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55)
54화
전반이 끝나가는 지금, 관중석 한쪽에 조용히 앉아있는 사내가 있다.
경기 초반에 확인한 덴마크 수페르리가엔의 경기력은, 최초의 생각보다는 퍽 수준이 높다는 것이었다.
물론 EPL/SPL/분데스리가와 같은 빅리그에 견줄 수는 없겠지만, 벨기에 주필러 프로리그나 셀틱과 레인저스와 같은 유명 클럽이 있는 스코틀랜드 프리미어 리그보다는 확실히 짜임새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2011년을 기준으로 한 유럽 프로리그 랭킹에서, 덴마크 수페르리가엔은 터키의 쉬페르리그에 이은 12위를 차지했다.
이것은 위에서 말한 벨기에 주필러 프로리그(13위)와 스코티쉬 프리미어 리그(16위)보다도 실제로 높은 순위로, 현재 수많은 스카우트가 덴마크 리그를 찾는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오늘도 이곳 파르켄 스타디움엔, 더 수준 높은 리그에 속한 클럽의 스카우트 상당수가 자리했다.
하지만 이와는 상관없는 한 사람.
이 남성은 스카우트는 아니다.
그는 한국에서 온 남자다.
대한민국의 전(前) 국가대표.
바로.
‘진짜 잘하네.’
경기가 시작되기 전, 김다온이 본 인물은 그 설마가 맞았다.
며칠 전 티켓을 끊은 이영표는 어젯밤 쾨벤하운에 도착해 하룻밤을 보내곤, 말끔한 정신으로 파르켄 스타디움을 찾았다.
그리고 그가 지금까지 지켜봐 온 바에 따르면, 현재의 모든 상황이 벌어진 이유는 FC 노르셸란의 오른쪽 측면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해, 김다온이 뛰는 곳 말이다.
.
.
·전반 43분
FC 쾨벤하운 0 : 2 FC 노르셸란
캐나다의 작가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은 2008년에 편찬한 저서, 아웃라이어(Outlier)에서 그 유명한 ‘1만 시간의 법칙’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에 따르면 10년, 즉 1만 시간 동안의 연습이 최고를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었다.
하지만 여기의 이영표는 물론이고, 최고가 되어보지 못한 수많은 이들은 1만 시간의 법칙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부지런하고 꾸준한 연습이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긴 하지만,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노력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했다.
가장 쉽게 그것을 재능이라는 이름으로 표현할 수 있었고, 해당 분야에 대한 지능과 그것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성격, 그리고 해당 분야를 시작한 나이 역시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 모든 부분에 있어, 유일하게 재능만큼은 가지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이영표.
그렇지만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한 사람으로서, 축구를 보는 시각이 예전과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과거라면 몰랐을 필드의 비밀들이 보였고 덕분에 축구를 더 잘할 수 있게 되었지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저하된 신체기능이 그럴 수 없도록 만들었다.
‘쟤는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네.’
아직 후반 45분이 남아 있지만, 이영표는 김다온의 실력을 더 확인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면에서 대한민국의 동나이 대 풀백들보다 월등했고, 차기 대표팀 풀백 후보로 꼽히는 선수들과 비교해도 많은 부분에서 더 나은 기량을 뽐냈다.
전반 초반에 나왔었던 김다온의 엄청난 슈팅.
그것이 계기가 되어, 경기의 양상을 바꿨다.
구체적으로 말해, 김다온의 공격력을 경계한 FC 쾨벤하운이 왼쪽 수비의 공격가담을 줄이기 시작했고 그들이 포기한 만큼의 공간은 자연스럽게 FC 노르셸란의 것이 되어버렸다.
초반에는 FC 쾨벤하운의 왼쪽 측면 미드필드가 중앙으로 자주 파고들었지만, 풀백의 보조가 사라지게 되면서 사이드라인 근처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게 됐다.
하지만 이영표가 보기에, FC 쾨벤하운의 왼쪽 미드필드는 측면에서의 플레이에 능숙하지 못했다.
볼이 갈 때마다, 매번 공격의 템포가 늦춰진 것이다.
또, 그는 김다온과의 1 : 1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처음엔 사이드라인을 따라 볼을 길게 차 속도 경쟁을 펼쳐보았지만 단 몇 초 만에 뒤처졌고, 나중엔 힘으로 제압을 해보려고도 했으나 그것 역시 무의미한 시도였다.
공격수와 대치했을 때의 거리, 몸의 정면이 향하고 있는 위치, 볼과 선수에 대한 집중력과 판단력 그리고 민첩성 모두, FC 쾨벤하운의 측면 미드필드보다 김다온이 더 월등했다.
결국, 거기에서 시작된 변화가 현재 상황을 만들었다.
평생을 풀백으로 뛰어왔기에, 그는 누구보다 풀백이 경기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래도 아직은······.’
이영표는 결코, 김다온의 기량을 낮춰 보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현장에서 지켜본 김다온의 플레이는 소문으로 듣던 것보다 훨씬 더 나았다.
다만 현재의 모습만으로 비춰봤을 땐, 김다온 역시 자신이 빅리그로 진출했을 때 겪었던 문제를 똑같이 겪을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그건 십중팔구, 김다온이 더 좋은 축구선수로 성장하는 것을 방해할 것이다.
과거에 자신이 뛰었던 에레비디시는 분명 수준 높은 리그였지만, 제대로 된 측면 자원이 부족했던 곳이기도 했다.
측면 돌파를 시도하는 횟수와 크로스를 통해 만드는 득점 루트도 빈약했고, 무엇보다 측면 공격수들의 기량에서 아주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만약 이를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PSV를 떠나 토트넘으로 이적하는 대신 바로 그 아래 단계의 무대에 시선을 두었을 것이다.
포르투갈이나 프랑스에서 2, 3년 정도 적응기를 가지고, 좀 더 준비되었을 때 빅리그에 도전했다면 훨씬 더 나은 커리어를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이것은 지난 몇 년 동안, 이영표가 쭉 해왔던 생각이었다.
“······.”
하프타임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이영표는 턱에 손을 괸 채 줄곧 하나의 생각만을 이어갔다.
같은 실수를 저 어린 친구가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한.
지금 김다온에게 가장 필요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을.
축구나 인생 선배가 아닌 동등한 현역 선수로서, 그는 김다온의 눈높이에 서기로 결정한다.
***
·후반 36분
FC 쾨벤하운 1 : 3 FC 노르셸란
마침내 들어간 FC 쾨벤하운의 만회 골.
오늘 경기에서 처음으로 나온 제대로 된 크로스가, 다메 은`도예(Dame N`Doye)의 머리에 제대로 향했다.
“서둘러!! 아직 이 경기를 뒤집을 수 있어!!”
사이드라인으로 나와 큰 목소리와 손짓을 보여주는 건, FC 쾨벤하운의 감독인 로랜드 닐손(Roland Nilsson)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대체 어쩌다가······.’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로랜드 닐손은 토마스 딜레이니를 빼고 스피드와 개인 기량에 장점이 있는 파페 디우프(Pape Diouf)를 투입했다.
전반전에 일방적으로 밀린 이유가 팀의 왼쪽 측면에 있다는 사실은 명확했고, 왼쪽을 다시 살려야만 팀의 공격이 원활하게 돌아갈 것으로 판단한 데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그리고 후반 초반 이런 판단은 맞아떨어지는 듯했으나, 공격을 몰아붙인다는 게 너무 과해 그만 불의의 역습을 허락하고야 말았다.
0 : 2였던 점수가 0 : 3이 되어버린 순간부터, 닐손은 대체 어쩌다 이런 상황까지 왔는지를 고민하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덴마크 수페르리가엔의 성향상, 풀백에 의해 경기가 이런 양상이 되어버렸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닐손은 계속해서 헛발질을 거듭했고. 결국 경기가 끝날 때까지도 패배의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저.
‘운이 없었던 하루였어. 안 그래?’
왜 자신이 FC 쾨벤하운과 같은 거대한 클럽을 이끌면서도, 성적을 내고 있지 못하는지만을 증명할 뿐.
.
.
·경기결과
FC 쾨벤하운 1 : 3 FC 노르셸란
[골] 쇠렌 크리스텐센 : 전반 23분(안드레아스 라우드럽)토비아스 미켈센 : 전반 31분
니콜라이 스톡홀름 : 후반 21분(미켈 베크만)
김다온 ? 90분 출전(평점 8.1/팀 내 3위)
***
셸란, 덴마크. 파룸, 파룸 파크 2. 라이트 투 드림 파크.
같은 시간.
리그 1위 자리를 놓고 벌인 중요한 경기에서 승리한 FC 노르셸란 클럽하우스의 분위기는 굉장히 밝았다.
지긋지긋한 대(對) FC 쾨벤하운전 5연패를 끊어내는 승리였고, 명실상부한 전반기 최고의 팀으로 평가받을 수 있게 된 고무적인 결과였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한 남자.
“Hr? 결정해야 할 시간입니다.”
“그래. 알고 있네.”
“······.”
현재까지, 덴마크 수페르리가엔에 기록된 가장 큰 단일 이적료는 2005/06시즌 다니엘 아게르(Daniel Agger)가 리버풀로 이적할 때 받은 876만 유로(약 122억 원)다.
그리고 그다음이 2002/03시즌 FC 샬케 04로 이적한 크리스티안 폴센(Christian Poulsen)이고, 3위가 세리아 A의 클럽 AC 피사로 이적한 헨릭 라르센(Henrik Larsen)이었다.
그런데, 그 기록은 이제 곧 깨질 것처럼 보인다.
FC 노르셸란의 구단주 겸 단장 톰 버논은, 스태프에게 손짓해 5분 전에 걸려온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도록 지시한다.
잠시 뒤.
“Ola. 이제 결정을 했습니까?”
“네. 이제 그에게 전화를 걸어도 좋습니다.”
“멋지군요. 며칠 후에 다시 통화하도록 하죠.”
“네, 그럼.”
불과 두 달여 전, 톰 버논은 FC 포르투가 김다온에게 500만 유로를 제안했을 때 반색하며 그것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을 해보면, 당시 김다온이 FC 포르투의 제안을 걷어찬 것은 팀으로서 커다란 축복이었다.
현재 전화를 걸어온 클럽은 SL 벤피카로, 그들은 1250만 유로의 이적료와 함께 상당히 파격적인 조건 몇몇 가지를 FC 노르셸란에 제안했다.
물론 앞서, SL 벤피카의 대리인인 티토 파소스(Tito Passos)가 수차례의 비드를 진행해 왔다.
비드(Bid)는 축구계에서 가장 흔히 일어나는 일로, 예고 없이 불쑥 팩스나 이메일을 보내 이적을 제안함으로써 구단이 먼저 이를 검토하도록 만드는 작업을 의미한다.
보통 이 작업은 여러 차례에 걸쳐 진행되며, 만약 이 과정에서 상대의 반응이 미적지근하다면 태핑(Tapping)을 시도한다.
태핑은 흔히 탬퍼링(Tampering)이라는 단어로도 불린다.
이적해 올 팀보다 이적할 팀이 상대적으로 더 큰 리그에 속할 경우, 형식적인 비드에 반응이 없다면 태핑을 함으로써 선수가 기존의 팀을 떠나고 싶어지도록 만든다.
그 방법을 위해 활용되는 수단은 주로 돈이며, 만약 해당하는 팀이 챔피언스 리그에 뛰고 있다면, 그것 또한 선수에게 제시할 수 있는 카드가 된다.
물론 이것은 엄연한 불법이며, FIFA와 UEFA뿐만이 아니라 모든 축구협회에서 엄금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축구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이적을 보면, 구단 간의 이적료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 개인 협상이 완료된 경우를 굉장히 빈번하게 확인할 수 있다.
비드와 태핑은 축구 이적시장에 매우 오래된 관행이다.
그런 면에서, SL 벤피카는 굉장히 신사적인 태도를 보여준 셈이었다.
물론 그들로서는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FC 포르투는 이미 다닐루라는 오른쪽 풀백을 영입한 상황이라, 김다온의 이적에 있어 그리 열정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외의 다른 클럽들은, 아직 비드 단계에만 머물러 있는 수준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있어 김다온은 도미노였기 때문이다.
이적시장은 늘 한 선수의 이적이 다른 선수의 이적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연쇄적으로 일어나 마침내 거대한 그림으로 완성된다.
즉, SL 벤피카를 제외한 다른 클럽은 본인의 팀과 유럽의 이적시장을 주시하는 걸 우선으로 삼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SL 벤피카는 어디까지나 김다온의 영입이 최우선순위였고, 실제 이적료도 깜짝 놀랄 만큼의 수준이었던지라 FC 노르셸란으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김다온이 있는 FC 노르셸란의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던 톰 버논에겐, 지금 SL 벤피카와의 통화를 허락하는 일은 무척이나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적은 빠르게 진행되어 갈 것이다.
SL 벤피카는 FC 노르셸란이 해줄 수 없는 금전적인 약속을 해줌과 동시에, 축구선수로서 더 큰 무대로 나아간다는 게 어떠한 의미인지를 하나씩 깨닫게 해줄 거다.
무엇보다, 그들은 챔피언스리그에서 뛴다는 설렘을 충분히 말해줄 수 있는 클럽이었다.
아마도 머지않은 시일 내에, FC 노르셸란의 팬들은 듣고 싶지 않은 소식을 접하게 될 거다.
그들이 가장 사랑하게 된 17살의 어린 풀백이, 이 도시를 떠나게 될 거라는 말을.
드라마는 늘 모든 이들에게 공평한 결말을 보여주지만, 현실은 항상 누군가의 기쁨이 누군가의 슬픔이 된다.
현실은 더욱 동화 같고, 그래서 더욱 잔혹한 법.
사람들을 무르고 혼자 남게 된 톰 버논은 힘없이 주저앉아, 3년 전 낯선 이국에서 본 어린 소년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어린아이들은 참, 빨리도 크는군.’
1250만 유로의 기쁨보다, 지척으로 다가온 이별이 더욱 신경 쓰이는 FC 노르셸란의 구단주였다.
작가의 말
-덴마크 수페르리가엔의 순위는 와 , 의 2011년 5-6월 기사를 참고했고, 블리처와 골닷컴은 수페르리가엔을 11위, 월드풋볼은 10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덴마크 수페르리가엔은 굉장히 저평가 받는 리그이고, 다만 덴마크 리그의 폐쇄성과 빈약한 인프라. 그리고 덴마크 축구계 전반에 흐르는 축구철학이 많은 부분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2010년대 중반이 되기 전까진, 덴마크 출신은 빅리그에서 성공하기 어렵다라는 편견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적 시장의 탬퍼링은 불법이지만 굉장히 흔한일입니다. 실제 뉴스를 통해 자주 접하시겠지만, 개인간 합의는 끝나고 이적료 협상만 남았다는 기사도 많은 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