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616)
615화 das Vermachtnis (15)
수많은 감정이 피치 위에서 교차하고 있었지만, 그것들 대부분은 기쁨과는 거리가 멀다.
아쉬움, 분노, 자책.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몸이 실수를 만들 때마다, 선수들은 이러한 감정을 여과 없이 표출해 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라는 압박감에도 익숙해졌건만, 시간이 흐를수록 축구 경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것을 원초(原初)적인 것들로 돌려놓는다.
전술은 오래전에 이미 사라졌다.
연장전 후반의 시작을 앞두고, 선수들을 피치로 보낸 펩 과르디올라는 괴로운 기분을 느낀다.
“…….”
.
.
.연장 후반 00분
레알 마드리드 1 : 1 바이에른 뮌헨
벤치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펩 과르디올라가 머리에 양손을 얹고 있다. 만약 그에게 머리카락이 있었다면, 한껏 쥐어뜯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내 감정을 정리하고, 굳은 결의를 한 표정으로 일어서서 테크니컬 에어리어로 나아갔다.
“너희들이 최고다-!! 고개를 높이 들어!!”
지금 펩 과르디올라는 진심을 담은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그는 진정으로, 현재 자신과 함께하는 선수들이 최고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런 과르디올라의 목소리에 반응해, 피치 위의 선수들도 너나 할 것 없이 파이팅을 외쳤다.
“할 수 있어-!!”
“힘내!! 이제 조금 남았어!!”
“침묵하지 마!! 외쳐!!”
모두가 목청을 잔뜩 높일 때마다, 쉰 목에서는 쇳소리가 섞여 나왔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
이들에겐 오직, 눈앞의 승리만이 세상의 모든 것이다.
승리 없는 내일이란, 지옥이나 다름없을 테니까.
삐?익!!
다시 경기가 시작되고, 축구라 쓰고 처절함이라 읽는 15분이 흘러간다.
그리고 펩 과르디올라는, 이를 서글픈 얼굴로 지켜봤다.
“……빌어먹을.”
그는 당장이라도 피치로 달려 나가 뛰고 싶었다.
가능한 일이라면,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펩 과르디올라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다.
멀지 않은 곳에 선 지단 역시 마찬가지의 심정이다.
“잘하고 있어!! 마지막까지 집중해!!”
목이 아파지는 것을 느낀 지단이 물병을 집기 위해 몸을 옆으로 돌리고, 이를 지켜보던 펩 과르디올라는 홀린 것처럼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잠시 뒤, 두 감독의 시선이 맞닿았다.
“…….”
“…….”
바닥에 놓여 있던 두 개의 물병 중 하나가 날아들고, 과르디올라는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었다.
그러곤 둘은 미리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뚜껑을 비틀고 동시에 물병을 입가로 가져갔다.
이는, 그대로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
.
(대런 플레처) – BT Sports 코멘테이터
“치열한 경기 속에서도 우정은 피어나는군요. 지단이 과르디올라에게 물병을 건넸습니다.”
(스티브 맥매너먼) – BT Sports 공동-코멘테이터
“이런 경기라면, 그럴 만도 하죠.”
.
무심하게 물병을 바닥에 던진 두 감독은 이제, 다시 본래 그들의 역할로 돌아간다.
“후우~”
펩 과르디올라는 자신의 선수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슬펐다. 축구가 전술의 영역에서 벗어난 지금, 감독은 너무나도 무기력한 존재가 된다.
그저 이따금 소리를 질러 격려를 보내고, 실수를 최소화하도록 돕는 것 정도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펩 과르디올라는 감독으로서 완벽함을 추구하고 있었던 거다.
가족들의 서운함을 달래 가며, 모든 이들에게 일 중독이란 소리를 듣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여 왔다. 감독으로서, 그는 늘 새로운 영역에 발을 디디기를 원했다.
전술적으로도 그렇지만, 이러한 순간 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 이봐아-!! 지금은 파울이잖아-!!!”
그리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트로피를 거머쥐는 영광을 차지했음에도, 정작 오늘 펩 과르디올라는 열정적인 응원단 그 이상이 될 수 없었다.
토니 크로스가 베르나르두 실바를 밀어 넘어뜨린 순간, 펩 과르디올라는 대기심에게로 달려가 파울이 선언됐어야 한다고 소리를 질렀다.
결국 보다 못한 주심이 경기를 잠깐 멈췄고, 흐름이 끊겼다고 판단한 지단은 그대로 불만을 토로했다.
“진정해요. 너무 과하다고요.”
“과하다고? 내가?”
“펩! 펩!! 제발요. 모두가 힘들다고요. 지금은 파울이 아니었어요. 저런 몸싸움을 파울이라고 선언해 버리면, 경기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겁니다. 실바는 많이 지친 거라고요.”
“하-!”
“다음엔 경고를 꺼낼 겁니다.”
“그러든지!”
“…….”
대기심과 눈을 마주친 클라텐버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멀어지고, 레알 마드리드의 스로인으로 경기는 재개된다.
다니 카르바할의 스로인이 루카스 바스케스에게로 향하고, 재기 넘치는 플레이로 데이비드 알라바를 따돌린 그가 박스 안으로 크로스를 보내온다.
이에 다수의 선수가 몸을 띄워 올렸고, 가장 높이 뛰어오른 호날두가 축구공에 제대로 머리를 가져다 댄다.
그리고 그것은 골라인을 넘어선다.
“그렇지이-!!!”
{“–!!!”}
득점이라는 생각에, 산 시로는 잠시 들썩인다.
그러나 이내 마크 클라텐버그가 연신 휘슬을 불었고, 양손을 좌우로 크게 움직이며 선수들이 자신을 바라보도록 만들었다. 그러곤 넘어진 이가 있는 지점을 가리킨다.
공격자 반칙.
{“아…….”}
“휴우~”
안타까움과 안도가 크게 교차한 뒤, 가슴을 쓸어내린 펩 과르디올라가 넘어진 선수를 확인하곤 벤치에 있던 의료진에게 빨리 피치로 나가라 손짓을 보냈다.
피치에 드러누워 있는 선수는 다리에 쥐가 난 듯했고, 그가 넘어진 건 오늘만 벌써 여섯 번째다.
이에 펩 과르디올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기도를 보냈다.
‘제발. 제발 버텨 주게나.’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스스로가 펩 과르디올라는 너무 미워 참을 수가 없었다.
***
.연장 후반 06분
레알 마드리드 1 : 1 바이에른 뮌헨
어떻게든 뛰어 보려고 했는데, 아까 올라온 쥐가 다시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파앙-!
내 고통스러운 얼굴을 본 필리프라 축구공을 사이드라인 밖으로 멀리 걷어 냈고, 그것을 확인한 나는 다시 피치에 드러누워 오른쪽 다리를 들어 올렸다.
급하게 달려온 필리프가 경련이 온 부위를 풀어 주기 시작했고, 곧 폴커 브라운 박사님이 다시 등장했다.
“또 뵙네요. 너무 자주 봐도 좋지 않은데.”
“이런-! 자네는 지금도 그런 농담이 나오나?”
“죽상인 것보다야 낫죠. 안 그래요?”
“허-! 가만히 있게나.”
“넵.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는데요, 뭐.”
드러누워 있는 잔디가 얼마나 푹신하게 느껴지는지.
이대로 잠을 잘 수도 있을 것만 같다.
.
(정지현) – SBS Sports 해설위원
“정말 많이 뛰어준 김다온 선수입니다. 전반전 호날두를 막을 때부터 시작해서, 후반전 초반에는 제로니모 베가를 막느라 상당한 거리를 뛰었거든요? 여기에 또 현대 축구에서 풀백은 가장 많이 뛰는 포지션 중에 하나입니다. 센터백으로 포지션을 바꾼 다음에도, 넓은 범위를 커버하느라…… 네. 할 수만 있다면 힘을 불어넣어 주고 싶습니다.”
(배정세) – SBS Sports 아나운서
“이번 시즌 유럽에서 가장 많은 평균 거리를 뛴 김다온입니다만, 오늘은 무척 힘들어 보입니다.”
.
폴커 브라운 박사님의 치료가 끝나고, 몸을 일으켜 보라는 제안에 일어나고 싶지 않은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힘을 주어 디뎌 봤는데, 완벽하지는 않아도 뛸 수는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전력 질주는 장담하기 힘들다.
‘뭐, 어차피 다 그렇긴 하네.’
연장 전반 5분이 넘어서면서부터,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도 쌩쌩한 상태였다면 득점을 만들어 냈을 만한 상황에서 실수를 범했다.
후반전에 투입된 니모도, 충분히 득점할 수 있는 장면에서 헛발질을 했고 말이다.
만약 처음부터 이런 경기력이었다면, 우리 모두 5부리그 정도에서 뛰었을 거라고 본다.
“가 볼게요.”
오늘 유독 잦은 클라텐버그의 수신호를 받으며, 나는 다시 피치에 들어섰다.
미드필드에서 볼을 지켜내고 있는 베르나르두가 강한 압박을 받는 중이다. 필리프가 다가서 줬으면 했지만, 그 역시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것 같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내가 목소리를 높였고, 전쟁을 치르고 있던 베르나르두에게서 볼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그것을 처리하려고 할 때.
파악-!!
“욱-!”
발목이 걷어차이는 느낌과 함께, 나는 다시 피치 위에 쓰러졌다. 조금 전 치료받은 종아리를 포함해, 몸 이곳저곳에서 크고 작은 통증이 전해져 왔다.
감았던 눈을 힘겹게 뜨자, 주심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니모의 모습이 보였다.
이후 시야의 가장자리로, 노란색 카드가 들어왔다.
명백히 고의적인 플레이였다는 뜻이다.
흥분한 베르나르두가 다시 니모에게 달려들고, 경기는 이렇게 또 멈춰 선다.
“휴우우~”
상체를 일으킨 나는, 소란에도 아랑곳없이 오른쪽 햄스트링을 가볍게 마사지했다. 발목이야 아프긴 하지만 차여서 그런 거니 뛰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은 경련이 왔던 종아리와 허벅지를 열심히 마사지해서, 조금이라도 더 뛸 에너지를 보충하는 게 옳았다.
미처 벤치로 가 앉기도 전에 다시 만나게 된 폴커 브라운 박사님을 보며, 난 마사지를 하는 자세 그대로 한쪽 눈을 찡긋 감아 윙크를 보냈다.
어찌나 어처구니없어하시는지, 할 수만 있었다면 내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치셨을 것이다.
하지만 박사님은 나보다 어른답게(?), 어금니를 꽉 깨무시며 어디가 아픈지를 물어오셨다.
“차인 데는 내버려 두세요.”
“응?”
“그보다 종아리랑 허벅지나 조금 더 봐주세요. 할 수만 있다면 주사라도 놔 달라고 했을걸요?”
“하아~ 꼭 자네 몸이 아닌 것처럼 말하는군.”
“그렇게 느껴지는걸요.”
빠르게 점검이 이뤄지고, 또다시 잠깐 피치 밖으로 나서야 했던 나는 이번엔 클라텐버그에게 투정을 부렸다.
어차피 곧 들어올 건데, 그냥 안 나가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그건 씨알도 먹히지 않을 이야기였고, 잠깐 피치를 떠났던 나는 5초도 채 되지 않아 들어오란 시그널을 받았다.
“가 볼게요.”
이거 데자뷔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
특별히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연장 후반도 벌써 10분을 향해 가고 있었다. 펩이 말한 마지막 5분까지는 60초밖에 남지 않았고, 그 뒤엔 공격해야 한다.
‘그런데 말입니다.’
과연 우리가 그걸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장담하기 힘들다.
두 줄의 플랫(Flat)을 만들어 4-4-1의 형태를 취하곤 있지만, 비달과 베르나르두는 너무 많이 뛰어서 제대로 된 중원 다툼 자체를 하기 힘들어 보였다.
코스타의 빠른 발과 드리블도 이런 상황에서는 사실상 무용지물이고, 그나마 뮐러와 레비가 둘이서 뭔가를 보여 주려고 했으나 한계가 명확했다.
반면 레알 마드리드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지쳐 있기는 해도 수적 우위에서 오는 여유가 분명히 있었다.
특히 연장전부터는 카세미루마저 적극적으로 공격에 참여하면서, 미드필드 경쟁을 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그나마 약점은 측면이었지만, 필리프와 알라바가 공격에 가담해줄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레알 진영 깊숙이 올라가도 고립되는 경우가 99%다.
그래서 라모스-바란 라인의 뒷공간과 골키퍼의 사이로 볼을 떨구고 레비에게 맡기는 방법도 택해봤지만, 오히려 더 큰 차이만을 느낄 수 있었다.
하비의 퇴장 이후 사실상 전원 수비 형태였다 보니, 기계 같은 몸의 레비도 지쳐 버린 것이다.
“이봐아-!!”
“응?”
“지켜!! 끝까지 지키는 거야!!”
펩도 나와 같이 느꼈는지, 그가 말했던 마지막 5분을 포기하고 수비를 하란 지시를 내렸다.
어떠한 면으로 보나 지극히 합리적으로 올바른 판단이었지만, 난 그것이 괜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한참을 두드려 맞기만 하다 보니, 펀치라도 뻗어 보고 싶었다.
‘그래도 일단 수비 먼저.’
70%가 넘는 점유율을 바탕으로, 레알 마드리드는 빌드업의 방향을 왼쪽으로 이끌고 있다. 그곳엔 조금 전 날 넘어뜨린 니모가 있었고, 녀석은 필리프를 가볍게 제압해 버렸다.
어떻게든 발을 이끌어 보지만, 눈에 띄게 무거워진 달리기론 니모의 스피드를 쫓을 수 없다.
커버할 준비 중이었던 나는 얼른 달려가 경로를 막아섰고, 양팔을 뒤로 감춘 후에 니모가 띄워 올린 크로스를 향해 몸을 내던졌다.
퍽-
“윽-”
쇄골 주변에 맞은 축구공이 굴절되며 밖으로 튕겨 나가고, 인상을 잔뜩 찌푸렸던 나는 얼른 눈을 뜨고 볼의 위치를 쫓았다.
지금 축구공은 페널티박스 밖으로 흐르고 있다.
‘……오-!’
세컨볼을 향해 달려들었던 건, 이번에도 토니와 베르나르두였다.
체격과 체력의 우위를 내세우려고 했던 토니가 몸을 정직하게 사용하려고 했던 반면, 오른쪽 다리를 먼저 끼운 베르나르두는 빙글 몸을 돌려세우는 기술로 볼을 획득하는 데 성공한다.
순간 나는 레알 마드리드가 덜컹거린다 느꼈고, 본능적으로 손을 뻗으면서 앞쪽 넓은 공간을 가리켰다.
“베르나르두!!!”
내 목소리를 들은 것인지 아니면 본인도 같은 생각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축구공을 발아래에 두는 데 성공한 베르나르두는 그것을 오래도록 가지고 있지 않았다.
파앙-!!
빠르게 발을 휘두른 베르나르두가 보낸 패스가 하프라인을 지나 센터서클 바로 뒤에 떨어지고, 레비와 레알의 두 센터백이 그것을 다시 쫓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점이라면, 라모스와 바란의 위치가 아까보다 다소 높았고 반면 레비는 훨씬 더 준비가 잘된 상태였다는 점이다.
흐르는 축구공을 먼저 발아래에 두는 데 성공한 레비가 달려 나가고, 모처럼 붙잡은 기회에 경기장 전체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체력적인 부담은 분명히 존재했고, 레비는 머잖아 바란에게 붙잡히는 듯 보였다.
그런데.
“-!!”
“헤에에에에에에이-!!!!”
쉽게 볼을 가져갈 거로 생각했던 바란이 레비의 어깨를 붙들며 강하게 잡아챘다.
그도 지쳤던 걸까?
아마 그런 것 같다.
당연히 피치는 난리가 났고, 나도 두 팔을 치켜들며 덩달아 고함을 쳤다.
그리고 잠시 뒤.
‘응?’
휘슬을 불고 달려 나가던 클라텐버그의 손이 앞쪽이 아닌 바지 뒤쪽으로 향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즉.
.
(배정세)
“퇴장-!! 퇴장입니다!!”
.
빨간색 카드가 하늘 위로 올라갔고, 클라텐버그가 단호한 손짓으로 바란에게 피치를 떠날 것을 지시한다.
당연히 우린 크게 환호했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기뻐하는 동안 저 멀리에서 날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아니. 들은 것 같았다.
“다온-! 다온!!!”
“응? 나?”
벤치가 있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펩이 손을 열심히 휘저으면서 내게 앞으로 가라는 신호를 보내는 모습이 보였다.
그제야 바란의 퇴장에서 정신을 차린 나는 어떠한 일이 벌어졌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레비가 현재 넘어진 위치는, 골대로부터 대략 28m 정도 되는 지점이었다. 실제로 펩 말고도, 어느새 볼의 곁으로 간 베르나르두가 얼른 오란 손짓을 보내오는 중이었다.
천천히 뛰어 프리킥 지점으로 달려가는 동안, 나는 레알 마드리드의 벤치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카를루스-! 카를루스-!!]카를루스는 카세미루를 뜻한다.
아무래도 지단은 이제 카세미루를 수비로 보내 남은 시간 지키는 쪽을 택하려는 것 같다.
갑자기 10:10이 된 데다가 흐름으로는 더 좋지 못했던 만큼, 공세를 줄이고 수비를 단단히 하여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는 판단인 것이다.
역시나 이해할 수 있는 결정이었고, 멋대로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한 나는 레비가 넘어진 장소에 도착했다.
그러자 베르나르두가 볼을 건네왔다.
“이건 네 거야. 너만 할 수 있다고.”
“워-우. 그거 부담되네.”
“Amigo!”
“하하. 뭘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여. 농담이잖아.”
“지금 농담이 나와?”
“뭐.”
폴커 브라운 박사님께도 들었던 말을 베르나르두에게도 똑같이 듣고 있으니, 내가 뭔가 이상해졌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과연 지금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기도 했다.
툭-
“…….”
힘겹게 몸을 일으킨 레비가 내 엉덩이를 슬쩍 두드리더니, 별다른 말 없이 벽이 세워지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또 베르나르두는 수비를 위해 뒤쪽으로 이동했다.
자연히 축구공 옆엔 나만 남게 되었다.
“후우~”
숨을 크게 내어 쉬며, 유니폼 상의로 축구공을 문지른다. 땀에 젖은 유니폼으로 문질러 봤자 얼마나 수분이 닦이겠냐만, 이건 그냥 일종의 습관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후 축구공을 피치에 놓아두는 것까지, 나는 최대한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기 위해 노력했다.
‘해 왔던 대로 하면 돼. 해 왔던 대로 하자.’
지금까지 줄곧 해 왔던 대로.
부담되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일 테고, 또 다리의 상태도 평소 같지 않아 최대한 이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그건 결코 쉽지 않았다.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리를 뒤덮는다.
어쩌면 난 이것으로 영웅이 될 수도 있고, 어쩌면 끝내 패배한 뒤에 지금 이 기회를 놓친 것을 후회할 수도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이라는 거친 바다에서, 나는 제대로 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도 같다.
“후우~”
그래서 난 다시 한번 숨을 내쉬며,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피치를 한 번 둘러봤다.
그리고.
“…….”
참으로 신기하게도 수만의 사람 중, 두 손을 모으고 기도 중인 아영이가 눈에 딱 들어왔다. 아마도 그녀는 지금, 나만큼이나 떨리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보다 더할 수도 있다.
‘자기는 늘 그랬으니까.’
나보다 더 내 삶을 위해 노력해 주고, 나보다 더 내 삶을 응원해 준 사람이다.
순간 난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고, 그 감정으로 인해 미소를 짓고 말았다. 그녀가 이런 내 모습을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이젠 괜찮아졌다는 거다.
“…….”
그래.
정말 놀랍게도, 난 이제 아무렇지도 않았다.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오른쪽 다리의 통증도, 분명 조금 전까지 시끄러웠던 산 시로의 모든 소리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내 신경의 전원 일부를 내려 버린 느낌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난 분명 느끼고 있다는 거다.
스터드로부터 느껴지는 피치의 단단한 정도와 잔디의 물기, 그리고 얼굴을 때리는 밀라노의 밤바람은 어느 때보다도 더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후우~”
축구는 내게 삶의 탈출구이자,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또 그들을 지킬 수 있게 만들어 준 고마운 녀석이었다.
동시에, 이 친구는 날 지독히도 괴롭힌다.
그러나.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다온아.]나는 그 괴롭힘이 싫지 않았다.
그 괴롭힘을 견디고 나면.
그러니까, 닥쳐온 역경을 이겨 낸 후에 보게 되는 세상이 너무나도 아름답다는 것을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이번에도 그러고 싶다.
그 아름다움과 함께하길 바란다.
삐?익!!
평소보다 더욱 길게 느껴졌던 준비 과정이 끝난 후, 들려온 클라텐버그의 휘슬 소리는 내 발을 앞으로 이끈다.
탁-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왼발을 내디딘 나는 오른발을 뒤따라 가져갔고, 다시 한번 왼발을 축구공 옆에다 놓아둔 이후에 오른발을 강하게 휘둘렀다.
펑-!!
이후 들려온 소리는 지금까지 들어온 것 중에 가장 뜨겁고, 또 가장 경이로웠다.
***
작가의 말 ? 아, 분량 조절 실패네요.
요즘 멘붕이 오면서 감이 얼마나 떨어진지 느껴집니다.
여기서 끝내고 싶었는데…….
되도록, 내일 한편 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