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511)
510화 Loyalitat (5)
2015년 9월 7일. 베이루트, 레바논. 하페즈 엘 아사드. 카밀 샤문 스포츠 시티 경기장(Camile Chamoun Spots City Stadium. Hafez El Asad. Beirut, Lebanon).
내전으로 인한 총격전, 모래바람, 에어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버스, 그리고 이것.
푹-
“……에이, 씨팔.”
“어우, 장난 아니다 이거.”
2018 러시아 월드컵 2차 예선 세 번째 경기가 펼쳐지게 될 이곳 카밀 샤문 스포츠 시티 경기장은, 우리가 생각해 왔던 것보다도 훨씬 더 그라운드 사정이 나빴다.
손질한 것인가 싶은 잔디는 울퉁불퉁했고, 그마저도 듬성듬성 돋아나 있어 가까스로 흙바닥을 면한 곳도 보였다.
흙 역시 진흙인 것처럼 질퍽거린다.
훈련 전 적응을 위해 피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중, 첫발을 내딛자마자 욕설을 내뱉었던 자철이 형이 나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야, 되겠냐?”
“모르겠어. 살짝 미끄러운 것 같은데.”
“그렇지?”
주작 구장에서 훈련할 때부터, 삼파올리 감독님은 현지 경기장의 사정은 이것보다도 더 나쁠 거라고 말씀을 하셨다.
만수르가 우리를 위해 준비해 둔 연습구장 역시 이곳과 비슷하도록 꾸며져 있었는데, 거기보다도 사정이 나쁘니 말 다 한 셈이다.
“아- 공기도 더럽네, 진짜.”
한국을 떠나기 전 마스크를 잔뜩 챙겨서 왔는데, 훈련 때도 불편함을 감수하고 껴야 할 정도로 공기 사정도 나빴다.
베이루트 주변으로 불어 닥친 모래폭풍으로 인해 도심임에도 숨을 들이쉴 때마다 쇳내가 났다. 기관지가 예민한 이들은 아까부터 계속 헛기침을 하는 중이다.
도대체 어쩌자고 이런 곳에서의 경기를 강행했는지, 전후 사정이야 전부 알고 있지만 참 한심하기까지 했다.
“아우, 유치해.”
“뭐가?”
“정말 몰라서 묻는 거냐?”
“?”
영문을 몰라 하는 창훈이에게, 난 지금의 이런 것들을 보라고 했다.
“아예 대놓고 지랄이잖아.”
“뭐, 어쩔 수 없지.”
“그건 맞는데. 짜증 나지 않냐?”
“나는 별로.”
“속도 좋다. 난 X나게 짜증 나는데.”
장애물은 반드시 뛰어넘고 벽은 깨부수라고 배워 온 나이기에, 이런 것들만 보면 어떻게든 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해 손발을 가만히 둘 수 없다.
경기장 곳곳을 살핀 후에 자리로 돌아와, 나는 일부러 더 큰 목소리로 답을 하고 동작도 크게 가져가며 훈련 분위기를 활기차게 만들려고 했다.
컨디셔닝과 적응에 초점을 둔 훈련 내내, 우리는 최대한 부상을 피하고자 노력했다.
그런 뒤에는 양쪽 페널티 박스 주변과 코너플랫으로 가, 이번 경기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세트피스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중간중간 한국에서부터 동행한 보안 요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염탐 시도가 계속해서 있었나 보다.
“후우-!”
퍽-!!
촤르르르르륵-!!
몇 번 살짝 미끄러지긴 했지만, 킥을 계속해서 하다 보니 이곳의 그라운드 사정에도 적응이 되어가고 있다.
혹시나 싶어서 챙겨온 TF(Turf Shoes) 형태의 스터드도, 미끄러지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어 이곳의 잔디 사정에 가장 적합한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도 축구화를 번갈아 신어 가며, 본인에게 가장 맞는 스터드를 고르는 중이다.
‘역시, 안 되는 건 없네.’
포기를 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늘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가까이에 두고 있다.
***
2015년 9월 8일. 베이루트, 레바논. 하페즈 엘 아사드. 카밀 샤문 스포츠 시티 경기장.
.경기 시작 20분 전
레바논 0 : 0 대한민국
&Match-Up`s Best Eleven(대한민국/상대팀)
&Tactics(대한민국/상대팀) : 3-3-3-1/4-5-1(Flat)
GK ? 김승규 / GK ? 압바스 하산
CB – 홍정호/ RB ? 알리 함맘
CB ? 기성용 / CB ? 비랄 나자림
CB ? 김영권 / CB ? 유세프 모하메드
RWB – 김다온 / LB ? 왈리드 이스마엘
LWB ? 김진수 / RM ? 모하마드 하이다르
DM – 정우영 / CM ? 로다 안타르
RM – 이청용 / CM ? 조안 우마리
CM ? 권창훈 / CM ? 하이담 파우르
LM ? 구자철 / LM ? 하산 마툭
ST ? 김신욱 / ST ? 압바스 아흐메드 아트위
.
.
오늘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는 역습에 얻어맞은 뒤 끔찍이도 싫은 침대 축구를 경험하는 것이다.
반면 최고의 시나리오는 이른 시간에 선취골을 집어넣는 것이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호르헤 삼파올리 감독님은 승부수를 던졌다.
겉보기에 3-6-1 같은 3-3-3-1을 사용한 것인데, 펩의 전술과는 상당히 달랐다.
그게 바로 축구의 재미있는 점이랄까?
준비 과정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다.
[사이드백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
[위치는 기본적으로 다온이 더 높다.]오늘 우리의 전술 배치는 비대칭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진수 형은 공격보다는 수비에 조금 더 치중하고, 난 반대로 공격에 매진한다.
만약 내가 복귀하지 못한 상황에서 레바논이 역습을 한다면, 수비 진영이 반시계 방향으로 움직여 포백을 만드는 식이다.
그러다 내가 복귀하면 수비는 파이브백이 되었다가, 볼이 뒤로 돌면 성용이 형이 앞으로 전진하면서 제대로 풀백을 둔 포백의 형태로 다시 바뀐다.
또한 성용이 형은 빌드업 상황에서 라볼피아나(Lavolpiana)가 되어 주는데, 이를 돕는 게 우영이 형의 역할이다.
그리고 앞쪽의 미드필드는 청용이 형은 중앙 지향적으로 뛰고, 창훈이와 자철이 형이 중앙과 왼쪽을 유기적으로 오가며 넓은 범위를 커버할 예정이었다.
[상대가 공격하겠다고 하지만, 그건 속임수라 봐야겠지.]레바논의 감독인 미오드라그 라두로비치(Miodrag Radulovic)는 [“수비적으로만 임하지는 않겠다.”]고 했지만, 정말로 그럴 생각이었다면 공개 인터뷰에서 말하지는 않았을 거다.
모두가 선(先)수비 후(後)공격을 예상하는 상황에서 공세로 나오겠다는 건 예상을 뒤엎는 판단인데, 굳이 그것을 밝힐 이유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만약 그럴 의도였다면 [“어려운 경기다.”], [“수비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 따위를 했을 거라고 본다.
삼파올리 감독님의 예측과 전술에 나를 포함한 팀 전체가 동의하는 이유다.
그리고 이건 무척 중요하다.
선수가 감독의 전술에 의문을 가지는 것만큼 나쁜 것은 또 없기 때문이다.
“자, 가자! 한국!”
“어-이!!”
스크럼을 짜고 파이팅을 외친 후, 나는 늘 그래 왔듯 자리로 돌아와 앉아 라커룸이 조용해지기를 기다렸다.
중동 원정은 늘 까다롭기에, 강한 팀을 상대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지내왔다.
“후우- 다녀올게.”
이미지 트레이닝이 끝난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나 습하고 서늘한 복도를 걸었다. 날씨는 어제보다 굉장히 좋았지만, 여전히 모래 먼지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웜업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본 교민분들이 꽤 많았는데, 오늘은 그들을 위한 시합이 되어야 한다.
아까 시간을 들여 사인 요청에 전부 다 응해 드린 것도, 그것이 옳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기다리고 있는 복도로 들어서자, 레바논 선수들의 눈이 일제히 내게로 쏠렸다. 나름 중동의 복병이기에 라오스전과 같은 소동은 없었다.
하지만 나를 경계하고 있다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다.
라오스전만 뛰고 돌아가기로 약속된 흥민이 형이 오늘 경기에 나설 수 없으면서, 레바논의 언론은 나만 막으면 어떻게든 될 거라는 식으로 말했다.
그러나 이곳에는 나 말고도 좋은 선수들이 많고, 삼파올리 감독님의 부임 후 대표팀은 항상 ‘One Man Team’이 아닌 ‘One Team’으로 존재해 왔다.
내게 너무 신경을 썼다간, 예상치도 못한 펀치를 얻어맞고 휘청거릴 거다.
‘우린 월드컵 8강 팀이거든.’
지금도 꽤 많은 사람들이 만약 8강전 상대로 독일이 걸리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갔을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월드컵 8강은 순전히 운이었다며, 과거 수많은 나라가 그러했듯 이변을 만들어 낸 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고 한다.
진정한 강팀으로 불리기엔 여전히 증명해야 할 것이 많으며,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으로 가는 과정과 본선에서의 성과를 거둬야 한다고 말이다.
올바른 평가라고 생각한다.
우린 더 증명할 게 남았다.
“이 정도쯤이야.”
그러니 이런 유치한 방해 공작쯤이야, 미소 지어 웃어넘기면서 가볍게 눌러 줘야 했다.
과거의 대한민국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나 혼자만의 사명이자,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을 혼자만의 충성심(Loyalitat)에 관한 것이다.
[입장합니다-!!!]카밀 샤문 스타디움에서 음악이 울려 퍼지기 시작하고, 나는 다소 희뿌연 하늘 아래의 피치로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
.전반 13분
레바논 0 : 0 대한민국
장철주가 대한민국 축구협회장으로 부임한 후, 강하게 불어닥친 개혁의 바람은 연이은 성과 아래 그 영향을 조금씩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결정적이었던 건, 월드컵에서의 성적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끈 호르헤 삼파올리는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7번째 외국인 감독으로서, 그간 존재하지 않았던 DNA를 심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비엘사시즘에 입각한 축구 철학과 포백과 쓰리백을 오가는 유연한 전술이, 새로운 대한민국 대표팀을 만든 것이다.
또 같은 자리를 거쳐 간 모든 감독들이 그러했듯, 삼파올리의 시대에서도 황태자(皇太子)는 매번 등장하고 있다.
황태자를 넘어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한 김다온은 물론, 월드컵 이후 세대교체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얼굴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성장했군. 이젠 좋은 선수가 됐어.’
과거 김다온을 스카우트해 클럽에 강하게 추천했던 티아고 로보의 시선이, 한 어린 미드필드를 향한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말이야.’
SL 벤피카의 베테랑 스카우트가 권창훈을 처음으로 보게 된 건, 2013 FIFA U-20 월드컵 때였다.
김다온의 성공으로 대한민국 선수들에 대한 수요가 있었던 벤피카는 또 다른 한국인 유망주를 원했고, 그것을 위해 로보를 터키로 파견했다.
하지만 당시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끌었던 건 등번호 7번의 류승우였고, 결국 그는 석연치 않은 이적 파동 끝에 레버쿠젠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외에 등번호 14번의 송주훈과 9번 김현 정도가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쳤으나, 권창훈은 이라크와의 8강전 외에는 명확한 한계를 보였었다.
바로 이런 부분이, 유망주 스카우트의 어려움이라 생각하는 티아고 로보다.
생애 첫 한국인 스카우트 대상이던 김다온과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몇 차례 경기를 지켜본 것만으로 성공의 여부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유망주들은 일종의 ‘껍데기’ 안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고, 그것을 탈피하기 전이 가장 폼이 떨어진다.
샤르트르와 더불어 프랑스 최고의 지성으로 불리는 허무주의 철학자 겸 수필가 에밀 미하이 시오랑(Emil Mihai Cioran)이 말했듯,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두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망주 스카우트는 끈기와 타이밍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마치 니코 같아. 추천해도 되겠어.’
오늘 권창훈의 플레이에서 니코 가이탄을 떠올린 티아고 로보가, 결심을 굳히며 스카우트 리포트의 승인 부분에 사인을 적는다.
이후에는 특별한 목적이 없었기에, 그는 모처럼 한 사람의 축구 팬으로 돌아가 김다온의 플레이를 지켜봤다.
‘역시, 그때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어.’
셸란의 한 허름한 여관에서 숙식을 하며, 티아고 로보는 한동안 노르셸란에서 뛰던 김다온의 자취를 쫓았었다.
유럽의 축구팬들 사이에서도 과소 평가되는 덴마크 리그는 생각보다도 수준이 높은 무대이고, 그곳에서 김다온은 가장 어린 나이임에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었다.
그리고 어느새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축구선수 중 하나가 되어, 모든 축구 팬들이 눈으로 좇는 남자가 되어 있었다.
“큭큭큭큭큭.”
비록 자신이 한 일은 선수를 보고 팀에 추천한 것이 전부였지만, 이런 순간에 스카우트가 느끼는 감정은 늘 특별했다.
같은 경험을 해 보지 않는 한 누구도 알 수 없는, 그런 종류의 뿌듯함과 행복함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
{“^#$?@#$!!”}
“응?”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져, 티아고 로보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는 빠르게 시선을 움직여 볼이 머무는 곳을 쫓았고, 하프라인 주변에서 볼을 발밑에다 둔 채 부스터를 축구화의 뒤쪽에 붙여 둔 것처럼 달려 나가는 한 남자를 보았다.
바로.
‘다온?’
***
예상대로, 레바논은 페널티 박스 앞쪽에 두 개의 플랫을 만들어 강한 수비를 했다.
5명의 미드필드 중 중앙에 서는 조안 우마리(Joan Oumari)를 센터백 사이로 끌어내리면서 파이브백을 구성하고, 그 위에 포백 플랫을 얹는 식이었다.
그리고 과거 우리에게 참사를 안겨다 준 압바스 아흐메드 아트위(Abbas Ahmed Atwi)를 최전방에다 두어, 역습을 통한 한 방을 노리는 듯했다.
지금도 살짝 빌드업이 불안해서 볼을 빼앗겼는데, 레바논은 지체없이 최전방의 아트위를 찾았다.
전반 초반에도 한 차례 이런 패턴을 경험했었던지라, 볼이 왼쪽에 있어 중앙에 치우쳤었던 내가 바로 아트위를 향해 움직여 들어갔다.
난 어렵지 않게 볼을 빼앗았고.
촤?악!
“…….”
“?!!”
거친 태클을 시도한 하이담 파우르(Haytham Faour)를 가볍게 뛰어넘으면서 속도를 붙여 계속 앞으로 달려 나갔다.
본래 항상 9명의 수비수를 두었던 레바논은 8명만 남게 되자 혼란을 겪는 듯했고, 이런 혼란을 놓치지 않고 파고든 청용이 형에게 패스를 보냈을 때 결과가 만들어졌다.
페널티 박스 안쪽으로 진입한 형을 레바논의 왼쪽 풀백 왈리드 이스마엘(Walid Ismael)이 잡아챈 것이다.
이건 명백한 페널티킥이었고, 러시아 출신의 드미트리 마쉔체프(Dmitriy Mashentsev)가 휘슬을 불며 페널티 스팟이 있는 쪽을 왼손으로 가리켰다.
‘그렇지-!’
전반전 15분에 얻어낸 페널티 킥.
벌써부터 레바논 선수들이 침대를 깔려고 했던지라, 이번 기회는 우리에게 무척 중요한 것이었다.
“다온아-!!”
청용이 넘어진 근처로 다가간 자철이 형이 나를 불렀고, 벤치 쪽을 흘끗 바라본 나는 감독님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한 뒤에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
(김주성) – MBC 아나운서
“지금은 김다온 선수가 차는 것 같죠?”
(안정환) – MBS 해설위원
“아- 당연히 김다온 선수가 차야죠.”
(김주성)
“왜죠?”
(안정환)
“그…… 지금 가장 강하게 찰 수 있는 선수 아닙니까? 레바논이 벌써부터 침대 축구를 하고 있는데, 김다온 선수가 강한 슈팅으로 상대의 기운을 좀 꺾어 놓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또 중동 쪽 선수들이 그런 분위기에 약하거든요.”
.
환하게 미소 지으며 다가오는 청용이 형과 하이파이브를 나눈 후, 페널티 스팟 주변에서 신경전이 한창인 자철이 형의 옆으로 다가가 레바논의 골키퍼를 밀쳐 냈다.
[에?이!!]뭐가 그리 억울한지 압바스 하산(Abbas Hassan)은 손을 들어 올리며 반응했고, 난 그걸 가볍게 외면했다.
그러곤 조금 전까지 그가 서 있던 곳의 잔디 상태를 면밀하게 살폈다.
‘역시.’
지금 압바스 하산이 했던 일은, 신경전을 벌이는 척 연기를 하며 내가 디딤발을 놓을 만한 곳의 흙 상태를 망가뜨리는 일이었다.
축구를 하는 곳 어디에서나 흔히 일어나는 일로, 특별히 중동이라 더럽게 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어딘가에서 잔디를 뚝 떼어 가져온 자철이 형이 내게 꼼꼼히 물어가며 잔디를 흙 위에 덮었고, 여전히 엉망인 그라운드를 정돈한 뒤에 굽혔던 허리를 폈다.
“휴우-”
몸을 똑바로 편 뒤, 고개만 살짝 내려 스터드를 확인한다.
흙과 잔디 조각들로 범벅이 된 스터드는 언제 미끄러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고무 소재로 만들어진 TF라 잘 버텨 주는 중이다.
본래는 풋살에 조금 더 적합하지만, 이런 질척거리고 미끄러운 잔디엔 다른 스터드보다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아까만 해도 루즈볼을 경쟁할 때 오히려 레바논 선수가 먼저 넘어지는 등, 스터드를 바꾼 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
볼을 놓아둔 곳을 한 번 슬쩍 쳐다본 후, 신중하게 보폭을 재며 조금 뒤로 물러섰다.
방향은 이미 정해 두었고, 그 선택에 의심은 없다.
남은 건 정확히 있는 힘껏 차는 것뿐.
삐?익!!
주심의 휘슬 소리를 들은 후, 잠깐 멈춰서 있던 나는 가볍게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프리킥을 찰 때와 마찬가지로, 세 번의 스텝이다.
처음엔 왼발.
다음은 오른발.
다시 또 왼발.
그리고.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낮게 깔려 나간 축구공은 순식간에 골라인을 통과했고, 다이빙을 하기 직전의 자세에서 멈춰선 하산은 뒤늦게 결과를 확인하고 있다.
그대로 뒤돌아선 나.
환호하는 교민 분들과 동료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난 가장 먼저 다가온 자철이 형과 포옹을 나눈다.
“봤어? 저 새끼 완전히 얼었어.”
“어, 봤어.”
1:0.
레바논이 이번 경기를 앞두고 저지른 만행을 갚아 주기엔, 아직 터무니없이 모자란 스코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