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667)
666화 Livin` la vida loca (5)
[경기 내용과 결과에 큰 만족감을 표한 호르헤 삼파올리 ? SPORTV(한국)/2016.10.06.(밤)]? 호르헤 삼파올리, “9월 A매치에 참여하지 않았던 이들과 새롭게 대표팀에 뽑힌 선수들 모두가 잘해 줬다. 기존의 선수들과의 호흡이 좋았다. 이란 원정은 쉽지 않을 것이기에, 더욱 잘 준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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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연승으로 아시아지역 월드컵 최종예선 선두에 오른 대한민국. – 스포츠 뉴스 24(한국)/2016.10.06.(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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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의 대승에도 불구, 주심의 석연치 않은 판정에 정식으로 항의서를 보내기로 한 축구협회. – OSEM(한국)/2016.10.07.(오전)]? 장철주 대한민국 축구협회장, “오늘 경기의 판정은 이해하기 힘든 것투성이였다. 한국은 받지 않았어야 할 경고를 최소 두 장이나 받았고, 카타르는 최소 세 명이 경고를 받지 않았다. 기억나는 대로 말한 것이라 정확하지 않을 수는 있다. 이른 시일 내에 경기를 전면적으로 분석하여 해당 자료와 함께 AFC와 FIFA에 조사를 요구하려고 한다. 또한, 해당 주심의 월드컵 조별 예선 경기 배정 역시도 막겠다.”
***
2016년 10월 8일.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윌라야 페르세쿠투안. 얄란 1/155B, 부킷 잘릴, 57000 쿠알리룸프르. 아시아 풋볼 컨페더레이션(Asia Football Confederation. Jalan 1/155B, Bukit Jalil, 57000 Kuala Lumpur, Wilayah Persekutuan Kuala Lumpur, Malaysia).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대륙 축구 연맹과 마찬가지로, 아시아 축구 연맹 역시 축구를 통한 이익을 추구하는 영리(營利)단체이다.
영국령 홍콩 출신의 사업가 궉 찬(Kwok Chan)과 변호사 로 만 캄(Lo Man Kam)에 의해 1954년 설립된 이래, 아시아의 주요 대회를 주관해 왔다.
그러던 1958년 말레이시아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초대 총리 툰쿠 압둘 라흐만(Tunku Abdul Rahman)이 5대 회장으로 취임, 이후 19년간 AFC를 이끌며 큰 성장세를 보여 줬다.
이후 2002년까지 주로 말레이시아 국적의 정치인에 의해 운영되던 AFC는 9대 회장을 기점으로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카타르 출신의 축구인인 모하메드 빈 함맘이 취임하면서, UEFA에 좀 더 흡사한 방식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순수 스포츠에 가까웠던 아시아의 축구가 비즈니스의 형태를 띠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부터였다.
“장 회장의 분노가 엄청납니다.”
“…….”
“그가 말하길, 어설픈 눈속임으로 넘어갈 생각은 하지 말라더군요. 아무래도, 우리가 무얼 하려고 하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일본 문제요.”
“음-”
AFC의 이사 중 하나인 아딜 엘-샴(Aadil El-Sham)의 보고에, 모하메드 빈 함맘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그리고 또,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
“나이로비.”
“…….”
1954년 5월 8일 AFC의 설립 멤버로 참여한 이래, 대한민국은 정치적으로 빼어난 역량을 보여 주던 국가가 아니었다. 오히려 실력 그 자체로 높은 평가를 받았었다.
하지만 다양한 이유로 한국의 성장이 더뎌지는 사이, 일본과 중앙아시아가 빠르게 그 격차를 좁혀 나가기 시작했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정점을 찍었던 대한민국의 축구 위상도, 내부 문제와 제프 블라터에 의해 떨어진 정치적 입지로 인해 조금씩 추락해 가던 중이었다.
그러나 장철주가 대한민국의 새로운 축구협회장이 되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묘해져 갔다.
제프 블라터가 FIFA 회장 선거의 경쟁자였던 정봉준의 정치적 뿌리를 끊어 내는 것에 집중하는 사이, 장철주는 은밀한 곳에서 본인만의 입지를 다져 나갔다.
AFC 내에서 소외되고 있는 태국/말레이시아/홍콩/베트남의 협회장들과 교류를 쌓는 한편, 호주 축구 연맹의 스티브 로위(Steve Lowy)와도 지지를 얻어 낸 것이다.
어느 날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아시아 축구연맹 만찬회 자리에서, 모하메드 빈 함맘이 장철주의 위상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던 이유다.
“그게 무슨 뜻이죠?”
“아무것도 아닐세.”
“…….”
“일단,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할 것 같군.”
“그야 어렵지는 않습니다만, 일본의 반발이 무척 거셀 겁니다. 최악의 경우, 그들의 지지를 잃어버릴 수도 있고요.”
“그 부분은 내가 알아서 하겠네. 이만, 나가 보게.”
“네.”
찝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아딜 엘-샴이 사무실을 빠져나가고, 답답한 심정이 든 모하메드 빈 함맘이 담배를 태우려다 말고 손에 쥔 것을 구겨 쓰레기통에 집어 던졌다.
종교적인 이유로 인해, 그는 당분간 담배를 태우는 것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모하메드 빈 함맘이 냉수를 들이켜고, 조금 전 나눈 대화를 하나하나 생각해 본다.
‘어떻게 알았지?’
장철주가 덧붙였던 나이로비(Nairobi)란, 케냐의 수도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곳엔, 모하메드 빈 함맘의 ‘엘 도라도(El Dorado)’가 있었다.
다양한 방법으로 축적해 둔 부(富)와 여자. 모든 종교적인 제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보안이 보장된 엄청난 규모의 대저택과 같은 것들 말이다.
그곳에서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일들이 펼쳐졌고, 빈 함맘은 나이로비를 일탈의 장소로 삼아 왔다.
나이로비에는 아프리카 축구협회가 있어, 왕래함에도 핑곗거리가 확실했다.
한데 그것을 장철주가 알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알 수 없다.
앎에 대한 두 가지의 상황이 교차하는 지금, 빈 함맘은 올해 연말의 계획을 백지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장철주가 나이로비를 어떻게 알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가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다.
섣불리 어떠한 행동을 했다가 자칫 그것이 공개되기라도 하면, 자신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추락을 경험하게 될 것도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젠, 몸을 낮출 때였다.
작은 잘못을 수습해야 한다.
결심을 굳힌 모하메드 빈 함맘이 휴대폰을 꺼내 들어, 9대 회장이자 현(現) 카타르 축구협회의 명예회장으로 있는 무함마드 빈 함맘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이틀 전 대한민국과 카타르 경기에 배정된 주심을 향한 장철주의 의심은 옳은 것이었다.
말레이시아의 주심은 매수(買收)되었다.
최종예선 첫 두 경기에서 잘 싸우고도 1무 1패 성적을 거두었던 카타르에겐 승리가 꼭 필요했고, 무함마드는 가장 쉽고 그가 가장 잘하는 방법을 택했다.
해당 경기에 다양한 옵션을 걸어, 주심이 카타르에 유리한 판정을 하도록 이끌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대한민국과의 격차를 좁히기는 불가능했고, 모하메드는 차라리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 매수하는 게 어땠었겠냐는 의견을 보태기도 했다.
한데 이에 대해, 굴욕적인 목소리의 무함마드는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도 같은 일을 했노라고 고백해 왔다.
개최국으로서 월드컵 본선에 처음으로 진출했다는 망신을 피하기 위한 무함마드의 노력은, AFC의 회장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이어져 왔던 것이다.
띵-
무함마드의 답장을 확인한 모하메드가 지금 대화를 나누기에는 바쁘다는 말로 나중을 기약한다.
실제로 5분 뒤엔, 다른 미팅이 있다.
‘일단, 그 전에.’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문제가 떠오른 모하메드가, 이번에는 일본 축구협회의 회장에게 전화를 건다.
약 한 달 전, 모하메드가 사업적인 일로 일본을 방문했었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날 밤, 일본 축구협회장인 도쿠헤이 니시오카(Tokuhei Nishioka)를 만났었다.
고급 요정에서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도쿠헤이는 모하메드에게 이러한 우려를 보내왔다.
[“마치, 과거로 후퇴하는 듯하군요.”]도쿠헤이가 말했던 건, AFC 올해의 선수상과 AFC 올해의 해외파 선수상에 관한 것이었다.
일본이 이 두 가지 부분에서 수상자를 배출한 건, 2009년 감바 오사카에서 뛴 야스히토 엔도(Yasuhito Endo)가 마지막이었다.
대번에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이해했던 모하메드는, 도쿠헤이에게 어렵다는 투로 이렇게 대답했었다.
[“오마르와 다온이 너무 독보적이라서 말입니다.”] [“그렇지만 오카자키도 후보가 될 수는 있겠죠.”] [딸깍-] [“…….”]도쿠헤이가 연 고급스러운 문양이 수놓인 상자 안에는 엄청난 값을 자랑하는 시계가 들어 있었다.
[“오카자키 신지. 레스터에서 뛰고 있습니다.”] [“크흠. 차 봐도 되겠소?”] [“얼마든지.”]2014 FIFA 브라질 월드컵 이후, 일본은 급격하게 한국으로 넘어간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협회 차원에서 나서 분데스리가와 교류해 실력 있는 젊은 선수들을 독일로 보내는 한편, 전 세계의 유명 유스 클럽 관계자를 초빙해 유망주 육성에 공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최소 몇 년이 있어야 성과를 볼 수 있는 부분이었고, 2018년에 발표될 2026 월드컵 개최지 선정 최종 후보가 되고픈 일본은 대외적 광고가 필요했다.
아시아 내의 클럽에서 뛰는 선수에게 주는 AFC 올해의 선수상까진 아니더라도, 아시아 지역 밖의 선수에게 수여되는 AFC 올해의 해외파 선수상을 원한 것이다.
그래서 도쿠헤이는 레스터 시티의 오카자키 신지를 강력히 추천했다.
값비싼 다이아몬드가 수십 개나 박힌 시계의 영롱함에 홀린 것인지는 몰라도, 모하메드는 그것이 꽤 그럴듯한 이야기란 생각을 했었다.
2015/16 시즌 EPL 우승을 차지한 레스터 시티의 기적과도 같은 동화(童話)는 축구계 역사에 남을 만한 것이었다.
시즌 전 1/5000이란 우승 확률을 뚫고 마침내 정상에 오른 레스터 시티.
전 세계의 모든 축구 관계자와 FIFA마저 찬사와 헌사를 아끼지 않았던 이들의 우승은, 실력을 떠나 오카자키 신지에게 상을 주기에 충분한 이유처럼 느껴졌었다.
한데 나이로비라는 단어 하나에 그 최면에서 깨어난 지금, 모하메드는 시계를 다시 돌려주고 김다온에게 2016 AFC 올해의 해외파 선수상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2013년 최초 상이 만들어진 후 3회 연속 같은 국가의 선수가 수상하는 것은 보기 좋지 않을 수도 있으나, 같은 선수가 아니니 괜찮다는 핑계는 대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해 유토 나가토모(Yuto Nagatomo)가 수상한 것 외에, 최근 2년 같은 상은 늘 대한민국 출신이 받아 왔다.
2014년 김다온.
2015년 손흥민.
그리고.
“미안하군요. 그때의 일은 없었던 걸로 합시다.”
– !@%^%$^%$^@$!!!
이번 2016년 역시, 뮌헨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과 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을 이끈 김다온이 커리어 두 번째로 AFC 올해의 해외파 선수상을 받아 갈 것으로 보인다.
축구 정치 외교란 이렇게, 한 개인의 커리어에 적힐 한 줄에도 영향을 미치는 법이다.
***
2016년 10월 9일. 테헤란, 이란. 파라흐 아바드, 노, 발리아스르 스퀘어. 케샤바르즈 대로 126번 길. 에스피나스 호텔(Hotel Espinas. Tehran Province, Tehran, Farah Abad, No, Valiasr Square, Keshavarz Blvd, No. 126 Iran).
국적이 어디든 간에, 이 도시에서 나고 자란 게 아닌 이상 테헤란으로 원정을 떠나오는 건 늘 부담스러운 일이다.
엘부르즈산맥의 남쪽 고도 1,200m의 고지대라는 건 차치하고라도, 공기의 질 자체가 지금껏 방문해 본 어떠한 도시보다도 나쁘다.
지역이 특성상 초원지대가 적고, 반대로 인구 천만 도시에서 내뿜는 대기 오염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지옥과도 같은 교통난과 길거리에 보이는 차량의 90%가 낡고 노후된 것이라는 점 역시, 이러한 대기 오염을 부추기는 중이다.
고지대라 당연히 공기가 좋을 것으로 믿은 이들이, 가방에서 주섬주섬 마스크를 꺼내 쓴 이유다.
“어우 씨, 코 간지러워.”
“말했지? 형이 그렇다고 했잖아.”
“아- 코가 매워요.”
“나도 그렇다.”
“에- 에- 에- 엣취!!”
이란과의 경기를 이틀 앞두고 메라 바드 국제공항에 도착했던 우린, 곧바로 버스를 타고 호텔로 왔다.
호텔 에스피나스는 시내에 자리 잡은 곳으로, 공항에서 단 9km밖에 떨어져 있지 않고 경기가 펼쳐질 아자디 경기장과도 약 16km 거리에 위치해 있다.
편의시설과 객실의 수준 역시 최고급이라, 이틀 동안 편안하게 머물다 마드리드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엄청난 미세먼지와 매연에 재채기를 멈추지 못하는 희찬이가 걱정돼, 의료진을 찾아가 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까이에서 멀어졌다.
그러자 이번엔, 재성이 형이 다가왔다.
“야~ 이제는 뭐, 단짝이다?”
“왜? 질투해, 자기?”
“질투는 무슨. 아우 근데, 목이 따갑다.”
“조심해야지, 뭐. 이거 좀 줄까?”
“응? 뭔데?”
한국에서 가져온 하얀 가루가 담긴 은색 통을 꺼내 들자, 재성이 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냉큼 가져간다.
그리고 잠시 뒤에는 너도나도 내 곁으로 와서, 자그마한 숟가락으로 푼 하얀색 가루를 목 안으로 털어 넣었다.
이 모습을 주변에 있는 호텔 직원들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사실을 말해 줄까 하다가 장난기가 생겨 은색 통에 코를 가져가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직원들은 아예 낯빛이 하얗게 변해 버렸고, 이에 한숨을 쉰 성용이 형이 걸어가 영어로 해명을 했다.
잠시 뒤, 일제히 이해했다는 만국 공통의 행동을 취해 보인 호텔리어들은 이번에는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의외로 페르시아 쪽 사람들 사이에서 먹히는 농담인가 본데, 성용이 형은 아니었나 보다.
찰싹-!
“이크!”
“야이 미친놈아. 뭐 하냐, 진짜?”
“왜~ 재미있잖아.”
“하~ 또라이 새끼.”
최근 두 달 동안 스모그로 약 300여 명의 사상자가 테헤란에서 발생했다는 말에, 걱정된 아영이가 약국으로 달려가 용각산과 목캔디를 잔뜩 챙겨 줬었다.
동생들과 함께 직접 차를 몰고 와 이런저런 것들을 챙겨 주는 아영이를 보며, 대표팀 동료들이 부러워해 어깨에 있는 뽕이 하늘 끝까지 솟아오르기도 했다.
아마도 지금쯤 한국을 떠나 스페인으로 향하고 있을 아영이는, 나보다 이틀 먼저 마드리드에 도착해 자신의 일정을 다시 이어 나갈 것이다.
장모님을 대신해 큰 처제가 지금부터는 마드리드에 머물 예정이라, 걱정도 조금은 덜 수 있었다.
“그런데, 나도 좀 줘라.”
“아. 형은 아예 통째로 줄게.”
“어.”
새것 하나를 받아 간 성용이 형이 그것을 주머니 안에 집어넣고, 단체 체크인을 끝낸 이운재 코치님이 카드키를 들고 우리를 한쪽으로 불렀다.
올림픽이 끝난 후, 대표팀은 월드컵 체재로 돌입해 코치진을 대거 늘린 상태다.
올림픽 팀에 있던 이운재 코치님이 올해까지 대표팀을 돕기로 했고, 작년 은퇴한 두리 형님은 전력분석관으로 현재 대표팀과 동행 중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대표팀은 뭔가 북적북적한다.
그리고 난 그게 마음에 들었다.
“다온이! 정운!”
“형, 우리예요.”
“어, 그래.”
방 배정은 파주와 완전히 같다.
나로선 딱히 불만이 없다.
첫날은 무척 어색해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편안해진 정운 형은 무척 좋은 사람이었다.
작년 예쁜 형수님과 결혼을 했고 다음 달이면 득녀를 하게 되는데, 형은 모르지만 나는 이미 신혼집으로 선물을 한가득 보내 두었다.
공항에 도착해 휴대폰을 로밍시켰을 때, 한국에 있는 대리인으로부터 메시지를 전달받았다.
형수님께는 비밀로 해 달라고 신신당부해 두었기에, 정운 형이 내 선물을 알게 되는 것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난 다음일 것이다.
그때쯤에는 아마 마드리드에 있을 텐데, 환하게 웃을 일이 하나 예정되어 있어 조금 두근거리기도 했다.
“오-! 침대 좋아!”
“오~ 그러네?”
침대로 폴짝 뛰어들어 매트리스의 스프링을 점검해 본 후,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열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보통 고지대라면 새파란 하늘을 연상하기 쉽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건 안개가 낀 것처럼 뿌연 하늘이었다. 저게 안개나 구름이 아니라는 게 놀랍다.
테헤란에서도 더 높은 지대로 올라서면 매연 층이 아래로 보인다던데, 상상만으로도 목이 칼칼해진다.
“…….”
촤르륵-
인상을 찌푸리며 커튼을 친 나는, 괜히 아픈 목을 달래기 위해 머리맡 작은 탁자에 놓아 둔 목캔디 하나를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입 안 가득 번져가는 화한 기운을 느끼고 나니, 이제야 조금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 잠깐 영상통화 좀.”
“네, 형.”
형수님과 영상통화를 하는 정운이 형을 객실에 남겨 두고, 화장실로 들어선 나는 거울 앞에 서서 까슬까슬하게 자라난 수염을 매만졌다.
경기가 있는 모레까진, 딱히 손질하지 않으려 한다.
어차피 아영이도 없고.
‘보고 싶네.’
문득 내 사람이 보고 싶어진 나는 뚜껑을 닫은 변기에 살짝 걸터앉아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을 뒤적였다.
‘이기고 돌아갈게.’
우리는 모레, 원정팀의 무덤이자 대한민국 성인팀이 단 한 차례도 승리한 적 없는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경기를 치른다.
***
작가의 말 ? 본문은 8,047자입니다.
연재 주기와 관련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고심 끝에 결정을 내렸는데, 앞으로 2~3주가량은 월~토까지 2-1 패턴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월수금 2연재
화목토 1연재
일요일 휴식.
이렇게 진행하다가 다시 2~3주가량
월화목금 2연재
수토 1연재
로 전환을 하고, 4주-6주 후 월-금 2연재 토 1연재로 접어든 뒤에 최종 월-토 2연재로 돌아갈까 합니다.
불규칙한 연재에 사과의 말씀을 다시 한번 드리면서, 스스로 건강 잘 챙겨서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한가위입니다.
풍성한 하루 되세요.
(_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