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659)
658화 Efecto Daon (13)
2016년 9월 28일. 28221 마드리드, 스페인. 마하라혼다, 시우다드 데포르티바 아틀레티코 데 마드리드.
오늘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곤히 잠든 아영이의 곁을 조심스레 빠져나온 뒤에는 바로 이곳으로 올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출근길을 달리는 동안, 나는 오직 차량 그 자체가 만드는 소리에만 집중하며 핸들을 돌리고 또 페달을 밟았다.
그렇게 약 20여 분을 운전했을 무렵, 클럽하우스의 외벽이 눈에 들어왔다.
“후우~”
내가 바라던 게 고요함이었다는 걸, 클럽하우스가 보인 뒤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은 차를 주차해 두고, 보닛 위에 누워 있다.
까맣던 하늘은 어느새 쪽빛으로 조금 물들었다. 지난밤 세상을 비췄던 달은 저 아래에서 퇴근 준비를 서두른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엔, 새벽 특유의 내음이 고스란히 숨어 있다.
숨을 크게 들이쉬어, 그것을 몽땅 빨아들인다.
“쓰읍- 하아~”
희미하게 피어오른 입김이 눈앞에서 금세 사라지고, 적당한 쌀쌀함이 마음에 들었던 나는 눈을 감으며 떠오르는 생각을 두서없이 이어 나갔다.
가장 먼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질문은, 과연 나는 좋은 사람인가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난 이에 대해,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다.
‘……모르겠어.’
모르겠다고.
현재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좋은 남편이자 아들과 동생이 되려 노력하고 있다는 거다. 또, 좋은 축구선수가 되기 위한 노력 역시도 부지런히 이어 나가는 중이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좋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리우 올림픽을 경험하고 또 이곳에서 앙투안 그리즈만을 본 이후엔, 과연 내가 남들에게 뭐라 말할 수 있을 만큼 떳떳한지도 의심스러웠다.
바보 같은 고민일 수도 있겠지만,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를 앞둔 지금은 이런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읏-차”
보닛에 눕혔던 몸을 일으켜 앉아,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초점 없이 정면을 바라본다.
“…….”
뮌헨을 떠나기로 한 것도 벌써 1년이 훌쩍 넘었다. 그리고 그동안, 나는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주었던 클럽에게 상처만 주어 왔다.
소위 말하는 갑질을 했고, 뮌헨이 고통받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걸 외면하기에 바빴다.
이유는 그저 나 자신을 위해.
오직, 나만을 위해서였다.
“……이기적인 새끼.”
상처를 받은 뮌헨과 동료들에 사과할 용기조차 없었던 내가 싫어져, 난 스스로를 탓하는 말을 내뱉은 후 보닛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쭈그려 앉는다.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난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첫 번째 에이전시인 UNC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했고, 계약이 거의 근접했었던 첼시와의 계약 역시도 일방적으로 거부했다.
그런데 그런 주제에, 바이에른 뮌헨과는 이면 계약에 가까운 조건이 적힌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리고 현재는 그것을 빌미 삼아, 바이에른 뮌헨과의 계약을 끝내려고 하는 중이다.
어디에도 충성심 따위는 찾아볼 수 없고, 그 어디에도 낭만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돈과 나라는 사람이 바라는 바가 최우선일 뿐이다.
더 나아가 오늘, 나는 이미 상처를 입어 너덜너덜해진 바이에른 뮌헨에 치명타를 날리려고 한다.
이에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
질 바에야, 차라리 죽을 테니까.
찰싹- 찰싹- 찰싹-
모순되고 정돈되지 않은 감정이 괴로운 나머지, 나도 모르게 손바닥으로 허벅지를 두들기고 있었다. 뒤늦게 아픔이 느껴져,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그러곤 화끈거리는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천천히 문질렀다. 정말이지, 웃기는 짬뽕이다.
“하아-”
아마도 지금 내가 이렇게 괴로워하는 건, 뮌헨을 향한 양심의 가책 때문일 것이다.
고개를 뒤로 꺾어 올려다본 하늘은 평소 내가 기억하던 색에 조금 더 가까워져 있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아영이가 깨어날 텐데, 부디 남겨 둔 쪽지를 먼저 봤으면 한다.
괜한 걱정을 끼치긴 싫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분명, 내가 이렇게 괴로워하는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게 틀림없다.
부르르르-
부르르르-
봐, 맞지?
주머니에 넣어 둔 휴대폰이 진동하고, 손을 움직인 나는 화면을 확인한 후에 목소리를 가다듬곤 최대한 태연하게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잠에서 덜 깬 아영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우웅~ 자기?
“응~ 잘 잤어?”
– 왜 없어~~
“그냥, 일찍 눈이 떠져서. 괜히 나 때문에 일어나면 그러니까, 메모 남기고 왔지. 메모는 봤고?”
– 응.
“…….”
지금 이어지는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무척 잘 알고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 자기야~ 여보야아~
“응?”
– 자기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인 거 알아? 진짜진짜진짜진짜 최고로 좋은 사람이야.
“…….”
이런 순간이면 매번 느끼게 되지만, 대체 아영이는 어떻게 내 모든 감정을 알고 있는 것일까? 분명 나는 지금의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없는데 말이다.
본인은 사랑하면 다 알게 된다고 말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것이 무척 신기했다.
– 그러니까~ 바보 같은 고민하지 마. 응?
“……응. 그럴게.”
– 응. 그리고 앞으로는 나 혼자 남겨 두고 그렇게 가지도 말고.
“응.”
– 잠깐 깨워서 뽀뽀라도 하고 가~ 자기 없이 혼자서 눈뜨고 내가 얼마나 놀라는지 알아?
“응. 안 그럴게.”
조금 더 자겠다는 아영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후, 비로소 몸을 일으킬 수 있었던 나는 기지개를 쭉 켜면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새벽과 아침 경계 특유의 내음 사이로, 식당에서 풍겨 오는 음식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다소 허기가 짐을 느꼈던 나는, 가스파초라도 만들어 달라 부탁을 할 생각으로 식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 전까지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던 감정들은 어느새 멀찍이 떨어져 있다.
‘……다음에 또 봐.’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저런 부정적인 감정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 언젠가 현명하게 그것을 다룰 수 있게 되었을 때, 난 저 녀석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덕분에 더 나은 사람이 되려 노력할 수 있어 고마웠다고 말이다.
지금 당장 이 말을 할 수는 없겠지만, 언젠가는 꼭 그런 날이 왔으면 하고 바라본다.
씩씩하게 걸어 식당으로 향하는 길.
“응? 설마?”
“올라! 좋은 아침이네요. 간밤에 농땡이 피우신 건 아니죠?”
“이런!! 자네는 이 시간에도 잔소리인가?”
“하하. 천성이라서 말이에요.”
현재 마주친 사람은 클럽에서 가장 중요한 분 중 한 명인 아시에르 몬티야(Asier Montilla) 씨다.
훈련과 실전에 필요한 장비들을 챙겨 주는 분이었는데, 몬티야 씨의 팀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특히 오늘처럼 경기가 있는 날이면, 몬티야 씨는 누구보다 가장 먼저 출근하여 비센테 칼데론으로 실어 나를 물품들을 점검한 후 모든 것들을 세팅해 준다.
세상의 모든 축구팀에는 몬티야 씨와 같은 분들이 있는데, 나는 늘 물품 담당 팀을 위해 많은 팁을 챙겨 주곤 했다.
코를 긁적이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몬티야 씨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져 온다.
“그나저나 말이야, 자네. 식당에 가나?”
“네. 에밀리오에게 가스파초라도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하려고요. 살짝 허기가 진 거 있죠.”
“…….”
“?”
뒤쪽에 있는 식당을 엄지로 가리키는 내게 걸어온 몬티야 씨가, 어깨에 손을 얹어 온다.
그러곤.
“내 조언 하나 하지.”
“네?”
“오늘 이따가 스태프들이 전부 출근을 하면, 아르나우에게 부탁을 하게.”
“아르나우? 콜?”
“그래. 그 아르나우 말이야.”
아르나우 콜(Arnau Coll)은 우리의 개인적인 요청 사항들을 들어주는 스태프다. 클럽에서 고용한 개인 매니저라 볼 수 있는데, 그렇다고 아무 일이나 부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엄연한 클럽 소속인 만큼, 선을 지켜 줘야 한다.
그나저나, 아르나우에게 대체 무슨?
“화려한 꽃다발과 근사한 목걸이를 사게. 여자들은 이 두 개의 조합이라면 사족을 못 쓰니까. 그리고 그걸 들고 들어가서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게나.”
“어…… 자, 잠시만요.”
“쉬잇- 들어. 어디까지나 경험에서 나오는 조언이니까. 어디까지 말했었지? 아, 그렇지.”
아시에르 몬티야 씨는 무언가를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듯했다. 아무래도 아영이와 내가 다퉜다고 보는 것 같은데, 우린 단 한 번도 부부싸움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새벽 5시 반에 혼자 주차장에서 식당으로 걸어가는 내 모습이 어떻게 비쳤을지 상상이 됐다.
오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든 순간, 나는 반박하려던 것을 멈추고 이야기를 들었다.
꽤 오랜 시간, 몬티야 씨는 열변을 토했다.
“알겠나? 이게 남편이 아내에게 완벽히 용서를 구하는 방법이야.”
“와-우. 그것 참 대단한데요?”
“물론이지. 이건 돈 주고 팔아도 될 수준이야.”
“하하. 그런데 말이죠.”
“응?”
“혹시 두 분 자주 다투시는 거예요?”
“…….”
“왜냐하면 저는 아직 아영이랑 다툰 적이 없거든요. 물론 오늘 해 주신 말씀은 나중에 잘 써먹어 볼게요. 아, 저도 조언 하나 할까요? 원만한 부부 관계를 가져가려면…….”
“크흠. 흠. 이, 이만 시, 실례하겠네.”
“에-이!! 아시에르!! 어디 가요?! 아시에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리나케 걸어가는 아시에르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한참 동안 배를 잡고 웃었다. 딱히 웃긴 순간은 아닌데, 왠지 모르게 기분이 유쾌했다.
그러고 난 뒤.
“아- 재미있다.”
한참을 웃어 나온 코를 살짝 들이마신 나는, 하늘을 다시 한번 올려다보며 이런 자평을 남겼다.
“또라이 새끼.”
아무래도 난, 약간의 감정 기복이 있는 것 같다.
***
28005 마드리드, 스페인. 데 라 비르겐 델 푸에르토 거리, 67. 에스타디오 비센테 칼데론.
.경기 시작 140분 전
아틀레티코 0 : 0 바이에른 뮌헨
&Match-Up`s Best Eleven(아틀레티코/상대팀)
&Tactics(뮌헨/상대팀) : 4-4-2/4-3-3
GK ? 얀 오블락 / GK ? 마누엘 노이어
RB ? 후안프란 / RB ? 필리프 람
CB ? 스테판 사비치 / CB ? 하비 마르티네스
CB ? 디에고 고딘 / CB ? 제롬 보아텡
LB ? 필리페 루이스 / LB ? 데이비드 알라바
RAM ? 사울 니게스 / DM ? 사비 알론소
CM ? 가비 / CM ? 아르투로 비달
CM ? 코케 / CM – 티아고
LAM ? 김다온 / RW ? 토마스 뮐러
ST ? 앙투안 그리즈만 / LW ? 프랑크 리베리
ST ? 페르난도 토레스 / ST ?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
.
챔피언스 리그 조별 예선 두 번째 경기.
비센테 칼데론은 열기에 휩싸인다.
9월이지만, 분위기는 마치 5월과 같다.
경기장으로 향하는 관중들은 저마다 목소리를 높인다.
그들이 사랑하는 클럽을 위해.
{“Ohh~ Forza Atleti Ale! Ale, Ale! Ale, Ale! Forza Atleti Ale~~”}
{“Atle-ti!, Atle-ti!, Atle-ti!…….”}
지난 시즌, 비센테 칼데론이 가득 들어찼던 횟수는 단 두 차례뿐이었다.
2016년 2월 24일 PSV 에인트호번과의 챔피언스 리그 16강 두 번째 경기. 그리고 4월 27일에 있었던 바이에른 뮌헨과의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전이다.
그리고 오늘, 비센테 칼데론은 다시 한번 관중을 가득 채울 준비를 마쳤다.
일찌감치 매진된 표는 웃돈을 주더라도 구매가 어려웠는데, 평소 비센테 칼데론 주변에서 모습을 비추지 않던 암표상들은 내내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딱히 흥정하지 않아도, 절로 값이 뛰었기 때문이다.
암표마저도 금세 동이 나면서, 간절한 이들은 피켓까지 만들어가며 표를 구하고자 했다.
“1,200유로! 좋은 좌석이라면 2,000유로에 사겠어요!!”
“1,500유로입니다, 여러분!! 제발! 제발 팔아 줘요!”
“제게 표를 파실 분?!?! 없나요?!?!”
표를 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경기장에 입장하는 사람들의 기대감은 높아진다. 마치, 2013/14 시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과도 같은 분위기였다.
잠시 뒤.
“우와아아아아-!!!”
“예에에에-!!”
전용 도로를 타고 경기장의 뒤쪽으로 돌아가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버스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하던 행동을 멈추고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응원가는 더욱 드높아졌고, 뜨거운 분위기에 커튼을 열어 밖을 본 아틀레티코의 선수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오늘 경기가 많은 주목을 얻고 있고 또 표가 매진되었다는 사실 역시도 전해 들었지만, 이 정도의 열기를 이 시점에 접하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알레띠(Atleti)들이 가장 행복한 순간에 부른다는 노래가 경기 시작 전부터 울려 퍼진다.
{“Vamos campeon, Pongan huevos que hoy ganamos, Estoy descontrolado, Yo te quiero ver campeon!, Jamas, jamas, Te dejara esta hinchada, En las buenas en las malas, Nunca deja de animar…….”}
(가자, 챔피언! 오늘의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자! 나는 오늘 정신이 나갔어! 나의 챔피언을 보는 게 너무 좋거든! 절대, 절대로. 너희가 좋건 나쁘건 나는 항상 이 자리에서 너희를 응원하는 걸 멈추지 않을 거야.)
오랜 기간 아틀레티코의 선수로 뛰었던 이들마저 신기해하며 휴대폰을 들어 올린 지금, 차창 밖을 내다보던 디에고 시메오네가 고개를 뒤로 돌려 한 남자를 쳐다본다.
“…….”
분명 선수에겐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뮌헨이 김다온을 아틀레티코로 임대한 것을 두고 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호기심이 잠잠해질 무렵에는 양 팀이 챔피언스 리그 조별 예선에서 같은 그룹에 속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후 지금까지,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 여전히 미디어는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김다온과 뮌헨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고, 돌이킬 수 없을 만큼의 틈이 벌어졌다고 말하는 중이다.
그리고 최근 라 리가에서의 활약이 더해지면서, 진실이 확인되지 않은 루머는 걷잡을 수 없이 흐르고 있었다.
“디에고?”
“……괜찮아 보이는군.”
“뭐라고”
“괜찮이 보인다고 했어.”
“누구 말인가?”
“그 말이야.”
“…….”
시메오네를 바라보던 헤르만 부르고스가 힘겹게 몸을 돌려 김다온이 있는 곳을 바라본다. 버스가 곧 도착할 예정인 가운데, 김다온은 가이탄과 정신없이 수다를 떨고 있다.
어디에서도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다. 태연한 척을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부르고스는 연기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열화와도 같은 분위기에 베테랑들조차 긴장했건만, 정작 태풍의 눈에 선 사내는 평온해 보인다.
“강심장이로군.”
“그렇지. 말 그대로 강철 같은 심장이야.”
“음-”
비로소 김다온에게서 시선을 거둔 디에고 시메오네가 다시 정면을 돌아보며 조용히 호흡을 내어 쉰다.
최근 3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바이에른 뮌헨에 1무 2패로 상대 전적에서 밀려 있다. 그리고 이런 나쁜 성적으로 인해, 매번 끔찍한 결말을 맞아야만 했다.
그렇기에, 디에고 시메오네는 언젠가 바이에른 뮌헨에 꼭 복수하겠단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태연한 김다온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자신이 너무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던 건 아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경기가 중요하긴 하지만, 이건 그룹 스테이지다.
승리를 가져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고 복수심을 불태워도 문제는 없지만, 그 열기에 감독이 집어삼켜지는 건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후우-”
입으로 숨을 내뱉은 시메오네는 이내 평정심을 되찾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버스의 문이 열렸다.
삐-이!
먼저 몸을 일으킨 시메오네가 브리프케이스 하나를 들고 버스에서 내려서고, 건물 안으로 들어선 뒤에 좀 더 걸음을 옮기다가 선수들을 기다렸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모습에 뒤이어 들어선 남자들이 조금 당황했지만, 손을 들어 올려 하이파이브를 하려는 것을 보며 파이팅을 다지기 위한 행동으로 해석했다.
실제로 시메오네는 그런 의도도 있었지만, 가장 늦게 버스에서 내리는 김다온을 기다리는 데 진짜 목적이 있었다.
조금 뒤, 그는 김다온과 만났다.
“하하. 이건 또 뭐예요?”
“그냥, 힘을 주고 싶더군.”
“그라시아스.”
“하하.”
어깨를 나란히 한 두 남자가 드레싱 룸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고, 사람이 없는 복도로 들어섰을 무렵 시메오네가 김다온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원 소속팀을 만나는 게 부담스럽지 않나?”
“하하. 어떤 대답을 듣고 싶으세요?”
“솔직했으면 하는군.”
“…….”
발걸음을 멈춘 두 남자의 사이로, 양손 가득 짐을 든 사람들이 지나친다.
저 앞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바로 드레싱 룸의 입구가 있었기에, 둘은 이곳에서 대화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사실, 잠을 별로 못 잤어요.”
“이야기를 들었네.”
“하하. 네. 에밀리오와 친하시죠? 그가 이야기했을 것 같았어요. 새벽에 불쑥 찾아가, 가스파초를 만들어 달라고 했죠. 그리고 그 맛은 무척 끝내줬어요.”
짐작한 말대로, 디에고 시메오네는 클럽의 전담 셰프인 에밀리오 로페스(Emilio Lopez)로부터, 새벽에 찾아와 스프를 만들어 달라고 말한 김다온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에밀리오는 부부싸움을 한 것은 절대로 아니니 오해하지 말라던 김다온의 말을 의심했지만, 시메오네는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고작 두 번 정도 함께 저녁을 먹었을 뿐이지만, 그 부부가 다툰다는 건 상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메오네는 김다온이 오늘 경기에 부담을 느끼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전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김다온은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
클럽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 중 하나가 그렇다는 건 감독으로서 무척 고무되는 일이었지만, 한편으론 연기를 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도 그래 보이나요?”
“……아니, 그렇지 않네.”
“네. 맞아요. 이건 연기가 아니에요. 저는 정말로 괜찮아요. 분명 새벽에 저는, 제가 너무 형편없게 느껴졌죠. 너무 이기적이라고요. 하지만 지금은, 그걸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죠. 지금 제가 원하는 건, 오늘 경기에서 승리하는 거예요.”
“그렇군.”
“디에고?”
“?”
“저는 바이에른을 알아요. 안첼로티는 잘 모르지만, 바이에른을 안다고요. 그리고 저는 오늘 그걸 몽땅 이용할 생각이에요. 전 오늘…….”
“…….”
얼마 만일까?
소름이 끼치는 것 말이다.
다음 이어지는 김다온의 말을 들으며, 시메오네는 몸에 있는 털이 전부 쭈뼛하고 서는 기분을 느꼈다.
강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확신하듯 말하는 김다온의 이야기에는, 오늘 경기에서 자비를 베풀지 않을 거란 다짐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그건.
‘잔인하군.’
폭군(暴君)을 연상케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당장 떠오르는 단어론 설명이 어려웠다.
“…….”
먼저 드레싱 룸으로 향한 김다온을 보내고, 홀로 남은 디에고 시메오네가 복도에 몸을 기댄다.
“찢어 놓겠다……라.”
새하얀 형광등을 바라보며 김다온이 조금 전 내뱉은 말을 조용히 중얼거린 시메오네. 그는 이내, 특유의 묵직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큭큭큭큭큭.”
마피아 보스라는 특유의 이미지와 맞물린 디에고 시메오네의 웃는 모습은, 그를 지나쳐 어딘가로 향해야 하는 사람들의 발목을 붙잡는다.
사소한 병목현상이, 비센테 칼데론 내부의 한 복도에서 발생하고 있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