,메디아푼타,메짤라,인테리오,엑스트레모,라떼랄,크랙메디아티코! ······.”
띄어쓰기와 쉼표가 사라진 펩의 목소리는 이러다 숨이 막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빠르게 내뱉어지고 있다.
***
·후반 00분
크루즈 아줄 0 : 3 바이에른 뮌헨
【“바이에른 뮌헨의 선수 교체입니다. 2번. 다온이 교체되어 나오고, 20번. 제바스티안 로데가······.”】
‘······이런. 벌써 끝이라고?’
생각보다 더욱 빨랐던 교체에, 제임스 그래험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바이에른 뮌헨이 최근 힘든 일정을 소화 중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최소한 60~70분 정도는 김다온을 피치에 놓아둘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응? 뭔가, 불편하신 점이라도?”
“아? 아- 아닙니다. 무슨 말씀을 하고 계셨죠?”
제임스 그래험은 잠깐, 축구에서 흥미를 끄고 FIFA 관계자의 이야기에 조금 집중하기로 한다.
“네. 2026 월드컵 개최지를 선정하는 것에 관해······.”
2022년 아시아(카타르) 개최가 확정된 지금, 2026년에 월드컵 개최가 가능한 지역은 순번 마일리지가 높은 순서대로 아메리카, 아프리카, 그리고 유럽이었다.
그리고 이미 오래전부터, 이들 사이의 경쟁은 불이 붙은 상태였다.
FIFA는 2010년 2018/2022 FIFA 월드컵 개최지를 발표한 후, 2017~18년 사이에 2026년 월드컵 개최지를 발표하겠다고 못을 박았다.
이 말은 월드컵 개최지 선정에 영향력이 있는 이들에게는 곧, 막대한 돈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영국을 포함 유럽 전반의 FIFA 관계자와 관계가 깊은 제임스 그래험 역시, 그런 사람 중에 하나다.
“당신이 만약 아프리카를 지지해 준다면, 아메리카 대륙과의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 모로코는, 월드컵을 개최할 충분한 여건이 됩니다.”
“······왕의 생각인 겁니까?”
“네. 무함마드 6세는 아랍의 봄을 계기로 얻게 된 대중적인 이미지를 월드컵 개최를 통해 공고히 하시길 원합니다. 그리고 물론, 당신의 지지에 왕께서는 감사를 표할 겁니다.”
왕의 감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알았던 제임스 그래험은,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어차피 상대도 당장의 답변을 발한 것은 아니었기에, 고맙다는 말을 남기곤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요청하라며 직원 하나를 주변에 배치시켰다.
자유를 얻게 된 제임스 그래험은 다시 피치를 내려다보지만, 이미 그의 흥미는 크게 식어 버린 상황이다.
‘재미없군. 정말 재미없어.’
약간은 심통 난 얼굴이 된 제임스 그래험의 표정은, 바이에른 뮌헨이 빠르게 득점을 추가한 이후에도 바뀌지 않았다.
이미 그에게 이 경기는, 더 볼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
.
·경기 결과(2014 FIFA 클럽월드컵 준결승)
크루즈 아줄 0 : 5 바이에른 뮌헨
[골] 토마스 뮐러 : 전반 16분(베르나르두 실바), 후반 02분(아르연 로번)아르연 로번 : 전반 19분(김다온)
제롬 보아텡 : 전반 41분(프랑크 리베리)
후안 베르나트 : 후반 31분
김다온 ? 46분 출전(1어시스트)
***
2014년 12월 21일. 81547 뮌헨, 독일. 재베너 슈트라세 51-57. 바이에른 뮌헨 서비스 센터 및 훈련시설. 프런트 오피스, 회장실.
강행군으로 인한 우려 속에서 시작되었던 전날 경기에서 5:0의 대승전보가 들려오고, 한층 가벼운 마음으로 이튿날의 업무를 시작한 루메니게가 미팅을 주도한다.
이번 겨울 이적 시장 뮌헨의 주요 목표는 ‘내부단속’이었고, 그러는 한편 두 명의 선수를 이적/임대시킬 계획 역시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중요한 건, 클럽의 재계약 요청을 끊임없이 거부하고 있는 세 남자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하나, 그 전망은 딱히 밝지 않다.
“그의 여자 친구가 독일은 원치 않아요.”
“설득은 해 봤나?”
“네. 무려 세 번이나요. 더 귀찮게 하면, 바스티에게 이야기를 하겠다고 하더군요.”
“······.”
월드컵이 펼쳐지기 직전, 슈바인슈타이거는 8년 가까이 교제한 사라 브란트너와 이별을 택했다.
둘의 관계는 꽤 오래전부터 삐걱거렸다.
안정적인 삶을 원했던 사라 브란트너와는 달리, 슈바인슈타이거는 그녀와 함께할 확신을 얻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이에 대해, 루메니게도 조언을 했던 적이 있었다.
사라 브란트너는 무척 헌신적인 여성으로, 뮌헨의 관계자들로부터도 높은 평가를 받았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슈바인슈타이거는 그녀에게 질린 것처럼 보였고, 2013년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계기로 둘은 일주일이 멀다 하고 크고 작은 다툼을 가졌다.
그리고 월드컵 이후 휴가 기간 이비자섬에서 가진 자신의 생일 파티에서, 아나 이바노비치(Ana Ivanovic)가 사라의 자리를 대신하면서 한층 의문이 증폭됐다.
그러던 지난 9월, 김다온으로부터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지목당한 슈바인슈타이거가 애정 어린 제스처와 함께 다음 대상으로 이바노비치를 지목했다.
이후 정확히 일주일.
바이에른 뮌헨은 슈바인슈타이거가 이바노비치와 깊은 관계라는 것을 알아내는 한편, 그녀가 독일에서의 삶에 회의적이라는 사실 역시도 알게 되었다.
“이바노비치는 지금 런던에 머물고 있어요.”
“······.”
“윔블던에 참석하기도 쉽고, 영국에 이미 그녀의 개인 코치가 있기 때문이죠.”
“······.”
슈바인슈타이거의 계약 만료는 2017년 5월 31일이다.
올 시즌이 종료되면 2년밖에 남지 않는다.
이후 1년을 더 설득을 할 수야 있겠지만, 돌아가는 상황으로 미루어 보어 내년 여름 슈바인슈타이거가 뮌헨을 떠나려고 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대체자를 물색해야 할까요?”
“누구? 바스티를 대체할 수 있는 선수를 그리 쉽게 영입할 수 있을 거라고 보나?”
“······.”
사실 루메니게는 제바스티안 로데를 ‘제2의 슈바인슈타이거’로 점찍으며 영입을 했지만, 펩 과르디올라는 그의 잠재력에 대해 [“지금이 최대치.”]라며 선을 그었다.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늦고, 2달 정도 지켜본 결과 타고난 재능도 평균적이라고 확답을 해 버린 것이다.
처음 루메니게는 ‘펩 과르디올라의 기준이 너무 높은 것뿐’이라고 생각을 했었지만, 이후 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을 고쳐먹었다.
무려 2년이나 지켜보고 영입한 선수였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틀렸다고 말이다.
그렇다고 기대를 완전히 놓아 버리지는 않겠지만, 슈바인슈타이거가 팀을 떠날 경우는 분명 대비해야 했다.
“제바스티안, 잔루카. 그들이 성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몇 년이나 걸릴 일이야. 휴우- 본인이 매번 같은 이야기만 하니, 그게 더 골치 아프군.”
시간상 슈바인슈타이거의 문제에만 매달릴 수 없었던 루메니게가 일단 이쯤에서 이야기를 정리하기로 한다.
지난 시즌이 끝난 이후 계약 기간이 끝난 에이전시를 떠나 ‘BS Family Company’라는 회사를 설립한 슈바인슈타이거는 본인이 직접 에이전시의 업무까지도 맡고 있다.
세금이나 잡다한 문제의 처리야, 사무실을 구해 직원을 고용하면 끝나는 일이기에 큰 문제는 아니었을 거다.
처음엔 그저 돈을 아끼려 한다고만 생각을 했던 루메니게였지만, 지금은 그것 모두 하나의 계획이라 생각하게 됐다.
여기에서 유일한 의문점은, 본래 슈바인슈타이거라는 남자가 그렇게까지 매정하고 또 계획적이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조종당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군.’
미녀의 가면을 뒤집어쓴 이기적인 존재로부터 가스라이팅 당하는 사례가 드물지만은 않은 축구계에서, 루메니게는 슈바인슈타이거가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길 바라고 있었다.
***
2014년 12월 22일. 40000 마라케시, 모로코. 오우하 세이디 브라히마 1. 로즈 가든 리조트.
현재 리조트에서의 숙소 배정은 사생활.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해서는 낯부끄럽지 않은 성생활을 위해 하나의 최대한의 거리를 두고 배정이 되었다.
대신, 가족이나 연인이 동반하지 않은 이들을 하나의 동으로 밀어 넣었다.
물론, 1인 1실의 원칙은 지켜졌다.
“······.”
‘······자나?’
과거에는 경기 전날의 성관계가 엄격히 금지되기도 했지만, 근래에 와서는 오히려 성욕을 풀어주는 것이 경기력에 도움이 된다는 추세로 흘러가고 있다.
단, 하나.
남자가 최대한 힘을 쓰지 않도록 ‘특정한 체위’를 요구하고 있기는 했다.
어쩌다 보니 분위기가 달아올라 뜨거운 시간을 가진 이후인 지금, 아영이가 완전히 곯아떨어져 버린 이유다. 딱히 할 생각은 없었지만, 정말 우연히 그랬다.
“자기, 자?”
“······.”
푹 잠들지 않으면 잠귀가 밝은 아영이이기에, 대답이 없는 것을 확인한 나는 팔베개를 대신할 것을 그녀의 머리 아래에 놓아두며 침대를 빠져나왔다.
그러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곤 조심스레 밖으로 나가, 건물 주변을 산책했다.
현재 이 건물에 묵고 있는 사람은 총 네 사람으로, 각자 연인을 동반했다.
“응?”
그렇게 조금 더 수영장이 있는 곳까지 걷자, 불이 꺼진 사이드 바에 앉아 있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바스티?”
“?”
“이 시간에 안 자고 뭐 해?”
“하하. 그러는 넌?”
“······뭐, 그것도 옳은 말이네.”
“큭큭큭큭.”
드르륵-
웃으면서 의자 하나를 밀어낸 바스티가 내게 앉으라는 제스처를 취해 보였다.
“이리 와.”
“어쩐지 강아지가 된 것 같지만, 뭐. 그럴 생각이었어.”
“큭큭큭큭.”
사이드 바에 나란히 앉아, 하늘에 휘영청 떠오른 달을 바라본다. 한국은 오늘이 동지였다고 하던데, 엄마는 오늘 붉은색 음식이라도 챙겨 먹으라며 신신당부를 하셨다.
“뭐? 그런 게 있어?”
“응. 한국의 미신이지. 붉은 팥죽을 먹으면, 해를 끼치는 귀신을 쫓아낼 수 있다고 했어.”
“이런, 제기랄. 진즉에 말하지.”
“왜? 너도 미신을 믿어?”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나의 질문에, 바스티가 내게 우문현답이란 무엇인지를 알려 준다.
“우린 축구 선수잖아. 우리의 삶 자체가 미신 덩어리야.”
“하-! 그건 그러네.”
나만 하더라도 ‘아영이와 가족의 사진을 가장 처음 꺼내기.’ , ‘양말과 축구화는 오른쪽부터 신기.’ , ‘손 키스 보내기.’ , ‘가장 마지막에 라커룸 나서기’ , ‘피치에 발을 디딜 때도 오른발부터 내딛기.’와 같은 루틴이 있다.
우리의 삶이 미신 덩어리란 바스티의 말은, 무척이나 옳은 것이다.
“자기 전에 레드와인을 마셔. 그러면 되겠네.”
“아- 좋은 생각이야. 고마워.”
“큭큭큭. 너도 참 미친 녀석이야.”
“이곳에서 누군들 아닐까. 안 그래?”
“미친놈들 집합소인가?”
“그럴 수도?”
실없기 짝이 없는 대화를 주고받던 와중, 나는 슬리퍼를 신은 바스티의 발에 눈길이 갔다.
발의 모양새는 나와 마찬가지로 참 못났지만, 지금 여기에 시선을 둔 것은 조금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요즘 병원 다녀?”
“응? 무슨 병원?”
“아, 그거.”
“?”
“아나가 정말로 싫어해.”
“······.”
아나의 이야기가 나온 김에, 난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어떤 여자야?”
“······좋은 여자야.”
“정말?”
“······.”
내가 아나를 처음으로 본 건, 아영이와 함께 이비자에서 머무르던 때 바스티의 초대로 그의 생일 파티에 참석을 했을 때였다.
당시 그곳엔 네이마르나 패리스 힐튼과 같은 사람들도 있었고, 굉장히 호화롭고 또 사치스러운 파티였다.
무수한 매춘부들과 곳곳에서 타오르는 대마초 연기 때문에, 아영이와 나는 한 시간 만에 숙소로 돌아왔었다.
“그녀를 욕하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미리 알아 둬. 나는 그냥, 그녀가 우리와 어울릴 마음이 있는 것인지를 알고 싶을 뿐이야.”
테니스 선수인 아나는, 지금까지 총 세 차례에 걸쳐 한 달여를 뮌헨에서 지냈다.
대회 사이의 휴식 기간 동안, 독일에서 머문 것이다.
하지만 그 한 달 동안, 우리 뮌헨의 그 어떠한 WAG`s도 아나를 만나지 못했다. 심지어 그녀의 번호조차 모르며, DM으로 보낸 연락은 전부 씹혔다.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기에 그것도 나름대로 존중하고 있긴 했지만, 벌써부터 일부에서는 이야기가 나왔다.
바스티가 내년 여름 뮌헨을 떠날 것이며, 펩의 재계약 조건 역시 단순한 핑계에 불과할 수도 있다고 말이다.
게다가 최근 람이 팀을 떠난 동안 부주장직을 맡아달라는 요청까지도 고사를 하면서, 지금까지의 모든 정황들이 바스티의 이탈로 맞춰지고 있었다.
물론 나 역시 펩이 다음 시즌 후 뮌헨을 떠난다면 이적을 요청할 생각이라, 바스티를 잡을 수는 없다.
하지만 가뜩이나 부상자 때문에 속 시끄러운데, 또 다른 고민거리를 떠안고 싶지도 않았다.
“······넌 행복해 보여.”
“뭐?”
“그러니까, 지금 너 자신 말이야. 우리 모두가 힘든 시기를 겪고 있지만, 가끔 너를 보면 그것마저도 즐기는 것 같아.”
“그야, 그게 당연하니까.”
“하하. 그런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해.”
“??”
달빛이 살짝 구름에 가려지고, 바스티의 얼굴 반쪽이 그늘로 뒤덮인다.
그 때문인지, 순식간에 늙은 것만 같다.
“나는 지금까지 줄곧 두 가지만을 생각했어. 챔피언스 리그. 그리고 월드컵.”
“······.”
“그리고 그 두 가지를 모두 쟁취했지. 그리고 나는 8월에 서른이 됐어. 무슨 말인지 알아?”
아니, 사실 전혀 모르겠다.
“이십 대와는 전혀 다르다는 거야. 나는 뮌헨을 사랑했어. 사라만큼이나 말이야. 그리고 그것 때문에, 지금까지 헌신을 보여 왔지. 특히 이곳에서 뛰며, 나는 몇 번이나 좋은 계약을 걷어찼었어. 그런데 이젠, 그러고 싶지 않아.”
“······가면을 벗겠다는 거구나.”
“좋은 표현이네. 그래. 그게 맞아. 이제는 돈을 벌어야 할 시점이라고 느껴. 축구가 내 삶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때를 대비해서 말이야. 아내와 미래의 아이를 책임지려면, 난 그렇게 하는 게 옳다고 봐.”
8월 1일 서른이 된 바스티의 이야기를, 6일 전 21살이 된 내가 전부 이해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다만 이 친구가 미래를 계획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미래엔 아마도, 우리 뮌헨의 이름은 없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작년에 네게 말한 건 진심이었어.”
“뭐가?”
“펩의 재계약이 주요 조건이라는 거. 그에게서 축구를 배우는 건, 마치 내가 한국어로 된 책에 답답해하다가 같은 내용을 독일어로 보는 것과 같아.”
순간, 나는 소름이 끼쳤다.
지금까지의 대화 중 몇 번이나, 바스티는 제대로 된 ‘비유’를 사용했다.
당장이라도 대화를 멈추고 [“이봐! 너는 누구야?! 그리고 내가 아는 바스티는 어디에 있는 건데?”]라며 따져 들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분위기가 너무나도 진지했다.
아마 뮐러라면 가능했을 거다.
그래서 난, 더더욱 그럴 수 없었다.
동급이 되긴 싫었으니까.
대신, 바스티의 말을 이해한다는 고갯짓을 했다.
“젠장, 그거 너무 정확한 말이잖아.”
“쿡쿡쿡. 그렇지?”
“응.”
세상의 그 어떠한 축구 감독도, 펩처럼 자세하게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바스티의 설명과도 같고, 불친절한 조립 설명서만을 보다가 부품 하나하나 상세히 그려 가며 모든 것을 알려 주는 설명서를 보는 것에도 비유가 가능하다.
당장 대표팀에 합류해 삼파올리 감독님과 함께만 해도, 그 차이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봐, 바스티.”
“응?”
“결정이 되면 꼭 즉시 말한다고 약속해 줘. 그러니까, 우리 모두에게 말이야.”
바스티가 고개를 돌려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어느새 훤히 드러난 달빛은 우리 둘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바스티는 희미하지만 따뜻한 느낌의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럴게. 우린 팀이니까.”
“······그래.”
이거면 충분했다.
시즌이 끝날 때까지 바스티가 나의 팀 동료로서 뮌헨에 헌신한다면, 토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의 미래에 대해 내가 간섭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그 결과가 좋건 나쁘건, 그건 오롯이 선택한 본인이 짊어져야 할 책임일 것이기 때문이다.
“가자. 시간이 많이 늦었어.”
“그래. 그러자.”
다시 수영장에서 숙소 건물로 향하는 길.
우리는 내내 축구에 대해 이야기했다.
평소와 전혀 다름없는 모습으로.
***
작가의 말 ?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는 시카고 이적 후 ‘Sport 1’과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이 뮌헨을 떠난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밝혔습니다.
현실적인 것(돈+가족)과 때마침 전화를 걸어온 예전 스승인 루이 판 할의 전화라고요.
그런데도 아직까지, 펩 과르디올라가 뮌헨의 트레블 멤버를 해산시켰다고 알고 계신 분들이 꽤 되죠.
주말입니다.
다음 주에 뵐게요 (_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