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748)
748화 Magister (8)
처음 한국을 떠나 덴마크로 향했을 때, FC 노르셸란에서 배운 것은 다름 아닌 나라는 사람이었다.
FC 노르셸란의 유스와 A팀 코칭스태프들 모두, 입을 모아 내게 재능이 있다고 말을 했었다.
솔직히 처음에 난 그것을 믿지 못했다.
기분이야 당연히 좋았지만, 당시의 나는 윙어로 뛸 수 없어 강제로 풀백이 되어야 했던 16살의 어린 소년이었다. 자신감과 자존감 모두 바닥이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런 어느 날, 모르텐 비그호스트 감독님이 내게 색다른 축구를 알려 주기 시작했다.
사이드백은 당연히 측면에 머물러야 한다는 나의 고정관념을 깨트린 모르텐 감독님의 철학은, 내 영역을 중원으로 넓힘과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다.
그리고 그건.
“윽-!”
삐?익!!
.
.
.후반 06분
레알 마드리드 0 : 0 아틀레티코
누군가에 밀려 피치에 나동그라진 후, 나는 입에서 느껴지는 흙을 뱉어 내기 위해 혀를 내밀어 침을 몇 번 뱉어 내야 했다. 그러곤 손등을 가져가, 입가와 혀를 닦았다.
현재 내 앞으로 다가온 건, 나의 옛 동료이자 여전히 좋은 친구인 토니 크로스다.
“Tut mir leid, Kumpel(미안해, 친구).”
“Es ist Okay.”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멀어서는 토니를 보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왜 하필 지금?’
어째서 노르셸란에서의 축구가 떠오르는 것일까?
갑자기, 예전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난다.
***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기자석
‘……계속 통하고 있어.’
마누 사인스(Manu Sainz)는 ‘아스’ 소속의 기자임과 동시에, TV 프로그램 ‘엘 치링기토’의 스튜디오 패널이자 방송국 ‘카데나 세르’의 분석가로 활발히 활동하는 남자다.
그리고 동시에, 그는 ‘아스’내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가장 정통한 남자로도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그는 오늘, 새삼스럽게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사이드백에 흥미를 나타내는 중이다.
‘마치…….’
전반전 중반, 특별한 지시가 내려지지 않아 보였음에도 김다온이 대뜸 중앙으로 이동하더니 빌드업에 힘을 쏟고 짧은 패스로 팀의 라인을 전진시키기 시작했다.
왼쪽 수비 공간을 그대로 열어 두는 위험 부담을 감수한 채, 중앙으로 이동하여 두 명뿐이던 아틀레티코의 메디오 센트로(Medio Centro)에 힘을 보탠 것이다.
그러곤 놀랍게도, 능숙하게 볼을 지키며 짧은 패스로 레알 마드리드의 압박을 벗겨 내기 시작했다.
매번 적절한 위치로 이동해 있었고, 사울-가비-코케로 구성된 아틀레티코의 미드필드들을 적절히 이용해 가며 오른쪽으로 넓게 벌려 주는 패스를 보냈다.
화려하진 않으나 기본에 충실한 볼 키핑과 간결한 플레이를 바탕으로, 매번 레알 마드리드가 반응하기 전에 그들의 압박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마누 사인스로 하여금, 스페인 국가대표이기도 한 남자를 떠올리도록 만들었다.
‘사비 알론소 같아. 보고 배운 건가?’
오늘 김다온의 플레이는 사비 알론소와 거의 판박이였다. 기교가 아닌 포지셔닝과 패스로 압박을 벗겨 낸 후, 롱패스로 볼이 머무는 장소를 높은 위치로 끌어 올렸다.
그러다가도 어느새 왼쪽 측면으로 이동해 방향 전환 패스를 받기도 했는데, 마치 피치 위에 김다온이 두 사람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조금 전에도 김다온은 중원에서 볼을 지키는 과정에서 토니 크로스에게 파울을 얻어 냈다.
한데 지금은 왼쪽 코너 플랫 앞에서 축구공을 발아래 놓아두고 있었고, 협력수비에 몰리자 영리하게 볼을 처리하여 코너킥을 얻어 내는 재치를 보여 줬다.
코너플랫을 가리킨 후 고개를 끄덕이는 김다온을 보며, 마누 사인즈는 한 가지에 생각이 미친다.
“…….”
타닥, 타다다닥, 타다닥.
랩톱으로 손을 가져간 사인즈가 ‘후스코어드닷컴’에 접속해 오늘 경기 전반전의 기록을 살핀다.
현재 그가 확인하고 있는 건 김다온 개인의 지표였고, ‘후스코어드닷컴’에 따르면 김다온은 전반전 아틀레티코에서 가장 많은 29개의 패스를 89.7%의 성공률(26/29)로 보여 줬다.
좋은 기억력을 가진 ‘아스’의 기자는 어렵지 않게, 날카로웠지만 이어지지 않은 롱패스 세 개를 떠올렸다.
‘그 세 개 빼고 전부 성공이었던 건가?’
딸깍-
딸깍-
드르륵-
딸깍-
재빨리 마우스로 움직인 손이 정신없이 움직였고, 뒤이어 화면이 여러 차례 바뀌면서 몇몇 선수들의 기록이 담긴 창이 차례대로 띄워졌다.
그것들은 모두 레알 마드리드의 미드필드에 관한 것이었고, 그중에서도 토니 크로스-루카 모드리치-이스코가 사인즈가 관심을 두는 이들이었다.
‘87.1(27/31)%. 89.2(25/28)%. 그리고…….’
딸깍-
‘100(33/33)%. 완벽해.’
전반전 점유율에 유세를 보인 레알 마드리드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보다 훨씬 더 많은 패스를 시도했다.
그리고 그중, 시프트의 주인공인 이스코는 무려 33개의 패스를 모두 성공시키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 줬다. 그뿐만 아니라 세 번의 드리블도 모두 실패 없이 끝냈다.
하지만, 사인즈가 확인하고 싶은 것을 알려면 다른 수치를 들여다봐야 했다.
딸깍-
〔Ball Keeping〕
볼 소유에 관한 지표를 화면에 띄운 사인즈의 눈에, 곧바로 숨길 수 없는 이채가 드러난다.
‘역시! 내 생각이 옳았어!’
오늘, 이스코는 패스 성공률뿐만이 아니라 볼을 지켜 내는 부분에서도 완벽(10/10)한 모습을 보여 줬다.
축구에서 볼 키핑이란, 특정 선수가 볼을 잡은 후 2초 이내에 수비수가 접근했을 때 볼을 빼앗기지 않고 그것을 지켜 낸 경우를 말해 주는 지표다.
여기에서 만약 패스를 보내지 않고 드리블로 돌파에 성공할 경우, 볼 키핑이 아닌 듀얼(Duel)로 계산이 된다.
‘100%! 그래서 이렇게 이상했던 거야!’
하지만 지금 주먹을 불끈 쥔 사인즈가 본 화면 속엔, 이스코가 아닌 김다온의 지표가 표시되어 있었다. 김다온 역시, 오늘 단 한 차례도 볼 키핑에서 실수가 없었다.
총 7번의 상황에서 모두 볼을 지켜 내는 일에 성공했고, 이는 사인즈에게 많은 것을 설명해 줬다.
‘어떻게 저 자리를 위험지역으로 만들지 않았겠어!’
전반의 지표들을 조합해 보면, 김다온은 중앙으로 이동해 플레이하면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선수 중에서 가장 많은 패스 숫자를 기록한 선수였다.
패스 실패는 단 세 개뿐이고, 그마저도 파이널 써드를 향해 보낸 롱패스다.
또 하프라인 아래에서, 김다온은 전반 내내 단 하나의 볼 키핑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볼을 완벽하게 지켜 낸 것은 물론 하프라인 아래에서의 패스도 모두 성공하며, 왼쪽 수비공간을 비워 두고 중앙으로 이동함으로써 생겨난 위험 부담을 몽땅 지워 냈다.
모든 지표가, 오늘 김다온을 사이드백이 아닌 뛰어난 볼란치라고 설명해 주고 있다.
‘그는 아는 거야. 볼을 빼앗기지 않는다면, 자신이 중앙에 뛰는 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사이드백이 공격 상황에서 측면을 비워 두고 파이널 써드 깊숙이 침투하는 것은 흔한 장면이지만, 축구공이 하프라인 아래에 머물고 있을 때는 아니다.
그리고 현대 축구에서 사이드백의 임무란, 공수 모두에서 중원이 공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측면을 넓혀 주는 일이다.
한데 오늘, 김다온은 정확히 반대로 플레이 했다.
볼이 하프라인 아래쪽에서 머물고 있을 땐, 왼쪽 측면을 비워 둔 채 중앙 지역으로 움직였다. 어쩌다 한 번이면 모르지만, 그는 거의 매번 그렇게 했다.
물론 세 명의 센터백을 뒤쪽에 둔 상황이라지만, 이것은 보통 감독이 선호하지 않는 장면이다.
그러다 패스가 전방으로 이어지거나 오른쪽으로 크게 벌려지고 나면, 그제야 다시 측면으로 이동해 사이드백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다.
즉, 김다온은 자신이 중앙으로 이동하는 것을 묘수(妙手)처럼 느껴지도록 만들어 디에고 시메오네가 전술적인 기발함을 발휘했다 믿게끔 만드는 중이었다.
하지만, 사인즈는 의문을 가졌다.
‘저게 시메오네의 생각이긴 한 걸까?’
뜨겁다 못해 끓어 넘칠 정도의 성격인 디에고 시메오네는, 오히려 피치 위에서는 정반대로 냉정하고 침착한 축구를 보여 주는 남자였다.
아틀레티코를 상징하는 것이었던 플랫 4-4-2의 모든 것들이 그것을 잘 증명해 준다.
조직적이고 강도 높은 압박을 선호하는 시메오네에게 있어, 프리롤이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철학이었다.
‘아니야. 저건 시메오네의 것이 아니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마누 사인스는, 오늘의 경기가 전술적으로 만들어진 시프트와 선수 스스로 판단해 자연적으로 태어난 시프트의 대결 구도로 느껴졌다.
다시 말해, 감독의 전술적 의도 아래 태어난 선수와 스스로 전술적 의도를 만들어 가는 선수의 대결이라는 뜻이었다.
물론, 김다온이 후자였다.
‘Increible(믿을 수 없어).’
소름이 돋은 사인즈가 몸을 움찔한다.
과연 김다온은 어디까지 사람들에게 새로운 축구의 가능성을 보여 주려는 것일까?
2000년대 후반부터 강팀이 되기 위해 필수적인 포지션이 된 사이드백이긴 했지만, 역할 그 자체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온 23살의 축구 선수는 계속해서 자신의 포지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나가는 중이다.
마치, 혜성처럼 등장하여 끊임없이 축구의 새로운 면을 보여 주다가 마침내 첫 번째 판타지스타(Fantasista)가 되어 버린 로베르토 바조를 보는 것 같았다.
당시 이탈리아의 사람들은 바조의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고, 동시대에서 뛴 수많은 축구 선수들이 그를 축구 역사상 가장 완벽한 9.5번이라고 칭했다.
그렇다면 현재, 김다온과 동시대에서 뛰는 축구 선수들은 그를 어떻게 평가할까?
‘……재미있겠어.’
마누 사인스는 당장 오늘부터, 그것을 하나씩 인터뷰해 보기로 한다.
삐?익!!
측면으로 이동해 공격 진영 깊숙이 자리 잡은 이스코에게 패스가 전해지지만, 주심의 휘슬과 부심이 들어 올린 깃발이 오프사이드가 선언되었음을 알려 주고 있다.
후반전 9분.
시합은 여전히 균형을 지키는 중이다.
***
.후반 14분
레알 마드리드 0 : 0 아틀레티코
경기가 진행되면 될수록, 주변 상황은 흥미로운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제 동료들은 내가 중앙으로 움직여 빌드업에 힘을 보태는 걸 어색하게 느끼는 대신, 유기적으로 측면 공간을 점유해 가며 플레이에 다양성을 보태 주었다.
그로 인해 플레이가 훨씬 수월해졌음은 물론이다.
지금도 보면, 사울이 왼쪽 사이드라인 앞쪽에 서 있고 내가 오히려 중앙 지역에 자리 잡아 빌드업의 방향과 경기의 템포를 조절했다.
‘재미있어.’
파앙-!
뒤쪽 코케에게 패스를 보낸 후, 하프라인 약간 아래로 내려가 볼을 다시 받아들고자 왼쪽 하프 스페이스로 움직인다.
그와 동시에, 사울은 중앙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패스를 받아 든 난, 앞쪽의 사울에게 볼을 보내고는 시계방향으로 움직여 조금 전까지 그가 있던 장소로 나아갔다. 자연스러운 포지션 변화.
잠시 뒤, 토레스가 가까이 다가왔다.
“에-이!”
“…….”
자신을 이용해 달라는 손짓.
패스가 그쪽으로 향했다.
‘지금.’
현재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는 토레스에게 밀착하는 대신, 그의 플레이 존 주변 영역에 선수를 놓아둠으로써 언제든 압박할 수 있는 포지셔닝을 했다.
코케가 앞으로 쭉 패스를 찔러 줬을 때, 카세미루와 다니 카르바할의 몸이 동시에 반응한 이유다.
그런데 내가 코케의 땅볼 패스가 향하는 타이밍에 맞춰 사이드라인을 따라 스프린트를 시작하자, 카르바할은 토레스에게 달라붙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럼 가능해.’
밀착 없이 압박의 강도를 높이려면, 볼을 가진 선수의 선택지를 제거해 나가야 한다.
수비의 기초를 배울 때 공격수를 밖으로 밀어내라는 말을 하는 것 역시, 중앙보다는 측면에서의 플레이 자유도가 현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피치의 중앙 지역에서, 한 개인에게 주어지는 공간은 360도에 걸쳐져 있다.
그리고 뛰어난 수비수는 대략 120도 정도의 공간을 커버할 수 있는데, 이 능력이 빛을 보려면 볼을 가진 공격수가 전진하거나 측면에 있어 줘야 한다.
같은 관점에서 조금 전 레알 마드리드의 포지셔닝을 생각해 보면, 카세미루와 다니 카르바할이 각각 토레스의 각도를 제한하여 패스를 뒤로 보내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한데 지금처럼 카르바할이 떨어져 나가게 되면, 본래 그가 압박함으로써 막아 낼 수 있는 각도 전체가 비워지게 된다.
바로 이게, 내가 오버랩의 타이밍을 잡은 이유다.
볼 없이도, 우린 얼마든지 서로를 도울 수 있다.
“뒤야!!”
카세미루가 뒤에서 오고 있다는 것을 주변이 알리고, 노련한 토레스는 능숙하게 몸을 돌리며 퍼스트 터치를 카르바할이 압박했어야 할 방향으로 가져갔다.
그러자 토레스의 몸통이 손쉽게 열렸고, 그는 왼발을 휘둘러 내가 달려가는 앞쪽으로 축구공을 밀어 보냈다.
후방에서의 빌드업과 사울과 나의 스위칭을 시작으로, 코케가 보낸 단 한 번의 전진 패스와 토레스의 훌륭했던 포스트 플레이에 이르기까지.
이 과정에서 전진에 목적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패스는 단 두 개뿐이었다. 하지만, 볼은 이미 레알 마드리드의 파이널 써드에 진입해 있었다.
전력을 다하여 달린 바란이 필사적인 슬라이팅 태클로 한발 앞서 볼을 걷어 내긴 했지만, 개인적으론 간결하고 훌륭했던 공격 전개였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느끼기엔, 우리의 공격 템포가 굉장히 빠르다고 느껴질 것이다.
“여기!!”
사이드라인으로 재빨리 움직여 사울에게 스로인을 보낸 후, 난 곧바로 그에게 콜(Call)을 해서 패스를 이어받았다.
그러자, 카르바할이 바로 접근해 왔다.
‘어딜.’
툭-
“!”
카르바할의 가랑이 사이로 볼을 굴려 내어, 그의 수비에서 벗어나 넓은 공간으로 빠져나온다. 코케가 패스를 받기 좋은 위치에 있었지만, 저긴 덫이 놓인 자리였다.
근처에 자리를 잡은 카세미루가 패스가 향하는 즉시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앙-!!
그래서 나는 더 뒤쪽으로 볼을 보냈고, 이후에는 아래로 내려서서 다시 처음부터 빌드업을 이어 나갈 준비를 했다.
미묘한 수준이긴 하지만, 후반전은 우리가 더 오랫동안 볼을 점유하는 것 같다. 다들 볼 키핑에 여유가 생겼고, 마드리드의 압박 방식에도 적응한 것처럼 보인다.
경기가 이런 식으로 흘러가자, 결국 먼저 인내심을 잃은 것은 레알 마드리드 쪽이었다.
삑-!!
.
(한희준) – SPORTV 해설위원
“아, 이건 굉장한 도박입니다. 다니 카르바할을 빼고 루카스 바스케스를 투입하는 지네딘 지단 감독입니다. 김다온 선수를 중앙으로 이동하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의도거든요?”
(김정명) – SPORTV 아나운서
“오른쪽 풀백이 빠진 자리에 오른쪽 공격수가 투입되는 레알 마드리드입니다.”
.
교체가 이뤄지는 동안, 목소리를 높인 시메오네가 나를 사이드라인 앞으로 불러들였다.
“어떻게 하고 싶나?”
“…….”
생각해 보면, 시메오네는 단 한 번도 내게 프리롤을 지시한 적이 없다. 어제 마지막 전력분석 시간에도 평소에 들었던 말들이 전부였다.
지적이 가능했던 하프타임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난 궁금해졌다.
“저, 디에고.”
“뭔가?”
“제가 이렇게 뛰는 것이 아무렇지 않으세요?”
“하-! 이제 그 말을 하는 건가?”
“뭐, 확실히 늦었긴 하죠.”
피식 웃어 보인 시메오네가 손을 뻗어 내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는다. 다른 사람이 했다면 기분이 조금 나빴겠지만, 시메오네가 이러는 건 아무렇지도 않다.
시메오네는 내가 존경하는 사람 중 하나다.
“어제 내가 했던 말 기억하나?”
“많은 말씀을 하셨었죠.”
“큭큭. 그래, 맞아. 하지만 내가 지금 말하는 건, 감독실에서의 대화야. 나는 그때 분명 이렇게 말했지.”
“…….”
“자네가 지단의 전술을 작동하지 못하도록 만들 거라고. 난 그때 이미, 자네에게 자유를 주었어. 틀림없이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거라고 보는데 말이야.”
“…….”
그래.
나는 이 말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시메오네가 금방 말한 것처럼, 나는 그때 이미 자유를 부여받았다고 생각했다.
“참 웃긴 질문이었네요. 그렇죠?”
“그렇지. 시간이 됐군. 가 보게나.”
“네. 아, 그리고.”
“?”
“왜 바스케스가 투입되었는지 알고 있어요. 그리고 저들이 무엇을 기대하는지도요.”
“그래. 분명 그렇겠지.”
“아직 조금 이른 말이긴 하지만.”
“??”
이런 말을 언젠가 하게 될 줄은 알았지만, 오늘이 그날이 될 거라곤 생각해 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이 가장 적절해 보인다.
“저 여기에서 무척 즐거웠어요.”
“……하하.”
“진심이에요.”
“그래. 나도 알고 있네.”
“네. 그래서 말인데.”
“?”
“마드리드를 붉게 물들여 보죠.”
“Sal de aqui(어서 가기나 해).”
피식하고 웃어 보인 시메오네가 먼저 돌아서고, 같은 표정을 지은 나 역시 뒤로 돌아 얼른 달려갔다.
진영 반대편엔 금방 투입된 루카스 바스케스가 보였는데, 확실히 다니 카르바할보다는 좀 더 높은 위치까지 전진해 있었다.
‘위협해 보겠다고? 얼마든지.’
지금의 교체는 루카스 바스케스를 높은 위치에 둠으로써, 내가 자리를 비우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무리뉴와 베니테즈 체제 아래에서는 풀백으로 뛰기도 했기에, 특별히 저 위치가 낯설진 않을 거로 본다.
하지만 이 상황이 두렵지 않다.
왜냐하면.
‘8년도 넘게 해 왔던 일이야.’
덴마크/포르투갈/독일을 순서대로 거쳐 스페인까지 온 나의 축구는, 단 한 순간도 도전을 받아들이는 일을 멈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걸어오는 싸움이라면, 난 절대 피할 생각이 없다.
‘너희들이 어떻게 나오건.’
이스코 시프트에 의미를 더하기 위해 택한 이번 교체를 나는 최선을 다해 무너뜨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