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665)
664화 Livin` la vida loca (3)
.경기 결과(La Liga 7R)
발렌시아 0 : 2 아틀레티코
[골] 앙투안 그리즈만 : 후반 18분(케빈 가메이로)케빈 가메이로 : 후반 48분(후안프란)
김다온 ? 95분 출전(평점 7.4)
MoM ? 케빈 가메이로(1골 1어시스트/평점 8.8)
***
2016년 10월 4일. 대한민국.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필승로 368. 파주풋볼팬타지움.
지난 9월부터,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이 시작됐다.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을 모두 제외키로 한 호르헤 삼파올리는 윤빛가람/이용/김민혁/윤일록과 같은 선수들을 선발했고, 이들을 실전에 투입해 실험을 시도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썩 신통치 못했다.
최전방을 담당한 석현준과 김신욱 등은 결정력에 문제점을 노출했고, 김다온과 손흥민의 공백은 피치 곳곳에서 고스란히 나타났다.
어려웠던 승부에도 승점 6점을 획득한 것은 고무적인 사실이었으나, 경기력 자체는 분명 불만족스러웠다.
“헤이!!”
“…….”
유럽파가 입국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호르헤 삼파올리의 목소리가 날카로운 이유다.
[정운! 그게 아니잖아!]호르헤 삼파올리가 엉뚱한 곳으로 뛰어 들어간 정운의 앞으로 다가가, 경로를 다시 지정해 준다.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 이후, 호르헤 삼파올리는 대한민국에 조금 더 복잡한 철학을 심으려 하고 있다. ‘비엘사시즘’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3-3-3-1을 말이다.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최종예선까지는 기존의 포백을 고수하겠지만, 진출이 확정되면 다양한 시도를 해 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것의 성패 여부는, 매번 소집 때마다 얼굴이 바뀌는 왼쪽 풀백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쪽. 안 돼. 이쪽. 돼. 오케이?”
“…….”
울산 현대 유스 출신인 정운은 2012년 당시 화려한 스쿼드를 자랑하던 1군의 벽을 넘지 못하고, 프로 계약 1년 만에 방출을 통보받았다.
당시 울산은 지나치게 공격적인 정운의 기량을 100% 신뢰하지 못했고, 이는 다른 구단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떻게든 프로 생활을 이어 가려고 했던 정운은 충주 험멜 등의 입단 테스트에 지원하기도 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미안하지만 계약은 힘들다.”]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는 K리그 드래프트 전 진학했었던 명지대에서 별도의 개인 훈련을 이어 갔는데, 친구의 도움으로 크로아티아 에이전트와 인연이 닿게 되었다.
K리그 관계자들과는 달리 크로아티아의 축구 관계자들은 정운의 기량을 높이 샀고, 열성적인 팬들로 유명한 NK 이스트라 1961과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이후, 정운의 축구 인생은 180도 바뀌었다.
이스트라의 감독 이고르 파미치(Igor Pamic)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2년 만에 크로아티아 최고의 왼쪽 수비수로 거듭난 것이다.
[아주 좋네요.] [음. 지금 알게 된 것이 원망스러울 정도야.] [지금이라도 알게 돼서 다행인 거죠.]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군.]코치 앙헬 페레이라와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삼파올리의 눈은 정운에게 고정되어 있다.
선수 본인이 병역문제 해결을 위해 귀국을 택하기 전까지, 정운은 완전한 사각(死角)에 있는 선수였다. 처음 영상을 접했을 때, 삼파올리가 안타까워한 이유다.
최소 1년만 빠르게 정운이란 선수가 알려졌더라면, 이번 올림픽을 통해 병역을 면제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본래 공격수 출신답게 출중한 공격 능력을 보유했고, 체격이 좋은 크로아티아 선수들과의 몸싸움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힘 역시도 갖추고 있다.
게다가 먼 거리에서의 슈팅 능력도 보유했는데, 어떻게 보면 김다온의 다운그레이드 버전 같기도 했다.
“좋아!! 베리 굿!!”
지시사항을 곧바로 이해해 플레이로 옮기는 정운을 향해, 칭찬의 목소리를 드높인 삼파올리가 엄지를 치켜세워 주며 선수의 사기를 끌어 올렸다.
연령별을 포함 대표팀 소집 자체가 처음인 선수다 보니, 이런 식으로라도 어색함을 풀어 줘야 했다.
강찬일이 주도하는 부분 전술 훈련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다양한 곳으로 향했던 삼파올리의 시선은 다시 정운이 뛰는 곳으로 돌아온다.
[……아주 훌륭해. 정말 좋아.]2014년 여름, 정운은 수많은 유럽 클럽의 주목을 받았었다. 언급된 팀들 모두, 유럽 클럽 대항전에 꾸준히 출전 중인 굵직굵직한 이름값을 가졌다.
크로아티아 최고의 명문 클럽인 GNK 디나모 자그레브. 그리스의 전통적인 명문 파나티나이코스 FC. 세리에 A의 아탈란타 B.C 등이다.
특히 GNK 디나모 자그레브의 경우, 이적 이후 귀화를 제안하기도 할 만큼 열성을 띠었다.
과거 잠깐 클럽에서 뛰었던 크로아티아 최고의 스트라이커이자 현(現) 크로아티아 축구 연맹의 회장 다보르 슈케르 역시, 정운의 귀화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는 [“왜 정운과 같은 선수가 대한민국 대표팀에 뽑히지 않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라며, 뛰어난 선수는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말로 정운을 유혹했다.
하지만 정운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부심이 있었고, 모든 영광을 뒤로한 채 귀국을 선택했다.
물론 여기엔 수완이 부족했던 크로아티아 에이전시의 무능함도 영향을 끼쳤다.
2년 동안 이적 협상을 수월하게 진행하지 못하면서, 가뜩이나 외로운 타지(他地)에서의 생활을 더욱 삭막한 환경으로 몰고 가 버렸다.
정운은 거기에 피곤함을 느꼈고, 때마침 몇몇 K리그 클럽이 관심을 표현하자 고심 끝에 제주행을 선택했다.
“정운! 이리 와!”
제법 능숙해진 한국어로 정운을 가까이 부른 삼파올리 감독이, 다정하게 어깨동무하며 숙소 건물이 있는 방향으로 함께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곤 향후 계획을 물으며,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 게임을 목표로 최대한 군입대를 늦추는 게 어떠냐고 했다.
[너는 충분히 빅리그에서 뛸 수 있어.]“…….”
선수에게 끊임없이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고 있는 삼파올리의 머릿속엔, 정운을 장차 대한민국의 핵심 자원으로 만들기 위한 계획이 세워지고 있었다.
우선 그 시작은.
‘때마침.’
어떤 에이전시를 소개해 주는 것이었다.
***
【같은 날 오후】
3개월여 만에 찾는 한국은 여느 때처럼 따뜻한 환대로 나를 반겨주었지만, 그것을 즐길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네. 그거야 별로 어렵지 않죠.] [멋지군. 그에게 정말 도움이 될 거야.]공항으로 직접 마중을 오신 부모님의 차에 아영이를 태워 보낸 후, 곧바로 이곳 파주로 와야 했기 때문이다.
늘 그래 왔던 일이라, 딱히 아쉽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컨디션은 좀 어떤가?] [괜찮아요. 오히려 경기에 더 뛰고 싶은 정도예요.] [휴식이 효과를 봤군.] [감독님의 배려 덕분이죠.]당연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9월 A매치에서 올림픽 멤버를 제외한 것은 어려운 결정이었다. 단순한 평가전이었다면 모를까, 지난달 경기는 최종예선이었다.
아틀레티코에 적응하느라 바삐 하루를 보내면서도, 계속해서 대표팀과 연락을 했던 이유기도 하다.
그리고 천만다행히도, 대표팀은 경기력을 떠나 모든 경기에서 승점을 얻는 것에 성공했다.
중국을 4:2로 꺾었고, 말레이시아에서 펼쳐진 시리아와의 두 번째 경기에서도 침대 축구에 내내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윤빛가람 형의 프리킥 골과 이어 터진 영권이 형의 헤더로 2:1의 역전승을 거뒀다.
시리아전 후반 막판 두 개의 골은 아직까지도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자네가 그리웠네. 이 팀엔 자네가 필요해.] [책임감을 더 가져야죠. 노력하고 있어요.] [고마운 말이로군. 그럼 돌아가서 쉬도록 하게.] [네. 저녁에 봬요.] [그러지.]건물 안에 있는 감독실을 나서자마자, 복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인사를 건네왔다.
전부 기존 대표팀에서 보던 얼굴들이었고, 내 사복 패션에 호기심을 갖는 우영이 형에게 브랜드를 말해 준 뒤에 캐리어를 끌며 정해진 방으로 움직였다.
복도를 걷는 동안에는 문이 열린 방문은 전부 한 번씩 쳐다보며 사람이 보일 때마다 인사와 한마디를 건네는 일을 잊지 않았다.
일정 문제로 가장 늦게 도착했다 보니, 형들은 선배가 되더니 빠졌다는 식의 농담을 보내왔다.
그러다 내가 머물게 될 방의 바로 옆을 차지한 성용이 형을 만나게 됐는데, 그간의 마음고생이 어제부로 끝나서 그런지 표정이 무척 밝아 보였다.
“태업은 잘했고?”
“태업이라니, 인마! 이게 죽으려고.”
“큭큭큭큭.”
2014년과 2015년은 성용이 형에게 있어 최고의 시간이었다.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고스란히 클럽으로 이어 가며, EPL에서도 손꼽히는 중앙 미드필드로 발돋움한 것이다.
2014/15 시즌에는 팀 내 최다 MoM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이로 인해 2015년 여름 수많은 링크가 났었다.
같은 EPL의 클럽인 아스날을 비롯하여, 비달과 피를로의 공백을 해소해야 했던 유벤투스 FC와 스페인 라 리가의 비야레알, 마요르카 등이 관심을 표현한 것이다.
성용이 형은 유벤투스 FC행을 내심 선호했으나, 스완지가 요구한 금액이 너무 높아 이적이 성사되진 않았다.
하지만 직후 스완지 시티와 재계약을 체결하며 주급 등으로 보상을 받았고, 형과 형수 모두 웨일즈에서의 생활을 딱히 불편해하지 않아 오래 클럽에 머물 것 같았다.
그런데 성적 부진으로 해고가 된 개리 몽크(Gary Monk)에 이어 부임한 감독과의 불화가 변수로 작용했다.
이탈리아 출신의 프란체스코 귀돌린(Francesco Guidolin)은 성용이 형을 의도적으로 배제했고, 그뿐만 아니라 팀 내에서 스스로 파벌을 만드는 만행을 저질렀다.
당연히 파벌에 속하지 못한 선수들의 의욕과 경기력은 떨어졌고, 결국 귀돌린은 지난 1일 경질이 되었다.
“유벤투스로 안 간 게 잘한 짓일 수도 있겠다 싶더라.”
“그러니까. 대체 이탈리아는 왜 그러는데?”
“2002년 때문 아니겠냐.”
“휴우~ 뒤끝 한번 X나게 기네.”
안정환 선배를 시작으로, 2002년 이후 대한민국 축구선수들은 전통적으로 이탈리아와 궁합이 좋지 못했다.
“일단 짐이나 풀어라. 있다가 방에 갈게.”
“어, 형. 그런데, 한 10분만 있다.”
“왜?”
“아, 감독님이 부탁한 게 있어서. 잠깐 룸메이트랑 이야기를 좀 해야 하거든.”
“??”
“이따가 말해 줄게.”
고개를 끄덕인 성용이 형이 반대편으로 걸어가고, 그 뒷모습을 잠깐 지켜봤던 나는 다시 발을 몇 발 옮겨 활짝 열려 있는 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침대 끝에 앉아 있던 사람이 어색해하며 일어섰는데, 나는 환하게 웃으면서 첫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형. 반갑습니다~”
“아, 아. 네…… 네.”
“아유~ 말 편하게 하세요. 그래야 저도 나중에 편하게 말하죠. 제가 4살 어립니다.”
“아? 아…… 어. 어, 그, 그래.”
다시 한번 싱긋 웃음을 지어 보인 뒤, 비어있는 침대로 걸어가 익숙한 동작으로 캐리어의 짐을 풀기 시작했다.
속옷 다섯 개와 사복 둘. 아영이가 챙겨 준 화장품과 아영이의 사진을 빼면, 남은 건 대부분 축구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동료들에게 줄 선물이다.
“형, 빵 좋아하세요?”
“어?”
“아니, 마드리드에 아영이랑 가는 디저트 가게가 있거든요. 스페인 음식이 다 좋은데 디저트 이쪽이 진짜 최악이라, 이런 가게는 찾기 쉽지 않거든요. 받으세요.”
“!!”
탁-
깜짝 놀란 정운 형이 하늘을 난 상자를 어설프게 받아들더니, 조심스러운 손길로 포장을 뜯기 시작한다.
“물랑 쇼콜라라고 하는 가게예요. 그거 진짜 맛있어요.”
“어, 어. 그래. 고, 고마워.”
“넵! 맛있게 드세요. 아, 그리고. 감독님한테 혹시 이야기는 들으셨어요?”
“어, 응.”
삼파올리 감독님이 내게 한 부탁이란, 다름 아닌 정운 형에게 믿을 수 있는 에이전시를 소개해 달란 것이었다.
자신이 속한 에이전시도 나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한국인 선수가 많은 곳이 괜찮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나 역시, 거기에 공감하는 중이다.
“지금 에이전시는 없는 거죠?”
“응. 한국에 오면서 계약을 끝냈어.”
“잘됐네요. 저희 쪽으로 오시면 저야 좋죠. 민재도 있고 또 나중에 희찬이도 오기로 해서.”
“아…….”
정운이 형과 대화를 나누며, 나는 짐을 정돈하는 일을 전부 끝냈다. 당장 갈아입을 옷과 속옷, 그리고 화장품과 세면도구 정도만을 꺼내 두는 일이라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아영이의 사진을 침대 머리맡에 걸어 둔 뒤, 내가 준 빵을 우물거리고 있는 정운이 형을 바라본다.
형은 눈에 띄게 쑥스러워하고 있다.
“맛있죠, 그거?”
“으, 응. 그러네?”
“아껴서 드세요. 한 사람당 하나뿐이니까. 그러면 저는 선물 좀 돌리고 올게요. 그리고 아까 에이전트 이야기는 같이 있는 동안 천천히 해 봐요.”
고개를 끄덕이는 정운이 형을 남겨 두고 방을 빠져나와,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손에 쥔 봉투에서 꺼낸 자그마한 상자를 하나씩 건네기 시작했다.
“야! 뭐 하냐?”
“?!”
“잘 받아.”
“!!”
올림픽 이후 이틀이 멀다고 먼저 연락을 걸어왔으면서, 막상 얼굴을 보게 되자 희찬이는 어색해하고 있다.
“맛있게 먹어라!”
우리의 첫 시작은 좋지 못했지만, 그 이상으로 더 나아질 시간은 충분하니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단추를 끼워 나가면 될 거라고 믿는다.
방문이 열려 있으면 불쑥 고개를 들이밀고, 방문이 닫혀 있으면 노크 후에 문을 열어 한 명 한 명에게 상자를 전달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얼마나 반갑던지, 나는 선물을 전하는 내내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어이! 배신자!!”
“아~ 진짜!!”
자철이 형이 최근 독일 내에서의 별명이 된 ‘배신자’로 날 불렀을 때에도, 나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쯧. 괜찮냐?”
“뭐, 안 괜찮으면 어쩌겠어.”
“너다운 말이다, 인마.”
“그렇지. 형도 이거 하나 받아.”
“뭐냐?”
“빵. X나 맛있어.”
줄곧 그랬지만 대표팀은 ‘속해 있어야 하는 곳’보다는 ‘돌아와야 하는 곳’이란 느낌을 주고 있다.
꼭 집과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도 좋아 보여서 다행이다.”
“……응. 난 괜찮아.”
“그래. 그리고.”
“응?”
“어? 이제 스페인 가더니 연락이 없어. 어? 바빠도 형한테 잘 지내냐고 연락 한 번 못 하냐?”
“아- 형이 먼저 하면 되지.”
“아~ 이 새끼. 또 지랄이네.”
“지랄, 하루 이틀 봐?”
“미친놈.”
“큭큭큭큭.”
최근 바이에른 뮌헨과 있었던 일이 내게도 힘들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게다가 어느 정도 감정을 정리하고 나니, 뮌헨은 내게 아픈 손가락과 같은 곳이 되어 버렸다.
더는 바이에른 뮌헨에 속하진 않겠지만, 난 진정으로 그곳이 잘 되기를 바라고 있다.
물론 상대로 만나게 되면, 지난번처럼 그들을 박살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말이다.
축구가 주는 잔인함에도 조금이지만 그렇게 익숙해져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새끼. 조금 어른이 됐네.”
“아닌데?”
“뭐?”
“난 늘 형보다 어른이었는데?”
“아~ 진짜! 뒤질래요?”
이런 농담과 분위기가 무척 그리웠노라고, 가슴속에 자리 잡은 진심이 내게 말을 해 오고 있었다.
왜 형들이 대표팀 생활이 힘들지만 재미있다고 했는지 잘 알 것 같은 순간이다.
‘잘 힐링하고 가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휴식에 대한 값은 승리라는 녀석으로 치러 볼까 한다.
“어이고~~! 손 사장~~!”
“여어~~! 김 사장~~!”
“이거 정말, 반갑구만!”
“반가워요!”
최근 함께 보고 있는 드라마에서 나온 개그로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난 대표팀에서 만난 마지막 사람인 흥민이 형과도 얼굴도장을 찍었다.
우리를 중심으로 번져 가기 시작한 웃음소리가 간지럽게 귓가를 때려 오며, 쌓인 피로를 씻어 내 주고 있었다.
“반갑구만!”
“반가워요!”
“반갑구만!”
“반가워요!”
***
2016년 10월 5일. 81547 뮌헨, 독일. 재베너 슈트라세 51-57. 바이에른 뮌헨 서비스 센터 및 훈련시설. 선수 전용 식당/카페테리아.
참패의 아픔을 조금씩 잊어 나가고 있는 바이에른 뮌헨. A매치 주간 고요해진 클럽하우스의 식당 안으로 카를-하인츠 루메니게가 들어선다.
그러고는 한쪽에서 자신의 가족들과 식사 중인 카를로 안첼로티에게로 걸어갔다.
“카를로? 잠시 시간 됩니까?”
“응? 오-! 물론입니다.”
냅킨으로 입을 닦은 안첼로티가 의자에서 일어서고, 둘은 조용한 곳으로 발을 옮겼다.
“무슨 일입니까?”
“…….”
사람이 없는 곳으로 향한 루메니게가 고개를 돌려 안첼로티가 앉아 있던 테이블을 바라본다.
지금까지 수많은 감독이 뮌헨을 거쳐 갔지만, 클럽과 관계되지 않은 가족을 시시때때로 클럽하우스로 불러들이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나마도 선수들이 불만을 표한 덕에, 오늘처럼 완전 휴식을 취하는 날에만 부르는 정도였다.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여러 개의 눈이 탐탁지 않았던 루메니게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안첼로티를 보지 않은 채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적에 관해 할 말이 있습니다.”
“……판매입니까?”
“둘 다입니다.”
카를로 안첼로티는 우선, TSG 1899 호펜하임의 미드필드 제바스티안 루디(Sebastian Rudy)와 센터백 니클라스 쥘레의 영입이 임박했음을 알렸다.
클럽 간의 이적료 합의가 마무리된 상태로, 겨울 휴식기 개인 협상이 끝나면 공식발표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호펜하임의 요청으로, 정식 이적은 2016/17 시즌이 끝난 다음이 될 것이다.
“그거 멋지군요! 엄청난 수완입니다!”
“…….”
자신이 직접 지목한 제바스티안 루디의 영입에 반색한 안첼로티가 루메니게를 칭찬하지만, 무심한 표정으로 그것을 흘려보낸 뮌헨의 회장이 곧바로 다음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에 카를로 안첼로티는 조금 불편함을 내비쳤지만, 루메니게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곧, 1억 유로 정도의 추가자금이 확보될 겁니다.”
“?!”
“당장 정확히는 밝힐 수 없습니다만, 다온에게 제안을 보내온 클럽이 있습니다.”
“환상적이로군요.”
“그렇습니까?”
“네. 그는 뮌헨을 욕보였지 않았습니까? 더는 그가 이곳에서 뛸 수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당신이 가장 분노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요.”
카를로 안첼로티의 의문을, 루메니게는 이번에도 가볍게 흘려 내 버린다.
어깨를 한번 으쓱인 후, 영입을 바라는 선수가 있다면 따로 전달을 해 달라는 말만을 남기고 돌아선 것이다.
‘비센테 칼데론에서의 참사’로 명명(命名)된 그날 이후, 카를-하인츠 루메니게는 김다온에 대해 단 한 마디도 남기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것을 분노했기 때문이라 알고 있었지만,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카를-하인츠 루메니게는 그저, 자신의 시대의 끝이 실패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김다온을 바라보는 일이 너무 괴로웠을 뿐이었다.
언젠가, 자신이 틀렸고 그가 옳았다는 것이 증명될 거란 불안감도 있었다.
“잠깐 쉬게 해 주게나.”
“네, 회장님.”
비서를 지나쳐 회장실로 들어온 루메니게가 중앙에 놓인 소파에 몸을 길게 눕혔다.
맨체스터 시티가 1억 유로를 제안했다는 말에, 울리 회네스와 프란츠 베켄바워는 단 1초 만에 그것을 받아들이란 이야기를 통보해 온 상태다.
조만간 루머를 흘려 시장 가격을 책정해 보겠지만, 그보다 좋은 제안은 없을 것 같았다.
머지않은 시일 내에, 김다온이 바이에른 뮌헨을 떠나 맨체스터 시티로 향할 거란 뉴스가 세상을 도배할 것이다.
“…….”
머리가 지끈거린 루메니게가 눈을 감는다.
그러곤 다시 생각했다.
‘어떻게 될까?’
현재 루메니게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악몽은, 펩 과르디올라와 김다온이 있는 맨체스터 시티와 챔피언스 리그에서 만나 또 하나의 아픈 패배를 경험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때, 주변의 반응이 몹시도 두려웠다.
최근 3년, 뮌헨은 큰 영광을 누렸다.
하지만 이야기가 그런 식으로 풀려나가게 될 경우, 사람들은 지난날 뮌헨이 거두어들인 성과가 펩 과르디올라와 김다온에 의한 것이었다고 평가를 해 버릴 것이다.
그건 함께 노력한 모든 이들을 무시하는 일이 되겠지만, 스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건 흔히 있었던 일이다.
‘끔찍하군.’
뮌헨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김다온은 알지 못하는 감정을 평생 느껴온 루메니게에겐, 상상만으로도 힘든 순간이다.
계속해서 떠오르는 나쁜 생각을 떨쳐내려 몸을 뒤척인 바이에른 뮌헨의 회장이, 마주 보고 싶지 않은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방어기제가 작동한 낮잠에 빠져든다.
그리고 그 꿈속에서 그는, 사랑하는 클럽이 빅이어를 다시 높이 드는 행복한 순간을 경험했다.
이에 잠든 루메니게의 입가에 미소가 걸리지만, 스트레스로 인한 그의 눈가는 여전히 힘들어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 무척 평온해 보이는 10월의 오후.
뮌헨은 김다온을 곧 판매할 예정이다.
***
작가의 말 ? 본문은 9,665자입니다.
정운은 개인적으로 무척 안타까워하는 축구선수입니다. 일찌감치 눈여겨봤었는데, 여러 이유로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대형 풀백의 재목을 잃어버린 셈이죠. (씁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