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638)
637화 Miragem (11)
삑-! 삐?익!! 삐—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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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세) – SBS 축구 아나운서
“경기 끝납니다! 대한민국이 온두라스를 3:0으로 누르고, 2016 리우 올림픽 4강 진출을 확정 짓습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2년 연속 올림픽 준결승에 진출하며, 최소 동메달을 노려볼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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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종료(리우 올림픽 녹아웃 스테이지 8강)
대한민국 3 : 0 온두라스
[골] 황의조 : 전반 30분(이재성)김다온 : 후반 43분
브라얀 바르가스 : 후반 46분(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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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끝난 순간, 난 기쁨을 표현하는 의미로 주먹 쥔 두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수비적으로 나왔던 온두라스를 상대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몇몇 온두라스의 선수들이 피치에 주저앉거나 드러누웠고, 개중 어떠한 이는 나의 곁으로 다가와 유니폼 교환을 요구했다.
하지만, 난 그것을 거부했다.
[너희 플레이가 아주 더러웠다고.] [내가 안 그랬잖아.] [그래도. 팀 스포츠잖아. 미안하지만, 유니폼을 교환하고 싶지는 않아.]실망한 표정의 오스카 살라스를 남겨 두고, 미련 없이 돌아선 나는 피치에 있는 동료를 찾아 움직였다.
가장 먼저 마주한 건, 센터백인 승현이다.
얘도 확실히 많이 좋아졌다.
훌륭한 체격조건(188cm/81kg)을 지녔음에도 그것을 낭비한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이번 올림픽 팀을 통해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 보였다.
민재가 가장 나를 귀찮게 하는 것은 맞지만, 축구에 관한 질문은 승현이가 제일 많다.
“야, 좋았다?”
“오~ 무실점. 무실점, 무실점.”
“그래, 인마. 그래서 좋았다고 했잖아.”
개인적으로는 승현이의 플레이가 좋아진 이유로, 커뮤니케이션 빈도의 증가를 꼽고 싶었다.
따지고 보면, 약점으로 평가받았던 성급한 판단력도 커뮤니케이션 부족이 원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스스로를 조금 더 통제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조금 감정적이랄까.
나도 피치에서는 늘 감정적이지만, 그것이 플레이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감정을 드러낸 첫 경험의 대가가 너무나 뼈아팠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바르셀로나의 트위터를 찾아가 메시를 도발했던 일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거다.
그리고 다음은 민재 차례다.
저 괴물 녀석.
“오늘 고생 좀 했다?”
“아이 씨.”
오늘 민재는 올림픽에서 치른 경기 중에서 가장 좋지 못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민재의 경기력만을 기준으로 했을 때의 이야기다.
실수도 적지 않았고 판단이 나쁜 순간도 있었지만, 그래도 1인분은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번 올림픽에서 세트피스 실점이 적은 이유엔, 민재가 차지하는 지분이 꽤 많을 것이다.
“아우, 진짜 형 말대로 웨이트를 좀 해야 할까 봐요.”
“하래도. 갈 데 없으면, 형한테 오든가.”
“독일에요?”
“아니, 인마. 알잖아.”
“아~ 갱기도?”
“그래. 갱기도.”
“큭큭큭큭.”
경남 통영 출신인 민재는 아무래도 아직 사투리에 더 익숙하다. 종종 민재에게 사투리를 배우며 놀기도 하는데, 배우면 배울수록 매력을 느끼고 있다.
그렇게 주변 동료들을 챙겼으니, 이번에는 응원을 와 준 팬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때다.
“자- 가자-!!!”
손뼉을 치며 목소리를 크게 높인 후, 나는 선수단 전부를 이끌고 태극기를 흔들면서 아리랑을 부르고 있는 관중들의 앞으로 향했다.
조금 전 오스카 살라스에게 주지 않은 유니폼은 저 앞에 있는 소년에게 줄 생각이다.
다 함께 인사를 하기 전에 얼른 달려가, 난 벗은 유니폼을 아이에게 건넨다.
“고맙습니다, 해야지.”
부끄러워하는 아이의 볼을 가볍게 두드려 준 후, 나는 다시 뒤로 달려가 동료들의 곁에 섰다.
어떻게 보면 가장 힘들 수도 있었던 경기가 오늘 온두라스와의 8강전이었던지라, 다들 표정이 한결 가벼워 보였다. 그렇지만 난 그걸 내일까지만 봐줄 생각이다.
올림픽 전에 세워 두었던 목표와 자기 기준을 잃지 말라고 채찍질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오늘 하루 즐기는 것쯤이야.
그건 얼마든지 괜찮다.
특히.
“자, 인사하자-!! 하나, 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다 함께 허리를 숙인 후, 본인만의 방식대로 마무리했다. 누군가는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고, 누군가는 얼굴 앞에 양손을 모았다.
각자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에, 나는 사람들을 이끄는 일이 얼마나 힘겨운지를 다시 한번 실감했다.
“후우~”
천천히 복도를 향해 걸어가는 길, 숨을 한 번 내어 쉬며 하늘을 올려다본 나는 4년 전의 기억을 떠올린다.
지금으로부터 약 한 시간 뒤, 상파울루에 있는 아레나 코린치앙스(Arena Corinthians)에서는 홈팀 브라질과 콜롬비아의 8강전 마지막 경기가 펼쳐질 예정이다.
축구에서 ‘절대’라는 말은 없다지만, 아마도 브라질이 승리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
조별 예선 첫 두 경기에서의 부진을 마지막 경기에서 씻어 내며, 엄청나게 쏟아졌던 비난으로부터 벗어났을 것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게다가 콜롬비아 축구팬들이 브라질 선수들을 자극한 것도 있어서, 동기부여도 확실할 것이다.
‘제발.’
미쳤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4강전의 상대가 브라질이길 바라고 있다. 4년 전 런던에서 우리를 울게 만든 그들에게, 그들의 홈그라운드에서 복수해 보고 싶다.
4강 전의 장소는 리우데자네이루의 마라카낭.
또 하나의 비극을 추가해 볼 수도 있을 거다.
‘할 수 있어.’
준결승 진출을 확정 지은 지 10분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 나는 벌써 다음 경기를 생각하고 있었다.
***
※ 2016 Rio Olympic Knockout Stage
Semi-Final 1. 브라질 : 대한민국
Semi-Final 2. 나이지리아 : 독일
***
[오늘은 1945년에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 지배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고 1948년 대한민국의 정부가 수립된 것을 경축하는 날입니다. 맨체스터 시티는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을 기리고 광복절을 기념합니다. – 맨체스터 시티 트위터/2016.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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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71번째 광복절을 축하합니다. 대한 독립 만세!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트위터/2016.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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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한민국의 71번째 광복절입니다. – 바이에른 뮌헨 트위터/2016.08.15.]***
2016년 8월 15일. 28221 마하다혼다. 마드리드, 스페인. 시우다드 데포르티바 아틀레티코 데 마드리드.
디에고 시메오네가 김다온의 임대 영입 사실을 선수단에게 알린 이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는 변화의 바람이 생겨나고 있었다.
“이건 절대로 안 돼.”
“…….”
“지금까지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게 문제가 될 거라고. 각 서포터 그룹에게 알리고, 입장 때 철저하게 검사할 수 있게 하도록. 필요한 이미지는 충분히 구해 뒀으니, 앞으로 교육을 잘해야 할 거야.”
“네.”
오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회장 오스카 세레소는 구(舊) 일본 제국의 국기인 욱일기의 경기장 반입을 막기 위한 미팅을 진행 중이었다.
욱일기가 아시아의 하켄크로이츠와 같다는 것을 스태프들에게 알리면서, 문제의 소지를 사전에 방지코자 했다.
딸깍-
미팅이 종료된 후, 클럽의 기술 이사인 안드레아 베르타가 약간의 우려를 드러낸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컬러를 한꺼번에 담은 욱일기는, 오랜 시간 동안 서포터 그룹의 응원 수단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현재도 홈구장 주변에서 욱일기를 판매하는 상인들이 많았는데, 그들 대부분은 이번 클럽의 조처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할 것이 분명했다.
“얼마나 될까?”
“네?”
“우리가 그 물건을 전부 사들인다면 말이지.”
“?!”
욱일기를 전부 사들이는 것까지 고려하는 오스카 세레소를 보며, 안드레아 베르타는 적잖은 놀라움을 느꼈다.
“그렇게까지 할 생각이십니까?”
“별것 아닌 노력이지 않나. 지출로도 얼마 되지 않아.”
“하지만…….”
“알고 있네. 우리는 이미 다온의 임대에 필요 이상의 지출을 했어. 그런데도 여기까지 한다는 것 자체가 자네에게는 낯설 수도 있겠지.”
세상의 어떠한 클럽도, 임대생을 위해 응원문화를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오히려 임대생들에게 클럽의 문화를 받아들이기를 요구한다.
그렇기에 지금 오스카 세레소가 하려는 일은 불필요한 전례를 남기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이미 결정한 일이야.”
“디에고입니까?”
“…….”
“디에고로군요. 이런, 세상에나.”
“디에고는 다온이 이곳에서 외부의 문제로 영향을 받지 않기를 원했네. 그리고 이런 말도 하더군. 지금까지 그가 뛰어 왔던 곳에서 일어나지 않았던 일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것만큼 클럽에 망신인 일이 어디에 있겠냐고 말이야. 나는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네.”
침묵하는 안드레아 베르타를 보며, 오스카 세레소 역시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의 말처럼 이미 결정한 일이기는 했지만, 전혀 공감되지 않는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척하고 있는 자신이 우습게 느껴지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유럽의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오스카 세레소 역시 동북아시아에서 일어난 식민과 참극을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한편으로 세레소는 이렇게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
“따지고 보면, 다온은 지금껏 우리가 품어 보지 못한 수준의 선수일세. 그러니까, 역사를 통틀어서 말이야. 물론, 루이스가 있기는 하지. 그렇지만…….”
“다온만큼은 아니죠.”
“그래. 지금은 루이스의 커리어가 더 뛰어나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추월할 걸세. 아니, 어쩌면 이미 추월했을지도 모르겠군. 루이스도 결국 유럽대회의 우승을 이끌지는 못했으니까 말이야.”
오스케 세레소가 말한 루이스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상징적인 존재인 ‘Zapatones(큰 신발)’. 즉, 루이스 아라고네스(Luis Aragones)였다.
자타공인 클럽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아라고네스는 10년의 프로 커리어 동안 세 번의 라 리가 우승과 두 번의 코베 델 레이 우승을 선물했다.
구단 역대 최다 득점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영혼의 단짝으로 불린 호세 에우로기오 가라테(Jose Eulogio Garate)와 함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최전성기를 이끌었고, 은퇴 뒤에도 클럽에 막대한 공헌을 했다.
무려 네 번이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감독직을 맡은 것인데,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클럽이 세군다로 강등되었던 2001년이었다.
헤수스 힐(Jesus Gil)의 방만한 경영으로 클럽 경제가 완전히 무너졌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2000/2001 시즌이 끝난 후 강등이 확정됐었다.
이에 깜짝 놀란 아라고네스가 곧바로 클럽에 전화를 걸어 감독직을 맡겠다고 했고, 단 1년 만에 승격시킨 후 이듬해 잔류까지 확정 지은 뒤에 미련 없이 클럽을 떠났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아라고네스에게 동상을 만들어 헌정한 이유다.
“우리에겐 모든 것들이 낯설 거야.”
“…….”
“아시아. 특히 한국에서 쏟아지게 될 주목과 전 세계가 우리의 경기를 얼마나 많이 지켜볼지를 생각해 보게. 바이에른 뮌헨은 다온의 영입 이후에 영업이익이 무려 113%나 늘었어. 믿겨지나? 113%라고! 그들의 경제적 수준을 생각하면, 이건 말이 되지 않는 일이야.”
오스카 세레소는 곧 있어 쏟아질 스포트라이트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비록 완전 영입은 아니지만, 오히려 임대라는 것 때문에 영입 초반에 집중될 이목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뜨거울 게 틀림없었다.
김다온을 향한 인종차별이 어떠한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는지를 떠올려 본다면, 아시아의 하켄크로이츠를 경기장에 내건 대가는 더욱 혹독할 것이다.
“그럼, 이만.”
“그러게나. 나중에 다시 보지.”
“네.”
딸깍-
어느 정도 납득을 한 베르타가 회장실을 떠나고, 약간의 피로감을 느낀 세레소가 안경을 벗고 눈가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그러곤 자리에서 일어나, 습관처럼 바라보는 훈련장의 모습을 커다란 창문 아래로 내려다보았다.
스페인 라 리가의 개막은 오는 21일이었고, 마지막 박차를 가하느라 여념이 없는 선수단은 어느 때보다도 기운차게 개막전을 준비 중이었다.
앙투안 그리즈만이 조금 걸리기는 했지만, 외의 선수들은 김다온이 온다는 것에 크게 고무된 것처럼 느껴졌다.
‘아직 합류도 전인데 말이야.’
현재 브라질에 있는 김다온은 연일 유럽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다소 해묵은 바이에른 뮌헨과의 문제부터 시작하여, 올림픽에서의 활약 등이 거론되는 것이다.
리우 올림픽 전 Best of Best로 평가받던 네이마르 등의 부진까지 겹치면서, 꾸준히 활약 중인 김다온의 능력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
올림픽에서도 벌써 세 개의 득점을 기록했는데, 이를 두고 스페인 언론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Miragem(신기루).
풀백임에도 늘 공격 진영 가장 깊숙한 곳에서 등장하고, 그런데도 정작 수비에서 단 하나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 모습이 마치 피치 위의 신기루 같다고 한 것이다.
재미있게 읽었던 기사를 떠올린 오스카 세레소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신기루라. 정말 그럴지도.’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대한민국의 광복절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트위터에 한글로 올린 오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단장은 임대가 발표될 5일 뒤를 기다리고 있었다.
***
【같은 시각】 리우데자네이루 ? RJ, 20220-800 브라질. 49 ? 산투 크리스투, 프로페소아 페헤이라 헤이스 거리. 노보텔 RJ 포르투 아틀란티코(Novotel RJ Porto Atlantico. Av. Prof. Pereira Reis, 49 – Santo Cristo, Rio de Janeiro – RJ, 20220-800 Brazil).
브라질에서의 생활이 길어지면서, 다들 사소한 질병(?)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가벼운 감기부터 시작하여, 향수병과 같은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 모두 심각하게 받아들일 만한 것들은 아니었다.
메달까지 이제 단 1승만 남은 상황이 되었기에, 스스로를 다독이며 마음을 다잡는 모습이었다.
똑똑똑-
“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린다.
편안한 복장을 한 민재였다.
“형, 수영하러 안 갈래요?”
“괜찮아. 너희끼리 가.”
“네. 뭐 필요한 거는요?”
“없어. 고마워.”
“네. 쉬세요~”
덩치는 산만해서는 형형 거리며 고개까지 꾸벅 숙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참으려고 해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귀여운 새끼.’
혼자 조용히 미소를 지어 보인 나는 멈춰 두었던 영상을 틀었고, 노트북의 화면에서는 전날 브라질과 콜롬비아의 8강전 경기가 재생되었다.
결과는 브라질의 2:0 승리였다.
하지만.
‘5:0짜리야.’
올림픽에서의 첫 두 경기와 이후 두 경기의 브라질은 전혀 다른 팀이었다.
짧은 기간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환골탈태(換骨奪胎)했다.
브라질 국민과 브라질의 축구 전설들로부터 갖은 비난을 받던 네이마르도, 왜 자신이 MSN의 한 축으로 활약할 수 있는지를 드디어 보여 줬다.
“흡-!!”
기지개를 한 번 크게 편 후, 랩톱을 침대 한쪽에 놓아두곤 생각에 잠긴다.
첫 두 경기에서 4-2-3-1을 썼다가 재미를 보지 못한 브라질은, 이후 더블 볼란치를 세운 4-4-2로 전형을 바꾸면서 경기력을 회복했다.
숫자에 불과하다는 포메이션의 중요성이 입증된 전형적인 사례였는데, 아마 모레도 같은 전술일 거라고 본다.
쿵, 쿵, 쿵, 쿵.
머리를 움직여 침대의 프레임에 뒤통수를 두드려 가며, 나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당연히 이 정도의 단계가 되면, 가장 중요해지는 것은 상대팀의 분석이 아니라 얼마만큼 우리가 본연의 기량을 발휘해 내느냐가 된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객관적인 전력의 우위가 확실하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열세에 놓인 쪽은 스스로가 가진 기량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뿐만 아니라, 상대의 전술을 카운터 치는 부분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두 명의 볼란치를 내세운 4-4-2는 내게 무척 익숙한 전술이고, 그것을 어떻게 공략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
특히나 브라질처럼 풀백의 기량이 특출나지 않은 경우라면, 끊임없이 뒷공간을 공략함으로써 4-4-2에서 가장 중요한 수비와 미드필드의 간격을 벌릴 수 있다.
게다가 브라질의 양쪽 윙어는 미드필드가 아닌, 사실상의 공격수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이거다.
과연 할 수 있을까?
다들 겉으로는 아닌 척하고는 있지만, 브라질 경기를 포기하고 동메달을 노리는 게 현실적이라 생각하고 있다.
내가 없는 곳에서 한 이야기다.
그리고 내가 이를 아는 건.
똑똑똑-
“형. 시간 돼?”
“어, 그래 창훈아. 왜?”
“간식 먹자고.”
“간식?”
“어. 부탁해서 밖에서 사 왔어.”
“그래?”
세상의 어디에도 영원한 비밀은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누군가의 비밀을 전한다.
“야.”
“어?”
“너 이 씨, 동메달만 따도 된다고 말하고 다닌다며? 누가 그런 말 하래?”
“아, 아! 잠깐, 잠깐.”
“이 새끼가. 경기도 하기 전에 진다는 이야기나 하고 말이야. 뒤질래? 어? 숨지실래요?”
“아, 형. 아파아파아파아파.”
“아파야지, 이 새끼야. 아파야지. 그런데 그거 알아? 모레 지면 더 아파, 인마.”
창훈이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은 후, 나는 녀석의 등을 계속해서 찰싹찰싹 두들겼다.
“한 번만 더 그런 말 해봐. 진짜 뒤져? 어?”
“아이 씨. 어떻게 알았지…….”
“뭐?”
“아니, 형. 안 그럴게. 안 그런다고.”
젊음의 패기마저도 꺾어 버리고 현실을 바라보게 만들 정도로, 브라질은 그만큼 강한 팀이다.
그렇지만 현실을 바라보기엔, 우리는 이미 먼 길을 와 있다. 그리고 본래 꿈이란 현실을 충실히 살아간 이가 단잠에 빠졌을 때 꾸는 것이다.
세상의 그 어떠한 사람도 꿈부터 꾸고 현실을 살아가지 않는다.
단순한 말장난일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꿈에서 깨어날 때가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야, 빵훈아.”
“어?”
“잘하자. 어차피 한 번만 이기면 메달인 거, 기왕이면 색이 예쁠수록 좋잖아?”
“어……. 나는 은이 더 예쁘던데.”
“아유, 진짜!!”
찰싹-!
“아-!!”
“매를 벌어요, 매를! 너는 씨 인마, 눈치도 없냐? 어? 어??”
창훈이의 객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나는 내내 녀석의 등과 머리를 두들겨 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