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529)
527화 Was kommt als nachstes (8)
(김태현) – KBS Sports News 9 아나운서
“이틀 전, 대한민국 대표팀이 쿠웨이트 원정에서 3:0 승리를 거두고 돌아왔다는 것은 잘 아실 겁니다. 그런데 그 경기에서 김다온 선수가 보여 준 셀레브레이션이 연일 화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유혜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2015년 10월 11일. 대한민국.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필승로 368 파주풋볼팬타지움.
쿠웨이트와의 경기에서 내가 선보인 셀레브레이션은, 생각보다도 훨씬 더 큰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었다.
한국에 도착해 하루 휴식 후 어제 다시 파주에 모였을 때부터, 기자들은 하나같이 해당 셀레브레이션의 의미와 이유를 내게 물어왔다.
그래서 난 매우 솔직하게 답했다.
텃세에 짜증이 났다고 말이다.
“완전 열폭했던데?”
“뭐, 어때.”
쿠웨이트 축구협회가 내 셀레브레이션의 의미를 알게 된 건, 이 일이 화제가 되면서 소셜네트워크 등을 통해 급속히 퍼져 나가고 난 이후였다.
그들은 오늘 오전 ‘자신들은 그 어떠한 텃세도 부리지 않았다.’는 설명문을 발표, 내게 조장(助長)하지 말라면서 유감이란 내용을 전해 왔다.
하지만 이에 한국축구협회 역시 ‘선수가 그렇게 느꼈다는 것은 분명한 문제.’라면서, 중동 외의 국가 대다수가 원정 경기를 꺼리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고 답을 했다.
자칫 협회 간의 설전으로 발전이 되는 듯했으나, 듣기론 이쯤에서 마무리될 것 같단다.
“야- 진짜 한 건 했다, 너.”
“또 할 수도 있어.”
“참아, 인마.”
“에이씨. 쯧.”
훈련이 모두 끝난 오후 무렵, 장철주 회장님을 비롯한 한국 축구협회의 관계자가 파주를 찾았었다.
명목상으론 순항 중인 대표팀의 격려 차원이었으나, 실은 내게 주의를 주는 성격의 방문이었다. 외부로부터는 철저히 보호를 해 주겠지만, 나 역시 협회를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어떠한 의미인지 잘 알았기에, 나는 이번 월드컵 2차 예선에서는 도발을 자제하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그거 알아?”
“뭐?”
“난 분명 2차 예선이라고 했어.”
“미친 새끼. 또 하게?”
“뭐, 일본 만나면 해야지.”
“싸움닭 새끼.”
“미친 새끼야, 싸움닭 새끼야? 하나만 해.”
“둘 다지, 인마.”
내 머리를 슬쩍 밀어낸 자철이 형이 냉장고의 앞으로 걸어가 물병을 집어서 돌아왔다.
우리는 한국 시간으로 모레인 13일에 자메이카와 평가전을 치르고, 아영이와 함께 곧바로 출국을 할 예정인 나는 독일 시각으로 17일에 있을 브레멘전을 준비해야 한다.
독일, 쿠웨이트, 한국, 그리고 다시 독일로 향하는 힘든 일정이기에, 현재는 팀에서도 걱정이 컸다.
매일 정확한 시간에 폴커 브라운 박사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고, 그러면 나는 현재의 몸 상태라든가 기분과 같은 것들을 세세하게 보고를 했다.
조금 귀찮은 일이었지만, 팀에 왜 그러는지를 이해하기에 매번 성실하게 임하는 중이다.
“부럽다, 인마.”
“뭐가?”
“나는 뭐…… 없잖아?”
“아우크스부르크는 안 해 줘?”
“그런 게 어디 있냐. 네가 이상한 거야.”
“그런가? 뭐, 하긴. 작년까지만 해도 없었긴 해.”
“돌아가는 편은?”
“당연히 전용기지.”
“꼽사리 되냐?”
“탈래? 물어볼게.”
잠깐 고민하던 자철이 형은 자존심이 상한다며, 따로 돌아가겠다고 말을 했다. 어차피 구단에서 끊어 준 티켓도 있고, 정호 형과 함께 가야 한다면서 말이다.
아우크스부르크 소속 중 유일하게 선발되지 못한 동원이 형과 같은 경우, 오래도록 공격 포인트가 없다.
슬럼프가 꽤나 길어지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되었는데, 소속팀이 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본래부터 최전방이 아닌 2선 자원으로 뛰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럽게 스트라이커라고 인식이 굳어져 버렸다.
일단 선덜랜드에서의 첫 단추부터가 잘못 끼워졌고, 2012/13 시즌 아우크스부르크 임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이적료 문제로 꼬이면서 다시 반년을 날려 먹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가 바로 동원이 형이 20살~23살이던 때였는데, 유럽에서는 한 명의 축구 선수가 가장 많이 성장할 수 있는 시기로 여기는 나이대다.
가능하다면 임대로 클럽을 떠나거나 하다못해 하부리그에서 뛰는 한이 있어도, 이 시기에는 반드시 경기에 출전해야 한다는 게 유망주를 육성하는 이들의 공통적인 생각이다.
그래서 뮌헨도 피에르를 임대 보낸 것이고, 벤피카 역시 해당 나이대의 선수를 주전으로 쓰거나 뛸 자리가 없다면 되도록 임대를 보내려고 한다.
“갈란다, 나는.”
“그래. 잘 자고.”
“야, 형한테. 안녕히 주무세요 해 봐.”
“잘 자, 구자봉.”
“야! 내가 너보다 인마, 4살이나 많아. 이 새끼가.”
“으악-! 사람 살려-!!”
나를 덮친 자철이 형이 팔꿈치로 몸 여기저기를 무자비하게 눌러 댔고, 형한테 버릇없이 군 것은 알았던 나는 비명을 지르면서 그냥 곧이곧대로 받아 주었다.
이렇게 해야 다음에 또 놀리는 것을 받아 주지, 안 그럼 영락없이 감정이 상해 버린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GG. GG. 항복, 항복, 항복.”
“형님 잘못했습니다, 해 봐.”
“형님 잘못했습니…… 켁.”
“짜식이 말이야.”
침대 위에 던져 두었던 흰색 타월을 들어 올려 투항해 버린 나.
그제야 만족한 것인지, 손바닥을 탁탁 털어 보인 자철이 형이 만족스러운 미소로 방을 나섰다.
파주 NFC의 숙소는 어지간해서는 취침 시각 전까진 문이 활짝 열려 있는데, 자철이 형이 나서자마자 창훈이가 뽀송뽀송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바톤 터치냐?”
“어?”
“아냐, 아무것도. 왜?”
자세를 고쳐 잡고 앉자, 맞은편에 의자를 끌고 와 앉은 창훈이가 지난번의 이야기를 꺼내 든다.
“일단, 이야기는 해 보고 싶은데…….”
“그래? 그럼, 에이전시 연락처 줘 봐.”
“어. 잠깐만.”
“…….”
창훈이가 휴대폰을 만지는 동안, 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휴대폰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렇게 나는 창훈이 에이전시의 번호를 따로 전달받았고, 최대한 빠르게 벤피카 쪽에 이야기를 전할 것을 약속했다. 이따가 잠들기 전에 메시지를 보내면 될 것 같다.
“일단 거기, 청용이 형도 있으니까.”
“응. 그것도 좀 컸어.”
“그래- 말이 통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으면 낫지. 그런데 넌 진짜 잘할 거다. 군 문제만 해결되면.”
“……하아~”
당연하게도, 창훈이 역시 군대 이야기에 무척이나 민감했다. 운동선수의 직업수명은 무척 짧은 편이고, 언제 어떻게 부상으로 커리어를 날려 먹을지도 모른다.
특히 우리 한국은 군대라는 매우 특수한 사정이 더해져 있기에, 유럽 진출을 원하는 어린 친구들에게도 이 문제는 항상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현시점에서 창훈이가 군 면제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2016년 올림픽과 2018년 아시안 게임 정도일 것이다.
가능성은 아시안 게임이 더 높다고 볼 수도 있지만, 항상 그래왔듯 어떠한 대회건 쉬운 경우는 없다. 특히나 두 대회 모두, 변수가 큰 U-23이다.
“그래도 일단은 기회가 있다는 거니까. 다치지만 않으면 가능성은 있어. 무슨 말인지 알지?”
“응.”
“어, 그래. 그 말 하려고 왔냐?”
“응. 왜? 할 말 있어?”
“아니. 갈 때, 문 좀 닫고 가라고.”
“그래. 잘 자, 형.”
“어, 너도~”
딸깍-
요즘 부쩍 느끼고 있지만, 나의 대표팀 내 역할이 많이 바뀐 것 같다.
월드컵 때까지만 해도 막내였는데, 지금은 더 어린 친구들도 생겼고 형들도 예전만큼 관심을 주지는 않았다.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거니라고 생각해서라는 것을 알기에 서운하지는 않았지만, 클럽에서 뛰던 때와 다른 종류의 책임감을 짊어진다는 기분도 들었다.
그게 무겁지는 않느냐고?
‘글쎄, 별로?’
요즘도 가끔 알리안츠 아레나를 찾은 한국 팬들을 만날 때면. 또 그분들이 순전히 내 경기를 보러 머나먼 독일까지 비싼 돈을 주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될 때면, 이런 책임감을 짊어지는 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애국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 또 나 때문에 힘이 난다는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나는 늘 대표팀에서 그런 생각을 가진 채 생활하고 있고, 시합 때는 패배하고 싶지 않다는 원초적인 욕구에만 의존한 채 경기를 뛰는 것 같다.
그래서 별로 부담이진 않다.
독일이나, 한국이나.
‘내 축구는 똑같은걸.’
하루 종일 축구를 하며 좋은 사람들과 잔뜩 수다를 떤 하루의 끝에서, 난 잠을 청할 준비를 한다.
그런데 뭔가 조금 허전…….
‘아차-! 빵훈이!’
큰일 날 뻔했다.
얼른 손을 머리맡으로 뻗어 휴대폰을 손에 쥔 뒤, 화면을 켜곤 티아고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또 기왕 화면을 켠 김에, 아까 도착한 아영이의 답장을 확인했다. 그녀는 오늘 처갓집이 아닌 우리 집에서 쉬고 있고, 누나와 함께 종일 강남 시내를 돌아다녔다.
내일은 양가의 가족들 모두가 상암을 찾을 예정인데, 좋은 결과를 만들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었다.
까톡-
한국에서 취업 후 나보다 더 바쁜 누나는, 모처럼 아영이와 함께 행복한 하루를 보낸 것 같다.
사진 속 누나는 환하게 웃고 있었고, 난 두 사람이 무척 잘 어울린다면서 사이가 너무 좋아 보여서 기분이 무척 좋다고 답을 했다.
까톡-
뭐?
반사적으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나는, 그 즉시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애라고?
누나가?
누구랑?
– 왜.
“누나 연애해?”
– 왜? 난 연애하면 안 돼? 넌 결혼했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 누구? 누군데?”
– 있어. 나중에 더 잘되면 말해 줄게.
“이상한 놈 아니지?”
– 얘는. 누나 못 믿어?
“아니, 그건 아닌데.”
그나저나, 아영이는 사귀는 사람을 아는 건가?
– 응. 오늘 같이 봤어.
“뭐? 부모님은?”
– 봤어.
“왜 나는 안 보여 주는데?”
– 니가 제일 까탈스럽게 굴 거니까. 나는 올케한테 안 그랬는데, 너는 왜 그러니? 진짜.
잘 알다시피 우리가 예전 한국에서 힘들었을 때, 누나가 누구보다 큰 고생을 했다. 부모님도 물론 큰 고생을 하셨지만, 개인적으론 누나가 제일 힘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축구로 돈을 벌기 시작한 뒤론, 누나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했던 거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고, 그렇기에 누나와 결혼하려는 남자는 꼭 괜찮은 사람이어야 했다.
– 다온아~ 누나 믿지?
“……다음에 보여 줘.”
– 그래~ 그거면 돼. 아니다 싶으면, 누나가 걷어찰 거야. 네가 내 동생인 것도 아는데, 뭐.
“누나 울리면 내가 당장 찾아간다고 전해.”
– 아이구, 우리 동생. 인제 다 컸네?
“아~ 시끄러워. 끊어!”
딸깍-
보나 마나, 지금 통화는 스피커폰이었을 거고 내가 끊고 난 뒤에 두 사람이서 배를 잡고 웃고 있을 게 틀림없다.
그래서 난 그거면 되었다 싶어, 믿어 달라는 누나의 말을 듣기로 하며 다시 잠을 청하려고 했다.
그나저나, 대체 누구일까?
“……아~ 씨, 잠 다 깼네.”
결국 잠이 들 것 같지 않았던 나는, 불을 켜고 카드키를 챙긴 후에 객실의 밖으로 나섰다.
잠을 택한 사람들의 방은 문이 닫혀 있었고, 나는 저 멀리 새어 나오는 불빛과 웃음소리를 따라서 걸음을 옮겼다. 위치로 보아서 저긴 현우 형의 방이다.
아마 의조 형과 재성이 형이 함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멤버가 예상 그대로였다.
“뭐 먹어?”
“응? 안 잤어?”
“뭐 먹는데?”
“과자, 과자. 너도 먹을래??”
“어, 좀 줘봐.”
성인 남자 네 명이서 과자 몇 봉지를 까고 둘러앉은 지금, 나는 과거 리스본에서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바로, 과자 가족.
‘……니모.’
순간 니모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지나 기분이 조금 그랬지만, 난 금세 표정을 털어내곤 형들의 사이에 끼어 대화에 참여했다.
지금 형들은 아이돌 그룹을 말하는 중이다.
“야, 넌 누가 제일 예쁜데?”
“미쳤냐? 얘한테 그걸 물어?”
“왜?”
영문을 몰라 하는 재성이 형을 현우 형이 타박을 하고, 씨익 웃어 보인 나는 당연히 내 와이프 아니겠냐며 비빌 데에 가져다 비비라고 말을 했다.
“아~ 맞네. 이 새끼, 공처가지.”
“어허~! 쓰읍! 애처가거든?”
잘못된 부분을 분명히 잡아 주며, 난 꽤 오랜 시간 형들과 수다를 떨었다.
바로 이런 것들이, 긴 비행과 힘든 스케줄을 견딜 수 있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라 여기면서.
***
2015년 10월 13일.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마포구 성산2동 월드컵로 240. 서울월드컵경기장.
.경기 시작 80분 전
대한민국 0 : 0 자메이카
&Match-Up`s Best Eleven(한국/상대팀)
&Tactics(한국/상대팀) : 4-2-3-1/3-5-2
GK ? 조현우 / GK ? 안드레 블레이크
RB ? 김다온 / CB ? 숀 커밍스
CB ? 홍정호 / CB ? 업스톤 에드워즈
CB ? 김영권 / CB ? 아드리안 마리파
LB ? 박주호 / RWB ? 로자리오 해리엇
CM ? 정우영 / LWB ? 랜스 라잉
CM ? 기성용 / CM ? 에롤 스티븐스
RAM ? 이재성 / CM ? 사이먼 도킨스
CAM ? 권창훈 / CAM ? 자일스 반즈
LAM ? 김민우 / ST ? 드숀 브라운
ST ? 황의조 / ST ? 대런 매톡스
.
.
대략 40분 전 상암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반겨 준 것은 지원을 통해 뽑힌 꼬마 아이들이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는 마스코트 키즈로서 함께 입장할 아이들이었기에, 난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한 명 한 명과 손바닥을 마주쳤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눴겠지만 말이다.
피치에서 꼬마 아이들을 만나는 건 늘 환영이다.
결국엔 그들이 어른이 되어 축구팬이 되게끔 하려면, 좋은 기억을 남겨 줘야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 난 조금 다른 이야기 중이다.
– 조금 당황하고 있는 것 같아.
[네. 안 그래도, 전에 질문을 받았었어요.]– 뭐라고?
[잠머가 훈련 때 스쳐지나 듯이 묻더라고요. 클롭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저는 좋은 감독인 것 같다고 답을 했었죠. 하지만 저는 항상 같은 대답을 했어요.]쿠웨이트 경기가 끝나고 호텔에 돌아왔을 때, 나는 위르겐 클롭이 EPL로 향했다는 기사를 읽을 수 있었다.
그의 행선지는 오랜 부침을 겪고 있는 리버풀 FC였고, 대다수의 언론으로부터 ‘환상적’이었다고 평가받은 취임 인터뷰 역시도 꼼꼼히 살펴봤었다.
[뭐, 확실히. 매력 있는 감독이기는 해요.]– 그렇지. 모든 선수가 좋아하는 감독이니까.
[네. 그렇다고 하더라고요.]지난 시즌 초반, 동원이 형이 도르트문트로 임대되어 클롭과 함께 생활한 경험이 있었다.
이후 통화를 나누게 되었을 때 클롭에 대해서 물었는데, 그때 돌아온 대답은 친구 같으면서도 강한 카리스마가 있고 모두가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위르겐 클롭은 클럽의 구성원 모두에 관한 모든 것들을 알았고, 그것을 꼼꼼하게 챙길 줄 아는 남자였다.
펩이 오직 자신이 관심 있는 사람에게만 친절한 것과는 달리, 사회생활을 무척 잘하는 유형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하지만 전, 클롭의 축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걸 뮌헨도 알고?
[아뇨. 거기까지 대답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하하. 그들이 알면 서운하겠다.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죠. 이 문제는 어디까지나 제 축구와 관련이 있는 거예요, 요나스. 제가 축구 선수로서 계속 성장을 하기엔, 클롭의 축구는 맞지 않아요.]EPL에서 클롭이 어떠한 모습을 보여 줄지는 모르겠으나, ‘게겐프레싱’은 지금까지 내가 해 온 것들과는 전혀 상반되는 개념의 축구였다.
기본적인 뿌리 자체가 ‘사키이즘’에 기반하고 있고, 이런 철학에서 풀백은 자유도에서 제한을 받는다.
측면 수비수가 때로는 수비형 미드필드가 되고 때로는 중앙 미드필드가 되는 형태의 변화, 즉 인버티드(Inverted) 풀백은 ‘사키이즘’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덴마크에서 뛸 때부터 중앙에서 뛰는 방법을 배워 왔고, 그게 바로 나라는 사람을 대변하고 있다.
그렇기에, 클롭의 축구는 나와 맞지 않다.
그가 변한다면 또 모르지만 말이다.
[요즘 뮌헨 쪽이 괴롭히나 보죠?]– 하하. 뭐, 그렇지. 클롭이 리버풀과 계약한 뒤로는 더욱 안달이야. 조건이 상승했어. 들어볼래?
[아뇨. 어차피 필요 없는걸요.]– 이거, 마음은 이미 떠난 것 같은데?
[설마요. 내기할래요?]– 큭큭큭, 아니. 네가 프로라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어. 그러니까, 사양할게.
[네, 요나스. 독일이 지금 몇 시였죠?]– 정오가 다 되어 가. 거긴?
[저녁 6시가 조금 넘었어요.]경기 결과를 확인하겠다는 말과 함께 요나스가 먼저 전화를 끊었고, 통화를 마친 나는 다시 라커룸으로 돌아왔다.
준비를 끝낸 형들은 복도에서 간단한 웜업 중이었고, 나도 얼른 옷을 갈아입은 후 간단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자, 가자-!!”
“네에-!!”
강찬일 코치님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우린 하던 행동을 멈추곤 경기 전 마지막 웜업을 위해 피치로 나아갔다.
경기 준비에 한창인 상암은 다소 어수선했는데, 축구가 펼쳐지는 곳 대부분 비슷한 모양새다. 이러다가도 경기 때가 다가오면,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갖춰지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것들 역시도 사랑했고, 무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몸으로 느끼며 스스로의 마음도 함께 다잡곤 했다.
오늘도 역시 마찬가지다.
“김다온 화이티잉-!!!”
어떤 남성 팬의 우렁찬 함성에, 나 역시 감사하다는 큰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러자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고, 일찍 안에 들어선 팬들을 향해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를 만들자 이내 큰 함성 소리가 뒤를 이었다.
챔피언스 리그도 좋지만, 유럽에서 뛰다 돌아와 치르는 한국에서의 경기도 무척 각별하다.
특히 쿠웨이트 원정을 치르고 온 지금은, 이 모든 환경이 감사하기만 했다.
우리는 당연히 오늘 자메이카의 선수단을 위해 최선의 환경을 제공했고, 그들이 가장 좋은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하도록 호스트(Host)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건만.
‘쿠웨이트 이 더러운 새끼들.’
비상식이란, 언제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법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