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698)
697화 Spater reden (8)
약 56시간 전, 디에고 시메오네는 무척 인상적인 대화를 듣게 되었다.
저 멀리 프랑스에서 온 이는 더 먼 나라에서 온 젊은이를 내내 이채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전달한 물건의 무게를 말했다.
물리적인 무게가 아닌, 정신적 그리고 상징적인 무게에 대해서 말이다.
[“지금부터, 당신이 볼 세계는 상당히 다를 겁니다.”]하지만 젊은이는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그거 두근대네요.”] [“……두렵지는 않나요?”]디에고 시메오네의 생각에, 프랑스에서 온 이는 도발을 하는 것 같았다.
해맑게 웃으며 감격하고 있는 젊은이를 시험에 본 것이다. 그리고 그건 아마, 프랑스에서 온 이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인 듯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젊은이는 여전히 환하게 웃는 채로 이렇게 대답했다.
[“두렵지 않은 순간은 단 하루도 없었어요.”] [“네?”] [“이곳은 매년 여름이 되면 모두가 출발선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하죠. 모든 영광은 1년짜리에요. 물론 기록이 남긴 하겠지만, 그게 오늘의 제가 어떠한 사람인지 전부 설명해 주지는 못해요. 그래서 저는 항상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도망치진 않을 겁니다. 전 맞서 싸울 거고, 매년 새롭게 생겨나는 영광을 쟁취할 겁니다. 내년도 내후년도, 그리고 10년 뒤에도 마찬가지로요.”]젊은이의 대답이 끝난 뒤, 프랑스에서 온 이는 비로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한 발 뒤로 물러서며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있는 방향을 돌아보았고, 단상 위에 놓여 있던 금빛 트로피를 들어 올려 젊은이에게 건네면서 이렇게 말했다.
[“다온. 당신은 프랑스 풋볼이 수여하는 2016 발롱도르가 되었습니다.”] [“메르시 보꾸.”]그리고 그건, 디에고 시메오네가 지금껏 살아오며 지켜봐 왔던 것 중 가장 특별한 장면이었다.
***
【58시간 전】
2016년 12월 10일. 28221 마드리드, 스페인. 마하라혼다. C. 세로 델 에스피노, s/n, 파벨론 2. 시우다드 데포르티바 완다 아틀레티코 데 마드리드.
평범한 날이 밝았다.
늘 같은 곳에서 떠오르는 태양도, 구름이 그리 많지 않은 하늘과 겨울 새벽 특유의 쌀쌀한 추위 역시, 마드리드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를 게 없었다.
모레 있을 비야레알 원정을 준비하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선수들 또한, 평소와 똑같은 하루를 시작했다.
하지만, 분명 뭔가가 달랐다.
“오늘이지?”
“응. 맞아.”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이를 바라보며, 코케는 무척 놀랍다고 생각했다. 만약 자신이었다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해 퀭한 눈으로 클럽하우스를 찾았을 것이다.
한데 눈앞의 사내는 마치, [“오늘 해가 동쪽에서 떴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참지 못한 코케가 질문을 던진다.
“떨리지 않아?”
“글쎄, 잘 모르겠어.”
“그래?”
“응. 사실, 아직 실감이 잘 나질 않거든.”
“…….”
그럴 법도 했다.
많은 축구선수가 같은 상황에서 같은 심정이었을 거다.
그러나 코케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빌려줬던 걸 받는 것 같잖아.’
하루 전, 프랑스의 대표적인 축구 관련 미디어 두 곳이 이곳 클럽하우스를 찾았다.
그들은 클럽의 관계자들을 만났고, 일정이 진행될 장소를 먼저 스케치했다.
그리고 그것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이들이 일에 집중할 수 없도록 했고, 그로 인해 관리자들이 큰 목소리를 내질러야 했다.
하나, 그들도 크리스마스를 앞둔 소년처럼 들떠 있는 사내들을 이해하고는 있었다.
“그럼, 먼저 가 볼게.”
“응. 웨이트를 하는 거야?”
“물론. 같이 할래?”
“아니. 난 사절할래. 저번에 너랑 하다가 어깨가 빠지는 줄 알았다고.”
“큭큭큭. 그럼, 이따가 봐.”
“그래.”
어깨를 두드린 이가 마사지실을 빠져나가고, 고개를 잠깐 돌렸었던 코케가 다시 앞으로 시선을 가져가며 자신의 다리 근육을 풀어 주는 이를 향해서 말했다.
“믿겨져요?”
“하하. 그러게.”
“저였다면 잔뜩 으쓱했을 거라고요. 평생 한 번도 얻기 힘든 기회인데, 이럴 때가 아니라면 언제 또 그러겠어요?”
“뭐.”
“네?”
“이렇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
코케를 포함한 일부 아틀레티코 선수들을 전담하는 이니고 브리오네스(Inigo Briones)는 이런 의견을 제시했다.
“저 친구는 마지막이 아니라 생각할 수도 있지.”
“…….”
“왜 그 말 있잖아. NBA의 르브론 제임스가 했던 말. Not one, Not two, Not three, Not Four? 거기까지 셌었던가? 아무튼, 그래서 덤덤한 걸 수도 있어.”
“……하-!”
어처구니없음에, 코케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렇지만 이내, 아틀레티코의 유능한 미드필드는 이니고 브리오네스의 말이 제법 그럴듯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니, 외에는 달리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레알 마드리드조차 탐을 내는 유능한 피지션은, 마사지 실력뿐 아니라 관찰력도 못지않게 뛰어났다.
‘겨우, 시작일 뿐이란 걸까?’
지금까지 곁에서 지켜봐 온 성향을 종합해 보면, 그가 이번 일을 시작점으로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당연히 기쁘고 영광스럽긴 하겠으나, 앞으로 나아가려는 발걸음을 멈추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쉼표가 될 수는 있어도, 마침표는 절대 아니란 거다.
“저 녀석의 배짱이 얼마나 큰지 상상도 안 가요.”
“왜 아니겠어.”
“…….”
타고난 본성 자체가 팀 플레이어였던 코케는 항상, 축구선수로서 거둘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성공은 챔피언스리그와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것이라고 여겨 왔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고 대다수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만, 성공의 방법은 여러 가지인지도 모른다.
잠깐 발롱도르를 수상하는 자신과 그것이 꽤 자주 이어지는 미래를 그려 보려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보컬 리더는, 자신은 절대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선택받은 사람인가?’
자신은 바라볼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이가, 아주 조금이지만 부러운 코케였다.
‘……2시간.’
두 시간 뒤, 새로운 역사가 이곳에서 시작될 예정이었다.
***
【2시간 뒤】
“어때? 괜찮아?”
“그러엄~ 누구 남편인데.”
“하하. 자기도 지금 너무 예뻐.”
“지금만?”
“아니. 매일 매시 매분 매초 예쁘지.”
여전히 날 두근거리게 만드는 미소를 피워올린 아영이가 내 목에 손을 둘러 왔다. 난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에 손을 얹었고, 우린 곧 진한 입맞춤을 했다.
그러곤 한동안 가만히 끌어안고 있었다.
“자기는 진짜 대단한 사람이야.”
“혼자서 한 것도 아닌데, 뭐.”
“아니야. 다 자기가 잘해서야.”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과거에 나는 혼자서 상상하다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룬 적이 있었다. 당시 머릿속 세계에서, 난 발롱도르를 들어 올렸었다.
그래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게 있어 발롱도르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오르는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약간 터무니없이 느껴지는 것도 있어, 되도록 자주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다.
그런데.
똑똑똑-
딸깍-
노크 소리 후 닫혀있던 문이 열리고, 아틀레티코의 기술 이사 안드레아 베르타가 미소와 함께 모습을 비췄다.
그도 오늘, 잘 빼입고 왔다.
클럽하우스에서는 보통 편안한 폴로셔츠에 청바지 차림이거나 셔츠에 면바지를 입었는데, 오늘은 한눈에 보기에도 근사한 수트를 착용했다.
그것을 보자마자 난 짓궂은 농담을 던지고 싶어졌지만, 나 역시 다를 것 없어 포기하기로 했다.
오늘은 나도, 아영이가 한 달 전부터 정성을 들여 고르고 고른 검은색 수트를 입었다.
“이런-! 그렇게 입으니 완전히 모델인데?”
“하하. 괜찮아 보이나요?”
“당장 런웨이에 서도 되겠어.”
“네- 하지만 제 첫 번째 런웨이 무대는 이미 결정되었어요.”
“응??”
잠깐 의아한 표정을 지었던 베르타가 곁으로 온 아영을 보자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 스페인의 패션잡지 메인을 장식하기도 했던 아영이는 조금씩 명성을 쌓아 가는 중이었고, 한복/고려자기/자개 등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도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몇 달 전 나를 취재했던 하이미 폰즈가 소개한 셀럽들이 아영이의 옷을 입고 다녔고, 시메오네는 아예 가족과 친척 전체에게 옷을 맞춰 주기도 했다.
그리고 언젠가 아영이의 고유한 디자인과 브랜드로 런웨이를 열게 되었을 때, 난 그 무대에 서기로 했다.
금방 베르타에게 첫 번째 런웨이 무대가 결정되어 있다고 말한 건, 바로 이런 의미다.
“이거야 원. 정말이지, 선남선녀가 따로 없군요.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마담.”
“영광이에요. 감사해요.”
“하하. 그럼, 가실까요?”
“자기 먼저 가야지.”
“응.”
조금 전 아영이가 마담이라는 단어를 받아들이는 것을 보며, 난 그녀가 어지간히 노력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 마담이란 단어를 들었을 땐, 닭살 돋아 하며 질색을 했었다.
한국에서 마담이라는 단어가 워낙 좋지 않은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고, 영어권에서도 부정적인 인식이 큰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패션업계에서는 마담이 조금 더 일상적으로 쓰였는데, 기혼인 아영이는 늘 [“Madam Young”]으로 불렸다.
내 익살맞은 표정의 의미를 이해한 아영이가 등을 떠밀었고, 그렇게 대기하던 곳에서 나선 나는 바로 카메라를 가져다 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오늘 내 발롱도르 수상 장면은, 프랑스의 ‘레퀴프’가 촬영해 방송할 예정이다.
촬영을 위해 인원들을 모두 비워 둔 클럽하우스 내부를 걸으며, 난 미리 확인한 동선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안내 데스크와 곁에 놓인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를 지나 두 개의 문을 통과한 후, 주로 방문객들이 기다리는 곳을 통과하여 앞쪽 닫혀 있는 문 앞에 섰다.
본래 여기는 빈 사무실이었지만, 발롱도르 수상 사실을 전해 들은 후 클럽에서 바삐 개보수했다.
“후우~”
크게 한번 심호흡을 한 후, 난 뒤에 있는 아영이를 돌아봤다. 그러자 베르타가 슬쩍 옆으로 빠져 준다.
“사랑해. 알지?”
“나도 사랑해.”
“하하.”
몸을 돌려 다시 정면을 바라보고, 양손을 올려 수트의 매무새를 정리했다. 그러곤 올렸던 손을 자연스럽게 내리며, 문고리를 돌렸다.
딸깍-
그렇게 안으로 들어서자, 붉은색 단상 위에 놓인 금색 구체가 눈에 들어왔다.
“…….”
뭐랄까.
여전히 난 조금 담담하다.
안드레아 베르타의 노크로 끊겼던 생각을 이어 가서 말하는 건데, 상상만으로도 벅차고 터무니없이 느껴졌던 것이 가까이 오게 되자 되레 초연(超然)함을 느꼈다.
감정이 벅차오르고 무척 기뻤지만, 한편으론 두렵고 떨리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렇게 플러스와 마이너스 감정이 뒤섞인 결과, 난 들뜨지도 그렇다고 가라앉지도 않은 상태가 되었다.
오히려 좋은 거라고 봐야 할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
사무실 안에는 촬영 스태프를 포함, 아틀레티코의 사람들 역시 자리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나와 함께 있었던 아영이와 베르타도 다른 쪽의 문을 통해 조용히 입장했다.
잠깐 발을 멈췄던 나는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고, 리허설 했던 것에 따라 움직였다.
단상과 조금 떨어진 곳엔, 과거 날 메인모델로 삼아 발간했었던 ‘France Football Magazine’이 놓여 있었다.
사진만으로도, 어떤 날인지를 기억한다.
첫 번째의 것은 SL 벤피카에서 유로파 우승을 거두고 난 직후의 사진이었다. 그리고 그 옆엔, 지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끝난 후의 내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이런.’
미국 언론에 의해 ‘THE CELEBRATION’으로 박제되어 버린 모습이 있었다.
아직 발간되진 않은 것으로,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발롱도르 발표가 끝나고 이틀 뒤에 판매될 것이라고 했다. 이례적으로, 나와 관련된 기사들이 절반을 채웠다고도 했다.
그리고 저 셀레브레이션 장면을 표지로 삼은 건, 저것이 무척 상징적이기 때문이랬다.
요나스는 그것을 이렇게 요약했다.
[“복합적이니까.”]옛 친정팀을 향한 셀레브레이션. 하지만 그것은 내게 인종차별 발언을 했었던 다비데 안첼로티를 향한 것이었다. 그리고 보태어, 잠머의 폭로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뒤엉키며, 현재 저 셀레브레이션은 조금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복잡한 축구 정치와 차별을 뛰어넘어, 오직 축구만으로 정상에 오른 인간승리와도 같은 장면이라고 말이다.
개인적으론 끼워 맞추기라 생각하고 발롱도르를 수상한 결정적 이유는 마드리드 더비였지만, 미디어들은 늘 기발한 방식으로 나를 놀라게 했다.
가장 오래 시선을 두었던 세 번째 잡지에서 시선을 뗀 후, 난 마침내 바닥에 표시가 돼 있는 장소로 걸어갔다.
그러자 반대편에서, 안경을 쓴 한 중년 남성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저 남자가 바로, 매년 발롱도르를 ‘France Football’에서 시상식 장소로 운반해 온 디렉터 파스칼 페레다.
“봉쥬흐.”
“봉수와흐.”
[프랑스어를 할 줄 압니까?] [어…… 조금요?]내 대답에 어깨를 가볍게 으쓱인 파스칼 페레가 한 발 앞으로 다가오며 언어를 바꿨다.
그의 입에서 나온 건 영어였다.
“지금부터, 당신이 볼 세계는 상당히 다를 겁니다.”
“하하. 그거 두근대네요.”
“…….”
“?”
파스칼 페레의 눈이 살짝 가늘어지는 것을 보며, 나는 뭔가 실수를 한 것인 아닌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하지만 난 그냥 대답한 것뿐이다.
실수 따위는 전혀…….
“두렵지는 않나요?”
아, 이거였구나.
페레는 그냥 궁금한 것 같았다.
내가, 자신이 멀리에서 직접 가져온 발롱도르를 가져갈 자격이 있는지 말이다.
수상 순간에도 시험을 받아야 한다니.
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저기에서 내 손에 전해져 올 저 녀석은, 지독하게 내게로 오는 것을 거부했었으니까.
그래서 난, 환하게 웃는 모습 그대로 대답했다.
“두렵지 않은 순간은 단 하루도 없었어요.”
“네?”
의아한 표정을 짓는 파스칼 페레를 향해, 나는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감정을 전했다. 거기에 거짓은 하나도 없었으며, 단어 하나하나에 진솔한 마음을 담았다.
그렇게 내 이야기가 모두 끝나자, 파스칼 페레는 의심하는 눈빛을 지우고 비로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잠깐 뒤로 한발 물러나, 단상 위에 놓여져 있던 발롱도르를 들어 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오랜 시간 기다려 온, 바로 그 말을.
“다온. 당신은 프랑스 풋볼이 수여하는 2016 발롱도르가 되었습니다.”
***
삑-! 삐?익! 삐—익!!
.
.
2016년 12월 12일. 12540 카스테요, 스페인. 까레르 블라스코 이바네즈, 2, 비야-레알. 에스타디오 엘 마드리갈(Estadio el Madrigal. Carrer Blasco Ibanez, 2, Villa-real. 12540 Castello, Spain).
.경기 종료(La Liga 15R)
비야 레알 2 : 2 아틀레티코
[골] 앙투안 그리즈만 : 후반 43분(김다온)김다온 : 후반 46분(F.K)
경기가 종료되는 휘슬이 울려 퍼진 순간, 비야레알의 선수들이 저마다 좌절하며 피치 위에 드러누웠다.
그런 이들 대부분은 반쯤 넋이 나간 상태였다.
“행운의 여신이 자네를 많이 돕는군.”
“그럴 수도.”
“다음에 또 보지.”
“그래.”
씁쓸함을 감추지 못고 있는 비야레알의 감독 프란 에스크리바(Fran Escriba)와 악수를 교환한 후, 디에고 시메오네는 복도르 들어서는 대신 피치를 향해 걸어가는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걷는 내내, 그는 생각했다.
‘이건 본래 져야 하는 경기였어.’
가끔 이런 날이 있다.
비야 레알과의 리그 15라운드 경기처럼, 하나에서 열까지 온통 악재밖에 없는 날 말이다.
경기 시작 후 1분도 채 되지 않아, 필리페 루이스가 허벅지 근육이 파열되어 밖으로 실려 나갔다. 검진 결과, 시즌 전체를 결장해야 하는 큰 부상이었다.
그리고 전반 30분, 이번에는 대체 불가능한 골키퍼 얀 오블락이 점프 후 떨어지며 어깨가 탈구됐다.
필리페 루이스처럼 시즌 아웃 부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최소 두 달 이상은 뛸 수 없었다.
그렇게 하프타임이 되기도 전에 두 장의 교체 카드가 쓰이고,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실책이 겹치며 비야레알에 연이어 실점을 허락하고 말았다.
0:2가 된 상태에서 라커룸에 들어섰을 때, 시메오네는 사실상 경기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어떠한 펩 토크로도 사라져 버린 전의를 되찾아오는 게 불가능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데 갑자기.
[“저, 디에고?”] [“응?”] [“저를 왼쪽 풀백에서 뛰게 해 주세요.”] [“뭐라고?”]하프타임 토크를 끝내고 고심에 빠져 있는 자신에게 다가온 김다온이 포지션 변화를 요구했다.
자신을 왼쪽 풀백으로 내리는 대신, 뤼카 에르난데스를 미드필드로 올려 달라고 말이다.
[“실점을 더 하지 않으면, 기회가 올 거예요.”] [“하지만 공격은 어쩌나?”] [“Vamos, Diego. 우리는 역습을 하는 팀이잖아요. 뤼카의 스피드가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만약 전반전 교체 카드를 쓰지 않았다면, 디에고 시메오네는 김다온의 요청을 진지하게 고려해 봤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도록 했다.
실망스럽지만 받아들이겠다는 김다온이 돌아선 이후, 후반전을 지켜보는 내내 시메오네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의 요청을 받아들였어야 했던 것 아닐까?
다른 사람도 아닌 김다온이다.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뤼카 에르난데스는 후반전 내내 불안한 멘탈을 여과 없이 드러냈고, 비야레알의 공격수 니콜라 산소네(Nicola Sansone)의 슈팅이 골대를 맞은 후 마침내 시메오네는 결정을 내렸다.
0:2로 패배하나 그 이상으로 패배하나, 어차피 이 시점에서 뼈아프기는 마찬가지라고 말이다.
스페인 라 리가는 골득실이 아닌 승자 우선으로 순위를 결정하기에, 득실에 관한 부담은 크지 않았다.
다만, 디에고 시메오네는 뤼카 에르난데스를 앞으로 보내는 대신에 야닉 카라스코를 출전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교체되어 빠져나온 건, 단점이 잔뜩 노출되고 있던 스테판 사비치였다. 대신 뤼카 에르난데스가 센터백으로 갔고, 김다온은 본인이 원한 왼쪽 풀백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후반 26분.
시간이 촉박했다.
‘자네는 정말 두려움이 없군, 그래.’
풀백 위치로 들어선 후, 김다온은 불안했던 아틀레티코의 수비를 빠르게 안정시켰다.
아틀레티코의 진영을 제집처럼 휘젓고 다니던 조나단 도스 산토스(Jonathan Dos Santos)의 목에 줄을 채웠고, 전반 42분 경고를 받았던 산소네의 퇴장을 끌어냈다.
후반 36분 숫자의 우위를 점한 순간 김다온은 본격적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 갔고, 후반 43분 왼쪽 하프스페이스 30m 지점에서 절묘한 패스를 박스 안으로 보냈다.
그리고 그것은 유일하게 패스에 반응을 했던 앙투안 그리즈만에게로 이어져 만회골이 되었다.
1:2.
피치가 갑자기 뜨거워지고, 예기치 않은 동료들의 부상 이탈로 흔들렸던 아틀레티코는 본래의 강한 모습을 되찾았다.
그러다 페널티박스 밖 28m 정도 되는 지점에서 브루노 소리아노(Bruno Soriano)가 핸드볼을 범했고, 김다온은 주어진 프리킥을 그대로 득점으로 연결했다.
다 잡았던 승점 3점을 눈앞에서 빼앗겨 버린 비야레알은 이후에도 계속 일방적으로 밀리기만 했다.
‘오직 자네만이…….’
영락없이 패배할 것이라 예상되었던 경기에서, 오직 김다온만이 끝까지 승리의 가능성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앞에 우뚝 선 거대한 그림자와 맞서 싸웠다.
집어삼켜지지 않았던 그는 홀로 빛을 뿜어댔고, 마지막 프리킥 슈팅은 말 그대로 발롱도르(Ballon d`or/금빛 공)였다.
‘대단하군. 자네는 정말, 대단해.’
12일 오전 9시, ‘France Football’은 그들의 홈페이지를 통해 김다온의 발롱도르 수상 사실을 전 세계에 알렸다.
그런데 그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 김다온은 자신이 왜 그것을 받을 수 있었는지를 오늘 경기를 지켜본 모든 이들에게 입증해 보였다.
지금도 어딘가에선, 후반전 막바지 김다온의 플레이에 놀란 기자들이 열심히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두 손을 들어 올린 디에고 시메오네가, 다시 한번 2016 발롱도르 수상자를 향한 박수를 보낸다.
오직 그만이, 자격을 갖췄다고 생각하면서.
발롱도르는 마침내, 새 주인을 찾았다.
***
【53시간 전】
마드리드 상공(Over Madrid).
아틀레티코의 클럽하우스를 떠난 파스칼 페레는 스태프들과 함께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는 현재, 긴 침묵에 빠져 있었다.
이런 파스칼 페레의 머릿속에선, 비행기에 올라타기 전에 장-끌로드 브루뉴와 나눈 대화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놀라운 친구입니다.”] [- 그런가?] [“메시나 호날두보다도 기품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제대로 된 수상자를 찾은 겁니다, 쟝. 우리의 선택은 전혀 틀리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가 아니면 안 될 뻔했습니다.”] [- 하하. 설마 반해 버린 건가?] [“…….”]브루뉴의 질문에 침묵했었지만, 파스칼 페레는 그런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다.
아니, 이번에도 브루뉴가 옳았다.
자신은 그에게 반해 버렸다.
[- 잘 듣게. 어제도 말했지만, 이제부터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 거야. 그리고 지금부터 이어질 이야기는, 우리가 다온에게 발롱도르를 수상함으로써 생겨난 것들이겠지. 나는 그것을 후일담이라 부르고 싶어.] [“후일담이라고요?”] [- 그러하네.]과거 유능했던 기자답게, ‘France Football’의 수장은 곧바로 새로운 시선들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것은 늘 색다른 시각을 갖춰야 하는 언론인에겐 중요한 부분이다.
이번 발롱도르 수상은 분명 굉장한 후일담을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브루뉴는 그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김다온 그 자체를 주목하자고 했다.
[“다음 기사도 이렇게 나가는 게 좋겠어. 앞으로 이어질 다온의 후일담을 계속해서 기대한다고 말이야. 22살. 풀백. 동양인. 하나같이 편견에 휩싸일 수밖에 없지만, 오히려 상품으로 만들기엔 더 훌륭하지 않나?”]김다온은 결국 자신을 향한 편견 대부분을 벗겨냈다. 물론 여전히 이 세계에는 그를 비난할 사람들이 있을 거다.
신이라도 저주할 그런 부류들 말이다.
하지만 이제 그 누구도, 김다온이 축구선수로서 훌륭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거다.
발롱도르가 지닌 의미란 그런 것이니까 말이다.
‘궁금하군.’
숨을 내어 쉬며 창밖을 바라본 파스칼 페레는 궁금증을 머릿속에 띄운다.
과연 김다온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발롱도르를 받게 될까?
‘틀림없이 하나로 끝은 아니겠지.’
젊은 축구선수의 미래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파스칼 페레는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지켜보기로 한다.
짧은 비행 내내, 페레는 줄곧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작가의 말 ? 어, 전개상 잠깐 연재 횟수 조절입니다.
대신 내일 두 편 올라갑니다.
발롱도르 수상으로 인한 주변 반응은, 다음 에피소드를 이어 가며 곁가지처럼 다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