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633)
632화 Miragem (6)
.전반 20분
대한민국 0 : 0 멕시코
초반, 의외로 멕시코가 주도권을 잡아 나가면서 대한민국에 어려운 경기가 펼쳐졌다. 중원 지역에서 패스 성공률이 눈에 띄게 떨어지며 점유율을 내어 준 것이다.
이창민-문창진으로 구성된 중원 조합이 좀처럼 중심을 잡지 못한 것도, 대한민국에는 커다란 악재였다.
그러나.
“????”
쿵-!
대한민국의 센터백 김민재가 결정적인 수비를 연이어 보여 주면서, 드높았던 멕시코의 기세도 한풀 꺾여 나갔다.
그리고.
‘형.’
이후로는 멕시코의 전술적 약점을 파고든 대한민국이 조금씩 균형을 맞추어 나갔다.
마르코 부에노(Marco Bueno)로부터 가볍게 볼을 가로챈 김민재가 오른쪽 측면으로 넓게 벌려 나가기 시작한 김다온을 찾아낸다.
하지만 아직 충분히 이동해 있진 못했고, 그래서 그는 중간을 이어 줄 연결 고리를 활용키로 했다.
팡-
올림픽을 거듭하며 플레이에 자신감이 붙어 가는 중인 김민재의 입에서, 거침없는 커맨드가 이어진다.
“저기, 저기!!”
파앙-!
부드럽게 몸을 돌려세워 놓은 이창민이 정확한 패스를 보내고, 넓은 공간을 허락받은 김다온은 빠르게 비어 있는 곳을 점령해 나갔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마찬가지로 왼쪽 미드필드 자리에 중원 자원을 출전시킨 멕시코. 공세를 취하던 중 역습을 허락한 그들의 조직력은 크게 흔들린다.
두 줄 플랫에 있어 가장 중요한 선수와 선수 사이의 간격에 문제가 생겼고, 이는 그들이 잠가 놓아야 했을 지역(Zone)이 느슨해지는 효과를 나았다.
더구나, 현재 볼을 잡은 선수는 김다온이다.
누구보다 멕시코의 전술에 익숙하다.
보태어.
“…….”
팡-!
공간이 주어졌을 때 그곳을 지배하고, 또 지배당한 공간을 막으려 움직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균열을 전 세계에서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
지금도 그의 발끝을 떠난 축구공은 텅 빈 피치를 구르는 것처럼 아무 저항도 받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도착한 곳은 라인을 깨트리며 파고든 황희찬의 왼발 아래였고, 1:1 기회를 마주하게 된 RB 잘츠부르크의 공격수는 순간 머리가 아득해짐을 느낀다.
판단 능력이 떨어지며 나오는 전형적인 현상.
이것은 황희찬의 가장 큰 단점이다.
골 기회가 주어지게 되면 지나치게 흥분하는 탓에, 그는 대부분의 득점 기회에서 빠른 볼 처리를 하지 못한다.
게다가 공격수이면서도 특정 각도에서 슈팅을 날리길 선호하다 보니, 무의식중에 그곳으로 드리블을 가져간다.
지금도 여느 공격수였다면 충분히 원터치 이후 슈팅을 가져갔겠지만, 두 번 정도 더 드리블하는 사이 멕시코의 수비수가 접근했고 결국 슈팅이 되기 전에 커트되고 만다.
탁-!
“?!!”
{“아…….”}
축구공이 세자르 몬테스(Cesar Montes)의 발에 맞는 순간 정신이 퍼뜩 든 황희찬이지만, 한 번 지나간 기회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진한 안타까움과 안도가 피치 위에서 교차하고, 머쓱해진 황희찬이 김다온을 향해 손을 들어 올린다.
그런데.
[야이, 병신 새끼야!!!]“???”
황희찬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고 당황한다.
김다온의 입에서 독일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전부 좋지 않은 단어였다.
[멍청한 새끼!! 벌써 두 번째야!! 경기 전에 말해 줬잖아!! 기회가 오면, 그냥 골대를 보고 냅다 갈기라고!! 넌 두 개를 빚졌어!! 나와 그리고 팀 전체에게!!]그리고 이 목소리는 피지전 대승을 거둔 후 초조한 마음으로 관중석에 앉은 독일 올림픽팀에게도 전해진다.
[와-우. 저거 진짜야?] [너무 심한 것 아냐?]피치 위에서 동료에게 강한 불만을 드러내는 것은 유럽에서는 종종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었지만, 동북아시아의 문화권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불만이 있더라도 속으로 삼키고, 감독이 해결해 주리라 믿고 좋게 좋게 넘어가려는 게 동북아시아의 문화다.
그들은 이런 행동이 예의와 동료 의식에 어긋나고, 팀 케미스트리를 망가트린다고 믿는다.
그리고 지금의 발언은 독일 올림픽 팀의 기준으로도 꽤 수위가 높은 것이었지만, 분데스리가에서 김다온과 상대해 온 이들에겐 익숙한 일이기도 했다.
피지전 4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한 율리안 브란트가 이런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
[아니- 저게 바로 다온이야. 11번이 벌써 두 번이나 기회를 날려 버렸잖아. 그리고 전체적으로 드리블이 너무 길어. 왜 9번을 기용하지 않았지?] [젠장. 난 벌써 저 11번이 미워졌어.] [큭큭큭큭.] [농담이 아니야! 웃을 때가 아니라고! 잊었어? 멕시코가 비기기만 해도 우린 짐을 싸 들고 독일로 가야 해!] [젠장. 그거 아찔한 상상이네.] […….]잠깐 잊었던 현실이 다시 눈앞으로 다가왔다는 생각에, 독일 대표팀은 떠들던 것을 멈추고 다시 침묵한다.
그들의 시선은 지금, 오늘 형편없는 퍼포먼스를 보이는 황희찬을 향하고 있었다.
***
삑-! 삐?익!!
.
.
.전반 종료
대한민국 0 : 0 멕시코
휘슬이 울려 퍼진 순간, 반사적으로 김다온을 바라본 황희찬은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얼굴을 전혀 보지 않았건만, 걸음걸이만으로도 그가 화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려 세 번의 1:1 기회를 전부 놓인 황희찬은, 변명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처참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오히려 만회하려고 하다, 옐로카드를 받기도 했다.
특히 그 반칙은 퇴장이 나왔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장면이었다.
“후우~”
낙제점이 찍힌 성적표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된 황희찬의 걸음걸이는 무겁기만 하다.
그는 라커룸으로 가는 길이 무서웠다.
.
(김윤성) – MBC 축구 아나운서
“아- 전반전이 끝납니다. 양 팀 득점 없이 0:0으로 마무리되면서, 현재까지는 대한민국이 2승 1무로 C조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서현욱) – MBC 축구 해설위원
“네. 그렇기는 합니다만, 사실 득점이 나왔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던 전반이었거든요? 황희찬 선수의 마무리 능력이 아쉬웠던 전반전이었습니다.”
(안정환) – MBC 축구 해설위원
“아, 황희찬 선수. 많은 연습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슈팅의 타이밍, 세기, 정확도. 어느 것 하나 대표팀 레벨이라고 보기엔 어려웠거든요? 축구는 결국 골을 넣어야 하는 스포츠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기회를 많이 만들어도 마무리를 하지 못한다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김윤성)
“이제 후반 45분이 남았습니다. 대한민국과 멕시코, 멕시코와 대한민국의 C조 마지막 경기를…….”
.
무승부인 상황이지만, 대한민국 드레싱룸의 분위기는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축구는 늘 흐름의 싸움이고,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의외의 일격을 맞아 패배하게 되기도 한다.
기껏 독일을 제압하며 분위기를 끌어올렸건만, 멕시코에게 패배하게 되면 이전까지의 수고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리고야 만다.
물론 8강 진출이야 확정 지었지만, 사기(士氣)가 떨어진 상태에서 D조 1위를 확정 지은 포르투갈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긍정적인 요소가 아니었다.
조금 어두운 얼굴로 드레싱룸에 입장한 신태용 감독은 후반전 곧바로 변화를 주기로 한다.
“의조. 네가 들어가자.”
“네!”
“그래. 쓰읍- 잘했어. 골은 못 넣었지만, 우리가 계획한 대로 잘 풀었잖아. 안 그래? 민재, 규백이. 전반전에 수고했고 상민이도 잘했어.”
“…….”
황희찬이 놓친 세 번의 결정적인 득점 기회만 제외한다면, 대한민국은 아주 효과적으로 멕시코의 약점을 파고들었다고 볼 수 있었다.
두 줄의 플랫을 세우고 페널티박스 주변에 존(Zone)을 형성한 멕시코의 수비를, 좌우를 크게 벌리는 전술로 와해했기 때문이다.
초반 흔들렸던 이창민과 문창진의 조합도 안정을 되찾았고, 권창훈 역시 이재성의 보조를 받아 왼쪽의 류승우에게로 향하는 좋은 패스를 여러 차례 보여 줬다.
전반 15분 이후의 슈팅(10:0)과 유효슈팅(2:0) 차이가 그것을 증명해 준다.
“그리고 다온이. 잠깐 따라와. 정리는 흥민이랑 의조가 해 주고. 후반전에도 파이팅하자. 알겠지?”
“네.”
“에이, 짜식들. 목소리가 그게 뭐야? 알겠나?!?!”
“네-!!”
“진즉 그래야지. 다온이.”
신태용이 김다온을 끌어낸 것은 저기압인 그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가 화난 이유를 짐작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올림픽 팀에서 김다온이 차지하는 영향력을 고려하면 조금 진정을 시켜 줄 필요가 있었다.
이번 올림픽 기간 내내 김다온은 팀의 주장이자 리더로서 훌륭하게 제 몫을 해 주었지만, 가끔은 이렇게 주위에서 잡아 줘야 했다.
제아무리 훌륭한 경력을 쌓았다지만, 인간적으로는 여전히 22살에 불과한 젊은 나이였다.
딸깍-
“앉아.”
“…….”
김다온이 테이블 앞쪽 의자에 자리를 잡고, 한쪽에 놓인 이온 음료 두 개를 집어 든 신태용 감독이 그중 하나를 건넨다.
“다온아. 많이 답답해?”
“후우~”
“나도 그 마음 알어. 나도 선수 시절 때, 누가 계속 실수하면 화도 나고 그랬어. 그런데 가장 답답한 건 실수를 하는 사람이야. 누가 실수를 하고 싶겠어. 안 그래?”
“…….”
“자- 이렇게 생각을 해 보자. 지금 올림픽 팀에서 누가 뮌헨에서 뛸 수 있겠어. 다 네가 함께 뛰었던 선수보다 수준이 낮아. 실수도 하고, 또 잘못도 하고 그러는 거지.”
입을 꾹 다문 김다온은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다온아.”
“네, 감독님.”
“힘들겠지만, 웃고 좀 그러자? 응? 얼마든지 그렇게 넘어갈 수 있잖아.”
신태용 감독은 김다온의 목 끝까지 차올라 있는 문장들을 알고 있었다. 전날 선발 명단을 발표했을 때부터, 김다온은 황희찬에게 많은 조언을 건넸다.
그리고 그것들 대부분은 올림픽 팀 관계자들도 황희찬의 약점이라 여기고 있던 것이었다.
1996년생의 젊은 공격수인 황희찬은, 20살의 나이에 이미 유럽에서 통할 만한 체격적인 조건을 갖추었단 평을 얻는다.
아시아 출신 선수들의 신체적인 완성도가 서구권과 비교했을 때 3~5년가량 늦다는 것을 생각하면, 황희찬도 그 나름대로 보기 드문 재능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능력이었고, 볼이 발아래에 오면 지나치게 시야가 좁아진다거나 오프-더-볼이 단조롭다는 단점도 있다.
그러나, 아직 약관(弱冠)이기에 부족한 부분은 앞으로 얼마든지 더 나아질 수 있다.
“희찬이는 너처럼 똑똑하지 못해. 걔는 몸으로 부딪치고 깨지면서 성장하는 타입이라고. 그런데 자꾸 그렇게 위축시키면, 걔가 어떻게 성장하겠어? 물론, 네가 하고 싶은 말은 알아. 득점 기회가 오면, 망설이지 말고 슛을 해야지.”
팀을 이끄는 방법에 대해. 선수 개개인의 개성을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 또 그 이해를 통해 성장시키는 방법에 대해, 신태용은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도, 팀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의 기분을 챙기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결국, 김다온이 틀린 것은 아니니 말이다.
의도적으로 짧게 끝낸 팀 토크로 인해 남은 시간 전부를, 신태용은 김다온을 위해서 썼다.
“그래도 후반전에는 의조가 뛰잖아.”
“네. 근데.”
“?”
“희찬이 쟤도 해 줘야 해요. 재성이 형이랑 창훈이가 예선전 세 경기를 전부 뛰고 있는데, 그냥 얹혀 가려는 건 안 된다고요. 그래서 더 강하게 했던 건데…….”
“알지. 잘 알어.”
“후우우~”
김민재의 활약에는 아낌없는 칭찬과 박수를 보내고 황희찬의 실수엔 거침없이 욕설을 내뱉는 김다온의 모습을 보며, 신태용은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고 생각을 했었다.
어쨌든 이런 부분은 대한민국 대표팀에 늘 부족했던 요소였고, 김다온은 그것을 채워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얼마든지 주변에 소리를 쳐도 될 만큼의 실력과 경력이 있다.
하지만 때때론 그것을 조절할 줄도 알아야 하고, 이는 앞으로 김다온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될 것이다.
“자 이만 들어가자. 너도 준비해야지.”
“네.”
고개를 끄덕인 김다온이 자리에서 일어서고, 그에게 격려를 보낸 신태용 감독은 이후 안으로 찾아든 코칭스태프와 함께 의견을 나눈다.
경기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뤘고, 마지막에는 김다온과 황희찬의 관계에 관해서도 이야기가 나왔다.
“괜찮겠죠?”
“안 괜찮을 게 뭐 있어? 충분히 이야기했고 또 잘 알아듣는 녀석이니까, 앞으로 잘할 거야.”
“그러면 다행인데…….”
“됐어, 됐어. 그 이야긴 여기까지.”
괜한 분위기를 수습한 신태용 감독이 하프타임 미팅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한 후, 경기장으로 향하기 전 슬쩍 고개를 돌려 드레싱룸 안을 쳐다보았다.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분위기가 많이 밝아진 가운데, 묵묵히 후반전을 준비 중인 김다온의 곁으로 권창훈과 이재성이 다가서고 있었다.
셋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눴고, 이내 김다온의 얼굴에 피식하고 미소가 걸렸다.
‘……됐어.’
전반전의 나쁜 흐름이 후반전으로는 이어지지 않을 거라 믿으며, 신태용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곤 발을 앞으로 가져간다.
하루도 쉬어 가지 않고 좌충우돌 시끄러운 올림픽 팀이었지만, 그는 그것도 젊음의 한 표현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됐어, 됐으요~”
혼잣말을 내뱉으며 걸어가는 신태용 감독의 얼굴엔, 어느새 굳은 결의가 내려앉아 있었다.
***
.후반 04분
대한민국 0 : 0 멕시코
후반전 의조 형이 원톱 자리에 들어서면서, 확실히 경기의 주도권을 잡기가 수월해졌다.
“야, 야, 야, 야! 여기!”
“뒤에! 뒤에 붙어!!”
두 줄의 플랫 사이 가장 까다로운 공간과 최전방을 오가는 의조형의 플레이가, 멕시코의 미드필드 라인을 강제적으로 끌어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선수의 성향에 따라 공격 형태가 크게 달라지는 원톱 전술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볼 수 있다.
“헤이!”
“!”
축구공을 안쪽으로 찔러 넣으려 했던 창진이에게 소리쳐, 나는 패스가 옆으로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축구공은 내 발을 거쳐 뒤쪽 규백이까지 이어졌다.
8명이 늘 박스 주변에 머무는 전술을 상대로, 굳이 서두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멕시코는 이제는 아예, 무승부를 목적으로 수비를 더욱 단단하게 가져가고 있다.
그러니 어설픈 패스로 상대에게 볼을 넘겨주기보다, 우리가 계속 볼을 점유하는 게 중요하다.
“후-”
끔찍했던 희찬이의 마무리 능력 때문에 빚어진 짜증도 거의 사라진 지금, 나는 다시 차분하게 피치를 살피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런데 자꾸 아까부터 근처에 있는 녀석이 이런 행동을 해 오는 중이다.
[Ay!]“?”
[괜히 무리하지 말자고. 누구 하나 다치기라도 하면, 너네도 손해잖아? 그러니까, 천천히 하자.]“…….”
내 앞에 바짝 달라붙은 아르투로 곤잘레스(Arturo Gonzalez)가 양손으로 자그마한 원 두 개를 만들어 보이면서 0:0으로 경기를 마무리하자는 제안을 보내왔다.
아마, 다른 곳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을 거다.
처음에는 그래도 승리할 생각으로 나섰을 멕시코지만, 전반 초중반 이후 주도권을 완전히 넘겨주게 되자 노골적인 의사 표현을 해 오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계속 가볍게 무시할 생각이다.
물론 무승부를 해도 조 1위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내가 바라는 건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초로 올림픽 조별에선 전승을 거두는 것이다.
그러니 난 계속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다른 이들도, 나와 똑같길 바란다.
패스와 선택이 단조로워진 창민이를 환기코자, 한 번 목소리를 크게 높여 본다.
“창민아-!”
“?”
“반대편 봐! 반대편!!”
“…….”
고개를 끄덕인 창민이가 엄지를 치켜세워 오고, 다음 빌드업 상황에서 녀석은 내 조언을 따라 왼쪽으로 크게 넓혀 주는 패스를 보냈다.
정확하게 날아간 롱패스를 사이드라인 앞에서 살짝 뛰어오른 승우가 가슴팍으로 받아 든다.
그러자 이를 보던 멕시코의 오른쪽 풀백 에리크 아기레(Erick Aguirre)가, 사이드라인 아웃이라 판단해 달라붙던 것을 멈추면서 손을 들어 올렸다.
수비수가 하지 말아야 할 최악의 행동 중에 하나를 한 건데, 데드볼 상황 판단의 여부는 선수가 아닌 주심이 한다.
그러니 휘슬이 들려올 때까지는 단 한 순간도 노력하는 것을 포기해선 안 된다.
‘오버랩.’
승우의 뒤쪽 사이드라인 밖으로 슬찬이가 멀리 돌아 뛰어 들어가고, 항의하느라 어정쩡한 위치에 선 아기레의 옆으로 패스가 굴러간다.
다소 강해 보인 패스는 자칫 골라인을 벗어날 뻔했지만, 전력 질주한 슬찬이가 그 전에 볼을 살려 둔다.
그리고 다시.
[에?이!!!]멕시코의 선수들이 일제히 골라인 아웃이라며 손을 들어 올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 번 더 말하지만, 저럴 시간이 있다면 그냥 입 다물고 볼을 걷어 내는 일에 집중하는 게 옳다. 정말 볼이 나갔다면, 그 전에 이미 휘슬이 울릴 테니 말이다.
계속해서 쌓여 가는 멕시코의 실수.
이러한 것들은 눈에 확 드러나는 종류의 실책은 아니지만, 그로부터 굴러가기 시작한 눈덩이들은 종종 결정적인 후회로 귀결(歸結)된다.
슬찬이의 오버랩이 시작한 순간, 나는 슬쩍 안쪽으로 움직이며 공격 진영 오른쪽 하프 스페이스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슬찬이가 골라인 앞에서 볼을 살려냈을 때, 멕시코의 수비가 일제히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지켜보면서 페널티박스 안으로 움직여 들어갔다.
난 손을 들어 올렸고.
“슬차아아아안-!!!!”
목소리를 크게 높이면서 슬찬이가 나를 발견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윽고 우린, 눈이 마주쳤다.
“…….”
“…….”
팡-!
본래 내 위치가 본인의 포지션인 슬찬이는 오른발을 더욱 잘 쓰는 녀석이다.
그래서 지금도 슬찬이는 매우 편하게 크로스 동작을 가져갔고, 왼쪽 페널티박스 안 골라인 바로 앞에서 보내어진 패스는 반대편 꼭짓점 부근으로 날아 들어왔다.
“…….”
볼이 떠오른 순간부터, 나는 낙구 지점을 찾아 발을 움직여 왔다. 그리고 판단이 끝났을 땐, 오직 축구공에만 시선을 주어 타이밍을 계산했다.
주변에 수비가 없다는 건 달릴 때 이미 확인했고, 트래핑을 하면 늦을 정도의 거리란 것도 머릿속에 입력해 두었다.
그러니 현재 상황에서 좋은 장면을 만들어 내고 싶다면, 떨어지는 볼을 그대로 걷어차는 게 가장 확률 높은 선택이다.
모든 것이 정해졌으니, 할 일은 무척 간단해진다.
‘봐. 얼마나 쉬워.’
가끔 축구 선수들은 피치 위에서 너무 완벽하게 플레이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완벽은 불가능하다.
다소 어설프고 다소 엉성한 모습이라도, 우리는 피치 위에서 조금 더 단순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90%의 패스 성공률을 보이고 패배하는 것보다, 70%밖에 패스에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승리를 거두는 게 훨씬 더 낫지 않은가?
더구나 피치 위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기회란 기껏해야 1, 2초 정도다.
완벽한 플레이를 하기 위해.
선호하는 위치에 서기 위해.
잘 쓰는 발이 아니라서.
고작 이따위 이유로 기회를 날려 버리기엔, 우리가 얻은 그 순간이 너무나도 소중하다는 거다.
난 이를 레비에게 배웠고, 같은 것을 희찬이에게 알려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특히 축구에서는 기회를 놓친 것에 따른 대가를 남은 10명이 치러야 한다.
그래서 소리를 내질렀던 거다.
두 번째 기회를 놓치고 난 뒤, 녀석은 재압박을 해야 했음에도 그러지 않고 머리를 긁적였다.
기회를 놓친 것까지야 그럴 수도 있다지만, 엄연히 볼이 근처에 있는데도 뛰지 않는다는 것은 내 기준에서는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녀석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기 위해 죽어라 뛴 남은 사람들은 뭐가 되는가?
하지만 이제, 이쯤에서 그만하려 한다.
“후우- 쓰~읍!”
떨어지는 축구공을 보며 호흡을 가다듬은 후, 나는 몸을 옆으로 눕히면서 빗겨 치듯 오른발을 휘둘렀다.
볼이 휘어져 들어오는 각도상, 이렇게 해야 발등에 제대로 맞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윽고, 발등이 볼에 맞닿는다.
퍼엉-!!
강하게 쏘아져 나간 축구공이 멕시코의 골대를 향해 빠르게 날아가고, 슈팅은 몸을 날린 알프레도 탈라베라(Alfredo Talavera) 골키퍼의 손을 지나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위로 솟구쳐 오른 축구공이 크로스바를 두들기고.
투웅-!!!!
“?!!!”
안타까움에 비명이 나오려던 찰나, 강하게 튕겨 나온 축구공이 골대 바로 앞에 있던 누군가의 몸에 맞고 멕시코의 골라인을 넘어섰다.
몸을 바짝 움츠렸다가 화들짝 놀란 의조 형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동시에 들려오는 휘슬 소리.
삑-! 삐?익!!
그것은 오늘 경기 첫 번째 득점을 의미했고, 조금 이상은 했어도 득점으로 이어진 장면에 우리 모두는 의조 형의 주변에 모여 셀레브레이션을 나눴다.
“뭐냐? 내가 넣은 거야?”
“어, 그러네. 주워 먹으니 좋아?”
“음- 꿀맛.”
“하하하.”
실수와 우연이 겹치면서 만들어진 오늘 경기의 첫 번째 득점. 벤치에 있을 희찬이가 이 장면을 보며 뭔가를 깨달을 수 있었기를 바란다.
오늘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꼭 그러길.’
조별 예선 전승까진, 이젠 한 걸음만이 남아 있다.
.
.
.경기 결과(리우 올림픽 C조 조별예선)
대한민국 2 : 0 멕시코
[골] 황의조 : 후반 06분권창훈 : 후반 31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