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737)
737화 Eleccion y enfoque (3)
.전반 37분
아틀레티코 2 : 0 레스터
{“이예에에에에에-!!!!”}
{“알레띠이-!!!”}
말 그대로 순식간에 이뤄졌던 아틀레티코의 역습 공격이 그리즈만의 마무리로 이어져 레스터 시티의 골문을 가른 순간, 알제리 출신의 공격수 리야드 마레즈는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전반 10분 실점을 허락한 후, 즉각적인 반격에 나선 레스터 시티는 약 8분 동안 아틀레티코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리야드 마레즈는 김다온을 피치에 넘어뜨리는 보기 드문 장면을 연출했었다.
페널티 박스 모서리 부근에서 슈팅을 가져가는 척하며 크루이프 턴으로 페인팅을 주었을 때, 반응하려던 김다온의 발이 살짝 미끄러지며 무릎을 꿇은 것이다.
당시 경기를 중계하던 이안 다크는 [“메시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라며 탄성을 내뱉었고, 미국 CBS의 데릭 셰퍼드 역시 [“마레즈의 커리어에 기록될 장면.”]이라고 말하며 유려했던 드리블을 극찬했다.
그런데 얼마 후, 무릎을 털고 일어선 김다온이 리야드 마레즈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워 오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그냥 미끄러진 거거든?”]드리블에 속아 넘어갔던 수비수 중 상당수가 해 왔던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자신감을 일정 부분 회복했던 리야드 마레즈는 콧방귀를 뀌며 이렇게 답을 했다.
[“하-! 그래. 그렇다고 치자.”] [“진짜라니까?”] [“오~ 그래. 그러셔? 알겠다니까?”] [“We`ll See.”] [“그러든가.”]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리야드 마레즈는 그때 조금 더 진지하게 김다온의 이야기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빌어먹을.’
짧은 신경전이 오간 이후, 리야드 마레즈는 단 한 차례도 김다온을 뚫어 낼 수가 없었다. 드리블로 전진은커녕,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나아가는 것조차도 힘이 들었다.
보통은 자신이 선택지를 제시하고 수비수들이 답을 택하는 쪽이었는데, 김다온은 그것이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선택지를 강요받는 느낌이었다.
‘그럴 리 없어.’
삐?익!!
고개를 가로저으며 하나의 가정을 부정한 리야드 마레즈가 손을 들어 올려 다시 패스를 받아든다.
“리야드!! 서둘지 마!!”
주변에서 들려오는 서둘지 말란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이미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해 버린 레스터 시티의 윙어는 귀를 닫은 채로 다시 드리블을 시작했다.
현재 김다온은, 리야드 마레즈를 상대하는 많은 수비수가 그러하듯 가깝게 밀착하여 거리를 유지 중이다.
다비드 실바와 더불어 PL에서 가장 기술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지닌 선수답게, 리야드 마레즈의 플레이 존(Play Zone)은 전 세계를 통틀어서도 가장 좁은 축에 속한다.
그리고 이런 플레이 존 덕분에, 마레즈는 다음 동작을 가져감에 있어 수비수보다 늘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공격수가 먼저 능동적으로 움직이면, 수비수는 그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게 일반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내 선택이야!’
김다온의 무릎에 시선을 고정한 리야드 마레즈가 무게중심이 쏠린 것을 확인한 후, 페널티 박스가 있는 안쪽으로 파고드는 방법을 택한다.
그러기 위해 마레즈는 상체를 흔들어 안쪽으로 한 차례 속임수 동작을 가져갔고, 많은 연습으로 몸에 익은 동작으로 이어 가며 축구공을 왼발 앞으로 차 넣었다.
그러나.
탁-!
‘또??’
이번에도 김다온은 리야드 마레즈가 제시한 문제의 해답을 너무나도 쉽게 풀어 버리고 말았다.
다시 한번, 그렇게 볼은 아틀레티코로 넘어간다.
.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 – Sky Sports Italy 펀딧
“Che Bello(멋집니다)!! 지금은 진짜로 좋은 수비예요!! 그리고 기술적으로도 많은 것들이 복합된 수비 장면입니다! 이런, 맙소사! 가면 갈수록 더 좋은 수비가 나오네요!”
(파비오 카레싸) – Sky Sports Italy 코멘테이터
“다온의 수비 실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습니다만, 당신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
“다온은 보는 재미가 있는 수비수입니다. 공격에 나설 때를 말하는 게 아니라, 수비 임무를 소화할 때도 시선을 뗄 수 없도록 합니다. 그런 점은 마치 파비오 같기도 해요. 파비오도 다온처럼 겁이 없었죠. 그건 자신의 신체적 능력과 기술에 대한 확신 없인 불가능한 일입니다.”
(파비오 카레싸)
“실제로 다온과 칸나바로는 한때 비교가 됐었죠.”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
“네. 정말로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저는 아까부터 몇 번이나 다온과 리야드가 상대하는 장면을 유심히 지켜봤었죠. 파비오가 자신의 운동 능력을 먼저 믿고 저돌적으로 돌진한다면, 다온은 피치 위에서 기술을 먼저 보여 줍니다. 그런 다음에 자신의 우월한 신체로 공격수를 제압하죠. 느린 장면 없이 설명하기 조금 힘들지만, 지금도 보면 다온은 마레즈가 왼쪽으로 뛰도록 유도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모를 수도 있겠지만, 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파비오 카레싸)
“유도했다고요? 어떻게요?”
.
.
(로베르 피레스) – BeIN Sports 프랑스 해설
“많은 공격수가 수비수의 무릎을 보도록 교육을 받습니다. 그게 상대의 반응을 예측할 수 있도록 도우니까요.”
(쟝-위브 베헝) – BeIN Sports 프랑스 코멘테이터
“지금 이 수비 장면에 이토록 많은 관심이 가는 이유는 마레즈가 다온을 한 차례 넘어뜨렸기 때문이겠죠. 그런 뒤에 다온이 마레즈를 향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그때부터, 다온이 마레즈를 완전히 묶어 놓고 있습니다.”
(로베르 피레스)
“맞습니다. 어쨌든 제가 이야기하려는 건, 분명 마레즈가 보기에 다온은 골라인 방향으로 달릴 준비를 한 것처럼 보였을 겁니다. 그렇기에 저토록 확신을 품고 안쪽으로 볼을 찬 것이죠. 하지만 그것을 다온이 속임수로 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신이 무게중심을 안쪽으로 두면 마레즈가 대각선으로 뛰어들 것으로 생각했겠죠. 이건 진짜 놀라운 수비기술이에요. 심리적으로 상대가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수비였습니다. 만약 제가 마레즈였다면, 지금쯤 완전히 혼란에 빠졌을 겁니다. 확실해요.”
.
인버티드 윙어 혹은 측면에 서는 전진형 플레이메이커의 선두주자였다고 말할 수 있는 로베르 피레스(Robert Pires)가 말한 대로, 현재 리야드 마레즈는 혼란에 빠져 있었다.
네 차례 연속 1:1 상황에서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볼을 빼앗기자, 자신의 플레이에 대한 의구심이 생겨난 것이다.
처음 한두 차례는 상대에게 운이 따라 줬다고 생각을 했었지만, 이젠 김다온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은 아닌지라는 헛된 망상도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네 말이 맞아.”
“뭐??”
눈에 띄게 흔들리는 리야드 마레즈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는 김다온의 한마디가 이어졌다.
“I can see your mind, mate.”
“…….”
“한번 시험해 볼래?”
“…….”
너무나도 정확한 타이밍에 허를 찔러 들어오자, 마레즈는 멍한 표정이 되어 그대로 굳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가까스로 몸을 움직여 보지만, 이는 바로 실수로 이어진다.
자신에게 온 평범한 패스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해, 사이드라인으로 볼을 흘리고 만 것이다.
그와 동시에 비센테 칼데론에서는 조롱과 야유가 일제히 쏟아졌고, 이는 사실상 결정적인 한 방이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복잡해지기를 반복하기 시작한 리야드 마레즈는, 단점을 모두 상쇄할 만큼 압도적인 장점이었던 기술을 상실해 버렸다.
마레즈는 일반적으로 기술이 뛰어난 선수들이 가진 다른 장점인 오프 더 볼과 전술 이해, 템포 조절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
결국 전반전 남은 시간 리야드 마레즈는 무색무취한 선수가 되어 버렸고, 그렇게 공격의 한 축을 잃어버린 레스터 시티는 아틀레티코에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게 되었다.
그렇게 왼쪽 측면에서 다시 자유를 되찾은 김다온 또한, 한층 수월하게 페널티 박스 근처까지 올라섰다.
“헤-이!! 저기야!!”
포스트 플레이를 통해 수비를 등진 페르난도 토레스의 패스가 김다온에게로 향한 순간, 로베르트 후트가 소리를 질렀으나 근처에서 달려들 동료는 보이지 않았다.
계속되는 공세에 레스터의 중앙 미드필드 역시 박스 안까지 후퇴한 상태였고, 마레즈가 도왔어야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는 수비 가담 상태가 아니었다.
뒤늦게 대니 심슨이 달려들고자 하지만, 이미 준비를 마친 김다온의 오른발은 슈팅을 연결한다.
퍽-!!
강력한 파열음과 함께 축구공이 빠르게 레스터 시티의 골문으로 향하고, 선 위치와 가까운 쪽 포스트로 온 슈팅임에도 슈마이켈이 할 수 있었던 최선은 간신히 손을 뻗는 것 정도였다.
말 그대로 눈 깜빡할 사이에 축구공이 골대 바로 앞까지 왔기 때문이다.
한술 더 떠, 김다온의 슈팅은 골대와 가까워지면서 급격히 피치로 떨어져 내렸다.
파악-!!
“익-!”
아버지로부터 훌륭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들답게, 슈마이켈은 어려운 와중에서도 어떻게든 장갑 낀 손바닥을 축구공에 가져가는 것에 성공한다.
팡-!!
손바닥 전체가 울리는 감촉과 함께 축구공이 앞으로 튀어 나갔고, 슈팅을 막았다는 생각에 기뻐하려는 찰나 앞쪽에서 달려오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조금 전 김다온에게 패스를 보낸 후, 기본기에 충실해 쇄도할 준비를 했던 토레스가 세컨볼 다툼에 뛰어든 것이다.
쿵-!
황급히 날렸던 몸이 피치에 떨어진 직후, 슈마이켈이 재빨리 일어나려고 하지만 그러기엔 주어진 시간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흐르는 볼에 페르난도 토레스가 가볍게 발끝을 가져가고, 축구공은 그대로 다시 레스터 시티의 골문에 박힌다.
{“—!!!!”}
{“–!!!!”}
다시 한번 크게 달아오르는 비센테 칼데론에서 커다란 함성이 들려오고, 챔피언스 리그 8강전에서 전반전에만 세 골을 허락한 레스터 시티의 선수들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어정쩡한 자세 그대로 무릎을 꿇게 된 캐스퍼 슈마이켈은, 억울하다는 듯한 얼굴이 되어 불끈 쥔 주먹으로 피치를 강하게 두들겼다.
“FUCK!!!!!”
많은 이들이 예상했던 혹은 우려한 대로 흘러가고 있는 오늘의 경기. 그들이 가장 믿었던 바레지의 한 축이 무너진 지금, 레스터의 회생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더 우울한 건.
.
(이안 다크) – BT Sports 코멘테이터
“This is. Absolutely Cruel Game.”
.
이 잔혹한 경기가 아직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
삐?익!!
.
.
.후반 14분
아틀레티코 3 : 0 레스터
(데릭 셰퍼드) – 미국 CBS 아나운서
“Another Daonish Game Here. 전반 한 차례 멋진 장면을 만들었던 리야드 마레즈입니다만, 결국 이후 혹독한 시간만을 보내다 이렇게 교체가 되어 버리고 마는군요.”
.
리야드 마레즈를 피치 밖으로 쫓아 버리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전반전 때 넘어진 것에 대한 상처는 아직도 치료되지 않은 상태다.
그 장면이 영원히 박제될 것을 생각할 때마다, 절로 어금니가 꽉 다물어졌기 때문이다.
‘진짜 발이 걸린 거였어.’
물론 백번 양보했을 때, 마레즈의 크루이프 턴을 예측하지 못했던 것은 맞다. 난 신이 아니었고, 경기에서 몇 번씩 예상이 빗나가곤 한다.
그리고 그것은 때때로 위기를 가져오려고 하지만, 재빨리 리커버리에 들어가 문제를 수습했다.
한데, 아까는 내 발끼리 부딪쳤다.
재빨리 몸의 방향을 바꿔 움직이기 위해 서두르다 보니, 엉뚱한 곳에서 발이 걸려 버린 것이다.
수비수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공격수가 잘한 일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만약 발이 걸리지 않았다면 재빠르게 마레즈에게 달라붙어 볼을 걷어 낼 수 있었을 거다.
그랬다면 나빠도 코너킥, 십중팔구는 스로인으로 이어졌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건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고, 마레즈의 하이라이트 필름 속 넘어지는 선수로 박제되어 버린 게 현실에서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다.
그랬기에, 난 좀 더 복수하길 원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끝이다.
.
(스태브 맥매너먼) – BT Sports 컬러-코멘테이터
“지금까지 이 경기를 지켜본 PL의 팬들이라면, 꽤 커다란 충격을 받았을 겁니다. 물론 다온은 세계적인 선수죠. 하지만, PL에서 뛰어 보지 않았습니다. 맨시티로의 이적이 발표된 후 사람들이 궁금해한 것도 바로 이것이죠. 과연 다온이 PL의 정상급 윙어를 상대로도 비슷한 수준의 플레이를 펼칠 수 있을까? 물론, 이건 이미 답이 나온 문제이긴 합니다. 그는 메시나 호날두와 계속해서 상대해 왔으니까요.”
(이안 다크)
“프리미어리그의 힘과 속도는 다른 리그와는 구분되는 것이죠. 거기에 버텨 내지 못했던 선수들은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로 확실한 답이 되겠네요. 지난 시즌만큼은 아니라지만, 리야드 마레즈는 여전히 프리미어리그의 정상급 윙어입니다. 한데 그런 그를, 다온이 60분 만에 피치 밖으로 내쫓는군요.”
(스티브 맥매너먼)
“물론 지금 교체의 의미를 전부 다온의 수비에서 찾을 수는 없겠습니다만, 최소 80%는 그 때문입니다.”
.
데머레이 그레이(Dermarai Grey)가 피치에 들어서면서, 레스터 시티의 진영 역시 기존의 4-4-1-1에서 4-3-3으로 바뀌었다.
어떻게든 원정에서의 득점을 올려 보겠다는 의도가 드러나는 결정이었는데, 심정은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만약 내가 크레이그 셰익스피어였다면, 일단 실점을 세 골에서 멈추는 방향으로 팀을 움직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챔피언스 리그 8강전은 홈&어웨이 방식이고, 레스터 시티에겐 아직 홈 경기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언더독의 입장이라지만, 축구에서 3:0의 결과를 만드는 건 4:0보다 몇 배는 더 확률이 높은 일이다. 그러니 조금 더 냉정하게 경기를 바라봤어야 하지 않을까?
이틀 전 에버튼 원정 경기를 포기하면서까지 오늘 경기를 준비해 온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말이다.
본인들의 선택으로 집중한 경기에서 전반전 만에 0:3이 되어 버린 결과를 받아들인다는 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문제였던 것 같다.
“에-이!! 4-3-3이야!!”
“포지션을 바꿨어!! 대화해!!”
“쟤넨 스위치 할 거야!”
레스터 시티의 포메이션 변화에 맞춰, 우리 역시 많은 대화를 나누며 거기에 대비했다. 일단 현재 벤치에서는 시메가 준비 중이었는데, 후안프란에게 휴식 시간을 줄 것 같았다.
올브라이턴이 왼쪽 미드필드로 뛸 때도 그렇고, 데머레이 그레이가 왼쪽 윙어로 들어선 지금도 반대편은 그렇게까지 위협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Wir sehen uns hier wieder.”
“…….”
오늘 경기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대화를 나누게 된 오카자키를 향해, 나는 여기에서 또 보게 되었다고 대화를 건넸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오카자키는 내 말에 쓴웃음으로 답을 할 뿐이었다.
EPL 진출 후 급격히 친해져 버린 남자의 주적으로 인해 벗겨진 휑한 머리카락이, 쓰게 웃는 표정과 맞물리며 묘한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려고 했다.
마인츠에서 뛰던 시절 워낙 형들로부터 좋은 말만 들어온 선수다 보니, 일본인이라는 생각보다 그냥 동네 좋은 형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현재 나에게 중요한 건, 오늘 경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완벽한 플레이를 펼치는 것이었다. 실수는 한 번이면 족했고, 그것만으로 이미 오늘 내 점수는 50점이 한계였다.
기술과 드리블로 공세를 전개해 왔던 리야드 마레즈와는 달리, 오카자키는 포지셔닝과 연계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오른쪽에 힘을 싣고 있었다.
덩달아 대니 심슨의 오버랩 역시 좀 더 활발해졌고. 그로 인하여 레스터의 오른쪽 수비 뒷공간이 넓어졌다.
‘일단 저건 접수.’
만약 우리가 볼을 가로채어 빠른 역습으로 이어 나가는 상황이 왔을 때, 대니 심슨의 위치만 확인한 후에 무작정 저기로 뛰어가도 될 것 같았다.
사이드라인을 등지고 드링크워터로부터 패스를 받아든 오카자키가 몸을 돌려 시야를 넓게 만들었다.
그러자 오른쪽 저 멀리에서부터, 스터드와 피치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이건 대니 심슨의 스프린트일 것이고, 오카자키라면 높은 확률로 안쪽으로 패스를 찔러 넣어 주는 플레이로 이어 가려고들 것이다.
뤼카가 제때 커버를 와 줄 거라고 믿기에 그것도 딱히 나쁘지 않은 전개였지만, 나는 좀 더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 상황으로 이끌고 싶었다.
그래서 난, 슬쩍 엉덩이를 틀어 몸통 오른쪽 공간을 완전히 열어두었다.
그와 동시에 대니 심슨에게로 향할 수 있는 패스 경로가 좁아졌고, 2m 정도의 간격을 유지했던 나는 플레이 존에 압박을 주고자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택했다.
분데스리가 때부터 쭉 상대하여 온 오카자키 신지라면, 즉각 경보를 울리고 달아나려고 들 것이다.
플레이 존이란 공격수가 패스를 받은 이후의 다음 동작을 가져가는 데 필요한 영역 범위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수비수에겐 공격수에게 압박을 줄 수 있는 최소한의 거리를 뜻하는 말이었다.
즉 플레이 존 이하로 공격수에게 접근하게 되면, 공격수는 심리적으로 불편함을 느끼고 다음 동작을 가져가게 된다.
다만 거리가 줄어든 만큼, 공격수가 다음 동작을 택했을 때 수비수가 반응하는 속도도 빨라져야 한다.
가까이 달라붙는 밀착 수비가 기술이 좋은 공격수의 입장에서 상대하기 훨씬 수월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기술이 좋은 선수들은 민첩성 역시 탁월한 경우가 많고, 좁혀졌던 플레이 존을 다시 넓히기까지 필요한 동작의 수도 적다.
하지만 오카자키처럼 기술이 부족한 선수라면?
‘지금!’
탁-!
“????”
‘그렇지!’
한 가지 옵션을 차단해 두고 특정 방향으로 공격수의 선택을 유도하는 일이 훨씬 수월해진다.
지금 오카자키에게 있어 내가 열어 둔 방향으로 드리블을 택하는 건, 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강제적인 선택지였다.
어떻게 보면, 수비수인 내가 옵션을 한 닫아 두기로 선택함으로써 공격수의 능동적인 면을 억제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지금이 동점 상황이거나 전반전이었다면 오카자키에겐 뒤로 패스를 돌린다는 제3의 선택지도 있었겠지만, 현재 주어진 모든 상황이 그에게 드리블을 강요했을 것이다.
나는 오카자키가 아니기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99% 정도는 예측이 맞아떨어질 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스탠딩 태클로 축구공에 발을 가져다 대어 앞으로 밀어 버리자, 공격을 전개하던 레스터 시티 전체가 덜컹거리면서 멈춰 설 수밖에 없게 되었다.
게다가 대니 심슨의 오버랩으로 인해, 레스터 시티의 오른쪽 진영은 텅텅 비어 있는 상태였다.
‘가자.’
팔을 휘둘러 나를 붙잡으려던 오카자키를 떨쳐 버린 후, 축구공에 접근해 볼을 앞으로 길게 밀어 놓는다.
그리고 이후 스프린트를 가져가는 동안, 고개를 슬쩍 옆으로 돌려 동료들의 포지션과 행동을 살폈다.
페르난도 토레스를 시작으로, 세컨드 스트라이커 위치에 있던 그리즈만이 반대편 포스트에서 스프린트를 하고 있었다.
레스터 시티는 일단 일정 부분까진 내가 전진하는 것을 허락할 생각인 것 같았는데, 파이널 써드 부근으로 다가섰을 때 로베르트 후트가 접근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토레스 혹은 그리즈만을 막아 줘야 한다.
포지션이 바뀌면서 수비형 미드필드로 역할을 바꾼 윌프레드 은디디(Wilfred Ndidi)는 토레스를 쫓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나는 그리즈만을 커버할 사람이 왼쪽 풀백인 크리스티안 푹스(Christian Fuchs)가 될 거란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중앙 지역의 상황을 살핀 것으로, 나는 마지막 플레이까지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를 완전히 결정 내렸다.
가장 까다로운 부분이 끝났으니, 다음은 쉬운 일뿐이다.
한 번 더 볼을 밀어 두며 스프린트를 이어 간 나는 곧 파이널 써드로 다다랐고, 그와 동시에 생각했던 것처럼 레스터 시티의 수비가 반응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까운 쪽에 있는 토레스를 향해 은디디와 벤알루안이 달라붙었고, 꾸준히 중앙으로 좁혀 뛰고 있던 푹스가 그리즈만의 오른쪽 뒤쪽에서 따라붙었다.
‘역시.’
지금의 이런 수비 반응을 예상할 수 있었던 건,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이게 수비의 정석이기 때문이다.
반대발 윙어인 내가 이 위치에서 그리즈만이 있는 곳까지 안전하게 볼을 보내려면, 한차례 볼을 멈춘 후 몸을 열어 오른발로 킥을 찰 수 있는 동작을 가져가야 한다.
그러면 그동안, 나는 멈춰 서게 된다.
다음 동작을 가져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의 부산물로 지연이 만들어지는 것인데, 이러는 사이에 푹스는 그리즈만에게 달라붙을 시간을 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더 운이 좋다면, 뒤에서 열심히 달려오고 있을 레스터 시티의 누군가가 나를 막을 수도 있다.
그래서 왼발이나 혹은 작은 지연으로 볼을 연결할 수 있는 토레스 쪽에 더 많은 숫자의 수비수가 달라붙은 거다.
잘 조직된 수비 전술을 가진 팀이라면, 특별한 생각과 지시 없이도 이런 식의 수비를 숨 쉬듯 자연스럽게 가져갈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서, 무엇이 더 우위라 부를 수 없는 축구의 요소 하나가 강조된다.
바로 기술이라는 녀석으로, 리야드 마레즈가 내 앞에서 계속해서 펼쳐 보였던 것이자 현대 축구에서 때때로 과소평가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장담하는데, 축구에서 전술/기술/피지컬은 단 한 순간도 중요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더 강력한 무기처럼 보이느냐는, 감독의 축구 철학과 그것을 해석해 피치 위에서 플레이하는 선수들의 선택과 집중에 달려있다.
그리고 난 지금 막, 전술에서 기술로 집중하고 있는 영역을 잠깐 이전시켰다.
“…….”
파앙-!
“??”
“????”
특별한 예고 없이 오른발 아웃프런트로 가져간 패스가 레스터 시티의 페널티 박스 안으로 날아가고, 바깥쪽으로 회전이 먹은 축구공은 한 차례 피치를 튕긴 후 급격히 속도가 느려졌다.
그리고 점점 뒤쪽으로 흐르기 시작한 축구공은, 달려가고 있던 그리즈만에게 정확히 도달했다.
허를 찔렀던 오른발 아웃프런트 패스에, 캐스퍼 슈마이켈은 충분히 달려들 수 있었음에도 몸을 움찔한 상태로 자리에 그대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게, 기술의 미학이다.
피치 위에서 펼쳐지는 적절한 기술은 상대를 광대 혹은 구경꾼으로 만들어 놓는다.
그 과정에서 볼을 가진 선수가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대부분 그다음 상황은 가장 짜릿하고 기쁜 순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골키퍼와의 1:1 기회를 맞이한 그리즈만은, 가볍게 가까운 쪽으로 슈팅을 밀어 넣으며 레스터 시티와의 격차를 한층 더 벌린다.
재빠르게 몸을 돌려 코너플랫으로 달려 나간 녀석이 Hotline Bling 셀레브레이션을 시작했고, 미소를 지으며 돌아선 나는 상처가 조금 아물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의 역습은, 올 시즌 팀의 공격 장면을 통틀어서도 가장 간결하고 완벽했던 득점이었다.
‘후우- 그나마 체면치레했나?’
그래도 분명한 건, 언젠가 내가 오늘의 장면을 떠올리며 이불킥을 할 거라는 사실이다.
4:0.
아직 2차전이 남아 있다지만, 올 시즌 EPL의 챔피언스 리그 여정은 마무리를 앞두고 있었다.
.
.
.경기 결과
아틀레티코 5 : 0 레스터
[골] 사울 니게스 : 전반 10분(김다온)앙투안 그리즈만 : 전반 37분(페르난도 토레스), 후반 19분(김다온), 후반 40분(시메 브르살코)
페르난도 토레스 : 전반 42분
김다온 ? 96분 출전(2어시스트/평점 8.7)
MoM ? 앙투안 그리즈만(3골/평점 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