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637)
636화 Miragem (10)
창민이를 쓰러지게 한 알란스 바르가스(Allans Vargas)의 태클은 분명 고의적이었다.
시야가 탁 트여 있어서 태클 과정 전부를 보았는데, 앞으로 달려 나올 때부터 볼을 빼앗는 것이 아닌 다른 데에 목적이 있었다.
결백하다는 듯 주저앉은 채 양손을 들고 있던 바르가스에게 다가가,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소리를 질렀다.
[더러운 새끼!! 뭐 하는 짓이야?!?!] [??]화들짝 놀란 표정의 바르가스가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본 순간, 누군가 내 왼쪽 어깨를 강하게 밀쳐냈다.
온두라스의 오른쪽 미드필드 앨버스 엘리스였고, 내가 더 발끈해 달려들려던 순간 번개처럼 등장한 민재가 앞을 가로막으며 더 크게 화를 내고 소리를 질러댔다.
“뒤질래, 이 개새끼야?!?! 누굴 밀쳐!!”
“…….”
“쒸-빨러미!!”
%%
그렇게 양 팀의 선수들이 뒤엉키고, 말리는 의조 형에 의해 뒤쪽으로 밀려난 내게 온두라스의 선수 하나가 다가왔다.
초코 로자노는 동료의 태클에 고의성은 없었다고 해명을 했지만, 난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아까의 장면을 제대로 본 사람이라면,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처음에는 경고조차 주지 않았던 게하드 그리샤가 뒤늦게 수습하려 노력을 해 보지만, 거친 플레이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난 계속해서 소리쳤다.
[FUCK YOU!] [에-이! 너무 심하잖아!] [FUCK YOU!! 넌 업보라는 게 뭔지 알게 될 거야!! 내가 그냥 말로만 하는 줄 알지?! 넌 이제부터 피치 위에서 항상 뒤를 조심해야 할 거다!!]한껏 과열된 감정을 내뱉어보아도, 창민이가 뛸 수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신태용 감독님은 창진이를 교체로 투입할 준비를 했고, 뒤늦게 들것에 실린 창민이는 계속에서 우리에게 미안하다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큰 부상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올림픽을 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경험상 최소 2주?
길면 3, 4주 정도일 거다.
.
(배정세) – SBS 축구 아나운서
“대한민국 올림픽 팀에 악재가 찾아듭니다. 공수에서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를 보여주었던 이창민 선수가 부상으로 경기장을 빠져나갑니다.”
(정지현) – SBS 축구 해설위원
“쓰-읍.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지금은 주심이 경고나 퇴장을 줬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집트의 게하드 그리샤 주심. 너무 카드를 아끼고 있어요.”
(김태영) – SBS 축구 특별 해설위원
“아, 지금은 100% 확실한 고의입니다. 처음부터 발목을 노리고 태클이 들어갔거든요? 김다온 선수가 화를 내는 것도 이해합니다. 그리고 저렇게 화를 내주는 선수가 있는 게 좋습니다. 온두라스가 일부러 거친 플레이를 해서 위축시키려는 것일 수도 있거든요? 대한민국 선수들. 계속해서 파이팅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배정세)
“문창진 선수가 이창민 선수를 대신해서…….”
***
.후반 30분
대한민국 1 : 0 온두라스
후반 9분에 있었던 바르가스의 태클 이후, 양 팀의 경기는 줄곧 거친 상태로 이어졌다.
좀처럼 카드를 꺼내지 않던 게하드 그리샤의 손에서 불과 20분 만에 총 다섯 번이나 옐로카드가 쥐어졌고, 크고 작은 신경전이 피치 곳곳에서 일어났다.
쿵-!!
“우억-!!”
“헤—이!!!!!”
로멜 퀴오토가 먼저 자리를 선점한 김다온의 등을 어깨로 강하게 밀어냈다.
몸싸움이라기보다 럭비에서나 나오는 숄더 태클에 더 가까운 동작이었고, 사이드라인 밖으로 밀려난 김다온이 바닥을 뒹굴자 그 앞에 있던 이들이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한 장 남은 교체 카드를 위헤 몸을 풀고 있던 대한민국 대표팀의 선수들이다.
“이게 뭐야, 이게-!!”
“아니 이건 경고잖아!! 경고를 줘야지!!”
최규백과 박동진이 게하드 그리샤에게 소리를 내지르고, 몇 바퀴를 뒹굴다가 벌떡 일어난 김다온이 진정하라는 듯 주변을 향해 억누르란 제스처를 보냈다.
그리고는 주심에게 다가가, 과한 동작이었다며 경고를 줬어야 한다며 어필했다.
언제 상처가 났었던 건지 김다온의 팔꿈치 부근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주심도 아직 보지 못한 탓에, 지혈은 아직이었다.
하지만 김다온 본인도 상처가 난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경기를 뛰며 분출되는 아드레날린이 사소한 소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홀린 듯, 황희찬은 김다온의 까진 팔꿈치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
파앙-!!
김다온은 프리킥을 처리하고 나서야 팔꿈치를 확인했다. 그는 상처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흘러내리는 피를 왼쪽 손바닥으로 쓰윽 닦더니 유니폼에 문지르며 다시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잠시 뒤, 다시 그는 피치의 가장 시끄러운 곳에서 나타났다.
‘또 저러네.’
지금은 온두라스의 오른쪽 윙백 케빈 알바레즈가 손흥민의 뒤꿈치를 밟았다.
손흥민의 발에서 벗겨진 축구화가 파울이 일어난 지점 주변에 놓여 있었고, 번개처럼 달려 나간 김다온은 알바레즈에게 손가락 두 개를 펴들며 황희찬이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마구잡이로 퍼부었다.
‘대체 왜 저럴까.’
황희찬은 훌륭한 워크에씩(Work-Ethic)을 자랑하지만, 그런 만큼 타협과는 거리가 멀다. 저돌적인 플레이 스타일을 본뜬 황소라는 별명 그대로 인 것이다.
강한 자의식과 주위 환경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성격 역시, [“길들이기 어렵다.”]는 평가와 정확히 일치한다.
멕시코전에서 김다온이 느닷없이 소리를 질러 왔을 때, 황희찬은 도저히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실수한 것은 맞지만 축구에서 실수야 언제든지 벌어지는 일이고, 본래 공격수라는 포지션 자체가 99번 실수해도 1번만 성공하면 되는 위치다.
그렇지만 황희찬이 몰랐던 건, 피치 위의 어떠한 선수들은 99번이나 실수해도 되는 기회를 얻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골키퍼와 수비수들은 백이면 백 완벽한 경기력을 추구해야 했고, 미드필드 역시도 99번이나 실수해도 되는 기회를 얻지 못한다.
그래서 김다온은 황희찬이 기회를 놓친 후에, 조금 더 주변 동료들을 위한 플레이를 펼쳐 주길 원했다.
뼛속까지 공격수인 외골수에겐 평생 이해하기 힘든 일이겠지만, 김다온에게 축구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누군가가 돋보이게 되는 스포츠였다.
‘진짜 바보 같아.’
끊임없이 주변에 소리를 지르고,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면 피치 반대편까지 부리나케 달려갔다. 조금 전에도 김다온은 얼추 30m가량을 전력 질주했다.
후반 31분.
과연 몇 명이나 되는 사람이 단순히 동료를 보호하기 위해 저렇게 자신의 체력을 소모하겠는가?
차라리 제자리에서 쉬며 그런 것들은 주심이나 당사자에게 맡기는 게 더 ‘이익’이라 여기는 사고방식을 지닌 황희찬에겐, 김다온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다.
잘츠부르크에서 뛰면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도, 유럽의 문화와 분위기가 개인주의적인 자신의 성향과 잘 맞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올림픽 팀에서 처음으로 김다온을 만나기 전까진, 황희찬은 김다온 자신과 비슷할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달랐다.
김다온은 잘츠부르크 내에서도 황희찬이 시끄럽다거나 호들갑을 떤다고 생각했던 이들과 조금 더 흡사했다. 오지랖 넓고 쓸데없이 최선인 남자들 말이다.
“어-이!! 희찬-!!!!”
“??”
벤치 쪽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그제야 김다온에게서 눈을 뗀 황희찬이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달려 신태용 감독이 있는 곁으로 향한다.
뒤꿈치를 밟힌 후 발을 절뚝이는 손흥민을 교체해줄 생각이었는데, 사실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올림픽 팀 내에서 손흥민이 가지는 위상과 한 방에 기대는 마음이 계속 피치에 머물도록 했지만, 실은 오늘 그는 대한민국의 워스트(Worst)였다.
두 번의 1:1 기회를 포함해 득점에 가까웠던 여섯 번의 장면에서 매번 실망스러운 결과만을 남겼고, 무리하게 볼을 끌어 공격 템포를 늦춰 놓았다.
“많이 뛰어줘야 해. 무슨 말인지 알지?”
“네.”
“안정적으로 패스를 하고, 공격할 때면 최대한 사이드롤 벌려. 빠르게 빠르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
“네.”
“그리고.”
“?”
“다온이가 소리 지른다고 삐지지 말고. 알겠지?”
“…….”
사실 황희찬은 전날 신태용 감독과의 미팅에서 별다른 감흥을 받지 못했다.
앞서 말했듯 황희찬은 길들이기 어려운 유형이고, 타인의 설득을 받아들여 본인이 옳다고 믿는 것을 바꾸는 일은 더더욱 기대하기 힘들다.
오늘 신태용 감독이 황희찬의 태도가 변했다고 착각하는 이유 역시, 복기(復棋)를 통해 선수 스스로가 경기력이 나빴음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황희찬은 여전히, 김다온의 리더십이 불편했다.
물론 올림픽 팀 내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는 문창진을 시작으로, 동갑내기인 김민재와 성인팀에 뽑힐 정도로 기량을 인정받는 권창훈은 김다온의 말이라면 껌뻑 죽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정승현/박동진/최규백과 같은 터프한 성격의 센터백들도, 김다온의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된다.
‘하지만 난 걔네와는 달라.’
삐?익!!
교체 사인을 확인한 손흥민이 천천히 걸어 나오고 온두라스의 선수들이 재촉하는 동안, 황희찬은 계속 생각을 이어나간다.
포항 스틸러스와의 신뢰를 깨트려가며 잘츠부르크로의 이적을 결정한 건, 유럽 진출이라는 꿈보다 권위로 가득한 축구에서 벗어날 기회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끊임없이 자신의 개성과 방식을 거부하는 지도자들의 사이에서, 황희찬은 조금씩 회의를 느껴가던 중이었다.
물론 개성을 억누르려던 게 아니라 단점을 보완해주려던 것뿐이었지만, 권위에서 오는 대화 방법과 특유의 수직적인 문화가 오해를 하도록 만든 것뿐이다.
하지만 황희찬은 그것을 이해하려는 노력 대신 많은 사람을 실망하게 만드는 방법을 택했고, 좋은 축구선수가 되는 것으로 보답하면 된다고 믿어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힘내라.”
“…….”
교체 전 손흥민의 격려를 받은 황희찬이 힘껏 내달려 피치로 들어서고, 왼쪽 공격수 자리에 들어선 그는 투입 직후부터 존재감을 발휘했다.
기습적이고 강한 압박으로 볼을 탈취해 내어, 온두라스의 수비를 파고들어 알바레즈의 파울을 유도해 낸 것이다.
삑-!!
이번에는 주심이 망설이지 않고 경고 카드를 빼내 들었는데, 이로써 온두라스의 파이브백 중 무려 네 명이 경고 카드를 받게 되었다.
특유의 저돌성과 투지를 한꺼번에 드러낸 황희찬의 플레이에, 대한민국 벤치가 한층 더 시끄러워진다.
파이팅을 외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튀어나왔고, 테크니컬 에어리어에 서서 이 모든 것을 보고 듣던 신태용 감독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저런 탈이 있었긴 하지만, 황희찬은 장차 대한민국 대표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줄 선수였다.
설기현 이후 거의 유일한 선이 굵은 직선 드리블러로서, 팀에 다양성을 부여하고 공격진의 전력을 끌어올려 줄 수 있는 유형이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같은 부분을 기대하고 발탁했지만, 지금까지는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워낙 독불장군이다 보니, 올림픽과 같은 대회 기간 피드백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김다온과의 문제도 있었다.
물론, 이십 대 초반의 개성 강한 선수들이 사소한 갈등 하나 없이 서로 섞인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신태용 감독은 믿고 있었다.
‘비 온 뒤에 땅은 더 굳어지는 거야.’
조별 예선전부터 내렸던 비가 완전히 그치고 나면, 가장 중요한 무대에서 단단하게 굳은 땅이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어쩌면 그곳에서 싹이 트일 수도 있다.
이번 2016 리우 올림픽이 아닌, 더 먼 미래에 찬란하게 피어날 파릇파릇한 새싹이 말이다.
그리고 그날, 신태용 감독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때 피어날 꽃의 아름다움을 지켜보고 싶었다.
***
.후반 40분
대한민국 1 : 0 온두라스
조별 예선 D조에서, 온두라스는 단단한 수비 못지않게 침대 축구로도 명성을 떨쳤다.
중남미산(産) 침대도 중동에서 생산된 것 못지않은 편안함을 자랑했기 때문인데, 어지간한 불면증도 누우면 곧바로 치료될 만큼의 안락함을 자랑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다.
흥민이 형이 워낙 많은 기회를 놓쳐 추가득점을 올리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앞서나간 덕분에 온두라스가 침실로 들어가는 것 자체는 막을 수 있었다.
벤치에 있는 7명의 자원 중 교체 카드 세 장을 전부 공격에 활용한 것도, 온두라스가 침대 축구를 펼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공격형 미드필드인 조 베나비데즈(Jhow Benavidez)와 두 장의 측면 자원을 교체로 투입한 건데,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에서 한계가 드러났다.
상당한 주전과 교체자원 사이의 격차.
부족한 전술 이해도가 바로 그것이다.
지금도 조 베나비데즈가 엉뚱한 곳으로 패스를 날려 우리에게 역습 기회를 주었다.
탁-!
아마 저 온두라스의 공격형 미드필드가 생각했던 플레이는 내 뒤로 돌아 들어가는 오스카 살라스(Oscar Salas)의 전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너무 눈에 띄는 움직임이었고, 내가 슬쩍 뒷걸음질을 치자 살라스가 움찔하며 발을 멈췄다.
그런데 조 베나비데즈는 그것을 뻔히 보았을 텐데도 왼발을 휘둘렀고, 이제 축구공은 내 발아래에 도달했다.
잔뜩 전진해 있던 온두라스의 쓰리백이 움찔하는 게 보인다. 하지만 우리 쪽 공격수들 모두가 한참 아래에 머물러있어, 후퇴를 망설이는 모습이다.
그리고 남은 일곱 명의 필드 플레이어는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누군가는 재압박을 하려고 했고, 누군가는 역습을 우려하여 포지셔닝을 잡아 나가려는 행동을 취했다.
나는 그 사이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던 창진이를 발견했고, 앞으로 패스를 밀어 보낸 후에 사이드라인으로 넓게 벌려 달려 나가는 것을 선택했다.
왼쪽 윙백 자리를 맡아줘야 하는 오스카 살라스가 재압박하는 방법을 택하면서, 지금 온두라스의 오른쪽 진영이 텅텅 비어 있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아코스타가 황급히 창진이를 막아서려고 하지만, 이미 패스는 다시 떠났고 주심은 모처럼 마음에 쏙 드는 판정을 내린다.
휘슬을 불려던 것을 멈추고, 양손을 곧게 뻗으면서 어드밴티지를 적용한 것이다.
창진이가 대충 앞쪽으로 띄워 보낸 패스를 다시 발아래에 놓아둔 후, 나는 거침없이 오른쪽 코너 플랫 앞쪽까지 드리블해 달려 나갔다.
시간을 끈다는 의미에서도 당연한 판단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페널티박스와 그 주변에 공격 숫자가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것도 있다.
재빨리 커버에 들어선 바르가스가 내 앞을 막아서고, 허둥지둥 달려온 살라스 역시 주변으로 다가왔다.
수적으로 우위를 점하자, 자신감이 생겼는지 두 사람이 한꺼번에 압박을 가해온다.
같은 수비수로서 그 심정이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한쪽이 너무 구멍이 커서 어쩌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적인 레프트백이었던 브라얀 가르시아와는 달리, 오스카 살라스는 소속 클럽에서도 또 올림픽 팀 내에서도 로멜 퀴오토와 흡사한 측면 공격수 역할을 맡고 있었다.
가끔 중앙미드필드로도 출전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수비를 잘하는 선수는 아니다.
당연히 그쪽으로 돌파 방향을 잡은 나는 지연에 목적을 두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바르가스를 가볍게 무시하며, 왼쪽으로 볼을 접어 살라스의 가랑이 사이로 볼을 굴렸다.
섣부른 전진의 대가가 알을 까버리는 것으로 돌아오게 되자, 당황한 살라스가 손을 뻗어 나를 잡아채려고 한다.
그렇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는지, 뻗었던 오른손을 다시 거둬들인다.
그거면 그것대로 나쁜 상황이 아니었던지라, 나는 다급해진 바르가스와 살라스를 한꺼번이 이용할 목적으로 볼을 세워두곤 오른쪽 발바닥을 축구공 위로 가져갔다.
“??”
“!”
슬쩍 앞으로 굴렸던 축구공을 곧바로 뒤로 쭉 빼내자마자, 다시 수비를 시도했던 살라스가 미끄러져 넘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절묘하게 바르가스를 방해했고, 여전히 발아래에 있는 축구공을 옆으로 툭 밀어 보내자 안으로 파고드는 길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조금 더 이곳에서 놀아도 나쁜 선택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나는 한 골을 더 만들고 싶었다.
정상적이었다면 3:0 혹은 그 이상이 되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내용인지라, 1:0으로 끝나버리는 건 어딘가 많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다시 몸의 방향을 바꾸게 된 바르가스의 다리가 후들거리며 휘청이는 사이, 넉넉한 차이로 그를 따돌리게 된 나는 온두라스의 왼쪽 수비를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었다.
{“우와아-!!”}
{“오오오-!!”}
감탄하는 목소리만으로 한국인과 다른 나라의 사람을 구분할 수 있다는 건 참 재미있는 일이다.
“다온아-!!”
“뒤! 뒤!!”
어렵지 않게 페널티 박스 안으로 침투해 들어가자, 여기저기에서 컷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지런히 달려 진즉에 박스 안에서 자리 잡고 있던 의조 형과 조금 전 재성이 형을 대신해 교체로 투입된 승우가 소리를 질렀던 거다.
그렇지만.
‘에이, 씨.’
지금 내 눈에 들어오는 건, 패스를 요구하는 두 사람의 뒤쪽으로 비어 있는 공간이었다.
희찬이가 저곳으로 뛰어들었다면, 온두라스의 수비 전체를 속이는 패스를 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본인도 자유로운 상황에서 득점 기회를 맞이할 수 있었을 거라고 본다.
아쉬운 위치 선정을 보였던 게 한두 번도 아니었던지라, 난 얼른 미련을 거두고 다른 선택지를 찾았다.
지금은 의조 형에게 보내는 게 가장 쉬운 선택지였지만, 수비수 둘이 달라붙어 있어서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승우에게 보내기엔, 오른발로 슈팅을 했을 때 각도가 잘 나오지 않았다. 진짜 각이 없는 게 아니라, 슈팅 궤적에 온두라스의 선수들이 많이 있을 것 같았다.
어느 쪽도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
결국 내 선택은.
‘해 보지, 뭐. 까짓것.’
루이스 로페즈와 골포스트 사이의 좁은 공간으로 직접 축구공일 밀어 넣는 것이었다.
애초에 컷백을 염두에 두고 뛰어 들어가 스텝을 맞추기 쉽지 않았지만, 왼발만 한 번 제대로 내디디면 되었기에 발을 빠르게 움직여서 타이밍을 잡았다.
그리고 다음은.
퍼엉-!!
눈을 질끈 감은 루이스 로페즈의 팔이 불과 5m 정도의 거리에서 날린 슈팅으로 다가가고 있다.
***
작가의 말 ? 죄송합니다.
당분간은 또 댓글을 좀 피하겠습니다.
이번 주도 일요일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