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694)
693화 Spater reden (4)
2016년 12월 4일. 28221 마드리드, 스페인. C. 세로 델 에스피노, s/n, 파벨론 2. 시우다드 데포르티바 완다 아틀레티코 데 마드리드.
그런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만약 상대 팀에서 뛰는 선수가 자신들의 레전드고 은퇴가 가까운 시점이라면, 다가오는 홈 경기에 특정 선수의 출전을 요청하기도 한다고 말이다.
다만 여기엔 ‘두 클럽 사이의 원만한 관계’와 ‘순위 싸움과는 상관이 없을 것’이 중요하게 적용되었다.
“뮌헨이요? 어째서죠?”
“그건 우리가 자네에게 묻고 싶은 말이야. 따로 이야기를 들은 것 없나?”
“……아뇨. 전혀요.”
“그런가?”
“네.”
알리안츠 아레나 원정을 이틀 앞둔 오늘, 출근과 동시에 나를 사무실로 부른 디에고 시메오네가 바이에른 뮌헨 측의 요청 사항을 전달해 왔다.
바로 모레 경기 때 나를 출전시켜 달라고 말이다.
“흐음- 일단 알겠네. 사람들과 말해보지.”
“네. 저도 확인해 볼게요.”
“그러게나.”
알다시피, 최근 뮌헨의 사정은 썩 좋지 않다.
클럽하우스 주변과 알리안츠 아레나의 밖에서는 매일 같이 시위가 벌어졌고, 선수단은 카를로 안첼로티가 팀의 실력을 낭비 중이라 생각하고 있다.
프랑스 리게 앙에서 연일 맹활약 중인 베르나르두의 말에 의하면, 데어 클라시커 이후 프랑크 리베리가 카를로 안첼로티와 언쟁을 벌였다고 한다.
리베리는 토마스 투헬의 변칙적인 전술을 전혀 공략하지 못한 카를로 안첼로티를 탓했는데, 하프타임 아무런 해법을 제시해 주지 못했던 게 원인이었다.
이에 카를로 안첼로티는 피치에서 제대로 뛰고서 말을 하란 식으로 응수했는데, 바로 그게 팀에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프랑크 리베리는 마누엘 노이어와 더불어, 데어 클라시커에서 가장 잘 뛰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후반전 2분에는 석연찮은 판정으로 취소된 골을 기록하기도 했고, 퇴장을 줘도 할 말이 없었을 마르크 베르트라의 태클을 끌어냈던 것도 베테랑 윙어였다.
더구나 뮌헨 내에서 리베리가 지닌 위상을 고려하면, 카를로 안첼로티는 좀 더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어야 했다.
결국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리베리는 안첼로티와의 모든 대화를 거부했고, 물러설 수 없었던 카를로 안첼로티는 선발 제외란 강수를 두었지만 먼저 백기를 들었다.
뒤이어진 바이어 레버쿠젠과의 홈 경기에서, 전반전 답답한 경기를 펼친 끝에 1:1로 비기자 리베리를 투입한 거다.
하지만 그날을 계기로, 가뜩이나 관계가 불편했던 둘 사이에 더욱 깊은 골이 생겨났다.
“…….”
디에고 시메오네에겐 확인해 보겠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막상 누구에게 연락을 취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드문드문 연락을 이어오던 리베리는 심기가 불편하고, 로번과 보아텡은 바꾼 번호를 내게 알려주지 않았으며, 레비와 람은 괜히 내가 불편했다.
그나마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키미히였지만, 녀석은 깊은 사정까지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대안은 노이어다.
[……에이, 씨.]내가 이렇게나 용기가 없는 녀석이었던가?
하지만 정말로 전화하기가 힘이 들었다.
복도에 서서 머리를 한껏 헤집은 후, 난 그냥 요나스에게 SOS를 요청키로 했다.
– 흐음- 그거 이상하네.
“네. 혹시 뭐 짚이는 거라도 있어요?”
– 아니, 전혀. 여긴 뮌헨이니까. 만약 뭔가가 있었다면, 내가 바로 알았을 거야.
“제 생각도 그래요.”
처음부터 요나스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던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내 에이전시인 아레나 11에는 늘 뮌헨의 최신 정보가 전달되고 있다.
당연히 연락을 먼저 받았을 거란 의미다.
– 언제까지 확인해야 해?
“오늘 오후요. 그때 명단이 정해지니까요.”
– 알겠어. 바로 알아볼게.
“부탁할게요.”
– 그래. 그럼.
-딸깍-
전화를 끊고 난 후, 난 잠깐 생각을 해 본다.
혹시 이건 복수가 아닐까?
‘에이, 설마.’
제아무리 내 행동이 올바른 일은 아니었다지만, 바이에른 뮌헨 정도 되는 클럽이 선수 개인에게 복수하려고 출전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나마 다른 가능성이 있다면 작별 인사의 개념이지만, 과연 그들이 날 위해 그러한 일을 해줄까?
무엇보다 나는 애초 이 일을 시작할 때부터, 뮌헨을 상처입히게 될 것이며 앞으로 영원히 그들에게 환영받지 못할 거라고 믿어왔다.
불과 수개월 사이에 크게 어긋난 우리의 관계를 돌이켜보면, 이 가정 역시 올바르진 않은 것 같다.
[후우- 거부해야겠어.]디에고 시메오네는 본래 모래 원정에 나를 동행시키지 않을 예정이었다.
바이에른 뮌헨 원정 이후 5일의 휴식이 주어지긴 하지만, 비야레알 원정은 쉽지 않은 경기가 될 것이다. 굳이 진출이 확정된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서 무리할 이유는 없다.
출전 수당과 보너스도 좋긴 하지만, 지금은 더 멀리 바라보고 시즌을 준비해야 할 때다.
요나스의 확인 결과가 어떠하건, 훈련 일정이 끝난 뒤에 시메오네에게 거절 의사를 내비쳐야겠다.
하지만.
“네?”
이런 나의 결심은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야. 뮌헨의 A.G와 e.V들이 네게 작별 인사를 하길 원해. 설령 경기에서 뛰지 않더라도, 한 번 더 뮌헨을 찾아주길 바라고 있어.
진짜로 작별 인사를 위해 나를 초대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 몇 번이나 확인했는데, 다른 의도는 없는 것 같아.
“……진짜요?”
– 뭐, 직접 마주하기 전까진 알 수 없겠지만 말이야. 일단 지금까지는 단순한 선의라고 보여.
어쩌면 난, 뮌헨으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
아무래도, 생각할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것 같다.
***
[결장할 것이란 예상에도 불구, 김다온은 선수단과 함께 뮌헨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 안토니오 루이스(기자) Via Twitter/2016.12.05.(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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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 Daon a Munich(다온이 뮌헨으로)? ¿Por que(어째서)? – 쿠아트로/2016.12.05.(오전)]***
2016년 12월 5일. 마드리드 상공(Sobre Madrid).
“다온을 뛰게 하겠다고? 자네 진심인가?”
“선수 본인이 강력히 원하고 있어.”
“자네는 그걸 받아들였다고?”
“그래. 그래서 데려온 거야.”
하루 전, 디에고 시메오네는 김다온을 뮌헨 원정에 동행할 21명의 명단에 집어넣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래도 거기까진 이해할 수 있었다.
훈련 도중 얼마든지 부상선수가 발생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김다온이 팀에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 상황상 김다온의 출전은 마지막 카드와도 같은 느낌이지만, 보험을 둬서 나쁠 건 없었다.
한데 뮌헨으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디에고 시메오네는 김다온의 선발 출전 의사를 내비치는 중이었다.
“듣기론, 작별 인사라더군.”
“뭐? 누구에게? 다온에게?”
“그가 아니면 누구겠나?”
“잠깐, 잠깐. 지금 정리를 조금 해보자고.”
플라스틱 물병을 집어 든 시메오네가 뚜껑을 비틀고, 맞은편에서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던 후안 비스카이노 모르실로가 손가락을 펴 하나하나 짚어갔다.
“우선, 다들 단체로 단기 기억 상실이라도 걸린 것 아닌가?”
“오래 담아두기엔 너무 바쁜 세상이긴 하지.”
“이런, 디에고! 그런 의미가 아니지 않나?”
“큭큭큭큭.”
“자네는 뭐가 그리 재미있나?”
웃음을 터뜨린 헤르만 부르고스가 손을 휘젓는다.
그러자, 한숨과 함께 고개를 가로저은 비스카이노는 다시 시선을 디에고 시메오네에게 가져가며 멈췄던 이야기를 재개했다. 그리곤 주장했다.
김다온의 출전은 매우 큰 낭비라고 말이다.
가뜩이나 그리즈만도 고집을 부리고 있다.
훌륭한 한 해를 보냈음에도 각종 수상에서 최종 후보에 들지 못하자, 로테이션을 거부하며 전 경기 출장에 관한 의지를 불태워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물론 선수가 자극을 받는 건 코치로서 환영할만한 일이었지만, 인간인 이상 적절한 휴식은 꼭 필요하다.
“이게 문제가 될 수도 있네.”
“……나도 알아.”
“그런데도 말인가?”
비스카이노의 모습에 시메오네는 자세를 고쳐 앉는다.
“이보게, 후안.”
“?”
“자네는 어땠나? 그리고 우리는 말이야.”
“뭐라고?”
비스카이노는 사라고사/아틀레티코 마드리드/바야돌리드와 같은 클럽에서 현역으로 뛰었었다. 또한, 스페인 대표로서도 15경기에 출전하기도 했었다.
크게 명성을 떨쳤던 것은 아니지만, 비스카이노는 성실한 미드필드로서 전성기를 아틀레티코에서 보냈다.
전형적인 피보테(Pivote/DM)로 활약하며, 1995/96 시즌에는 아틀레티코의 통산 9번째 라 리가 우승을 이끌기도 했었다.
당시 아틀레티코의 팬들은 매 경기 몸을 아끼지 않고 뛰어다녔던 비스카이노를 ‘Guerrero(전사)’라는 별명으로 부르며, 많은 애정을 보여줬다.
“내가 처음 아틀레티코에 합류했을 때, 사람들은 전부 자네에 대해서 말을 했지. 다리가 부러지더라도 뛰는 녀석이라고 말이야. 그리고 내게도 같은 것을 요구했어.”
“……그랬던 것도 같군.”
“큭큭큭. 그렇지 않나? 우리는 그때 참으로 혈기가 넘쳤지. 무엇보다, 우린 훌륭한 파트너였다고 생각하네.”
1990년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라 리가의 복병으로 평가를 받았었다.
실제로 이 기간 한 차례의 더블(1995/96)을 기록했고, 2년 연속 코파 델 레이(1990/91, 1991/92)에서 우승을 기록하는 등 좋은 성과를 이뤄냈다.
특히 더블을 이뤄냈던 시즌, 전형적인 이탈리아 방식의 인떼르디또레(DM)였던 시메오네와 스페인 방식의 피보테였던 비스카이노는 까다로운 조합이란 말을 들었었다.
두 사람 모두, 어마어마한 활동량과 불같은 성격을 모두 지녔었기 때문이다.
과거를 회상하던 디에고 시메오네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린다.
“알겠지만, 젊다는 건 아직 미숙하다는 증걸세. 그렇지만 동시에, 나이 든 이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 부상은 나도 걱정되지만, 체력적인 부분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네. 그들의 싱싱한 육체가 그것을 견디게 해줄 테니까. 마치, 당시의 우리처럼 말일세.”
“…….”
“오히려 내가 걱정하는 건, 정신적인 부분이야.”
“폼이 저하될 수도 있다는 뜻이로군.”
“그래. 둘 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니까.”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모든 경기에서 뛰길 원해왔던 건, 단순히 한 경기 한 경기에 걸린 막대한 보너스 때문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자신이 뛰지 않는 시합에서 팀이 패배하는 모습을 견딜 수 없었던 것뿐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흔히 승부욕이란 단어로 표현을 하지만, 정작 그것을 지닌 사람은 극소수이며 그들의 육체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곤 했다.
이러한 부류의 이들은 육체가 정신이 쉽게 지배되곤 했기에, 정신적 컨디션이 곧 폼 그 자체가 됐다.
“앙투안은 다온이 떠난 뒤에 계속해서 이 팀을 위해 줘야만 해. 반면 다온은 현재 팀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지. 그리고 난 감독으로서, 그들이 늘 최고의 상태로 피치에 나서도록 할 의무가 있어. 지금의 결정은, 이런 생각에서 비롯된 걸세.”
“……젊군.”
“그래. 미치도록 젊지.”
젊다는 평가가 김다온과 그리즈만을 향한 것으로 생각한 시메오네와는 달리, 비스카이노는 자신의 오랜 친구에게 이야기를 전한 것이었다.
여전히, 시메오네는 젊음의 패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새롭게 성장하는 어린 선수들과 교감하도록 만들고, 또 그들에게서 존경심을 유도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도 생각했다.
이제, 후안 비스카이노는 김다온의 선발 출전에 관한 걱정을 하지 않는다.
대신, 내일 알리안츠 아레나를 찾을 팬들이 그에게 쏟아부을 야유와 같은 것들이 걱정됐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디에고 시메오네는 김다온이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장담했다.
“무얼 걱정하나? 그는 이미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축구 클럽의 평판을 뛰어넘었다네. 배신감을 느끼는 일부 팬들이 다온에게 소리를 지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가 뮌헨에 해준 것들을 기억하며 박수를 보내올 거야.”
“확신하는 건가?”
“물론일세.”
“음-”
뮌헨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자신이 너무 걱정하고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후안 비스카이노는 창문에 희미하게 비친 실루엣을 확인하며 생각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보내온 시간과 경험이 비례한 겁을 지레짐작하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아틀레티코의 선수단을 태운 비행기가 뮌헨에 도착하기까진, 이제 겨우 한 시간 남짓이 남았을 뿐이었다.
***
80809 뮌헨, 독일. 슈피리돈-루이스-링 27. 뮌헤너 올림피아슈타디온(Munchener Olympiastadion. Spiridon-Louis-Ring 27. 80809 Munchen, Germany).
내게는 분명 익숙한 곳이었지만,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경험한 모든 것들은 새롭게 느껴졌다.
그것들은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사람들의 시선과 잘 꾸며진 미소로 우리를 맞이한 전용 버스 운전기사의 얼굴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도로로 접어든 이후에도, 나의 새로운 경험들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뮌헨에 3년 동안 살면서도 거의 가보지 않은 동네로 버스는 움직였고, 카루소베크의 집이 아닌 호텔에다 짐을 풀 땐 꿈을 꾸고 있는 거냐는 생각도 들었다.
어느새 말수가 부쩍 줄어든 내게로 온 코케와 뤼카가 농담을 걸어왔었는데, 난 그에 제대로 반응할 수 없었다.
“하나! 두울! 하나! 두울!”
“…….”
오늘 하루 아틀레티코가 훈련할 곳은,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뮌헨 올림픽 경기장이었다.
1972년 하계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건설이 되었으며, 1974년 FIFA 독일 월드컵 결승전이 치러지기도 한 장소다.
지금은 알리안츠 아레나에 밀려 축구 경기가 전혀 펼쳐지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긴 완벽한 컨디션을 자랑하고 있었다.
“여기가 정말 10년 동안 쓰이지 않았다고?”
“그렇다니까.”
“휘이~ 독일인들이란.”
흔한 편견에, 독일인들은 체계적이면서 성실하다.
오랫동안 쓰이지 않은 경기장이 당장 큰 이벤트를 치러도 될 만큼의 컨디션을 자랑하자, 잠깐 주위를 둘러보던 이들이 감탄을 내뱉었다.
본래라면 이곳은 외부인에게 개방되지 않는 장소였지만, 어째서인지 문은 활짝 열려 있다.
나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뮌헨이 이렇게까지 하는 진위가 궁금했다.
‘도대체가…….’
바이에른 뮌헨이 나의 출전을 요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순간부터, 모든 것들이 미스터리다.
“에-이!! 거기!!”
“이크! 가자!”
헤르만 부르고스의 커다란 목소리에, 근처에 있던 이들이 발걸음을 서둘러 옮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계속 주변을 둘러보던 나 또한, 발을 움직여 사람들의 곁으로 다가갔다.
5분 정도 주어졌던 휴식이 끝나고, 마저 남은 시간을 훈련으로 채운 우린 일정을 마친 후 호텔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한데, 바로 그때.
“투어라고요?”
“그래. 어차피 모처럼 이 역사적인 장소를 찾은 만큼, 투어도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지.”
“…….”
잠깐 보이지 않았던 시메오네가 우리의 앞에 나타나, 안에서 샤워를 마치고 뮌헨 올림픽 경기장을 둘러볼 기회를 가질 거라고 말을 했다.
이러한 것을 별로 선호하지 않았던 그리즈만과 같은 이들은 바로 한숨을 내쉬었지만, 대부분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원정이라는 게 대부분 공항-호텔-훈련장-호텔-경기장-공항으로만 채워지다 보니, 자신의 시간을 쪼개서는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들도 반기게 된다.
마치 학창 시절, 수업 대신 하는 모든 것들에 열성이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좋아! 다들 준비됐나?”
“젠장. 난 그냥 호텔로 가고 싶어.”
“나도.”
샤워를 끝마친 지금까지도 여전히 불만인 그리즈만과 고딘을 남겨두고, 가이드와 함께 움직이는 선수단을 뒤따르기 시작한 나는 내부를 천천히 관람했다.
폐장 이후 새롭게 꾸며진 복도의 벽면에는, 독일의 스포츠 역사가 고스란히 장식되어 있었다.
본래 올림픽 용도로 지어진 종합 경기장이니만큼, 축구 외에도 다양한 종목의 사진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특히 1972년 하계 올림픽은, 당시까지 분단상태였던 독일이 민주주의와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 주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대회였다.
실제로 공식 모토도 행복(Gluck)인 데다가, 엠블럼도 밝은 태양이었다.
마스코트 또한 닥스훈트를 모델로 삼은 왈디(Waldi)였는데, 올림픽 이후 전 세계적으로 반려동물로서 사랑받기 시작했다는 숨겨진 이야기도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뮌헨 올림픽은 이후, 1988년에 개최된 서울 올림픽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
“…….”
사람의 이목을 끄는 재주가 있던 가이드의 말에 어느새 완전히 빠져있던 아틀레티코의 동료들이, 서울이라는 말에 반응해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가이드가 어느 정도로 재주가 좋았냐면, 투어에 회의적이던 그리즈만과 고딘까지도 집중시키고 있었다.
오히려, 가장 집중하지 못했던 건 나다.
뮌헨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아영이와 많은 곳을 돌아다녔고, 이곳 올림픽 경기장에 대해서도 가이드가 설명하는 것만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잠깐 당황했던 것 같다.
“왜? 나는 다 알고 있었어. 난 뮌헨에서 살았거든!”
“하하하.”
“그래- 네 똥 굵다.”
“큭큭큭큭.”
잠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번진 이후, 사람들의 관심을 완전히 가져가는 것에 성공한 가이드가 내게만 특별히 알려주는 것이라며 한쪽을 가리켰다.
“차붐의 사진이 저쪽에 있어요.”
“오- 진짜요?”
“네. 원한다면 잠깐 사진을 찍고 오실래요?”
“그래도 되나요?”
“그럼요. 아무래도 당신에겐 이미 아는 지식보다, 그런 것들이 더 흥미를 끌 것 같네요. 따로 사람을 한 명 붙여 드릴 테니, 천천히 다녀와요.”
“Danke.”
“Bitte.”
친절한 미소의 가이드가 곁에 있던 남성을 내게 붙여 주었고, 나는 그의 안내에 따라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한적한 공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그곳엔.
[우와. 진짜네.]정말로 차범근 위원님의 사진이 있었다.
액자 아래쪽으로, 1980/81 시즌 DFB-포칼 우승 장면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찰칵-
찰칵-
휴대폰을 꺼내 들어 사진을 찍던 중,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곁에 있던 남성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화장실을 갔나 싶어 이곳에서 좀 더 기다리는 것을 택했다.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있던 차범근 감독님의 사진 주변으로, 독일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들의 모습이 있었다.
[프란츠 베켄바워]그리고 그중, 나는 가장 크고 가장 역동적인 베켄바워의 사진 앞에 멈춰 섰다.
“……왜?”
프란츠 베켄바워는 축구를 하는 수비수라면 모두가 존경할 수밖에 없는 선수였다. 수비수 최초 발롱도르 수상과 그가 이룩한 모든 업적이 그것을 증명한다.
동시에.
“그거 아나? 프란츠는 리베로의 창시자였네.”
“네. 그럼요.”
나는 지금 곁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화장실을 다녀온 가이드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속 사진에 시선을 둔 채, 내가 알고 있던 지식을 그에게 설명했다.
“자친토 파케티가 영감을 줬다고 했죠.”
“잘 알고 있군.”
“한때는 존경했으니까요.”
“하하. 완벽한 인간은 없는 법이지. 특히나 그것이 권력과 관계된 것이라면, 쉽게 타락할 수 있어.”
“응?”
잠깐, 이 목소리는?
순간 목소리가 익숙하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 나는, 화들짝 놀라 몸을 돌려세웠다.
그리고 이런 내 앞에 있던 건.
“H. Herr. 루메니게?
”칼레. 앞으론 그냥 칼레라고 부르게나.“
푸근한 미소와 함께 내게 자신을 현역 시절의 별명으로 부르라 말을 하는 바이에른 뮌헨의 회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