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66)
65화
2011년 12월 28일. 리스본, 포르투갈. 알라메다 다스 코무니다데스 포르투귀사스. 리스본 포르텔라 국제공항.
내가 살아가며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시차’라는 녀석일 거다.
“킴!! 여기야!!”
“요나스!”
분명 28일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 한국에서 출발해 14시간 30분을 비행했고,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경유를 위해 네 시간 이상을 대기했다.
그래서 나의 상식대로라면 지금은 29일 새벽이어야만 하는데, 휴대폰 화면의 시계는 28일 밤 9시 36분이라고 알려주었다.
“하하. 늘 어려운 문제지. 시계는 맞췄어?”
“아-! 맞다!”
현재, 내 손목에는 SL 벤피카가 계약 기념으로 선물한 시계가 채워져 있다.
명품은 아니지만, SL 벤피카와 오랜 기간 협력 관계에 있는 포르투갈의 한 장인이 직접 만들어준 제품이었다.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계로 전 세계에서 유일한 것은 당연하고, 문자판 자체에도 내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에두 크루즈는 내게 대략 3천 유로(약 423만 원) 정도의 값어치가 있을 거라고 했는데, 이런 시계에 가격을 매긴다는 것 자체가 어쩐지 죄스럽게만 느껴질 정도다.
끼릭- 끼리릭-
“됐다.”
요나스의 도움을 받아 시간을 제대로 맞춘 뒤, 잠깐 화장실에 간 부모님을 그와 함께 기다렸다.
“한국에서는 좀 어땠어?”
“순식간이었어요. 그래서 조금 더 있고 싶더라고요.”
“그래? 그거 좋았겠네.”
연예인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비슷한 기분은 몇 번이나 느껴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강찬일 감독님을 만났던 시간도 좋았다.
“올림픽? 나갈 거지?”
“네. 벤피카도 그걸 알잖아요?”
“물론이야. 앞서 말해뒀으니까.”
“······.”
강찬일 감독님은 꽤 오래전부터 날 올림픽팀에 합류시키길 원해오셨고, 그것 때문에 지금까지 형들이 내게 찾아와 설득하는 말을 해왔던 것이다.
올림픽팀 합류 자체는 예전 자철이 형이랑 대화할 때 이미 마음을 굳혔었는데, 이번 한국에 다녀오면서는 잘한 결정이었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꼭 광고나 사람들의 반응 때문만은 아니고, 축구를 하면서 처음 겪어본 이런저런 상황들 때문이다.
“그래도 일단, 지금은 적응이 먼저예요.”
“그야, 당연하지. 저기 오신다.”
[엄마-!! 여기에요!!]부모님을 만나, 요나스와 함께 공항을 빠져나온다.
그러자, 리스본의 밤공기가 온 감각을 통해 전해져왔다.
높은 건물 하나 보이지 않는 공항 주변의 풍경은 광활함이 느껴졌고, 조금 시선을 멀리 가져가면 어둠이 내려앉아 텅 비어버린 것 같은 공간이 보여 조금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난 저기에, 색을 입힐 수 있을 거다.
흰색 바탕이 아니라 힘들겠지만, 그래도.
불을 비춘다면, 아마 하얗게 바뀌지 않을까?
‘난 할 수 있어.’
영국과 한국을 오가는 바람에 몸은 조금 피곤했지만, 정신상태와 의욕만큼은 어느 때보다도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
868년, 포르투갈 백국(Condado de Portucale)이라는 나라가 새롭게 건국되었다.
그리고 이는 바로, 포르투갈의 기원이다.
“카악-! 퉷!”
대항해시대 시절, 포르투갈은 손쉬운 접근성을 바탕으로 우수한 해군력과 활발한 교역을 자랑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인도 일부를 식민지화하는 등 위세를 떨치기도 했지만, 돈과 식민지에 집착한 왕실의 연이은 실책이 자연스러운 포르투갈 왕국의 몰락을 가져왔다.
이후 독립전쟁과 내전. 그리고 카네이션 혁명으로 잘 알려진 1974년의 민주화운동 등을 거치면서, 포르투갈은 비로소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 나라는 유럽에서 가장 낮은 경제적 지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커다란 빈부격차의 해소도 해결과제로 남아있다.
그러나 바로 여기, 리스본.
포르투/브라가/코임브라/파루와 함께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네 도시 중 하나인 이곳은, 유럽문화의 정취를 잘 느낄 수 있는 도시였다.
‘포르투는 일하고, 브라가는 기도하고, 코임브라는 공부하고, 파루에서 쉬고 리스본에서 즐긴다.’는 말이 있을 만큼, 보고 즐길 거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리스본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
발비노 바레토(Balbino Barrto).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베베(BB)라 불리는 이 남자는 현재, SL 벤피카에 의해 임시로 고용된 운전사기도 했다.
그는 오늘부터, 새 직장을 가지게 됐다.
[다녀올게요-!!!!]“이크-! 저기 오는군.”
베베는 오늘부터 시즌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김다온 가정의 개인 기사 겸 그들의 생활을 도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얼른 담배를 바닥에 떨어트린 베베가 구둣발로 꽁초를 비벼 담뱃불을 끈다.
저 멀리, 한 청년이 달려오고 있다.
.
.
2011년 12월 19일. 에스토릴, 포르투갈. 루아 잉그라테라 387(Rua Inglaterra 387. Estoril Portugal).
“올라!”
“봉 디아, 세뇨르.”
“응? 허-! 봉 디아.”
의외로 제대로 된 인사를 받은 베베가 살짝 놀라 다른 질문을 던져보지만, 눈앞의 청년은 눈을 똘망똘망하게 뜬 채 가만히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그제야 이 친구가 포르투갈어를 막 배우기 시작했다는 걸 떠올린 베베는, 어눌한 영어로 차에 타라고 말했다.
탁-!!
“음. 나웅 빨루 뽀르뚜게스. 이스또우 이스뚜단두, 마스 아인다 낭 쏘우 봉 니쑤.”
“큭큭큭큭. 그래. 얼추 알 것도 같군그래.”
“음? 음?”
“큭큭큭. Your Portuguese is good. 오케이?”
금방 차에 탄 청년은 자신은 포르투갈어를 잘하지 못하며,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발음은 어설펐지만, 이 도시엔 훨씬 더 포르투갈어를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베베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포르투갈에 심각한 경제위기가 찾아오기 전, 이 남자는 제법 잘 나가는 회사의 사장님이었다.
하지만 그리스의 경제위기가 유럽 전역에 미친 여파로 인해, 사업이 큰 타격을 입은 그는 아내에게마저 버림받으면서 황폐한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리스본을 찾게 되었는데, 통장에 남은 잔고를 털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카지노에 입장한 그는, 무려 15만 유로(약 2억 1190만 원)라는 잭팟을 거머쥐게 되었다.
‘기도하는 브라가’ 출신답게, 베베는 이것을 두 번째 삶을 살라는 하늘의 계시로 여겨 성실한 일자리를 찾게 되었다.
물론 대부분이 임시직이거나 하루하루 먹고살아야만 하는 일용직에 불과했지만, 많은 관광객으로 붐벼나는 이 도시는 베베처럼 넉살 좋은 남자를 항상 필요로 했다.
지금의 일자리도 6개월의 단기직 치곤 후한 보수를 줬고, 그래서 그는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도 않고 일자리를 수락했었다.
그러다 나중에 설명을 들었을 땐, 18살짜리의 운전사 노릇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때려치울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베베는 직감했다.
‘아주 재미있는 6개월이 되겠어.’
라고.
이스토릴의 고급 빌라에서 SL 벤피카의 클럽하우스까진 20분이 조금 넘게 걸렸는데, 두 사람은 어색한 침묵 대신 웃음 넘치는 대화로 안을 채워버렸다.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손짓과 발짓 스마트폰 등의 많은 수단을 섞은 덕분에, 그래도 둘은 서로에 대해 몇몇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SL 벤피카의 클럽하우스 앞.
환한 얼굴의 김다온이 차에서 내려선다.
“오브리가도, 베베. 무인투 오브리가도.”
“하하핫! 어서 언어나 배워! 같이 이야기 좀 하게, 앙?”
“응??”
“아무것도 아니야. 어서 가 봐!!”
“씨!”
자신의 손짓을 알아들었던 것일까?
문을 닫고 환한 얼굴로 클럽하우스를 향해가는 김다온의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호감 가질 수밖에 없는 첫인상이었다.
문득, 베베는 자신의 아이들을 떠올였다.
“······아니야. 아직은 연락할 수 없어.”
씁쓸한 표정으로 한참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그는, 예정된 시간이 될 때까지 근처에서 대강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근처에, 괜찮은 카페가 있었다.
“책을 읽을 수 있겠어. 이거 참, 편한 직업이로군!”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차창에다 팔을 걸친 베베가 차를 몰며 빠르게 사라져간다.
***
클럽하우스 앞에서 날 맞아준 것은 오늘도 에두 크루즈였다.
그리고는 곧장 감독실로 날 이끌었는데, 오늘 나의 첫 번째 일정이 바로 감독님과의 미팅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12월 16일부터 휴식기를 맞은 포르투갈 프리메이라리가는 1월 3일부터 진행될 ‘타사 다 리가(Taca da Liga)’를 시작으로 잔여 시즌을 시작하게 된다.
‘타사 다 리가’는 리그컵 대회로, 2011년부터 시작되었으며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냥 포르투갈 리그컵으로도 불리고 있다.
아마도 그 날이, 내가 처음 SL 벤피카의 실전을 경험하는 날일 것이다.
똑똑똑-
[제수스? 들어가겠네.]에두 크루즈가 문을 열었고, 난 그 뒤를 따라 들어섰다.
저 앞엔, 실험실에 있으면 참으로 어울릴법한 얼굴을 가진 분이 앉아 계셨다.
조르제 제수스, SL 벤피카의 감독.
내게 결정적인 계기를 준 분이다.
스톡홀름의 말이 시즌 중반 팀을 떠나게 된 미안함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되어 주었다면, SL 벤피카로의 이적을 결심하고 또 합류를 기대하게 된 건 어디까지나 저 감독님 때문이다.
흘끗 위를 쳐다본 감독님은 서류에 집중하고 있다.
[왔군, 그래. 비어있는 곳에 대충 앉게나. 그리고 에두? 자넨 뭐 거기에서 그리 멀뚱히 서 있어? 당장 사무실로 돌아가 일이나 좀 하는 게 어때?] [하-! 나중에 커피를 마시러 올 텐가?] [당연하지. 진한 놈으로.] [그러지. 그럼.]딸깍-
자리에 앉아 당최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를 듣고 있을 무렵, 어딘가에서 슬그머니 등장한 분이 내게 악수를 청해왔다.
그런데, 누구?
“안녕? 다온이지?”
“어, 한국 사람?”
“하하. 응, 맞아. 반가워. 일단 내 소개는 나중에 해도 되겠지?”
아무래도 이분이 내 통역인 것 같았는데, 제철이 형과는 완전히 느낌이 달랐다.
차분한 목소리 하며 푸근해 보이는 인상에 이르기까지. 비록 교회를 다니지는 않지만, 교회 오빠가 있다면 딱 이분 같은 이미지일 것 같았다.
[이봐! 내게 집중해.]딱! 딱!
“응?”
손가락을 튕긴 감독님이 손목을 까닥거리셨고, 난 그것을 가까이 다가오라는 것으로 해석해 의자를 앞으로 당겼다.
[우선, 숙제검사부터 하지.]“숙제? 무슨, 숙제 있었니?”
“아-”
이쯤에서, 아까 내가 말한 이적을 결심한 이유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풀이해야 할 것 같다.
우선.
“네. 팀이 필요하다면 왼쪽에서도 뛸 수 있어요.”
[Sim, Se Voce······.]지난달에 내가 에이전시로부터 전달받았던 건, SL 벤피카의 이적 동의서와 초벌계약서, 그리고 조르제 제수스 감독님으로부터의 손편지였다.
무려 11장이나 되는 긴 글이었고, 당연히 그것을 읽을 수 없었던 날 위해 얀 아담센이 따로 번역본을 준비해뒀었다.
그것을 통해서 난, 감독님의 축구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날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도 말이다.
[좋아. 아주 좋아. 궁극적으론 네가 오른쪽에서 뛰는 게 가장 이상적인 장면이야. 하지만 난 네게서 람의 모습을 보았지. 세계적인 선수로의 편린을 보았다고.]지난 반년, 캐스퍼 율맨 감독님 체제 아래에서 가장 달라졌던 부분이 바로 중원으로의 침투였다.
모르텐 감독님이 내 활동반경을 오른쪽 측면과 중원까지 확장을 시켜왔던 것에 반해, 캐스퍼 감독님 체재 아래에서는 철저히 오른쪽에서만 치우쳐서 플레이를 펼쳐왔다.
솔직히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그편이 더 편했고 할 일도 줄어들어 다른 영역에 좀 더 관심을 쏟을 수도 있었지만, 내겐 모르텐 감독님의 축구가 좀 더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조르제 제수스 감독님이 직접 쓴 편지에는, 내가 인버티드 풀백으로 뜀으로써 중앙에 좀 더 개입하고 축구도 더 많이 배울 수 있을 거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씀은.
[편지에도 말했지만, 무척이나 힘들 거야. 하지만, 난 자네가 해낼 수 있다고 믿어.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 하나도 신경 쓰지 마. 저 밖에서 떠들기만 하는 머저리들 때문에, 네 인생을 낭비할 필요는 하나도 없다는 거야. 결국은 네가 축구를 잘하면 입을 닥치겠지. 넌 축구선수이고, 그래서 축구로 말할 수 있는 거니까.]전술적인 색채부터 시작하여 개인적인 성격에 이르기까지.
제수스 감독님은 어느 하나 모르텐 감독님과 닮은 구석이 없었지만, 난 이분에게서 모르텐 감독님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날 지켜주겠다는 느낌이 그랬다.
그리고 이것은 내게, SL 벤피카로 가면 축구를 더 배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도록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감독님이 날 궁극적으로 오른쪽 풀백에 기용하길 원하며, 좋은 오른쪽 풀백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는 말씀을 해왔다는 부분이었다.
비록 편지로. 그것도 얀 아담센을 거쳐 다시 번역된 내용을 읽었던 것뿐이지만, FC 포르투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던 나로서는 SL 벤피카에 합류하는 게 당연한 일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또 하나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 있다면, 어느 정도 충분한 기용 시간을 보장받았다는 것이었다.
실제 내 경기력과 팀 사정 때문에 바뀔 가능성이야 얼마든지 존재했지만, 감독님은 1,700만 유로의 이적료를 지출한 것은 나를 벤치에 앉혀두기 위함이 아니라고 못을 박으셨다.
그리고 지금은, 그 내용을 실제 목소리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얼마 뒤.
[크흠. 어울리지 않게 너무 떠들었군. 그래. 듣기론 휴가를 보냈다고 들었는데. 그건 어땠지?]“휴가는 어땠냐는데?”
“한국에 갔던 건 휴가인데, 영국은 아니었는데요?”
[응? 그게 무슨 말인가?]어, 이거.
말해도 되려나?
괜찮다는 제수스 감독님의 손짓을 보며, 난 영국에 갔던 이유와 있었던 일들을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
내일부터 팀 훈련에 참여하기로 한 김다온이 돌아가고, 제수스는 참을 수 없는 기분을 느끼며 에두의 사무실로 쳐들어갔다.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쾅-!!!
“에두!!!”
실제로 그랬다.
발길질 한 번에 문이 휘청거리며 열리는 것을 본 에두 크루즈가 고장이라도 나면 월급에서 깎겠다는 말을 던진다.
이전에도 몇 번 제수스의 발길질에 문이 고장 난 적이 있었지만, 늘 1유로도 깎이지 않은 제대로 된 금액이 SL 벤피카 감독의 월급통장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이를 잘 안다는 듯, 제수스는 개의치 않는 모습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에두 크루즈의 테이블을 양 손바닥으로 두들겼다.
쿵-!!!
“에두!!!”
“귀 안 먹었어! 이번엔 대체 무슨 노망이 난 거지?”
“노망이 아니야!! 진짜라고!!”
“뭐??”
조르제 제수스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축구는 스쿼드에 포함된 전원이 주포지션과 상관없이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위치에서 제 몫을 다해줄 수 있는 축구였다
하지만 이것은 꿈만 같은 이야기며, 축구계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그 대안으로, 복수 포지션에서 뛰어난 레벨로 활약해줄 수 있는 서너 명을 통해 팀 전체의 수준을 업그레이드시키려고 해왔다.
하지만 그것 역시도 쉽지 않은 일이었고, 오직 필립 람(Phillipe Lahm)이라는 현대 최고의 멀티플레이어를 가진 팀에서만 가능한 일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바로, 바이에른 뮌헨 말이다.
“내가 말했지!! 그 꼬마는 나의 람이 될 거라고!!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어!! 오, 이런 세상에나!! 하나를 말하면 둘을 알아듣는 놈을 만난 게 얼마 만인지!! 커피!! 설탕 없이 아주 쓴 녀석으로! 오늘은 취해야겠어!!”
과연 커피에 취하는 게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에두 크루즈로서는 커피를 따르기 전, 조용히 사무실의 문을 닫을 뿐이었다.
‘이거야 원, 오늘은 온종일 수다를 들어줘야 하겠어.’
김다온은 즉각 SL 벤피카를 바꿔놓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기엔 현대 축구는 너무나도 복잡했고 또 포르투갈 프리메이라리가도 만만치 않은 험난한 무대였다.
그렇지만 에두 크루즈는 생각했다.
이번의 이 영입이.
“이제 그 빌어먹을 녀석들을 내쫓아도 되겠어!! 내년은 세 명의 풀백으로 시즌을 치를 거야!! 막시가 쉴 때 꼬맹이를 오른쪽에 내보내고, 때론 그 꼬마가 막시랑 왼쪽에 설 거니까!!”
시즌 중반 SL 벤피카라는 팀에 커다란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는, 무척이나 중요한 부분이었다.
특히, 어느 때보다도 뛰어난 유스들이 뛰고 있는 현재의 U-18 팀과 함께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더더욱 그랬다.
“꼬마 녀석! 멋대로 잉글랜드로 가더니···.”
김다온도 분명 그 주역 중의 하나가 될 것이 틀림없다.
바로 여기, 제수스의 표정이 그걸 증명해주고 있었으니까.
***
작자 주- 조르제 제수스는 한국내에서 비교적 덜 알려진 편인데, 현존하는 포르투갈 감독 중에서는 가장 으뜸으로 손꼽히는 남자입니다.
SL 벤피카와 스포르팅 CP에서 엄청난 실적을 거뒀고, 작년은 브라질 플라멩구로 팀을 옮겨 단 1년 만에 다섯 개의 트로피를 쓸어오는 모습을 보여줬죠.
무엇보다 선수단을 장악하는 능력이 으뜸인데, 불과 1년을 함께했을 뿐인데도 플라멩구 선수들이 조르제 제수스를 아버지처럼 따르게 되었습니다.
실축에서 제수스는 다시 SL 벤피카로 돌아오게 됐고, 이 때문에 플라멩구 출신 여럿이 벤피카로 합류할 거란 이야기들이 돌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렇게 될 거고요.
플라멩구 선수들은 조르제 제수스를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내놓을 수 있다는 인터뷰도 했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축구 감독은 극소수죠.
본문에서 앞으로 묘사하게 될 조르제 제수스의 성격이나 축구 철학은 글을 쓰기에 앞서 제가 직접 수집한 자료들에 기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