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554)
553화 Ein Schachmatt (5)
2016년 2월 13일. 10151 토리노 TO, 이탈리아. 코르소 가에타노 시레아, 50. 유벤투스 스타디움(Juventus Stadium. Corso Gaetano Scirea, 50. 10151 Torino TO, Italy).
.후반 30분
유벤투스 0 : 0 나폴리
세리에 A 1,2위가 만난 오늘의 경기.
그라운드엔 욕설이 가득하다.
이유는 바로, 홈 팀 유벤투스 FC의 지지부진한 경기력 때문이다.
{“죽어 버려, 이 X같은 깜둥아-!!”}
{“네가 최고라고?! X까-!!”}
{“깜둥이들은 다 필요 없어-!! 저런 시꺼먼 녀석들한테 어째서 우리가 돈을 지불해야 하는 건데?!”}
도를 한참 넘은 발언에도 불구하고, 타깃이 된 폴 포그바와 파트리스 에브라는 익숙한 듯 플레이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던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눈앞의 경기도 경기지만, 그보다 더 큰 고민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공격력이 완전히 죽는군.’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를 대표하는 전술은 아무래도, 포백을 기반으로 한 4-3-1-2라고 할 수 있었다.
모두가 FC 바르셀로나의 4-3-3을 뒤쫓으려고 할 때, 알레그리는 자신에게 본격적인 명성을 안겨다 주었던 4-3-1-2를 더욱 가다듬는 방법을 택했다.
이는 AC 밀란 시절에도 고스란히 이어졌고, 도중 지원이 끊기며 선수단 구성이 어려워지기 전까진 강인하고 피지컬한 자신의 색채를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시간이 조금 더 흐른 현재, 알레그리는 많은 부분에서 타협을 했다.
자신의 고집을 일정 부분 굽히면서 스쿼드의 특성을 살리고자 했고, 그에 맞춰 꺼내 든 플랫 형태의 3-5-2는 리드하고 있던 경기를 잠그는 데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이번 2015/16 시즌 유벤투스는 너무나도 많은 부상에 시달려야 했고, 바이에른 뮌헨전을 열흘 앞둔 현재도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알레그리는 오늘 나폴리와의 경기에서, 자신이 준비해 온 것을 확인해 보고자 했다.
팀의 세리에 A 14연승을 이끈 플랫 3-5-2를 과감하게 버리고, 여태껏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Doppio Regista(더블 레지스타)’형태의 4-4-2를 꺼내 든 것이다.
평소에도 상대에 맞춰 전략을 구성해 온 알레그리기에 이런 시도는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만, 실은 나폴리를 가상의 뮌헨으로 설정하고 거기에 맞춰 짠 전술이었다.
나폴리의 감독 마우리치오 사리 역시, 펩 과르디올라와 마찬가지로 점유율을 중시하고 높은 강도의 전방압박을 즐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유벤투스의 선수들은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왼쪽 미드필드로 배치된 폴 포그바는 감을 전혀 잡지 못했고, 투톱으로 나선 알바로 모라타(Alvaro Morata)와 파울로 디발라(Paulo Dybala) 역시 부진한 경기력으로 모두 교체되었다.
왼쪽 풀백인 알렉스 산드루를 포그바의 자리에 위치시키고 폴 포그바에게 펄스나인을 맡긴 뒤에야, 답답했던 숨통이 조금 트였다.
‘하지만 이건 안 돼. 뮌헨을 상대론 먹히지 않아.’
유벤투스의 측면 공격력은 두 명의 풀백과 좌우로 넓게 움직여 주는 스트라이커에 큰 의존을 하고 있다.
그리고 또 바이에른 뮌헨의 풀백들을 떠올려 본다면, 같은 방식으로는 성과를 만들기 무척 어려워 보인다.
김다온과 필리프 람의 기량은 유벤투스의 주전 풀백보다 월등히 뛰어나며, 최근의 폼도 굉장히 훌륭한 편이라 정면 승부를 펼치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새로운 전략으로 상대에 혼선을 주려고 했는데, 시범 격인 오늘 경기에선 조금 실망스러웠다.
센터백 자원이 고갈된 뮌헨보다 오늘 나폴리의 중앙수비진이 더욱 두텁다는 것 정도가, 오늘 알레그리가 희망을 걸어 볼 만한 유일한 요소였다.
‘뭐, 아직 시간은 많아.’
노련한 전술가인 알레그리의 머릿속엔, 기름칠을 하고 나사를 조여 줘야 할 부분이 떠오르고 있었다.
***
2016년 2월 14일. 86199 아우크스부르크, 독일. 뷔르거마이스타-울리히-슈트라세 90. 임풀스 아레나.
.전반 15분
아우크스부르크 0 : 1 바이에른 뮌헨
&Match-Up`s Best Eleven(뮌헨/상대팀)
&Tactics(뮌헨/상대팀) : 4-1-4-1/4-1-4-1
GK ? 마누엘 노이어 / GK ? 마윈 힐츠
RB ? 김다온 / RB ? 폴 베르베흐
CB ? 요주아 키미히 / CB – 홍정호
CB ? 데이비드 알라바 / CB ? 라그나르 클라반
LB ? 후안 베르나트 / LB ? 필리프 막스
DM ? 아르투로 비달 / DM ? 예프레이 하우레우
RAM ? 아르연 로번 / RAM ? 구자철
CM ? 티아고 / CM ? 도미니크 코르
CM ? 토마스 뮐러 / CM ? 피오트르 트로호프스키
LAM ? 더글라스 코스타 / LAM ? 카이우비
ST ?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 ST ? 라울 보바디야
.
.
제롬의 부상 이후, 우리는 세 경기 연속해서 중앙수비수 없는 라인업을 들고나왔다.
“잘했어-!”
“응. 패스가 좋았어.”
“이리 와, 토마스! 이 예쁜 녀석!!”
“내가 예뻐?”
“그거 참 뭐 같은 질문이네.”
“큭큭큭큭.”
경기 시작부터, 우리는 아우크스부르크에 자연스러운 우위를 확보했다. 필드플레이어 10명 모두가 볼을 지키는 데 능숙했기에, 점유율을 높이는 건 딱히 어렵지 않았다.
전반 3분부터 아우크스부르크의 골문을 두들기기 시작했고, 금방은 수비 라인을 무너뜨린 뮐러가 레비의 리그 24번째 득점을 도왔다.
코너플랫 부근에서 모여 이른 시간에 나온 선제득점에 기뻐한 후, 다시 자리로 돌아온 나는 복귀전을 치른 베르나트와 짧은 대화를 나눴다.
“기억하지? 트래핑 순간 강하게 압박해.”
“응.”
“좋아.”
지금 내가 베르나트에게 건넨 이야기는 자철이 형을 수비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일단 안정적으로 발밑에 축구공을 놓았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자철이 형은 다음 플레이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바인치얼의 공격 방식은 한쪽에 힘을 실어 두고 반대편으로 크게 전환되는 경우가 많은지라, 측면 공격수들은 높이 떠올랐다 가라앉는 패스를 트래핑할 때가 많다.
보통 그럴 때 수비수는 1.5~2M의 거리를 확보하는 것으로 만족을 하지만, 자철이 형은 오히려 압박을 해 주는 편이 훨씬 더 낫다.
지금만 하더라도, 예프레이 하우레우(Jeffrey Gouweleeuw)의 롱패스를 트래핑하려던 자철이 형이, 베르나트의 압박에 당황해 볼을 뒤로 흘려 버렸다.
스로인을 허용하게 되자, 자철이 형이 허탈해하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은근히 기복을 타는 자철이 형이기에, 당분간 반대편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저기는 이제 됐고.’
공격 전개의 핵심 자원인 자철이 형이 저런 식으로 막혀 버리게 되면, 아우크스부르크는 열에 여덟아홉은 내 근처의 사내에게 패스를 보내려고 한다.
‘역시. 이럴 줄 알았어.’
카이우비(Kaiuby)는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공격 자원으로, 득점력을 뺀 모든 부분이 준수하다는 면에서 동원이 형을 떠올리도록 만든다.
다만 동원이 형보다는 연계 능력이 약하고, 대신 더 좋은 피지컬과 드리블 실력을 지니고 있다.
지금도 그는 사이드라인을 따라 볼을 차 두고 달려 나가는 선택을 했고, 단단한 육체에서 나오는 강한 힘으로 나를 억누르려고 했다.
꽤 좋은 시도였지만, 한 가지 알려 줄 게 있다.
뮌헨 합류 당시보다, 난 2kg 정도 벌크업 됐다.
그리고 그건 살이 쪘기 때문이 아니다.
‘어디 그럼, 나도?’
탁-
“?!?!”
날 밀어낼 목적으로 뻗어 온 카이우비의 팔을 휘감는 느낌으로, 그의 오른쪽 어깨로 손바닥을 가져갔다.
그러자 스프린트 중 갑자기 휘청한 카이우비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는데, 결국 그는 축구공을 지켜 내지 못한 채 넘어졌고 이에 임풀스 아레나에서 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봐아-!!!”}
파울이라는 주장인 것이지만, 주심 플로리안 마이어는 이 정도로 파울을 부는 사람이 아니다.
주심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어째서 중요한지를 알려 주는 장면이라고나 할까?
난 가볍게 되찾아 온 축구공을 노이어에게 보낸 뒤, 이제야 몸을 털고 일어서는 카이우비를 바라봤다.
‘말했지만, 시도는 괜찮았어.’
만약 조금만 덜 정직하게 드리블의 방향을 정했더라면, 내가 접근하는 것을 1초 정도 더 늦출 수 있었을 거다. 그리고 그 1초가 차이를 만들 수도 있었을 거고 말이다.
물론 나는 그랬다고 해도 같은 결과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보다 볼을 찾아오는 게 약간은 어려웠겠지만, 그래도 결국은 승자는 나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난 현재의 몸 상태와 컨디션에 대한 큰 자신감을 느끼고 있다.
.
(이후재) – KBS Sports N 아나운서
“아- 힘에서 밀리지 않는 김다온 선수입니다.”
(한희준) – KBS Sports N 해설위원
“다른 동양인 선수들과 김다온 선수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가 바로 저 힘이거든요. 지금까지 빠른 선수는 있었지만, 힘에서 오히려 압도하는 선수는. 글쎄요. 제가 아는 범주 내에서는 차범근 선수 정도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재)
“최근 바이에른 뮌헨 유튜브 채널에서도, 가장 몸이 좋은 선수 중에 한 명으로 선정이 됐습니다. 다른 한 명은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오늘 리그 24번째 득점을 기록했습니다.”
***
.후반 45분
아우크스부르크 0 : 5 바이에른 뮌헨
넉넉한 승리를 눈앞에 둔 펩 과르디올라는 오늘 경기 내용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고 있었다.
후안 베르나트의 복귀로 기존 풀백들에게 휴식을 주는 게 가능해졌고, 또 티아고 역시 부진했던 경기력을 서서히 끌어올리는 모습이었다.
또 교체로 투입된 제바스티안 로데와 하피냐 역시, 비달과 김다온을 대신해 안정적인 플레이를 보여 주었다.
무엇보다 가장 고무적이었던 건, 선수 교체가 이뤄지는 과정에도 기본적인 철학이 유지되었다는 점이다.
‘충분히 가능하겠어.’
홀거 바트슈투버가 재차 부상을 당하면서, 코스타스 마놀라스가 복귀하는 3월 전까지 센터백이 없는 채로 경기를 소화해 내야 했다.
물론 하비 마르티네스와 데이비드 알라바가 꾸준히 센터백 임무를 익혀 오긴 했지만, 더 높은 수준의 팀과 경기를 할 때에는 분명 위험 부담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요주아 키미히를 센터백으로 돌린다는 발상은, 어째서 펩 과르디올라가 전술적 천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지를 말해 주는 부분이었다.
삑-! 삐?익! 삐—익!!
추가 시간을 한참 앞당긴 플로리안 마이어가 휘슬을 불어 경기를 종료시키고, 곧장 몸을 돌린 과르디올라가 바인치얼에게 다가가 악수를 교환한다.
“빈틈이 없더군요.”
“운이 좋았죠. 과찬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챔피언스 리그를 지켜보죠. 그럼.”
“고맙소.”
이제 아우크스부르크와 만날 일이 없는 바이에른 뮌헨이었기에, 과르디올라는 바인치얼의 응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먼저 패장을 들여보낸 펩 과르디올라가 주변의 팬들을 향해 박수를 보낸다.
그러자.
{“Pep-!!”}
{“?”}
{“Verlass uns nicht-!!”}
{“!!”}
지금 가까운 곳에서 터져 나온 과르디올라를 향한 외침의 뜻은, 자신들을 떠나지 말라는 것이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외침에 놀란 과르디올라가 눈을 동그랗게 만들자, 목소리를 높인 이와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박수와 환호성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Danke-!!”}
{“Wir lieben dich-!!”}
{“휘이익-!!”}
고맙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
또 뒤이어 휘파람 소리가 울려 퍼지고 나서야, 비로소 과르디올라는 얼굴에 미소를 띨 수 있었다.
그는 가슴팍에 손을 얹는 것으로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고, 서너 차례 박수를 친 후에 엄지를 치켜세우면서 복도 안으로 들어섰다.
여전히 그의 뒤에서는 많은 목소리들이 들려왔는데, 지난 12월 ‘PEPRAUS(펩 꺼져)’라는 해쉬태그를 내며 성토했을 때의 분위기와는 정반대의 것들이었다.
그리고 이 경험을 통해, 펩 과르디올라는 한결 홀가분해진 기분을 느낀다.
자신에게 그토록 분노를 했던 건, 어쩌면 자신을 그만큼 믿고 사랑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면서 말이다.
‘용서를 받은 건가?’
자신과 바이에른 뮌헨의 미래는 이미 결정되었다.
2016년 7월 1일에 자신은 맨체스터 시티의 감독으로 임명이 될 것이며, 바이에른 뮌헨 역시 카를로 안첼로티를 그들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맞이할 것이다.
이는 어떠한 경우에도 바뀌지 않을 일이며, 조금씩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는 게 옳았다.
팬들도 그것을 알고 있기에, 방금 전과 같은 상황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펩 과르디올라다.
‘마지막은 뮌헨을 위한 것도 나쁘지 않겠군,’
그토록 싫어했던 ‘Mia san Mia(Wir sind Wir)’라는 철학을 남은 기간 자신의 우선순위 중 하나로 놓아두기로 한 과르디올라의 얼굴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스며들어 있다.
.
.
.경기 결과(Bundesliga 21R)
아우크스부르크 0 : 5 바이에른 뮌헨
[골]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 전반 15분(토마스 뮐러), 후반 17분(티아고)김다온 : 전반 32분(F.K/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베르나르두 실바 : 후반 22분(김다온)
토마스 뮐러 : 후반 33분(더글라스 코스타)
김다온 ? 80분 출전(1골 1어시스트/평점 2.0)
MoM –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2골 1어시스트/평점 1.5)
***
2016년 2월 15일. 81547 뮌헨, 독일. 재베너 슈트라세 51-57. 바이에른 뮌헨 서비스 센터 및 훈련시설. 퍼포먼스 센터, 선수전용 식당/카페테리아.
다음 날 우리는 회복훈련을 위해 클럽하우스에 모였고, 분위기는 대체적으로 피곤했다.
경기 때문이냐고?
글쎄, 아마도 아닐 것이다.
“너도 끝내주는 밤이었어?”
“응. 거의 죽을 뻔했지.”
“큭큭큭큭.”
어제는 분데스리가 21라운드 경기일이기도 했지만,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2월 14일은 발렌타인 데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물론 이곳은 한국처럼 발렌타인 데이를 챙기는 문화는 아니다.
독일인 대부분은 꽃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상술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좋은 관계에 있는 부부나 연인은, 카드와 선물을 주고받으며 특별한 시간을 보낸다.
발렌타인 데이 때, 독일에서 란제리가 1년 중 가장 많이 팔리는 이유다.
꽤 화끈한 방식이랄까?
나도 어젠 그랬다.
“이제 일주일 남았어.”
“……응. 그러네.”
덕분에 약간 나른한 오전, 점심을 접시에 담아 온 나는 8일 앞으로 다가온 챔피언스 리그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유벤투스는 좋은 팀이야.”
부상 선수가 좀 된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좋은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제는 완벽한 박스-투-박스가 되었다는 평을 듣는 폴 포그바도 그중 하나다.
“아, 그래.”
“?”
“걔 인스타그램 봤어?”
“??”
폴 포그바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베르나르두 실바가 뭐가 생각났다는 듯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난 음식을 먹으며 얌전히 기다렸고, 잠시 뒤 나는 녀석이 보여 준 화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뭐야, 이거? 신발 아니야?”
“응.”
“그런데? 이게 뭐?”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화면엔 두 켤레의 축구화가 놓여 있었는데, 하나는 까만색이었고 다른 하나는 확 튀는 느낌의 개나리 빛 노란색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쪽 멘션에 읽을 수 없는 글이 적혀 있었는데, 아마도 이탈리아어가 아닐까 싶었다.
“Il nero e meglio del giallo.”
“뭐라고?”
“Il nero e meglio del giallo. 이건 이탈리아어야 친구. 그리고 그 뜻은…….”
어째서 베르나르두가 능숙하게 이탈리아어를 구사할 수 있느냐는 의문은, 곧이어 들려온 녀석의 목소리에 의해 말끔하게 사라져 버린다.
지금 베르나르두가 말한 ‘Il nero e meglio del giallo’의 뜻은 바로.
“검정색이 노란색보다 낫다.”
“…….”
“그냥 축구화를 뜻하는 말일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밑에 달린 해쉬태그를 좀 봐.”
폴 포그바는 자신의 스폰서인 ‘아디다스’와 축구화의 모델명을 시작으로, 못해도 스무 개는 되어 보이는 해쉬태그를 잔뜩 적어 두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쯤엔, ‘#WONDERBOY’와 ‘#REVENGE’가 덧붙여져 있었다.
“오, 이 개자식.”
지금까지 겪어 온 인종차별 경험들 중엔, 의외로 흑인들이 가해자인 경우가 꽤 많았다.
그들 스스로 인종 문제에서 늘 피해자임을 주장하면서도, 정작 동양인들의 앞에서는 본인들이 더 우월하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고는 했다.
대놓고 인종차별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이런 식으로 은연중에 저열한 생각을 드러낸다.
물론 그렇다고 포그바가 인종차별주의자란 건 아니다.
그저 지극히 평범한 ‘흑인이 동양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보여 준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눈감아 줄 생각은 없다.
“결심했어, 베르나르두.”
“말해 봐.”
“지금까지 많이 참아 왔다고. 그런데 그거 알아? 난 어느 때보다 확실하게 유벤투스를 박살 낼 거야. 그러니 너도, 최대한 나를 도와줘야 해.”
“바로 그거지, Amigo. 나도 그런 반응을 원했어.”
“그래.”
올 시즌 유독 인종에 관한 문제가 내 주변에 많았고, 그것들은 대부분 이탈리아에서 비롯됐다.
개인적인 경험상 벨기에가 최악이긴 했지만, 이탈리아 역시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 없는 나라다.
‘노란색이 더 낫다는 걸 보여 주겠어.’
피치 위에서 폴 포그바의 얼굴을 구겨 줄 것을 상상하면서, 난 굳은 의지를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