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454)
453화
.2015.02.17. 경기결과(C.L Last 16 1st Leg)
샤흐타르 0 : 0 바이에른 뮌헨
김다온 ? 94분 출전(평점 3.5)
MoM ? 마누엘 노이어(평점 3.0)
***
2015년 2월 17일. 우크라이나 상공(Over Ukraine).
실점하지 않겠다는 샤흐타르의 의지가 우리보다 조금 더 앞섰던 경기였다.
상대는 90분 내내 9명의 필드플레이어를 페널티 박스 안에 놓아두었고, 후반 30분 이후 차례대로 세 명의 공격수를 교체하며 그들의 계획대로 경기를 펼쳤다.
애초부터 경기 중반까지는 수비를 단단히 하고, 막바지에 역습으로 득점을 노렸던 것 같다.
반대로 우린, 썩 좋지만은 않았다.
3-4-3을 사용했지만 중원 조합이 다시 한번 공격에서의 문제점을 노출했고, 후반전 20분엔 사비가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당하기도 했다.
결국 남은 20분 우리 역시 무승부를 노리는 방식으로 계획을 바꿀 수밖에 없었는데, 내전 중인 국가에서 축구를 한다는 불안감 때문인지 동료들도 조금 소극적이었다.
양 팀 모두 무승부를 노리고 볼만 돌리는 축구가 막바지 10분 동안에 이어졌을 땐, 아레나 리비우에서 야유도 크게 울려 퍼졌었다.
그런 경기를 보자고, 챔피언스 리그 16강 경기 티켓을 비싼 값에 구매하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나도 경기 후 인터뷰 때, 원정을 온 뮌헨 팬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한 것이다.
“…….”
안전 문제로 숙소에서 하루를 보내는 대신, 경기장에서 곧장 공항으로 넘어가 뮌헨으로 향하는 길을 택했다. 다들 동의한 내용이기에, 일정에 따른 불만은 없다.
평소보다 비행기가 떠들썩한 이유도, 아직 우크라이나 상공이라는 불안함 때문이다.
그럴 일은 없다고 생각을 하지만, 기우가 심한 이들은 비행기가 격추되는 일을 염려하고 있다.
“이봐.”
“응?”
“잠깐만 오겠나?”
“……그러죠.”
앉아 있던 나를 불러낸 것은 마티아스 잠머다.
늘 그랬듯, 우린 조용한 곳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죠?”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야.”
“재계약이라면, 이미 제 의견을 전했는데요.”
“아니. 그게 아니야.”
“??”
잠머는 오늘 상대한 더글라스 코스타(Douglas Costa)에 대한 감상을 물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영입인가요?”
“후보 중에 하나라고 해 두지.”
“…….”
리베리가 올 시즌 내내 온전치 못한 모습을 보여 주면서, 그의 나이에 대한 걱정과 함께 ‘위대한 윙어’를 대체하기 위한 미래 자원의 영입이 필요하단 말이 자주 나왔었다.
실제 우린 리그에서 가장 나이 많은 윙어들을 보유했다.
“빠르긴 했어요.”
“……그게 단가?”
“글쎄요. 오늘 상대는 9명을 수비수로 배치했죠. 그나마 역습을 하려고 했을 때 그 녀석은 교체되고 없었고요. 그러니, 어떻게 생각하세요?”
“잘 알겠네. 고맙군.”
“별말을요.”
리베리는 생산력이 지난 시즌의 1/3 정도로 줄어 있다. 경기 출전 횟수 자체가 부족한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고, 확실히 몸이 정상적이지는 않다.
오늘도 선발로 출전을 했지만 45분 만에 베르나르두와 교체되었고, 경기 내내 고전하는 모습이었다.
다리오 스르나(Dario Srna)가 뛰어난 풀백인 것은 맞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플레이가 영 좋지 못했다.
‘회복이 더뎌.’
요즘도 리베리는 훈련이 끝나면 곧장 볼파르트 클리닉으로 가 치료와 재활을 이어 가고 있다. 펩은 몇 번 다른 병원을 권유했지만, 완강한 프랑스인은 그걸 거부했다.
양쪽 무릎에 무언가를 잔뜩 붙인 리베리를 잠깐 바라보던 나는, 언제나처럼 그 곁에 달라붙은 알라바의 어깨를 두드렸다.
“응? 왜?”
헤드셋을 벗은 그가 태블릿의 화면을 멈추곤 날 올려다본다.
“요즘 프랑크는 어때?”
“?? 그야, 뭐 똑같지?”
“몸이 어떻다고는 말 안 해?”
“전혀. 궁금하면 네가 직접 물어보지 그래.”
“해 봤어.”
“그래서?”
리베리는 내게 자신은 괜찮다고만 말을 한다.
“것 봐. 그리고 넌 프랑크를 믿어야 해. 이 남자는 베테랑이잖아. 몸 관리 같은 것에는 도가 터 있을 거라고.”
“그래, 그래. 그렇다고 치자.”
“비관적이긴.”
비관적이라.
지난 시즌 막바지에 다친 부위 때문에 챔피언스 리그 결승과 월드컵도 건너뛰었음에도, 여전히 같은 부위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데 이게 비관적인 태도인가도 싶었다.
그리고 만약 리베리가 정말 뭔가 더 좋지 않은 거라면, 차라리 베르나르두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오랜 기간 쉬어가는 일을 선택해도 나쁘지 않았다.
그랬다면 팀은 샤키리를 내보내지 않았을 것이고, 펩도 뭔가 다른 계획을 궁리했을 거다.
“후우~”
승리를 거두지 못한 날.
어김없이 산적해 있는 문제는 가까이로 온다.
이것을 다시 밀어내려면, 우린 승리를 쟁취해야만 한다.
과연 이게 옳은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말이다.
***
※ 2015년 3월 평가전 대한민국 대표팀 명단
-> 2015.03.27. 우즈베키스탄
-> 2015.03.31. 뉴질랜드
GK ? 김승규(울산), 김진현(세레소), 조현우(대구)
DF ? 김다온(뮌헨), 김창수(가시와), 홍정호(아우크스부르크), 김영권(광저우), 곽태휘(알힐랄), 윤영선(성남), 박주호(마인츠), 김진수(호펜하임)
MF ? 기성용(스완시), 정우영(비셀), 한국영(카타르SC), 이명주(알아인), 김보경(카디프), 이청용(벤피카), 남태희(알두하일), 이재성(전북)
ST ? 손흥민(레버쿠젠), 이근호(상무), 석현준(나시오날), 김신욱(울산)
***
2015년 2월 18일. 맨체스터 M31 4BH, 잉글랜드. 캐링턴, 캐링턴. 트래포드 트레이닝 센터.
알렉스 퍼거슨의 은퇴 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지독한 후유증을 앓았다. 그들은 2013/14 시즌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실패했고, 이는 수천만 유로의 재정적 손실을 유발했다.
모예스를 해임시킨 맨유의 보드진은 그들에게 유능하고 카리스마 있는 매니저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고, 그 즉시 몇 명의 후보를 물색해 나갔다.
도르트문트의 감독 위르겐 클롭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디에고 시메오네, 근래까지 스완지 시티를 이끌었던 미카엘 라우드롭 등이 그 후보군이었다.
외에도 월드컵 종료 시점과 맞물려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날 이들도 거론되었는데, 러시아 A팀의 파비오 카펠로와 네덜란드의 루이 판 할이 그랬다.
그리고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인 2014년 5월 18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그들의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차기 시즌부터 루이 판 할이 새로운 매니저가 될 것임을 알렸다. 당시 팬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환영한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9개월이 지난 지금, 아직 허니문 기간 중인 판 할의 축구는 여전히 의문 부호가 붙어 있다.
엄청난 이적료를 지불했음에도 팀 성적은 별반 차이가 없었고, 순위가 조금 더 높은 이유는 순전히 Top 3를 뺀 나머지 팀들의 승점이 동반 하락했기 때문이었다.
원정 경기에서 고전하고 약팀을 상대로 손쉽게 승리를 거두지 못한다는 점 역시, 사람들이 판 할의 축구를 신뢰하지 못하는 하나의 이유가 됐다.
좀처럼 역전을 하지 못한다는 것도 문제였는데, 시즌 첫 역전승이 어제 나온 3부 리그 팀과의 FA컵 경기였다.
하지만 여전히 시간이 필요하다고 믿는 루이 판 할에겐, 내년 맨유를 다시 챔피언스 리그에 복귀시키기만 하면 된다는 낮은 목표가 도움이 되고 있다.
에드 우드워드를 포함한 맨유의 보드진은, 챔피언스 리그에서 복귀할 경우 아무런 토를 달지 않겠단 조건을 제안했었다.
“프란츠?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 하하. 어떤가, 루이. 잘 지내나?
평소와 마찬가지로 클럽하우스에 출근한 루이 판 할이 독일에서 걸려 온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 주인공은 현(現) 바이에른 뮌헨의 회장인 프란츠 베켄바워였다.
– 자네의 안부를 물으려고 전화했지.
“이런! 시간도 많군 그래.”
– 큭큭큭. 현역인 자네와 뒷선으로 밀려난 내가 같다고 생각을 하나?
2009/10 시즌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으로 부임했던 루이 판 할은, 뮌헨 커뮤니티 내에서 무척 높은 평가를 받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다.
주제 무리뉴의 인테르에 패배하며 아쉽게 트레블에는 실패했지만, 현재의 뮌헨이 있게끔 만든 일등 공신이란 평을 듣는다.
보드진이 강력히 반대했던 아르연 로번의 영입을 강력하게 추진한 것을 포함, 토마스 뮐러와 홀거 바트슈투버와 같은 유스팀의 재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무엇보다, 재능은 있지만 뭔가 애매한 선수였던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포지션을 중앙으로 이동시켰다.
– 당시엔 우리가 조금 성급했지.
“이제 와서 말인가? 이런, 프란츠. 노망이라도 난 건가? 누차 말하지 않나. 만약 그때의 내게 마누엘 노이어와 같은 골키퍼가 있었다면, 트레블을 밥 먹듯 했을 거야.”
판 할 부임 당시 뮌헨의 주전 골키퍼는 미하엘 렌징(Michael Rensing)이었고, 이후 한스-외르크 부트(Hans-Jorg Butt)와 토마스 크라프트(Thomas Kraft)가 차례대로 장갑을 꼈지만 누구도 수준급의 경기력을 보여 주지 못했다.
가뜩이나 올리버 칸의 그늘에 시달리던 뮌헨은 판 할 부임 기간 동안 끔찍한 수준의 뒷문에 고통을 받았다.
2010/11 시즌 후반기 뮌헨이 몇 차례나 승리를 놓친 것도, 토마스 크라프트의 어이없는 실책이 그 원인이었다.
하지만 판 할은 한 번도 그것을 불평하진 않았다.
오히려 그는 뮌헨의 보드진 전반과 사이가 무척 좋은 편이었고, 판 할이 만든 선수들이 유프 하인케스의 체재 아래에서 큰 성공을 거두자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진짜 용건은 뭔가?”
– 하하. 여전히 눈치가 빠르군.
“자네가 시답잖은 대화를 싫어한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 않나? 설마, 우리 쪽 선수가 필요한 건가?”
선수의 이적은 종종 이러한 방식으로도 이뤄지기도 하기에, 루이 판 할은 베켄바워의 목적을 물었다.
다만 의문인 건, 현재 맨유에는 뮌헨이 원할 만한 선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나마 후안 마타 정도가 있긴 하지만, 그 확률 역시 몹시 희박했다.
예상대로, 프란츠 베켄바워는 맨유의 선수가 필요해 전화를 건 것은 아니라고 답한다.
– 오히려, 그 반대야.
“반대?”
– 그래.
–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에, 루이 판 할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진다. 훈련 시간이 다가와 코치들이 감독실로 들어서려고 했지만, 그가 손짓해 사람들을 물렸다.
그러곤 문으로 가 자물쇠를 채운 후, 은근한 목소리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를 물었다.
– 바스티를 영입하는 건 어떻겠나?
“뭐?! 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 그는 뮌헨을 떠나고 싶어 해. 새로운 여자 친구 때문이지. 아나 이바노비치라는 여자인데, 혹시 알고 있는가?
“테니스 선수로군. 물론일세.”
– 역시, 자네라면 그럴 거라고 생각했네.
테니스가 취미인 판 할은 시간이 되면 직접 경기를 참관할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 아나는 런던에 집과 트레이너가 있지. 이대로라면 런던의 클럽이 그를 데려갈 거야. 하지만 난 그것보다는, 자네가 바스티를 데려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시즌이 끝나고 전화 한 통만 넣는다면, 그는 자네를 위해 뛰려고 할 거야.
“…….”
– 이보게, 루이. 듣고 있나?
“아, 물론일세.”
베테랑 중에서도 베테랑인 루이 판 할이지만, 지금까지 축구 감독을 해 오면서 이런 식의 영입 제안은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선수가 클럽을 떠나려고 한다지만,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정도 되는 남자라면 어떻게든 기를 쓰고 잡으려고 하는 것이 옳았다.
때때로 클럽은 그것을 위해 선수 여자 친구의 뒷조사를 하고 바람을 피다거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장면들을 찾아 가십지에 공개해 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십중팔구 연인은 헤어지게 되고, 상심한 선수를 달래 클럽에 계속 충성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더구나 슈바인슈타이거의 계약 기간은 2017년 5월 31일까지다. 올 시즌이 끝난다고 해도 2년이나 남은 선수를 판다는 것 자체가,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루이 판 할은 펩 과르디올라에게 호의적인 사람 중에 하나였다.
펩 과르디올라의 현역 시절을 지도하기도 했고, 그가 은퇴한 뒤에는 자주 와인을 마시며 밤늦은 시간까지 축구 전술에 관한 이야기도 나눴다.
네덜란드 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을 때라든가, 맨유의 지휘봉을 잡을 때 역시 가장 먼저 연락을 걸어와 위로와 축하를 건넨 것도 펩 과르디올라다.
좋은 관계이긴 하지만 몇 년 만에 전화를 걸어온 베켄바워와는 친함의 정도가 달랐다.
결국,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판 할이 다시 묻는다.
“펩도 이 사실을 아나?”
– …….
“아닌가 보군. 이보게 프란츠. 대체 무슨 일인지 말해 주게나. 나는 펩을 등질 수 없어.”
제아무리 비즈니스가 우선이 되는 세계라고는 하지만, 루이 판 할은 낭만이 있는 남자였다. 현대로 와서는 그 낭만마저 구시대적인 것이 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어쨌든 판 할은 펩 과르디올라를 배신하는 짓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우정은 자네의 생각보다 단단하네. 바스티를 데려올 수 있는 것은 대환영이지만, 그게 쓸데없이 문제가 된다면 난 그것을 거부할 수 있어.”
– 그렇군.
“그러니 말해 보게, 프란츠. 대체 무슨 일인가?”
수화기 너머로 한숨 소리가 나직이 들려오고, 프란츠 베켄바워는 본인이 의도한 바를 이야기한다.
– 우리는 펩을 원치 않네.
“뭐라고?”
– 우리에서 루메니게와 잠머는 제외해야겠군.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어. 곧 울리가 복귀할 거고, 펩은 다음 시즌이 끝나고 클럽을 떠나게 될 거야. 하지만 그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고 있지. 그래서 우린, 그를 쫓아낼 구실이 필요해.
“구실?”
– 그래. 그가 뮌헨을 망쳤다는 구실 말일세.
“그게 바스티의 이적인가?”
– 시작일 수는 있겠지. 거기에 만약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우린 더 좋은 핑계를 만들 수도 있어.
축구계의 이면에 존재하는 어두운 부분에 관해서도, 루이 판 할은 익히 알고 있었다.
돈과 권력.
선수들에게 쏟아지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노동자 혹은 시민들의 손으로 일궈 낸 클럽이 쌓아 온 눈물겨운 역사가 그것들을 감추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유럽 축구 리그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이 움직이는 곳이었고, 최근 미국과 중동의 자본이 관여하기 시작한 것도 이를 증명했다.
특히 미국 자본의 개입은 많은 부분을 시사했는데, 이들은 ‘풀뿌리’에 기반한 유럽 축구의 기초를 완전히 뒤바꿔 그들의 고국과 같은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만들려고 한다.
베네룩스 삼국의 리그 통합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라든가, 새로운 포맷의 리그 창설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루이 판 할이라도, 지금 프란츠 베켄바워의 이야기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네는 설마 내가 이 이야기를 펩에게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이미 말한 것처럼, 루이 판 할은 펩 과르디올라와의 관계를 더욱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은퇴가 머지않은 지금, 굳이 영광만을 좇고 싶지 않은 이유다.
그래서 그는 베켄바워를 반 협박하듯 이야기를 꺼냈지만, 수화기 너머는 여전히 침묵 중이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루이 판 할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자네…… 내가 펩에게 말하기를 바라는 거로군!”
– 후후후. 내 말은 진심일세. 바스티를 영입하는 건, 지금이 유일한 기회일 거야. 그럼. 또 연락하지.
“…….”
-딸깍-
기묘하기 짝이 없었던 대화.
현재 바이에른 뮌헨의 보드진은 펩 과르디올라와의 연장 계약을 원치 않으며, 반발할 팬들의 분노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를 악당으로 만들려고 한다.
단순한 ‘풀뿌리’를 넘어서 지역 사회의 ‘가족’으로 존재하는 분데스리가의 문화를 고려하면, 독일 대표팀의 리더이자 뮌헨을 상징하는 슈바인슈타이거를 내보냈다는 것은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비난의 화살은 오롯이 현재 뮌헨의 회장인 루메니게와 감독 펩 과르디올라를 향할 것이다.
회복 훈련을 라이언 긱스에게 위임해 버린 루이 판 할이, 한참을 고민하다 펩 과르디올라에게 전화를 건다.
그러고는, 오랜만이라는 펩의 인사마저 무시해 버린 채 방금 들었던 이야기를 전했다.
“펩. 대체 일이 어떻게 되고 있는 건가?
옛 제자에 관한 걱정이 앞서는 루이 판 할이 우려하며 묻지만, 이번에도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답변이 그를 크게 당황하게 만들었다.
큰 충격을 받았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펩 과르디올라는 무척 침착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 축하합니다. 바스티는 훌륭한 선수예요.
“자네, 지금 무슨…….”
–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어도 되는데, 본인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을 더럽히려고 하는 사람들이 저는 참으로 우습습니다, 루이. 그나저나, 당신은 요즘 조금 어떻습니까?
“…….”
– 루이?
마치 옆집 개가 자신의 앞마당에 똥을 싼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반응하는 펩 과르디올라를 보며, 루이 판 할은 큰 혼란에 잠겨 버린다.
‘이 일을 하기엔, 난 너무 늙었는지도 모르겠어.’
어느새 축구는, 과거의 낭만으로 바라보기엔 너무 달라진 스포츠가 되어 버렸다.
***
【같은 시각】 81547 뮌헨, 독일. 재베너 슈트라세 51-57. 바이에른 뮌헨 서비스 센터 및 훈련시설. 프런트 오피스, 회장실.
훈련이 한창이라고 믿었던 시각. 카를-하인츠 루메니게는 펩 과르디올라가 들고 온 소식에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프란츠 베켄바워가 직접 나서 슈바인슈타이거가 팀을 떠나도록 유도했다. 게다가 로타어 마테우스마저, 그의 계획에 동참을 한 것 같았다.
“손발이 잘렸군요. 유감입니다.”
“……펩. 정말 미안하네.”
“아니요.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아요.”
평온한 펩 과르디올라의 표정은 이전 재계약을 논할 때 느꼈던 가면을 쓴 모습과는 조금 달라 보였다.
그래서 루메니게는 이것이 펩 과르디올라의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고, 동시에 이 남자와 동행하는 시간이 끝났다는 것 역시 알게 되었다.
“부끄러운 모습만을 보였군. 하지만 우리 뮌헨은 이것보다 훨씬 더 좋은 클럽일세. 다만, 권력욕에 눈이 먼 이들이 이곳을 망치고 있군. 울리를 믿었던 게 내 잘못이었어.”
“너무 낙담하지는 마십시오.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하하. 이런 일들이야, 축구계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일입니다. 바르셀로나를 떠날 때는 몰랐는데, 이번에 그것을 확실히 알게 됐죠. 당신의 꿈은 순수합니다. 전 그걸 좋아하고요. 그러니, 남은 시간 저는 뮌헨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약속하듯이 말한 펩의 이야기를 믿고 싶었던 루메니게가 어렵게 다시 입을 연다.
“다음 목적지는 정했나?”
“네. 그것이 확실해지면, 누구보다 당신에게 가장 먼저 이야기를 한다고 약속하죠.”
“그래. 그거 고맙군. 그리고 나도 약속 하나 하지.”
“?”
“지금까지 자네를 가장 괴롭혀 왔던 부분.”
“??”
엄연히 뮌헨의 회장인 자신을 남겨 두고, 많은 이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멋대로 클럽을 뒤흔들고 있었다.
가만히 당하고만 있는다면, 남자라고 볼 수 없다.
그래서 루메니게는 펩에게 약속한다.
처음 그를 감독으로 영입할 때 약속했던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큰 반발이 예상되는 일을 하기로 한 것이다.
“볼파르트 부자를 쫓아내 주지.”
“그게 가능합니까?
“물론 내가 직접 해고를 할 수는 없어. 하지만 그 스스로 물러나게는 할 수 있을 걸세.”
“??”
“나를 믿게, 펩. 저들은 쥐새끼도 궁지에 몰리게 되면, 누구든 물어 버린다는 것을 알게 될 테니까.”
“……카를.”
“정말 미안하네, 펩. 정말로 미안해.”
진심 어린 사과를 보낸 루메니게의 눈빛엔, 서슬 퍼런 복수심이 맹렬히 불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