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639)
638화 Miragem (12)
2016년 8월 16일. 리우데자네이루 ? RJ, 20220-800 브라질. 49 ? 산투 크리스투, 프로페소아 페헤이라 헤이스 거리. 노보텔 RJ 포르투 아틀란티코.
오후에 있을 선발명단의 발표를 앞두고, 대한민국 올림픽 팀의 신태용 감독은 고민을 이어 나가고 있다.
사실,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엔트리(Entry)도 17명뿐이다.
그런데도 신태용 감독이 고민하는 이유는 손흥민의 기용 여부 때문이다.
“휴우~”
결정을 내릴 수 없었던 신태용 감독이 숨을 크게 내어 쉬며 양손을 머리 위에 얹는다.
“…….”
지난 온두라스와의 경기에서 보여 준 손흥민은 무척 실망스러웠다. 클럽에서의 부진을 만회하겠다는 욕심이 컸는지, 팀을 잊어버린 플레이로 일관했다.
그러면서 윙의 지원을 받지 못한 황의조 역시 무색무취하게 바뀌었다.
손흥민이 날려 버린 기회 때문에 더 어려운 경기를 펼쳐야 했던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다른 애는…….’
신태용 감독은 올림픽 준결승에서 손흥민을 뺐을 때 짊어져야 할 책임이 두려웠다. 결과가 좋다면야 용병술로 찬사를 듣겠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온갖 비난이 쏟아질 게 뻔했다.
또 하나 망설이고 있는 건, 대안인 황희찬과 류승우가 딱히 손흥민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2015/16 시즌 실망스러운 한 해를 보냈다고 하지만, 그래도 손흥민은 손흥민이다.
“후우~ 미치겠네, 진짜.”
선발명단 중 유일하게 채우지 못한 한 자리를 비워 둔, 신태용 감독의 근심은 점점 더 깊어진다.
현재 손흥민은 전형적인 High Risk High Return 카드다. 지금까지 딱히 경기력이 좋진 못했지만, 큰 경기에서 한 방을 기대해 볼 수 있다.
반대로 황희찬은 Low Risk Low Return이다.
현시점 폼은 분명 대한민국 올림픽 팀 공격수 중에서 최상위권이지만, 순수 실력만 놓고 본다면 손흥민보다 분명히 몇 수는 아래다.
무엇보다, 문전 앞에서의 결정력이 좋지 못하다.
객관적으로 내일의 경기를 예상해 보았을 때, 신태용 감독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혼자만의 힘으로 브라질의 수비를 뒤흔들 수 있는 선수였다.
수비적으로 나가야 하는 만큼, 공격에 나섰을 때 전방에 머무는 선수들의 숫자가 부족하다.
실제로 신태용 감독은 4-5-1에 조금 더 가까운 4-2-3-1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탁.
탁.
펜 끝으로 테이블을 천천히 두들기던 신태용 감독.
딸깍-
잠시 뒤 그는 결심했다는 듯, 펜촉을 밖으로 빼내어 채우지 못한 한 자리에 이름을 적었다.
슥-
슥-
손흥민.
결국 신태용 감독의 선택은 한 방을 기대할 수 있고, 또 여론 역시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평범하면서도 당연한(?) 손흥민이었다.
“…….”
긁적긁적.
이름을 채워 넣은 후 괜히 간지러운 이마를 긁는 신태용 감독님의 얼굴엔, 희미한 불안감이 스며들어 있다.
과연 이게 최선인 걸까?
‘모르겠어.’
올림픽 4강에 진출했으나 No Medal의 가능성이 남은 감독의 고뇌는, 선발명단을 결정한 이후에도 한참 동안 계속되었다.
***
【같은 시각】 리우데자네이루 ? RJ, 22250-040 브라질. 242 ? 보타포구, R. 프라이아 지 보타포구. 호텔 유2 리우데자네이루(Hotel Yoo2 Rio de Janeiro. R. Praia de Botafogo, 242 – Botafogo, Rio de Janeiro – RJ, 22250-040 Brazil).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신태용 감독과는 달리, 브라질의 호제리우 미칼레(Rogerio Micale)는 별다른 망설임 없이 내일 경기의 선발명단을 채워 나갔다.
더블 볼란치 형태의 4-4-2로 전형을 바꾼 이후, 팀의 전력에 대한 강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조금 일찍, 선수들을 불러 모아 전력분석을 겸한 미팅을 시작했다.
브라질 당국과 축구협회의 전폭적인 지원과 협조 아래, 이들은 최고의 장비와 최고의 시설을 제공받고 있었다.
“한국은 좋은 팀이다.”
“…….”
“그렇지만, 충분히 꺾을 수 있는 팀이기도 해.”
호제리우 미칼레가 본 대한민국 올림픽 팀의 가장 큰 장점은 오른쪽 라인에서 나왔다.
현시점 축구선수 중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김다온과 이번 올림픽 최고의 미드필드 중 하나로 평가받는 이재성은,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선수들이었다.
하나, 이는 어디까지나 브라질을 만나기 전까지의 이야기였다.
“볼을 점유하는 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호제리우 미칼레는 브라질 선수들의 앞에서, 내일 경기에서 점유율이 주요한 키워드가 될 것이라 말했다.
브라질이 볼을 점유한다는 건 측면 자원을 깊숙한 곳까지 전진시킬 수 있다는 의미였고, 이는 곧 김다온과 이재성이 라인을 끌어 내려야 함을 뜻했다.
그리고 이는 곧.
“저들의 역습 자체를 늦출 수 있어. 9번과 7번도 훌륭한 선수지만, 한국의 오른쪽 라인만큼은 아니다. 최소한 이번 대회에서는 그렇지 않아.”
“…….”
“다만, 9번에게 뒷공간을 내어주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잘라 들어가는 것에 능숙한 공격수야. 무척 까다롭지.”
브라질의 전력분석 시간 동안에도, 손흥민은 그리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했다.
아예, 대한민국의 왼쪽 라인 전체가 무시됐다.
“볼을 빼앗기면 바로 압박해. 한국의 수비수들은 강한 압박에 종종 당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들이 자신들의 진영에서 다급하게 볼을 걷어 내도록 만들어. 패스가 아니라, 걷어 내기 급급하게 만들자는 거야. 이해했나?”
약 30분 동안 이어진 전력분석 미팅이 끝나고, 팀의 주장을 따로 불러낸 미칼레가 컨디션을 묻는다.
“체력적으로 어떤가?”
“좋아요. 아무런 문제 없이 뛸 수 있어요.”
“멋지군. 경기력이 살아나서 무척 기쁘다네, 네이마르.”
“그렇게 말해 주시니 감사하네요.”
“천만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요청하게.”
“명심하죠. 그럼.”
“그래.”
올림픽 초반, 네이마르를 향한 여론은 굉장히 좋지 못했다. 무리하게 탐욕을 부려 기회를 날린다거나, 수비를 열심히 하지 않는 등의 좋지 못한 플레이를 펼쳤기 때문이다.
무려 27번이나 볼을 빼앗긴 남아공과의 올림픽 개막전 이후에는 협박에 가까운 말들도 쏟아졌었다.
또 하얀 펠레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아르투르 안투니스 ‘지쿠’ 코임브라(Arthur Antunes ‘Zico’ Coimbra)는, 네이마르를 향해 [“브라질의 10번을 달 자격이 없다.”]며 일침도 날렸다.
하지만 결국 그는 스타답게 자신의 실력을 보여 줬고, 지금은 예전처럼 찬사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감독님.”
“응? 오, 그래.”
추가 미팅이 남은 미칼레가 스태프를 따라 어딘가로 이동하는 사이, 엘리베이터 앞에 다다른 네이마르는 자신을 기다리던 두 명의 가브리에우를 만났다.
“조이아.”
“먼저 안 갔어?”
“응. 널 기다렸지.”
“하하. 그거 고맙네.”
네이마르를 ‘보석(Joia)’이라는 별명으로 친근하게 부른 남자는, 브라질이 자랑하는 두 명의 가브리에우 중 하나인 제주스(Gabriel Jesus)다.
2015년 브라질 축구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유망주상을 차지하며, 단숨에 유럽의 주목을 받았다.
프로 데뷔 2년 차인 올해에는 더욱 파괴적인 플레이를 선보이며 ‘브라질 리그의 왕’으로 평가를 받는데, 미칼레가 4-2-3-1을 택한 이유도 제주스가 클럽에서 4-2-3-1의 원톱으로 뛰기 때문이었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제주스는 맨체스터 시티로의 이적이 확정되었고, 2017년 1월 1일 EPL로 향하게 된다.
일단은 브라질 리그가 끝난 11월 말, 계약서 사인과 메디컬 테스트를 겸해 맨체스터를 찾을 예정이었다.
“걔가 그렇게 잘한다며?”
“응. 한 번 붙어 봐. 굉장해.”
“젠장. 나는 네가 다른 누구를 그렇게까지 평가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 그러니까, 메시를 빼면 말이야.”
“그래도 메시가 최고이기는 해.”
“하지만 다온도 굉장하고?”
“응. 바로 그거야.”
2012 런던 올림픽 결승전에서 처음 김다온을 만난 이후, 네이마르는 줄곧 김다온의 실력을 대내외적으로 칭송해 왔다.
작년 챔피언스리그 4강전이 끝난 뒤에도 [“다온이 나와 팀을 힘들게 했다.”]며, [“세계 최고의 수비수와 상대하게 되면 이길 때도 질 때도 있다.”]라는 말로 자신이 맞대결에서 열세였음을 인정하는 모습도 보였다.
평소 네이마르의 성격과 자존심의 크기를 고려했을 때, 이런 반응은 극찬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거 알아?”
“응?”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잠깐 말을 끊은 네이마르가 두 명의 가브리에우와 함께 안에 올라탄다.
꼭대기 층으로 향하는 버튼이 눌러지고, 멈췄던 이야기를 시작한 네이마르는 자신이 오래전부터 김다온과의 만남을 고대해 왔다고 고백했다.
“이번에는 콧대를 눌러 줄 거야.”
“부럽네. 넌 정면 대결이잖아.”
“큭큭큭. 그렇지. 재미있을 거야. 걔는 무척 즐거워지는 녀석이거든. 물론 질 때는 짜증 나고 그렇지만, 같이 축구를 했을 때 보람을 느끼게 되는 친구야. 그래서 난 걔가 계속해서 다른 팀이었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클럽에서도 말이야.”
“…….”
“…….”
띵-
네이마르의 이야기가 끝남과 동시에, 엘리베이터가 꼭대기 층에 도착한다.
두 명의 가브리에우는 함께 테라스로 나가기를 원했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원했던 네이마르는 제안을 사양하며 엘리베이터에 남아 객실이 있는 층의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둘이 남게 된 두 명의 가브리에우.
그중 침묵하던 쪽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조이아가 저러는 건 처음 봐.”
“나도 그래.”
“내 말은 그러니까, 무척 진지하잖아. 물론 평소에도 진지하긴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사람 같아.”
가브리에우 바르보자(Gabriel Barbosa)는 진지한 네이마르가 무척이나 낯설었다.
“나랑 위치를 바꿔 주진 않겠지?”
“아예 처음부터?”
“아니. 경기 도중에.”
“흐음- 글쎄. 그거야 경기 흐름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좌우의 위치를 임기응변으로 바꾸는 건 흔한 경우잖아.”
“그렇기는 해.”
“뭐야. 너도 상대해 보고 싶은 거야?”
“응. 그야 당연하지. 넌 아니야?”
“……뭐. 비슷한 것 같아.”
가브리에우 바르보자는 1996년생으로, 브라질 올림픽 팀 내에서는 1997년생의 티아구 마이아(Thiago Maia) 다음으로 나이가 어렸다.
그렇지만 8살 때부터 브라질에서 큰 주목을 받았고, 브라질의 축구 매거진 ‘Globo’로부터 [“바르보자는 간수의 왼발, 네이마르의 기술, 루카스 모우라의 스피드를 모두 가졌다.”]는 극찬을 받으면서 단숨에 세계적인 유망주로 뛰어올랐다.
2013년에는 16살의 나이로 브라질 1군 무대에 데뷔하기도 했는데, 네이마르의 이적으로 자리가 나면서 산투스 FC의 스쿼드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산투스 FC와 유소년 계약을 체결한 순간부터, 바르보자는 항상 제2의 네이마르가 될 거란 이야기를 들었다.
플레이 스타일은 전혀 달랐지만, 장차 브라질의 핵심이 될 거란 기대를 고스란히 보여 주는 평가였다.
그래서 바르보자는 항상 네이마르를 동경해 왔다.
그리고 현재는 네이마르의 동생과 열애 중이다.
‘나도 붙어 보고 싶어.’
호텔 옥상 테라스에 기대어 시내의 풍경을 내려다보며, 바르보자는 김다온에 대한 전의(戰意)를 불태운다.
“이봐, 제주스.”
“왜, 가비?”
“만약에 말이야.”
“??”
“유럽에 진출한다면 다온과 상대할 기회가 있겠지?”
“음- 아마도 그러지 않을까?”
“…….”
가브리엘 바르보자도 현재 수많은 유럽 클럽의 영입 리스트 우선순위에 올라 있었다.
오래전부터 관심을 표현해 온 유벤투스와 가브리에우 제주스를 맨체스터 시티에 빼앗긴 인테르가 FC 산투스에 정식 오퍼를 제안한 상태다.
이적료는 2,500만 유로 수준이었고, 현재 산투스는 제수스에게 팀을 고르란 통보를 보내왔다.
하지만 바르보자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일에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그런데.
“잠깐만, 나 전화 좀.”
“응. 전화하고 오면, 내려가자.”
“응. 잠깐만 기다려 줘.”
주머니를 뒤적인 바르보자가 테라스의 한쪽으로 이동해, 자신의 에이전트에게 전화를 건다. 올림픽이 끝난 후에 향할 행선지를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이미 유벤투스와 인테르와 관계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고, 바르보자는 그중 자신에게 조금 더 친절했던 이들에게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다.
“올라? 저예요, 가비.”
오랜 기간 망설여온 유럽 진출을 마침내 결정하는 바르보자의 말에, 그의 에이전트는 뛸 듯이 기뻐한다.
– 뭐야? 이렇게 갑자기?
“뭐, 그런 일이 있었어요.”
– 응?? 뭐, 아무렴 어때. 정말 잘했어, 가비. 너는 분명 유럽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을 거야. 아니, 전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거라고. 모두가 가비 골을 외치는 걸 상상해 봤어?
에이전트가 지나치게 과장한다는 생각에, 조금 불편해진 바르보자가 얼른 전화를 끊는다.
의외로 소심한 성격의 그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주목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딸깍-
“후우~ 이런 건 진짜 질색이야.”
칭찬이 익숙지 않았던 바르보자가 몸서리를 친 후, 자신의 친구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왔어?”
“응. 내려가자.”
“그래. 그러자.”
물론 김다온이 아니었다고 해도, 가브리엘 바르보자는 오늘과 같은 결정을 조만간 내렸을 것이다. 현재 산투스 FC는 직원과 선수들에게 줄 봉급이 밀려 있다.
자신의 이적으로 수많은 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정든 클럽과 도시를 떠나는 건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하지만 김다온을 대하는 네이마르의 태도가, 좀처럼 충동적이지 않은 바르보자를 부추긴 것은 분명했다.
“넌 이제 뭐 할 거야?”
“글쎄. 너는?”
“나는 요즘 만나는 애랑 전화나 하려고. 몸매가 아주 끝내준다니까?”
“큭큭큭. 넌 항상 그러더라.”
“아무튼, 그럼 이따가 보자.”
“그래.”
딸깍-
제주스와 헤어진 후, 자신에게 배정된 객실로 돌아온 바르보자가 휴대폰을 꺼내 들어 ‘유튜브’에 접속한다.
그는 자연스럽게 김다온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검색했고,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활약상이 고스란히 담긴 40분짜리 영상을 틀어 두고 침대에 편히 누웠다.
수많은 축구 스타들이 그러했듯, 김다온 역시 자신보다 어린 누군가에게 영감(靈感)을 전해 주고 있었다.
그러기엔 많이 어린 22살에 불과한 나이지만, 바르보자가 처음 네이마르를 우상으로 여겼을 때 네이마르의 나이는 18살에 불과했다.
‘젠장. 끝내주네, 진짜.’
화면 속, 김다온의 하이라이트에 몇 번이나 몸을 움찔한 바르보자는 어느새 안전히 영상에 몰입해 있었다.
***
【16일 저녁】 리우데자네이루 ? RJ, 20220-800 브라질. 49 ? 산투 크리스투, 프로페소아 페헤이라 헤이스 거리. 노보텔 RJ 포르투 아틀란티코.
불과 30분 전만 해도, 나는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샤워를 끝낸 후, 아영이가 따로 챙겨 준 화장품을 순서에 맞춰 바르던 중이었다.
그런데.
똑똑똑-
“아이 씨, 또 뭐야?”
가까스로 한 명을 보내고 침대에 눕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잠은 이미 오래전에 달아났다.
딸깍-
“…….”
“야. 잠깐 들어가도 돼?”
“……나 잘 건데?”
“아니, 잠깐이면 되는데…….”
“하아~”
처음 내 객실의 문을 두드렸던 건, 내일 경기가 무척 불안했던 상민이었다. 가브리에우 바르보자라는 브라질 리그 최고의 공격수를 상대한다는 게 부담스러웠던 거다.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던 난 상민이를 안으로 불러들여 대화를 나누었고, 그렇게 한참을 진정시킨 후에 녀석을 방으로 돌려보냈다.
한데 문을 닫기 직전 민재가 나를 찾아왔고, 이후로도 찬동이와 창훈이가 각각 떨린다며 상담을 요청해 왔다.
그런데 지금은 창진이가 문틈에 발을 끼워 둔 채, 안으로 들여보내달라는 눈빛을 보내오고 있었다.
“도대체가 이놈이나 저놈이나…….”
“어?”
“아니야, 이 새끼야. 들어와.”
결국 포기해 버린 나는 잠금쇠를 푼 이후에 문을 열고 창진이를 안으로 불러들였다. 돌아서서 손을 뻗어 불을 켰고, 그러곤 냉장고로 가 물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지금 내가 목이 마른 건지, 아니면 속에서 천불이 나는 것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았다.
아마도 후자가 아닐까?
“그래서? 뭔데?”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최대한 평범한 얼굴로 창진이에게 날 찾아온 목적을 물었다.
그러자 녀석은 이전 다른 사람들이 말했던 것과 완전히 똑같은 고민을 토로해 왔다.
“우리가 메달 딸 수 있겠지?”
“야. 내일 져도 동메달 따면 된다고 했던 놈이 뭐 그런 고민을 하냐?”
“아니, 그건 말이 그런 거고.”
“왜? 쫄리냐?”
“넌 안 그래?”
“나는 그냥 네가 얼른 나가 줬으면 좋겠는데? 졸려서 뒤지기 일보 직전이거든.”
“야, 그러지 말고 좀. 나 좀 살려 주라.”
살려 달라고 말하고 싶은 쪽은 난데.
오히려 창진이가 말하고 있다.
어쩌면 주장이라는 자리는 나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더 어울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 잘 들어.”
“…….”
귀찮음과 짜증을 잘 억누르며, 창진이에게 진심을 담은 조언을 건네 본다. 상담을 요청해 온 동료들에게, 나는 매번 지금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말할게. 우리가 이길 수 있어.”
“진짜?”
“어. 브라질이 우리보다 강한 건 맞아. 하지만 그게 뭐? 이번 올림픽에서도 강한 팀이 떨어지고 그랬잖아. 걔네가 우리보다 축구를 잘한다고 해서, 우리한테 이긴다는 게 아니야. 그리고 그거 알아?”
“어?”
“날 믿어. 내 말을 믿으라고. 넌 잘해 인마. 축구 잘한다고. 그러니까 쫄지 말고, 내일 네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축구를 해. 다른 건 나한테 맡기고. 알았어?”
고개를 격렬히 끄덕이는 창진이를 일으켜 세운 후, 나는 고맙다고 말하는 녀석을 힘겹게 객실 밖으로 밀쳐 냈다.
“내일 할 수 있지? 어? 너만 믿으면 되지?”
“어, 어, 어, 어. 어, 그래. 나만 믿어.”
“야, 잘자. 어? 다온아! 잘자!”
“알았어알았어알았어알았어.”
딸깍-
간신히 문을 닫을 수 있었던 난, 행여 또 누가 찾아올까 봐 얼른 불을 끄곤 침대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혹시 또 몰라 문 쪽을 바라보며 귀를 쫑긋 세웠다.
다행히, 노크 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그렇게 내게도 평화는 찾아왔다.
그러나.
“……에이 씨, 진짜.”
이번엔 정작, 내가 문제였다.
드르르륵-
“후우~”
당장 잠을 청하는 일이 어렵다고 결론을 내려 버린 나는, 객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리우의 밤바람을 맞았다.
공기는 무척 낯설었지만, 그 낯섦이 익숙하다는 것에서 색다른 감정이 느껴졌다.
“나도 참.”
문득, 지금까지 많은 나라를 다녔고 또 그보다 더 많은 경험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섦이 익숙하다는 것 자체가 그런 의미였다.
지금만 해도 나는 낯선 브라질 땅 위에 서 있고, 이번 여정이 끝나면 다시 또 낯선 곳으로 향하게 된다.
역마살이라도 낀 운명인 걸까?
그건 사양하고 싶은데 말이다.
“어이, 추워.”
제법 쌀쌀한 바람이 느껴져, 얼른 몸을 돌려 다시 객실 안으로 들어선다. 한결 포근하게 느껴지는 침대가, 이번에는 제대로 나를 잠의 세계로 인도하려고 한다.
그리고 난 그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완전히 곯아떨어지기 전, 나는 밤늦게 찾아와 괴롭혔던 동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귀여운 짜식들.’
걱정하고 고민하는 이들이 곁에 있어, 난 그들을 위해 조금 더 힘을 내보려고 한다.
이제, 올림픽도 끝이 거의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