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64)
63화
내가 에이전시에 부탁해 MIFA와 연락을 했을 때, 당시 통화했던 여성은 흔쾌히 허락하며 이런 말을 했다.
[비옷은 꼭 챙기시고요. 알겠죠?]작년 맨체스터에서 있을 때는 화창하고 맑은 날씨였는데, 오늘 나는 그 유명한 ‘Rainy City’의 진면목을 경험하게 되었다.
비가 정말, 엄청나게 내리고 있다.
쏴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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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11일. 살포드, 영국. 살포드 스포츠 빌리지, 리틀턴 로드. 맨체스터 국제 축구 아카데미(Manchester International Football Academy. Salford Sports Village, Littleton Rd. Salford, England).
#오전 09 : 46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했다는 빗줄기는 이제 폭우가 되어 대지를 적시고 있다.
하루하루가 금쪽같은 나로서는, 필드로 나가 훈련할 수 없는 이런 날씨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 씨. 여기 하루에 500유로인데.]나는 MIFA에서 열흘간 트레이닝을 하기 위해, 며칠 전 5천 유로를 계좌로 송금했었다.
5천 유로면 덴마크에서 우리 네 가족이 한 달 반을 너끈히 버틸 수 있는 돈이다.
지금에 와선 딱히 부담스러운 금액은 아니지만, 그래도 헛되이 날리게 되면 아까운 법이다.
“저, 킴?”
“응?”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린다.
“반가워요. 며칠 전에 저랑 통화했죠? 전 한나에요. 이곳 MIFA의 관리자죠.”
“와-우. 덴마크어를 무척 잘하시네요?”
“하하. 제가 북유럽 아이들도 함께 맡고 있거든요. 가실까요?”
한나 존슨(Hannah Johnson)은 MIFA의 창립자, 로스 존슨의 장녀다.
그녀는 앞으로 열흘 동안, 필요한 것이 있다면 자신에게 연락하라면서 명함을 전달해주었다.
“올레를 보러 온 거죠? 그라면 이 안에 있어요.”
“네. 감사합니다.”
“별말을요. 그러면 전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고마워요.”
직업적인 미소를 보여준 한나가 떠나고, 난 그녀가 알려준 사무실의 문을 노크했다.
똑똑똑-
“Come In-!”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와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서자, 부스스한 몰골의 한 남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로 다가왔다.
이 남자의 이름은 올레 그라베센(Ole Graversen)이다.
덴마크와 스웨덴의 이중국적자로, 2년 전까지는 AFC 윔블던의 유스팀 코치로 지냈다.
AFC 윔블던은 한국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잉글랜드 내에서는 EPL 내의 빅클럽들에게도 주목받는 훌륭한 유스풀과 아카데미를 갖춘 것으로 명성이 높다.
그리고 그곳에서 8년을 근무한 올레 그라베센은, 마찬가지로 과거 AFC 윔블던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노노와 친구 사이이기도 했다.
“네가 킴이구나. 노노가 그렇게까지 열정적으로 추천하는 건, 참으로 오랜만에 봤어.”
그라베센이 내게 자리를 권하고, 맞은편에 앉은 나는 맨체스터 날씨를 걱정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하. 뭐, 어쩔 수 없지. 그래도 걱정하지 않아도 돼. 여긴 실내 시설도 괜찮은 편이거든. 그나저나, 벤피카로 간다며? 축하야 많이 받았을 거고, 솔직히 어때?”
“음- 조금 걱정이야 되죠.”
“하긴, 거긴 막시가 있는 팀이니까.”
처음에는 왜 SL 벤피카가 나를 원하는 걸까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에이전시는 내게, SL 벤피카의 감독이 강력히 나를 원했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내게 무언가를 건네주었는데, 그것이 내가 SL 벤피카로 이적을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또한, 현실적인 이유 역시도 있었다.
우선 SL 벤피카는 매년 50~60경기를 치르는 팀이었고, 주전 풀백인 막시 페헤이라는 그중 38~45경기 안팎으로 출전해왔다.
이 말은, 남은 경기는 백업의 몫이라는 거다.
“오히려 적응하는 데에는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요.”
겨울 이적시장은 보통 즉시 전력감을 찾는 법이지만, SL 벤피카는 그러한 것에 개의치 않고 충분한 적응기를 주겠다고 밝혀온 유일한 팀이기도 했다.
높은 이적료와 팀 중위권 수준의 주급을 제시한 상황이니, 그렇다고 하여 무작정 벤치에만 앉혀두지도 않을 테고 말이다.
더군다나 막시 페헤이라는 올해 가장 적은 출전횟수를 보이는 중이었고, 여기엔 작년 국가대표 경기에서 입었던 햄스트링 부상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말이 있다.
그는 여전히 젊은 나이지만, 부상을 기점으로 기량이 눈에 띄게 저하되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하긴. 그것도 나쁜 판단은 아냐. 겨울 이적시장은 늘 어려운 법이거든. 팬들은 즉시 전력을 기대하지만, 선수는 적응 기간이 필요하니까. 결국은 그게 엇박자가 나서 실패하기 쉽지. 그런데, 네가 요청했던 부분 말이야. 그거 좀 이상하던데?”
“······.”
역시나,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
“본래 내가 딱히 요청하는 훈련에 의문을 제기하는 건 아닌데 말이야. 그런데 이것들은, 다분한 의도가 보이던데? 왜일까?”
왜긴, 그게 사실이라서다.
AFC 윔블던은 매우 독특한 유소년 철학을 지닌 곳으로, 유럽에서는 드물게 양발을 전부 다 사용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AFC 윔블던에서 뛰는 유소년들은 연습 때 양말의 색을 다르게 신는데, 주로 사용하는 발과 그렇지 않은 발을 구분하여 어린 선수들에게 경각심을 불어 넣어주기 위함이다.
그리고 약한 발을 의식적으로 자주 사용하게끔 함으로써, 결국엔 양발 모두를 수준급을 구사하는 선수를 만들려는 게 AFC 윔블던의 유소년 아카데미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철학이었다.
“인제 와서 왼발을 쓰겠다고? 왜?”
“그건 그러니까······.”
이 이야기를 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난 괜찮아. 너만 일정이 없다면, 훈련은 차질없이 진행해줄 테니까. 오히려 난 네가 굳이 돈을 지출해가며 굳이 이곳을 찾은 이유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말해 봐. 왜지?”
이제 겨우 올레 그라베센을 알게 된 지 5분이 지났을 뿐이지만, 난 이 남자가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이것은 아마도, 내가 최근에 도통 겪어보지 못한 일들을 떠올리게 만들어서일 거다.
예전, 모르텐 감독님은 내게 늘 이유를 설명해주려 노력하셨는데 이것은 캐스퍼 감독님 아래서는 경험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하여 캐스퍼 감독님 밑에서 뛰는 게 불만이었다는 뜻은 아니지만, 이유를 알고 훈련을 진행하는 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를 아는 나로선 다소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좋아요. 전부 다 말해드릴게요.”
MIFA를 선택한 결정은, 어쩌면 탁월한 것일 수도 있겠다.
***
윔슬로, 체샤이어. 마슬리스필드 로드(Wilmslow, Cheshire. Macclesfield Rd).
현재 지성이 형이 사는 집은 본래, 파트리스 에브라 선수가 살던 집이었다.
이곳은 총 6개의 침실과 4개의 욕실, 미니바와 사우나시설 등이 갖춰진 거대한 저택이다.
본래는 지성이 형이 가족들하고만 살 생각으로 집을 구매했었는데, 작년부터는 맨유의 선수들에게 임시로 방을 내줘왔다.
이유는 다름 아니라 외로워서.
어제 직접 들은 말이다.
“Goal—-!!!!!”
폭우가 퍼부어진 관계로, 오늘 맨유의 회복훈련은 실내에서만 간단히 진행되었다고 한다.
MIFA에서 훈련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지성이 형은 에브라 선수와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곁의 치차리토 선수 또한, 즐거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로 함께 화면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어째, 내가 더 열심인 것 같은데?
[당연히 그래야지. 우리 지성이는 맨유에서 뛰고 있고, 다온이 너는 아직 좀 더 축구를 잘해야 하잖아?] [와아- 할 말이 없게 만드시네요.] [호호호. 이 아줌마가 그랬어? 고생했고, 밥이나 얼른 먹어. 여기 전부 다 차려놨으니까.]이곳엔 치차리토 선수뿐만이 아니라, 지성이 형의 가족들도 함께 거주하고 있다.
다 합치면 10명에 가까운 대인원이 모여 사는 셈이다.
그리고 지성의 형의 어머니는 어젯밤부터 나를 참 살뜰하게도 챙겨주셨는데, 덴마크에서 선물을 잔뜩 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어머님은 날 위해, 식사시간이 아님에도 따로 밥상을 챙겨주셨다.
식탁 위, 먹음직스러운 한식이 한 상 가득 차려져 있다.
[지성이가 이야기 많이 하더라. 이번에 또 어디로 간다면서?] [우물우물- 네? 아, 네. 포르투갈요.] [가족들은 같이 가고? 뒷바라지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 부모님한테 효도하고. 알겠지?] [네! 그런데 이거 너무 맛있어요.] [하하하. 많이 먹어. 어이구, 이렇게 잘 먹는 거 보니 이 아줌마가 다 기분이 좋네. 밥 더 줄까?] [네!]이번에 MIFA에서 내가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왼발과 개인기술을 갈고닦는 일이었다.
포르투갈에서 뛰는 윙어들이 하나같이 개인기가 좋았기 때문인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스포르팅 CP전에서 그렇게 뛸 수 있었던 것인지가 궁금할 정도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 답을 알고 있기도 했다.
그렇게 하려면 이번에도 모르텐 감독님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은데, 한 선수가 눈부신 활약을 펼칠 수 있는 데에는 늘 주변의 도움이 필수적이라는 말을 하셨다.
축구는 절대 혼자서 할 수 있는 스포츠는 아니기에, 남은 10명이 경기에 미치는 영향력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말이다.
즉, 팀 전체의 시너지가 당시 스포르팅 CP를 앞섰다는 거다.
생각해보면 참, 많은 걸 배웠었네.
하지만 SL 벤피카에서도 모르텐 감독님과 함께했을 때처럼, 친절하게 하나하나 배울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그건 내 어리광일 거다.
오히려, 지금과 비슷하겠지.
이렇게 영국으로 와 굳이 사비를 들여 개인훈련을 하는 것도, 더 어려운 무대에서 뛰게 된 만큼 준비가 필요하다 여겨서다.
왼발을 연습하는 이유 역시도, 리그의 특성을 고려해서다.
포르투갈 리그는 한국에서 ‘반대발’이라고 부르는 인버티드(Inverted)타입의 윙어들이 많았는데, 그들을 상대하려면 좀 더 능숙하게 왼발을 쓸 필요가 있다.
인버티드 윙어는 사이드라인이 아닌 중앙으로 쇄도하는 플레이를 펼치고, 그럼 난 수비상황에서 왼발을 써야만 한다.
무엇보다 현시점을 기준으로 프리메이라리가 내에서 한 손가락 안에 꼽히는 오른쪽 풀백인 막시 페헤이라와 경쟁하려면, 무기가 하나라도 더 있는 게 유리했다.
아마도 처음 시작은 백업이 되겠지만, 내년 시즌 개막이 되었을 때도 같은 자리에 만족하고 있을 생각은 없다.
사실상 난 벌써, 경쟁모드다.
지성이 형이나 영표 형도 그렇고, 자철이 형도 내 이런 성격이 일반적인 한국 선수와는 조금 다르다고 했었다.
오히려 이런 면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라고도 말이다.
난 당연히 그럴 생각이다.
고봉밥 세 공기를 비우고 네 번째 밥을 부탁했을 때, 조이스틱을 치차리토 선수에게 전달하고 온 박지성 선수가 냉장고 앞으로 다가서며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 얘 진짜 많이 먹지 않아요?] [왜? 난 그래서 좋기만 한데. 아주 귀엽고 예쁘장하게 생겨서 잘 먹기까지 하니 얼마나 좋아. 있지, 다온아? 나중에 너도 꼭 맨유에서 뛰렴. 그때까지 지성이도 있을진 모르지만, 쉽게 좌절해서는 안 된다? 알겠지? 그리고 중요한 건, 절대 아프지 말고.] [쩝, 쩝. 네에-]냉장고에서 비타민워터 한 병을 빼든 지성이 형이 식탁의 맞은편에 앉았고, 형은 오늘 내가 한 일들을 궁금해했다.
[어, 그러니까······.]마지막이라고 생각한 네 번째 밥공기를 비워가며, 나는 오늘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부 말해주었다.
진지하게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지성이 형은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말해주었고, 그것이 또 계기가 되어 우리는 한참 동안 축구에 관해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어느새, 밥상이 치워졌고 과일이 담긴 접시가 놓였다.
[어, 죄송해요. 설거지는 제가 하려고 했는데.] [어이구- 됐어. 이 아줌마가 평생 지성이 뒷바라지만 하느라, 설거지에는 아주 도가 텄다, 도가 텄어.]씁쓸한 표정을 짓는 지성이 형의 얼굴엔 미안함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엄마가 고생하는 것을 볼 때마다 비슷한 얼굴을 했었던 것도 같다.
엄마는 위대한 법.
[형.] [응?] [저 다시 덴마크로 돌아가기 전에, 쇼핑이나 가죠.] [쇼핑? 뭐, 그래.]가족에게 줄 선물을 사 가겠노라고 진즉부터 생각했었던 나이긴 하지만, 지금 제안은 축구선수를 뒷바라지하는 모든 한국 어머니를 생각해 꺼낸 말이었다.
‘기다려, 엄마. 꼭 호강시켜줄 테니까.’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곳에서, 축구선수로 성공하겠다는 결심 하나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2011년 12월 21일. 맨체스터, 영국. 링 웨이, 맨체스터 공항(Manchester Air-Port. Ring Way. Manchester, England).
MIFA와 지성이 형의 집을 오가던 열흘 동안의 맨체스터 삶이 끝나고, 난 지성이 형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덴마크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 짧은 열흘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사람들과 매우 친해지게 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불릴 만큼.
[아이구, 우리 작은 아들. 나중에 또 와. 알겠지?] [네! 어머니도 건강히 잘 계시고요!] [이 아줌마 쓸쓸해서 어떻게 하지?]감사의 표시로 어제 따로 사둔 선물들을 드리며, 난 좋은 기억만 남겨준 분들과 작별인사를 나눴다.
[휴우- 당분간은 쓸데없이 바쁘겠네.]덴마크에 돌아가게 되면, 난 하루만 집에서 머문 뒤에 가족들과 함께 비행길에 올라 한국으로 향할 예정이다.
그리고 약 4일 정도 한국에 머무르며 이런저런 일 처리를 하고 난 뒤, 다시 비행기에 올라타 포르투갈로 향한다.
이삿짐은 우리가 한국에 가 있는 동안 에이전시가 알아서 해주기로 했고, 리스본에 도착할 때쯤에는 짐이 전부 옮겨진 상태일 것이다.
일단은 오늘 오후에 팀을 만나 작별인사를 할 생각인데, 많은 이들이 휴가를 떠난 터라 모두를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FC 노르셸란은 14일 SS 라치오에 0 : 2로 패배했지만, 녹아웃 스테이지에 진출하여 폴란드 팀인 레기아 바르샤바를 만나게 되었다.
그나마 해볼 만한 대진이었던 터라, 의욕적인 분위기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이륙 전, 휴대폰을 꺼내 들어 요나스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그는 내일 우리가 떠난 뒤의 이사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오늘 아침 파룸에 도착해 있었다.
공항에 내리고 나면, 요나스가 날 집에 바래다줄 것이다.
부르르르-
내가 MIFA에서 훈련하기로 한 궁극적인 목적은 열흘 동안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닌, 훈련 방법을 배우는 부분에 있었다.
그리고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포르투갈에서도 그 비슷한 일들을 계속해서 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부분에서 이번 맨체스터 여행은 성공적인 것이었다.
무엇보다, 좋은 분들을 만났다는 것이 그랬다.
‘안녕히 계세요.’
다음에 또 만날 것을 기약하며, 난 조용히 시트에 기대 눈을 감았다.
이제 나의 다음 목적지는, 거의 3년 만에 돌아가는 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