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50)
49화
2011년 10월 5일. 쾨벤하운, 덴마크. 니하운 2, 샬로텐보르 팰래스(Charlottenborg Palace. Nyhavn 2. København, Denmark).
#오전 11 : 49
2011년 10월 A매치 주간을 맞아, 나는 가족들에게 휴가를 제안했다.
오늘부터는 누나도 가을학기 1쿼터가 끝나고 2주 동안의 짧은 방학을 갖는지라, 이번이 가족휴가를 떠날 가장 좋은 기회라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말이 휴가지, 현실은 그냥 차로 20분 떨어진 쾨벤하운에 오는 게 다였지만 말이다.
그래도, 무척 즐겁다.
[아-! 배고프다! 이제 뭐 좀 먹으러 가요!] [다은아, 네가 전에 말한 데가 어디였지?] [아- 거기? 요 앞이야. 얼른 가자!]누나가 앞장서서 이끌었고, 샬로텐보르 박물관을 빠져나온 우리 가족은 느긋하게 운하를 즐기며 한낮의 쾨벤하운 거리를 걸었다.
뉘하운(Nyhavn)은 코펜하겐의 관광명소 중에 하나로, 맑은 날 산책을 하기에 참 좋은 곳 중에 하나였다.
맞은편을 따라서 까페와 레스토랑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오늘 우리가 찾을 곳은 누나가 가끔 친구들과 간다는 곳이었다.
덴마크의 물가는 외식비가 상당히 비싸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지간해서는 외식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점심 저녁을 포함 일주일에 두 번 정도가 보통이고, 그 이상 외식을 하는 사람들은 적당히 사는 것으로 인식을 했다.
오히려 스포츠-바라든가 까페 등이 훨씬 더 장사가 잘 됐는데, 그건 한국보다 한참 저렴한 맥주/커피의 가격 때문일 것이다.
이곳에선 기호식품이 비싸다는 게, 비상식적인 일이었다.
“고-데이. 혹시 네 사람 자리 있나요?”
“음? 혹시 예약하셨나요?”
“아뇨, 그건 아닌데······.”
눈길이 샐쭉해지는 직원을 본 순간, 난 직감적으로 차별이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약간 통통한 체격의 여성은 뒤에 있던 누나를 확인하곤 표정이 풀어지더니, 이내 환한 표정이 되어 날 지나쳐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그리고 돌아와 내게 한다는 말이.
“들어오세요. 안에 제일 좋은 자리를 드릴 테니까.”
“······.”
아마도 이 여성은 처음에 나와 아빠를 먼저 보았을 것이다.
어눌한 덴마크어를 쓰는 낯선 동양의 등장이 반갑지 않았던 것 같고, 보나 마나 이런저런 핑계로 우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속셈이었던 것 같다.
자리에 앉아, 내 말을 듣던 누나는 씁쓸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거렸다.
누나도 처음엔, 비슷한 대접을 받았다면서.
[중국인들 때문이야. 전에 단체 중국 관광객들이 이 식당에서 폭도처럼 군 적이 있었거든. 그래서 그다음부턴, 동양인이면 일단 질색을 하나 봐.] [그럼 국적이라도 묻던가. 기분 나빠.] [이해해. 하도 시끄러워서 정중하게 나가달라고 했더니, 직원들한테 음식을 끼얹었다는 거 있지? 소냐도 그때 당했었고.]오해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마음이 약간 풀리긴 했지만, 이런 차별은 언제 어떠한 순간이 되더라도 기분 나빴다.
그래도 누나의 단골 가게니, 참기로 하겠다.
“다은! 네 가족이었어? 이거 미안해서 어떻게 하지?”
[응?]그렇게 물을 마시면서 메뉴판을 보고 있을 무렵, 주방에서 걸어 나온 한 중년 남성이 반갑게 누나를 맞이했다.
복장으로 보아, 주방장인 것 같다.
“반갑습니다. 전 입(Ib)이에요.”
입 라스크(Ib Rask) 씨는 이 식당의 주방장 겸 주인으로, 식당 입구에 있었던 일을 대신 사과해왔다.
부모님은 쓰게 웃으시며 괜찮다고 대답하셨지만, 난 괜히 한 번 더 욱해서 한소리를 하려고 입을 열려고 했다.
만약.
“어? 자네는?”
“??”
이 남자분이 날 알아보지 않았었더라면.
“다온!! FC 노르셸란의 풀백!! 뭐야?! 대체 어떻게 여기에?”
“전에 말했죠? 축구를 하는 동생이 있다고.”
“그런데 이 친구라고 말하지는 않았잖아! 이런 세상에나! 잠깐만 있어 보게. 얼른 갔다가 올 테니까.”
주방에 불이라도 난 것처럼 눈썹을 휘날리며 사라진 입 라스크씨가 사라졌던 속도보다도 더 빠르게 테이블로 다시 돌아왔다.
어찌나 서둘렀으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아니, 원래 처음부터 그랬나?
“부탁하지. 사인 좀 해주겠나?”
“네? 여긴 쾨벤하운인데요?”
전데 말했는지 모르겠는데, 덴마크 사람들은 자극적인 즐길 거리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면 항상 축구장을 찾곤 한다.
그래서 사내다움을 과시하길 원하는 남자들 상당수가 축구에 열광하며, 여느 유럽클럽과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서포터가 있고 훌리건 비슷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FC 쾨벤하운이 있는 수도에 식당을 가진 주인이, FC 노르셸란의 선수인 내게 사인을 요청하는 건 보기 드문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한국에서야 서울에서 사는 사람이 부산에서 뛰는 K-리그 선수를 응원하는 일이 흔하지만, 여긴 태어난 도시의 팀을 평생 응원하고 다른 팀을 배척하고 미워하는 일이 흔한 일상인 나라다.
특히나 식당을 하고 있다면, 말썽거리가 될 소지도 있다.
“아- 내 거 말고, 우리 손주들이 자네의 팬이라서 말이야.”
“손······ 자요?”
아니, 잠깐.
이 아저씨, 아니 할아버지 대체 몇 살이신 거야?
처음엔 50대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젠장. 평생 쾨벤하운을 응원하게 하려고 노력했지. 그런데 어느 날 대뜸 좋아하는 팀이 생겼다고 해서 잔뜩 기뻐했더니만, FC 노르셸란을 응원하겠다고 하지 뭔가? 에게비에르에서 태어나서 연고 팀이 없다곤 하지만, 이런! 아무튼, 살다 보니 이런 날이 다 있군. 가게 단골손님의 동생이 자네라니 말이야.”
첫인상과는 다르게 매우 수다스러웠던 입 라스크 씨가 테이블 위에 펜과 종이를 놓아두더니만, 만약 사인 10장을 전부 다 해준다면 음식을 무료로 주겠다고 말했다.
물이나 피클도 돈을 주고 사 먹어야 하는 이곳 덴마크에서, 무료 음식을 준다고 하는 건 실로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4인 가족의 밥상이니, 못해도 15만 원 정도는 나올 텐데 말이다.
그래서 난, 흔쾌히 사인을 해드리기로 했다.
“멋지군! 그럼, 소냐를 보낼 테니 메뉴를 말해주게! 허헛!”
입 라스크 씨가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고, 신나는 얼굴로 펜을 집어 든 날 쳐다보던 누나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하아- 우리도 참, 여전하네.] [응? 뭐가?] [아냐, 아무것도. 난 그래서 우리 가족이 너어-무 좋아.] [뭔 소리야. 아무튼, 내 거까지 누나가 알아서 시켜줘.]사인할 종이 옆에 놓인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집어 들며, 난 펜을 열심히 휘갈기기 시작했다.
이번 휴가는 꽤 성공적인 것 같다.
그런데 잠깐.
[으잉?] [왜?]난 의아해하는 가족들을 향해, 쪽지를 들어 올렸다.
그리곤 어쩐지 수줍게 보이는 작은 글자들을 가리켰다.
쪽지 가장 하단에, 작게 적혀진 것이다.
아무래도, 손자에게 줄 사인이라는 건 입 라스크 씨의 핑계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한 건, 음식은 무척이나 끝내줬다는 거다.
뿌듯해하는 누나를 보니, 꽤 기분이 좋았다.
***
2011년 10월 7일. 셸란, 덴마크. 파룸, 파룸 파크 2. FC 노르셸란 클럽하우스. 제 2 연습구장.
#오전 10 : 23
이틀 전, 우리 가족은 쾨벤하운에 있는 가장 좋은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고 어제 오후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왜 진작 안 했을까 생각이 될 만큼 좋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아직 휴가 기간이 남은 아버지는 엄마와 누나를 데리고 인근 호수에 낚시를 떠났고, 중간에서 헤어진 나는 계속해서 움직여 클럽하우스에 도착했다.
목적지는 제 2 연습구장이다.
“노노!!”
저 멀리에 있는 노노에게 손을 흔들면서, 난 개인훈련을 위해 연습구장 안으로 들어섰다.
사실 훈련이라기보다는 레슨에 좀 더 가까운데, 팀 훈련이 시작되기 전까진 간단히 몸을 푸는 것 외에는 특별한 훈련을 더 가져가진 않을 생각이다.
무작정 연습을 많이 한다고 해서, 꼭 좋은 선수가 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남들이 쉴 때는 함께 쉬고, 정식 팀 훈련을 할 때 집중해서 하는 게 몇 배는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저 지금은, 약간의 도움을 받으려는 거다.
“지난번엔 운 좋게 넘어갔는데, 다음에도 그럴 것 같지는 않거든요. 여전히 감이 잘 잡히지 않아요.”
“그건 타고나야 하는 거야.”
“어, 그럼 안 될까요?”
“아니, 넌 타고났어. 따라와.”
“??”
이제부터 내가 노노와 하려는 것은, 후방에서 긴 패스가 시도됐을 때 그것을 예측하고 차단을 하는 작업이다.
수비수에게 있어 예측력과 판단력이 중요한 가장 큰 이유는, 후방이나 중원에서 패스가 연결되어 올 것을 미리 파악하여 차단 혹은 경쟁을 하는 게 무척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수비수가 잘할 경우, 상대가 아무리 빌드업을 잘하더라도 위험지역으로 진입하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어려워진다.
개인 기량이 월등하거나 바르셀로나처럼 팀 전체의 패스 실력이 세계수준이 아닌 이상, 공격하는 것 자체가 힘겨워진다는 의미였다.
지난번 SS 라치오는 에르나네스에 의존하던 문제점이 부각 되어 경기력이 크게 저하됐는데, 다음 원정에서도 똑같이 당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때까지, 조금이라도 더 대비를 해두려고 한다.
얼마 뒤, 그라운드에 장비들이 놓였다.
『훈련』
시야를 가리기 위해 적절한 곳에 모형이 세워졌고, 앞쪽에 놓은 빨간색의 디스크 콘은 노노가 패스를 보내올 두 개의 장소를 나타내고 있다.
노노가 축구공을 차기 직전까지의 동작은 보이지만, 축구공을 차기 직전 모형에 가려 모습이 사라진다.
그리고 하프라인이 넘어야 축구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그때까진 방향도, 또 패스가 어떠한 식으로 올지도 알 수 없다.
땅볼이 될 수도 있고 머리를 겨냥한 높은 패스일 수도 있으며, 아니면 가슴이나 발로 트래핑 해야 하는 어정쩡한 높이로 날아올 수도 있다.
“준비됐어?!”
“JA!!”
투웅-!!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노노가 축구공을 보내왔고 한두 번 적응하는 과정을 마치고 볼을 받아내는 횟수가 늘어나면, 모형과 콘의 개수도 늘어났다.
가끔은 위치도 바꿨다.
그렇게 90분을 꽉 채운 훈련이 끝나고.
“하아- 하아- 하아-”
난 바닥에 널브러져 누운 채, 숨을 헐떡이며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노래지지 않은 거로 봐선, 아직은 살만한가 보다.
“좀 더 할래?”
“아뇨. 절 죽일 셈이세요?”
“하하. 일어나. 아이싱을 해야지.”
“네.”
정리는 자신이 하겠다고 말한 노노가 열을 식히는 장비들을 내게 건네주었다.
하지만 마냥 앉아만 있는 것은 미안했던지라, 난 노노가 정리하는 내내 근처에서 그의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몇 번은 직접 도구들을 정리하려고 했지만, 노노는 그때마다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저 쉬고 있으란다.
그렇다면?
“우리 집에 같이 가요. 점심이나 같이 먹죠.”
“나쁠 건 없지. 그래도 돼?”
“그럼요. 얼마든지.”
누나가 요즘 한국의 포털사이트 사정을 알려준 이후, 난 매일같이 내 이름으로 올라오는 기사들을 살펴보는 중이다.
그중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댓글이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 덴마크로 떠난 게 기특하기도 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있는지를 걱정하는 기분 좋은 말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내 대답은 이렇다.
비록 이것을 알려줄 방법은 없겠지만.
난 그라운드 안팎에서 한국만큼이나 많은 친구를 사귀었고, 하루하루 즐겁게 축구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이제 더는 저녁 반찬이나 생필품을 구매하는 것에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할 때면,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내 꿈은 틀리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약간은 꿈이 달라졌다.
궁극적으론 변하지 않았지만, 그 형태가 조금 바뀐 것이다.
“일단 클럽하우스에 들렀다가 가자. 마사지를 좀 받고 가.”
“네. 그렇게 할게요.”
정리를 끝낸 노노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클럽하우스로 향했다.
그리고 내가 마사지를 받는 동안, 노노는 샤워를 하고 오겠다며 라커룸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출근한 트레이너에게 몸을 맡겨둔 채, 난 노곤함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찰싹-!!
“욱-!!”
“뭐야? 잠든 거야?”
“어? 제가 잤어요?”
“완전. 곯아떨어졌던데?”
요즘은, 축구선수로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 돈을 많이 버는 것만큼이나 마음에 들었다.
돈을 많이 버는 것뿐만이 아니라, 축구선수로 성장하고 있는 내 모습과 필드에서 경험하는 것들에 행복해하는 요즘이다.
언젠가 전용기를 사는 그 날까지.
난 축구를 열심히 할 생각이다.
그럼, 그다음은 뭘까?
거기까진, 아직 생각해보지 않은 상태다.
“타. 어서 가자. 배가 고파 쓰러지겠어.”
“네. 엄마한테도 말해뒀어요.”
“좋네. 와인이라도 사갈까?”
“아뇨. 그것보다는 과일이 좋겠어요.”
“그럼 잠깐 들렀다가 가자.”
어느덧 평범한 하루가 되어버린 시간을 마무리하며, 난 노노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낮게 걸린 구름과 푸른 하늘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