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781)
781화 Concilio Et Labore (5)
2017년 7월 16일. 77002 휴스턴, 텍사스. 501 크로포드 스트리트. 미닛 메이드 파크(Minute Maid Park. 501 Crawford St. 77002 Houston, TX).
맨체스터를 떠나 휴스턴에 도착한 첫 번째 날부터, 우리의 모든 것은 이 도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도착했던 공항은 수많은 팬으로 붐볐고 호텔과 훈련장 주변으로 찾아왔던 이들도 시티즌(Cityzen)임을 자처하며, 유니폼과 종이를 내밀어 왔다.
쑥스럽지만 이런 환호성과 열기의 대부분은 나로 인해 비롯되었는데, 어디를 가든 내 유니폼을 들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이벤트 일정을 위해 찾은 미닛 메이드 파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차이점이라면.
“Wow. Good Looking.”
“하하. 그래요?”
“네! 화면보다 훨씬 더 나은걸요.”
“고마워요. 저도 같은 말을 해 주고 싶지만, 죄송하게도 당신을 오늘 처음 봐서 말이죠.”
“야구 싫어해요?”
“아뇨. 야구는 좋아해요. 다만, 메이저리그를 볼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고 해 두죠.”
“아하. 이해했어요.”
시구를 앞두고 찾은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라커룸에서, 나는 이 야구팀의 스타 선수들을 만났다.
지금까지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었던 남자는 유격수인 카를로스 코레아(Carlos Correa)다.
대표적인 휴스턴의 젊은 스타로서, 오늘 나와 가장 많은 투샷이 찍힐 것 같았다. 외에도 많은 이들이 다가와 인사를 건네왔고, 난 그들에게 사인해 주거나 사진을 함께 찍었다.
그런 뒤에는 감독 AJ 힌치(AJ Hinch)로부터 휴스턴 선수들의 사인이 담긴 유니폼/글러브/배트 세트도 받았다.
“어때? 괜찮아?”
“정신이 없죠, 뭐.”
“하하. 미안하지만, 아직 일정이 남았어.”
“네. 알고 있어요.”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선수들이 웜업을 하러 그라운드에 나선 동안, 나는 경기장 내에 마련된 촬영장으로 이동하여 맨시티를 홍보하는 영상을 찍었다.
이것은 공수교대나 이닝이 바뀌는 시간에 미닛 메이드 파크 내의 전광판을 통해 송출될 예정이다.
그리고 얻은 게 있었으니 주는 것도 있어야 했는데, 난 몇몇 휴스턴 스타들을 응원하고 주어진 한국어 대사를 읊으며 이 팀을 한국에 홍보하는 일도 해야만 했다.
“컷-!! Good Job!!”
두어 차례 발음을 절은 걸 제외하면, 이렇다 할 문제 없이 촬영을 마쳤다.
휴스턴의 담당자는 연신 “Good Job.”이라고 말해오며 엄지를 치켜세웠고, 스콧 윌리엄스 역시 생각보다 훨씬 잘해서 놀랐다며 연기에도 소질이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래서 난 내 아내가 들으면 웃을 거라 답했다.
이건 결코 농담이 농담이 아니었다.
만약 아영이가 여기에 있었다면, 그녀는 배를 잡고 폭소를 터뜨렸을 것이다.
“She`s good?”
“Oh- Really Good.”
“그렇군.”
독일 시절 초창기 아영이가 연극을 배울 때, 난 종종 그녀의 상대 배역이 되어야만 했었다.
그건 내가 연기를 얼마나 못하는지를 깨달은 시간이자, 한편으론 내 아내의 재능이 나로 인해 펼쳐지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한 시간이기도 했다.
물론 그녀는 나의 반려자로 살아가는 것을 더 사랑한다고 했지만, 더 잘해 주고 싶은 건 어쩔 수가 없다.
“자, 그럼 잠깐 쉬러 갈까?”
“네.”
“그런데 진짜 연습은 안 해도 돼?”
“어차피 나중에 잠깐 짬이 있을 건데요.”
“그래도 이건 꽤 어렵다고.”
“하하. 그거 아세요?”
“?”
“아버지는 처음에 절 야구 선수로도 키우려고 하셨어요.”
“??”
어린 시절, 나는 축구가 더 좋았으나 아버지는 야구와 축구 중 내가 무엇을 더 잘할 수 있는지가 궁금하셨다.
그래서 방과 후 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가면, 가끔 글러브를 손에 끼우시곤 밖으로 나가서 캐치볼을 하자고 하셨다. 난 그게 정말 싫었지만, 아버지는 그걸 몰랐던 것 같다.
어쨌든 중요한 건, 당시 내가 꽤 잘 던졌다는 거다.
그리고 유럽으로 온 뒤에도 종종, 캐치볼을 했었다.
-딸깍-
“What the heck. 지금 그건 대체 다 뭐야?”
“응?”
“오-! Amigo-!!”
참고로, 지금 아미고라고 한 것은 세르히오 아게로다.
베르나르두는 입 안 가득 음식을 머금은 상태다.
두 사람의 일정은 나와는 조금 달랐는데, 아마 그걸 먼저 마치고 이곳으로 온 것 같았다.
“오- 제기랄. 이게 다 대체 뭐야?”
현재 이곳 VIP 라운지의 테이블 위엔, 한눈에 보기에도 건강과 맛을 교환한 것 같은 음식이 한가득 올려져 있었다.
재료 대부분은 튀겨져 있었고, 그 위를 형형색색의 소스가 멋지게 장식됐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건강한 음식이라고 할 만한 것은 플레인 탄산수가 전부였다. 외의 모든 음식은 먹는 순간 화장실과 그만큼 친해질 수 있는 것들이었다.
“멍청아.”
찰싹-
“윽!”
쿤(아게로)이 다시 음식에 빠져 있는 동안, 난 은근슬쩍 베르나르두의 뒤통수를 두들기곤 생각이 있는 것이냐면서 귓속말을 날렸다.
제아무리 눈앞의 음식이 거절하기 힘든 비주얼과 냄새를 뽐내고 있다지만, 우린 이미 시즌을 시작했다.
“펩의 방침이잖아. 잊었어?”
“그럼 이걸 다 어쩌라고?”
“성의만 받아야지.”
“그렇지만…….”
“?”
“이것들을 좀 봐!”
잔뜩 억울한 표정으로 음식을 향해 손을 뻗은 베르나르두는, 어떻게 이것을 외면할 수 있겠냐고 말해왔다.
하지만 내가 볼 때 이건, 순수한 악(惡)이다.
장담하는데 이 콘도그 하나에만, 펩이 금지한 것들이 못해도 다섯 개는 들어가 있다. 케첩, 마요네즈, 머스터드, 그리고 튀긴 베이컨 조각과 엄청난 양의 체더치즈다.
“대체 얼마나 먹은 건데?”
“……둘, 아니면 셋.”
“Amigo. 진짜로.”
“타코까지 합치면 얼추 다섯 개쯤은…….”
“오- 이런. 너 정신은 있는 거야?”
“아, 젠장. 나 완전히 미쳤지?”
뒤늦게 죄책감을 품은 베르나르두가 이제 어쩌냐며 좌절하는 찰나, 쿤이 둘이서만 이야기 나누는 건 서운하다면서 자신을 따돌리지 말라고 말해 왔다.
그래서 난 아무것도 아니라고 답하며, 은근슬쩍 아게로에게 음식이 입에 맞는지를 물었다.
가뜩이나 클럽 내에서 체중 관리가 이슈인 그인데, 앞에 놓인 음식의 상당 부분이 사라진 상태다.
“아, 제발. 이런 기회는 또 없다고.”
“전 그냥 당신의 벌금이 걱정돼서 그래요.”
“괜찮아. 값어치가 있어.”
“…….”
단순히 벌금만을 두고 한 이야기가 아니었는데, 아게로는 그것도 모르고 타코 하나를 더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이쯤 되면 우리 쪽에서 문제가 있는 거다.
결국 난 자리에서 일어서서, 한쪽에 모인 시티의 스태프들을 찾아 움직였다.
“도대체 저건 뭐예요?”
“그게, 휴스턴 측이…….”
“제기랄. 지금 장난해요? 저건 거절해야죠. 성의는 고맙지만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상 음식 섭취는 무리인 것 같다고 말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요??”
“……지금이라도 뺄까요?”
“하-!”
가끔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아마추어보다 못한 모습을 마주하고 있을 때면, 나는 맨체스터 시티가 많은 면에서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난 곤란해하는 이들을 보면서, 오늘 여기에서 있었던 일을 펩에게 전부 이야기할 거라고 말했다.
고자질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저 옳은 일을 하려는 거다.
[아이, 진짜. 손 많이 가네.]절로 나오는 한국어를 중얼거리며 다시 베르나르두의 곁으로 향하고 있을 무렵, VIP 라운지의 문이 열리면서 스콧 윌리엄스가 시구하러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고 말을 해왔다.
하필이면 이때.
“잠깐만요.”
“응?”
스콧 윌리엄스에게 양해를 구한 후, 나는 베르나르두에게 다가가 한 번 더 귓속말을 보냈다.
만약 여기에서 몸에 나쁜 음식을 더 먹는다면, 친구로서 매우 슬프고 또 크게 실망할 것 같다고 말이다. 내 생각에 이 친구는 그저, 마요네즈가 먹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어린 시절 베르나르두는 마요네즈를 정말 좋아하는 아이였고, 벤피카에 있을 때도 늘 삐리삐리 소스에 마요네즈를 섞어 먹었었다.
그러다 뮌헨으로 이적해 펩을 만나면서 마요네즈를 끊게 되었는데, 최애 소스로 범벅된 음식을 눈앞에 두자 그것을 참을 수 없었을 거로 생각하고 있다.
“저걸 좀 봐요, 스콧.”
“뭐?”
“테이블요. 저걸 본다면 펩이 뭐라고 할까요?”
“…….”
“당신이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와서, 몸에 나쁜 음식을 먹도록 방치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
“잘 생각해 봐요.”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한 스콧 윌리엄스를 남겨 둔 채, 나는 다른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아래층으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안내를 받아서 향한 불펜(Bullpen)에는 오늘 경기의 선발 투수인 마이크 파이어스(Mike Fiers)가 있었는데, 그는 내게 악수를 청해오며 던지는 법을 알려 주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난 일단 그것을 받아들인 후, 그가 건넨 야구공을 받아들곤 설명을 귀 기울여 들었다.
정확히는 듣는 척만 했다.
“일단 한번 던져 보겠어요?”
“네. 그럴게요.”
마이크 파이어스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인 후, 나는 실내 불펜의 마운드에 자리를 잡곤 와인드업을 준비했다.
그리고 잠시 뒤.
휙-!
펑-!
“?!”
“!!!”
포수의 미트로 들어간 야구공을 보며 나는 씨익 웃었고, 놀란 표정이 된 마이크 파이어스의 입은 알파벳 O자 모양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쁘지 않네요. 보다시피.”
“?”
“I`m so Gifted.”
“!!”
휴스턴 애스트로스 제1 선발이 보여 주고 있는 침묵은 조금 전까지 짜증 나 있던 기분을 말끔하게 만들었다.
다시 더 시간이 지나고.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은 무척 특별한 시구자를 모십니다! 2016 발롱도르! 2016 FIFA 올해의 선수! 현시점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입니다! Please Welcome!! Daon~ KIM!!”】
나는 환호하는 팬들이 있는 야구 그라운드를 향해, 손을 흔들며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
2017년 7월 17일. 77010 휴스턴, 텍사스. 1300 라마 스트리트. 포시즌스 휴스턴 호텔(Four Seasons Houston Hoyel. 1300 Lamar St. 77010 Houston, Texas).
새벽 1시가 조금 넘은 시각, 나의 눈이 절로 떠진 이유는 아마도 복합적인 이유에서일 것이다.
시차도 시차지만, 축구 외의 일정까지 소화하느라 정신적으로 조금 지쳐 있는 것 같았다.
딸깍-
객실의 문을 열고 나와 조용한 복도를 걸으며, 난 별도로 마련된 라운지로 향했다. 우리를 위해 특별히 준비된 곳으로, 24시간 열려 있는 공간이다.
띵-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라운지 층으로 향하는 버튼을 누른다. 기계는 부드럽게 움직였고, 난 누구나 그렇듯 고개를 들어 바뀌고 있는 숫자를 확인했다.
어제 오후 2시 5분에 시작된 야구는 마이크 파이어스의 호투 속에 2시간 47분 만에 끝이 났다.
결과는 휴스턴의 5:3 승리였고, 이후 미닛 메이트 파크로 향했던 사람들은 호텔로 돌아왔다.
‘진짜는 거기부터였지.’
베르나르두 실바와 세르히오 아게로가 시즌 준비에 어울리지 않는 음식을 섭취했다는 사실은 내가 아닌 스콧 윌리엄스에 의해 펩에게 전달되었다.
그는 자신이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음을 인정하며, 두 번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핑계 없는 솔직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스콧 윌리엄스의 모습에, 펩은 베르나르두 실바와 세르히오 아게로에게 각각 40분의 런닝을 명령했다.
결국 두 사람은 호텔 내 피트니스에 있는 머신에 올라탔고, 괜히 미안했던 나는 그 곁을 지켰다.
일종의 배신자가 된 기분이었지만, 베르나르두도 또 쿤도 나를 탓하거나 원망하지는 않았다. 둘 역시,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다.
[“그런데 있잖아?”] [“응?”] [“그 음식을 진짜 죽여줬거든. 너도 먹어 봤어야 해.”] [“…….”]미국 음식의 악명(?)이야 나도 익히 잘 알고 있다. 엄청나게 맛있고 먹는 이에게 천국을 맛보여 주지만, 진짜로 천국에 가까워지는 편도 티켓 역시도 끊어준다.
우리는 늘 프로다워야 함을 강요받지만, 한편으론 평범한 인간인지라 가끔은 유혹에 굴복한다.
만약 나도 두 사람이 먹는 것을 보지 않고 처음부터 대접을 받았다면,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 거란 보장이 없다.
띵-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엘리베이터는 나를 라운지가 있는 층으로 데려다줬다.
‘응? 사람이 있어?’
맨체스터와 휴스턴은 대략 6시간 정도 차이가 난다. 지금 이곳이 새벽 17일 새벽 1시이니, 맨체스터는 17일 오전 7시가 조금 넘었을 거다.
아영이가 일어날 시간이라는 것을 떠올린 나는 휴대전화를 가져오지 않을 걸 후회했지만, 그렇다고 돌아가기엔 왕복하는 길이 너무 귀찮았다.
그래서 호기심을 더 가까운 곳으로 가져와 저 멀리 보이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로 했다.
‘어라? 펩?’
몇 걸음을 더 가져가자, 나는 저 앞에 앉아 있는 뒷모습의 주인공을 알아챌 수 있었다.
잠깐 의외라는 생각을 했지만, 평소에도 펩이 몇 시에 잠드는지를 알았던 나는 시차를 생각하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란 결론을 내리곤 얼른 그가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혹시 친구가 필요하지 않으세요?”
“응?”
“아까 깼는데 잠이 오질 않아서요. 가볍게 요기라도 할 생각이었죠. 콘도그나 타코 같은 걸로요.”
“하하하. 앉게나.”
“네. 대체 언제 권하시나 했죠.”
드르륵-
의자를 빼낸 후 펩의 맞은편에 앉아, 그가 보고 있던 것들을 살폈다.
당연하게도, 그건 전술 노트였다.
“쓰리백이네요.”
“훗. 그렇지.”
“우린 좋은 팀이에요.”
“…….”
“응? 동의하지 않으세요?”
물론 아직 맨체스터 시티는 2000년대 후반의 FC 바르셀로나나 우리 두 사람이 몸담았던 근래의 바이에른 뮌헨과 같은 클럽 수준은 되지 못했다.
하지만 매일 훈련할 때마다 조금씩 더 나아지는 것을 보며,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만큼 펩이 새로운 시즌에 하고자 하는 축구는 매력적이고 동시에 새로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펩은 다양한 종목에 있는 수많은 개념과 전술들을 피치로 가져와 기존 축구에 있던 관념 및 철학에 결합했고, 그걸 이 팀에 흡수시키려고 한다.
그리고 난 그것을 무척 기대 중이다.
“아니, 그게 아니라.”
“??”
하지만 금방 펩이 침묵한 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자네가 지금 ‘우리’라고 해서.”
“…….”
“지금까지 많이 들었던 이야기지만, 어쩐지 조금 특별하게 들리는군. 그건 아마도 우리가 이 시간에 휴스턴의 한 호텔 라운지에 함께 앉아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
“새벽은 감상에 젖기 좋죠.”
“하하. 그래. 참으로 신기하게도, 아침이나 낮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되지.”
새벽까지 깨어 있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나를 향해, 펩은 언젠간 자신과 같은 날이 올 거라고 말했다.
그 의미를 알았던 난, 바로 부정했다.
“전 선수가 끝이에요. 감독이 되진 않을 거라고요.”
“지금은 그럴 수도 있겠지.”
“나중엔 달라진다는 건가요?”
“글쎄. 100% 장담은 어렵지만, 나의 90%는 자네가 나중에 감독이 될 거라고 말하는군.”
지금의 이런 대화 패턴은 예전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줄곧 반복해 왔던 것이다.
어느 날 훈련장에서 답답했던 펩이 그만의 모드(Mode)를 발동하기 시작하면, 필리프와 내가 그것을 경청하다가 손짓과 목소리로 동료들에게 알려 주곤 했었다.
하지만 펩은 유독 내게만 추후 감독이 될 거라는 말을 해 왔는데, 그건 타고난 천재와 후천적인 천재의 차이라고 했다.
양쪽 모두 재능을 갖고 태어나긴 했으나, 전자는 가만히 있어도 그것이 발휘된다면 후자는 노력으로 꺼풀을 벗겨 줘야 비로소 나타난다고 했다.
그리고 전자의 경우, 열에 아홉은 가장 잘하는 것에 대한 사랑이 한정되어 있다고도 했다.
“그들은 처음부터 잘했고 또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기에, 자신이 못해지거나 답답한 것을 견딜 수 없다. 맞죠?”
“바로 그거야.”
“확실히, 그것 때문에 필리프가 은퇴를 했죠.”
“뮌헨에겐 큰 손실이지.”
“네.”
지난 2월 8일, 필리프 람은 공식 석상에서 2016/17 시즌 이후 은퇴를 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람은 자신의 기량이 줄어들어 가고 있음을 알았고, 시즌이 끝날 무렵이면 자신이 피치 위에서 최고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많으면 많다고 할 수 있으나 여전히 한창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33살의 나이였기에, 갑작스러운 람의 은퇴 선언은 주변의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특히 바이에른 뮌헨의 사람들에게 그랬는데, 재미있는 건 펩을 빼면 누구도 그 사실을 예견하지 못했다는 점에 있었다.
“필리프는 최고가 아닌 걸 견딜 수 없어.”
“네. 뭔지 알 것 같아요.”
“그래. 그는 겸손하고 성실하지만, 그런 만큼 자신에 대한 기준치가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높지. 물론 자네도 마찬가지기인 하지만, 그와 자네는 전혀 달라.”
잠깐 필리프 람의 은퇴에 대해 말하던 펩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왔다.
만약 내가 최고 레벨에서 경쟁하기 힘든 순간이 오게 되면, 람처럼 은퇴를 선언할 거냐고 말이다.
아직 먼 미래의 일인지라 확답은 할 수 없었지만, 나는 아마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답했다.
33살이나 34살에도 난 여전히 축구를 사랑하고 있을 것이고 최고 레벨에서 경쟁하고자 하는 노력 역시 계속해서 이어 갈 것이며, 조금 떨어졌다고 해서 좌절하지도 않을 거다.
만약 확실한 후계자가 생긴다거나, 누가 봐도 도저히 경쟁이 안 될 때야 축구를 관둘 생각이다.
적절한 때에 난 아마도 SL 벤피카로 돌아갈 것이며, 33살에 열릴 2026 월드컵이 끝난 이후에 대표팀을 관둘 계획 역시도 세워두었다.
나이를 먹게 되면 비록 나는 최고가 아닐 수는 있겠지만, 축구의 새로운 면은 계속해서 볼 수 있을 거다.
그 즐거움이 좌절보다 더 크다고 생각한다.
“99% 지금 자네의 말 덕분에, 나중에 자네가 감독이 될 확률이 99%로 높아졌어.”
“이런! 아영이가 참 좋아하겠네요.”
“쿡쿡쿡.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하게나. 그리고 매일매일 그 사랑을 보여 줄 행동도 하고.”
“그럼 해결될까요?”
“글쎄. 그건 시간이 답해 주겠지. 모든 것처럼 말이야.”
시간이 답해 준다니.
문득, 하나가 궁금해졌다.
“1년 뒤에 우린 어떨까요?”
“응?”
“그러니까, 당신과 저요. 아마 또 어딘가로 투어를 떠나 있겠죠. 과연 그때, 우린 무슨 대화를 나눌까요?”
“…….”
“트레블에 대해? 아니면, 어딘가에서 좌절한 기억을 곱씹으며 그땐 더 잘했어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지금처럼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요.”
“훗. 기왕이면 가장 마지막이었으면 좋겠군.”
“네. 저도 마찬가지예요.”
현재 우리는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이것은 맨체스터 시티라는 클럽 자체의 도전이기도 하지만, 펩과 나의 도전이기도 했다. 우리는 수많은 새로운 것을 피치에서 보여 줄 것이며, 그를 평가받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답은 둘 중 하나다.
성공, 혹은 실패.
이것이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지만, 동시에 나는 새로운 축구의 일원이 되어 또 하나의 다른 역사를 써 내려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사흘 뒤에 펼쳐질 맨유와의 맨체스터 더비는 단순한 평가전보다 더 의미가 크다.
우리의 꿈이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맨체스터의 주인이 되는 것과 새로운 축구.
나는 그것을 위해 펩을 선택했다.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뭐가 말이지?”
“Concilio Et Labore. 맨체스터는 그렇게 일궈진 도시라고요.”
“…….”
Concilio Et Labore.
이는 맨체스터를 상징하는 라틴어로, [지혜와 노력으로]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서기 79년 로마 제국이 쌓은 전초 요새 맨큐니엄(Mancunium)에 기원을 둔 맨체스터는, 대영 제국의 공업 생산을 책임지던 것부터 황폐해지기 일보 직전까지를 모두 경험한 도시다.
그런 이 도시에 찾아온 위기를 극복해 왔던 것은 또 다른 맨체스터의 상징인 ‘Worker Bee(일벌/노동자)’였고, 그들은 지혜의 노력으로 현재의 맨체스터를 일궈 냈다.
맨체스터 사람들은 거기에 대한 자부심이 있고, 난 그것을 조금씩 알아 가려고 한다.
한두 해의 노력으론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최소 5년에서 10년은 바라보고 있다.
“전 그게 마음에 들어요.”
“…….”
“마치, 저와 당신 같거든요. 사람들은 우리가 재능을 타고났다고 말을 해요. 그건 어느 정도 사실이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우리가 해온 일은 옳게 평가를 받지 못해요. 그렇지만 우린 그걸 또 극복하겠죠. 아닌가요?”
“하하. 그래. 지혜와 노력으로.”
“네. 지혜와 노력으로요.”
사람이라곤 우리 둘과 두 명의 호텔 직원밖에 없는 지금, 늦은 새벽 특유의 고요함이 안겨다 주는 침묵은 제법 커다란 여운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비록 내가 꺼낸 말이기는 했지만, 막상 내뱉고 나니 우리가 하려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알렉스 퍼거슨을 뛰어넘고 이 도시의 주인이 된다는 건, 어쩌면 평생 노력해도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 어떤가?
“우리는 승리할 걸세.”
“네. 그렇고 말고요.”
이 대단한 도시와 EPL이란 축구 리그의 역사 한 페이지에, 우리가 지배했던 시간을 기록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위로를 하기엔 현재 펩과 나의 꿈을 향한 열정은 너무나도 컸고, 축구 경기가 시작될 때까지 억누르고 있는 불길은 내 스스로를 태울 만큼 뜨거웠다.
다행인 건 기다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며, 우리가 프리 시즌을 잘 준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띵-
“내일 보도록 하지.”
“네. 잘 자요.”
“자네도.”
스르륵-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던 긴 대화가 끝나고, 엘리베이터에서 펩을 먼저 보낸 나는 어느새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객실로 돌아와 비어 있는 침대로 뛰어들었다.
아까까진 조금도 잠이 오질 않았는데, 지금은 눈이 감겨 참을 수가 없었다.
이는 아마도, 조금 전 펩과의 대화로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던 불길을 조금이나마 진정시킬 수 있었기 때문일 거다.
‘얼른 뛰고 싶어.’
새로운 클럽.
새로운 동료.
비록 그들과 함께한 시간은 3주가 채 되지 않았지만, 나는 다가올 20일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일 거란 확신을 품고 있었다.
***
작가의 말 ? 내일부터 ICC 경기가 이어집니다. 위의 음식 관련 이야기로 또 불편하실 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 첨언 하자면, 2013년 맨체스터 시티 US 투어 때 있었던 일을 각색한 내용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