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636)
635화 Miragem (9)
온두라스 올림픽 팀의 감독은 2014년 FIFA 브라질 월드컵에서 코스타리카를 8강으로 이끌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특히 그가 선보인 잘 조직된 코스타리카의 수비는, 브라질 월드컵에서 가장 훌륭했던 전술로도 평가를 받았다. 파이브백을 바탕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 주었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호르헤 루이스 핀투(Jorge Luis Pinto)를 향한 찬사는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종합 뉴스 매거진 ‘Redhonduras’가 [De heroe a dictador(영웅에서 독재자로)]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호르헤 루이스 핀투의 만행을 기고한 것이다.
콜롬비아 출신의 호르헤 루이스 핀투는 코스타리카의 축구 환경을 공공연히 비하(卑下)했다.
코스타리카의 축구 지도자들을 [“Incapacitado(무능력자)”]라 칭하며, 코스타리카의 모든 세대별 대표팀을 콜롬비아 출신으로 채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뿐만 아니라 코스타리카 대표팀 선수들을 마치 어린아이처럼 다뤘다는 점도 문제였다.
‘대표팀 소집 기간 휴대폰 사용 금지.’ , ‘대표팀 소집 전 한 달 동안의 성생활 보고.’ , ‘현재 사귀는 애인이나 부인과 잘 지내는지.’ 등과 같은 터무니없는 규칙을 만들었다.
당연히 코스타리카의 선수들은 이것이 불만이었고, 월드컵이 끝난 후 강경한 태도로 [“핀투와 재계약을 하면 국가대표를 보이콧 하겠다.”]라고 주장했다.
여론이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하자, 핀투는 코스타리카 축구협회의 제안을 거부하고 온두라스에 부임하게 되었다.
그가 원했던 대로 콜롬비아 출신으로만 대표팀의 코칭스태프를 구성하되, 올림픽까지도 이끌어 달라는 조건을 건 것이다.
그리고 오늘.
“…….”
호르헤 루이스 핀투는 ‘독재자’로 몰린 이후, 감독 커리어 최고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 이봐!!”
신중히 피치를 바라보던 그가 다급히 목소리를 높이려고 하지만, 전개되는 속도가 너무나도 빠른 탓에 하려던 말은 도입 부분에서 끝나 버린다.
수비 사이의 공간으로 찔러준 권창훈의 패스가 온두라스의 오른쪽 진영을 무너뜨리고, 불쑥 등장한 손흥민이 얼마 없는 공간으로 뛰어든다.
빠른 커버와 리커버리로 온두라스가 공간을 금세 잠가 보지만, 손흥민의 슈팅을 막아 내는 것 자체는 불가능했다.
그나마 조니 팔라시오스(Johny Palacios)의 몸에 맞고 슈팅이 굴절되면서, 골문 안쪽으로 향하는 것은 피할 수 있었다.
데드볼 상황이 되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던 호르헤 루이스 핀투는 선수들에게 너무 많은 뒷공간을 허용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수비 진영에서 온두라스 선수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음에도, 어째서인지 계속 기회를 헌납하고 있었다.
선(先)수비 후(後)역습을 들고나왔지만, 지금과 같은 흐름에서는 공격을 전개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온두라스의 감독은 전반 초반에 놓쳤던 기회가 아쉬워졌다.
손흥민의 어설펐던 패스를 가로채 빠른 역습으로 이어갔었는데, 초코 로자노(Choco Lozano)에게 완벽한 1:1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한 순간 김다온이 나타나 공격을 끊어냈다.
못해도 최소 15m 정도 뒤처진 위치였는데,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수비는 핀투와 벤치를 침묵하게 했다.
김다온이 초코 로자노를 따라잡은 것은, 단순한 하나의 좋은 수비가 아니라 완벽한 기선제압이었다.
탄탄한 조직력을 앞세운 수비 못지않게, 전방에 있는 공격수들의 속도는 올림픽에 참가한 국가 중에서 가장 낫다고 자신하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후 온두라스의 역습 및 공격 전개 방향은, 김다온이 없는 오른쪽에 집중되었다.
전형적인 김다온의 경기.
그건 곧.
‘빌어먹을.’
온두라스가 힘든 시간을 계속 이어 나가야 함을 의미하고 있었다.
***
(장지현) – SBS 축구 해설위원
“아…….”
(배정세) – SBS 축구 아나운서
“아쉽습니다! 1:1의 좋은 기회가 주어졌던 대한민국! 하지만 손흥민이 마무리를 제대로 해내지 못합니다!”
.
.
.전반 27분
대한민국 0 : 0 온두라스
경기 전에는 의조 형을 걱정했는데, 정작 걱정해야 했던 쪽은 다른 사람이었다.
오늘 흥민이 형은 좋지 못하다.
그것도, 매우.
“혀엉-!!!”
목청을 높여 흥민이 형이 이쪽을 돌아보도록 만든 후, 어째서 패스를 보내지 않았느냐며 불만을 표현해본다.
지금은 물론 흥민이 형이 직접 마무리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바로 옆에 있던 의조 형에게 패스를 돌렸다면 더욱 완벽한 기회가 주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텅 빈 골문으로 축구공을 차 넣는 일은 의조 형에겐 아무것도 아니었을 거고 말이다.
조별 예선에서 생각만큼 활약을 보여 주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재까지의 흥민이 형은 지나칠 정도로 탐욕을 부리고 있다.
창훈이가 올림픽이 시작된 후 최고의 컨디션을 보여 주는 중임을 고려하면, 저런 흥민이 형은 분명 아쉽다.
“승현아-!”
“?”
“올라가!”
승현이는 온두라스의 역습을 의식해, 무의식중에 라인을 계속 아래로 내리고 있다. 커버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지만, 민재와의 간격이 너무 넓어지는 것도 문제다.
스페인 테네리페에서 좋은 득점력을 보여 주고 있는 초코 로자노는, 사실 역습보다 공간을 파고드는 걸 즐기는 친구다.
압도적인 점유율을 바탕으로 온두라스의 빌드업을 방해하고 있어 볼 연결이 잘 되진 않았지만, 가끔 로자노의 위치를 볼 때면 위협적인 곳에 서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러니 승현이와 민재의 간격을 계속해서 조절하여, 그 사이에 로자노가 서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거기야!”
고개를 끄덕인 승현이가 따봉을 보내오고, 나 역시 같은 행동으로 답한 후에 전방의 상황을 살폈다.
흥민이 형 주변에 모인 창훈이와 창민이가 빌드업을 진행해 보지만, 수비를 단단하게 가져간 온두라스 역시 쉽게 공간을 내어주려고 하지 않는다.
뒷공간을 허용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어떤 축구를 하려는지도 알게 되었다 보니, 의식적으로 그런 부분을 더 의식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흥민이 형이 놓쳐 버린 기회가 아쉬웠다.
독일전 이후, 확실히 공격력이 아쉽다.
컨디션의 사이클 문제인지 아니면 다른 뭔가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우리는 기회를 너무 많이 낭비하고 있다.
“야, 돌려! 돌려!!”
신태용 감독님이 템포를 늦추도록 지시한다.
온두라스 수비의 약한 연결 고리라고 판단한 케빈 알바레즈(Kevin Albarez)와 조니 팔라시오스를 계속 공략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우리도 분위기를 환기해야 한다.
올바른 지시.
팡-!
창훈이가 뒤쪽으로 패스를 돌리고 축구공이 민재의 발아래에 도달하는 동안, 나는 오른쪽 사이드라인 앞쪽으로 넓게 벌려서며 패스를 받아들 준비를 했다.
하프라인 부근에서 수비수들이 빌드업을 전개 중임에도, 온두라스는 라인을 거의 끌어 올리지 않고 있다.
덕분에 난 편하게 볼을 받아 놓을 수 있었고, 이후 창민이에게 패스를 돌리며 위치를 더 높게 가져갔다.
“¡Espere! ¡¡Espere!!”
풀백이 빌드업 상황에서 높은 위치까지 전진하는 건, 공격 기회 창출보다는 수비 간격을 벌어지게 만들어 중앙미드필드에 더 넓은 공간을 주기 위한 이유가 더 컸다.
90년대 이후 축구는 ‘세 방향에서 압박을 가하는 것’을 수비의 기본으로 삼는데, 빌드업 시 삼각형을 만드는 게 중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풀백이 올라서게 되면 세 방향의 압박 중 하나의 거리가 멀어지게 되고, 이건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조금 아까, 온두라스의 알란 바네가스(Alan Banegas)가 로멜 퀴오토에게 Espere라고 외쳤다.
이는 기다리라는 뜻의 스페인어로, 퀴오토는 창민이를 압박하는 대신 자리를 지키면서 언제든지 내게 달라붙을 수 있는 거리를 유지했다.
대신, 센터백 하나가 위로 올라섰다.
지금은 마르셀로 페레이라(Marcelo Pereira)가 파이브백의 살짝 앞쪽으로 나오면서, 온두라스의 전형이 4-5-1에 흡사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미드필드 하나가 추가되자, 온두라스의 두 볼란치는 과감하게 전진을 할 수 있었다.
거센 압박에 볼은 다시 뒤로 돌았고, 아까 볼을 받았었던 위치까지 후퇴한 나는 손을 높여 패스를 요구했다.
“승현아!”
“…….”
팡-
수비적으로 내려앉는 팀의 전술적 특징을 파악해 내기란 시간이 더욱 많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제.
‘대충 아라쓰…….’
온두라스가 특정한 매커니즘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것을 한 번 후벼파볼 타이밍이다.
나는 조금 전 창민이가 빌드업을 진행하려 했던 위치로 볼을 보내본 이후, 로멜 퀴오토와 상관없이 오른쪽 진영 깊숙한 위치로 침투해 보기로 했다.
내가 달리기 시작하면, 재성이 형이 하프 스페이스 부근으로 움직여줄 것이다.
그러면 온두라스가 내 쪽에 인력을 과하게 투자한 것 같은 장면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큰데, 이럼 하프스페이스로 이동한 재성이 형에게 기회가 난다.
이후 만약 의조 형이나 흥민이 형이 제대로 침투한다면, 얼리크로스에 이은 득점을 기대해 볼 수도 있다.
당연히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혀 중요하지 않다.
축구란 본래 그런 거니까.
전술적인 약점을 공략한다고 하더라도, 상대가 전혀 반응하지 못해서 기회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혹은 반대로 기민한 대처가 오히려 독(毒)이 되기도 한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피치에서 정답은 없다.
오직 결과로만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고, 옳고 그름도 결과에 의해서 정해진다.
잔인하고 불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결과 없이는 과정도 또 노력도 진정한 가치를 평가받지 못한다. 실패 앞엔, 그런 건 전부 한낱 핑계일 뿐이다.
그리고 이건 현재 내가 올림픽 팀의 공격수들에게 해 주고픈 말이다.
기회를 잡았다면, 반드시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창민아-!!!”
“?!”
다시 앞쪽으로 나아간 후, 나는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플레이를 그대로 이어갔다.
창민이에게 패스를 전달한 즉시 측면 깊숙이 달려 나갔고, 이에 재성이 형은 내게 공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 아래로 내려서며 오른쪽 하프 스페이스로 이동했다.
본래라면 로멜 퀴오토가 나를 추격하던 것을 멈추고 재성이 형을 신경 써야 했지만, 그는 그러지 않고 브라얀 가르시아(Brayan Garcia)와 함께 나를 막아서려고 했다.
호르헤 루이스 핀투가 경기 전 어떠한 지시를 내렸는지가 눈에 훤히 들어오지 않는가?
재성이 형 역시도 이젠 완전히 알게 되었을 거다.
우린 이런 방식으로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창민이의 패스가 재성이 형의 발밑으로 향하고, 부드럽게 몸을 돌려 세운 형은 나를 아예 배제했다는 듯 페널티박스 정면 쪽만을 바라보았다.
‘그거지.’
난 재성이 형이 나를 완전히 배제해서 기뻤다.
이쪽을 보았다면, 반 박자가 늦어졌을 거다.
그리고 이 미묘한 차이는 온두라스의 센터백들이 다시 전형을 갖추도록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헤-이!!!!”
입을 크게 벌린 의조 형이 마르셀로 페레이라의 전진으로 생겨난 공간을 점유해 들어간다. 그리고 아래쪽으로 뻗은 왼손은 바라는 크로스의 높낮이를 말해 주고 있다.
뛰어 들어가는 공간의 앞쪽으로.
크로스는 낮게.
재성이 형이 정보를 처리해 내는 속도라면, 오른발이 축구공이 닿기 전에 이미 분석을 완료했을 것이다.
유일한 관건은 정확도다.
팡-!
“…….”
“…….”
축구공이 부드럽게 떠오르기 시작하고, 크로스는 떠오르는 것보다 뻗어 나가는 것에 중점이 맞춰져 있다.
감아 차지 않았다는 증거다.
헤더를 겨냥한 크로스를 보낼 때는 회전을 먹게끔 만드는 게 더 강한 반발을 주지만, 발리를 노리는 크로스를 보낼 때는 회전이 적으면 적을수록 더 좋다.
결과는 아직 모르지만, 재성이 형의 크로스는 무척 훌륭해 보인다.
그러면 이제 남은 건 하나다.
‘제발.’
팔라시오스를 등진 의조 형이 몸을 눕히기 시작하고, ‘휘두르지 않고 가져다 댄’ 오른발에 맞은 축구공이 온두라스의 골대를 향해 꺾여 들어간다.
그리고 그것은 루이스 로페즈(Luis Lopez)의 손을 지나쳐, 골대 아래의 그물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
“이야아아아아아아-!!”
수많은 기회를 날려 보낸 끝에, 마침내 우리는 온두라스의 골문을 가르는 데에 성공했다.
득점에 성공한 의조 형이 왼쪽 코너플랫을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하고, 기뻐하며 얼른 달려간 나는 모여 있던 동료들의 사이로 뛰어들며 소리를 질렀다.
동메달 결정전 진출 확정에 성큼 다가선 우리는 크게 소리 지르며 마음껏 기뻐했는데, 난 잊지 않고 흥민이 형에게 다가가 이런 말을 했다.
“손날두라며?”
“?”
“내가 아는 호날두는 안 그러던데. 아, 탐욕 부리는 건 진짜 닮았다.”
“야. 그러기야?”
“어, 이러기야. 똑바로 합시다. 네?”
“…….”
“형. 우린 영웅이 필요한 게 아니야.”
“……그래.”
내 이야기에 흥민이 형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제대로 하겠다고 답을 해왔다. 그래서 나도 이내 환히 웃으며, 분위기를 바꾸려고 했다.
오늘 조금 골 결정력이 좋지 못했다고 해서, 흥민이 형의 기량을 폄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메달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흥민이 형의 활약이 필요하다.
“그런데, 알지?”
“어?”
“우리는 영웅이 필요한 게 아니야. 우리 스스로 영웅이 되어야 하는 거지. 그리고 거기엔, 나는 없어. 그러니까 나 말고, 다른 나 말이야. Ich. 뭔 말인지 알아?”
“Wir라는 거네.”
“그래, 그거.”
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흥민이 형을 남겨둔 채, 나는 수비위치를 찾아 얼른 달려 나갔다.
살짝 상기된 표정의 신태용 감독님이 우리를 향해 박수를 두드려주고 계셨고, 그 뒤의 다른 코칭스태프들 역시도 격려를 보내오고 있었다.
그리고 열기가 조금 수그러든 관중석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는 소리가 꽹과리와 함께 뒤섞여 들려왔다.
{“대~~한!민!국!”}
짜작-짝짝짝!
{“대~~한!민!국!”}
짜작-짝짝짝!
0:1의 승리나 혹은 승부차기까지 고려했을 온두라스가 어떻게 대응할지, 나는 앞으로도 계속 상대의 전술적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을 생각이다.
***
.후반 07분
대한민국 1 : 0 온두라스
드르륵-
바닥에 떨어져 있던 물병을 집어 든 신태용 감독이 뚜껑을 따고 액체를 입 안 가득 머금는다.
후반 시작과 동시에 팀의 전형을 5-3-2로 바꾼 온두라스는, 양쪽 윙백을 전진시키는 방법을 통해 공격의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공격 시 3-5-2나 3-6-1에 가까운 형태로 바뀌기도 했는데, 대한민국은 현재까지 거기에 잘 대응하는 중이었다.
촤아악-!!
“아악-!!”
“헤-이!!”
삑-!
브라얀 아코스타(Brayan Acosta)의 거친 태클에 권창훈이 쓰러지고, 양팔을 치켜들어 올린 신태용 감독이 주심을 향해 목소리를 높인다.
지금은 경고가 나와야 하는 상황이었고, 이집트 출신의 게하드 그리샤(Gehad Grisha)주심이 노란색 카드를 꺼내 든다.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 신태용 감독은 몸을 풀고 돌아오는 선수를 보았는데, 슬쩍 피치를 다시 바라본 후 벤치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곤 벤치의 앞쪽에 서서, 멀리서 걸어오는 선수 중 하나를 자신의 곁으로 불러냈다.
“컨디션은 괜찮아?”
“네. 괜찮습니다.”
“그래, 그래. 후반전에 뛸 수도 있으니까, 경기에 계속 집중하고. 응?”
“네.”
“그래. 들어가 봐.”
“…….”
신태용 감독은 멕시코 경기 이후 김다온과 황희찬의 사이가 서먹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손흥민을 따로 불러 이야기도 나눠 봤고, 문창진에게는 중재를 부탁하는 말도 했다. 하지만 크게 효과가 없었고, 결국 어제는 황희찬과 직접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신태용 감독은 김다온의 기본적인 성향을 황희찬에게 설명했다.
오늘도 그렇지만, 김다온은 최선을 다하지 않거나 집중력이 느슨해진 선수에겐 어김없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건 자신과 친하다고 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프타임 때는 계속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손흥민에게 똑바로 하라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는데, 당시 황희찬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어려서 그런 거지, 뭐.’
세상의 어떠한 이들은 타인의 보편적인 특성을 두고, 자신에게만 적용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파주에 있을 때부터 김다온은 줄곧 올림픽 팀을 채찍질해 왔고, 아니다 싶은 것이 있을 때면 코칭스태프에게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해 문화를 고쳐 나갔다.
그는 잘못된 게 있으면 참아 넘기지 못하는 유형의 사람이다. 하지만, 사우바도르에서 합류한 황희찬은 이런 김다온을 조금 불편하게 생각했다.
[“야, 그런데 막말로. 너 감당할 수 있겠어?”] [“네?”] [“아니. 이번 올림픽만 하고 끝낼 것도 아니고, 앞으로 대표팀에서도 다온이를 계속해서 봐야 하는데, 언제까지 그렇게 불편하게 있을 거야? 어? 그리고 지금은 다온이가 너랑 사과하려고 다가서고 있잖아. 안 그래?”] [“…….”]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해. 네가 다온이보다 축구를 더 잘하면 되는 거야. 그러면 네 마음대로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잖아. 다온이는 주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거야. 걔 봐. 아침에 제일 일찍 일어나서 동료들이 잠은 잘 잤는지 확인하고, 밤에는 방마다 들려서 감기 걸린 사람은 없는지. 아프지는 않은지. 그런 거 확인 다 하잖아? 그러면서 축구도 잘하고 있어. 있잖아. 주장으로서 걔는 100점 만점에 200점이야, 200점. 그런데 네가 그렇게 계속 벽을 세우고 있으면 어떻게 해. 안 그래? 군대만 안 가면 앞으로는 대표팀에서 안 뛸 거야? 그거 아니잖아.”]당근과 채찍을 적절하게 섞은 신태용 감독의 이야기에 황희찬은 고민하는 듯했고, 굳이 더 몰아붙이고 싶지 않았던 그는 선수를 타이르며 좋게 마무리를 가져갔다.
당장 나아지지 않더라도, 언젠가 둘의 사이가 괜찮아질 수 있도록 계기라도 마련해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평소보다 말수가 조금 적어진 황희찬은 조금 더 진지하게 하루에 임하는 것처럼 보인다.
‘잘 하고 있어. 원래 그런 거야.’
공개적으로 자신에게 모욕을 주었단 생각에 반발하긴 했지만, 김다온의 태도는 확실히 젊은 선수들에게 좋은 귀감(龜鑑)이 되어 주고 있다.
대표팀에서 함께 생활한 권창훈이 이미 거기에 물들었고, 이번 올림픽 팀에서는 대부분의 선수가 김다온의 일거수일투족을 배우려고 하는 중이다.
훈련 전후의 루틴이라든가, 훈련과 실전에 임하기 전의 정신자세를 따라 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대한민국 올림픽 팀을 더 나아지게 만들고 있다.
“아악-!”
“응?”
김다온이 일으킨 올림픽 팀 내의 변화에 흐뭇함을 느끼고 있을 무렵, 신태용 감독의 귀에 익숙한 음색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깜짝 놀란 그가 몸을 돌리며 피치를 쳐다보았고, 이내 한쪽에 쓰러져 고통스러워하는 선수에게 시선이 닿았다.
쓰러진 사람은 오늘 경기에서 공수의 밸런스를 잘 맞춰 주던 이창민이었다.
“빨리 나가봐. 빨리, 빨리, 빨리, 빨리!”
“…….”
얼른 의료진을 피치로 들여보낸 신태용 감독의 얼굴에, 한 줄기 수심이 내려앉기 시작한다.
후반 09분.
곧, 대한민국의 첫 번째 교체 카드가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